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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주현대불교 원문보기 글쓴이: meong
한국어, 불교용어사전 전체 300P ㅅ-ㅇ 123P
용량이 많아서 안올라가니 notepad 로 올립니다
보관은 더 좋은 msw 다운을 받으세요
화일첨부 사전 용량이 많아서 안올라가서 나누어서 올림니다
ㄱ-ㅂ
ㅅ-ㅇ
ㅈ-ㅎ 으로 나누고
첨부화일은 위 3부분으로 나눈 어느 것을 다운 받아도
3가지가 함께 들어있는 win Ra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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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들이 많이 수정, 추가 되어서 원본보다 개선 됬습니다.
특이한 것은 불교는 폐쇠적 종교가 아닌, 중생을 향해 열린 종교라서
아래와 같이 모두 바꾸었습니다.
한자 다음에 있는 점을 지웠고,
한자와 산스크이트어 양쪽에 있는 괄호를 없앴고
풀이로 이어지는 오른쪽 점선3개를 2개로 했습니다
* 가람 (伽藍, sanghārāma sangharama) ---
* 가람 伽藍 sanghārāma sangharama --
아래 참조’ 있는 참조’는 생략을 했고
점선 3개를 하나로 줄였습니다.
---→공관(空觀), 중관(中觀) 참조.
→ 공관(空觀), 중관(中觀)
시간을 소비하며 이렇게 한 것은 불교는 열린종교이기 때문이고
한자 양쪽에 괄호가 찾기 할 때도 불편할뿐 필요가 없습니다.
3가지를 합쳐 한개의 사전으로 만들려면 안내 설명은 모두 지우고
아래 용어들만 복사하면 큰 사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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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a 는 dd 이므로 붓다’가 아니고 붇다’로 수정을 했고
붇다의 십대제자는 ㅅㅅㅅ` 의 -> 십대제자로 옮겼습니다.
humanist 보다는 인도주의 박애주의 humanitarianism 이 더 맞는 영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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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ㅅㅅ`
* 사가행위` 四加行位 -- 사선근위(四善根位)라고도 한다. →사선근위(四善根位)
* 사가행범부위` 四加行凡夫位 -- 능엄경에 제시한 수행의 단계, 일반 중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임. 즉, 일반 중생이 열심히 수행을 해서
난위(煖位), 정위(頂位), 인위(忍位), 세제일법위(世第一法位)의 네 가지 단계를 거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 사선근위(四善根位)
※ 가행 加行 --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더욱 힘을 쓰고 마음을 닦음.→ 가행(加行)
※ 가행위 加行位 -- 보살이 부처가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다섯 단계인 오위의 하나로 보살 수행의 둘째 단계. → 가행위 (加行位)
* 사견` 邪見 -- 삿된 견해로서 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그릇된 견해. 정견(正見)의 반대말.
→ 유견 무견(有見無見)
* 사경` 寫經 -- 붓으로 경전 베껴 쓰는 것.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했던 옛날에는 붓으로 경문을 써서 널리 퍼뜨렸다. 그런데 인쇄본이 나온 뒤에도 부처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수행의 하나로서 지성으로 경문을 베껴 쓰기도 한다. 사경은 부처님 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이어가는 뜻도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을 살펴보는 공부법이기도 하다. 경전을 옮겨 쓸 때에는 깨끗한 바탕에 정갈한 필기도구로 써야 하고, 옮겨 쓰는 글씨의 모양이나 속도도 한결 같아야 하며, 경을 쓰면서 그 글자를 마음속에 같이 써야 한다.
* 사고` 4고` 四苦 -- 생(生), 노(老), 병(病), 사(死)를 말한다.
* 4교과` 四敎科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승려들의 기초학습에 있어서 중급과정에서 불교경전을 연구하던 네 과목, 곧 <능엄경(楞嚴經)>,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 사교입선` 捨敎入禪 -- 교리적 공부에 집중하지 말고 체험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 언어문자를 맹신하지 말라는 말이다. 처방전이 아무리 좋아도 약은 먹는 사람이 먹어야 약효가 있듯이, 경전 공부도 이와 같아 경전은 다만 처방일 뿐 그 가르침을 실천을 통해 교화돼야만 공부가 완성된다는 말이다.
지식의 차원에서 경전의 글귀를 찾을 필요는 없다. 지식이라는 알음알이도 알고 보면 탐욕에 속하는 것이며, 탐욕은 결국 마음의 병이 되고 만다. 믿음이 낮은 표층 믿음인 근본주의는 문자주의로 빠지기 쉽다. 문자주의에 빠질 경우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질 뿐만 아니라 배타주의라는 함정에 떨어진다.
그래서 한국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교학(敎學)을 버리고 선 수행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사교입선(捨敎入禪)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경전을 배우고 익히는 교학 불교보다 경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그 가르침을 직접 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도록 주장하고 있는 말이다.
* 사구게` 四句偈 -- 불경의 주요 내용을 넉 줄로 읊은 게송. 슐로카(?loka)라는 산스크리트 시(詩) 형식으로, 8음절을 1구(句)로 해 4구, 곧 32음절로 된 게송을 말함.
예컨대 금강의 게송 하나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즉 모든 형상이 공하여 텅 빈 것임을 바로 깨닫게 되면 곧 깨달음을 얻는 자리[부처]가 되리라 - 는 말이다.
* 사념주` 四念住 -- 4념처(四念處)와 같은 말
* 사념처` 4념처` 四念處 -- 석가모니가 개발한 위빠사나(비파사나, 毘鉢舍那) 수행법의 한 부류로서, 주로 남방불교 승려들이 사용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즈음, 아난존자가 물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는 무엇을 의지하오리까?” 이에 부처님께서 “사념처에 의지하라.”라고 하셨다.
초기경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수행법이 4념처경이다. 붓다가 4년처관을 강조한 것은 중생들이 4대(四大)로 이루어진 몸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고 고집하므로 중생들은 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붓다는 경전 곳곳에 몸(身)운 부정하다고 관하고, 느낌들(受)은 고(苦)라고 관하고, 마음(心)은 무상하다고 관하고, 사물들 또는 관념들(法)을 무아라고 관하는 4념처관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육신의 구성요소를 관함을 수행의 틀로 삼았으므로 4념처관을 신관(身觀) 혹은 사념주(四念住)라고 한다.
그리하여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몸과 감각과 마음과 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알아차림의 수행법이다. 팔정도의 정념(正念)과 같다고 볼 수 있다.
- 신념처` 身念處 -- 자신의 몸과 관련된 현상, 즉 호흡 ? 동작 등을 관찰해 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정신을 집중해 몸 안팎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육신은 죽어서 썩을 부정(不淨)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 부정관(不淨觀), 고골관(枯骨觀)
- 수념처 (受念處) -- 느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감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깨달아 음행 자녀 재물 등의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실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苦]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심념처 (心念處) -- 마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마음은 늘 대상에 따라 변화하고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다. 따라서 마음에 욕심이 있다면 욕심이 있는 참뜻을 알고, 욕심이 없다면 욕심이 없는 참뜻을 알아 모든 마음의 참뜻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 법념처 (法念處) -- 정신적 대상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앞의 세 가지 외에는 자아라고 할 실체가 없고,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는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통해 생기는 번뇌의 생멸에 대해 깨닫는 것을 말한다.
사념처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같기 때문에 수행자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 어느 하나만이라도 성취하면 곧 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이 네 가지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사념처관(四念處觀)이라 하고, 이에 대한 것이 <대념처경(大念處經)>과 <범천경(梵天經)>에 설해져 있다.
* 사다나` sadhana 명상법 -- 산스크리트어로 ‘성취’라는 뜻이고, 밀교 명상 수행법의 하나이다. 이 밀교 명상은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의 간절한 소망으로 서구 불교도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여타의 밀교 수행과 마찬가지로 몸과 말과 마음의 3대 능력을 총체적으로 이용해 이를 통해 부처와 같은 지혜와 자비를 길러서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밀교에서 수행자가 신을 불러내어 그것을 자신과 일치시키고 자기 안에 몰입시키는 수행법으로 티베트 탄트라 불교의 기본적인 명상법이다. 수인(手印 mudra)을 짓는 신체, 진언(眞言, mantra)을 외는 음성, 만다라(曼陀羅, mandala)와 신의 모습을 내관(內觀)하는 정신이 모두 사다나에 포함된다.
* 사다함` 斯陀含, Sakadagami -- 성문(聲聞)의 수행 단계인 사과(四果) 중 제2단계임. 일래(一來) 또는 일왕래(一往來)라고 번역하며, 산스크리트어를 직역하면 ‘한번 되돌아오는 자’이다.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한 사다함은 죽은 다음 천상에 태어났다가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게 되므로 일래 또는 일왕래라 한다.
* 사대` 4대` 四大 -- 우리 몸(色身)을 구성하고 있는 4가지 성질,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을 일컫는다.
지(地) - 뼈, 근육, 내장 등 몸 안의 고체 부분. 그리고 몸에 닿는 여러 느낌들도 이에 해당한다.
수(水) - 피, 대. 소변 등 액체 부분 또는 액체를 많이 포함하는 부분. 결합력과 접착성이 수에 해당한다.
화(火) - 발열, 소화 작용. 뜨거움과 차가움, 그리고 늙어감도 화에 해당한다.
풍(風) - 호흡기관과 신진대사 - 기(氣). 하강하는 바람과 상승하는 바람이 있다. 상승하는 바람엔 재채기, 하품, 구토 등이 해당하고, 하강하는 바람엔 대소변, 들숨 날숨이 이에 해당한다.
* 4대성문` 聲聞 -- 부처님 제자 중 뛰언난 네분, 수보리, 마하가섭, 마하가전연, 마하목건련.
* 사대성지` 4대성지 聖地
1) 룸비니 Lumbini 藍毘尼 -- 부처님의 탄생지. 흔히 룸비니동산이라고 알려진 곳인데, 지금은 네팔의 영토에 있으며, 마야부인당이 건립돼 있다.
2) 붓다가야 buddhagaya --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곳. 우루벨라(uruvel?) 마을의 네란자라(neranjar?)강변에 있는,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현재의 지명은 보드가야이며, 이곳에 거대한 보리수와 ‘붓다가야의 대탑’이 있다.
3) 녹야원 미가다야, 鹿野苑 migadaya, 산스크리트어-m?gad?va 팔리어-migad?ya =
최초로 설법한 장소인 사르나트. 사르나트는 바라나시 교외에 있으며, 바라나시의 현재 지명은 베나레스이다.
4) 쿠시나가라 구시나갈라 拘尸那揭羅 -- 부처님이 열반한 곳. 인도 힌두스탄 평야에 있는 지금의 카시아(Kasia) 지방이다. 현재 이곳에는 열반당이 있다.
* 사도` 四道 -- 열반(涅槃)에 이르는 네 길. 곧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을 말한다. 해탈도는 , 넷째 승진도는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
1) 가행도 (加行道) - 번뇌를 끊으려고 다시 힘을 더하여 수행하는 단계. 용맹정진의 별명이 가행도이다.
2) 무간도 (無間道) - 다시 노력 정진한 공이 현저해 진지(眞智)를 발하고, 한창 번뇌를 끊고, 걸림 없이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 단계.
3) 해탈도 (解脫道) - 무간도 뒤에 생기는 일념의 정지(正智)가 한창 진리를 증오(證悟)하는 자리로서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4) 승진도 (勝進道) - 해탈도 뒤에 다시 나아가 열반을 구해 향상하는, 뛰어난 수행으로 해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
* 사도승` 私度僧 -- 국가에서 신분을 확인해 주는 도첩(度牒)을 받지 않고 사사로이 승려가 된 자, 혹은 엄격한 스승의 지도하에 그 법통을 이어받지 않고 제멋대로 머리를 깎고 절의 풍습을 조금 익힌 잡승을 일컫는다.
* 사라쌍수` 沙蘿雙樹 -- 인도에는 삼대성수(三大聖樹)가 있다. 사친나무(일명 무우수;無憂樹)와 보리수(菩提樹), 사라수(沙蘿樹)의 세 나무가 이에 해당한다. 마야 부인이 사친이라는 나무 그늘에서 아기를 낳았고, 그 아기가 자라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셨으며,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원산지인 인도에서는 사라나무를 살(sal)나무라 하고, 이를 한역한 것이 사라(沙羅)인데, 부처님이 그 사라나무가 쌍으로 서 있는 곳에서 열반에 드셨기에 사라쌍수라 한다.
* 사루가주` ?樓伽酒 -- 술이 채 되기 전의 것. 교단 분열로 불경의 제2차 결집이 있을 무렵 술을 금하게 돼 있는 승단 계율에서 예외적으로 병자를 위한 치료의 목적으로 막걸리의 일종인 사루가주 정도는 마셔도 되느냐 하는 논쟁이 있었다.
* 사리불` 舍利弗 사리자` -- 팔리어 Sariputta, 산스크리트어 sariputra의 음역(音譯)이다. 그는 주로 교화활동에 종사했는데, 경전 중에는 석가를 대신해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소위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됐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석가보다 먼저 죽어 부처님이 애통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법화경>에는 사리불이 내세에 화광여래(華光如來)가 됐다고 한다. → 샤리푸트라 (Sariputta 사리자)
* 사리신앙` 舍利信仰 -- 사리(Shrine 舍利)는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화장하는 풍습을 지닌 인도에서 유래됐는데,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학문이나 덕이 높은 인물이 사망하면 그의 은혜나 덕을 기리기 위해 화장해서 그 뼈를 나눠 가졌다. 불교에서 사리 신앙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부터 시작돼 일찍부터 여러 불보살 신앙과 함께 중요한 신앙 대상이었다. 사리는 소리 나는 대로 사리라(舍利羅)라고 하다가 사리(舍利)로 부르게 됐다.
* 사마타` 奢摩他 -- 산스크리트어 ?amatha의 음사. 산란한 마음을 멈추고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다. 의역해 지(止), 적정(寂靜), 지적(止寂), 등관(等觀)이라 한다.
모든 분별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허망함을 깨달아서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마음이 적정(寂靜)한 상태가 돼, 사념망상(邪念妄想)이 일어남을 막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해 산란을 멈추고 평온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삼매에 들어 온갖 번뇌와 망상을 그치므로 '지(止)'라고 번역한다. 이에 유사어가 적정(寂靜)이다. 위빠사나 수행법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정신집중 수행법으로 위빠사나가 관수행법(觀修行法)이라면 사마타는 지수행법(止修行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합쳐 지관(止觀)이라 하며 지(止, samatha)와 관(觀, vipassana)은 흔히 병칭되고 또 동일하게 보기도 하지만 초기 불교에서부터 양자는 구별됐다.
즉, 지(止)는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움직이지 않고 한 대상에 머물러[止] 있어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관(觀)은 이 상태에서 바른 지혜로써 제법을 관조하는 것을 이른다. 이와 같이 지와 관은 서로 의존관계에 있으므로 이 둘을 별개로 분리할 수는 없다.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교리이기도 하며, 불교사상적으로도 대단히 중시된다.
말하자면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마타에 의해 자아몰입에 들어간 후 지혜를 끌어내 대상을 관하는 위빠사나 수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마타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준비단계이자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사마타와 위빠사나, 즉 지(止)와 관(觀), 선정과 지혜는 떨어질 수 없다. 즉, 집중과 관찰은 불도수행에 있어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마타는 정(定)에 해당되고, 위빠사나는 혜(慧)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지관불이(止觀不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관쌍운(止觀雙運), 정혜균등(定慧均等)이라고도 한다. 마음이 지(止) 상태에 이르면 오락가락 흔들리는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고 고요해진다. 그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관하는 지혜가 나온다.
이처럼 사마타를 통해 모든 것이 변화와 관계 속에 있음을 알게 되는데, 내 생각은 변화와 관계를 거부한 채 끊임없이 집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자기 자신을 봄으로써 근본관계를 볼 수 있다.
사마타란 이처럼 마음을 조절하며 그동안 은폐해 왔던 갇혀있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사마타란 자신의 생각에 의지를 개입시키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 사만` 四慢 -- 네 가지 자만(自慢)하는 것을 말함인데, 만(慢)이라 함은 잘 못한 것을 보고도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 비하만 (卑下慢) - 남보다 훨씬 못한 것을 자기는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
2) 사만 (邪慢) - 아무 덕이 없는 사람이 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
3) 증상만 (增上慢) -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
4) 아만 (我慢)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 사무량심` 四無量心 -- 무량심(無量心)이란 중생(衆生)을 어여삐 여기는 부처님의 마음, 혹은 중생을 향한 보살의 네 가지 마음으로, 이에는 자(慈) ? 비(悲) ? 희(喜) ? 사(捨)의 네 가지 마음이 있다.
- 자무량심 (慈無量心) - 중생에게 한량없는 사랑을 베풀려는 마음.
- 비무량심 (悲無量心) - 중생의 괴로움을 한량없이 덜어 주려는 마음.
-희무량심 (喜無量心) - 중생에게 한량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하려는 마음.
- 사무량심 (捨無量心) - 나의 입장을 떠나 중생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려는 마음.
크게 사랑함이 대자(大慈)요, 크게 불쌍히 여김이 대비(大悲)요, 크게 기뻐함이 대희(大喜)요, 크게 버림이 대사(大捨)이니 대자대비(大慈大悲) 대희대사(大喜大捨)의 한량없는 네 가지 마음인 사무량심(四無量心)은 곧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다.
* 사무색정` 四無色定 --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과 같은 말. →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
* 사무색처` 四無色處, akasanancayatana -- 무색계의 네 가지 경지를 일컬으며, 줄인 말이 사무색(四無色)이다. 이 세계에 사공천(四空天)이 있어 무색계사천(無色界四天)이라 한다.
사공천이라 사선정(四禪定) 위의 영적 세계로서 이 우주 시공간(時空間) 안에 존재한다.
바로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말한다.
헌데 초기 근본불교가 부파불교-대승불교-밀교로 발전하면서 아주 허무맹랑한 상상을 발휘해 엉뚱한 허상을 만들어 혼란을 주고 있는데, 바로 그 중의 하나가 이 사무색처(四無色處)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런 불합리하고 허무맹랑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논설들을 가려내 폐기해야 불교가 바로 설 수 있으리라고 본다.
- 공무변처 空無邊處 - 공간의 무한함 -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제1천의 경지. 가이없는 허공을 생각에 떠올리면서 염하는 정신통일. 무색계의 4천(天) 중의 첫째. 형체가 있는 이 몸을 꺼리어 무한한 하늘을 동경, 하늘은 무한하다는 견해를 가질 때 생기는 장소이므로 이렇게 불린다.
- 식무변처 識無邊處 - 사고의 무한함 -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제2천의 경지.
- 무소유처 無所有處 - 비존재의 무한함 -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한 제3천의 경지. 무소유란 공(空)도 아니고 식(識)도 아닌 무위법의 경계이며 분별도 없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해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경지.
- 비상비비상처 非想非非想處 - 의식(意識)도 아니고 의식이 아닌 것도 아님의 무한함 -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제4천의 경지. 욕계 ? 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않은 제4천의 경지.→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
* 무소외 無所畏 4무소외 四無所畏 무외` 無畏 =
1.
① 산스크리트어 vai??radya 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므로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음.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이 없음.
② 산스크리트어 ??v?sa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두려움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마음 상태.
2. 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므로 누구에게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일. 혹은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이 없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설법함에 있어서 확신이 있었기에 외부로부터 어떤 비난이나 트집을 당해도 두려운 바가 없었다. 부처님의 4무소외는 아래와 같다.
1) 일체지무소외 一切智無所畏 -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을 깨달아 알아 정견(正見)에 머물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다.
2) 누수진무외 漏水盡無畏 -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번뇌를 끊었음을 자신하고 어떤 이가 있어 이것을 비난할지라도 이에 일체 두려운바가 없다.
3) 설장법무외 說障法無畏 - 부처님께서는 수행에 장애가 되는 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보여줘서 어떤 비난에 대해서도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다.
4) 설출도무외 說出道無畏 - 부처님께서는 중생계를 떠날 수 있는 도를 닦으면 반드시 모든 고통을 떠난다고 설함에 대해서 어떤 이가 있어 이를 비난할지라도 이에 두려운 바가 없었다.
* 4무애지` 四無碍智 --부처님은 항상 네 가지 자재무애의 지해변재(知解辯才)를 운용해 중생을 제도 교화했다. 4무애해(四無碍解)라고도 한다.
1) 법무애 法無? - 일체의 교법에 통달해 막힘이 없다.
2) 의무애 義無? - 일체의 교법의 의미를 알아 막힘이 없다.
3) 사무애 詞無? - 여러 지방의 언어에 통달해 막힘이 없다.
4) 변무애 辯無? - 이상의 세 가지 지혜로써 중생을 위해 설법함에 막힘이 없다.
※ 지해변재` 知解辯才 --지해(知解)란 언어를 매개로 한 인지나 인식의 결과인 지식을 말하고, 변재(辯才)란 말 재주를 말함.
* 사문` 沙門, 산스크리트어 ?ramana 팔리어 samana ?
1. 출가(出家)하여 수행하는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 사문 상문(桑門, 喪門), 사문나(沙門那), 사라마나(舍羅摩拏) 등으로 음사하며, 식심(息心) 정지(靜志:淨志) 빈도(貧道) 근식(勤息)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출가자를 가리키는데, 삭발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신심을 가다듬어 선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이나교 등 전통적인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의 수행자를 모두 사문이라 불렀으나, 후에는 특별히 불교 수행자를 가리키게 되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후, 사문의 제왕에 대한 예경(禮敬)의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된 적이 있는데, 이는 동진(東晉) 혜원(慧遠)의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에 이르러 일단락되었다.
