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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 5 사랑하시는 예수 - 요 11: 9 사람이 낮에 다니면
2. 깨우러 가자 ( 요 11: 5-16 )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나사로는 그 병으로 죽었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모든 신자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 죽음은 슬프고 두려운 사건이 아니고 천국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요 장차 부활할 소망을 가진 죽음이다.
신자의 죽음은 불행의 극치가 아니고 이생을 충실하게 마치는 신앙 훈련의 절정일 뿐이다. 신자는 죽음을 생각하며 더욱 분발한다.
요 11: 5 사랑하시는 예수 -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
예수는 예전부터 마르다와 그동생들을 사랑하셨다.
1]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저 하심이었다(4 절).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동기가 여기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은 나사로와 그 형제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특수한 이적을 행하시게 되었다.
요 11: 6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조급하지 않으신다. 그는 시간이 많으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급할 필요가 없다.
1]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우리는 영생할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때가 언제인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조급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2]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의 위급한 사태를 아시고도 천천히 그들을 방문코저 하신 이유는,
그가 지체하시는 동안 그 당사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도록 준비된다.
그것은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천천히 오심을 사랑을 베푸시기 위한 지체이다.
(1) 그 사태의 수습이 오직 자기에게 달린 까닭,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위대한 계획이 있으셨다. 한낱 한두 사람의 일로 인하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지 않으신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가 회복되는 일은 흔히 사람 가운데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사는 일은 일생에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다.
주님이 나사로의 병듬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셨을 때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계획하신 것이다.
(2) 천천히 시간을 잡는 것이 오히려 그 당사자들에게 유익한 까닭.
나사로가 죽자마자 다시 살아난다면 어떤 사람은 그가 잠시 기절했다가 회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도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고 장사지낸 뒤 여러 날이 지난 그의 몸에서 냄새가 날 때쯤이면 사람으로서는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은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많은 시간을 경과한 뒤에 천천히 시간을 잡는 것이 오히려 사람에게나 하나님 편으로나 더 유익한 부활이 될 것을 주님은 아셨다.
요 11: 7 유대로 다시 가자 -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
제자들은 유대로 가자는 주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인간 편에서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고 그때 우리는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인도하심이 최선의 길임을 믿고 인내하며 그를 따라야 할 것이다.
1]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예수님께서 천천히 제자들의 신앙 수준을 올리셨으므로, 인제는 그들이 가장 없이 위험 지대인 유대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었다(Bengel).
요 11: 8 돌로 치려 하였는데 -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겁을 낸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답은 비관적이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한 사건은 유대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1]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님께서 병든 나사로를 고쳐 주시기 위하여 유대 땅으로 가시려 할 때에 제자들은 만류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주님의 신변을 위험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요 11: 9 사람이 낮에 다니면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
예수께서는 일상생활의 예를 비유로 드셨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빛이 있으므로 넘어지지 않고 밤에 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넘어지기 쉽다.
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라고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신 기회가 남아 있으므로 그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런 기회를 식별할 수 있을까? 물론 예수님은 그것을 식별하셨다. 그는 헤롯의 죽이려는 음모를 아시고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라고 하셨다(눅 13: 32-33)
2]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낮 열두 시간은 그에게 일하실 시간이며 예수께서는 일하시는 동안 아직 죽지 않으실 것이다. 그의 일하실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은 낮이었다. 제자들은 두려워 말고 그와 함께 활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직 죽음을 겁낼 때가 아니었다.
3] 낮이 열 두시 (요 11: 5-9)
나사로를 사랑하신 주님은 그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받으시고도 나사로가 있는 곳에 곧바로 가지 아니하시고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다고 했다. 그 이유는 나사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심에 있었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나사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인가를 이미 알고 계셨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대로가 아니라 가장 온전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그의 방법에 따라 처리하신다.
이 같은 일이 나사로의 가족들에게는 일시적으로 큰 슬픔과 어려움을 안겨 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욱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으며 이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1) 이틀을 더 유하신 예수님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셨다면 예수님은 즉시 나사로에게 달려가셨어야 했다.
① 주님은 이런 전갈을 들으신 후에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다.
만약에 예수님이 시각이 급하셨다면 구태여 베다니까지 가시지 않고서도 다만 말씀으로 병든 나사로를 고치실 수 있으셨다.
가버나움에 사는 한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을 그같은 방법으로 고쳐 주셨다.
* 눅 7: 2-10 –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딸이 흉악하고 귀신 들린 가나안 여인의 경우도 그러했다.
* 막 7: 25-30 –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런저런 방법을 쓰시지 않으시고 이들을 더 유하셨다.
②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이 응답은 나사로가 죽은 후 무덤에서 살려내시는 일이셨다. 이 같은 주님의 의중을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다윗은 이처럼 고백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시 139: 17).
(2) 낮이 열 두 시가 아니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유대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이제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그곳을 떠나 유대로 가시기로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얼마 전까지 유대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돌로 침을 당할 뻔하였는데 왜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고 물었다.
이때 예수님은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봄으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라고 하셨다.
낮 열두 시란 정오를 의미한다. 이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나타내는 시간이다. 여기서 낮 열두 시를 가리키는 가장 밝은 빛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말씀이다.
이 말씀을 다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① 하나는 예수님 자신의 사명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시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실족하실 수가 없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하셨다(요 8: 12). 그리고 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고 했다 (요 1: 9).
예수님은 빛 바로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빛을 해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계신다.
② 다른 하나는 빛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면 빛을 봄으로 실족하지 않을 것이란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정오의 빛과 같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므로 그 빛을 따라다니는 이상 실족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모신 사람은 언제나 그의 인생이 낮이다. 그가 빛으로 걸어가는 길을 막을 장애물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움 없이 빛을 따라 사명을 이룰 수 있다. 주님의 빛은 우리로 우리의 소망의 나라에까지 이르게 한다.
* 시 43: 3 -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3)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실상을 이야기 주시기 위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고 말씀해 주었다. 여기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잠들었다고 표현하셨지만 제자들은 이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병자가 병상에서 잠들어 쉬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 것으로 알고 있었다.
죽음의 잠을 자고있는 나사로를 깨우는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는 큰 믿음을 주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신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능을 제자들로 보게 함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믿게 하시려고 하셨다.
이때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의심 많은 제자로 이름 있는 도마는 그 이름이 아랍어이고 헬라어로는 디두모다.
그는 비장한 각오로 예수님올 따라 유대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의 결심은 실제로 그들 앞에 위기가 왔을 때 스승을 버리고 도망하는 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올 모시고 살아가는 생활은 우리에게 기쁨과 축복과 소망을 준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실족함이 없다. 그러나 이 빛이 우리의 마음에서 떠난다면 실족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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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인생길에는 꽃길이 따로 없습니다. 건강 하면 꽃길 입니다. 오늘도 줄겁고 신나게
화이팅 하세요. 인연 이란 산길 같아서 매일 오고 가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 해진 답니다.
오늘도 서로 안부를주고 받으며 건강 잘 챙기시 고요 향기로운 하루 보내세요
사랑 합니다. 가는곳 마다 예쁜 사랑 가슴에 담고 행복 넘치는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