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 우리 학교는 체육행사로 수업이 끝나고 전직원이 식장산에 갔었어요.
늘 좋은 산이어서 행복했답니다.
“선생님 수고했어. 고마워. 조심해서 가.”
차에서 내리면서 박선생님에게 미안했다.
집은 태평동인데 용운동에서 출발해 대성동가서 내려주고 석교동에서 내려주고 또 부사동에서 내려주고 그제서야 자기집으로 향했다.
‘좋은 사람’ 그 후배는 늘 좋은 사람이었는데도 새삼스럽게 입속에서 중얼거려보았다.
집에 가서 내일 수업을 점검해 보아야지. 생각하며 집에 왔지만 난 또 기어이 컴을 열고야 말았다. 그냥 오늘의 시간들을 접고 내일 수업을 준비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식장산이 준비한 봄은 정말 가슴 일렁이게 하는 기쁨이었기에.
거기에 우리 대옥계가족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있어 더더욱 그랬다.
내일 연구수업은 해야하는데 아직 준비가 미진했지만 다 남겨놓고 미련없이 봄 나들이를 떠났다. 워낙이나 산을 좋아하므로 남은 일은 시간가면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될테니까 연연해하고 싶지 않았다.
따뜻한 봄볕이 우리를 따라왔나? 주차장에 내리니 눈을 가늘게 뜨고 싶게하는 전형적인 봄볕이다. 참 좋다. 입구에 환하게 피어있는 벚꽃들이 이곳부터는 다른 세상이니 두고온 일 모두 잊고 편안한 시간되라고 꽃가지를 흔들어준다. 우리는 천천히 식장산의 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선한 숲의 냄새에 이끌려서.
길섶에 하얀 아주 작은 꽃이 언뜻 눈에 띈다. 잘 살펴보니 꽤 많이 피어있었다. 다른 곳에서 본적이 없는 꽃이었다. 그 작은 꽃은 누군가 자기를 눈여겨 보아 주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을까? 일본의 어느 학자의 물 얘기가 생각난다. 사랑해. 정말 예쁘구나. 마음으로 말해주었다. 정말 사랑스러웠으므로.
군데군데 지난번 백년 만의 폭설의 흔적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꺾여진 가지를 부여잡고 너무 예쁜 새 잎을 소복히 피워 낸 나무를 보며 얼마나 기특하던지. 목으로 넘어오는 그 무엇을 꿀꺽 삼켰다. 우리 사람은 얼만큼 이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흉내낼 수 있을까. 이 나무의 자기 사랑! 우리 사람들이 배워야하리. 자기만이 아니고 가족을 동반까지 해서 자살하는 사람들. 아니 나부터도 나를 얼만큼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열심히 가다보니 뒤에서 쉬고 가잔다. 잠시 쉬어본다. 그러나 난 쉬면 못가는 체질. 다행히 회장님께서 천천히 가자하신다. 중간중간 노란 꽃빛의 산수유가 참 좋다. 우리 교실 밖의 산에 있는 산수유는 벌써 피었는데 여긴 산이 깊어 이제 핀 모양이다. 새소리가 들린다. 무슨 새일까? 소리가 참 예쁜데. 발 걸음 옆엔 보랏빛 작은 꽃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꽃빛이 참맑게 느껴진다. 공기가 맑아서일까?
길섶에서 저만큼 떨어져 하얀 꽃이 뭉텅뭉텅 피어있다. 무슨 꽃인지 궁금해서 쫓아가 들여다보았다. 회장님께 여쭈어보았더니 하얀 제비꽃이라신다. 보랏빛 제비꽃보다 훨씬 귀한 꽃인데 어쩜 이렇게 소담스럽게 피었을까.
어? 가다보니 나 혼자 가고 있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휘파람소리의 새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도 간간 들린다. 저만큼 아래엔 물소리가 봄을 노래했는데 그러고 보니 난 식장산이 연주하는 봄의 교향악을 듣고 있었다. 새의 높은 소리, 잔잔한 풀꽃들의 소리, 무게있는 베이스의 바람소리, 간간 들려오는 산수유의 꾸밈음의 소리, 주음을 연주하는 나무들의 새잎을 피워내는 소리, 이만큼 잘 훈련된, 이만큼 조화로운 화음을 연주해낼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사람들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 행복하다.
드디어 구절사! 우선 목이 마르니 시원한 물부터 한 바가지 마시고.(앞으로 내가 퇴직하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조롱박을 많이 심어 전국 산사에 갈 때마다 약수터에 몇 개씩 주고 올 생각이다.) 산 아래를 보니 부러울게 없다. 모든 세상이 내 눈 아래 있는걸. ㅎ ㅎ
절에 왔으니 절에도 눈길을 주어야지. 이 절의 나이를 지붕이 말해주고 있었다. 새는 지붕을 다 이것 저것 이어 붙여 싸 놓았다. 몇 년전에 한번 왔었는데. 겨울이었었지. 몇 사람의 자연문제 출제팀이. 그날의 기억들이 몇 장면 떠올라 웃음짓게 한다.
어. 민들레! 뜨락 밑에서 두 송이가 소담스럽게도 피었다. 대개의 민들레는 소박한 모습으로 힘들게 작은 공간 하나 얻어 어렵게 피어있는데. 아마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언제쯤 아랫동네로 내려갈까 꿈을 키우고 있었기에 저렇게도 눈부신 노란빛의 꽃을, 큼직한 잎을 키워낼 수 있었으리라. 교장선생님께서 부르신다. 이젠 내려가자고.
산은 신의 품인 듯 편안하고 행복하다. 이렇듯 편안한데도 별일 아닌 일들에 시간을 빼앗겨 자주 못 온다. 이렇게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음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내려왔다.
시계를 보니 식당으로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 주차장으로 열심히 가는데 노선생님 전화. 뒤로, 뒤로 가든!
투명한 봄 햇살 한 자락을, 약간은 훈훈한 그리고 상큼한 봄바람을, 흐드러진 벚꽃의 하얀 화려함을, 바로 눈앞에 무리지어 핀 분홍 진달래의 추억을 안주 삼은 교장선생님께서 주신 막걸리(사이다를 탄)의 맛. 정말 기가 막힌 맛이었다. 나는 왜 이 기막힌 막걸리의 맛을 이제서야 느끼는 건가. 새보다 자유로와라를 부르고 있는 유익종의 목소리가 감미롭게 들린다. 비록 값싼 음향기기를 통해 나오고는 있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값싼 소리를 충분히 감싸 소리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용운 산성에 도착해서 일찍 와 계신 분들과 합류했다. 산에 갔다와서는 모든 사람이 다 좋아보이고 예뻐보이고 멋있어 보인다.(옥계 가족들은 평소에도 그렇지만) 산에서 깨끗이 씻겨져, 마음이 비어있어서일까? 나는 이 기분이 참 좋다. 이 마음으로 잠들고 싶다.
첫댓글 참~~글도 맛갈스럽게 쓰는 열순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께*^^*
새들의 휘파람 소리, 나무들의 새잎을 피워내는 소리, 길가에 뭉텅뭉텅 피어있는 제비꽃들-----싱그러운 숲 속의 오솔길이 그리워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