이는 유교에 근거한 배불론(排佛論) 대 불교의 논쟁이기도 하였으나, 성직자의 세속의 권위에 대한 초연한 입장을 말해주기도 한다.
참조항목 사문불경왕자론, 승가 역참조항목 복전,
2. 고대 인도에서 부처님 당시 브라만교에서는 브라만계급 이외의 출가 수행자를 사문이라 했다. 즉 바라문에 대해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로 등장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정도의 뜻으로 일반적인 자유사상가의 총칭으로 쓰였다. 그러니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기 이전엔 사문의 한 사람이었다. 불교에서는 출가해 불도수행에 힘쓰는 수행승(비구)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 사물` 四物 -- 사찰에서 4물이란 범종(梵鍾), 목어(木魚), 운판(雲版), 그리고 법고(法鼓)를 말한다. 이것들은 소리를 내는 공양구로 소리로써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 범종 (梵鍾)은 지옥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친다.
- 법고 (法鼓)는 가죽 달린 짐승, 즉 육지 동물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 목어 (木魚)는 비늘 달린 중생, 즉 물고기 종류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 운판 (雲版)은 하늘을 나는 짐승들(새 종류)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 네 가지 법구의 소리를 듣고 짐승들은 축생의 악연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 사미` 沙彌 산스크리트어 Srmanera -- 사미(沙彌)란 행자교육을 마치고 사미10계를 수지한 후 구족계를 받을 준비를 하는 예비승려로서, 정식 스님이라고 할 수 없다. 예전엔 20세 이전의 동자승이나 청소년기의 승려를 일컬었으나 지금 조계종에서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구족계를 받지 못한 모든 승려를 사미승이라 부른다.
* 사바라이` 四波羅夷 -- 승려가 지켜야 하는 네 가지 중요한 계율. 살생, 도둑질, 음행(淫行), 삿된 말(깨달음을 얻었다고 거짓말하는 것), 이 계율을 범하면 승려의 자격이 박탈된다.
* 사바세계 娑婆世界 Saha, sah? loka dh?tu =
1. 사바가 아니고 사하 이다. 불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일컫는 말.
산스크리트 Sah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음역하여 사하(沙河), 색가(索訶)라 하고, 의역하여 감인토(堪忍土). 인토(忍土)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교화하는 경토(境土)를 말한다. 따라서 부처님이 섭화하는 경토인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의 번뇌를 겪어내야 하고, 오온(五蘊)으로 비롯되는 고통을 참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 국토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자연히 중생들 사이에서 참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부른다. 인내를 강요당하는 세간, 인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라는 말이다. 보살의 입장에서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수고를 참고 견디어 내야 하는 세계가 된다. 이렇게 일체가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인내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가 사바세계이다.
경전에서는 '사바는 번역하여 인(忍)인데, 이 땅에 사는 중생이 십악(十惡)에 안주하여 쉽게 벗어나지 못하므로 사람을 따라 땅을 인토라 이름한다'고 하고, 또 '무엇이 사바인가. 모든 중생이 삼독과 모든 번뇌를 참고 감수해야 하므로 인토라 하고, 또한 9도(九道)가 혼재하여 같이 살고 있으므로 잡회(雜會)라 한다'고도 한다. 다시 말해 사바세계는 작악(作惡)과 잡회의 세계이며,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의 수행 방법으로 인욕을 말한다.
참조항목 삼천대천세계, 석가
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란 말이다. 사바(沙婆)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이어서 괴로움이 가득 찬 이 세상이 사바세계이다.
* 사바하` 娑婆訶 svaha -- ‘스바하’라고도 하며, 원만한 성취라는 뜻으로, 진언의 끝에 붙여 앞말의 내용이 이루어지기를 희구하면서 내용을 결론짓는 종결의미로 사용되는 정형구이다.
* 사방불` 四方佛 -- 모든 공간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AD 1세기경 대승불교가 발생하면서 한 시대에 한 명의 부처만 존재한다는 기존개념이 동서남북 사방은 물론 6방, 8방에도 존재하고,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도 부처가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망라해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들을 시방삼세제불(十方三世諸佛)이라고 하며, 특히 밀교 계통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 사방사불` 四方四佛 -- 사방의 정토에 계신 네 부처. 동방 묘희세계(妙喜世界)의 아축불, 서방 안락세계(安樂世界)의 아미타불, 남방 환희세계(歡喜世界)의 보생불, 북방 연화장엄세계(蓮華莊嚴世界)의 미묘성불(微妙聲佛)이다.
* 사법계` 四法界 -- 모든 존재의 세계를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한 화엄종의 우주관. 현상의 세계인 사법계(事法界), 진리의 세계인 이법계(理法界), 현상과 진리가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ㆍ융합하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法界),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ㆍ융합하는 세계인 사사무애법계(事事無?法界)이다.
- 사법계 事法界 -- 현실인 미혹의 세계를 일컫는다. 우주 만유의 현상이 서로 대립해 차별이 있는 현상 세계를 말한다.
- 이법계 理法界 --- 진리의 세계를 일컫는 말. 수행이 최고조에 달해 상수멸정(想受滅定)의 상태가 되는 경지. 번뇌가 녹아져서 완전히 없어지고, 너와 나의 차이 또는 사물과 나와의 차이가 전혀 없이 일체 존재 모두가 다 하나의 불성으로 해서 완전히 통일이 돼버리는 경지이다. 바로 정각성불(正覺成佛)이 되는 것이다.
- 이사무애법계 理事無?法界 -- 현상과 진리가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 ? 융합하는 것. 즉,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이상으로서의 깨달음의 세계가 현실의 미혹의 세계와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 현실 즉 이상(現實卽理想)의 세계이다. 모든 현상과 진리는 일체불이(一體不二)의 관계에 있다는 세계관이다.
- 사사무애법계 事事無?法界 -- 현실의 각 존재가 서로 원융상즉(圓融相卽)한 연기관계(緣起關係)에 있는 세계를 말하는데, 현상계는 서로 교류해, 한 개와 여러 개가 한없이 관계하고 있다는 세계관이다. 즉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ㆍ융합하는 세계이다. 이 말은 어떠한 사물이건 고립돼 있지 않고 다른 것과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 사부대중` 4部大衆 -- 사부중(4部衆)이라고도 한다. 불교교단을 구성하고 있는 네 부류의 사람들,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을 가리킴.
- 비구 - 20세 이상으로서 구족계(250계)를 받은 남자스님
- 비구니 - 20세 이상으로서 구족계(348계)를 받은 여자스님
- 우바새 - 5계 혹은 보살계를 받은 남자신도 = 거사, 청신남
- 우바이 - 5계 혹은 보살계를 받은 여자신도 = 보살, 청신녀
* 사분` 四分 -→ 유식(唯識) 4분설(四分說)
* 사분율` 四分律 -- 출가한 승려가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계율을 자세히 기록한 불교의 율전(律典). 비구가 지키는 250계와 비구니가 지키는 348계가 기록돼 있다. 전체 내용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일컫는다. 붓다 입멸 후 100년경에 담무덕(曇無德)이 상좌부(上座部)의 근본율 중에서 자기 견해에 맞는 것만을 네 번에 걸쳐 뽑아 엮은 율문불서(律文佛書)로서, 전진(前秦=姚秦)의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념(竺佛念)이 한역했다.
* 사분정근` 四分精勤 -- 새벽예불, 사시예불, 오후 2시 예불, 저녁예불, 등 하루 4번 올리는 예불을 일컫는 말.
* 사불괴정` 四不壞淨 -- 불괴정이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신앙’, 즉, 절대 확실한 신앙을 의미하는데, 불교적인 신앙이 확립돼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동요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불(佛) ? 법(法) ? 승(僧)과 계율(戒律)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고 청정함을 뜻한다.
* 사사무애` 事事無碍 ? = 한자 뜻과 음 ; 일 사, 없을 무, 막을 애.
1. 어떠한 사물이건 고립되어 있지 않고 다른 것과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 일상생활에서 일을 처리할 때마다 일과 일 사이에 걸림이 없으면 漸修(점수)가 제대로 된 것.
2. 삼라만상 사사물물이 각기 독립된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서 화엄종의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사사무애법계` 事事無碍法界 -- 화엄교학 4법계의 하나. 현상계는 서로 교류해, 한 개와 여러 개가 한없이 관계하고 있다는 세계관을 말한다. 현실의 각 존재가 서로 원융상즉(圓融相卽)한 연기관계(緣起關係)에 있는 세계관의 모습이다. → 사법계(四法界)
* 사사물물` 事事物物 -- 모든 사물. 모든 현상을 말한다.---→ 천하사사물물 개유실리(天下事事物物 皆有實理) - 천하의 사사물물에는 모두 실리(實理)가 있다.
* 사상` 四相 -- 깨치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된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분별심을 말한다. 즉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말한다. 헌데 그 4상도 사람 혹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구구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를 바로 잡아서, 자아가 있다는 관념[아상], 개아가 있다는 관념[인상-개아], 중생이 있다는 관념[중생상], 영혼이 있다는 관념[수자상]으로 옮기고 있다.
- 아상 我相, atma- samjna - 아상이란 자아(自我)라는 생각, 자의식을 뜻한다. 석존 당시 브라만교에서는 아트만(atman)을 주장하고 있었다. 아트만은 만물에 내재하는 영묘한 힘, 영원불멸하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의미하며, 인간 존재의 영원한 핵을 이르는 브라만 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었다. 석존께서는 이러한 아트만을 아상이라 해서 이를 부정했다. 인간에게 불변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론이다. → 아상(我相)
- 인상 人相, pudgala-samjna - 부파불교 당시 독자부(犢子部)에서 마치 자이나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생사를 초월한 윤회의 주체가 있다고 주장해 이것을 뿌드갈라(pudgala, 개아)라 했다. 대승불교에서 이를 부정하기 위해 인상론이 제기됐다. → 개아(個我)
- 중생상 衆生相 sattva-samjna - sattva란 넓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 혹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부처와 중생들을 분별해 자신을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불도를 닦는데 게을리 한다거나 불도를 닦는다고 해도 부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이것이 중생상이다. 그러나 모든 중생들은 그 자체에 불성을 가지고 있어 누구라도 수행을 통해 불성을 닦으면 성불할 수 있다. 그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 壽者相 jiva-samjna - 자이나교에서 주장하는 생사를 초월한 존재, 즉 순수영혼인 지바(jiva)가 있다는 생각인데, 물론 불교에서는 이런 수자상을 부정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셨다. → 수자상(壽者相)
* 사생` 四生 --태 ? 난 ? 습 ? 화(胎.卵.濕.化)로 태어나는 것.
- 태생 (胎生) - 인간, 네 발 짐승과 같이 어미의 태반을 통해 태어나는 것.
- 난생 (卵生) - 닭, 오리, 새, 거북 등과 같이 알에서 깨어나는 것.
- 습생 (濕生) - 모기, 파리 등과 습기 있는 곳에서 부화하는 곤충들.
- 화생 (化生) - 낳는 자 없이 업력(業力)에 의해 홀연히 태어나는 것. 즉, 천신이나 귀신, 아수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불교 입장에선 기독교의 신이나 하느님도 화생이다. → 화생(化生)
* 사생자부` 四生慈父 -- 사생은 태(胎) ? 란(卵) ? 습(濕) ? 화(化)의 네 가지 형태로 태어나는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생의 자부이시니 인간은 물론이고 하찮은 미물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푸는 분이시다. 다른 종교에는 그런 자비사상이 없다.
* 사선` 四禪 -- 색계의 네 선정(禪定). →색계선정(色界禪定)
* 사선근` 四善根 -- 사가행(四加行)라고도 한다.
1) 난위 (煖位) - 4선근 가운데 첫 번째 자리로, 불을 일으키기 위해 나무와 나무를 서로 문지르면 불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그 마찰열에 의해 주변이 따뜻해지는 것과 같이, 번뇌를 없애는 불이 생기기 전에 접촉된 부분의 선근을 이에 비유해 난(煖)이라고 한다. 이 난위란 선정에 의해 사물이 실재한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 범부의 지혜로써 4제(四諦)를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단계로서 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준비단계라 할 수 있다.
2) 정위 (頂位) - 정(頂)이란 산꼭대기를 의미하는데, 범부의 지혜로는 최상의 단계이므로 정수리라 한다. 범부의 지혜로써 사제를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최상의 단계이다.
3) 인위 (忍位) - 인위에서는 선근이 확정돼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를 수용하는 위치를 말한다. 즉, 범부의 지혜로 4제의 이치를 확실하게 알고서 이를 인정해 받아들이는 단계로서, 사제의 이(理)를 인가(忍可)해 물러나는 일이 없는 단계이다.
4) 세제일법위 (世第一法位) - 아직도 번뇌의 세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 세계 가운데에서는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르는데, 유루법이 존재하는 세간 중에서 최상의 선근이 일어난 위치라는 말이다. 즉, 가장 뛰어난 범부의 지혜에 이른 단계로서 그 다음 단계가 성자의 경지인 견도(見道)이다.
* 4섭법` 四攝法 -- 여기서 ‘섭(攝)’이란 서로 어우러져 화합한다는 뜻이다. ‘섭’ 자의 손 수 변(?) 옆에 귀 ‘이(耳)’자가 셋이 있는데, 맨 위의 ‘이(耳)’자가 포용 섭수하는 마음의 귀이고, 아래 두 개 ‘이’자는 사람의 두 귀이다. 이 글자처럼 인간생활 혹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네 가지의 포용 태도를 사섭법 또는 사섭사(四攝事)라고 한다. 즉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의 기본 마음가짐 4가지를 말한다.
- 보시섭 布施攝 -- 인자한 마음으로 물질과 정신 두 가지를 조건 없이 베풀어 마음에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
- 애어섭 愛語攝 -- 사랑스러운 말로 항상 그 뜻을 따뜻하게 보호하며,
- 이행섭 利行攝 -- 남에게 이익 된 일을 하고,
- 동사섭 同事攝 --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을 도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
* 4성제` 사성제` 四聖諦 산스크리트어 ?ryasatya)--- 사성제에서 제(諦, 산스크리트어 satya)란 진리라는 의미이고, 그 진리가 신성(arya)한 것이라 해서 4성제, 즉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이는 고(苦)성제, 집(集)성제, 멸(滅)성제, 도(道)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단하게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도 한다.
- 인생의 현실은 괴로움으로 충만해 있다 - 고성제(苦聖蹄)
- 괴로움의 원인은 번뇌(집/集) 때문이다 - 집성제(集聖蹄)
- 번뇌를 없애면 괴로움이 없는 열반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 명성제(滅聖蹄)
-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해야 된다 - 도성제(道聖蹄)
* 49재` 四十九齋 -- 사람이 죽은 지 49일까지를 중음(中陰) 혹은 중유(中有), 중간계(中間界)라고 부른다. 명부시왕전(冥府十王殿)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기간이다. 가톨릭 교리에서 말하는 연옥(煉獄, purgatory)과 비슷한 개념이다.
7일마다 시왕을 바꾸어 가며 심판을 받는데, 49일 안에 일곱 번 심판을 받는 셈이 된다. 이때의 영혼을 흔히들 중음신(中陰神)이라고 하며, 아직 사후 인생이 결정 안 된 불귀의 혼인 셈이다. 이 중음신을 위해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齋)를 올리는 천도의식으로 칠칠재(七七齋)라고도 하는데, 49일째 되는 날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를 말하기도 한다.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숭배(祖靈崇拜) 사상과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이 절충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천도재(薦度齋)
* 사십이장경` 四十二章經 -- 중국에 최초로 전래된 불교 경전. 인도 승려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여러 경전을 발췌해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엮은 것. 후한 황제 효명제(孝明帝, 58~75재위)의 보호 속에서 번역한 중국 최초의 한역 경전이다. 특히 수행을 중요시하는 선가(禪家)에서는 불조삼경(佛祖三經)의 하나로 손꼽고 있는 경전이다.
* 4악도` 四惡道 -- 악인이 죽어서 가는 네 가지 고통스러운 길.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에 아수라(阿修羅)가 더해진 것을 말한다.
* 4여의족` 四如意足 -- 4신족(神足)이라고도 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수행이 뜻과 같이 잘 되는 것을 말한다. 욕(欲)여의족, 정진(精進)여의족, 심(心)여의족, 사유(思惟)여의족의 넷이다. 각각 깨달음을 향한 욕구, 정진과 노력, 마음을 통일하는 선정, 바른 사유가 뜻대로 작용하는 것인데,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에 포함된다.
- 욕(欲)여의족=욕신족(欲神足) - 구도심(求道心)이 강렬해서 하고자 하는 대로 수행이 잘 되는 것.
- 정진(精進)여의족=정진신족(精進神足, 勤神足) - 정진이 저절로 잘 되는 것.
- 심(心)여의족=심신족(心神足, 念神足) - 정념(正念)이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
- 사유(思惟)여의족=사유신족(思惟神足) - 선정(禪定)이 한결같이 잘 진행되는 것.
* 4연` 緣 -- 4연은 물(物)ㆍ심(心)의 온갖 현상이 생기는 것에 대해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 4~5세기경의 논서인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sa)>에 실려 있는 4연을 현장(玄?)은 인연(因緣), 소연연(所緣緣), 등무간연(等無間緣), 증상연(增上緣)으로 구분해서 번역했고, 구마라습은 인연(因緣), 연연(緣緣), 차제연(次第緣), 증상연(增上緣)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4연(四緣)은 주로 마음과 관계되는 인연관계를 뜻하고, 마음의 활동을 잘 도와주는 인연관계이며, 마음을 중심한 유식(唯識)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1) 인연(因緣) - 인(因, hetu)이 결과를 만들기 위한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원인이라면, 연(緣, pratyaya)은 인을 도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간접적이고 외적인 원인(즉 조건이나 상황)이다. 그래서 인(因)과 연(緣)이 화합해 생멸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삼라만상 모든 유위법의 현상은 원인이 되는 인과 그 결과인 연에 의해 발생하며, 항상 변화하고 일순간이라도 멈추지 않는다고 본다.
2) 소연연(所緣緣) - 소연연은 마음이 의지하는 모든 경계(境界)를 가리킨다. 즉 심적 활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모든 인식 대상을 가리킨다. 6식(六識)의 대상이 되는 6경(六境)이 소연연이라 할 수 있다.
3) 등무간연(等無間緣) - 차제연(次第緣)이라고도 하는데, 서로서로 일어나게 하는 원인을 말한다. 불교의 찰나생멸(刹那生滅) 법칙에 의하면, 앞선 순간의 심적 활동은 그 다음 순간의 심적 활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고 하며, 이런 현상을 등무간연이라고 한다.
4) 증상연(增上緣) - 연(緣)을 두 가지로 구분해 어떤 특정현상에 대한 존속에 대한 것을 인연(因緣)이라고 하고, 어떤 특정현상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간접적으로 조력하는 연을 증상연이라고 한다. 즉, 보조적 원인을 모두 통틀어서 ‘증상연’이라 한다.
* 사왕천` 四王天 -- ‘천(天)’은 신(神)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 욕계 6천 중 제1천. 사왕천은 수미산 중턱에 있다. 사천왕(四天王)과 그 권속들이 이곳에 살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 사위성` 舍衛城 -- 원어 스라바스티(sravastitilde)의 음역어이다. 실라벌(室羅筏), 실라벌실저 (室羅筏悉底), 시라바제(尸羅波提)라고도 음역한다. 부처님 당시 인도 중부지방에 있던 코살라(Kosala)국의 수도로서 나라 이름을 수도 이름을 따서 사위국이라고도 했다. 신라의 서울 ‘서라벌’은 스라바스티에서 차음한 것이란 설이 있다.
당시 국왕은 파사익(婆斯匿王-프라세나지트/Prasenajit)왕으로서 부처님 제자였고, 유명한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이곳에 있었다.
* 4열반` 四涅槃 -- 열반은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방해하는 번뇌장(煩惱障)과 그리고 지혜(知慧)의 활용을 장애하고 무지하게 살도록 유도하는 소지장(所知障)의 번뇌를 모두 정화하고 단멸한 경지를 의미한다. 열반을 취멸(吹滅)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이러한 번뇌를 정화했다는 뜻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같이 번뇌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열반의 경지를 정하는 사상이 있으며 이는 보통 대승불교에서 유래된 열반관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 열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는 가운데 사열반관(四涅槃觀)이 가장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은 마음의 번뇌가 거의 정화되었으나 아직도 미세한 번뇌가 남아 있지만 고통이 없는 열반을 실현한다.
②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은 번뇌가 완전하게 정화되어 열반이 구현된 것을 말한다.
③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은 어떠한 거주처에서든지 항상 안정과 즐거움을 실현하는 열반을 뜻한다.
④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은 본래 자성이 청정하고 진실한 진리를 간단없이 보존하고 있는 열반성을 의미한다.
* 사유` 四維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1)사방의 네 방위, 곧 서북ㆍ서남ㆍ동북ㆍ동남의 네 간방을 일컫는 말이다.
2)나라를 다스리는데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를 이른다.
* 사유` 四有 -- 윤회의 네 가지 과정. 중생이 살다가 죽어 다음의 어떤 생에 이르는 과정을 네 가지로 나눈 것.
1) 사유(死有) - 죽는 순간
2) 생유(生有) - 태어나는 순간, 즉 어떤 생이 결정되는 순간.
