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복지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것이 건강보험이다.
유럽과 미국등 선진국들과 비교해봐도 遜色이 없다.
우리나라 복지제도 가운데 가장 대상이 광범위한 제도는 바로 건강보험이다.
3% 정도의 극빈층을 제외하고 5000만 국민이 가입돼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 가입자들 가운데 혜택을 더 많이 보는 사람은 소득이 높은 계층이다. 믿어지는가?
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혜택이 커지는 민간보험이 아닌데도 말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3년 기준 건강보험료 대비 급여비 분석 결과를 보면 이는 쉽게 확인된다.
여기에서 급여비는 진료를 받은 뒤 병원에 내야 할 병원비 가운데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을 제외하고 건강보험에서 내는 돈을 말한다. 진료비 영수증을 살펴보면 이 급여비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가입자를 다섯 계층으로 분류하면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의 급여비가 가장 높다.
상위 20%가 한달 평균 약 23만 8,500원의 급여비 혜택을 누리는 반면 가장 소득이 낮은 하위 20%는 약 11만 7,000원의 혜택을 누린다.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급여비를 2배쯤 받아 가는 셈이다. 특히 직장가입자의 경우 상위 20%는 한달 평균 급여비가 약 26만 9,200원으로 하위 20%의 12만 3,000원에 견줘 2.2배나 된다.
일반적으로 주거지나 위생 및 영양 등이 좋지 않은 저소득층이 건강 환경이 좋은 고소득층보다 더 많이 아프다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통용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급여비가 더 낮은 것은 저소득층이 의료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진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내는 급여비 비율이 60% 초반으로 낮다 보니 병원에 내야 할 돈이 부담이 되는 저소득층은 아파도 병원을 덜 찾는다.
대신 병원비가 덜 부담되는 고소득층은 병원을 더 자주 찾는다. 이 때문에 중·저소득층의 치료받을 권리를 충족시키자며 건강보험의 급여비 비율을 크게 높이자는 이른바 ‘무상’ 의료를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아파도 경제적인 부담으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나라는 최소한의 인권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급여비 수치에는 저소득층의 반발을 막기 위한 반대 논리도 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이 보험료를 훨씬 많이 낸다는 것이다.
실제 상위 20%가 내는 보험료는 한달 평균 21만 5,000원으로 하위 20%의 2만 2,800원보다 9.4배나 된다.
또 하위 20%가 내는 보험료에 견줘 급여비 혜택이 5.1배로 상위 20%의 1.1배보다는 크게 높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료에 견줘 급여비 비율이 큰 저소득층에게 현재의 건강보험에 만족하라거나 혹은 보험료를 많이 내는 고소득층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얘기도 자주 나온다.
물론 미국식 민간보험에 견줘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이 중·저소득층에게 훨씬 유리하다.
또 보험료를 많이 내는 사람들의 기여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보장 수준으로는 고소득층이 복지 혜택을 더 많이 누리는 기형적인 상황이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픈 이들이 제대로 치료받은 뒤 다시 일터로 복귀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줄이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많은 주요국가들은 국민에게 기회를 평등하게 준다는 의미에서 의료와 교육을 공공정책에서 책임진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이어 교육에서의 복지정책인 무상급식마저 몰아내고자 한다.
이는 무상이라는 말을 ‘공짜로’ 혹은 ‘퍼주는’이라는 말로 비난하면서 기본적인 건강권을 누리는 데에도 현재의 불평등을 유지하자는 주장일 뿐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무상’이라는 말은 그 의미상 많은 오해와 불필요한 논쟁을 확대시켰다. 이제 치료·교육받을 권리 또는 먹을 권리 등으로 바꿔 부를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