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칠봉산 정상 직전의 투구봉에 올라서면 시원한 조망이 열린다. 양주 벌판 너머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하늘을 찌른다.
-
‘꽃샘잎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3월 어느 날, 1호선 소요산행 전철에 올랐다. 내복을 안 입은 탓에 체감온도는 시베리아처럼 춥다. 속담에서 ‘설늙은이’를 ‘설산꾼’으로 바꾸면 그대로 필자의 신세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두 명이 여인이 동행했기에 애써 안 추운 척한다.
“어~ 우리 동년배예요.”
블로그 이웃 길선아씨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이가 같은 것을 알았다. 길선아씨의 친구인 김연미씨까지 어쩌다 보니 40대 초반 세 명이 뭉친 것이다. 곧바로 길형, 김형, 진형으로 호칭이 결정된다. 이쯤 되면 도원결의가 부럽지 않은 의기투합이다.
봉양사거리 들머리로 일곱 봉우리 넘어
의정부 가능역에서 버스로 환승해 3번국도 변의 봉양사거리에 내린다.
“등산로는 저기 전철 굴다리 밑에 있어요.” 친절한 버스 기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오른쪽 방향을 따라 1호선 전철 다리 아래를 지나자 칠봉산(506.1m) 등산로 안내판이 선 쉼터를 만난다. 안내판 옆에는 칠봉의 유래가 적혀 있다. 칠봉은 발리봉(발치봉, 독수리봉), 매봉(응봉), 깃대봉, 투구봉, 솔치봉, 돌봉, 석봉을 말한다. 지도에 따르면 일곱 봉우리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산행은 칠봉산을 넘어 천보산(423m)을 찍고 회암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조망 좋은 암봉과 걷기 좋은 호젓한 능선, 그리고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멋진 길이다.
‘정상 3.8㎞’ 팻말을 바라보며 산길로 들어선다. 아직 산은 거무튀튀하다. 그 황량함이 너무나 견고해 봄이 온다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봄은 오고야 만다. 그것도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검은빛을 뚫고 그 속에서 자라 나온다. 혹시 복수초라도 있을까 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지만, 노란빛은 흔적도 없다. 철탑과 봉양사 갈림길을 연달아 지나 드디어 칠봉 중 첫 번째 만나는 발리봉에 올라선다. 이곳은 독수리봉으로 알려진 곳으로 임금이 처음 산길을 떠난 봉우리라 해서 혹은 생김새가 스님들의 밥그릇 바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임금은 세조를 말한다. 세조가 말년에 이곳에 올라 수렵했다는 기록도 있어 본래 어등산(於等山)으로 불렀고, 대동여지도에도 어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
- ▲ 칠봉산 · 천보산 개념도
-
‘정상 3㎞’ 이정표를 확인하고 능선길에 오른다. 순간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쳐 나무를 후려친다. 바람에 따귀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꽃샘추위에 장독대 깨진다더니….”
김연미씨가 투덜거리며 모자를 눌러쓴다.
“이 바람이 그리울 거야.”
길선아씨가 지그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그래도 바람 속에 봄기운이 묻어 있어.”
김연미씨가 대꾸한다. 길선아씨는 여행가다. 소백산 자락에서 소백산 바람을 품고 태어나 짬만 나면 세상을 바람처럼 주유한다. 필자와는 파키스탄으로 인연이 있다. 필자가 쓴 파키스탄 여행책을 가지고 파키스탄을 여행했고, 고맙게도 책을 두 번이나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블로그를 통해 가까워졌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능선은 암릉이 아니라 의외로 순한 흙길이다.
두 번째 봉우리 매봉 앞에서 산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매봉은 임금이 수렵할 때마다 사냥에 필요한 매를 날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특이하게 생긴 바위에 올라 매를 날리면 훨훨 잘도 날아갈 듯하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등에 업고 봉우리를 넘자 기도처로 보이는 칠성바위와 아들바위가 나온다. 잠시 기도를 올리고 급경사를 오르자 세 번째 봉우리 깃대봉에 닿는다. 임금이 수렵 시작을 알리는 깃대를 꽂았다는 유래인 깃대봉은 삼거리다. 동두천 제행병원에서 올라오는 길이 여기서 만난다. 햇볕 잘 드는 칠봉정에 앉자 북동쪽으로 포천 국사봉이 우뚝하고 그 오른쪽으로 왕방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경기 북부 조망이 탁월한 투구봉
다시 호젓한 능선을 지나면 바위들이 널려 있는 네 번째 봉우리 석봉을 만난다. 굵은 소나무가 바위틈에 자라고 있어 신기하다. 석봉을 지나면 다시 걷기 좋은 흙길이 나타나고 ‘6·25 전사자 유해발굴 기념 지역’을 만난다. 칠봉산 전투에서 산화한 국군 전사자 유해 6위, 탄피 및 전투화 등 유품 30점을 발견한 지점이다. 유해발굴 지점을 알리는 말뚝을 바라보며 잠시 묵념을 드리고 길을 나서면 다섯 번째 봉우리 투구봉이다. 임금이 여기서 쉬자 갑옷을 입은 군사가 투구를 풀어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와~ 이리 와 봐요.”
