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라는 지명을 말하면 경기도 일산에 있는 대화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평창에도 대화라는 동네가 존재한다.
고속도로, 기차역과 평창읍내 사이에 있어 이곳에 갈 때 지나가는 동네이다.
현재로서는 아주 평범하디 못해 조용한 시골 동네에 불과하지만,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전에는 평창, 정선 전체의 관문이었던 곳이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가도가 지나가는 길목이자,
평창에서 서울을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곳으로 규모가 제법 있는 동네였다.
같은 대로가 지나가는 옆 동네 안흥에서 찐빵이 탄생했듯,
이곳은 무려 조선시대부터 5일장이 들어서 가장 북적였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별거 없어 보이는 이 조그마한 동네에 오래전부터 버스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평창의 관문 역할을 장평리에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버스터미널은 교통의 요지였던 시절에 남긴 중요한 흔적이다.
겨울이 다가오는 11월 어느 날, 그 조그마한 흔적을 찾아 떠났다.
장평에서 다음으로 찾아갈 곳이 바로 이곳, 대화면이었다.
평창은 우리에게 제법 친숙한 동네지만 외지인들이 접하는 곳은 주로 고속도로 주변에 한정되어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곳 외에는 평창의 다른 동네를 가본 적이 없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비로소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탔는데, 15분 거리임에도 무려 15,400원이나 요금이 나왔다.
200원씩 올라가는 구간 요금의 파노라마 덕분에 예상외의 요금을 지출해야 했다.
사실 장평에서 여기까지 오는 버스 시간은 얼추 맞았지만,
그걸 타면 여기서 다음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와보리라 마음먹었던 대화시외버스터미널.
계획을 세운 지 1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오게 되었다.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3층짜리 상가 건물이 바로 대화시외버스터미널이다.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왠지 모를 위압감이 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화면이라는 동네는 무척 조용했다.
깔끔하게 정비된 골목길과 건물이 일렬로 주욱 늘어서 있을 뿐,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으며 지나가는 차조차도 몇 대 없었다.
큰 건물에 비해 출입구는 굉장히 조그맣다.
건물 자체가 시외버스터미널 역할뿐만 아니라 상가 역할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미널 정식 명칭은 '대화버스터미널'이지만 실제로 군내버스는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다.
큼지막한 상가 건물 안에는 각종 식당 및 매점, 이발소, 커피숍, 고시텔, 오락실까지 있다.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 가장 핵심이 된 역할은 시외버스터미널이겠지만,
정작 매표소로 가는 길은 너무나 비좁아서 덩치 큰 사람들은 뚫고 들어가기 어려울 지경이다.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커 보였는데, 정작 안으로 들어오니까 평범한 시골 버스정류장과 같다.
대합실을 매점과 같이 쓰는 것부터 좁디좁은 공간에 빼곡한 의자까지 빼다 박았다.
추가로 어린이 책들을 쌓아놓고 중고서점 역할까지 같이 하고 있다.
'책 한권에 2000원' 글씨체도 귀엽다.
저걸 보니 왠지 우리집 생각이 난다. 아직도 집에 어린이 책들이 한가득한데 가져다줄걸 그랬나.
터미널에 매점에 중고서점까지 같이 끼워 넣다 보니 공간이 유독 좁아 보인다.
하지만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동네 자체가 사람이 없어서 버스가 들어온다 한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려나 모르겠다.
장평까지는 올림픽 때문인지 우드 디자인으로 한껏 새단장을 했는데,
여기서는 그런 리모델링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비교적 최근에 지었기 때문에 필요성이 적기는 하겠지만,
영동선 3인방과 비교하면 같은 동네가 맞나 싶을 만큼 분위기가 다르다.
시간표를 살펴보니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았다.
동서울행 4회, 원주행 5회, 평창행 6회, 정선 2회, 강릉과 영월 하루 1회.
이게 하루 내내 대화버스터미널에 들어오는 노선의 전부이다.
혹여 군내버스는 안 지나가나 싶어서 매표소에 물어봤는데,
군내버스는 여기가 아니라 신협 쪽 정류장으로 걸어가서 타란다.
버스 올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가라는 말과 함께.
직전 글을 본 사람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원래 이렇게 버스가 적게 들어오는 터미널이 아니었다.
평창행이 하루 열댓 번 이상은 다녔던 곳이고, 강릉행도 하루 여섯 번은 들어왔던 곳이다.
동서울 및 원주행 역시 많지는 않지만 1시간~2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들어왔던 곳이다.
그랬던 게 최근 2년 사이 급격한 노선 단축으로 인하여 맥이 끊겨가고 있다.
가장 많이 다니는 노선이 하루 여섯 번. 그것도 같은 지역 중심지인 평창행이다.