3) 본유(本有) - 생애를 누리는 기간, 어떤 생이 결정된 후부터 죽을 때까지.
4) 중유(中有) - 죽어서 다음의 어떤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
* 사의지` 四依地 -- 초기 불교시대에 출가자가 닦아야할 네 가지 법. 즉 분소의(糞掃衣)를 입는 것, 항상 밥을 빌어먹는 것, 나무아래서 정좌(靜坐)하는 것, 부란약(腐爛藥 ; 소의 오줌으로 만든 허술한 약)을 쓰는 것 등이었다.
※ 분소의(糞掃衣)---세속 사람들이 버린 헌 옷을 주워서 빨아 지은 가사(袈裟). 똥 걸레 옷이란 뜻.
* 사자의 서` 死者의 書 -- 사후의 세계에 관한 안내서로서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와 티베트 밀교의 <사자의 서>가 유명하다. ‘사자의 서(死者의 書)’는 내세관으로 부활 또는 윤회를 믿는 데서 출발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死者의 書)>는 1200년 전인 8세기에 티베트 밀교의 대가였던 위대한 스승 파드마 삼바바(Padmasambhava, 연꽃 위에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가 저술한 100여권의 책 중의 한권이다. 이 책은 그 후 매장돼 있다가 ‘테르퇸’이라 불리는 전문 발굴자인 릭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베트 북부 지방의 한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 후 이 책은 필사본과 목판본으로 티베트지역에 전해지다가 1919년 영국인 에반스 웬츠(W,Y. Evans Wentz)에 의해 발견돼,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ian book of the death)>라는 제목으로 발행돼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장례 후 49제를 지내는 이유도 모두 이에서 유래한다.
* 4전도` 顚倒 --어떤 판단을 할 때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오해하는 일 4가지를 말한다.
- 상전도(常顚倒) - 무상한 세상을 영원한 듯이 생각하는 것.
- 낙전도(樂顚倒) - 괴로운 인생을 즐겁다고 여기는 것.
- 정전도(淨顚倒) -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잘못 아는 것.
- 아전도(我顚倒) - 무아인 존재를 내 것이라 착각하는 것.
* 4정근` 四正勤 -- 사정단(四正斷)또는 사정승(四正勝)이라고도 하는데,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멀리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네 가지 법.,
- 율의단(律儀斷) -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 단단(斷斷) - 이미 일어난 불선법(不善法)을 모두 제거하는 것.
- 수호단(隨護斷) -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들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 수단(修斷) - 이미 일어난 선법(善法)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 더욱 증장시키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쓰는 것.
그런데 사정근은 해탈열반과 향상에 도움이 되는 선법과 그렇지 못한 불선법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전제되고 있다. 그리하여 사정근 수행을 해야 해탈열반과 향상에 도움이 되는 선법과 그렇지 못한 불선법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청정도론(淸淨道論)>에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특별히 믿음과 지혜의 균등함을 권한다. 믿음이 강하고 지혜가 약한 자는 미신이 되고, 근거 없이 믿는다. 지혜가 강하고 믿음이 약한 자는 교활한 쪽으로 치우친다. 약으로 인해 생긴 병처럼 치료하기 어렵다. 두 가지 모두 균형을 이룸으로써 믿을 만한 것을 믿는다. 집중은 게으름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삼매가 강하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은 게으름에 의해 압도된다. 노력은 들뜸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정진이 강하고 삼매가 약한 자는 들뜸에 의해 압도된다. 집중이 노력과 함께 짝이 될 때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노력이 집중과 함께 짝이 될 때 들뜸에 빠지지 않는다.” → 정근(正勤)
* 4종열반` 四種涅槃 -- 열반에 대해서는 2열반 ? 3열반 ? 4종 열반 등의 분류가 있으나 유식계의 4열반관(四涅槃觀)이 가장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자성청정열반(子城淸淨涅槃) - 본래청정열반(本來淸淨涅槃)이라 하기도하고, 성정열반
(性情涅槃)이라 하기도하면서 이는 삼라만상 제법 모두의 본래상(本來相)은 진여적정(眞如寂靜)의 이체(理體)로 곧 진여(眞如)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고 진여성(眞如性)과 불성(佛性)이 항상 청정하기 때문에 열반의 의미를 본래부터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2)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 여의(餘依)는 번뇌가 마음에 의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번뇌는 끊어졌지만 아직 육체는 있기 때문에 ‘나머지 의지할 것[여의(餘依)]’이 있다는 뜻에서 유여의열반이라 한다. 아무리 정신적 의미에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얻어진 열반은 불완전한 것[유여열반]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생존에 얻은 열반을 유여의열반이라 했다.
3)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 번뇌와 육신이 모두 소멸된 죽음의 상태로서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죽으면 육체의 제약에서도 벗어나 완전한 열반에 이른다 해서 무여열반이라 한다. 그러니 번뇌장(煩惱障)을 끊고 생사괴로움을 여의어 얻은 진여경계의 열반이다. 이는 이숙(異熟)의 고과(苦果)인 현재의 몸까지 멸해 없어져 고(苦)가 의지할 바가 없는 열반이다.
4)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 번뇌를 끊고 청정한 지혜를 얻어, 생사(生死)에도 열반에도 집착하지 않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상태로서, 무주처열반은 번뇌장뿐만 아니라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얻는 열반이다. 소지장마저 끊었으므로 생사와 열반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는 깊은 지혜를 얻게 되고, 대비(大悲)가 있으므로 열반에 머무르지 않고 생사계의 중생을 교화하며, 대지(大智)가 있어 생사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히 미계(迷界)를 여의었으므로 무주처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 4주` 四洲 -- 수미산(Sumeru)을 중심으로 4개의 큰 섬이 있는데, 그 이름은 각각 방위에 따라 동승신주(東勝身州), 남염부주((南閻浮州), 서우화주(西牛貨州), 북구로주(北俱盧州)라 하고, 우리가 사는(사람이 사는) 세계는 남염부주이다.
* 4시` 四智 -- 유식철학에서 말하는 사지(四智)는 번뇌에 오염된 팔식(八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네 가지 청정한 지혜.
1) 대원경지(大圓鏡智) - 오염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아뢰야식에서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함.
2) 평등성지(平等性智) - 오염된 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을 일으킴으로 이와 같이 말함.
3) 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육식(第六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현상을 잘 관찰해 자유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므로 이와 같이 말함.
4) 성소작지(成所作智) - 오염된 전오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을 모두 성취함으로 이와 같이 말함.
* 사참` 事懺 -- 참회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참(理懺)이고 하나는 사참이다. 사참은 우리가 몸과 말과 생각(身 ? 口 ? 意 삼업)으로 지은 죄업을 불보살의 가피와 예불 등을 통해, 즉 행동을 통해 불보살에게 참회하는 것이다. 이참은 본래의 마음자리에서 볼 때 모든 죄가 본래 자성이 없다는 이치를 꿰뚫어 봄으로써 참회를 이루는 것이다. 결국 사참이란 밖으로 참회하는 것으로 죄를 범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인정받는 것이고, 이참은 죄란 본래부터 없다는 것을 관조해 없애는 것이다.
이참과 사참 두 참법 중, 사참은 이참이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될 때 온전히 이루어지고, 이참 또한 사참이 없으면 공중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곧 사참과 이참은 결코 둘이 아니다. → 이참(理懺)과 사참(事懺)
* 사천왕` 四天王 --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천왕. 즉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을 일컫는다. 사천왕은 인도 신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찍부터 불교에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절 입구의 천왕문에서 불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수미산 꼭대기 살며 사천왕들을 통솔하는 신이 제석천(帝釋天)이다.
* 사향사과` 四向四果 -- 사문사과(沙門四果)라고도 하고, 줄여서 사과(四果)라고도 하는데, 소승불교의 수행 단계이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수행함으로써 아라한이라는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에는 4향 4과라고 불리는 8종의 위계(位階)가 있다. 즉 예류(豫流) ? 일래(一來) ? 불환(不還) ? 아라한(阿羅漢)의 4위가 있어서, 아래와 같이 과(果)를 향해 수행(修行)해 가는 단계(向)와 그에 의해 도달한 경지(果)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 4향4과이다.
1) 예류향(豫流向) - 예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2) 예류과(豫流果) - 예류에 도달한 상태
3) 일래향(一來向) - 일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4) 일래과(一來果) - 일래에 도달한 상태
5) 불환향(不還向) - 불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6) 불환과(不還果) - 불환에 도달한 상태
7) 아라한향(阿羅漢向) - 아라한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8)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에 도달한 상태
- 예류는 수다원(須陀洹)이라고 음역(音譯)하는데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해서 그 흐름에 참여한 것, 즉 불도 수행에 대한 확신이 생긴 상태를 말한다.
- 일래는 사다함(斯陀含)이라고 음역하는데 수행의 도상에 있어서 한 번 더 윤회의 세계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 불환은 아나함(阿那含)이라고 음역하는데 더 이상 윤회의 세계로 물러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불환이라고 한다.
- 아라한향(阿羅漢向)은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이르기까지의 위계(位階)이다. 아라한과에 이르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했으며, 해야 할 바를 다했고, 윤회에서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무학위를 간단히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아라한과 이전의 단계를 통칭해 유학위(有學位: 배울 것이 있는 계위) 또는 유학(有學)이라고 한다.
* 사혹` 思惑 -- 사혹이란 세간의 사물을 생각해서 일으키는 탐 ? 진 ? 치 따위의 번뇌로서 습관적으로 사물에 대해 애착을 하는 선천적 번뇌이다. 2혹의 하나로서 견혹(見惑)에 대칭되는 말. 견혹이란 그릇된 도리를 분별해 일으키는 아견(我見) ? 변견(邊見) 따위 번뇌요, 불교의 진리를 알지 못해 생기는 후천적 번뇌이다.
이 두 혹(惑)을 끊는 데에 순서가 있으니, 먼저 견혹을 끊고 뒤에 사혹을 끊어야 한다. 그리하여 견혹을 끊는 단계를 견도위(見道位), 사혹을 끊는 단계를 수도위(修道位)라 한다. → 견혹(見惑), 오위(五位)
* 사홍서원` 四弘誓願 --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려고 바라고 다짐하는 것을 서원이라 한다. 서원이 욕망과 다른 점은 욕망이 이기적인데 비해 서원은 자신을 포함한 전체의 행복과 평화를 지향한다. 불교에서는 보살이 걸어가야 할 네 가지 큰 서원을 내세우는데, 그것을 4홍서원이라 한다.
-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중생이 가이 없어도 모두 건지기를 서원함.
-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번뇌가 다함이 없어도 모두 끊어버리기를 서원함.
-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법문이 한없어도 모두 배우기를 서원함.
-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불도가 위없이 높아도 반드시 이루기를 서원함.
* 산당정야좌무언 山堂靜夜坐無言 --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動林野 一聲寒雁淚長天 (산당정야좌무언 적적요요본자연 하사서풍동임야 일성한안누장천) 산 집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고요하고 고요함은 본래 그런 것을 무슨 일로 서풍은 나무숲을 흔드는가. 기러기 싸늘히 울며 끝없이 멀고 넓은 하늘 날아가네.
중국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도천(冶父道川)의 게송이다. ‘고요한 밤 산당에 묵묵히 앉으니’는 참선삼매의 경지다. 그 경지에서 본연의 세계를 적요히 비추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주법계의 실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서풍이 불어 숲을 흔들고 기러기의 끼득끼득 소리가 들린다. 선에 몰입한 무아의 세계가 비실재의 세계라면 숲과 기러기소리는 실재의 세계다. 초탈지경에서 문득 현상계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그 현상계의 일이란 하나의 소식이다. ‘그것은 무슨 소식인가’라고 묻는 데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야보도천(冶父道川)이 지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는 시로 돼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 송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 산림` 山林 -- 출가 승려의 수행과 거주가 이루어지는 장소. 바로 사찰 ? 절을 말한다.
* 산림법회 山林法會 -- 사찰에서 특정 불경을 강경(講經-강설)하는 특별 강습의 큰 모임을 말한다. 이와 같이 특정 불경을 강경하는 산림(山林)이란 제도는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어왔다. ‘산림(山林)’의 뜻은 “최절인아산(折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너다 나다 잘난체하는 아상과 교만의 산을 허물고 공덕의 숲을 잘 가꾸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통도사 화엄산림법회’가 유명하다. 화엄산림이라고 하면 대방광의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의 과덕(果德)과 인행(因行)이 두루 설해진 <대방광불화엄경> 법문을 듣고 마음에 지녀 독송하며 사경하고 해설함으로써 화엄의 진리를 체득해감으로 인해 내가 잘났다는 아상을 버리고 공덕을 키워가는 법회라는 뜻이다.
근래 통도사의 화엄법회는 경봉(鏡峰)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통도사의 화엄법회는 창건주인 자장(慈藏) 대국통(大國統)으로 올라간다.
* 산스크리트` Sanskrit` = Sanskrit is no longer a spoken language, but continues to be used in religious ritual, and its Classical form is still cultivated as a literary language. Sanskrit is divided into two general categories, the more
ancient Vedic Sanskrit (assumed to have been spoken from approximately 1500-200 B.C.) and
Classical Sanskrit (approximately 500 B.C.- 1000 A.D.). Classical Sanskrit was formalized in the fourth century B.C. and, although there is some overlap between the two periods, there are important differences between it and the Vedic form.
1. 인도아리아어(語) 계통으로 고대인도의 표준 문장어.
중국 및 한국에서는 범어(梵語)라고도 한다. 원어(原語)로는 상스크리타(sa sk it)라고 하여 완성된 언어, 순수한 언어를 의미하며, 속어 프라크리트(prak t?)에 대칭된다.
언어학상으로 인도유럽어족은 인도이란어파, 슬라브어파, 그리스어, 라틴어에 속하는 이탈리아어파, 독일어, 영어를 포함한 게르만어파 등 많은 어파로 나뉜다. 산스크리트는 이 중 인도이란어파에 속하는 언어이다.
산스크리트는 BC 5세기∼BC 4세기경의 문법학자 파니니(P? ini)가 당시 서북인도 지식계급의 언어를 기초로 한 문법서 《아시타디야이이:A ?dhy?y?》를 지어 문법체계를 완성하였다.
이것을 고전산스크리트, 또는 간단히 산스크리트라고도 하여 그 이전의 《베다》를 중심으로 하는 베다어와 구별한다.
이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산스크리트는 종교, 철학 문학 용어로서 지식계급 사이에 사용되어 왔다. 불교경전은 처음 그 경전이 사용된 각 지방의 속어에 의해 전해졌지만, 부파(部派)불교시대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경전을 산스크리트로 쓰기 시작하였다.
또한, 인도 일반에 산스크리트가 사용되는 경향에 따라 속어로 쓰여졌던 것도 산스크리트화하였다. 한역(漢譯)된 불전의 원본에는 팔리어(p?li) 등의 속어로 된 것, 후기의 혼효(混淆)된 산스크리트(Hybrid Sanskrit), 순수한 산스크리트, 서북 인도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쳐 사용된 간다라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비달마(阿毘達磨)로서, 초기대승불교경전은 고전산스크리트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의 후기대승불교경전은 혼효산스크리트로 되어 있다.
참조항목 불경, 언어, 인도아리아어
역참조항목 구나, 데바나가리문자, 루니강, 마하, 마하라슈트리어, 메가두타, 믈레차, 바르트리하리
2. 중국 및 한국에서는 범어(梵語)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는 BC 5세기∼BC 4세기경의 문법학자 파니니(P?ini)가 당시 서북인도 지식계급의 언어를 기초로 한 문법체계를 완성했다. 이로부터 산스크리트어는 종교 철학 문학 용어로서 지식계급 사이에 사용됐다.
흔히 브라만의 글자라 하는데 비해, 불교경전은 처음에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각 지방의 속어(팔리어)에 의해 전해졌다.
그러다가 BC 2세기경 부파(部派)불교시대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경전을 산스크리트어로 쓰기 시작했고, 특히 인도 쿠샨왕조의 카니시카왕 때에 캐시미르에서 개최됐던 제4결집 시(AD 140년 경), 범어를 불교의 성전어로 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짐으로써 그 후 불교경전은 범어로써 표기돼 범어경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고대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씌어졌던 경전들이 일부 단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아 있지 않고, 고대 범어 자체도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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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 이 화두는 성철(性澈)스님이 처음 말한 법어가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던 것으로, 중국 송나라 때의 청원유신(靑原惟信)선사의 법어는 아래와 같다.
「견산시산 견수시수(見山是山 見水是水) 견산불시산 견수불시수(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견산지시산 견수지시수(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 이 늙은이가 중생일 때는 산을 보면 곧 산이요 물을 보면 곧 물이었고, 진리를 좀 알게 되니 눈이 차츰 열려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네. 이제 불법의 도리를 크게 깨닫고 보니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이더라.」
그리고 역시 송의 야보도천(冶父道川)스님의 「산시산(山是山) 수시수(水是水) 불재하처(佛在何處).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라는 글이 유명하다. 이는 깨달은 사람의 안목을 뜻한다.
* 살타` 薩陀 -- 원어 사트바(sattva)의 음역. 살타(薩陀)는 본질, 실체, 마음, 유정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여기서는 유정(有情)으로서 중생을 뜻한다. 따라서 보리살타(菩薩薩陀), 즉 보살(菩薩)은 깨달음의 길을 가는 중생이라는 뜻이 되겠다.
* 삼계` 三界 --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거주하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통칭하는 말이며, 세간(世間)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 한다는 3단계의 미망의 세계이다.
1) 욕계(欲界) - 욕계는 맨 아래에 있으며 애욕, 재욕, 식욕, 성욕, 명예욕의 오욕 등 온갖 욕망이 창궐하는 세계이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六道)와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등 욕계 6천(六天)이 여기에 속한다. → 욕계(欲界)
2) 색계(色界) - 욕망은 끊었으나, 미묘한 형체가 남아있는 세계.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물질의 세계로서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청정의 세계이긴 하나 형상(색)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계이다. 여기엔 여성은 없고, 물들어지는 욕락이 없어서 전혀 화생(化生)하는 곳이지만 아직 물질이 있으므로 색계인 것이다. 이 색계는 욕계의 더러운 색을 여의었다 하더라도 미묘한 청정세계이다. → 색계(色界)
3) 무색계(無色界) - 육체를 가지지 않고 정신적 요소만 있는 세계. 무색계는 색 아닌 법체의 세계로서 물질과 공간 개념을 초월한, 형질이 없는 허공 자체이자,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 무념무상의 정(定:三昧)을 닦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삶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미혹의 중생 세계이다. → 무색계(無色界)
※ 화엄종에서는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세 가지를 삼계라고 한다.
* 삼계교` 三階敎 -- 중국 수(隋)나라 시대 신행(信行, 540∼594년)에 의해 창시된 불교의 일파이다. 수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의 혼란기에 생겼다. 당시의 혼란상을 여러 나라가 다투는 무질서 말법시대로 규정하고 이를 타파하는 교설을 내세웠다. 세상을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의 삼단계로 구분하고 정법과 상법계에 있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쉬우나 세상이 어지럽고 탁한 말법계에 드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어려우므로 독특한 방법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당시)은 말법의 악세(惡世)인데,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갖춘 존재이므로 서로 공경하고 보경보불(普敬普佛)에 의지할 것을 주장했다. → 삼시관(三時觀)
※ 보경보불(普敬普佛)---모든 사람은 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부처로서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불, 법, 승에 귀의해 모든 악을 끊고 선을 닦아 훌륭한 지도자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삼계대도사` 三界大導師 --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의 중생을 이끌어 주시는 커다란 스승이시고, 삼계에 으뜸가는 멘토라는 뜻이다. 즉, 부처님을 일컫는다.
* 삼계유심 만법유식 三界唯心萬法唯識 --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낸 허영의 작품이라는 뜻. 모든 존재, 즉 만법(萬法)은 우리의 의식이 낸 것이므로 실존하는 것으로 보지 말라는 뜻이다.
* 삼고` 三苦 -- 중생의 괴로움을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의 셋으로 나누어 삼고라고 한다.
① 고고(苦苦, dukkha-dukkhata) --추위와 더위 ? 추위 ? 기갈(飢渴) ? 질병(疾病) 등에서 생기는 육체적인 괴로움.
② 행고(行苦, sankhara-dukkhata) --여기서 ‘행(行)’은 천류(遷流), 곧 생멸의 유전과 변화를 말하는데, 이것에 의지해 일어나는 고통을 행고라 한다. 즉, 행고(行苦)는 현상계[有爲法]가 모두 무상하기 때문에 윤회(輪廻)를 면할 수 없음에서 오는 괴로움이다. 그리고 오음성고(五陰盛苦)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행(상카라)의 고통, 즉 온갖 심리현상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괴로움, 이 모두가 행고이다.
③ 괴고(壞苦, viparinama-dukkhata) --집착을 갖는 사물(事物)이 파괴?변화(變化)해 갈 때 느끼는 정신적(精神的) 괴로움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재산, 권력, 명예 등에도 변화가 와서 언젠가는 무너질 때가 오는 괴로움.
* 삼관` 三觀 -- 세 가지 진리-삼제(三諦)를 관찰하는 것. 삼제란 공제(空諦) ? 가제(假諦) ? 중제(中諦)를 말한다. →일심삼관법(一心三觀法)
* 삼관법` 三觀法 - 원각경 삼관법 = 생로병사와 우비고뇌를 없게 하자면 근본 무명인 마음을 멸해야 하므로 ,마음을 주시하는 삼관법(三觀法)이 대해탈로 가는 불교의 요체가 된다. 이 삼관의 삼매수행법은 모든 부처님의 참선법이다. 참선은 여러 갈래의 마음들을 고요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만법의 근본이고 불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교법은 이 선의 경지를 깨우쳐 주려는데 근본이 있다.
