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21.08.06 00:00 문재인 정권이 파시스트의 길을 가고 있다. 반(反)민주적 악법이자 위헌적 독소 조항으로 가득한 언론중재법은 정권이 파시즘으로 질주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언론중재법은 언론 자유를 질식시킬 ‘언론 징벌법’이자 ‘비판 언론 파괴법’이다. 문 정권이 희대의 악법을 강행하는 것은 언론 장악이야말로 장기 집권의 씨줄이자 날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법 위의 성역(聖域)에 올려놓은 ‘방탄 검찰’ 완성에 이은 후속 조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쟁점과 해법' 긴급토론회(온라인 생중계)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이용해 집권했으면서도 사정 기관과 권력 감시 기구를 정권이 식민화한 것은 운동경기에서 심판을 매수한 격이다. 문 정권은 ‘합법적 다수결’로 국가권력과 시민사회를 접수했고 언론까지 평정하려 한다. 그럼에도 문 정권을 파시즘이라고 부르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파시즘에서 나치 절멸 수용소의 대학살을 떠올리는 이들은 문 정권이 진짜 파시즘이라면 정권 반대자들이 무사하겠느냐고 묻는다. 파시즘 담론은 문 정권을 ‘악마화’하려는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반론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와 달리 파시즘엔 일관된 이념이 없다. ‘주먹이야말로 파시즘의 강령이다’라고 갈파한 파시스트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파시즘의 최소치’를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중 가장 중요한 교훈은 ‘파시즘이 현대 민주주의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은 자유민주주의 대중 정치에서 대중의 동의를 자양분 삼아 증식한다. 강압에만 의존했던 옛날 독재정치와 달리 파시즘은 대중 독재로 나타난다. 파시즘은 민주적 선거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다. 민족 감정을 격발하고 적과 동지를 가르는 적대적 대중 정치로 의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해체해 간다. 종말론적 위기의식으로 뭉친 파시즘은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으로 지도자를 신성시하며 ‘국가의 적’을 박멸하려는 세속 종교로 변질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1919~1987)의 말처럼 현대 민주주의는 ‘물리적 테러나 경찰력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사법 체계 교란과 정보 조작을 통해서도 파시즘으로 변질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시대는 그 자신의 파시즘을 갖고 있다’는 레비의 경고는 21세기 한국 정치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문 정권은 코로나 사태에 지친 시민들이 여름휴가와 하계 올림픽에 관심을 쏟는 틈을 타 언론중재법 기습 처리를 공언한다. 언론 자유 파괴법이나 다름없는 악법으로 언론의 권력 감시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다. 언론 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문체부와 국회 입법조사처조차 우려하는 법안을 청와대와 민주당이 강행하는 데서 파시즘의 특징인 이중 국가(dual state)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중 국가란 합법적 관료 조직인 ‘표준 국가’ 위에서 권력 실세 집단의 ‘동형 기구’(Parallel Structures)인 ‘특권 국가’가 국정을 전횡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론법 폭주는 문 정권 핵심 실세 집단이 이끄는 특권 국가가 표준 국가를 압도해가는 파시즘의 흐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낮에 국가 테러를 휘두른 히틀러의 강성 파시즘과 달리 문 정권의 연성(軟性) 파시즘은 부드럽게 작동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아직까지는 야당과 사법부가 작동하고 비판 언론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약한 데다 책임을 회피하는 눌변의 문재인 대통령은 파시즘과는 거리가 먼 유약한 지도자로 보인다. 그러나 연성 파시즘도 민주주의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은 강성 파시즘과 마찬가지다. 문 정권 실세들은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과 김경수 전 지사 대선 여론 조작 사건의 대법원 최종 판결조차 부정한다. 권력 실세들로 구성된 동형 기구의 특권 국가가 합법적 국가 조직인 표준 국가를 능멸하는 파시즘의 특징이 문 정권에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히틀러는 종말에 이르기까지 독일인들의 지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이른바 문빠와 대깨문의 세속 종교적 광신이 문 정권의 연성 파시즘을 떠받치고 있는 것과 닮았다. 언론 징벌법은 최순실 추적 보도나 조국 일가 탐사 보도 같은 권력 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언론 자유가 위축되면 거악(巨惡)이 춤추고 파시즘이 웃게 된다. 하지만 비판 언론은 결코 죽지 않는다. 5공 때 언론 통폐합에 앞장선 허문도의 악명(惡名)처럼 문 정권 언론 악법에 앞장서는 자들도 역사의 춘추필법에 기록될 것이다. ‘세계사는 곧 세계 심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