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카 22~23)
루카 복음사가에 의하면 네번째로 소개되는 이 축복은 마태오 복음의 여덟번째 축복에 이어 나오는 보충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과 상응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주어질 박해에 대해 네 가지로 표현한다.
첫째는 미워하는 행동이 나타날 것으로 예고한다.
'미워하면'에 해당하는 '미세소신'(misesosin; hate)는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풀기 어려운 적개심을 뜻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여기서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해서 강한 적개심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적개심은 믿는 자들을 쫓아내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쫓아내고'로 번역된 '아포리소신'(aphorisosin; separate; exclude)는 '내쫓다', '배척하다' 라는 뜻이며,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믿는자들을 소속된 공동체로부터 추방하거나 소외시켜 버렸다(요한9,22참조).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하여 모욕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욕하고'에 해당하는 '오네이디소신'(oneidisosin; reproach; insult)은 깔보고 욕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중상하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원문에는 '에크발로신토 오노마 휘몬 호스 포네론'(ekbalosin to onoma hymon hos poneron; reject your name as evil)이다.
이것은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리면'(cast out)이라는 뜻인데, 믿는 자들이 당하게 될 핍박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이며 제자라는 그 이름 자체로 말미암아 적대자들에게 악하다고 단죄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열된 네 가지의 경우가 모두, '사람의 아들 때문에, 즉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게 되는 고난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고난을 받는 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신앙인들은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분명 박해와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박해받는 자마다 '생명의 화관', 즉 영광의 상급에 대한 약속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축복이 되는 것이다(묵시2,10).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여기서 '그날'(in that day)는 바로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는 때, 즉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때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기뻐하고 뛰놀아라'를 단순 과거 명령법으로 쓰고 있다.
단순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어느 특정한 시간에 일시적으로 취해져야 할 것을 표현하는데, '기뻐하고 뛰놀아라'는 명령은 '그날에'라는 시간에 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박해가 지나간 후에 그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핍박의 현장에서 적극적인 기쁨의 행동을 취하라는 역설적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핍박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뛰놀다'라는 역설적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 이유는 하늘에서 박해받는 자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에 해당하는 '미스토스'(misthos; reward)는 선한 행위와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 수여하실 보상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박해를 당하는 그들의 행위가 선한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들이 당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심으로써, 신실한 종들에게 꼭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똑같이 그렇게 핍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루카복음 6장 26절과 관련지어 보면, 거짓 예언자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고 칭찬을 듣는 자는 거짓 예언자라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하나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기뻐 뛰놀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1베드4,14; 로마8,36).
-임언기 안드레아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