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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
요일 5:6-12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6-12 / [아들에 관한 증언]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와 죽음을 눈앞에 두셨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진실하신 성령께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증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곧 우리 마음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그리스도께서 침례받으신 때 하늘로부터 둘려온 음성,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 이 셋입니다. 이 세 음성이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똑같은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9) 우리는 법정에 선 증인들의 증언을 신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언은 더욱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10)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모두 마음 속으로 이 사실이 참되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들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이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요,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못한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들 안에는 생명이 있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십니다.
성령과 물과 피로 증거(6-8)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천상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을 때 예수에게 임하셨다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거짓 가르침에 대항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동시에 육체를 가지신 인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요일 1:1). 성령은 예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에 그의 위에 머무심으로 객관적인 증거를 보이셨습니다(요 1:32). 진리이신 성령은 믿는 자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로 오셨음을 증거합니다(2:20, 27; 4:1-6). 예수께서도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요 15:26). 진리이신 성령만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거(9-10) 율법에 의하면 두세 사람의 증인이 증거하는 일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합니다(신 19:15). 부패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의 증거도 받아들여야 한다면 완전하신 하나님의 증거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에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자신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셨으며(마 3:16,17; 요 1:33,34), 예수의 고난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증언하셨습니다(요 12:28-30).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들 안에 있는 영생(11-12) 영생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영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성육신하신 인간이심을 증거하신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일 때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생명을 주셨기에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신 자는 영생을 소유하게 되며 아들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의 인격을 닮아가게 됩니다.
적용: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까? 믿는 자에게는 구원과 영생이 있어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빛의 자녀입니다.
구약에 다윗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자기 부하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 부하까지 죽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 죄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자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어느 날 왕궁 지붕 위에서 어떤 여자가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보여, 그 여자와 잤는데 그만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고백한 것입니다.
< 설 교 >
우리에게 주신 증거
요일 5:6-12
1. 증거
증거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법원이 법률을 적용할 사실의 유무를 확정하는 재료”로서 증명할 수 있는 재료를 일컫는 말입니다. 요한일서의 중심적인 주제는 사람이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왜 증거에 집착하는 것입니까? 성도들이 잘못된 신앙에 흘러 떠내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꾸 다른 관점에서 구원의 문제를 확신시키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 즉 중생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 앞에 섰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킨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면 신앙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옳게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 정신으로서의 세상! 끊임없이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니는 사탄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상의 정신입니다. 그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로 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요한 일서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13-21절까지는 다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요한일서는 이 부분이 결론입니다. 그런데 결론부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증거, 혹은 증언입니다. 특히 증거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증거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까? 영지주의의 미혹에 넘어져 흘러 떠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증거는 이런 것이라고 쐐기를 박는 본문이 바로 오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확실한 증거를 받으시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2. 성령의 증거
5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부름 받아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 붙잡아야 할 분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평생 마음에 두고 따라야 할 분입니다. 평생 배워야 할 분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 가지고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6-8절에는 다소 미묘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이는”이라고 할 때 ‘이는’은 앞 단락의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말이 물과 피로 임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물과 피를 통해서, 혹은 물과 피에 의해서 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떠오르게 합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떠오르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바로 그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피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십자군 전쟁으로 세상을 짓밟아 힘으로 굴복 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물과 피라는 것입니다. 즉 낮아짐, 겸손 이라는 방법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그리스도라는 영이 들어 왔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그리스도의 영이 떠났고, 십자가에 죽은 것은 예수라는 껍데기만 죽은 것이라는 괴상한 이론으로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단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실제로 자신이 보고 듣고 만져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존재하였고, 실제로 죽으신 분의 죽음을 목격한 자로서 그 증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물과 피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이 해석들이 모두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에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물과 피가 구약의 죄를 씻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예배를 완성하셨다는 의미로 봅니다.
