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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유럽여행 5국 10일/ Italy] 바티칸Vatican 박물관으로 가는 길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91 09.01.01 21: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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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도는 박물관의 개략 안내도이다.

 

 이 담을 끼고 줄을 서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뒤를 보니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왔다.

 

 보시다 시피 출입구.

 

 매표소, 잠시 쉴만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 앞 마당으로 나온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안내인들은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에게 사전 중점 설명을 해 준다.

 

마당 안의 원통형은 무엇일까. 이때도 모르고 지금까지 인터넷을 뒤져도 자료를 못 찾았다.

 

 

 우리를 인솔하고 지켜주는 황지희씨.

 

 

 아내에게  이 길을 고행의 길이다. 기회만 있으면 아내는 털썩 주저앉는다. 남편은 기회만 있으면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듯이...

 

 

 

 

 

 사진을 찍으면 이제 별도리없이 어르신네의 모습으로 찍힌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싶지 찍히고 싶지는 않지만 다녀왔다는 기념은 남기려는 유혹에 빠지다 보면 늙은 모습을 그대로 찍는 수 밖에 없다.

 

 

 

[유럽여행 5국 10일/ Italy] 2007/09/19 Wednesday 바티칸 박물관으로 가는 길

 

나는 유일신을 믿는 바티칸 공국을 가면서 주위에 보이는 신들을 보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 앞서 로마에 자리 잡았던 옛 신들이 분수대 안에서 물을 품는 일을 맡고, 계단에서 경비를 서니 알아 뵙지를 못한다.

나는 옛 신들과 예수님을 만나러 바티칸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선다.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줄을 서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것은 여기서 보통이고 그나마 패키지라서 예약된 순서에 따라 가고 있단다.

우리의 길은 바티칸 공국에서 박물관을 보고 모든 신들을 위한 판테온 신전에 가게 되었다.

지금은 바티칸에 먼저 간다.

건물 안에 들어서기에 앞서 마당에서 서성이며 여기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살펴본다.

우리의 안내인이 해드폰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이 하두 많아서 우리를 모아놓고 이야기를 한들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안내인이 말하는 소리를 우리는 해드폰으로 듣는다.

마당에는 여러 패가 모여있다.

우리처럼 해드폰을 끼고 듣는 팀도 있고, 그냥 육성으로 안내인의 큰 목소리를 듣는 패도 있다.

안내인은 이 박물관이 얼마나 중요하며 우리는 그 중에서 중요한 것 중의 중요한 것을 보러 간다는 말을 하고 있다.

공부 없이 듣기만하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일행을 떠나 빙빙 돌면서 사진을 찍는다.

때가 되면 알겠지.

느긋한 생각이다.

때가 되는 공부를 하게 된다.

아래에 길게 쓴 글은 인터넷상에서 바티칸시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나라와 일본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이때는 그냥 건성으로 다녔다.

알지 못하니 보이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크다 대단하다 놀랍다 하는 감탄사만 할 따름.

바티칸을 알고자 하는 이들은 아래 글을 참고해서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박물관소사

1377년 이래 역대 로마 교황이 거주한 바티칸 궁전을 18세기 후반부터 미술관으로서 일반에게 공개한 것이 바티칸 박물관이다.

바티칸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가톨릭의 총본산이고, 교황은 그 정점에 위치하는 신의 대변자이다 세계에 군림하던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그 뒤를 이은 것이 이 바티칸이 가톨릭교회이다.

세속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는 정신의 고향 바티칸.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권력과 부를 움켜쥔 바티칸의 주인 교황은 열강의 황제와 국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 모임 미술 컬렉션은 그 부와 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의 기초가 닦인 것은 16세기 초두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와서이다. 역사가들은 ‘종교보다는 병력을 위해 태어난’ 혹은 ‘포악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고 율리우스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한 율리우스의 집권 초기 목표는 교회의 통치권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바티칸을 전 세계의 권위의 중심지요, 역사적 사건의 태동지이자 문화와 신학의 상징인 곳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리하여 바티칸을 ‘중심 본부’로 만들기 위해 르네상스 조각가, 화가 등의 예술가들을 끌어들였고, 그의 뜻에 저항하는 이는 회유를 통해서라도 그의 의도를 관철시켰다.

