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말씀]
중창으로가는길
교화사 최경주
‘교외 들판에 가는 사람은 세 끼 식사만 있으면 되고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하룻밤 걸려 곡식을 찧어야 하고 천리길을 가는 사람은 석달 동안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한 나절이면 다 배울 수 있는 공부가 있고 몇 십 년 걸려야 배울 수 있는 공부가 있고 평생을 두고도 다 배우지 못하는 공부가 있다. 가령, 갓난아이가 3살이 되어 어머니 품을 떠나기 위해 배우는 걷는 법이나 밥 먹는 법은 한 나절이면 다 배울 수 있는 공부이고, 아이가 자라 사회에서 직업을 갖기 위해 배우는 공부는 2,30년이면 다 배울 수 있는 공부이며, 한얼님을 찾는 진리 공부는 평생을 바쳐도 다 배우지 못하는 공부이다.
중광가에 나오는 종문 영철님들과 홍암 대종사를 비롯한 삼종사처럼 깨달은 이도 계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울로부터 받은 성품과 목숨과 정기의 착하고 악함, 맑고 흐림, 두텁고 엷음의 정도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섞여 있어 목숨을 내놓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 솔직히 평생을 해도 다 배우지 못하는 게 실재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부에 드는 시간이 아니라, 공부의 정도에 따라 그것에 임하는 자세나 준비에 있다. 천리 길 가는 사람이 교외 들판에 나가는 사람처럼 가벼이 준비할 수 없지 않은가? 교외 들판에 가는 사람이야 혹여 준비가 미흡하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집을 한 번 떠나면 돌아오기가 어렵기 때문에 마음부터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출발 전에 도중에 생길 사건 사고를 예측해야 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지까지 잘 갈 수 없다. 똑같이 집을 나서지만 가깝고 먼 것에 따라 이렇게 천양지차가 난다.
한얼님을 찾는 진리 공부도 그렇다. 진리의 깊이와 폭에 따라 교외 들판에 가는 정도의 수준에서부터 백리 길, 천리 길을 가는 다양한 수준의 것이 있다.
우리 모두는 한얼님의 진종대도가 우리 인류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 목적지임을 안다. 대종교의 교의(敎義)가 바로 홍익인간이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이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이 유정물(有情物)이 되었든 무정물(無情物)이 되었든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소외시키지 않고 어우러져 크게 한 덩어리이가 되는 것을 이른다. 홍익인간은 대종교와 대종교인만이 잘된다거나,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만이 잘된다는 그런 게 아니다. 허허공공한 한얼님이 무소부재 하신 것처럼 경계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모두가 하나이고 하나가 모두이다.
그래서 한얼님을 섬기는 우리 검무리들은 긴 호흡을 해야 한다. 장거리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자기 호흡 조절을 잘하며 홍익인간이라는 교의가 실현될 때까지 그저 가고가고 또 갈 뿐이라는 생각으로 지감조식금촉을 묵묵히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중창을 준비하는 사람의 자세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교인수의 불고 줄음이나 성금의 불고 줄음과 같은 외형적인 것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곤이라는 물고기가 오직 천지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스스로 환골탈태하여 붕이라는 새가 되어 파도를 3천리나 일으키고 회오리 바람을 9만리나 타고 올라 대풍을 타고 남쪽 천지를 향해 날아가듯 우리들도 지감 조식 금촉으로 스스로 악한 마음을 돌이켜 착한 마음이 되게 하고 흐린 기운을 돌이켜 맑은 기운이 되게 하며 엷은 정기가 두터운 정기가 되게 하여 강령하고 화순하며 호덕하고 순수하며 전습하고 유형하며, 탁식하고 영예하고 공완하여 중창을 준비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교가 중창되면 대종교가 어떻게 되는 줄 안다. 가변에서 중심으로, 소수에서 다수로, 낮은데서 높은 곳으로 등등. 아니다. 분명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우려하고 염려하는 다른 종교들의 세속화된 모습이지 진리의 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창시대는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뀌는 시대이다. 각 교단에서 한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이 이름에 구애받지 않고 한얼님의 큰 가르침을 실천하는 시대이다. 진리는 이름이 없다. 이름은 오직 만물에게만 있을 뿐이다. 중창시대는 만물 각자에게 붙어 있는 이름의 구속을 벗고 천지의 비롯인 진리에 합하는 것이다. 대종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등 모든 이름을 놓아버리고 오직 한얼님의 빛과 한얼님 빛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시대일 것이다.
천지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우리들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사람 몫이고 지옥으로 만드는 것도 사람 몫이라는 것을 안다.
지극히 복되고 가장 빛나는 한울나라로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한얼님 나라로 오르는 섬돌은 착함으로 하고 들어가는 문은 덕으로 하기 때문에 착함이 모자라도 갈 수 없고 덕이 부족해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당초 한울나라를 포기하고 제 맘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나이 90에 산을 옮기는 일을 시작한 우공처럼 마음의 허황된 생각과 삿된 것을 비우고 오직 우직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정성을 쏟는다면 한얼님이 굽어보시리라 본다.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진종대도의 한울은 너무나 커서 가히 알기가 어렵다. 홍암 대종사의 중창이 사람을 헛된 말로 속이는 말이 되지 않도록 대교인들은 늘 삼가고 또 삼가해야 될 줄 믿는다.
지감조식금촉만이 당장의 중창이고 중창을 앞당기는 일임을 잊지 말자.
경일알림_2015.06. 28.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