출29장과 레8장을 보면, 제사장에 임명될 때는 항상 세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첫째는 몸을 물로 씻고, 그 다음에 희생이 바쳐지고, 그 피로 귀, 손가락, 발가락에 발랐습니다. 그런 후에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 할 수 있는 중보자로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실 수 있는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해석입니다. 과거의 상징적인 사건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어 더 이상 동물의 피로 예배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물로 임하셨다는 것은 마3:15-17절에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직접 그분에 대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인 나와 하나가 되시고, 죄인의 대표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피는 역시 십자가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물세례로 죄인의 대표가 되시고, 삶을 마치시면서 십자가의 피를 흘려주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피 라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해석해도 물과 피는 주님의 십자가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서 살아내셨던 발을 씻어주고, 섬기고 낮아지는 십자가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이기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그분이 이 땅에서 살아내셨던 십자가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서 그 십자가의 정신으로 세상을 이기겠다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세상의 방법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12영(營)이나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해서 물리적인 힘으로 충분히 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 나라의 방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멘 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물과 피와 성령이 하나라고 묶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슴으로 깨달아지도록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를 말씀을 깨닫게 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즉 물과 피는 과거일 수 있지만 성령의 역사는 지금 내 삶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이 셋에 대해서 과도한 해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셋이 하나라는 것은 물과 피,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 부름 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삽니다. 세상의 정신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정신은 늘 세상 정신에 거치는 것이 됩니다. 땅의 창고에 쌓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높아지고 싶고 대접 받고 싶은 마음이 우리에게 간절합니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높은 권력을 갖고 싶은 욕망이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정신은 그런 우리에게 늘 거치는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내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우리는 높아지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런 세상 정신을 이기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만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도 그런 방법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물과 피로 이기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증거(9-10절)
지금도 주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라는 주제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 네 번째 증거인 셈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증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사람의 증언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을 통해서 대 속죄일의 어린 양과 아사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 땅에 참된 화목제물 되실 그리스도가 아사셀 양처럼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이렇게 구약에서 예언하신 그 구속의 절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물과 피로 요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진리의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 받은 성경 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구원의 방법이 화목제물이 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그와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와 그리스도가 따로 존재하고 예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증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라는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자유의지를 주셨으며 문화 명령을 주신 분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고 사시와 연한과 바다와 강, 그리고 물고기와 들의 풀과 공기를 만드신 분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되는 역사를 이루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마처럼 보여주어야 믿는다는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보여준다고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증언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증거입니다.
4. 우리에게 주신 영생(11-12절)
자, 11-12절은 요한일서의 전체 요절입니다. 구원이란 영생인데 이 영생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앞에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영생은 에덴에서 누렸던 완전한 천국의 영생입니다.
영생은 지옥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영생이 그냥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축복을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 받은 사실이, 우리가 영생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영원한 천국을 믿고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증거라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영생이 생명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영생은 새로운 생명으로 출생한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 6:47절의 선언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그럽니다.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성도인 우리에게 이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흘러 떠내려가고, 그래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타협하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후4:7-11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가진 보배가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그릇처럼 약합니다. 우리 자신 만으로는 질그릇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이 보배, 진리의 복음!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될 때 우리는 달라집니다. 심히 큰 능력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겨 쌈, 답답한 일, 박해, 거꾸러뜨림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몸에 짊어지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서 나타나도록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를 그리스도를 담은 향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질그릇이 향기를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가 향기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담겨 있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 몸에 배어 나오게 될 때 우리는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의 확신 때문에 흔들리는 신앙생활을 청산하십시오. 더 앞으로 나오십시오. 적극적으로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십시오. 모르는 채로 그냥 게으르게 앉아 있지 마십시오. 새벽을 깨우시고 느슨해진 신앙의 끈을 조이십시오. 온갖 우리를 노략질하는 수많은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우리 시대에 성도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진리로 믿지 않고 이 시대의 영지주의자들처럼 새로운 영적 지식을 주장하는 신사도 운동이 얼마나 우리를 미혹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문제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옳은 길입니다. 유혹에 넘어지지 마시고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십시오.
세상을 이기는 믿음에 비결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아멘.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증거는 무엇인가?
요한일서 5:6-12 / 조정의 목사
요한일서는 특별한 위험 가운데 처한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를 지키려고 사도 요한이 급히 처방한 백신과 같다. 교회를 위험에 빠뜨린 대상은 그리스도의 원수이자(요일 2:18, 22) 교회를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교사)였지만(요일 4:1), 그들은 한때 교회 구성원이었고 아마도 교사이면서 동시에 지도자였을 것이다(디오드레베, 요삼 9; 요일 2:19).
요한은 두 번째 편지에서 이런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요이 10-11). 요한은 그들을 “적그리스도”라 부르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로 성도를 미혹하기 때문이다(요이 7). 그런데, 무슨 근거로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있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이 질문은 매우 적실하고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마다 성경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교회” 간판이 붙은 곳을 다닌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교사와 목사의 이름으로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요한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증거가 무엇인지 확실히 밝힌다(하나님의 증거). 그러면서 이 증거를 가진 자는 생명이 있고, 이 증거를 거부한 자는 생명이 없다고 말한다. 진짜 영생을 가진 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참으로 거하는 자를 이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증거를 받지 않고 오히려 훼손하려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경고했다.
당신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 영생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인가? 요한이 어떻게 그 증거를 제시하는지 살펴보면서 당신 스스로 점검해보고, 당신이 즐겨 듣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소위 ‘교사’, ‘목사’는 어떤지 분별하자.
1. 증거는 무엇인가?(6-8, 10-12절)
본문의 핵심은 “증거”이다. 동사형 “증언하다”(마르투레오)가 네 번, 명사형 “증거(언)”(마르투리아)가 여섯 번, 총 열 번이나 등장한다. 본문은 ‘증거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증언하시는지’에 관해 주로 설명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증거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외적인 증거, 나머지 하나는 내적 증거이다. 둘 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제시하신다.