그리하여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예술가들을 기용하여, 그들에게 궁전 장식을 맡겨 르네상스의 걸작을 세상에 남겼다. 비록 그를 포악한 마음의 소유자라고는 하나, 적어도 이런 점에서 미술에 대한 그의 안목은 높이 살만 하다. 미술에 무지한 폭군들도 많았으니….

18세기가 되자 클레멘스 14세와 피오 6세가 고대 조각을 수집하였고, 그것이 오늘날 바티칸 미술관의 한 부분을 차지한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의 기초가 된다. 19세기에는 피오 7세가 고대 로마 의 유품을 그레고리우스 16세가 에트루리아 미술을 수집하는 등, 역대 교황들은 차례로 컬렉션을 늘려갔다. 이렇게 해서 바티칸은 600여 년에 걸쳐서 양과 질 양면에서 세계 굴지의 미술품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인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예술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그 모든 것을 전시하고 있는 24개의 미술관과 기념비적 건조물의 총칭이 [바티칸 박물관]인 것이다.

 

감상 포인트

역대 로마 교황이 거주한 바티칸 궁전을 18세기 후반부터 미술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이 바티칸 박물관이다. 여기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벽화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 불후의 대작이다. 또한 라파엘로와 그의 제자들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라파엘로의 방도 놓치지 말자. 바티칸 박물관 감상방법은 바티칸 미술관인 피나코텍을 먼저 감상하고 솔방울 정원을 거쳐서 라오콘, 아폴로 등이 잇는 벨베데레 정원을 감상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토르소가 있는 뮤즈의 방을 거쳐 2층으로 올라가 카펫 전시물이 있는 태피스트리 갤러리와 지도의 방을 감상한 후 ‘아테네 학당’이 있는 라파엘로 방을 감상하자.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을 끝으로 감상을 마치고 베드로 성당으로 가면 된다.

 

바티칸박물관 목차

 

01. 감상방법 및 순서

02.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제작 일화

03. 중세시대의 회화

04. 조토 디 본네 ( 1267 - 1337 ) ‘스테파니스키의 제단화 ’

05. 멜로초 다 포를리 (1438-1494) '음악천사', '율리우스 2세'

06. 카를로 크리벨리 ( 1435 - 1494 ) 피에타

07. 페루지노 ( 1445 - 1523 ) '성인들과 함께 있는 성모자 '

08. 중앙 그림 / 라파엘로 ( 1483-1520 ) '그리스도의 변용 '

09. 라파엘로 ‘성모의 대관’

10. 라파엘로의 ‘폴리뇨의 성모’

11. 레오나르도 다빈치 (1495 1489) ' 성 제롬 '

12. 베네치아 화파

13. 카라밧지오 ( 1571- 1610 ) ' 그리스도의 매장 '

14. 정물화

15. 벤젤피터(1745 1829) '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

16. 솔방울 정원

17. 벨베데레 정원

18. 아폴로

19. 페르세우스의 메두사

20. 라오콘 군상

21. 토르소

22. 네로욕장

23. 헬레나 석관과 모자이크 장식

24. 다이애나 여신상

25.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이의 죽음

26. 예수님의 부활

27. 지도의 방

28. 콘스탄티누스의 방

29. 엘리오도루스의 방

30. 라파엘로 ‘ 아테네 학당 ’

31. 성채의 논의

32. 보르고의 화재의 방

33. 천지창조

34. 최후의 심판

35. 예수의 생애

36. 모세의 삶

 

성베드로성당

01. 감상방법 및 순서

02. 성 베드로 성당 거룩한 문

03. 바닥의 성당 크기 표시

04. 미켈란젤로 ‘ 피에타상 ’

05.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06. 요한 23세 무덤

07. 청동 발다키노

08. 4대 복음 성인

09. 4대 성인 조각상

10. 베드로 좌상

11. 알렉산드르 7세 기념비

12. 베드로의 성좌

13. 그리스도의 변용

14. 역대 교황 사망 연대기

15. 지하무덤

16. 쿠폴라

17. 베드로 광장

 

바티칸을 알려면 더 찾아본다.