-
- ▲ 천보산 암릉지대. 회암령으로 이어지는 능선 뒤로 포천 시내가 펼쳐진다. 멀리 운악산이 머리에 눈을 이고 있다.
-
투구봉 바위에 올라선 길선아씨가 다급하게 부른다. 조심조심 올라서자 남서쪽으로 시야가 넓게 열린다. 드넓은 양주 벌판 너머로 서울 수호신 북한산과 도봉산이 우락부락한 산세를 자랑한다. 그 왼쪽으로 이에 질세라 수락산과 불암산이 바위미를 자랑하고, 그 오른쪽으로는 불곡산이 암릉미를 뽐낸다.
투구봉에서 조금만 더 가면 여섯 번째 봉우리인 돌봉인데, 여기가 칠봉산 정상이다. 조망은 투구봉보다 좀 떨어진다. 정상은 비좁아 앉아 쉴 만한 곳이 없다. 내처 길을 나서면 일곱 번째 봉우리 솔리봉(수리봉)을 지나고 장림고개로 내려가지 직전에 조망 좋은 암반이 펼쳐진다. 이곳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풀었다. 음식은 사발면과 과일이 전부였지만,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칠봉 중에서 봉우리 형태를 갖추지 못한 석봉을 빼고 이곳을 수라봉이란 이름으로 넣으면 어떨까.
암반에서 슬슬 800m쯤 내려오면 장림고개 고갯마루다. 장림고개는 동두천 탑동과 회암동을 잇는 도로인데, 남쪽 회암동 쪽은 비포장이고 북쪽 탑동 쪽은 포장이 됐다. 고갯마루에는 팔각지붕의 펜션 건물이 공사 중이고 ‘왕방산 MTB 안내판’이 서 있다. 우리가 걸어온 칠봉산 능선 역시 MTB 코스 중의 하나다. 안내판 오른쪽으로 난 산길 따라 칠보산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경사가 급하지 않다.
“앙증맞게 예쁘네.”
마른 단풍잎을 매단 나무를 보고 길선아씨가 말하자, 김연미씨가 대꾸한다.
“내가 회사 사람들과 같이 왔다면 이걸 보고 뭐라 할지 알아. 내 속처럼 말라 비틀어졌네! 산에 가면 뭐든지 인생과 비유되더라고.”
김연미씨는 인생의 부침이 심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고 직장에 다니며 홀로 아이 둘을 키웠다. 지금 아이들은 엄마의 술친구가 될 정도로 예쁘게 잘 자랐다. 종종 찾아간 산은 그녀에게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
- ▲ 1 쌍사자석등 안으로 본 무학대사 홍융탑. 꿈틀거리는 용과 구름 문양이 일품이다. 2 조선에서 가장 큰 절집이었던 회암사지.
-
천보산 망경대서 조망 즐기고 회암사로 하산
장림고개에서 15분쯤 오르면 해룡산 갈림길이다. 해룡산을 넘으면 왕방산으로 이어진다. ‘동두천 6산 종주’(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마차산)를 즐기는 산꾼들은 여기서 해룡산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부드러운 능선을 타다 보면 ‘칠보산 5보루’ 안내판을 만난다. 로프로 출입을 통제한 곳에 산성의 흔적 같은 돌들이 흩어져 있다. 보루는 고구려의 군사 유적이다. 적의 침공을 저지하면서 봉화대를 이용해 상부에 연락을 취하는 곳으로 요즘의 군 초소와 같은 곳이다. 규모가 큰 보루는 마치 석축산성처럼 쌓기도 했다. 보루는 서울 아차산과 수락산, 양주의 불곡산 등에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이 고구려의 국경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보루를 지나면 넓은 암반 지대가 형성된 천보산 정상이다. 시야가 넓게 열려 속이 시원하다. 포천 시내가 넓게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펑퍼짐한 수원산(710m)이 든든하다.