1) 외적 증거(6-8절)
당시 교회를 미혹한 거짓 가르침이 ‘그리스도가 누구인가’(기독론)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누구신지를, 하나님이 친히 증언하신 외적 증거를 통해 밝힌다. 무엇에 대한 증거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이다. 누가 제시하는 증거냐?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하신 증거이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6-8절)
플럼머는 ‘신약에서 가장 난해한 말씀’이 이것이라 말한다. 예수님이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피와 양수로 성육신? /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 / 성례? 물은 침례, 피는 성찬? “임하셨고” – 부정과거분사, 단회적인 역사적 사건). 성령과 물과 피 셋이 합하여 하나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인가?
요한은 두 가지 외적인 사건,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성령과 더불어 증언하신 역사적 사건을 물 그리고 피로 설명한다. 물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받으신 침례를,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씻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각각의 사건에 성령께서 함께하셨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각각의 사건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참으로 증언하셨다(요 14:17; 요일 4:6).
① 물(요한복음 1장 29-34) –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② 피(롬 1장 2-4) –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③ 성령 – 각각의 사건에서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이
④ 셋이 합하여 하나 – 예수님에 관한 공통된 증언, 하나의 주장을 한다(두세 증인의 충분한 증언효력, 신 19:15; 민 35:30).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표현에 주목하라. 당시 케린투스(도케티즘)라는 거짓 교사는 인간 예수가 침례 받을 때 그리스도가 임하셨고, 십자가에 오르기 전 떠나셨다고 주장했다. 요한은 그 거짓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나님이 증언하신 외적 증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진리의 성령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의 침례뿐 아니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분명히 증거를 제시하셨다.
2) 내적 증거(10-12절)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침례, 죽으심,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었다. 그래서 서신서 초반에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말했다(요일 1:1). 하지만 요한의 독자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60여 년이 흐른 뒤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증언하신 예수님의 외적 증거를 직접 경험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 독자에게 요한은 내적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10절을 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자기 안에 있는 증거’ 곧 내적 증거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내적 증거를 오롯이 느낌이나 감정, 경험이라고 오해한다. 특별집회에서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은 경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찬송했던 경험,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해지는 느낌,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적인 돌봄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의 경험 등.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내가 믿고 있다는 증거,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증거(영생의 증거, 생명이 있는 증거)라고 확신한다.
물론 신자 안에 있는 생명, 하나님과 누리는 영생의 결과가 위와 같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내적 증거는 절대로 외적 증거와 동떨어진 경험과 느낌이 아니다. 10절을 계속 보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고, 그분과 관계가 있다는 느낌이나 경험이 분명하고, 섬김과 봉사의 삶에서 보람을 느끼고 칭찬을 받아도,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결국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과 같다. 당신은 하나님이 친히 제시하신 아들에 관한 증거를 어떤 식으로든 왜곡하고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으로 믿고 따를 수 없다(당신이 한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당신은 믿어요?).
하나님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자 안에 생명을 주신다. 영생 곧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살아 있는 친밀한 관계, 영원한 사귐을 누리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 안에 그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아들을 하나님이 증언하신 증거대로 믿는 자만이 생명을 얻는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그가 보내신 아들을 통해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들을 어떤 식으로든 왜곡하고 거부하면 생명이 없다. 11-12절을 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참고로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증언하시는 이로써 아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증언하신다. 그분의 나심, 침례,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등 아버지께서 친히 증거하신 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셨다. 그리고 오늘날 말씀을 접하는 이들의 영혼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증거를 받게 하신다. 하나님의 증거에 따라 아들을 증언하신다(요 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했다(참고. 살전 1:5).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령을 통해 계속해서 증언하고 계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다. 참 그리스도인은 모두 성령의 내적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2. 증거를 받는다면?(9절)
우리는 사람들의 증언도 중요한 증거로 채택한다. 우리는 몇 사람의 합의된 주장을 신뢰한다. 증인의 말이 일치하면 대체로 믿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제시하신 증거는 얼마나 더 크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믿어야 하겠는가?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증거를 보여주실 때 얼마나 더 그 증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겠는가?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9절)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참 증거를 받아 아들을 제대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자로서 우리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태도/자세를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아들이 누구신지에 관한 증언뿐만 아니라 아들이 나타내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 반대로 미워하시는 일 등에 관하여도 성경을 통해 증언하셨다. 성령께서 그것을 성경에 기록하셨다. 그러므로
첫째, 성경을 인정하라. 하나님의 증거를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성경을 시대착오적 주장이 섞인 고대문서로 보거나, 당시 문화와 관습에 매여있는, 제한을 받는 내용이라고 말하거나, 그래서 오늘날 독자의 상황에 맞게 내용이나 의미를 변경,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주의하라. 물론 성경은 당시 문화, 역사, 저자를 고려하며 해석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하나님의 증거인 성경은 결코 문화, 역사, 저자에 제한을 받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볼 때 오류가 있고 불충분한 책이 아니다.