 

바티칸은 고대부터 로마 교외로서 주거 지역은 아니었지만, 기독교 이전부터 일종의 성스러운 땅이었다. 326 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베드로의 묘소를 모신 뒤에 처음 교회당이 세워진 뒤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로마 주교가 교황으로 전체 천주교 교회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서 바티칸은 가톨릭교회의 거점으로 발전하고, 755 년부터 19 세기까지 존재했던 교황 영토 확장으로 번영한다. 1860 년에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하면서 로마 교황 청과 이탈리아 왕국 정부가 관계를 단절하고, 교황을 "바티칸의 포로"로 통칭하고 바티칸에 격리했다.

 

이 같은 부실 관계를 복구할 수 있도록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 사이에서 절충을 계속했지만, 1929년 2월 11일에야 교황 비오 11 세의 전권 대리인 가스팟리 추기경과 베니토 뭇소리니 총리와 사이에 합의가 성립하고 3 개의 라테라노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은 교황청이 교황령의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에, 바티칸을 독립 국가로, 이탈리아에서 가톨릭교회의 특별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이탈리아 국민에게 널리 지원되고 "교황과 화해"로 뭇소리니의 독재 체제는 더 확고한 것이 되었다. 1984 년이 되면 다시 정교 조약이 체결되고, 이탈리아에서 가톨릭교회의 특별한 지위 등 여러 점이 신앙의 자유를 고려하여 수정되었다.

 

국토

바티칸의 영토 바티칸 시는 로마의 북서부에 위치한 바티칸 언덕에 테베레 강 오른쪽 이다. 그 국경은 모두 이탈리아와 접하고 있으며, 한때는 교황을 외부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구축된 바티칸의 성벽을 따라 설치가 되었다. 면적은 약 0.44km ²로, 국제적인 승인을 받는 독립 국가로는 세계 최소이다. 그 좁은 영토 안에 성베드로 성당, 바티칸 궁전, 바티칸 박물관, 성베드로 광장 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또한 라테라노 조약 합의에 따르면, 바티칸 시티 국외의 일부 지역 (카스테루 간도루호의 교황 별장,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 산타 마리아 맛죠레 성당 등 큰 바지리카, 교황 청 사무소 등 )에서도 바티칸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다.

 

관광

관광객이 들어갈 위치는, 성베드로 광장, 성베드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에 한한다.

 

정부

법적으로 바티칸 시티 정권은 비세습에 공선지도이다. 수장인 교황의 권위는 바티칸시뿐만 아니라 신앙 세계에 걸친다. 교황은 80 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선거로 뽑힌다. 교회법에서 교황에 필요한 자격은 남성 가톨릭 신도이며 추기경들이 투표에 의하여 뽑힌다.

"바티칸 시티"와 "로마 교황 청"은 미묘한 동의어이다. 예를 들면 바티칸 시의 최고 책임자로서 행정 청 장관 (Governor of Vatican City)이 존재하지만, 로마 교황 청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국무 장관이 있다. 국무 장관 (Cardinal Secretary of State)은 바티칸의 외교 부문의 최고 책임자이기도하다. 입법권은 로마 교황의 약속에 의하여 바티칸 시티위원회 (Pontifical Commission for Vatican City State)가있다. 위원회 위원의 임기는 5 년으로되어있다.

 

외교

바티칸 시티의 성립하는 1929 년 이후 국제법상 국가가 된 것을 함께 로마 교황 청의 외교 사절이 바티칸의 외교 사절로 각국에 파견하는 동시에 각국의 외교 사절을 받아들일 것을 되었다 (이전부터 교황 사절이 주요 국가에 거주하고는 있었다). 현재 바티칸은 국제법상 주권 국가로서 174 개국의 독립 국가로, 국제 연합과 몰타 기사단의 특명 전권 대사를 받고 있으며 179 개국의 국가와 지역에 대사 또는 외교 사절을 파견하여 있다.

바티칸은 유럽 국가에서 유일하게 종교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산당의 일당 독재 국가에서 수년 자국 내 신자를 탄압해온 중국과 국교가 없으며, 그 대신에, 중국과 대립 관계에 있고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중화민국과 정식 국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화민국과 바티칸의 외교 관계의 역사는 오래되고 중화민국이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제 이차 세계 대전 중인 1942 년에 설치되고 있다.