- 정관(靜觀) -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볼 때 그 일어나는 곳을 깨달으면 모든 것이 고요해질 것이다. 고요한 것이 극치에 이르면 마침내 밝아져 버린다. 그것이 정관(靜觀)이다.
- 환관(幻觀) - 밖의 경계를 볼 때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허깨비와 같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환몽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것이 환관(幻觀)이다. 삼라만상이 환상임을 깨닫게 되면 집착을 하지 않게 되고 자성이 밝아진다. 그래야 스스로 나쁜 행동을 그만두게 되며 선을 닦을 수 있게 된다.
- 적관(寂觀) - 적관이란 정관과 환관이 일치하게 된 것을 말한다. 안으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없고 밖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게 됨을 말한다. 이것이 참선 수행의 첫걸음이다.
안으로 번뇌를 항복받아 안정을 취하고 밖으로 일체 경계에 집착을 여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세속의 번다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천태종의 지자(智者)대사는 일심삼관법(一心三觀法)을 세웠다. -> 일심삼관법(一心三觀法)
* 삼귀오계` 三歸五戒 -- 삼귀오계는 불교의 중요한 입문의례로 재가의 신도가 불교에 귀의하는 필수적인 형식이다. 먼저 불 법 승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다음에 오계(五戒)를 받는 법. 계율의 일종으로 이를 받은 이를 남자는 우바새(優婆塞), 여자는 우바이(優婆夷)라 한다. 오계는 산목숨을 해치지 말라.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에 취하지 말라 등이다.
* 삼귀의` 三歸依 -- 삼귀의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
<삼귀의례(三歸依禮)>
1)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 혜와 복덕을 구족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2) 귀의법 이욕존(歸依法 離欲尊) - 일체 욕망을 떠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3)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 - 모든 스님들(승가, 사부대중)께 귀의합니다.
* 삼도` 三道 --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수행 과정인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를 이르는 말이다. 계(戒)와 정(定)과 혜(慧)를 뜻하는 삼학(三學)에 비해 삼도란 보고 닦아서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수행단계로서 세상의 법이 연기와 중도임을 관찰하고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해탈이나 열반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1) 견도(見道) - 사제(四諦)의 도리를 깨닫는 수행 과정을 말한다. 사제와 12연기에 대한 인식이 이에 속한다.
2) 수도(修道) - 사제와 연기를 체험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부처는 수도의 여러 방법을 제시했다. 경전에서는 ‘고는 널리 알아야 할 것이고, 집은 끊어버려야 할 것이며, 멸은 실증해야 할 것이고, 도는 닦아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3) 무학도(無學道) - 수도의 결과 해탈 ? 열반에 이른 것을 뜻한다. 무학은 더 이상 배움이 없는 경지로,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실현된 상태이다. 경전에서는 ‘고의 두루 앎을 마치고, 집의 끊어버림을 마치고, 멸의 실증함을 마치고, 도의 닦음을 마친다’라고 설명한다.
이상을 현실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인생을 관찰하고, 인생을 성숙시키는 길을 거쳐, 더 이상 배움이 필요 없는 길에 이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세상의 법이 연기와 중도임을 관찰하고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실천해 해탈이나 열반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 견도(見道), 무학도(無學道)
* 삼독심` 三毒心 -- 탐(貪) 진(瞋) 치(癡)를 말함. 삼독심에 의한 재앙을 삼재(三災)라 한다. 탐(貪)에 의한 재난이 수재(水災)이고, 진(瞋)에 의한 재난이 화재(火災)이며, 치(癡)에 의한 재난이 풍재(風災)이다. 지구 온난화도 결국 삼독심에 의한 재난이다.
* 삼론종` 三論宗 -- 용수(龍樹 : 150?~250?)의 중관사상(中觀思想)을 중국에서 체계화한 종파가 삼론종(三論宗)이다. 인도의 대승불교에는 중관불교와 유식불교의 두 흐름이 있었다. 이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중관불교는 삼론종(三論宗)으로, 유식불교는 법상종(法相宗)이 됐다.
중관파의 주요한 세 논서인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백론(百論)>을 채택해 이해의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에 삼론종이라 칭한다. 이들 세 논서를 한역한 사람이 구마라습(鳩摩羅什)이었으므로 삼론종의 창시자를 구마라습이라 간주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종파의 이론을 대성한 사람은 길장(吉藏 ; 549~623)이다.
* 삼륜청정` 三輪淸淨 -- 참된 보시, 즉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하는데, 이것을 삼륜청정(三輪淸靜)이라 한다. 베푸는 자(施者)와 받는 자(受者)와 보시한 물건(施物), 이 세 가지가 깨끗할 때 비로소 참다운 보시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베푸는 자도 공하며[시공(施空)], 받은 자도 공하고[수공(受空)], 베풀어지는 물건도 공하다[시물공(施物空)]라고 해서 삼륜체공(三輪體空) 혹은 삼륜공적(三輪空寂)이라고도 한다.
* 삼마지` 三摩地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dhi)의 음역. 삼매(三昧)와 같은 말임. 삼마(三摩)라고도 함.
* 삼매` 三昧 --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adhi)의 음역으로 삼마지(三摩地) ? 삼마제(三摩提)라고도 한다. 불교의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 내적, 또는 외적인 어떤 자극에도 동요됨이 없는 바르고 맑은 정신 상태를 말한다.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정(定), 또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등지(等持)라 하기도 한다.
대승경전에서 부처님 말씀의 시작은 언제나 부처님이 먼저 선정에 들고(입정) 거기서 나온 이후 법문을 시작했다. 이래서 부처님의 삼매의 종류는 해인삼매, 화엄삼매 등 다양하게 전개됐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 나오는 삼매의 종류가 무척 많다.
* 삼무성` 三無性 -- 유식 삼성인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을 3종자성(三種自性)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들 3종자성은 모두 인연소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스스로 자성을 지닌 것이 아니므로 이들이 모두 무성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무성(相無性) ? 생무성(生無性) ? 승의무성(勝義無性)의 3무성에 의해 유식 삼성(3종자성)을 부정함으써 이 세상에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의 진리를 밝힌 것이다.
-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에 자성이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 상무성(相無性)이고,
- 의타기성(依他起性)에 자성이 없다고 설명한 것을 생무성(生無性)이라 하며,
- 원성실성(圓成實性)에 자성이 없다고 설명한 것을 승의무성(勝義無性)이라고 한다.
<분별과 망상이 소멸된 세 가지 상태>
1) 상무성(相無性) - 온갖 분별과 망상으로 집착해서 번뇌를 일으키는 변계소집성은 허구적인 것으로 자성이 없고, 일체만법의 상(相)은 무성이라는 것이다.
2) 생무성(生無性) - 생무성이란 생겨난 것에 자성이 없다는 의미로 의타기성의 연기적인 존재는 자성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3) 승의무성(勝義無性) - 승의무성은 원성실성의 무성성(無性性)을 말한 것이다.
* 삼문수업` 三門修業 -- 조선조의 억불정책으로 이렇다 할 종(宗)이 없는 무종산승(無宗山僧)의 시대에 서산대사는 간경 ? 참선 ? 염불의 삼문수업을 주창했다. 그리하여 한 사찰 안에 선방(禪房)과 강당(講堂), 그리고 염불당(念佛堂)을 마련하고 선과 교 그리고 염불을 모든 스님들이 겸해서 닦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인 회통불교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 삼밀` 三密 -- 밀교에서 신체 ? 언어 ? 정신으로 짓는 신(身) ? 구(口) ? 의(意)의 삼업을 이르는 말이다. 진언(眞言)을 외우는 구밀(口密), 손으로 수인(手印)을 맺는 신밀(身密), 마음으로 불보살의 존상(尊像)을 바라보는 의밀(意密)을 통틀어 이른다.
* 삼밀가지` 三密加持 -- 밀교 수행법의 하나, 삼밀유가법(三密瑜加法)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가지(加持)’란 서로 어울린다는 말로서, 대자대비한 불보살의 가호를 받아 중생이 깨달음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삼밀가지란 열심히 수행을 하면, 중생의 신(身) ? 구(口) ? 의(意) 삼밀이 대일여래 부처님의 신 ? 구 ? 의 삼밀과 가지(加持)하게(일치하게) 돼 중생과 대일여래가 한 몸을 이루는 경지가 된다는 것이다.
* 삼법인` 三法印 --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교의(敎義).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인(涅槃寂靜)를 말한다. 그런데 삼법인에도 부르는 순서가 있다. 삼법인을 순서에 따라 부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언급했다면 스스로 무지를 폭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승불교의 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적정열반(寂靜涅槃)으로 여기에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넣어 사법인라고 하기도 한다. 삼법인의 순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행무상이 항상 앞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용어가 그 사상의 핵심적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 법인(法印)
* 삼법인` 三法忍 --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나오는 말. 여기서 인(忍)은 참을 인이 아니라 인가결정(認可決定)한다는 말이니, 진리를 확인해 결정적으로 이해하는 일을 말한다.
첫째는 음향인(音響忍) - 설법, 즉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마음이 안온해짐.
둘째는 유순인(柔順忍) - 불보살의 교화, 즉 진리에 순종해 법대로 행하는 것.
셋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 -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 → 법인(法忍)
* 삼법인` 三法忍 --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삼법인.
- 신인(信忍) - 신심에 의해 얻는 지혜,
- 순인(順忍) - 진리에 순종하는 지혜,
- 법인(法忍) - 진리를 깨닫는 지혜.
* 삼사칠증` 三師七證 -- 비구가 정식 승려가 되려면 구족계를 받아야 하며, 이 때 3명의 스승과 7명의 증인이 필요한데, 이들을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라고 한다. 여기서 삼사는 계를 주는 계화상(戒和尙), 청결을 증명하는 갈마사(葛磨師), 의식을 가르쳐 주는 교수사(敎授師)를 말하고, 칠증은 입회인인데, 덕이 높은 승려(僧侶) 일곱 사람이다. 이들에 의해 수계식이 이루어진다.
소승불교에서는 반드시 이 10명 앞에서 계를 받지만 대승불교와 밀교에서는 꼭 10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스승 없이 스스로 부처님 앞에서 서원(誓願)을 세우고 계를 받는 자서수법(自誓受法)도 있다.
* 삼선도` 三善道 -- 아수라 인간 천신
* 삼성각` 三聖閣 --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을 합친 것. 불교 사찰에서 산신(山神) ? 칠성(七星) ? 독성(獨聖)을 함께 모신 전각. 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이다. 전각은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산신(山神)은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난다. 인격신으로서의 산신은 나이 든 도사의 모습이다. 독성은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는다. 칠성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주존으로 한다.
* 삼성업` 三性業 -- 선업, 악업, 무기업(無記業) → 무기업(無記業)
* 삼세양중인과 三世兩重因果 -- 삼세양중인과는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과 <구사론(俱舍論)>, 그리고 남방불교의 니까야 주석서인 <청정도론(淸淨道論)> 등에서 12연기설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삼세(三世)란 과거-현재-미래를 의미하고, 양중(兩重)이란 두 번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며, 인과(因果)란 원인과 결과의 연결을 말한다. 즉 삼세에 걸쳐 두 번의 인과를 가지고 윤회하는 과정을 말한다. 12연기는 삼세에 걸쳐서 이러한 원인과 결과가 인-과-인-과로 두 번 반복됨(兩重)을 가르친다고 해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결론짓고 있다.
부파불교시대(B.C. 3세기 ∼ 1세기경)의 소승불교에서의 주장으로 12연기설의 가장 완벽한 해석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현대 불교학자들은 그런 해석은 본래의 뜻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삼승` 三乘, 산스크리트어 tri-y?na --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의 삼승을 일컫는다. 여기서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한다. 법화경에는 삼승(三乘)이 일승[一乘-불승(佛乘)]을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를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고 한다. 즉, 삼승은 부처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 삼승통교` 三乘通敎 -- 천태 지의 대사가 정리한 오시교(五時敎)의 하나.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三乘)에게 공통되는 가르침, 곧 반야경의 가르침을 말한다.
※오시교(五時敎) - 부처님께서 49년간 설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그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 삼시관` 三時觀 -- 삼시관이란 정법시대(正法時代), 상법시대(像法時代), 말법시대(末法時代)라는 부처님 말씀에 의한 시대구분이다. 붓다 열반 후 1천년을 정법시대요, 그 후 1천년을 상법시대라 하며, 그 후 1천년을 말법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말법시대이다. → 상법시대(像法時代)
* 삼시업` 三時業 -- 업이 결과를 가져오는 과보를 세 가지 시기별로 분류한 것.
1) 순현업(順現業) - 현생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현생에서 받는 업
2) 순생업(順生業) - 현생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다음 생에서 받는 업
3) 순후업(順後業) - 현생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차차후 생에서 받는 업.
이와 같이 과보를 받을 시기가 정해진 업을 ‘정업(定業)’이라 하고, 과보 받을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업을 ‘부정업(不定業)’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금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인과가 없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 삼신` 三身 -- 불교에서 불신(佛身)을 세 가지 종류로 표현한 교리.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여러 가지 불신설 가운데 삼신설을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신(法身) ? 보신(報身) ? 화신(化身)의 삼신설이 가장 보편적으로 설해지고 있으며, 자성신(自性身) ? 수용신(受用身) ? 변화신(變化身)의 삼신설도 채용하고 있다.
* 삼신불` 三身佛 -- 대승불교의 불신관으로 법신불(法身佛) ? 보신불(報身佛) ? 응신불(應身佛)로 구분한다. 여기서 말하는 몸(身)이란 부처님의 참모습에 인격적인 의미를 붙여 일컫는 말이다.
- 법신불(法身佛)---삼신 가운데 영원히 살아 계신 부처님의 몸이다. 우리의 감각과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몸으로서 우주 및 중생계 모든 것의 바탕이 되며, 그것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만드는 주체인 진리의 당체이다. 이를 독립시켜 인격화해서 부를 때는 흔히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 보신불(報身佛)---진여당체인 법신이 형태를 취해 나타난 몸을 말한 것으로 곧 법신을 인(因)으로 삼아 그 과보(果報)로 나타난 몸이기에 보신이라 한다. 이를 독립시켜 인격화해서 부를 때에는 원만보신 노사나불(盧舍那佛)이라고 한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실제로 존중되는 보신불로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등이 있다.
- 응신불(應身佛)---화신불(化身佛)이라고도 하는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중생과 같은 육체를 지니고 현실세계에 나타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말한다.
* 삼십심` 三十心 -- 대승의 삼현위(三賢位)를 말하는데 삼십심이라고도 한다. 십지(十地) 이전의 보살을 말하며, 그 계위에 세 단계의 십심의 구별이 있다. 즉 십주심(十住心), 십행심(十行心), 십회향심(十廻向心)을 합쳐 삼십심이라 한다 →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 삼십칠조도품 三十七助道品 --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기 위해서 수행해야 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한다. 도품(道品)은 실천하는 방법의 종류를 뜻하고, 삼십칠은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등 일곱 가지 수행방법을 합친 것이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한다.
→ 4념처(四念處), 4정근(四正勤), 4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 삼아승기겁 三阿僧祗劫 -- 줄여서 ‘삼승기(三僧祇)’라 한다. 아승기(阿僧祗)는 셀 수 없다는 뜻이고, 삼아승기겁은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까지에 소요되는 무한히 긴 기간을 셋으로 나눈 것.
보살의 오십위 (五十位) 중 십신(十信) ?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廻向)의 사십위(四十位)를 제일 아승기(第一阿僧祗), 십지(十地) 중 초지(初地)에서 제칠지(第七地)까지를 제이 아승기(第二阿僧祗), 제팔지(第八地)에서 제십지(第十地)까지를 제삼 아승기(第三阿僧祗)라 한다. → 아승기(阿僧祇)
* 삼악도` 三惡道 -- 중생들은 죽으면 6도를 윤회하게 된다. 그런데 중생이라고 하지만 착한 일을 많이 한 중생이 있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중생도 있다. 그래서 가는 길이 다 다르다.
6가지 윤회의 세상인 육도는 둘로 나눈다. 즉 위에는 조금 괜찮은 3가지가 있고, 아래는 나쁜 3가지 세계가 있다. 복덕이 많은 사람은 위의 3가지 세계 즉 천당, 사람, 아수라의 3가지 업보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죽어서 나쁜 3가지 세계에 태어난다. 이 나쁜 3가지 세계가 바로 삼악도, 즉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이다.
* 삼업` 三業 --두 종류의 삼업이 있다.
①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의 세 가지를 삼업이라 하고,
② 선업(善業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결과를 받을 업), 악업(惡業;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결과를 받을 업), 무기업(無記業; 선악에 치우치지 아니하며, 또 선악의 어떤 결과도 받지 않는 업)의 세 가지를 말하기도 한다.
* 삼염주` 三念住 -- 부처님께서는 항상 바른 마음에 머물러 흔들림이 없어 동요치 않음을 셋으로 나눈 것. 부처님과 중생의 다른 점인 18불공법(不共法)에 들어있다.
- 제1염주 - 중생이 부처님을 신봉해도 부처님은 환희심을 일으키지 않고 정염정지(正念正知)에 안주함을 말함. 혹은 부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잘 순종할지라도 그로 인해 마음이 동요되거나 희심을 일으키는 일 없이 그 마음이 항상 평온함을 말한다.
- 제2염주 - 중생이 부처님을 믿지 않아도 부처님은 괴로워하지 않음. 혹은 부처님께서는 그 제자들이 잘 순종하지 않을지라도 그 마음이 항상 평등해서 동요하지 않음을 말한다.
- 제3염주 - 중생이 부처님을 믿거나 믿지 않아도 부처님은 기쁘거나 괴로워하지 않음. 혹은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이 순종하거나 순종치 않거나 그러한 일로 인해 마음이 동요치 않고 항상 평등심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란 연기법을 이해하는 것인데 연기법을 이해하거나 하지 않거나 부처님은 관여하지 않는다. 부처는 오직 가르쳐 줄 뿐이고, 실천하는 것은 중생의 책임이고, 중생 스스로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삼장` 三藏, Tipitaka -- 부처님의 설법을 모은 경장(經藏, 팔리어 Sutta Pitaka),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을 모은 율장(律藏 Vinaya Pitaka), 교리에 관해 제자들이 연구한 논문을 모은 논장(論藏 Abhidharma Pitaka), 이 경 ? 율 ? 논 세 가지를 합해서 삼장이라 한다.
* 삼장` 三障 -- 수행(修行)과 선근(善根)에 미치는 중대한 세 가지 장애, 즉 업장(業障), 번뇌장(煩惱障), 보장(報障)을 말한다. 장(障)은 장애를 말하는 것이니, 번뇌가 가리어 열반을 막으며 무명이 가리어 보리를 막는 것이다
- 업장(業障) - 나의 과거로부터의 숙업과 나의 업이 미치는 가족 관계, 친구 관계 등 주위 사람들과의 인연에 의해 일어나는 일체의 방해를 뜻한다.
- 번뇌장(煩惱障) - 중생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탐(貪) ? 진(瞋) ? 치(癡) 삼독(三毒)의 번뇌가 불도수행을 방해하고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가령 눈앞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신심을 망각하거나 신심의 자세에 대해 주의를 받고 감정적이 돼 자기 스스로의 신심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 등이다.
- 보장(報障) - 업보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국가나 왕 혹은 혈육인 부모, 즉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나 존재가 그 어떤 힘을 가지고 수행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에서 금지를 한다든지 아니면 부모가 반대를 하는 행위 일체를 말한다. 법으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고 부모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는 환경이 되면 수행을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 삼장교` 三藏敎 -- ① 경(經)?율(律)?논(論)의 가르침, 곧 부처님의 가르침 전체를 뜻함. ② 천태종에서는 소승의 가르침을 일컬음.
* 삼장법사` 三藏法師 -- 불교 성전인 경, 율, 논 삼장에 모두 정통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 진체(眞諦;499~569), 현장(玄?;602?~664), 불공(不空:705~774) 등을 삼장법사라 했다.
* 삼재` 三災 -- 탐(貪) ? 진(瞋) ? 치(癡) 삼독심(三毒心)에 의해 일어나는 재앙을 삼재(三災)라 한다. 탐(貪)에 의한 재난이 수재(水災)이고, 진(瞋)에 의한 재난이 화재(火災)이며, 치(癡)에 의한 재난이 풍재(風災)이다. 지구 온난화도 결국 삼독심에 의한 재난이다. → 삼독심(三毒心)
* 삼제(三諦)--- 중국 천태종의 개조 지의(智?)가 독자적 입장에서 전개시킨 세 가지 진리를 말한다. 즉 공제(空諦)) ? 가제(假諦) ? 중제(中諦)의 셋을 말한다. 여기서 제(諦)는 진리라는 뜻이다.
- 공제(空諦)---만물은 모두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일 뿐, 어느 것도 실(實)은 없고,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공(空)이라는 것.
- 가제(假諦)---공인 것은 확실히 진리이지만, 우리는 ‘공’이라는 특수한 원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이라는 것은 가칭(편의상 이름 한 것)이다. 공을 실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 중제(中諦)--- 공(空)이나 가(假)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진리. 공(空)과 가(假)는 둘이 아니라는 진리.