성경(하나님의 증거)에 대한 태도가 곧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다. 성경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만큼 인정하라. 하나님이 실수하지 않으시고 오류가 없으신 것처럼 성경 또한 그렇다. 오직 하나님으로 충분한 것처럼 오직 성경이면 하나님의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사는 일에 충분하다(딤후 3:16-17).
둘째, 성경을 사모하라. 진리가 무엇인지를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그래서 성경의 권위를 철저하게 인정하고 자유주의, 인본주의를 외치는 이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 중에 안타깝게도 성경을 사모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을 거짓과 싸우는 무기로 이용할 뿐,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 알고 경험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증거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만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기를 나타내시지만, 세상에서 가장 또렷하고 분명하게 자신을 나타내신 아들을 통해, 그 아들을 증언한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다. 이보다 더 좋은 증거는 없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시 119:14). 하나님의 증거를 멀리하고 사모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절대 사랑할 수 없다.
셋째, 성경에 순종하라.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물으셨다(눅 6:46).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분이 말하는 것을 행해야 한다고 하신다. 성경은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 말씀은 순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나는 주님을 따르는 자이지만, 몇몇 동의하기 힘든 말씀은 따를 수 없습니다’라는 말도 주님을 우습게 만든다. 성경에 순종하는 당신의 태도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 당신의 태도를 반영한다.
결 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 생명이 있다는 말은 더 이상 삶의 아무런 고난이나 핍박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죽을 것같이 괴로운 고난과 핍박 중에 부활의 능력,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이다. 세상의 온갖 거짓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미혹될 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아니다. 온갖 거짓에 파묻혀도 우리 안에 참 진리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더불어 우리와 영원한 사귐을 가지신다.
땅에 사는 동안에 고난은 끝나지 않고 거짓의 유혹도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모시고 그분과 함께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증언하신 증거, 그 증거를 성령이 기록하신 성경을 가까이해야 한다. 성경을 인정하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에 순종하라. 그러면 우리는 베드로의 권면처럼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것이고(벧후 3:18),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한 사귐, 기쁨 충만한 영생을 누리며 모든 환난과 거짓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것이다.
예수의 증거가 있는 자
요일 5:6-12
1. 예수 그리스도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 하는 이는 물과 피와 성령이다.
예수는 사마리아의 수가 동네에서 여자를 만나 이 우물의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 또 유대인의 명절 큰 날에 외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 하셨다.(요4:10,14,7:37,38)
요한은 그리스도가 증거 하신 물과 생수는 예수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이라 했고 이에 주님은 물 곧 성령으로 임하신분이며 또 그리스도는 피(血. 히>담. 헬>αἷμα 하이마. blood.~ 혈액. 속죄의 피. 하나님의 피. 성경 말씀) 즉 말씀으로 임하신 분이라 했다.(요7:39.행20:28.엡1:7.계19:13)
2.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즉 성령과 물과 피로되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 말했고 또 성령과 물과 피가 하나라 했으며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세분화해서 말 한 것이며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하나님인 것을 말했으며 또 합하여 하나라 했고 이에 한분 하나님이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다.(행20:28.요7:38,39.요일5:6-9)
재언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고 또 물, 역시 성령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며 피, 역시 하나님의 피고 그의 말씀인 것을 계시록에서 증거 했으며 이에 요한은 사람의 증거도 신빙성이 있지만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신뢰해야하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를 믿어야한다.(요일5:9,10)
3. 하나님의 증거는 그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에 관한 크신 증거이다.