국제 연합에서는"영구 옵서버"라는 형태로 대표를 파견했지만, 2004 년 7 월 투표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가진 대표가 됐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중립이고 유엔의 바티칸 대표 미리오레 대주교도 "투표권을 행사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입니다"라고 말했다.

 

경제

바티칸의 국가 예산은 2003 년 자료에 따르면 세입이 약 402원에서 세출 421억 원이었다. 주요 산업으로 출판 산업, 모자이크 제작 등이 있다. 바티칸은 국가라기에는 특별하여 이익 추구의 산업 활동은 실시하고 있지 않으므로 "베드로 모금"로 알려진 전 세계 가톨릭 신도의 모금과 우표 판매, 바티칸 박물관 입장료 소득, 간행물의 판매뿐 아니라, 그들의 소득을 "종교 활동 협회"(Instituto per le Opere di Religioni / IOR)를 통해 투자 운용을 실행하기위한 국가 재정이다. 바티칸 직원의 급여 수준은 로마시의 급여 평균보다 다소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통화를 만들어 없기 때문에 이전에 리라가 채택되었다, 2002 년 1 월 1 일 이후 유로가 유통하게 되었다.

바티칸의 국가 재정 관리하는 조직으로 "종교 활동 협회"가있다. 게다가 1980 년대 전반까지는 종교 활동 학회 투자 운용과 자금 조달을 하는 중요한 업무는 이탈리아 국립 노동 은행 자회사의 안부로시아노 은행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2 년이 협회의 폴 마루찐쿠스 총재 (대주교)와 로베르토 칼비 행장 하에 일어난 거액의 사용처 없는 스캔들의 영향으로 동행이 파탄하고 칼비 행장이 암살된 후 로스 차일드 은행과 항부로즈 은행 등이 운영한다.

 

군사 경찰

바티칸시는 경찰력은 국가 경비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경찰에 의지하고 있다. 또한 공중에게 개방되는 지역에 입국은 원칙적으로 자유롭고 이탈리아와의 국경 관리 및 검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5 년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의 장례식은 각국 정상과 귀빈이 참석했기 때문에 테러를 경계하고 이탈리아 군이 바티칸 일대 경비를 벌였다.

교황의 경비는 스위스 근위병이 상주하고 있다 (2007 년 현재 110 명). 1505 년 1 월 22 일 교황 율리우스 2 세를 구하고, 1527 년, 로마가 칼 5 세의 신성 로마 황제 군 침공되었을 때 (로마 약탈), 자신을 희생해서 클레멘스 7 세 철수를 돕고 . 현재는 스위스 국내에서 가톨릭교회에서 추천을 받은 가톨릭 신도 남자를 뽑는다. 병사의 제복은 미켈란젤로의 디자인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1914 년에 제정된 것이다. 스위스 근위병들은 일단 무기 휴대는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의장병이다. 1981 년 요한 바오로 2 세가 습격되는 사건 이후 교황이 공공장소에 나갈 때, 스위스 근위병들은 최류스프레이를 항상 휴대하도록 되었다. 바티칸시는 한때 스위스 근위병 뿐 아니라 교황 기마 근위병과 궁전 가드로 꼽히는 가드 군단이 존재했지만, 형식적인 것으로서 바오로 6 세에 의해 1970 년에 폐지되었다.

 

교통 통신 수단

이탈리아 로마시의 "화해의 길"에서 바티칸 중심부를 바라보며 바티칸을 둘러싼 오래된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1920 년 이탈리아의 실권을 잡은 베니토 뭇소리니 는 라테라노 조약에 의한 가톨릭교회와 화해를 세계에 어필하려고 성 베드로 성당 정면의 가옥을 대담하게 철거하고 넓은 도로를 만들었다. 이것이 "화해의 길 (Via della Conciliazione)"이라 불리는 바티칸시의 간선 도로이다.

바티칸에는 공항은 아니나 중형 헬기가 발착 수 있는 헬기장이 하나있다. 철도는 이탈리아 국내 성 베드로 역에서 분기하여 바티칸 역으로 향하는 863 미터 (중 바티칸 국내는 227 미터)의 철도 노선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정기 열차는 없이 가끔 화물 열차가 연결되나 여객 수송은 하지 않는다. 이 철도 노선은 이탈리아 국내 분을 포함하여 바티칸 국유 것이다, 열차 운행은 이탈리아 국철이 대리하여 운행한다.

