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서 사모가 와서 모두들 벼룩시장 같은 곳에 가서 물건들을 많이 사다. 나도 상보 하나와 기념수저를 하나 샀다. 9시에 호텔로 돌아와서 물건을 산 짐은 그냥 사모님 미니밴에 두고 큰 버스를 타고 예쁜 여자 가이드와 같이 오늘 관광에 나섰다.
그 여자 가이드는 나이가 참 많았는데 현지 헝가리인을 남편으로 만나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오기 바로 전에 대홍수가 나서 다뉴브 강이 넘쳐 도시가 물에 잠겼었는데 지금은 다 빠져서 더 깨끗하고 아름답고 이런 좋은 날씨를 이곳에서 황제 날씨라고 하고 사람들이 집에 있지 않고 다 어디론가 떠나고 이곳에는 이렇게 좋은 날씨가 드물기 때문에 햇볕을 모두 너무나 사랑한다고 한다. 새벽마다 좋은 날씨를 달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다.
헝가리 말로 아침인사는 요레겟이고 요요는 오케이로 좋다는 말이니 웬만하면 요요만 하면 될 것 같다. 헝가리 도시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 두 시가지로 나뉘는데 부다는 부처와 관계가 없고 페스트는 페스트 병과 관계가 없다.
부다와 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사이로 두고 갈라져 있는데 부다는 왕궁을 중심으로 부자들이 살고 있고 산 위에 아름다운 옛 궁전과 성, 교회들이 있고 페스트는 신도시로 평지에 있고 1838년에는 전 도시가 홍수로 물에 잠긴 적도 있다.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고 평민들이 살고 있고 관광객들을 위해 많은 큰 호텔들이 있다.
영웅광장 - 헝가리 1000년 역사의 영웅들의 조각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맨 꼭대기에는 가브리엘 천사의 상이 있고 말을 타고 늠늠하게 서 있는 일곱 부족장들의 모습도 조각되어 있다. 헝가리 민족을 마자르 족이라고 하는데 머저리 족이라고 한국 사람들이 외운다고 한다.
말을 탄 채 높이 서 있는 네 조각상도 있는데 일, 전쟁, 학문, 영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헝가리의 초대 국왕은 이스트왕으로 한국의 이성계에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쉬울것 같다고 한다.
몽골과의 전쟁으로 징기스칸의 손자 마투칸이 점령했었는데 갑자기 징기스칸이 죽어 돌아가서 해방을 받았고 벨라 4세가 나라를 세웠는데 각국에서 이민을 받아들였고 많은 독일 사람들이 와서 지금 많이 혼혈되어 있다고 한다.
마치아스 대왕의 상도 있었는데 한국 세종대왕에 비교할 수 있다고 하니 굉장히 위대한 왕인가 보다. 러요시 대왕은 광개토대왕과 비교한다고 한다. 헝가리는 터키에 150년, 함스부르크(오스트리아)에 150년의 식민지 생활을 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무명전사의 묘와 박물관이 있고 마주보는 거리는 일직선으로 가로수가 있는 제일 아름다운 거리가 있는 이곳은 2001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재로 지정한 곳이라고 한다.
시민공원 - 영웅광장 옆에 있는 곳으로 200년 전에는 늪지대였던 곳인데 아름다운 시민공원으로 만들었다. 여름에는 인공호수를 만들어 뱃놀이를 할 수도 있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될 수도 있고 물을 다 빼면 운동장도 될 수가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을 다 빼서 공터가 되었는데 아마 한 여름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아름다운 문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를 혼합한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드라큐라 백작이 아니고 루마니아 백작인데 사람들이 착각한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야크 성당, 농업박물관, 머이더훈야드 성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반긴다.
특별히 무명(아노니우스)의 수도사라는 수건을 둘러 쓴 수도사의 청동상이 나오는데 그는 왕의 조언가로 헝가리 연대기를 기록한 사람이라는데 그가 들고 있는 펜을 만지면 지혜로워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만지며 지나가서 우리들도 모두 만지고 사진들을 찍었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곳에 아주 웅장한 돌로 지은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은 세체니 실내 온천호텔이라고 한다.
1896년에 헝가리 1000년 역사를 기념하여 이곳에 영웅광장, 대성당, 국회의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파리의 상드라제 거리를 본 따서 만든 가장 아름다운 안드라세 거리를 달려가면서 그 거리에는 각 나라들의 대사관이 많아서 대사관 거리라고 한다고 하고 우리나라 태극기가 있는 곳에서는 차가 천천히 가서 모두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음악가 코다이 사거리도 나오고 옆에는 마차 전용도로도 있었다. 지하철은 런던 다음으로 들어와서 발전하였고 이 거리는 강남 압구정동 같은 거리라고 한다.