예수님은 내가 자신을 증거 하면 참되지 않기에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나를 위하여 증거(證據. 히>에드. 헬>μαρτυρία 마르튀리라. witness.~ 사실을 증명함. 증거. 목격자)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말씀인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셨다.(요5:30-34,36)
또 그리스도는 나를 믿는 것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 즉 나를 보는(히>라아. 헬>βλέπω 블레포. see.~ 보다. 바라보다. 알다) 자는 나 보내신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그 결과 구원(救援. 히>예수아. 헬>σωτηρία 소테리아. salvation.~ 죄에서 건져줌)을 얻게 된다.(요3:17.12:44,45,47)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4. 자기 안에 증거가 있는 믿는 자, 불신하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안에 증거가 있다 말했고 이에 대해 바울은 너희가 믿음(히>에무나. 헬>πίστις 피스티스. faith.~ 믿는 마음. 믿음의 주체 예수)이 있는 가? 즉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 예수가 함께 계신지 시험하고 확증해보아라
만일 이를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라 했다.(고후13:5)
예수는 아버지께서 자신을 증거 하셨다 하셨고 나를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며 벌써 심판을 받았고 이 예수를 증거 하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을 요한은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자라 즉 죄인들은 하나님을 거짓말 장이로 만든 자들이라고 말했다.(요3:18,5:36.요일5:9,10)
5. 하나님은 아들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어 영생의 증거가 있게 하셨다.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처음부터 들은 복음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이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라 말했고 처음부터 들은 것(말씀. 성령. 영원한 생명 예수)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한다 말했으며 이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라고 증거 했다.(요일2:24,25,5:10,11)
그렇다. 아버지의 증거,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주 안에 거하면 나는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가 내 안에 계셔서 주와 합하여 한 영(靈. 히>퓨뉴마. 헬>πνεῦμα 퓨뉴마. spirit.~ 영원한 생명. 성령. 영혼)이 되면 다시는 죄를 범치 않게 하는 하나님의 씨가 계신 증거가 있다.(고전6:17.요일3:6,9, 5:18)
믿음에 관하여
요일 5:6-12 / 김목사
사도 요한은 믿음에 관하여 3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믿음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있습니다. 믿음의 근거로서 물과 피와 성령, 3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3가지 증거는 다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0세쯤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세례를 받으시고 그 다음에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물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세례, 즉 사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자연을 순복하게 하는 등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역을 보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주신 증거가 피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즉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증인을 주신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고 믿게 만들어줍니다. 물과 피는 객관적인 증인이라고 할 것 같으면 성령은 주관적인 증인입니다.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로 바꾸어 주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3가지, 물과 피와 성령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증언은 내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고 믿기로 결정했을 때 그때에 성령님의 확인이 오는 겁니다.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그래서 저는 안믿는 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는 확신이 60~70% 정도 되면 믿기로 결정하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나머지 30~40%는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분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내게 아직도 불안이 있고 불확실한 것이 있고 아직 의심이 있지만 ’하나님, 저는 믿습니다 이러면 성령님께서 확신을 주십니다.
2. 두 번째는 믿음에는 경고가 있습니다.
믿음의 근거로서 물과 피와 성령, 이 증언 뒤에는 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역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부활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보여주셨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안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겁니다. 이게 경고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겁니다. 우리 주위에서는 정직해서는 사업을 못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살라고 그러다가는 세상에서 성공 못한다, 낙오자 밖에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 6:33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면 모든 생활의 필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정직하게 살면 사업이 안되고 성경대로 살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것은 저는 하나님 말을 못믿겠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다는 겁니다.
3. 세 번째는 믿음은 영생을 누리게 합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히 계속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는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겁니다.
요한은 영생에 관해서 3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로 영생은 주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삶의 보람과 기쁨과 행복은 우리가 추구하거나 쟁취하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데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영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 가운데서 재미는 볼지 모르지만 기쁨은 없습니다. 또 편리는 있을지 모르지만 평화는 없습니다. 쾌락은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통해서 주어지는 보람과 기쁨과 행복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맛볼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 영생은 지금부터 누립니다. 우리가 영생을 통해서 맛보는 보람과 기쁨과 행복은 지금부터 맛볼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책임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끼리는 빨리 빨리 화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 다 만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맛, 섬기는 맛, 참아주고 용납하는 맛, 주님을 위해서 조금 헌신했을 때 주님이 주시는 기쁨 이런 맛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영생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천국의 맛을 지금 봐야지 나중에 완성된 영생에 대한 소망이나 기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천국의 맛을 보지 못하면 나중에 천국 가서 맛을 못봅니다.
가정에서 천국의 맛을 봐야 됩니다. 목장에서 천국의 맛을 봐야 됩니다. 부부끼리 천국의 맛을 봐야 됩니다. 친구끼리 천국의 맛을 봐야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꽉 붙들어서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는 것을 믿으셔서 영생이 주는 보람과 기쁨과 행복을 맛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풍성한 생명
요일 5:6-12 / 유관지 목사(목양교회)
오늘 본문 가운데 1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아들이 없는 분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말씀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이거 뭐 나는 생명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그런 분들은 우선 담임목사를 보면서 위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아들 없습니다. 외손도 딸입니다.
그 다음에는 본문을 잘 보시면 그런 오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냥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있으면 생명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모두 생명이 있는 분들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아들을 모신 자’라는 뜻입니다.
「표준새번역성경 개정판」은 12절을,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또 ‘아들을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모두 생명이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아들이 아무리 많아도 생명이 없습니다.
