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월 9일
나는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으로 이사를 갑니다.
50세의 노총각이며, 다리병신으로 혼자 조용히 살다가 죽으려고 한 것입니다.
풍곡에서 6km의 덕풍계곡을 가면 제가 살아야 할 굴피집이 하나 나옵니다
굴피집이란 예전에 돈이 없는 화전민이 돈 한 푼 들지 않고 짓는 집입니다.
기둥을 세우고 나무 가지들을 엮어 벽을 만들고
지붕에는 나무로 서까래를 덮고
그 위에는 오래 된 참나무의 껍질을 벗겨 씌운 집입니다.
바람에 날라가지 않도록 15kg쯤 되는 무거운 돌들을 40여개를 굴피를 눌러 둡니다.
내가 그 집을 사고 이제 속세를 버리고 조용히 살려고 하니 내 마음이 너무 행복한 것은
평생 내것이란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 굴피집일망정 내 집이 있으니 참으로 가장 행복할 때입니다.
우리집는 외딴 집입니다.
마당에 서서 앞을 바라보면 800m가 넘는 산 봉우리 7개가 우리집을 향하여 마치 읍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비가 오면 흰구름이 그 산을 휘휘감아도는 마치 선인들이 사는 고장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집 주위에는 정노인이 팔고간 땅이 3000평이 있습니다.
그중의 2000평은 산 뒤에 숨겨져 있고 집 옆에는 1000평만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컴 기술이 없어 그때의 사진을 올려드리고 싶어도 올릴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나의 삶이 시작됩니다.
덕풍마을은 우리집에서 1km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집 처럼 12채의 집들이 모두 굴피집입니다.
마을에서 1km위로 올라가면 용소골이 나오는 비경이 숨겨져 있고
주위에는 문지골, 괭이골 연장골 보릿골등이 있는데 모두 아름답습니다.
우리집 앞은 작은 오솔길이 이어져 있는데 등산객들이 주로 다닙니다.
나는 이제 모든 근심걱정 따위는 다 흘려버리고
처음 생긴 내 소유의 굴피집이 마치 왕궁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계속)
첫댓글 처음 가저본 굴피집이있는
오십세 나이에 만첩산중으로
이사를 가셨군요.
그곳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고 제2의 인생을 사셨으니
얼마나 행복 했을까요.
36년전 그곳은 대낮에도 무서
웠을텐데 인적도없는 곳에서
자연을 벗삼고 살으셨군요.
도시에 직업을 그만두시고
대단한 결단력이십니다.
날이 밝아오네요.
잘 봤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부뜨리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18년을 살았어요 결혼도 하고요 하하하
그럼 지금도 덕풍계곡에 사셔요 ?
어느곳에 사시든 건강하고
행복하시면되죠
어서오세요 꿀송이님 감사함니다.
지금은 전남 나주에 와 있어요.
그곳은 구경삼아 가 볼만 하지만 살 곳은 못돼요
덕풍계곡이 궁금하네요.지금도 훼손되지 않은체 잘 보존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서오세요 오개님 감사합니다.
덕풍계곡은 아름다우나 동네는 발전을 하지 못합니다.
설악산 근처에서 굴피집을 본 것 같습니다.
검색해본 사진입니다
말로만 들었던 굴피집이네요.
5670님 사진 감사합니다.^^
우리집 굴피보다는 잘 되어 있어 보입니다.
우리집은 손 본지 오래되어 그런지 굴피들이 많이 썩어 있었어요
형광등님 ~~~
저는 형광등님이 일간지에 나온 기사를
읽었기에 어느정도 알고 있답니다.ㅎㅎ
어서오세요 사명님 감사합니다.
아 그때는조선일보 기자가 쳐들어와 취재를 하였어요 하하하
@형광등등 싼타할아버지
가장 닮은 사람으로 뽑히신것도 사진과 기사봤는데
정말 이렇게 생기신 분도 울나라에 있구나했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보기를 실천하여
조선일보,한국일보 두 개를 몇십년 구독했는데 지금은 신문 안보고 인터넷으로 뉴스 봅니다.
신문보던 시절의 기사 형광등님을 기억해내고
카페에서 만나니 신기했습니다.
@사명 어서오세요 사명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구글에 들어가서
`정세근의 숲속의피아니스트` 라고 치면 제 모습이나와요
사실 이글도 삶방에 올리신 글입니다
저는 처음 올리셨을때부터 다보았기에 기억합니다
형광등등님~
올리신 글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살아 오셨네요.
앞으로 행운을 바랍니다.
이제서 들어왔어요 죄송합니다.샛볋사랑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