* 삼종법락 三種法樂 -- 삼종락은 천상에서 받는 천락(天樂), 선정으로 받는 선정락(禪定樂), 그리고 열반락(涅槃樂)인 제일락(第一樂)을 이른다. 고락을 다 떠나버린 무량의 청정무비한 안락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천락 또는 선정락 또는 열반락을 다 갖춘 경우 삼종락에 머문다고 한다.
* 삼종세간 三種世間 -- 세간은 세계의 의미로서, 삼종세계란 3가지 종류의 세계라는 의미인데,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말하는 삼종세간과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는 삼종세간 두 종류가 있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에서는
- 중생세간(衆生世間) - 중생세간은 중생 또는 유정(有情) 자체를 가리키고,
- 국토세간(國土世間) - 국토세간은 기세간(器世間)이라고도 하는데, 온갖 마음의 집착과 욕망 번뇌를 놓지 못하는 중생이 살고 있는 국토를 가리킨다.
- 오음세간(五陰世間) - 오온세간(五蘊世間)이라고도 하는데, 중생과 국토를 형성하는 요소로서의 오온, 즉 색 수 상 행 식(色 受 想 行 識)을 가리킨다.
< 화엄경(華嚴經) >에서는
- 기세간 - <대지도론>의 국토세간과 같다.
- 중생세간 - <대지도론>의 중생세간과 같다.
-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 마음의 눈을 떠 무루지(無漏智), 즉 일체의 번뇌 망상을 떠난 지혜에 따라 정각(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세계, 즉 삼계윤회를 초월한 출세간(出世間)을 가리킨다.
* 삼종정육 三種淨肉 -- 수행승(修行僧)은 3종류의 부정육(不淨肉)을 먹어서는 안 되지만, 그 이외의 고기는 먹어도 상관없다. 즉 비구들은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고의로 죽였다는 의심이 없는 그런 생선과 고기(3종 정육)는 먹어도 좋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 삼처전심 三處傳心 -- 석존께서 세 곳에서 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것을 말한다. 이것을 선종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이심전심(以心傳心)한 것이라 해 삼처전심이라 한다.
1) 영산회상 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었을 때 가섭만이 홀로 미소를 지은 것. 이를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 한다.
2)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分半坐)---다자탑 앞에서 부처님께서 자리를 반 나누어 가섭에게 같이 앉게 한 것.
3) 니련하반 시쌍부(尼蓮河畔示雙趺)---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심에 가섭이 늦게 참석해 슬피 울자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민 것.
* 삼학` 三學 산스크리트어 tisso sikkh? -- 부처님의 가르침을 집약하면 3학(三學)으로 귀결된다. 즉,
1) 계학(戒學, adhis?la-sikkh?) - 마음을 맑게 하는 계학은 입과 몸으로 짓는 악한 행위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품행을 바르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2) 정학(定學, sam?dhi-sikkh?) -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정학은 내면의 악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번뇌를 잠재우는 과정에 해당한다.
3) 혜학(慧學, adhipann?-sikkh?) - 마음을 밝게 하는 혜학은 계학과 정학을 바탕으로 사성제(四聖諦)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계 정 혜 삼학은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三位一體)이다. 계학이 없으면 정학이 이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른 불자의 생활 질서가 없이는 안정된 마음을 유지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학이 없이는 혜학이 이뤄지지 않는다. 안정된 마음이라야 바른 반야 지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 삼현` 三賢 → 삼현위(三賢位)
* 삼현삼요 三玄三要 -- 임제스님의 ‘삼현삼요(三玄三要)’라고 부르는 유명한 공안(公案)이다. 임제스님은 “한마디 말에는 반드시 삼현문이 갖춰져 있다”라고 했는데, 그 삼현이란 현중현(玄中玄)과 구중현(句中玄)과 체중현(體中玄)이다. 현중현은 말의 그 자체로서의 진실이다. 구중현은 말의 인식 위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체중현은 말의 실천 속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경우가 한마디 말에 다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의 것은 알 수 없다. 깨달아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玄)’은 현묘한, 진리, 진실이란 뜻이다.
* 삼현위` 三賢位 -- 현위(賢位)와 성위(聖位)로 나누는데 현위는 현자의 자리이다. 말하자면 진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닦아나가는 자리로서 방편위(方便位)라고도 한다.
소승의 아비달마 교학에서 현위는 다시 오정심관(五停心觀) ? 별상염주(別相念住) ? 총상염주(總相念住)의 3현(三賢)과 난법(煖法) ? 정법(頂法) ? 인법(忍法) ? 세제일법(世第一法)의 4선근으로 나누어지며, 이를 합해 7현위라 한다.
또는 보살의 수행위(修行位)인 초?2?3지를 삼현위, 4지를 입성지문(入聖之門), 5지부터 10지까지를 육성위(六聖位)라 말하는 삼현육성설(三賢六聖說)이 있다.
유식학에서는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등 삼십심을 내범부위(外凡夫位) 혹은 삼현위라고 하며, 삼현위는 지전보살(地前菩薩)의 단계이다. 그리고 보살 수행 5위 중 자량위(資糧位)와 가행위(加行位)를 닦으면 지전보살이라 하며, 현자라고 했다.
이와 같이 성자나 현자에 대해서도 경론에 따라 달리 표현해 확정하기는 어려우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증득함을 기준해서 성자라 표현했다.
* 상` 相 -- 불교에서 ‘상(相)’이란 말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중요한 용어의 하나이다. 그래서 불경을 접하다 보면 상이 없다, 상을 여의라, 상이 아니다, 등의 용어가 자주 나온다. 불교에 있어서 성(性)이란 불변의 본체를 말하는데 비해,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의 모습을 말한다. 그런 ‘상(相)’이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되기 전의 어원인 산스크리트어에 samjna, laksana, nimitta의 세 가지가 있어서 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이 같은 ‘상(相)’이라는 글자로는 번역돼서 경의 내용에 쓰임에 따라 그 뜻이 다소 다르게 해석된다.
- samjna(산냐) - 앎, 관념, 인식, 생각, 견해라는 뜻이다. 헌데 이러한 견해는 수백 가지 수만 가지가 있지만, <금강경>에서는 우리 중생들을 윤회에 들게 해서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4가지를 들어서 4상(四相)으로 설명하면서, 이것을 끊을 것을 강조한다. 그 4상은 중생이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상, 즉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을 이른다.
<금강경>에 만약 보살에게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라 했다. 하물며 보살도 그렇거든 수행이 안 된 중생이야 사상(四相)을 실재한다고 믿으므로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 nimita(니미따) - 형상, 모습의 뜻으로 금강경에 보살은 상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한다고 할 때의 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로부터 많은 경험, 기억의 총합에 의한 대상을 만났을 때 생겨난 인상(일종의 선입견, 전체적인 첫 인상)을 일컫는다.
- laksana(락샤나) - 특별한 모양, 특수한 형태의 뜻으로서 금강경에 여래의 신상(身像)으로 여래를 보았다 할 수 있겠는가 할 때의 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즉,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모습, 모양, 특징, 현상 등을 일컫는다.
* 상` 想, 파리어 sanna -- 오온(五蘊)인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의 하나. 상은 표상(表象)과 지각 작용으로 의식 속에 심상(心像)을 취하고 구성하는 것, 마음속에 어떤 것을 떠올려 개념 ? 관념을 형성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즉 이미 축적돼 있는 정보와 연관 지어 느낌이나 감각의 인상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지각하고 이름 짓는 표상작용을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상온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해 받아들였을 때 그것을 이리 저리 생각해서 언어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꽃이 있다면 눈(안근)이 그것(경계/경)을 보고 예쁘다고 느낀다면 수온(受蘊)이지만, 이것을 장미꽃이라면 장미꽃이라 인식하고, 국화꽃이라면 국화꽃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작용이 상(想)이다.
* 상가` sangha` -- 불법을 중심으로 화합된 무리(和合衆)라는 뜻으로 승려 집단을 의미한다. 이 화합된 무리의 구성원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이다. 그런데 이것이 언젠가 비구, 비구니만을 뜻하는 말로 변질됐다.
본래 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자들의 동업조합 혹은 종족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정체(共和政體)의 정치조직을 상가 또는 가나(gana)라 했다. 불교 교단에서도 초창기에는 이들 두 용어가 같이 사용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가라는 말이 점차 우세하게 됐고, 교단의 율(律)이 확립될 무렵에는 상가가 공식적인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승가((僧伽)는 바로 이 상가에 대한 음역(音譯)이다.
* 상가바드라` Samghabhadra, 衆賢 -- 부파불교시대의 인물. 불교 논서인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毗達磨順正理論)>과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 등을 저술했다. 이 방대한 두 저술 이름을 줄여 각기 <순정론(順正論)>, <현종론(顯宗論)>이라 한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의 부분에서는 구사론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부분에서는 바수반두(세친)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해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기본골격은 <구사론(俱舍論)>을 따르되 그 학설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반박하고 있다.
<순정리론>은 그 분량에 있어 구사론의 두 배 이상이 되며, <현종론>도 구사론보다 많은 분량으로 돼 있는데 전자에서는 특히 그 예리한 비판과 상세한 반론이 두드러지며 후자에서는 비판보다 오히려 정통설의 천명에 중점을 두고 있다.
* 상견` 常見, 팔리어 사싸따딧띠 / sassata-di??hi --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가 뿌리박고 있다. 그 하나가 나와 세상은 영원하다고 여기는 상견(常見)이다. 즉, 인간은 죽지만 자아(自我)는 없어지지 않으며, 오온(五蘊)은 과거나 미래에 항상 머물러 불변해 끊어지는 일이 없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단견(斷見)으로서 나와 세상은 허무 속으로 사라질 뿐이라는 허무론에 빠진 극단적인 견해이다. 초기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르침이 단견과 상견인데, 연기법은 단견에도 상견에도 떨어지지 않는 중도이다. → 단견(斷見)
* 상견` 相見 -- 통상적으로 ‘상견(相見)’이란 말에서 ‘상(相)’은 ‘서로’라는 뜻으로, 상견이란 만난다는 의미의 ‘뵈다’ 혹은 대면(對面)의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불교에서 상견의 뜻은 전혀 다르다. 불교에 있어서 성(性)이란 불변의 본체를 말하며,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의 모습을 말한다.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모습, 모양, 특징, 현상으로서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고정관념(觀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상견(相見), 또는 유견(有見)이라 한다.
육조단경에서 혜능선사는 상견(相見)을 삿된 도라 했고, 깨달아야 할 마음(본성: 여래)은 상(相)이 없고 비어서 공하며, 온 우주에 머물음 없이 상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 -- 대승불교의 교육이념이자 보살의 도(道)이다. 위로는 깨달음(菩提), 바른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근기가 낮은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 교화한다는 말이다. 선종에서의 견성성불 요익중생(見性成佛 饒益衆生)과 같은 말이다.
* 상기티수타` 상기티수단타` 상기따수단타` 중집경/衆集經,
팔리어 sa?g?ti Sutta 산스크리트 Sangiti suttanta =
sutta는 경(經)으로 번역하는데, 팔리어 sutta를 산스크리트어로 수탄타 수딴타 suttanta 라고 한다.
suttanta는 잘 조직되고 정리돼 주제의 견고한 핵심을 제공하는 설법을 의미한다.
중집경을 Sangiti suttanta(상기티수탄타)라고 한다.
니까야의 장아함에 속하는 경전의 하나. 부처님 당시 사리자(舍利弗)에 의해 결집된 경전의 이름이다.
부처님 생존시 자이나교의 지도자 마하비라(Mahavira)가 임종한 후 자이나교 교단에 분규가 일어나서 분열이 일어났다. 이를 교훈 삼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립해 혹시 후일에 일어날지도 모를 교단의 분열을 막고, 불설이 온전히 보존돼 후세에 전하도록 하고자 사리자(舍利弗, 팔리어 샤리푸타/S?riputta)의 주도로 불전 결집(結集)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경전은 부처님 재세 시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결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제일차 결집 이전에 이루어진 법전 결집이고, 이 결집이 석존의 감독 아래 이루어진 것처럼 경의 마지막엔 부처님의 인가로 마감하고 있다.
경전은 정법(正法)으로서 230여 가지의 불설을 법수(法數)로 재정비했다.
즉, 여러 가지 불교술어를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에 따라 열거한 경전으로 상당히 아비달마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이 경을 한역한 아함이 바로 장아함의 <중집경(衆集經)>이다. 즉 ‘중집(衆集)’은 Sa?g?ti에 대한 한역으로 합송을 위한 대중집회의 의미로 번역한다.
※ 중집경 결집의 계기가 된 것은 자이나교 지도자의 죽음과 분열인데, 그 죽은 자이나교 지도자를 마하위라(Mah?v?ra)가 아니라 니간타 나따뿟따(Niga??ha N?taputta=니건)라는 자료도 있다.
* 상당법어` 上堂法語 -- 법상에 올라가서 사자후를 한 법문.
* 상락아정` 常樂我淨 -- 열반에 갖추어져 있는 네 가지 성질과 특성.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常), 괴로움이 없고 평온한 낙(樂), 대아(大我) ? 진아(眞我)의 경지로서 집착을 떠나 자유자재해 걸림이 없는 아(我),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정(淨)을 이른다.
* 상법시대` 像法時代 -- 부처님 자신의 말씀을 제자나 신자들이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기를 정법시대(正法時代)라고 하고, 부처님 입멸 후, 즉 정법시대 다음에 오는 1000년 동안을 상법시대라 한다. 상법시대에 이어지는 1만년 동안을 말법시대(末法時代)라고 한다.
상법시대(像法時代)는 민중의 불법에 대한 소질은 정법시대보다 열악하지만 불법을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은 정법시대와 닮아 있다. 정법시대는 교(敎) 행(行) 증(證)이 모두 갖추어 있지만 상법(像法)시대는 교(敎)와 행(行)만 존재하는 시기이다. → 삼시관 (三時觀)
* 상분` 相分 -- 유식학에서 인식 대상.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을 말한다.→ 견분(見分)과 상분(相分)
* 상불경보살` 常不輕菩薩, 산스크리트어 사다파리부타, Sadaparibhuta -- 석가모니가 과거 인행(忍行)을 닦을 때의 이름이고, 상불경이란 ‘무시하거나 천시하지 않는 이’라는 뜻으로, 교만의 악덕을 철저히 버린 보살이다.
* 상사각` 相似覺 -- 완전한 깨달음이 아닌, 구경각(究竟覺)에 못 미친 비슷한 깨침을 말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체득하지 못한 깨달음은 유사한 깨달음이라고 해서 상사각(相似覺)이라고 한다.
* 상속` 相續 -- 불교에서의 ‘상속’의 개념은 사회 일반에서 죽은 이의 재산을 상속하는 그런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불교에서의 상속은 인(因)은 과(果)를 내고, 과는 또 인이 돼 다른 과(果)를 내어, 이렇게 인과가 차례로 계속해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연속된 흐름, 개체의 연속을 말하며, 흐름은 현생에만 한정되지 않고 과거의 존재에서 유래해 미래의 존재에서도 지속되는 것을 의미했다.
* 상수멸정` 想受滅定 -- 멸진정(滅盡定)과 같은 말. 상수멸정이란 상(想)과 수(受)의 소멸, 즉 지각(인식)과 느낌의 중지(소멸)을 의미하는데,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선정(禪定)을 말한다. 이는 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이다. 불교수행에서 나타나는 최상의 즐거움으로 모든 번뇌가 소멸되는,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수행상태이다. → 멸진정(滅盡定) .
* 상의상관성` 相依相關性, 산스크리트어 idam pratyaya ta -- 존재와 존재 사이에 인연화합에 의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되면 그 결과는 다시 그를 발생시킨 원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단순히 결과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원인이 되고 연이 돼 다른 존재에 관계하게 된다는 말이다. 상의상관성이란 말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나타내는 술어이다.
* 상입상즉` 相入相卽 -- 상즉상입(相卽相入)이라고도 하며, 모든 현상의 본질과 작용은 서로 융합하여 걸림이 없다는 뜻. 즉,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된 마음과 현상, 보는 주관도 없고 보이는 객관도 없는,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서로 차별하는 일이 없이 일체화되고 있으며, 상호개입과 상호연계 돼 있다는 존재양식을 일컫는 화엄사상이다. 이에 바탕 한 일(一)과 다(多)의 상입상즉(相入相卽)의 법계관(法界觀)이 마치 화엄의 인드라망의 구조와 같다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空)’으로 돌려 상대방과 일치시키고, 나로 하여금 상대방이 생겨나는 원인의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나를 상대방과 일치시키는 것이 상즉(相卽)이요, 나 자신으로 하여금 상대가 생겨나게 하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 속에 들어가듯 하는 것을 상입(相入)이라 한다. 즉, 상입(相入)이 이것과 저것이 서로 걸림 없이 융합하는 묘용의 측면이라면, 상즉(相卽)은 서로 자기를 폐(廢)해 다른 것과 같아지는 체(體)의 측면이다. 따라서 ‘상입상즉’은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희생해 이 사회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 상종` 相宗 - -현상의 변화 차별 대립 등에 대해 설한 가르침 ? 학파 ? 종파를 일컫는 말임. 불교에는 상종(相宗) 공종(空宗) 성종(性宗)이 있다. 상종은 ‘있다’라고 하는 설이다. 그래서 상종에선 극락이 있다. 그러나 공종은 ‘없다’라고 이야기 한다. 극락은 없다. 극락을 말하는 것은 보채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 성종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를 잘 구분해서 듣고 이해해야 한다.
상종(相宗)과 공종(空宗)은 초학자와 근기가 얕은 사람을 상대해 그들이 말에 따라서 집착함을 걱정해서 단지 명자(名字)를 표방해 그 잘못됨을 차단하는 것이다. 즉 다만 방편으로 있지도 않지만 이름으로만 상종이니 공중이니 해서 광범위한 이치를 사용해 그 참뜻을 끌어내려고 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종(性宗)은 오래 공부하고 근기가 높은 사람을 상대해 그들이 말꼬리를 잊고서 근본바탕을 알도록 하기 위해 한 마디로 그 자리를 바로 가리키는 것이다.
* 상좌` 上佐 -- 큰 스님의 제자, 시봉하는 제자. 사승(師僧)의 대를 이을 사람 가운데 가장 높은 승려.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습 기간 중의 예비 승려.
* 상좌부` 上座部, Theravada -- 불멸 100여년이 지나고 계율 문제로 근본분열이 일어났을 당시 전통을 고수하려던 장로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 대중부와 더불어 소승불교의 2대 부문이었다. 훗날 이 상좌부가 다시 10여 개의 부파로 갈라졌는데, 이 상좌부 부파만을 소승불교라 하는 사람도 있다.
* 상주불변` 常住不變 -- 상주불변해 생멸(生滅)이 없다는 말. 생멸이 없다는 말은 영생한다는 말이다. 열반은 무상하지가 않고, 생하고 멸하는 것이 없이 항시 존재한다. 따라서 상주불변은 열반을 뜻한다. 즉 상덕(常德)을 말하며,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의 상(常)을 말한다.
* 상즉상입` 相卽相入 -- 모든 현상의 본질과 작용은 서로 융합하여 걸림이 없다는 뜻.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서로 끝없이 연관돼 있는 연기관계를 통해서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 전체인 상태에서 원융무애함을 이루고 있다는 말.-> 상입상즉 相入相卽
* 상카라` sankhara, 行 -- 경전에서 행(行)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 ‘행(行)’ .
* 상히타` Samhita --인도 브라만교의 제사의식 때 부르는 경전. 인도어로 상히타는 경전의 집성(集成)을 뜻하는 말인데, 본집(本集)으로 한역한다. 인도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를 구성하는 4부문 중에서 제사의식 때 부르는 찬가(讚歌) 가영(歌詠) 제문(祭文) 주문(呪文)을 집대성한 문헌이다.
* 색` 色 산스크리트어 rupa -- 물질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대상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그러나 색(色)은 자체로서 물질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아마도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제일 앞에 있는 까닭에 대표성이 부여된 것 같다. 좁은 의미의 색은 안근(眼根)의 대상이 되는 것인데 색(色)과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만을 말한다.
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색’은 공(空)에 반대되는 것, 다시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현상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색은 넓은 의미에서는 물질적 존재를 총칭하는데, 변화를 하면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을 특질로 한다.
그리고 오온(五蘊)에서 색은 물질적인 형태로서 육체를 의미하는데, 인간의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대(四大)로 이루어지고, 감각기관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등 다섯 감각기관[오근(5根)]으로 이루어진다.
초기의 불교에서는 색에 어느 정도의 실재성을 인정했지만, 대승에서는 공(空)이라 불리고, 혹은 식(識)의 전변(轉變)이라 불리며, 그 자존성(自存性)이 부정됐다.
* 색계` 色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의 하나. 욕계의 위에 있는 세계로서 천인(天人)이 거주하는 곳을 말한다. 음욕(淫欲) 식욕(食欲) 따위의 탐욕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 형상에 얽매여 있는 세계.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色)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淸淨)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 거주하는 중생들은 음욕을 떠나 더럽고 거친 색법에는 집착하지 않으나 청정하고 미세한 색법에 묶여 있기 때문에 욕계 및 무색계와 구별해 색계라 한다. 이 색계에는 선정의 깊이에 따라 열여덟 가지의 하늘나라가 전개된다. 색계 18천은 아래와 같다.
