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살 먹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는 용문사
피안의 세계로 가는 절집
용문사 일부문에는 큼직한 용 두 마리가 서 있다. 사찰은 거대한 배의 선실이며 그 배가 향해 가는 곳이 바로 피안의 세계인 서방정토다. 부처님이 선장이 되고 용은 배를 움직이는 기관장쯤 되리라. 일주문 기둥에 용이 있다면 몸통은 용이 휘감으면서 만들어낸 오솔길이다. 천상이 만들어낸 영험한 기운 때문일까? 신록이 우거지고 명랑한 물소리가 듣기 좋다. 쌓인 하얀 눈은 세상의 죄악까지 덮어주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20분쯤 오르면 ‘솔내음 다래향’이라는 전통다원이 나온다. 소나무와 황토흙으로 만들어졌고 기와와 독을 진흙으로 발라 만든 벽난로는 시골집 아궁이를 연상케 해서 마음이 편해진다. 그윽한 차향을 음미하며 담소를 나누기에 좋다.
망국의 한이 묻어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1100살 먹은 은행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신라 신덕왕때 절이 창건되었으니 절의 시작과 더불어 은행나무도 심어졌을 것이다. 높이 40m~50m, 가슴둘레가 11m를 넘어 은행나무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중에서 가장 크며, ‘동양최대유실수’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있다. 사람은 50세를 넘으면 폐경이 되어 아이 낳기도 힘든데 이 나무는 천 백살이나 먹었어도 아직도 15가마의 은행 열매를 맺을 정도로 쌩쌩하다. 이런 거목에 전설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을 가던 길에 심었다고 하는데 비록 나라는 망했어도 나무는 오늘날까지 영생을 누렸으니 태자의 한은 풀리고도 남았다. 그러나 ‘경주에서 금강산 갈 때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훨씬 수월할텐데 왜 이렇게 멀리 돌아왔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에 꽂았더니 나무에 뿌리가 생기면서 이런 거목이 되었다고 한다. 부석사 조사당 앞에 의상이 꽂았다는 개나리 크기의 선비화와 너무나 차이가 난다.
천년의 세월동안에 거듭된 병화와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어서 ‘천왕목’이라고 별칭을 가지고 있다. 조선 세종 때는 정3품인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했는데 나라의 변고가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주는 영험함이 있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는 큰 가지가 부러졌으며, 나무를 베려고 톱을 들고 서 있던 사람이 피가 쏟고 하늘에서 천둥이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근거지인 용문사를 불태웠고 은행나무를 베려고 도끼로 내리쳐 아직도 도끼자국 상처가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는 치열한 용문산전투 한복판에 서 있어 절집은 박살났지만 영험한 나무는 살아남았다. 역사의 굴곡이 있을 때마다 비극의 현장을 목격한 한 많은 나무다.
용문사 둘러보기
밑둥이 하도 두꺼워 씨름선수 육중한 허리를 보는 듯하다. 거대한 자태를 감상하면서 계단을 오르면서 대웅전의 자태가 서서히 드러난다. 뒤로는 레이다 기지가 있는 용문산이 희끗한 눈을 머리에 이고 서 있다. 최근에 건축한 건물이어서 천년 고찰의 분위기를 찾기 힘들지만 용맹스런 용 두 마리가 이끄는 대웅전은 여전히 힘이 느껴지는데 특히 사군자의 문살이 아름답다.
좌로부터 대나무, 국화, 난초, 매화의 그림이 투각되어 있다. 얼마 전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던 ‘달마대사목각상’이 요사채 툇마루에 놓여 있다. 관음전에는 당당하면서도 화려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고려후기조각양식을 계승한 조선초 작품이다.
오밀조밀한 부도밭을 지나 산길로 300m쯤 올라가면 보물 제531호인 정지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나온다. 지대석과 하대석은 사각형, 중대석은 원형, 상대석과 몸돌, 지붕돌은 팔각으로 조성되어 있어 팔각원당형의 기본틀에서 벗어난 이형 부도다. 부도 80m 아래에는 국사의 행적이 담긴 부도비가 있는데 대학자 권근이 비문을 썼다. 그동안 군사시설 때문에 폐쇄되었다가 최근에 개방된 등산로 덕에 용문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이 늘었다. 정상에서는 양평은 물론 남한강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용문산관광지-용문사-능선길-정상-마당바위-하산으로 3시간 10분이 소요된다
용문산광광지에는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용문산전투전적비, 놀이공원이 있는데, 특히 친환경농업박물관에는 웰빙양평의 농업문화와 역사가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몽양 여운형 선생이 피습당시 입었던 혈흔이 묻은 옷이 눈에 띈다.(용문사 031-773-0088 www.yongmunsa.org)
조용한 산사의 맛-사나사
용문산을 넘어 양평쪽에 자리 잡은 사나사는 용문사와 달리 관광객이 없어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다. 신라 경명왕때 고승 대경대사가 창건한 절로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을 조성하여 절 이름이 사나사가 되었다. 고려 보우대사가 140여 칸으로 중창한 기록이 있으며, 정유재란때 모두 불났고, 1907년에는 의병의 본거지라서 잿더미가 되었고, 다시 어렵게 절을 복구했는데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었다. 오늘날 건물은 1956년 세워졌다. 현재 고려때 세워진 사나사 삼층석탑과 소박하게 생긴 원증국사부도와 부도비가 남아 있다. 마을입구에서 사찰까지 이어지는 계곡길이 아름답다.(사나사 031-772-5182)
* 여행정보
1.맛집
중앙식당(산채정식 031-773-3422), 송림식당(산채정식 031-773-4165),푸른공원(철갑상어요리 031-773-3884), 마당(곤드레밥 031-775-0311), 옥천냉면(냉면 031-772-9693)
2.숙박
벨라지오호텔 (031-774-9670 용문사 입구), 푸른솔펜션 (011-772-4433 용문사 입구), 루헨 펜션 (031-773-4575 용문사 근처), 양평한화리조트(031-772-3811 사나사 근처)
3.교통
서울-덕소(6번 국도)-양평(44번국도)-용문-용문사
4.주변볼거리
중원폭포, 경기도 민물고기연구소, 중미산, 유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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