요한1서 5장 12절은 같은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3장 16절과 17절, 18절의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여러분, 예수님 잘 모셔서, 또 잘 믿어서, 여러분 안에 생명이 있는 것에서 더 나가서 생명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배지를 늘 달고 다닙니다. 여러분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해외나 또는 금강산에서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주민을 만나 ‘그거 김일성 배지는 왜 달고 있는 것입니까?’ 물으면 틀림없이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북한 주민은 ‘그거 무슨 불경스러운 소리를 하는 거요?’ 하며 덤벼들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그것을 ‘수령님을 모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수령님을 그렇게 열심히 모시고 있는데 어떻게 됩니까?
잘 모시면 모실수록 그 나라는 점점 가난해지더군요.
생명을 걸고 그 나라를 탈출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잘 모시면 잘 모실수록 어떻게 됩니까?
우리 안에 생명이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줄여서 영생입니다.
요한1서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설흔 번 나옵니다. 요한1서는 ‘사랑의 서신’이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요한1서는 생명에 대해서도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1서에는 생명이라는 말이 일곱 번, 영생이라는 말이 네 번,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요한1서는 생명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요한1서 1장 1절과 2절을 보세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여기 나오는 “생명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씀,’ 이런 뜻입니다.
「표준새번역개정판」은 1절을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1서는 생명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영생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요한 1서 5장 20절을 보세요.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1서는 ‘사랑의 서신’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서신,’ ‘영생의 서신’입니다.
요한1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1서 4장 9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마른 뼈 이야기가 나옵니다.
골짜기에 아주 마른 뼈들이 심히 많았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까 뼈들이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였는데 그 안에 생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너는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37: 9b)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 죽음을 당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 뼈들은 들어 맞았고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아 오르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러나 생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죽음을 당한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없는 사람들,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바깥 모습은 그럴듯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 생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당한 자들입니다.
호흡은 하지만 활동을 하지 못하는 분들을 식물인간이라고 합니다.
이분들은 호흡도 하고 활동도 하지만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활동성 식물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 10절을 보면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대언하니까 생기가 그들에서 들어가서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살아나서”라는 말입니다.
생기가 들어가야 온전히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생기가 없으면 산 것 같지만 죽은 사람들입니다.
생기가 있어야 정말로 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생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과 생명이 없는 사람을 달걀에 비교해서 생각해 봅니다.
달걀은 밖으로 보기에는 다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수정란(受精卵)이 있고 무정란(無精卵)이 있습니다.
저는 무정란의 반대는 유정란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컴퓨터로 이 설교 원고를 쓰는데 ‘유정란’ 이라고 하니까 그 밑에 빨간 점선이 쳐지더군요.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리면 밑에 빨간 점선이 나오지요.
그럴 때는 사전을 찾아서 확인해 보는 것이 정확한 언어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유정란, 빨간 점선, 사전을 찾아보니까 무정란의 반대는 유정란이 아니고 수정란이더군요.
수정란은 부화가 됩니다.
그 안에 생명의 씨가 있습니다. 그 생명이 이어집니다.
무정란은 닭이나 오리가 교미하지 않고 혼자서 낳은 알입니다.
이 알은 부화가 되지 않습니다.
모양은 같더라도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는 수정란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들이 없는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무정란입니다.
씨 없는 열매와 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과 생명이 없는 사람을 전화에 비교해서 생각해 봅니다
책상 위에 전화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구내 전화는 그 건물 안에서만 연결이 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구내전화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만 쓸모가 있습니다.
구내와 외부를 겸한 전화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구내와 외부를 다 통할 수 있는 전화입니다.
외부와 통하는 전화 가운데 국제전화는 못하게 되어 있는 전화들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전화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그런 조치를 해 놓습니다.
예전에는 DDD 못하게 되어 있는 전화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DDD, 국제전화, 다 할 수 있는 전화들입니다.
영적 세계와도 통할 수 있으니 위성전화보다도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진홍(金鎭洪) 목사님이 남양만에서 두레농장을 운영하고 있을 때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안내하면서 양계장 앞까지 왔는데 앞에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닭들도 밤에는 쉬어야하니까 밤에 이 부근에서는 자동차의 클랙슨을 울리지 말고 헤드라이트를 끄십시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우리 농장에서는 수정란만 생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더군요.
신망 있는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니까 그대로 믿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이 생명이 그 아들 안에 있다.’는 말은 더 믿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가 그렇다고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셋이 그렇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절과 8절과 앞부분을 보세요.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성경에는 두세 사람의 증언이면 유효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신17: 6, 마 18: 16)
그래서 예수님을 재판할 때 대제사장 측은 거짓 증인 둘을 내세웠습니다.(마27: 60)
그런데 여기에서는 성령, 물, 피, 셋이 같은 증언을 합니다.
물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받으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것을 말합니다.