아주 크고 웅장한 국회의사당이 나오는데 10월 23일은 소련에 항거한 혁명 기념일이고 “소녀의 죽음”이라는 김춘수 시인이 시를 쓴 사연이 있는 곳인데 헝가리 국기 가운데에 크게 구멍을 뚫어서 걸어 놓았는데 소련군대가 총을 쏘아 구멍이 난 것을 상징하며 그 사실을 잊지 말자고 그렇게 걸어놓았고 의사당 앞에 그런 깃발이 누워있다.
독립운동을 지도한 Kussuth의 동상이 우뚝 높이 세워져 있다.
이스트반 바실리칸(바실리칸은 대 성당이라는 뜻)은 1905년에 세워진 교회로 동유럽에서 화려한 성당으로 손꼽힌다.
붉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꾸몄고 높은 천정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렸고 성당 중앙에는 예수님의 상이 아닌 이스트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있고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미사가 있는 날은 관광객은 그 앞까지 들어갈 수가 없는데 오늘 마침 미사를 드려서 그 안에 가까이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이스트반은 초대 국왕으로 주교 역할도 같이 한 헝가리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그의 어린애 같은 미이라 된 손이 잘 보관되어져서 그의 손을 볼 수가 있는데 동전을 넣으면 불이 켜지면서 그의 손을 보게 된다.
점심식사는 마르바니(대리석) 맨뇨쇼니(신부) 이때렘(식당)이라는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 식당 앞에 아름다운 소녀의 상이 세워져있는데 마리아 상이 아니라고 그 앞에서 기도하지 말고 마리아 상이냐고 묻지 말라고 미리 이야기 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부다 쪽 겔레르트(Gellert) 언덕(남산 전망대 같은) 위로 차를 타고 올라가서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예전에 사창가, 빈민들이 살았던 곳이었는데 사회주의 때에 이곳을 개혁하여 정리하였고 지금은 고급주택지가 되었다.
맨 꼭대기에는 도시를 지켰던 치타델라(요새)가 있었던 곳으로 함스브르크(오스크리아)가 헝가리를 점령하였을 때에 부다패스트를 감독하려고 요새를 세워 감시하고 그곳에 감옥을 지었던 곳으로 총탄 자국과 포탄으로 뚫린 자국이 그냥 남아 있다.
아름다운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부다(물이라는 뜻)와 페스트(평지라는 뜻)와 오부다(옛날지역)로 나누어져 있고 산위에는 부다페스트 여인상이 세워져 있다. 다리는 9개가 있는데 사슬교(쎄체니) 란츠히드(다리)라는 다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두 마리의 사자가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데 '사자다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왕궁 언덕에 세워진 옛 왕궁은 42번의 전쟁으로 망하고 또 세워지고 했는데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곳 언덕 위에는 많은 천막 장사들이 관광 상품들을 팔고 있다. 헝가리는 홈 메이드 수예공예품이 특별히 자랑인데 아름다운 수를 놓은 물건들이 많았다.
돌이 깔린 왕궁 정원 길을 걸어 웅장하고 아름다운 마차시 교회와 하얀 산 위의,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인 어부의 요새를 돌아보고 그곳의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들었다.
어부들이 산꼭대기에 요새를 세우고 나라를 지켰다고 어부의 요새라고 한다고 하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아름다운 시내를 내려다보는 기쁨을 만끽하였다.
왕궁언덕을 걸어서 조상 묘 자리를 돌아보았는데 대포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일부러 복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발레를 상영하는 왕실 극장이 있고 옆의 하얀색 건물이 대통령관저라고 하는데 아무 경비원도 없었고 사람들이 그 앞까지 지나다닐 수가 있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고 어마어마한 경비가 있고 그 앞에는 아무도 갈 수가 없는 삼엄한 경비가 있는 우리 청와대와 비교가 되었고 헝가리가 이렇게 태평하고 "대통령과 국민이 이렇게 거리감이 없는가?" 부러웠다.
대통령 관저 옆 건물에 베토벤의 사진이 벽에 있었고 음악을 좋아하는 일행들이 그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웅장한 마차시 성당으로 지붕은 모스크 이슬람 영향을 받아 알록달록하게 붉은 색으로 아름다운 색깔을 넣었는데 고치지 말고 그대로 두자고 했다고 한다.