바티칸은 자신의 우체국과 전화국이 있다. 로마 시민들은 국제 우편물을 내는 경우, 로마 시내의 우체통에 투함하고 현지 방송국과 로마 국제 방송국을 통과하여 조금 걸어서 바티칸 시 국내 지점에 투함하는 하는 것이 빨리 배달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로마 교황 청이 소유하는 자동차에는 "SCV"라는 자신의 번호가 주어지고 있다. 이 3 문자는 "S tato della C itta del V aticano (바티칸 시티)"의 약자이다.

 

국민과 국적

바티칸의 인구는 821 명 (2007 년 7 월 추정) 이고 그들은 바티칸의 성벽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바티칸 시민의 대부분은 추기경, 신부, 수녀 등 성직자이다. 교황청에서 일하는 성직자가 아닌 일반 직원은 3000 여명에 이르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시 국외에 거주하고 거기에서 통근하고 있다. 또한 스위스 근위병도 바티칸 시민이다. 숙소는 시 국내에 있기도 하고 또는 도시 밖에 집을 가지고 통근하는 근위병도 있다.

외교 관계는 성좌 (교황 청) 사이에 부속되어 있기 때문에 바티칸 시티 자신의 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티칸 시티 국민은 교황청의 공식 요구가 있는 경우 교황청의 여권을 얻을 수 있다. 소위 외교 여권에 해당하는 것은 파란색 커버를 하고 있다.

2003 년 말 현재 바티칸의 거주 권 (소위 "국적")을 보유하는 것은 552 명에 이른다. 그 중 61 명이 추기경 346 명이 주교, 신부 등 성직자이다. 101 명이 스위스 근위병, 44 명의 일반 직원이다. 모든 사람이 바티칸의 거주권과 함께 전통적인 국적도 보유하고 있다. 바티칸 거주권은 성직자를 포함하여 기본적으로 바티칸으로 직무에 켜져있는 기간에 한해 주어진다. 교황 청 직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 직원들은 외교 업무 등에 있어서 특히 필요 없다 한 거주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또 바티칸의 시민권은 위와 같이 직무에 해당하는 특수 지위이기 때문에 비록 바티칸시 국내에서 출생해서 출생지 원리에 의한 국적 취득 수는 없다.

 

문화

바티칸은 나라 자체가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성베드로 성당과 시스티나 예배당 등 봇티체리, 베루니니, 미켈란젤로 등 미술 사상의 거장들이 마음껏 팔을 떨치고 작품으로 가득 차있다. 또한 바티칸 박물관과 바티칸 문서 자료관에는 역사상 귀중한 소장품이 대량으로 소장되어있다. 바티칸은 1984 년에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바티칸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국가라는 성격상 남성이 대부분이다. 몇 몇 있는 여성들이 직원으로 교황청에서 일하는 두 여자 수도회가 지부를 두고 있다. 바티칸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은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수도 회원이다.

바티칸은 성지이므로 복장 규칙이 있다. 특히 여자는 관광객에서도 성당에 들어갈 때 등에 의복에 신경을(소매 없는 옷이나 반바지 금지 등)써서 지켜야 한다.

바티칸은 순례자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항상 붐빈다. 교황은 세계에서 찾아오는 신도를 위해 매주 일요일에는 그들 앞에서 미사를 올린다. 평일에도 신도들의 알현을 받고 있다. 부활절 등 특별한 공휴일에는 성 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보여 세계에 인사를 보내는 것이 상례화 되고 있다.

미디어

신문매체로 "옷세루봐토레 로마노" 신문이 있다. 이것은 교황청의 공식 신문이다. 이탈리아어로 일간,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버전이 주간, 폴란드어가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또한 공식 웹사이트, 라디오 방송국, 위성 텔레비전 방송국이 있다.

여기 까지 읽으신 이가 있다면 칭찬 받아 마땅하다.

사실 그냥 사진 구경만 하며 지나치기 쉽건만 예까지 본다는 노력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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