초선천(初禪天)의 삼천(三天)인 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 대범천(大梵天),
이선천(二禪天)의 삼천(三天)인 소광천(少光天) 무량광천(無量光天) 광음천(光音天),
삼선천(三禪天)의 삼천(三天)인 소정천(少淨天) 무량정천(無量淨天) 편정천(?淨天),
사선천(四禪天)의 구천(九天)인 복생천(福生天) 복애천(福愛天) 광과천(廣果天) ? 무상천(無想天) ?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견천(善見天) 선현천(善現天) 색구경천(色究竟天). → 삼계(三界)
* 색계선정` 色界禪定 -- 삼매수행은 여덟 단계로 나누어져 있고, 차원이 높아질수록 번뇌가 정화된다. 이를 팔선정(八禪定)이라고 하는데, 초선 ? 이선 ? 삼선 ? 사선 ? 공무변처선 ? 식무변처선 ? 무소유처선 ? 비상비비상처선으로 단계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초선 ? 이선 ? 삼선 ? 사선은 아직 몸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 선정이므로 색계선정(色界禪定)이라 하고, 공무변처선 ? 식무변처선 ? 무소유처선 ? 비상비비상처선은 물질의 속박은 벗어났으나 정신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 선정이므로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이라고 한다.
색계4선정은 8정도(八正道) 중 정정(正定)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의의를 지니는데, 곧 석가모니 생존 시 사문(沙門)이라 불린 자유사상가들이 실천하고 있던 선정이 그 원형이다. 아래에 4선정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1)초선 初禪 ? 악의소멸
초선은 모든 감각적인 욕망을 떨어버리고, 모든 좋지 않은 법들을 떨쳐버리고, (마음집중의 대상을)향하는 생각과 머무는 생각이 있고, (감각적인 욕망 등에서)멀리 떠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다. 즉, 욕계의 온갖 욕구와 모든 탐욕을 버리고 떠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선정이다.
헌데 행이나 형태나 모양에서 미워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생각은 사라졌지만 너무 성급하거나 지나치게 꼼꼼한 분별과 사려, 그리고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覺)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觀)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2) 제2선(二禪) - 선정의 기쁨
2선에서는 향하는 생각과 머무는 생각이 가라앉고 마음의 정결함과 전일성이 있는, 머무는 생각이 없고 향하는 생각도 없는, 마음집중[sam?dhi]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감이 있다.
헌데 너무 성급하거나 지나치게 꼼꼼한 사고들을 극복해 -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이 소멸되고, 안으로부터 깨끗해진 마음이 되고, 선정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긴다. 즉, 제2선은 분별과 사려가 가라앉고 마음이 통일되고 청정해 기쁨과 안락을 느끼는 선정이다.
3) 제3선 - 무소유
3선은 희열을 버리고,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을 지니고, 몸으로 행복을 경험하면서 성자들이 평온함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행복감에 머문다.
탐욕과 기쁨이 사라진 곳에 머무르면, 바른 생각과 지혜로 몸이 즐거워 성인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경지에 스스로 머물게 된다. 즉, 제3선은 기쁨과 안락도 소멸돼 마음이 평정하게 되고 정념(正念)과 정지(正知)가 작용해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선정이다.
4) 제4선(四禪) - 무심
색계 선정의 마지막 단계인 제4선은 행복을 떠나고 괴로움도 떠나고,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애버린, 불고불락(不苦不樂)인, 그리고 평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단계이다.
괴로움도 사라지고, 즐거움도 쉬어져 본질적인 근심이나 기쁨이 사라지면, 불고불락(不苦不樂)의 무소유가 돼 깨끗한 참마음이 된다. 즉, 제4선은 몸의 안락도 없게 되고 고락을 초월해 마음의 평정에 의해 염(念)이 청정하게 된 상태이며, 이 단계에 이르러 마음의 안정과 지(知)의 활동이 동등하게 돼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색계선정에 대하서 원하는 시간만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졌을 때, 수행자는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에 들 수 있다.
* 색구경천` 色究竟天 -- 색계 십팔천(色界十八天)의 열여덟째인, 맨 위에 있는 하늘. 사선 구천(四禪九天)의 아홉째인 맨 위에 있는 하늘.
* 생` 生 Jati -- 12연기에 있어서 유(有)에 연해 생이 발생하는데, 생은 문자 그대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유(有), 즉 업(業)은 생을 있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유에 의해서 생이 있다.”고 한다. 불교의 입장은 생(生)조차도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노(老) ? 병(病) ? 사(死)의 고통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생각` 生覺 --현재의 생각 → 사(思) - 정사(正思)
미래의 생각→ 상(想) - 예상(豫想)
시공을 초월한 생각 → 신념(信念)
* 생멸문` 生滅門 -- 진여문(眞如門)의 반대말. 중생이 태어나고 죽게 되는 문. 중생 세계로 나아가는 문. 원효대사는 마음이 움직여 타락돼가는 과정을 생멸문이라고 표현했다. 진여문은 불변하며 모든 상대적 모습을 떠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 것이고, 생멸문은 본래의 고요함을 잃고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 것이다.
*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 생사 열반이 항상 함께 한다는 말. 그러므로 생사의 끊임없는 변화 곧 무상을 깨달아 사는 것이야말로 지혜며 모든 불만족을 벗어나는 길이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나오는 말이다.
* 샤리푸트라 산스크리트어 sariputra 팔리어 sariputta, 사리자 -- 부처님 10대 제자 중 지혜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사리자(舍利子) 혹은 사리불(舍利弗), 추자(?子). 산스크리트어 이름 샤리푸트라(S?riputra)의 ‘샤리(Sari)’는 예쁜 눈을 가진 새(鳥)의 이름인데, 사리자의 어머니 이름이다. ‘푸트라(putra)’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사리자는 샤리의 아들이란 뜻이 된다. → 사리불(舍利불弗)
* 샤카무니` 釋迦牟尼 Sakyamuni Buddha, BC 556?~480?) -> 석가모니(S?kyamuni)
* 샴발라` Shambhala -- 티베트의 오지에 있었다고 하는 불교도가 상상하는 가공의 유토피아. ‘숨겨진 왕국’으로 알려진 샴발라는 티베트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여겨져 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완벽에 이른 사람과 완벽의 상태로 가고 있는 존재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 앞서있는 존재들이라고 한다.
* 서건동진 급아해동 西乾東震 及我海東 -- 서건(西乾)은 인도, 동진(東震)은 중국, 해동(海東)은 우리나라를 뜻함. 사시 예불(巳時禮佛)의 예불문에 ‘지심정례공양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至心頂禮供養 西乾東震 及我海東 歷代傳燈 諸大祖師 天下宗師)’란 말이 나온다. 풀이하면, ‘인도와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의 뒤를 이어 진리의 등불을 전해오신 조사와 종사’ 그런 내용이다.
* 서역불교 西域佛敎 -- 서역이란 중앙아시아 일대를 말한다.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과 이란 일부를 포함하는 지대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서역으로 먼저 전파됐다. 따라서 인도불교가 곧 바로 중국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가까운 서역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들어간 것이다. 즉, 수 ? 당 이전의 초기 중국 불교는 그 대부분이 서역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 서방정토` 西方淨土 -- 불교에서 멀리 서쪽에 있다고 말하는 하나의 이상향(理想鄕)이다. 즉,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정토를 말하며, 극락정토라고도 한다. <아미타경>에 “여기서 서쪽으로 10만 억 국토를 지나서 하나의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이라고 한다”고 한 데에서 비롯된 말로서, 곧 극락세계를 뜻한다. 이곳을 또 동거토(同居土)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는 부처와 중생이 동거한다는 뜻이다.
* 서산대사 휴정` 西山大師休靜 1520/중종 15)~1604/선조 37 --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이 휴정이다.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출가 한 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에 합격했으며,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명을 쓰고 투옥됐다가 선조의 직접 신문에 의해 무죄가 입증돼 석방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돼 승군을 지휘했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
그는 선종 가운데서도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을 가장 중시했으며, 화두로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강조했고,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간경 참선 염불 삼문수업(看經參禪念佛三門修業)을 주창했다.
그의 제자는 1,000여 명이나 달했는데, 그중에서도 사명당 유정(四溟堂惟政)과 편양 언기(鞭羊彦機) 등이 유명하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허당집(淸虛堂集)〉을 비롯해 <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결(禪敎訣)〉등 많은 저서가 있다.
*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 西域中華海東佛祖源流 -- 조선 영조 때의 승려 채영(采永)이 1762∼1764년(영조 38∼40)에 편찬 간행한 책. 내용은 인도와 중국 및 한국의 3국에 걸친 불조(佛祖)의 법통(法統)에 대한 원류를 계통적으로 정리했다. 저자는 오랫동안 문제가 돼 오던 한국불교의 법맥에 대한 이설을 정리해 <태고법통설(太古法統說)>로 법통의 계보를 정리했다.
* 서원` 誓願 --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려고 바라고 다짐하는 것을 서원이라 한다. 그러니 서원은 일종의 결심이다. 나는 어떻게 하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다. 서원이 욕망과 다른 점은 욕망이 이기적인데 비해 서원은 자신을 포함한 전체의 행복과 평화를 지향한다. 그래서 불보살들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커다란 원을 세운다. 즉,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일으키는 원이 곧 서원이다. 따라서 중생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원하는 자리(自利)의 원과 대비된다. 불교에서는 보살이 걸어가야 할 네 가지 큰 서원을 내세우는데, 그것을 사홍서원(四弘誓願)이라 한다. → 사홍서원(四弘誓願)
* 서장` 書狀 -- 중국 남송(南宋) 시대 대혜 종고(大慧宗?, 1089~1163)스님이 그의 문하 거사와 유학자들의 질문에 답한 선(禪)의 요지를 설명한 편지 글을 모은 책. 간화선의 교과서로 불리며, <대혜서(大慧書)>라고도 불린다.
* 석가모니` Sakyamuni 釋迦牟尼 -- 이름은 Siddhartha(悉達多), 성은 Goutama(喬答摩, 瞿量). 아버지 숫도다나왕(淨飯王),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 배우자 야쇼다라(耶輪院羅), 아들 라후라(羅?羅), 이모 마하프라 자파디(Mahaprajapati, 摩?波?波提/大愛道).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그래서 석존(釋尊)이라 번역한다. 불교의 창시자. 오늘날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 가까이에 카비라밧토(迦毘羅城/가비라성)라고 하는 소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석가족 출신으로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이 출산을 위해 친가에 가는 도중, 룸비니(藍毘尼) 동산에서 쉴 때 출생했는데, 생후 7일째에 모친이 죽고, 이모 마하프라 자파디(摩?波?波提)에 의해 양육됐다. 29세 때 출가해 6년간의 고행을 했으나, 그 헛됨을 알고, 같이 수행하던 5인의 수행자와도 헤어져,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35세에 성도(成道)했다. 이후 45년간 인도 각지를 순력하면서 설법하고, 쿠나시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80세에 열반에 드셨다.
* 석옥청공` 石屋淸珙, 1272~1341 -- 중국 원나라시대의 승려. 1272년 강소성 상숙(常琡)에서 태어났다. 고봉 원묘(高峰原妙)의 문하에서 공부한 다음 급암 종신(及菴宗信)의 법을 이었다. 이후 여러 곳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352년 81세에 입적했다. 그의 문하에 우리나라 고려 말의 태고 보우(太古普愚) 등이 있다.
* 선` 禪 zen` Seon` 산스크리트어 jhana, 팔리어 dhyana -- 선(禪) 의 음을 딴 선나(禪那) 혹은 선사(禪思)의 줄인 말이다. ‘깊이 생각한다’, ‘고요히 관찰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붓다가 깨달은 진리를 깊이 생각하고 관찰해 체득한다는 것이 선의 일차적인 의미이다. 선정(禪定)이라고도 하고, 지관(止觀)과도 같은 의미이다.
흔히 참선(參禪)이라고 하는데, 알기 쉽게 말하면 명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불교는 명상이라는 용어를 사용치 않고 선이라 한다. 보통 앉아서 하는 좌선이 일반적이고, 동정일여(動靜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에 들어감을 중시한다.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기 위해 앉아 있는 수행이고,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앉아 있는 수행이며,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앉아서 거기에 몰입함이다. 이와 같이 화두 의정(話頭疑情)에 몰입하는 점에서 명상과 다르고, 자세와 호흡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점에서 건강 위주의 호흡수련, 요가수련과 구별된다.
참선(參禪)은 화두를 일념으로 참구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중국에 선불교를 전한 달마조사(達摩祖師)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염불기도, 간경, 보살행 등의 다른 수행법보다 힘들지만 더 빠르고 깊이 들어가며 지혜와 직관력이 돈발(頓發 : 문득 떠오름)된다고 해서 수행법의 으뜸으로 친다.
선(禪)과 교(敎)의 근원은 세존이시고, 선과 교를 나누어 전한 이들은 가섭(迦葉)존자와 아난(阿難, Ananda)존자라고 한다. 말을 지움으로써 말이 없는데 이르는 것이 선이고, 말을 일으킴으로써 말이 없는데 이르는 것이 교이다. 그래서 마음은 선을 이루고 말씀은 교법을 이룬다. 법은 한 맛이지만, 그 맛을 보는 견해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크다.
* 선가귀감` 禪家龜鑑 -- 조선 명종 19년(1564)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선종의 요긴한 지침을 모아서 엮은 책. 당시의 불교계가 선종과 교종이 서로 혼합돼 있어, 불교인들이 수행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선문(禪門)은 견성법(見性法)을 전하고, 교문(敎門)은 일심법(一心法)을 전하는 것임을 밝혀,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올바른 길을 밝히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1579년(선조 12) 그의 제자 유정(惟政)이 발문을 쓰고 이를 간행했다.
* 선도` 善導, 613-681 -- 당나라시대의 승려. <관무량수경사첩소(觀無量壽經四帖疏)>를 지어 정토의 긴요한 문은 정선문(定善門)과 산선문(散善門)이 있는데, 정선문은 생각을 쉬고 마음을 모아 염불하는 것이요, 산선문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산란한 마음으로 악을 버리고 선을 닦으며 염불하는 것이라 했다.
* 선무외` 善無畏: 637~735 -- 산스크리트어 수바카라 심하(Subhakara simha, 淨獅子/깨끗한 사자). 동인도 오릿사국의 왕족출신으로 나란다사에서 밀교를 배우고 80세 때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716년 당나라 장안에 도착해 밀교를 전하고, <대일경(大日經)> 등을 역출한 밀교계 승려였다.
* 선문답` 禪問答 -- 간화선(看話禪)이란 낱말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화(話)를 간(看-살피다)하는 선(禪)’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화(話)란 진리에 관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나 이야기를 의미한다. 일상적인 세간적인 의미의 대화가 아니라, 출세간적인 진리에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이런 대화를 우리는 선문답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답의 전통은 불교의 초기경전에서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명의 발상지, 이를테면 희랍의 소피스트들, 인도의 베다 혹은 우파니샤드 전통, 중국의 제백가(諸百家)들의 문헌에서도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들이다.
* 선문정로` 禪門正路 -- 성철(性澈)스님이 1970년대 후반부터 해인총림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설법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각종 경론과 선서 60여 권을 참조했으며, 견성이 바로 성불임을 강조한 참선의 이론적인 지침서이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스님의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을 비판하고 일관되게 돈오돈수(頓悟頓修說)를 주장한 성철스님의 역작.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된 내용으로 해 수행자들에게 화두를 참구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내용이 어려워 1993년 <선문정로평석>이라는 해설서가 출간됐다.
* 선문촬요` 禪門撮要 -- 조선 말기의 선승 경허(鏡虛)선사가 편찬한 우리나라 불교 선학(禪學)의 지침서. 상권은 1907년에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발간해 동래 범어사(梵魚寺)에 옮겨 보관했고, 하권은 1908년 범어사에서 간행했다.
* 선서` 善逝 --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훌륭하게 완성한 자를 일컫는 말.
* 선요` 禪要 --중국 원나라시대의 고봉(高峯, 1238~1295)선사가 선법(禪法)의 요의(要議)에 대해 20여 년간 설법했던 것을 적은 책. 고봉의 시자 지정(持正)이 기록하고 거사 홍교조(洪喬祖)가 엮어서 펴냈다.
* 선재동자` 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구도자의 이름. 53선지식을 차례로 만난 뒤, 맨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서 대행원(大行願) 10가지[십대원(十大願)]을 듣는다. 그 공덕으로 아미타불의 국토에 왕생해 입법계(入法界)의 큰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선재동자의 구법행로는 대승보살의 구도행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선정` 禪定 → 선(禪)과 같은 말. → 선 (禪)
* 선정인` 禪定印 --부처의 수많은 수인 중의 한 가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해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해 겹쳐 놓되 두 엄지손가락을 마주 대는 형식을 선정인이라 한다. 손의 위치가 바뀌는 수도 있으나 오른손이 위로 가는 것이 좋다. 이러한 손의 형식은 결가부좌를 할 때나 좌선할 때 취하기도 한다.
* 선종` 禪宗 -- 참선으로 자신의 본성을 구명해 깨달음의 묘경(妙境)을 터득하고, 부처의 깨달음을 교설(敎說) 외에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중생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종지로 하는 종파. 6세기 초 중국 양나라 때 인도의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중국에 전하고, 우리나라에는 신라 중엽에 전해져 9산선문이 성립됐다.
교의적으로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내세우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한다. 즉 문자에 의하지 않은[언어도단(言語道斷)] 순수체험의 직접 전승을 중시하고, 또 자기의 본성이 부처임을 직접 경험해 그대로 성불하고자 한다. 일체의 분별을 털어버리고, 다만 직관에 의해 해탈의 경지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종은 특별한 경이나 논 등을 근본 교리로 해서 성립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남종은 금강경, 북종은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갖게 됐다. 그리고 선종에서는 자기들의 법통을 이어주는 역대 조사(祖師)들을 매우 숭상하며, 선의 경지를 즐겨 수묵화로 표현한다.
인도인들은 현실보다 내세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성격을 지녔는데, 비해 중국인들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현세에서 깨달아 성불하고자 하는 현실적이요 실천적인 성격을 띤 가장 중국적인 불교가 선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종 때 모든 종파의 통폐합에서 남은 두 종파 중의 하나이다. 1424년(세종 6) 7개 종파를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두 종파로 통폐합했다.
* 선지식` 善知識 -- 수행이 깊은 스님. 선종에서 수행자들의 스승을 이르는 말. 본래 박학다식하면서도 덕이 높은 현자를 이르는 말이다. 불타의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진리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 불교적 교사(敎師). 그러나 불교에서 ‘지식(知識)’은 ‘벗, 아는 사람’이라는 말로 쓰이므로 선지식의 원뜻은 ‘참된 벗’으로서, 산스크리트 칼리아니미트라(kalyamitra)에서 유래했으며, 불교에 있어서의 교사는 인생의 반려자인 동시에 인도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 선지식마` 善知識魔 --자기가 가진 교법에 집착해 남에게 말해 주지 않는 좋지 않은 마음. 자기가 깨달은 교법에 집착심(執着心)을 갖고, 남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은 마군(魔軍).
* 선호념` 善護念 -- 여기서 ‘선善’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 또는 의지를 뜻하고, ‘염(念)’이란, 불교의 큰 깨달음을 이루는 사념처(四念處) 수행에 있는 ‘염심(念心)’과 팔정도의 ‘정념(正念)’에서 ‘염(念)’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지금 이 순간의 생각 또는 마음, 혹은 관(觀)하는 주체의 지혜를 말한다.
이 몸을 염하면 무상함을 깨닫고, 느낌(감정)과 마음을 염하면 생각과 느낌들은 무작위로 생멸하는 것이어서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법을 염하면 온 물질과 관념들이 모두 성주괴공(成住壞空)이요 모두 생멸함을 알게 된다.
쉽게 말하면, 시시각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자신의 마음, 자기 생각을 가만히 살피는 것이 선호념이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예는,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마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선호념이다. 좌선할 때도 자신을 살피고 쓸 때 없이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선호념해야 한다.
* 설두중현` 雪竇 重顯, 980~1052 --중국 송대의 선승으로 금나라의 외침을 받아 북송과 남송으로 갈라지던 격동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출가 후 운문종(雲門宗)의 3대조인 지문 광조(智門 光祚) 문하서 수행했다.
어느 날 중현(重顯)은 스승에게 “한 생각도 내지 않을 때의 허물은 어떤 것입니까.” 라고 묻자, 스승은 제자를 불러 앉히고는 다짜고짜 손에 들고 있던 불자(拂子)로 얼굴을 후려쳤고, 그런데도 제자가 다시 같은 질문을 하려 하자, 스승이 다시 불자를 내리쳤는데, 바로 그 순간 중현은 깨달음을 얻게 됐다는 일화가 전한다.
운문종(雲門宗)의 4대(代) 법손으로 운문종의 가풍을 계승한 중현은 훗날 스승의 간청에 못 이겨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의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에 머물며 30여 년을 한결같이 독특한 선풍으로 제자들을 교화하며 종풍을 크게 진작시켰는데, 70여 제자를 길러냈기에 ‘운문의 중흥조’라 불린다.
중현의 저술이 여럿 있으나 그 가운데 백미(白眉)는 부처 당시부터 11세기까지 살았던 선사들의 이야기를 간결한 시어로 표현한 어록집 <송고백칙(頌古百則)>이다.
* 설일체유부` 說一切有部 --산스크리트어 사르바스티바딘(sarv?stiv?din)이라고 하며, 줄여서 유부(有部)라 하기도 한다. 부파불교 시대 소승불교의 상좌부(上座部)에서 한 분파를 이루었다. 부파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부파이고, 부파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설일체유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일체법(一切法 : 모든 법)을 유(有)라고 설명하는 부(部)라는 뜻으로 모든 것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부파이다. 성립은 불멸 후 3백년 경(기원전 2세기 전반)이다. 그 한참 후에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가 나타나 <발지론(發智論)>을 저술해서 설일체유부의 체계를 대성했다고 한다. 뒤에 독자부(犢子部) 등 여러 파가 여기에서 나왔다.
