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35 < 영광 물무산 황톳길>
“주일에 예배당에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하시던 목사님 말씀에 “매일 미용실에 갇혀 있다가 주일 하루쯤은 세상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한심한 대답을 해놓고 이유답지 않음을 뻔히 알기에 어디를 향해 떠나도 늘 마음은 불편하다. 그래서 되도록 가까운 곳에 나가게 되면 예배를 마친 후 출발하기로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굵은 비가 내리고 있으나 영광 물무산에 황톳길을 걷고자 예배를 마치고 점심때 쯤 출발하였다. 맨발 걷기에 명소로 각광받고 있어서 남편은 얼마 전 다른 일행들과 다녀온 곳이지만 오래전부터 계획해 두고 이래저래 미루다 비로소 오늘 출발하게 된 것이다. 물무산은 영광읍 동편에 야트막하게 드러누워 가벼운 산책로로 산 전체를 휘감고 있다. 물무산 황톳길로 네비를 설정하여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를 나가면 10km 이내 거리에 있어서 영광읍의 초입이라 가까운 느낌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출발지점에서 0.6km는 질퍽질퍽한 황톳길과 나머지 1.4km는 마른 황톳길로 조성되어 왕복 10리 길이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오갈 수 있어서 반나절을 계획하고 와도 부담 없는 산책정도의 거리었다. 사실 황톳길을 찾아왔지만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숲속을 트레킹 한다는 생각으로 왔기에 편도 2km는 신발을 신고 걸었다. 걸어보니 황톳길 관리가 정말 잘 되어 있었고 좋은 품질의 황토가 충분히 두꺼워서 질퍽한 길이거나 마른 황톳길도 신발을 신고도 푹신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조성되어진 황톳길 끝에서 원점회기하는 길은 신발을 벗어 보기기로 하였다. 황톳길의 입구와 끝 지점에는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어느 시점에서든지 맨발 걷기의 시작과 끝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편 시작지점에는 가지런히 벗어 놓은 신발들이 지역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땅과 호흡하며 동행하는 동반자의 발자국을 함께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영광군의 관계자는 “숲이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어서 너무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숲이 제공하는 쾌적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오는 것 또한 보람이면서 우려라고 한다.”니 그 중 한 사람으로 오늘처럼 구름 낀 서늘한 날 잘 찾았다 싶었다. 원점회기 하는 길에 질퍽질퍽한 길을 걷는 느낌 또한 특별했다. 어릴 적 장마로 인하여 담벼락이 무너지면 마른 짚 썰어 넣은 황토반죽으로 담을 쌓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련했다. 그때 그 황토 흙 반죽을 맨발로 짓이겨 밟던 까마득히 잊었던 추억도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살면서 그런 추억을 떠올릴만한 계기가 생겨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세상은 매사에 돌고 또 돌아 시절 또한 원점회기를 맞는 부분도 적잖으리라 여겨진다. 질퍽질퍽 황톳길을 걷는 느낌도 발바닥으로 와 닫는 느낌과 함께 우선 세상사는 모습이거나 일상의 이야기가 몽땅 들어 앉아 있다. 참으로 곱고 차지게 보이는 그야말로 말랑말랑한 흙을 밟아 보면 느낌 좋은 것만이 아니다. 미끄럽고 중심을 잡을 수 없어 흔들리는 것이 마치 세상의 작은 그림 같은 것이다. 한편 질퍽한 길과 마른 황톳길도 발바닥의 느낌이 색다르다. S자로 이어지는 숲길은 무성하여 한여름에도 시원할뿐더러 길섶 소나무 아래 무더기로 올라오는 맥문동은 아마도 꽃이 필 무렵 다시 찾고 싶은 마음까지 예약되어지고 있었다. 가을이면 불갑사 상사화 소식에 그 꽃이 질 때까지 멀리서도 두근거리며 긴장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맥문동 꽃이 피면 이곳에 다시 찾아 올 것 같다. 우리 마을에도 군에서 마련한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실 지자체마다 화려하게 치장해서 고객에게 잘 보이려는 것보다 찾는 이들의 심신을 달래고 숲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진정한 감성을 흔들어 주도록 알차게 가꾸고 관리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물무산 행복 숲 둘레 길을 모두 둘러보지 못하고 황톳길만 들어왔으나 이만한 관리와 정성을 쏟아 놓고 입장료라거나 주차료도 없으니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 여름이 지나면 맥문동 꽃이 만발하고 상사화가 붉게 피어오르면 꽃무리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와 풀벌레 울음소리 그리고 새소리와 바람소리까지 영광의 물무산과 불갑사에는 많은 사람들과의 조우로 생태 트레킹이 활발해질 것이다. 그때 가족과 함께 다시 한 번 찾으리라 내내 돌아보며 둥지를 찾는다. 영광을 빠져나오는 길목에 하늘색은 맑고 예쁜데 저만치 몰려오는 구름떼로 금방 소낙비라도 내릴 듯 캄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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