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 방문
    1. 聖君 光海君
    2. 하담
    3. 푸른바다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고니24
    2. 빨강머리앤
    3. SAC현욱
    4. 골체부지런
    5. 진우찬
    1. tongin
    2. 에스트
    3. jjun
    4. bigather
    5. 역사가좋지요
 
 
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벡제왕은 초기에 시호가 없었나요?
聖君 仁宗大王 추천 0 조회 329 10.08.26 21:01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0.08.26 22:43

    첫댓글 백제는 초기에 이름이 곧 시호였습니다. 아마도 개로왕때부터 시호제가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작성자 10.08.26 23:29

    그럼 위에 책계,분서,계,근초고 그리고 그 뒤의 왕들 모두가 이름인 건가요?

  • 10.08.27 00:58

    아닙니다. 근초고왕의 이름은 여구(餘句)였고, 그 이전에 우씨 성을 가진 왕들도 몇몇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개로왕 때부터 시호제가 사용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작성자 10.08.27 01:32

    확실히 근초고왕이나 근구수왕은 초고왕계의 정립을 의미하는 이름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근의 의미가 가깝다,다시 세우다,돌아가다 뭐 이렇다고 하더군요..^^

  • 10.08.27 02:19

    근초고왕의 이름이 여구라고요? 신농님, 백제왕 여휘나 왕세자 여구 등으로 표현된 사람이 근초고왕 혹은 그 전후의『백제본기』상의 왕들과 동일하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일단, 근초고왕때부터 餘氏 왕통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고요. 백제에서 이름을 왕명으로 쓴 것은 초기나 후기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단순히 시호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10.08.27 12:56

    그 말씀은 여휘님께서 생각하시는 백제사상이 저와 많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저는 적어도 4세기 이후의 백제는 단일체였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근초고왕과 여구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근초고왕 때부터 여씨 왕통이 등장한 점에 대해서는 이도학 교수의 기마민족 정복설을 신뢰하는 입장이라서요. 제 생각이 100%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느닷없이 "근초고왕의 이름이 여구라고요?"라는 식의 질문도 다소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 그런데 후기에도 이름을 쓴 사례가 있던가요? 의자왕이 멸망으로 시호를 얻지 못한 점을 빼면 없는 것 같던데...

  • 작성자 10.08.27 14:03

    백제당시의 명문에 사마왕(무녕왕),창왕(위덕왕)으로 나오죠..

  • 10.08.27 14:25

    아...그렇네요. 지금보니깐 왜 저렇게 썼지? 싶네요. 저 혼잣말을 그냥 무심코 써버린듯~죄송합니다. ㅋ 아...후기에도 이름을 왕명으로 쓴 사람으로는 위덕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왕흥사지에서 나온 창왕 사리함 명문에 써있는 것이 근거라고 할수 있죠.『삼국사기』랑 왜 다른 이름을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금석문이기에 위덕왕이 오히려 시호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흐음. 무령왕릉 지석의 사마왕도 어떻게 보면 이름일수도 있지만, 사마는 정식 이름이라기 보다는 별칭? 이칭? 등으로 볼 수도 있기에 일단 제외했습니다. 이처럼 2가지로 불린 걸 보면 생존시 호칭과 사후 호칭이 달랐던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그렇습니다.

  • 작성자 10.08.27 16:38

    사마가 본명 아닌가요?

  • 10.08.27 22:24

    『삼국사기』백제본기를 보면 '<武寧王>, 諱<斯摩{斯麻}>[或云<(+餘)隆>.]'이라고 하여 사마 혹은 융이 이름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일본서기』무열천황 4년조를 보면 '至筑紫嶋生斯麻王. 自嶋還送. 不至於京産於嶋. 故因名焉. 今各羅海中有主嶋. 王所産嶋. 故百濟人號爲主嶋.'이라고 하여, 무령왕이 축자도에서 태어났고, 이로 인해 백제인들은 각라해 가운데 떠 있는 섬을 主島(군주가 태어난 섬)라고 불렀다 합니다. 즉, 그의 이름은 섬에서 태어났기에 지어졌다는 뜻인데, 그와 달리 '융'이라는 한문식(?) 이름도 있습니다. 어느 것을 공식적인 이름으로 썼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둘 다 사용은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령왕의 경

  • 10.08.27 22:26

    우에는 사마가 본명이라고 확답을 하지 못 했던 겁니다. 융이 이름이라면 융왕이라는 명칭도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물론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이름+왕호를 사용하는 것이 삼국시대때 일반적인 현상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사마왕으로 불렸다면 그의 이름은 사마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단, 대외적으로 혹은 어떤 특별한 때에는 융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이런 의문에 의거하여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인종대왕님~그냥 사마가 본명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기는 합니다. ^^

  • 작성자 10.08.28 00:25

    융은 백제식의 이름을 중국식 즉 한자로 고친 이름이라고 전 생각합니다..고구려왕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영양왕도 고구려식은 대원이지만 중국은 원으로 기록합니다..다른 경우도 있는데 기억이 잘..^^

  • 10.08.28 20:16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양자의 관련성에 대해서 제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이 말씀드린 것입니다. 사마라는 백제식 이름을 융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고쳤다면,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