* 섭대승론` 攝大乘論 -- “대승(大乘)을 포섭한 논서”라는 뜻으로 아상가(阿僧伽/Asanga, 무착/無着, 310∼390)가 유식(唯識)의 입장에서 대승불교를 통일하기 위해 저술한 논서. 진제(眞諦)에 의해 한역됐다. 무착의 동생 세친(世親)이 섭대승론을 주석한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석론(釋論)>을 지었다.
* 섭론종` 攝論宗 -- 중국 불교 13종의 하나. 무착(無着)의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석론(釋論)>에 의거해서 일어난 종파인데, 진제(眞諦, 499-569)가 개조이다.
진제는 원명을 파라마르타(Paramartha)라고 하며, 서북 인도의 브라만 출신 승려였는데 548년 다수의 불전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서 건강(建康)에 상륙해 양나라 말기 전란의 와중에서 각지로 전전하면서 <섭대승론>과 <섭대승론석>을 번역해 인도 유식파(唯識派)의 무착 ? 세친의 학설을 체계화해 소개했다.
그러나 당나라에 와서 현장(玄?)에 의해 <섭대승론>과 그 주석서가 새롭게 번역돼 법상종(法相宗)이 일어나면서 섭론종은 점차 쇠퇴했다. 한국에는 신라시대 원효(元曉)대사가 <세친석론약기>를 지었다.
→ 진제(眞諦)
* 섭리` 攝理, Providence -- 세계와 인간의 운명은 신이 예정했던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신앙(信仰). 신 또는 신적존재의 피조물에 대한 계획ㆍ의도를 말하는 것으로 창조주 ? 조물주를 신봉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허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설에는 위배된다. 섭리를 옹호한 논작(論作)으로 유명한 것은 라이프니츠의 <변신론(辯神論)>임.
* 섭수` 攝受 -- 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받아들임, 혹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여서 보살핀다는 뜻이다. 절복(折伏)이 상대를 비난해서 굴복시키는 일인데 비해, 이는 마음을 너그럽게 해 포용하는 태도이다. 섭수한다는 것이야말로 연기를 이해하는 모든 수행자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 섭화` 攝化 -- 중생을 불법으로 교화하는 일. 중생을 거두고 보호해 가르쳐 인도함.
* 성` 性 nature` -- 불교에서 성이란 남녀 구분의 성이 아니라 불변의 본체를 말한다. 이에 대해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의 모습을 말한다. → 상(相)
* 성도문` 聖道門 과 정토문` 淨土門 -- AD 2~3세기경의 용수(龍樹), 4세기경의 세친(世親) 등의 글에서 불법을 일반 세상의 도(道)에 준해 난(難) ? 이(易)의 둘로 나눈 바 있어 이에 힌트를 얻어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담란(曇鸞, 476~542)은 <정토론주(淨土論注)>를 써서 난행도와 이행도로 나누었고, 수 ? 당시대의 도작(道綽, 562~645)은 그의 저서 <안락집(安樂集)>에서 불법을 다시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의 둘로 나누었다. 난행도는 성도문을 말하며 이행도는 정토문을 말하는 것이다.
성도문(聖道門)이란 어렵고 힘들지만 현세에서 수행해 증오(證俉)하려는 것이고, 정토문(淨土門)은 쉽게 아미타불을 믿음으로써 극락세계에 태어나 거기에서 성불할 것을 가르치는 교설(敎說)
→ 난행도(難行道), 이행도(易行道)
* 성문승` 聲聞乘 --‘성문승,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의 하나. ‘성문승(聲聞乘)’에서 ‘성문’이란 석가모니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결국 불제자들을 이르는 말인데, 후에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는 석가의 가르침을 그대로 충실히 실천하는 출가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그리고 ‘승(乘)’이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한다. 그러니 ‘성문승’이란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충실히 따르고 가르침을 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성문승의 목표가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성문승을 아라한이라고도 한다.
* 성문4과` 성문사과` 聲聞四果 -- 초기불교에 있어서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성문(聲聞)의 수행단계를 네 단계로 분류하고 이를 성문4과라 했다. 즉 깨달음의 4단계인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을 말한다.
?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panna의 음사. 예류(預流) ? 입류(入流)라고도 함. ? 사다함(斯陀含) - 산스크리트어 Sakadagamin의 음사. 일래(一來)라고도 함.
- 아나함(阿那含) - 산스크리트어 Anagami의 음사. 불환(不還)이라고도 함.
-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 arhat의 음사. 나한(羅漢), 응공(應供), 무학(無學), 응진(應眞)이라고도 함. → 자세한 것은 사향사과(四向四果) .
* 성성적적` 惺惺寂寂 -- 참선수행을 할 때,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寂寂)에서 멍함(昏沈/혼침)에 빠지지 말고(편안함에 머무르지 않음), 항상 또렷하게 깨어 있고, 산란함(掉擧/도거)에도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참선하는데 두 가지 장애가 있으니,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다. 이를 혼신이마(昏散二魔)라고 한다. 참선을 위해 지(止/定, 사마타수행)와 관(觀/慧, 위빠사나수행)을 함께 닦으라는 것에서 성성(惺惺)은 혜(慧=觀照/관조, 사방으로 비추어 보는 것)에 해당되며, 적적(寂寂)은 지(止=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함)에 해당 된다. 의미적으로 본다면, ‘진공(眞空)은 적적이며, 묘유(妙有)는 성성’일 것이다.
다른 말로는, 혼침을 무기(無記)라 하는데, 너무 적묵(寂默)에 빠지는 것이고, 산란이란 마음이 들떠 번뇌망상이 들끓는 것이다. 이러한 혼침을 성성(惺惺), 즉 깨어있는 것으로 다스리고, 산란한 마음은 적적(寂寂), 즉 고요함으로 다스려, 성성한 가운데 적적하고, 적적한 가운데 성성해야 화두일념에 들어 공부가 순일(純一), 순숙(純熟)해질 수 있다.
* 성유식론` 成唯識論 --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해설한 논서이다. 인도의 유식학파(唯識學派)가 발전해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의 유식사상을 정리한 유식학의 기본서이다. 인도의 학승 호법(護法, 530~600)이 세친(世親, AD 320~400)이 저술한 <유식삼십송>을 기반으로 이론과 실천 전반에 걸쳐 주석을 간결하게 정리한 논서로서 아뢰야식(alaya-vijnana, 阿賴耶識, 혹은 第八識)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했다. 659년에 중국 당나라의 현장(玄奬)이 호법의 논서에다가 다른 유식 논사(論師)들의 학설을 취사선택 보충해 번역 편집했다. 중국과 일본의 법상종(法相宗)은 이 논서에 의거해 세워진 종파이다.
* 성주괴공` 成住壞空 -- 불교의 심오한 우주관(질서). “성-생성되다, 주-머무르다, 괴-파괴되다, 공-없어지다”라는 뜻으로, 사람도 태어나고, 나이를 먹고, 늙어 퇴화해, 죽는 것처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이러한 질서로 움직인다는 이론.
* 성중` 聖衆 -- 신중(神衆), 중성(衆聖)과 같은 말로서 성자의 무리, 즉 부처와 성문, 연각, 보살 따위를 이른다. → 신중단(神衆壇) .
* 성철` 性澈 1912년~1993 --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澈). 경남 산청 출신. 1930년 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경 지리산의 대원사(大願寺)에서 거사로서 수행하다가 출가했다.
출가한 후엔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는 등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했으며, 돈오사상(頓悟思想)과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설파했다.
1967년에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면서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설했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 사상인 중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7대 종정(宗正)에 취임했다. 승가의 수행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했다.
* 세간` 世間 --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세계 혹은 세간이라 한다. 세(世)는 공간을 말하며, 간(間)은 시간을 말한다.
* 세간해` 世間解 --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일체 세간의 온갖 일을 완전히 안 분이라는 뜻.
* 세우(世友, 산스크리트어 바수미트라(Vasumitra)--- 서기 2세기경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논사. 불멸 후 6백 년경(AD 2세기경) 인도를 통일한 쿠샨왕조(대월지국/大月氏國) 카니슈카(Kaniska)왕의 후원으로 지금의 인도 캐시미르 지방에서 네 번째 경전 편찬회의가 열렸다. 이때 이 결집을 주관한 사람이 세우존자(世友尊者)와 협존자(脇尊者, 파르슈바, Parsva)였다.
세우의 저서로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이 전하는데, 이 논서는 그 이름처럼 서로 다른 여러 부파의 종지(宗旨)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설일체유부를 중심으로 해 부파의 분열 역사와 각 파의 교리 내용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 세존` 世尊, 세존世尊 Bhagavat --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아 중생을 바르게 인도하므로 세상의 존경을 받을만한 분이라는 뜻. 범어 ‘바가바(婆伽婆, Bhagavat)’를 뜻에 맞게 번역한 단어로 부처님에 대한 여러 호칭 가운데 하나이다.
* 세친` 世親 Vasubandhu 바수반두` 320?~400? -- 천친(天親)이라 하기도 하고 바수반두(婆藪槃豆)라고 음사한다. 생물 연대는 4세기설과 5세기설이 있다. 그의 형 무착(無着)의 유식학(唯識學)을 계승해 이를 완성시켰으며, 여러 대승경전을 연구해 대승의 개척자로 불린다. 유가행파(瑜伽行派)를 대승불교의 주류를 이루었고, 부파불교시대의 논서인 <구사론(俱舍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의 저자이다.
처음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출가해 소승교리를 연구하고 대승불교를 비판하고 있었다. 에 형 무착은 이런 세친(世親)의 행위를 염려하고 자신의 숙소로 오라고해서 <십지경(十地經)>을 보여주고 유식사상을 설명해 대승불교에 귀의케 했다.
* 셔먼` Robert A Sherman 교수 -- 1941년 뉴욕 출생,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마쳤다. 1964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비구승이 됐으나 이후 환속해서, 엠하스트 대학, 하버드 대학 방문교수를 역임했으며, 1987년 설립한 뉴욕 티베트 하우스의 대표이고, 현재 콜럼비아 대학교 인도-티베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티베트 불교 옹호자로 유명한데, 셔먼 교수는 종교간의 갈등 해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로가 상대를 개종시키려 하면 안 된다. 그럼 종교전쟁을 낳게 된다. 이라크전쟁, 알카에다 등도 이런 부작용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이슬람교도는 더 나은 이슬람교도가 되고, 기독교인은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고, 불교인은 더 나은 불교인이 되는 거다.”라고 했다.
* 소나경` Sona Sutta -- 한역 <잡아함경>에 있는 <소나경>은 중도(中道)를 거문고 줄의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거문고 줄은 지나치게 팽팽해도, 그와 반대로 지나치게 느슨해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다. 거문고가 가장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 줄이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도 극단적인 고행이나 지나친 쾌락적인 행을 피하고 중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8정도(八正道)이다.
* 소림사` 少林寺 -- 중국 하남성(河南省) 숭산(崇山)에 있는 사찰. 이 사찰은 496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가 발타선사(跋禪師)를 위해 처음 창건했다고 하며, 달마(達磨)가 530년부터 9년간 여기서 좌선했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유명한 소림권법(少林拳法)은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들여온 행(行)의 일종인데, 선승(禪僧)들의 수행법으로, 그리고 불교도들의 심신단련과 호신에 크게 도움이 됐다. 그러나 현재의 소림권법은 불교의 수행법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고유무술이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에 있는 남소림사(南少林寺)의 권법이 더 유명하다. 그래서 중국 권법의 영화는 대부분 이 남소림사에서 촬영됐다.
* 소마경` 蘇摩經 Som? Sutta --악마 파순(波旬)과 소마(蘇摩) 비구니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여성도 해탈할 수 있음을 밝힌 경이다.
“성자만이 도달할 수 있을 뿐 그 경지는 성취하기 어렵네. 두 손가락만큼의 지혜를 지닌 여자로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네.”
“마음이 잘 집중돼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 - 잡아함경 45권 1199경. ― 상윳따 니까야의 제5. 비구니 상윳따의 소마경.
* 소승불교` 남방불교` 小乘佛敎 Theravada buddhism --부처님이 입멸한 후 약 100여년 지나서(기원전 3세기 중반 아소카왕 무렵) 교단 내에 교리 해석 문제에 이견이 생기고, 기타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분열이 시작돼 교단은 4백여 년 사이 점차 20개 여파로 분열이 일어났다. 이때를 부파불교시대라 한다.
이 시대의 특징은 번잡한 논장(아비달마/abhidharma)이 일어나 교리 중심이 되면서 점차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1세기 경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대승불교라 한다. 이들 대승불교에서 종전의 부파불교(아비달마불교)를 소승불교라 했다.
소승불교 중에서 특히 중요한 부파는 대중부(大衆部),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독자부(犢子部), 화지부(化地部), 법장부(法藏部), 경량부(經量部) 등이다. 헌데 상좌부만을 소승불교라 하고, 대중부는 대승불교로 포함시키는 사람도 있다.
현재 전하는 논장은 스리랑카 상좌부가 전하는 팔리어로 써진 논장과 한역으로 전해지는 설일체유부의 것이 거의 전부이며, 타 부파의 논장은 매우 적다.
소승불교의 교리의 특징은 붓다의 가르침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해서 정비하느냐는 점에 있었다. 소승불교는 현재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데, 이를 대승불교인 북방불교(북전불교)에 대해 남방불교(남전불교)라고도 한다.
→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
*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 -- 초기에 성립된 열반경을 흔히 소승열반경이라 하며, 대승불교 흥기 후 성립된 경전을 대승열반경이라 하나 두 경의 이름은 모두 <대반열반경>이다.
소승열반경은 후기에 성립된 대승열반경과 달리 붓다의 유언으로 법과 율에 의지하라는 당부와 게으르지 말고 자기 자신과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아난에 대한 충고가 주요내용이다. 그 한역본은 법현(法顯) 역의 <대반열반경> 외 두 종류가 있다.
대승열반경은 붓다가 설파한 법의 의의가 대승불교의 교리와 실천도(實踐道)의 관련 위에서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이의 한역은 법현과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공역의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과 북량 담무참(曇無讖) 번역의 <대반열반경>, 그리고 그 후 위의 2가지 번역본을 종합한 <남본열반경>이 있다.
->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 소의경전` 所依經典 -- 소의(所依)는 의지할 바 대상을 의미하며, 소의경전은 각 종파에서 근본으로 삼는 경전으로서 신행(信行)을 비롯해 교의적(敎義的)으로 의지하는 근본 경전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조계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고, 화엄종은 <화엄경>, 법화종과 천태종은 <법화경> 하는 식이다.
* 소지장` 所知障 --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에는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이장(二障)이 있다. 번뇌장은 탐 ? 진 ? 치(貪瞋癡) 등에 의해 수행에 지장을 받는 것이고, 소지장이란 기왕에 조금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받는 것이다. 즉 수행을 하다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여러 가지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데, 이때의 알음알이(얕은 지식)에 집착해 더 깊은 공부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 받게 되는 것이다. → 삼장 (三障) .
* 소품반야경` 小品般若經 -- <소품반야경>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8천개의 게송(시구)으로 구성된 <팔천송반야경(八千頌般若經)>이다.
<소품반야경>은 바라밀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지혜제일인 수보리(須菩提)를 등장시켜서 그 해답을 들려주고 있는 대승 초기경전으로서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이다.
헌데 반야경전에 속하는 경전은 그 수만도 수십 종류에 이르며 현존하는 대승경전의 3분의 1에 해당할 만큼 분량도 많고, 경명(經名)도 아주 다양하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열 가지를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하는데, <소품반야경>은 이 중의 하나로서 10여종의 산스크리트본과 12여 종의 티베트본, 그리고 한역본은 무려 42종의 동본이역(同本異譯)이 나올 정도로 선호됐던 경전이다. 이 중에서 후한(後漢)의 지루가참(支婁迦讖) 번역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 번역한 <팔천송반야경(八千頌般若經)>이 특히 유명하다. → 대반야경(大般若經)
* 속장경` 續藏經 -- 고려시대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중심이 돼 초조대장경에서 제외된 중국 및 한국 학승들의 저술인 교장(敎藏) 소(疏) 등을 모아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작성하고, 이들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것을 초조대장경에 이어서 판각된 것이라 해서 속장경이라 했다. 고려 선종 8년(1091)부터 고려 숙종 연간에 걸쳐 판각됐다. 하지만 경(經)은 없고 오로지 논 ? 소만으로 편성된 것이기에 대장경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마저도 몽고군의 침입으로 경판이 모두 불탔다.
* 속제` 俗諦, samvrti satya -- 불교 사상에서 보통사람들의 상식적인 이해에 기반을 둔 진리. 속제는 일상생활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의사소통이라는 실질적 목적을 위해 인정되는 경험적 진리를 말한다. 이러한 속제는 경험적 현상의 기저에 있고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는 궁극적 진리인 진제(眞諦 param?rthasatya)와 구별된다. 진제는 어떤 것도 독립적 실재성을 갖지 않은 현상세계의 참된 본질로 간주되는 보편적 공( 空 ??nya, Sunya, ??nyat?, shunyata, / Pali: sunnat? ) 진리이다. → 이제(二諦), 제일의제(第一義諦)
* 송고승전` 宋高僧傳 -- 중국 송대(宋代)의 승려인 찬녕(贊寧, 919∼1002)의 저술. 송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80년에 착수한 후, 8년 동안 집필해 998년에 완성한 고승들의 전기. 문헌의 선택에 약간의 문제는 있으나 중국 중세 불교사 연구에는 불가결의 자료이며, 한국의 고승 전기도 많이 수록돼 있다.
* 송담` 松潭, 1929년~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중국 당나라 때 “남설봉 북조주(南雪峰北趙州)”에 빗대어,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고 한다. 현재 인천용화선원 원장. 여기서 남 ‘진제’는 2012년 조계종 종정에 취임한 분이다.
* 손챈감포왕 Songtsan Gampo 쏭짼감뽀, 松贊岡保, 617-698 --티베트 국왕. 중국 당 황실 출신의 문성공주(文成公主)와 브리쿠티 데비 두 왕비가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교를 도입했다. 그리고 주술을 중시하는 티베트의 고유신앙인 본교(bon敎)를 배척하지 않고 불교에 혼합해 티베트 불교로 토착화해 갔다.
* 수` 受, 산스크리트어 vedana -- 유식학(唯識學)에서 수(受)란 감수작용(感受作用)이라 할 느낌을 말하는데, 의식 속에 어떤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 즉 색(色)인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의 다섯 기관[오근(五根)]으로 느끼는 감정 ? 감각, 영어로는 필링(feeling)이다.
수는 내적인 감각기관[오근(五根)]과 그것에 상응하는 외적인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수에는 성질상 세 가지가 있다.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삼수(三受)이다. 고수란 괴로운 감정이고, 낙수란 즐거운 감정이고, 불고불락수란 사수(捨受)라고도 하며,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감정을 가리킨다.
12연기의 경우에 있어서 무명(無明)에 연해 행(行) ? 식(識(식)) 이런 순서로 연기하다가 여섯 번째 촉(觸)에 연해 일어나는 감수작용[느낌]을 수(受)라고 말하는데, 접촉에 의해서 어떤 사물의 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을 느끼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즐거운 감정, 괴로운(싫은) 감정,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감정, 즉 삼심수(三心受)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의 느낌이나 감정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접촉해서 느끼는 괴로운 감정은 고수(苦受)이고, 즐거운 느낌은 낙수(樂受)이며,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감정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또는 사수(捨受)라 한다.
감각기관[6입]과 그 대상[6경], 그리고 인식작용[6식] 등의 3요소가 만날 때 거기에서 지각을 일으키는 심적인 힘[촉(觸)]이 생기게 되고, 그 다음 수(受)가 발생하게 된다. 즉, 6입과 명색과 식의 접촉 위에서 생기는 고락, 불고락, 불고불락 등의 감수작용이다. 그러므로 수는 촉을 조건으로 해서 있다고 하는 것이다.
헌데 수 상 행 식은 따로 떼어서는 살펴볼 수 없다. 수 ? 상 ? 행 ? 식은 하나하나 떼어내면 그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수가 없이는 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상이 일어나면 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한 시공간에 두 개의 실체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의지, 그리고 감정의 흐름에는 ‘주인공’이 없다는 것, 즉,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하지만 수 상 행 식은 지속적이고 복합적이며 통합적으로 일어난다. 그 하나하나의 가닥은 실체가 없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그것이 뭉치면 마치 얇고 약한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새끼줄처럼 강력한 다발이 된다. 그래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과를 보기만 하고도 사과에 대한 식으로 인해에 맛과 향, 느낌과 기분까지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것들이 다시 사과에 대한 인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점점 강해지고 굳어져서 사과라고 하면 이미 끊어낼 수 없는 우리의 복합적인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수 ? 상 ? 행 ? 식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예이다.