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전도하실 때 성령이 늘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전 생애와 존재를 걸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 생명이 내 안에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나누어주기 원합니다. 여러분, 그 영생을 받아가세요. 나를 믿으면 영생을 받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과 물과 피가 증언하는 이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원하시고, 그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까 두레농장 같을 때 이야기인데 김진홍 목사님이 ‘유 목사님, 돌아가실 때 달걀 한 판 드릴 테니 가지고 가세요.’ 해서 그 말도 믿고 기대했습니다.
그 전에는 거기 가서 알로에를 밭에서 직접 따 가지고 와서 잘 먹었거든요.
그런데 그 날 그 분에게 바쁜 일이 생겨서 어딜 나가시면서 그렇게 말한 것을 잊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는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번 아동부와 중고등부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주제가 성령공동체인데 교회는 성령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생명공동체, 영생공동체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생명을 가진 존재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 더 알아야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데 이왕이면 풍성하게 얻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뒷부분을 보세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는데 생명을 조금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하게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여러분 이 생명을 풍성하게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좋은 약수터에 가서 물을 조금만 마시고 오는 분은 없습니다.
벌컥벌컥 배가 차도록 마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그렇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남선교회가 주일 오후마다 광교산 등산로 입구 토월 약수터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이 전도가 많은 효과를 내서 여기에서 받은 전도지를 가지고 교회에 전화를 해서 찾아온 집사님 가정도 있습니다.
지난 수요예배에는 여기서 전도 받은 분 다섯이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거기 가서 보면 와서 많은 사람들이 약수를 받아 가는데 무겁다고 조금만 받아 가는 사람, 없습니다.
다 병 가득히 받아갑니다.
예수님 모시고 살기 힘들다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조금만 받아가려 하지 마세요.
가득히 받아가세요.
8월이 시작되었습니다. 8월이 되면 여러분 어떤 말이 생각납니까?
광복이라는 말이 생각나지요. 8월은 광복절이 들어 있는 달이니까요.
통일이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통일은 ‘제2의 광복’ 이니까요.
통일을 생각하면서 북한선교가 강조되기도 합니다.
휴가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요즘은 뉴스 첫 머리가 으레 휴가 행렬, 해수욕장, 산, 계곡에 휴가 인파,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와 함께 생명, 생명력, 이런 말도 생각납니다.
주변을 보세요. 녹음이 얼마나 싱싱하게 우거져 있습니까?
이 설교를 준비할 때 메모지에 지금 말씀 드린 것들, 통일, 북한선교, 휴가, 그리고 제일 끝에 생명, 이렇게 써놓고 ‘이번 주일에 어느 것을 주제로 설교할까?’ 생각했습니다..
통일? 평소에도 자주 말하니까 뒤로 돌리고,
북한선교? 마침 탈북자 대량입국도 있어서 관심이 있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8월 15일이 감리교가 북한선교주일로 지키는 주일이니까 그때로 미루고,
휴가, 생명, 이 둘을 놓고 왔다 갔다 하다가 생명을 주제로 택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때도 생명을 느끼지만 8월은 특별히 생명감을 풍성하게 느끼게 되는 달입니다.
청년들과 함께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으로 수양회를 간 일이 있습니다.
거기는 백사장이 완전히 모래로 되어있지 않고 개펄 성분이 약간 들어 있습니다.
물이 나간 다음에 보면 거기에 지렁이가 기어간 것 같은 자국들이 가득합니다.
이름 모를 바다 생물들이 움직이는 자취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서 있으니까 그 백사장이 생명 덩어리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8월은 ‘아, 나는 생명에 둘러싸여 있구나!’ 풍성한 생명감을 느끼게 되는, 또 느껴야 되는 달입니다.
8월이 또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느끼는 달이 되기 바랍니다
아까 에스겔서의 마른 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마른 뼈들이 생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저 생기가 있구나!’ 느끼게 하는 존재들이 되지 말고 ‘이 사람은 생기가 철철 넘쳐 흐르는구나!’ 느끼게 하는 존재들이 되기 바랍니다.
내게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이 빈티 나는 생명이어서는 안 됩니다.
부티 나는 생명이어야 합니다.
운동경기를 할 때 두 팀의 기세를 보면 어느 팀이 이길지 짐작하게 됩니다.
대개 기세 좋게 출발하는 팀이 이깁니다.
재작년 월드컵 때 우리 대표팀이 기세 좋게 올라가다 보니 4강까지 갔습니다.
성도들 안에 생명의 기운이 풍성하게 넘칠 때 교회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나누어주어야 하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은 이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이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요한1서를 기록했습니다.
본문 밖의 13절을 보세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요한복음도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을 보세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까 성령과 물과 피가 예수님이 생명인 것을 증언한다고 하였는데 요한도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요한은 증거라는 것을 참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증언, 증거, 이런 말들이 여러 번 나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세례 요한은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고 여러번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면서도 1장 2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힘써야합니다.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내 안에 이 생명이 풍성하게 있어야합니다.