실제로 방문했던 시간이 오전 11시를 조금 넘길 때였는데,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들어오는 버스가 한 대도 없었으니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시간이 없다는 주인의 말에 사진을 찍자마자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원래 장평에서 탔어야 할 버스였기 때문이다.
만약 택시를 타지 않았다면 지금 타야 할 버스에서 내렸겠지만,
그랬다가는 여기서 세 시간 가까이 기다릴 뻔했다.
아무 할것이 없는 동네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떼울 순 없지 않은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길을 뒤돌아보았다.
재래시장이 있는 중심가인데도 사람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대체 난 어디로, 무엇을 위해 온 것인가 생각될 정도로 이렇게 고요한 모습은 오랜만에 본다.
다시 이곳엘 온다면 버스터미널이 그때까지 남아있을까,
타지로 가는 버스가 다니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제발, 다시 찾아도 똑같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자리를 뜬다.
첫댓글 대화,새추거리,하안미 등 아주 어렸을때 1년에 한 두번씩 간적이 있었는데, 이젠 많이 변해서 잘 모르겠네요.
도시화 산업화 되어 가면서 오지마을들의 쇠퇴함이 저물어 가는 겨울 저녁처럼 쓸쓸함으로 다가 옵니다.
정감 넘치는 강원도 산골마을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가는 쌀쌀한 날씨처럼 스산한 느낌이 감도는 곳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넘 고생많으셧어요
항상 고맙습니다
조금은 주제와 맞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고속버스는 이미 교통카드 단말기가 설치되어 운영 중이고, 시외버스도 점차 교통카드 사용이 확산되고 있는데 그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지역 소규모 터미널이나 노상 정류장들도 존폐 기로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녀오신 대화만 해도 워낙에 들어오는 차들이 적어서 터미널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이런 곳들은 교통카드 단말기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으니 다녀오신 곳들 상당수가 역사 기록처럼 남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대화터미널의 경우 올해 급격하게 노선이 줄거나 폐지되어서 존폐 기로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겠죠. 인터넷 이용이 어려운 노인층 덕분에 그나마 유지가 되고는 있지만, 최근 노년층도 적극적으로 유튜브를 들어갈만큼 인터넷이 전연령층에 대중화되는 추세이니 복지 차원의 운영도 한계가 있겠지요.
이미 말씀하신 것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시골의 면 수준만 되어도 터미널 건물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차내에서 현금이나 교통카드 결재로 타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권과는 달리 강원도에서는 교통카드로 탈 수 있는 시외버스 노선은 매우 드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외버스의 경우에는 농어촌버스나 시내버스와는 달리 정류장 표시도 없는 곳이 너무 많고 차내에서도 하차벨이나 안내방송이 없는 차량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원하는 곳에 내릴려면 운전사에게 미리 잘 이야기해 놓고 앞좌석에 앉아야 하죠.
맥시멈님의 터미널 기행기를 읽은후
어느지역에 여행이나 일을 보러갈때
꼭 터미널을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결혼해서 애가 한명일때,또 미취학 아동일때는 1박2일,큰맘 먹고는 2박3일까지
버스여행을 다닌적도 있었지만
아이가 두명에 초등학교에 다니고 부터는
혼자 떠난다는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대리만족을 시켜주시는
맥시멈님께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화터미널에는 한번밖에 못가봤네요.
구경할 버스도 많지않고 진짜 시간대
맞추기가 쉽지 않은곳인데 윗분들 댓글처럼
지나간 역사와 자료로 남을날도 멀지않은듯
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제 글 덕분에 대리만족을 하실 수 있다니 개인적으로 뿌듯하면서도 참으로 감사합니다.
짬이 되는 대로 열심히 활동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네요. :)
저희 아빠 고향이 평창 대화입니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사진으로 먼저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중에라도 이곳에 가실 때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경기도 고양 일산에 대화라는 동네가 있듯이 평창에도 대화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다고 함은, 아시다시피 강원도에 평창이라는 군단위 동네가 있듯이 서울시내 종로에도 평창동네 있는 점과, 아울러 전라남도에 광주라는 이름의 대도시가 있듯, 경기도에도 광주라는 이름의 군단위에서 시단위로 변경된 동네가 있는 점하고 다 마찬가지인 셈이죠.
전국적으로 겹치는 이름이 많지만 그래도 신기하지 않나요?
@Maximum 예, 저도 동감입니다.
저희동네를..감사합니다^^
오랜만이시네요 반갑습니다 ^^
@Maximum 사장님껀ㅎㅎ즐겨찾기로해놔서 알링떠서 자주자주보고잇습니다
항상 수고많으십니다^^
새해복많이받으시고 좋은일만가득하세요~~~!!!
@강원흥업 감사드립니다 강원흥업님도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