마차시 대왕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왕으로 민심을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여 평민 복장을 하고 농가에 갔다가 울고 있는 농부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자기의 밭을 바쳐야 한다는 사연을 듣고 길 잃은 개들을 다 모아 왕궁 중앙 뜰 앞으로 나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개들을 모아 왕궁 뜰 앞으로 나온 그 농부는 그가 마차시 왕인 것을 그때 알고 놀랐는데 왕이 그 개들을 귀족들에게 팔아 그 농부가 부자가 되게 해 주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그렇게 했지만 귀족들이 그 개를 사지 않아 망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데 그 농부와 개들과 분수가 물을 뿜어내는 청동상의 조각들이 한쪽 벽에 새겨져 있어 마차시 대왕의 선행을 전해주고 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헝가리 시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약 2800미터가 되는 다뉴브 강은 독일(도나우강),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유고,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까지 여러 나라를 하나로 흐르는 동 유럽의 젖줄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그 위를 잇는 다리들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집시들이 넘치는 배고픈 나라 헝가리로 상상했었는데 그 헝가리가 아닌 너무나 웅장한 건물들로 고색 찬란하게 빛나는 역사가 있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헝가리인 것을 보고 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Vaci utca (밧찌우짜)거리의 상가로 된 긴 거리를 걸으며 약 1시간 동안 자유의 시간으로 쇼핑시간을 가지고 엽서와 수예품 등, 여러 가지를 사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전에 갔었던 한국 식당에 가서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호텔에 6시 30분에 돌아와서 30분 동안 서둘러 온천욕을 하고 7시에 로비에서 "다뉴브강에서 배를 타고 문학제를 하기 위해" 헝가리 선교사님 사모님을 기다렸는데 7시 20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안 받아 걸어서 예약한 배가 있는 해변으로 찾아가기로 하고 호텔을 나서다.
회장님의 시집을 가지고 간식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들고 끌고 갔다. 선교사 사모님이 아침에 호텔에서 해변까지 걸어서 5분이면 올 수가 있다고 했는데 길을 묻고 길을 건너 돌길인 해변 길을 걷는 것이 힘들었다.
나중에 짐을 슈잔(최 사모님의 딸)이 어깨에 다 메고 씩씩하게 우리보다 훨씬 빨리 걸어서 가고 그의 엄마는 뒤에서 오며 이 길을 어떻게 5분에 걸어가느냐고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다행히 몸이 몹씨 불편한 박 권사님은 다리가 아파서 오지 않았다. 10번의 배를 찾아 한참을 걸어갔는데 9번째의 배 앞에서 서 사모님과 남편 김 목사님과 여러 초청된 사람들이 서서 이야기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을 슈잔이 만났다.
미니밴으로 우리를 데리러 온다고 한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고 왜 이렇게 안 오느냐고 했었다고 한다. 배에 미리 마이크 등이랑 준비를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우리가 가자 그때에야 마이크 설치를 하고 준비를 해서 9시에야 문학제를 하게 되었다.
사무국장님이 사회를 보고 독창을 하고 내가 기도하고 김 목사님이 설교하시고 예배를 마치고 2부로 문학제를 했다. 시들을 낭송하고 수필을 낭송하고 현지에서 선교사역하시는 시인 서 사모님이 축시와 감사인사를 하고 모든 순서를 끝마치고 사람들 소개를 하는데 시간이 다 끝나서 간식도 들지 못하고 밖으로 간식을 싸들고 나오다.
호텔에 와서 같이 나눌까 하다가 내일이 주일이라 그냥 나누어 주고 헤어지게 되었다. 밧모섬의 선교사님 박영란 사모 부부가 남편과 딸과 마침 이곳에 왔다가 자기들을 위한 문학제였다고 좋아했다고 …
딸이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부활절을 맞아 왔다고 한다. 배는 다른 사람들이 10시에 타려고 기다리고 있어서 우리는 짐을 다 싸가지고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8시에 시작해서 9시에 끝나고 1시간 동안 자유의 시간을 가지고 아름다운 다뉴브강을 즐기고 사진을 찍고 담소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낼 수가 있었다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밧모섬 선교사 내외가 오셔서 자기들을 위한 문학제였다고 위로 받고 가셨고, 김 목사님 부모님과 그 교회 부 목사님 가족 등 모두 23명이 참석했고 홍수로 못할 줄 알았는데 다뉴브 강에 배를 띄우고 문학제를 예정대로 할 수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고 이제는 관광만 남았다고 모두들 가벼운 마음으로 방에 들어오다.
다뉴브강이 우리가 오기 바로 전에 홍수로 물이 넘치고 도시가 잠겼었는데 우리 기독교 문인들의 문학제를 위하여 주님은 깨끗하게 청소해 주시고 더 아름답고 황홀하게 불빛이 찬란하게 빛나게 해주시고 아름다운 잊지 못할 야경을 주셨다. 그 속에서 시를 낭독하고 문학제를 했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것이리라.
시, 수필, 소설, 희곡을 쓴다는 것은 나를 나타내거나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위로 받게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