가운데 멀리 눈을 이고 있는 운악산(945m)도 잘 보인다. 나무 벤치 옆에 탁자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앉아 차를 한잔 마시기에 안성맞춤이다. 세 사람은 자질구레한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말이 없을 때는 멀리 산들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하산은 남쪽 회암사 이정표를 따른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회암고개로 내려가면 길이 쉽지만, 회암사지를 놓칠 수 없다. 5분쯤 내려가면 굵은 소나무가 선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일명 천보산 망경대다. 망경대란 명칭처럼 조망이 좋은 곳으로, 특히 소나무와 벼랑바위가 어울린 모습이 압권이다. 망경대에서 급경사 로프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면 회암사 선각왕사비 앞에 닿는다. 선각왕사는 나옹대사를 말한다. 왕사비는 안타깝게도 불에 타 모조품이 서 있다. 그 뒤로 옹골찬 바위로 이루어진 천보산이 위풍당당하다. 꽃샘추위처럼 맵고 알싸한 산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눈부신 폐허의 애잔함 가득한 회암사지
-
- ▲ 절집 처마와 천보산이 어울린 회암사.
-
지금은 폐허의 절터로 남은 천보산 남쪽 기슭에 있는 회암사(檜岩寺)는 조선 최대의 사찰이었다. 고려 명종 4년(1174년) 금나라 사신이 이 절에 들렀다는 기록은 남아 있어 12세기 중엽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명한 고승들과 왕실의 지원이 각별했던 회암사는 충숙왕 15년(1328년)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가 머물렀고, 그의 제자인 나옹대사가 본격적인 중건불사를 했다.
조선 초에는 무학대사가 주지로 재임했고, 이성계도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회암사에 기거했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도 이곳에서 불도를 닦았다. 이런 이유로 조선조 건국이념인 숭유억불 속에서도 회암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명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이 지은 <목은집>에 ‘3,000여 명의 승려가 머무르는 대사찰로, 건물은 모두 262칸이며 높이 16척의 불상 7구와 10척 관음상이 있다. 건물들이 크고 화려하기가 동국 제일이며 중국에서도 이렇게 큰 사찰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기록했다.
회암사는 지공대사 이후로 보우가 거처하던 때까지 200년쯤 번창하다가 문정왕후 사후인 명종 21년(1566년)부터 1595년 사이 유생들에 의해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유물은 절터에서 500m 위에 있는 회암사에 옮겨져 있다.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회암사지 부도(보물 제388호),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유형문화재 제50호), 무학대사비(유형문화재 제51호), 화암사지 부도탑(유형문화재 제52호) 등이 그것이다.
산행길잡이 칠봉산과 천보산은 이어서 타는 것이 정석이다. 어느 한쪽만 산행하기는 좀 짧고 아쉽다. 칠봉산의 일곱 암봉과 천보산이 품은 회암사지 유적이 멋지게 어울린다. 칠봉산 능선에는 4월 말쯤 진달래가 만발하는데, 이때를 맞추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금까지 칠봉산 들머리는 송내동 송내상회 정류장에 내려 대도사로 걸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절까지 20분쯤 도로를 걸어야 하는 점이 나쁘다. 최근에는 3번국도가 지나는 봉양사거리를 들머리로 곧장 칠봉산으로 접어드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칠봉산의 일곱 암봉 중에서 투구봉과 장림고개로 내려서는 지점의 암반 일대가 가장 조망이 좋다. 천보산 정상 역시 조망이 넓게 열린다. 천보산에서 회암사로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일명 망경대를 만난다. 여기에서 소나무와 어울린 병풍바위를 조망하는 맛이 일품이다. 회암사는 절터에서 발굴한 유물이 가득하니 천천히 구경하자. 회암사에서 500m쯤 내려가면 회암사지다. 절터의 쓸쓸함과 애잔함을 느껴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회암사지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1㎞쯤 거리다.
교통 1호선 가능역 2번 출구, 양주역 2번 출구로 나와 37번, 39번 버스를 타고 봉양사거리에 내린다. 서울 수유역에서 22번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봉양사거리 오른쪽 전철 굴다리 아래로 등산로가 나 있다. 종착점인 회암사지에서 내려오면 56번국도를 만난다. 이곳 회암2교 앞에서 마을버스 78번(10~15분 간격)을 타면 1호선 덕정역으로 갈 수 있다. 회암사지를 들머리로 할 때도 덕정역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지방에서는 의정부터미널로 오는 것이 편하다. 터미널 앞에서 39-1 버스를 타고 봉양사거리에 내린다.
먹을거리(지역번호 031) 산행 날머리인 회암2교 근처에는 한정식 댓돌(866-8367)과 녹각삼계탕(865-2616) 등이 있다. 덕정역 부근에서는 중국집 덕화원(858-0103)이 유명한 맛집이다. 면이 쫄깃하고 야채가 부드러운 간짜장이 일품이고 탕수육 등의 요리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