나 먹을 것도 없는데 남 주기 힘들지요. 내 안에 있는 영적 생명이 빈약하면 남에게 나누어 주기 힘듭니다.
예수님을 잘 모시면, 예수님을 잘 믿으면 여러분, 이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는데 이왕이면 잘 모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이왕이면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생명이 풍성하게 넘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사람은 빛과 사랑과 생명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 삶을 살아야합니다.
영적 삶은 영적으로 거듭남으로써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적 탄생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곧 영생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갖는 것은 곧 영생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불어 넣어줍니다.
그리스도를 갖지 못한 것은 곧 생명을 갖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을 의미합니다.
온 천하를 갖고도 그리스도를 갖지 못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아들을 내게 주셔서, 예수님을 모시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해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잘 모시고 잘 믿어 풍성한 생명을 소유하고, 그 생명을 나누어주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증거
요한일서 5:9-12 / 강석공 목사
국경일 같은 때가 되면 공동체의 화해라는 명분 아래 대사면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법을 어겼기 때문에 사회 참여에 제한을 받던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습니다. 언젠가는 운전자들의 벌점을 모두 지워 주는 그런 사면도 있었습니다. 간혹 “그까짓 것, 난 벌점이 얼만지 알지도 못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 앞으로 정말 새롭게 잘 해 봐야지...”하며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정말로 큰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정치인들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좀 더 근신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 수사를 받을 때 그들이 어떤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까?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은 죄가 없는데 정치 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꼼짝없이 혐의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증거가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검은 돈을 받은 증거들이 분명히 밝혀졌기 때문에 더 이상 발뺌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증거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사람들이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증거가 뭡니까?” 매우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조건 믿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무조건 믿는 것도 사실은 위험합니다. 왜냐 하면 그런 믿음은 어려움에 부딪치면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사도 요한의 대답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 대답이 바로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그 생명은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나라들이 재판을 함에 있어서 대체로 증거 재판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인정되는 것은 모두 증거 능력이 있는 증거에 의한다는 엄격한 법칙입니다. 강요된 자백이나 소송 관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비밀 증거는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적인 증거만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눈에 보이는 증거만 믿는다는 말입니다. 과연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다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따르지만...
하여간 지나치게 증거만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심지어 사랑이라든가, 이웃과의 나눔이라든가, 믿음까지도 증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라든가 성령이 주시는 내적 증거는 세상의 증거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와 하나님 나라의 실존을 증거로 보여 달라는 요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 이 시대는 증거 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술에 취해서 공공 기물을 부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폭행을 가하고서도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이 뭐라고 우겨댑니까? “증거를 대! 증거를...” CCTV에 다 찍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발뺌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 증거부터 숨기거나 없애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사법당국에서도 그런 가능성에 대비해서 인신 구속부터 시키고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분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확인하려고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눈에 보이는 증거만 가지고 판단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증거를 보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증거는 과연 어떤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셨다는 말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구약의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말라기에 이르는 많은 선지자들이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선지자 이사야였습니다. 그가 증언한 고난의 종에 대한 증거의 말씀은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님의 생애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입니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었고 풍채도 없은즉 보기에 흠모한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그가 우리 때문에 찔리고 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았다고도 증언했습니다.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고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다고 선지자는 분명히 증언했습니다. 얼마나 분명한 증거입니까? 그러나 이 증거의 말씀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증언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예수님이 천국 복음 전파를 막 시작하시려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의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예수님이 십자가로 나아가셔야 할 때가 되었을 적에 다시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찬란한 모습으로 변형되신 예수님을 홀연히 빛난 구름이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친히 증언하셨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는 매우 차원이 높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그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증거가 됩니다.
지난 해에 상영되었던 <아일랜드>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아주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아일랜드라는 이상의 섬으로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겨우 선택된 몇 사람만 그 섬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아일랜드란 섬은 없습니다. 때문에 선택되어 그 섬으로 간다는 것은 곧 폐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멀쩡한 사람들이 왜 폐기됩니까? 왜냐 하면 그 사람들은 복제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건강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자기의 유전자를 가지고 복제 인간을 만들어서 지하 세계에 살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입자가 심장이 아플 것 같으면 자기 복제 인간의 심장을 떼어 이식한 후 그 복제 인간은 폐기하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까? 복제 양, 복제 소, 복제 개에 이어 사람을 복제하겠다고 떠들어 대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혹시나 영생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영생을 얻은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길을 몸소 증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으나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 즉 영생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는 방법을 세상에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이 증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과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장차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사도 요한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증거를 대라고 했을까요? 그 당시 특히 지식인들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구원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성도들이 혼란을 겪게 되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 믿음의 토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우리도 확실한 증거를 붙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아들 그리스도를 증거하셨다고... 또한 그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증거는 오직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미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오직 하나님의 증거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고 장차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