* 수기` 授記 혹은 受記 --- 수기는 범어 뱌아카라나(vyakarana)를 번역한 말로, 화가라나(和伽羅那)라 음역되기도 한다. 이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 세상에서 태어날 곳, 혹은 성불하리라는 것을 낱낱이 예언하는 경문의 부분인데, 보통 문답식으로 의론을 전개하다가 최후에 부처님이 인가를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부처님이 수행자 혹은 제자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거나 보증, 인가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실행하신 수기란 각자가 지닌 잠재능력을 부추겨 목적성취를 위해 노력케 하는 역할을 한다. 비록 미약할지라도 뭔가의 동기를 지닌 사람에게 그 스스로가 지닌 잠재능력을 인식시키고 개발케 함으로써 인간의 나약함을 자신감과 능동성으로 전환시키는 교육적 방편이다.
* 수능엄` 首楞嚴 -- 수능엄이란 범어 수랑가마(suramgama)를 음사한 말이다. 그리고 ‘수능(首楞)’이란 모든 것에 구경(究竟-최종의 극치)임을 뜻하는 말이고, ‘엄(嚴)’이란 견고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에 구경이고, 견고한 것이 수능엄이니, 이것은 바로 불성(佛性), 여래장성(如來藏性)을 의미한다.
헌데 이 수능엄(首楞嚴)이란 말엔 용맹이란 뜻이 들어있다. 수능엄경에 나오는 능엄주(楞嚴呪)가 좋지 않은 것, 내가 살아가는데, 혹은 공부하는데 장애가 되는 그런 마(魔)의 요소들을 쳐부순다든지, 항복을 받는다든지 하는 그런 의미가 이 용맹이라고 하는 뜻 속에 포함이 돼 있다. → 능엄신주(楞嚴神呪)
* 수능엄경` 首楞嚴經 -- 줄여서 <능엄경>이라고도 한다. → 능엄경(楞嚴經) .
* 수능엄삼매` 首楞嚴三味 --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광찬반야경(光讚般若經)>,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 등에 108가지 삼매가 설명돼 있는데, 그 가운데 처음의 수능엄삼매 또는 번역해서 용건삼매(勇健三昧)는 번뇌를 깨뜨리는 견고한 삼매라 한다. 즉, 수행자가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일체의 번뇌와 욕망을 깨뜨리며 집중하고 들어가는 단계를 수능엄삼매라고 한다. ‘수능엄’을 구경이라고도 하니 수능엄삼매란 결국 구경의 삼매란 뜻이 되겠다.
* 수다라` 修多羅 수트라` 산스크리트어 sutra 팔리어 sutta -- 다라(多羅) 경(經) 혹은 계경(契經)이라 번역하는데, 아래와 같은 뜻이 있다.
① 십이부경(十二部經)의 하나. 경전의 서술 형식이 산문체로 된 것을 말함.
②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藏) 가운데 경(經)을 뜻함.
③ 대승 경전을 일컫기도 함.
* 수다원` 須陀洹 산스크리트 srota-?panna srota panna 팔리어 sota-?panna sota-panna =
1. 예류(預流), 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 색계,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 입류하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 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 예류향(預流向)이라 함.
동의어 수다반나(須陀般那), 수다원향(須陀洹向), 예류(預流), 예류과(預流果), 예류향(預流向)
2. 초과(初果), 예류(預流) 또는 입류(入流)라고도 한다.
성문(聲聞)의 수행 단계인 수다원,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의 사과(四果) 중 처음으로 미혹을 끊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소 성자의 무리에 끼어든 자이다.
부지런히 정진해 6근이 6진(六塵 또는 6境)에 의해 흔들리지도 물들지도 않게 되면 수다원과를 성취하게 된다. 수다원과를 성취하게 되면 탐 진 치로 인한 거칠고 무거운 번뇌들이 생겨나지 않게 되므로, 다시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등의 몸을 받지 않게 된다. → 사향사과(四向四果), 예류자(預流者)
* 수도` 修道 -- 초기 불교에 있어서 성문이나 보살의 수행단계인 삼도(三道)의 제2단계. 사성제(四聖諦)와 연기를 체험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고(苦)는 널리 알아야 할 것이고, 집(集)은 끊어버려야 할 것이며, 멸(滅)은 실증해야 할 것이고, 도(道)는 닦아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 삼도(三道)
* 수도 5위` 修道5位 --유식설(唯識說)에서 수행 과정의 다섯 단계를 말함. → 오위(五位)
* 수라도` 修羅道 -- 아수라도(阿修羅道)와 같은 말. 육도(六道)의 하나로서, 교만심과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싸움만 하는 아수라(阿修羅)가 사는 세계(世界)이다.
* 수메다` Sumedha, 유동행자, 선혜동자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래 전(4아승지 10만 겁 전) 연등불(D?pankara Buddha)이 세상에 나와 교화하실 때, 수메다(Sumedha)라는 수행자였다. 그의 외모는 수려하고 단정해 마치 연꽃과도 같이 훌륭했다. 수메다는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으나, 모두 보시하고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그는 연등불을 만나기 전에 홀로 수행해서 8선정(색계 4선, 무색계 4정), 5신통(천안통, 숙명통,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5근(信, 精進, 念, 定, 慧)을 갖추고 있었다.
연등불께서 마을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로 와서 부처님이 지나가실 길을 고치다가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맡게 되었는데, 이 때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곳을 가려서 부처님께서 지나가시도록 했다. 연등불은 이러한 수메다 행자의 근기를 살피시더니, “그대는 4 아승지 10만겁 후에 석가모니라는 붓다가 되리라”하고 예언했다. 이 수기를 받고나서 수메다는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려고 결심한 존재인 보살(菩薩, bodhisatta)이 됐다.
* 수면` 隨眠, midha 산스크리트 anu?aya, anusaya to lie down with, "underlying tendency" or "latent tendency 잠재하는 경향” =
1. 번뇌는 중생을 늘 따라 다녀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따른다’는 뜻의 수(隨) 자를 쓰고, 그 작용이 잠자듯 숨어 있다고 해서 면(隨) 자를 쓴다. 그래서 마음에 잠재하고 있는 번뇌란 말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잠복하고 있는 번뇌의 종자라서 번뇌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란 말이기도 하다. <구사론>에서는 6수면(隨眠), 유식학에서는 6대혹(大惑)이 있다고 한다. 6수면(隨眠)은 탐(貪) 진(瞋) 치(癡)라는 3독심에 만(慢), 의(疑), 악견(惡見)을 추가한 6번뇌이다. → 근본번뇌(根本煩惱)
2. 수면은 심신을 휴식시키는 상태인 한편, 꿈을 보기위한 상태이기도 하였다. 인도 북부의 힌두교도는 꿈을 보고 있을 때는 혼이 몸을 빠져나와서 자유로이 방황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많은 문화에서 알려져 있는데 수면상태는 신비적이기도 하며, 불안한 상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면 중에는 여러 가지 자는 모습을 취하기는 하지만, 잠을 잘 때에는 다소라도 문화적 형태가 인정된다. 힌두교의 브라만 계급에서는 자는 장소를 정갈히 하고 눕고, 얼굴이 서쪽이나 북쪽으로는 향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신경증인 사람은 잠자기 전에 시트의 주름을 정성스럽게 펴거나 이불을 정해진 횟수만큼 접는 등, 또한 근대 이전에 서구세계에서는 혼자서 자는 것이 일반적이 아니었다. 잠자는 자세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의 산(부시맨)이나 하챠피 사람들처럼 간단한 침실을 만들어 지면에 잘 때는 몸측을 밑으로 해서 무릎을 굽히고, 몸을 굽혀서 자는 예가 많았으며 똑바로 누워서 몸을 펴고 자는 예는 적은 것 같다. 잠자는 시간에 대해서는 문화의 규제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티벳에는 낮잠이 좋지 않다고 보는 사고방식이 있으며, 특히 병자는 낮에 잠을 자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낮잠을 인정한 예도 있으며 직업에 따라서 수면을 취하는 방법의 차이도 보여서, 특히 야간 출어를 일상적으로 행하는 어업이나 가축의 유목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잠자는 시간과 장소가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런 수면의 예를 통해서 수면이 휴식 상태라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에 주간의 각성시 상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고방식과 관계있는데, 꿈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나 근대산업사회에서의 노동의 가치의 강조와도 관계있다고 생각되며 이성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서양철학의 영향도 생각할 수 있는데 원래 수면은 생물의 일주기 활동의 모습의 하나로, 수면과 각성의 2상으로 일체가 되며, 수면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명활동이다.
인도에서는 고대에 수면은 몽면상태와 숙면상태로 분류되었다. 이에 각성상태를 더한 세가지 상태가 마음의 존재방식으로서 고찰되었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의 우다라카 아르니의 설에 의하면, 숙면은 생물이 영원불변인 브라만과 합일한 상태라고 한다. 또한 『만두키야 우파니샤드』에서 시작해서 샨카라 등의 베단타 학파에서 고찰되는 자아(아트만)의 4상태라는 것이 있다. 그에 의하면 각성상태에 있는 자아는 비라지, 몽면상태에 있는 자아는 타이쟈사, 숙면상태에 있는 자아는 프라지냐 등이라고 하며, 외관, 내관, 근원적 무지(무명)의 작용으로 인해서 자아는 제약을 받고 있다. 이와는 별도의 제4의 상태에서 자아는 불가설, 무부분의 본래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 수면의 종교적 의미
불교에서는 미다(midha)의 역어. 스이멘이라고 읽으며 각성의 대극으로서 깨달음을 방해하는 번뇌와 동의어로 이용하였는데 구사(俱舍)나 유식(唯識)에서는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부정지법(不正地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마음을 덮어 감추어서 선심을 방해하는 오개(五蓋)의 하나, 십진의 하나로 간주된다. 수면의 욕구는 번뇌로서 물리쳐야 하는데, 수면에 따른 꿈은 몽고(夢告)ㆍ영고(靈告)의 형태를 취해서 일본 불교상에 가끔 등장한다. 꿈은 수행이 마음의 해방을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인 속박을 벗어나서 시공을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으며, 현실 세계만이 아니라 사자나 신과도 교령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서 문화사적으로 널리 발견되는 신앙에 지지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꿈을 보내주는 것은 제우스 등의 신으로 직접 영주나 왕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하며, 영주나 왕 이외의 사람이 본 꿈은 전직자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 이스라엘의 문헌에도 신의 계시로서의 꿈에 관한 기술이 많이 보이는데 『구약성서』에는 베테르에서의 야곱의 꿈에 주가 나타난 것처럼 자손이 번영하는 이야기, 세계의 종말이 <바빌로니아의 노아>로서 꿈에 고시되는 『길가메시 서사시』, 바빌로니아의 『꿈의 서』라는 꿈해석의 텍스트 편찬 등 수없이 많으며 신의 계시를 얻고자 특정한 성스로운 장소에 참배하는 것도 이루어졌다. 그리스의 아스크레피오스를 제사지내는 에피다우로스의 신전은 치병의 꿈은 고지로 알려져 있으며, 마킬의 신전은 바빌로니아의 꿈신의 신전이다.
참조어 꿈
* 수미` 守眉, ?~? -- 조선 초기의 승려. 속성은 최씨(崔氏). 호는 묘각(妙覺). 13세에 출가했고, 처음엔 교학(敎學)에 뜻을 두었다가 속리산 법주사에서 신미(信眉)와 함께 수도에 정진한 후 선교(禪敎)를 부흥시키는 데 힘썼다. 세조 때인 1458년 왕명으로 해인사(海印寺)에서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50부를 인출하는 일을 맡아 감독한 뒤 왕사(王師)가 됐고, 간경도감에서 신미(信眉), 학조(學祖)와 더불어 불경 언해 작업에 종사했다. 부도는 전남 영암군 월출산(月出山) 서남쪽 자락의 도갑사(道岬寺)에 있다.
* 수미단` 須彌壇 -- 사원의 본전(本殿) 정면에 불상을 모셔 두는 단. 수미산을 본뜬 것으로 대개 방형이나 사각, 팔각, 원형 따위의 모양이 있다.
* 수미산` 須彌山, Sumeru, Mount -- 불교의 세계관에 나오는 상상의 산이다. 세상은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겹쳐져 있는데 가장 높은 산이 바로 수미산이다. 세계의 중앙에 있는 이 거대한 산의 중턱에는 사천왕이 있고, 그 꼭대기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사는 곳이라고 하며, 해와 달은 수미산의 허리를 돈다고 한다. 한편 여덟 바다 중 가장 바깥쪽 바다의 사방에 섬(四洲)이 있는데, 그 중 남쪽에 있는 섬, 즉 남염부제(南閻浮提)에 인간이 살고 있다고 하며, 그곳이 바로 지구라는 말이다.
이상과 같은 전설적인 면 이외에 실제로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 서쪽 ‘아리(阿里)’라는 지역은 소위 ‘신의 영역’으로 일컬어지는 지구상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거기 해발 6,714m의 미개척 봉우리로 카일라스(Kailas)산이 있다. 이 산을 수미산이라 한다.
피라미드의 형상으로 꼭대기에는 만년설이 덮여 있다. 이 산이 순례자들에게는 곧 ‘우주의 중심’이고, 그들에게 카일라스산은 천상을 뚫고 선, 신앙의 중심지인 것이다. 삼라만상을 순환하게 하는 으뜸 산이요, 세계의 기둥으로 숭앙된다. 순례자들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의식대로 지금도 이 산을 일주한다. 3박4일이 걸리는 고행이지만 순례자들은 주저 없이 감행한다. 순례자들은 이 산을 한번 순례하면 평생의 업보가 지워진다고 믿는다. 카일라스산의 가운데 파인 기다란 홈이 불교의 설화로는 그곳이 천국에 오르는 계단이라고 설명한다.
* 수바드라` Subhadra, 須跋陀羅 수밧다라 -- 석가가 죽기 직전 찾아와 마지막 제자가 된 사람이다. 이때 그의 나이 120세였단다.
헌데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부처님이 열반을 한 후 마하가섭(迦葉)에게 폭언을 퍼부음으로써 가섭으로 하여금 불전 결집의 결심을 하게 했다고 하는데, 정황을 봐서 이 두 사람이 같은 인물이 아닌 것 같다. 고대 인도엔 같은 이름의 사람이 많았다.
부처님의 열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슬픔에 빠진 비구들 사이에서 오직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열반을 기뻐하며 모든 통제로부터 벗어났음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자고 제의했다는데, 노련한 마지막 제자가 그런 제의를 했을 리가 없을 것 같다.
* 수보리` 須菩提 -- 수부티(subhuti)를 음사한 이름, 선현(善現)이라고도 함.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4대 성문(聲聞) 중 한 사람이며, 공(空)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였다고 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렸고, 결코 남과 논쟁하지 않았다 해서 무쟁제일(無諍第一)이라고도 한다. 유명한 <금강경(金剛經)>에서 부처님의 대화 상대가 수보리이다. 그리고 부처님께 기원정사(祇園精?)를 지어드린 급고독(給孤獨 = 아나타 핀디카 수닷타) 장자의 조카가 바로 수보리이다.
* 수불부촉` 受佛付囑 -- 부촉(咐囑)이란 부처님이 열반하시면서 불법의 포교와 전수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것을 말한다. ‘수불부촉’이란 그런 부처님의 부촉하심을 받들어 받아들여라 하는 뜻이다.
* 수상행식` 受想行識 --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로 오온(五蘊)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서 색(色)을 뺀 나머지로서 ‘마음’의 여러 상태, 즉 감정, 지각, 의지, 의식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수 ? 상 ? 행 ? 식이라는 감정의 흐름에는 ‘주인공’이 없다고 한다. 즉 자성(自性)이 없다고 한다.
* 수식관` 數息觀 -- 불가의 수행법 오정심관(五停心觀)의 하나.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해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는 수행법. 즉, 참선 시 호흡을 관찰하며 공부하는 법. 들어가고 나가는 숨을 관찰한다고 해서 출식념(入出息念)이라고도 부른다. 주로 마음이 산란한 사람들이 닦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선방에 앉아 근엄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쉽고 편안하게 일상생활에서 할 수도 있다.
수식관을 하면 망상(妄想)이 복잡하게 일어날 때 숨을 고르면 망상이 어느 정도 잦아진다. 숨을 쉴 때 들여 쉬고 내쉬는 이것을 열까지 세고 버린다. 왜 열까지 세고 버리느냐 하면 열이 넘으면 망상이 생긴다. 들어가는 숨을 세고 나오는 숨도 세면 분별이 많아지니 들어가는 숨은 빼고 나오는 숨만 세는 수도 있다. 열 번씩 세다가 혹은 세 번이나 다섯 번이나 일곱 번까지 세다가 망상이 생기면 잘못 세었다고 처음부터 다시 센다. 열 번까지 가지 말고 이렇게 숨을 세는데서 다른 생각이 들어 올 수가 없기 때문에 정신(精神)이 집중이 된다. 이것을 수식관(數息觀)이라 한다.
화두선(話頭禪)에서는 호흡에 대해서 별로 강조를 하지 않는다. 화두는 오직 참구하고 참구해서 참된 의심을 돈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두참구의 초보자나 마음의 안정이 잘 되지 않는 사람, 진전한 의정(疑情)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먼저 호흡법과 수식관을 통해서 마음의 고요를 얻어야 한다. 수식관은 그런 면에서 초보 참선 자들이 해야 할 기초단계의 수련이다. → 오정심관(五停心觀)
* 수심결` 修心訣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마음을 닦는 비결을 적은 선 이론서(禪理論書).
→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 수심요론` 修心要論 -- 5조 홍인(弘忍, 601~674)의 저서. 문답형식으로 선 수행의 요지를 밝힌 동산법문(東山法門)의 강요서(綱要書)이다. 수심요론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마음을 닦는 본질은 모름지기 자기의 본래 청정한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분별심도 찾아볼 수 없어서 본래 원만하고 때가 묻지 않아 청정한 마음, 이것은 우리의 근본 스승이며, 시방의 여러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난 선 수행의 핵심이다.”
홍인은 이와 같이 심성의 본원에 철저함을 본지로 삼아 수심(守心), 즉 수본진심(守本眞心)함을 강조하고, 본래의 청정한 진심을 지키는(守本眞心) 법을 기본으로 좌선법을 지도했다. 그리하여 무릇 도를 닦는 근본은 모름지기 이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해,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분별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자성의 원만하고 청정한 마음이 곧 본사(本師)이며, 온 누리의 모든 부처님을 염송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 동산법문(東山法門)
* 수아정례` 受我頂禮 -- 受(받을 수), 我(나 아), 頂(정수리 정), 禮(예절 예). 정례(頂禮, 바른 마음과 몸으로 예의). 따라서 ‘저의 간절한 예배를 받으시고…’라는 뜻이다.
* 수유` 須臾 -- 매우 짧은 시간. (예)지구의 나이를 생각하면, 백 년도 수유에 불과하다.
* 수인` 手印 -- 인계(印契)라고도 한다. 손과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수많은 상징적 모양. 조각이나 그림에서 손의 자세는 그 인물의 특성이나 그와 연관된 중요한 일화를 상징한다. 부처님의 수인에는 여원인(與願印), 전법륜인(轉法輪印), 선정인(禪定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등이 있다.
→ 무드라,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
* 수자상` 壽者相, 산스크리트 jiva samjna -- 수자상의 원어인 jiva는 영혼, 목숨, 생명이라는 말인데, 부처님 당시 자이나교에서 주장한 생사를 초월한 존재 또는 영원불멸의 순수영혼이 있다는 견해로서, 구마라습은 수(壽)로 현장은 명(命)으로 번역했다.
중생의 오온(五蘊)은 모두가 실체가 없어 한시도 머물지 못하는 무상한 존재인데 이를 바로 알지 못하고 그 속에 영생불멸의 윤회하는 주체로서 영혼이 있어서 오온은 사라져도 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릇 된 착각을 한다. 그것이 수자상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자이나교의 ‘순수영혼’설을 반박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교설이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것이다. 따라서 생사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 순수영혼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상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쳤다.
헌데 종전에는 이 수자상을 ‘목숨’으로 이해해서 오래 살려고 하는 욕심이라 해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이나교의 ‘순수영혼’의 존재설에 대한 거부를 표시한 것으로 이해한다. → 4상(四相)
* 수자타` Sujata -- 우루벨라 촌장의 딸. 부처님께서 수자타가 바친 우유죽(유미죽/乳米粥) 공양을 받아 기력을 회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 수좌` 首座 -- 선방에서 참선에 정진하는 스님들을 수좌(首座)라고 한다. 머리 수(首) 자에 앉을 좌(座)를 쓰는데 아마도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국불교의 전통이 그대로 묻어나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 수처작주` 隨處作主 -- 중국 당나라의 선승 임제(臨濟)선사의 언행을 담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는 뜻이다. 수처(隨處)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고 삶터이며, 작주(作主)란 인생의 주인공이 돼 주체적으로 살라고 하는 뜻이다.
※ 비슷한 말 -- 입처개진(立處皆眞) -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라는 뜻.
* 수타니파타` Suttanipata, 경집/經集 -- 숫타니파타라고도 발음한다. 수타니파타는 불경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경으로 초기 경전을 대표하는 경이다. 수타(sutta)는 팔리어로 경(經)이란 말이고, 니파타(nip?ta)는 모음[集]이란 뜻으로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경이란 뜻이다.
팔리어 삼장 가운데 경장(經藏 Sutta Pitaka)의 소부(小部 굿다까니까야 Khuddaka Nikaya)에는 법구경(法句經), 본생경(本生經), 여시어경(如是於經) 등 15개의 경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수타니파타이다. 다른 불교 저서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작품의 하나이며, 초기 불교의 문화적 ? 종교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대부분 운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설화, 대화, 짧은 서정시, 격언, 속요(俗謠)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탄생을 이야기한 문헌 중 최고(最古)의 것이다. 〈수타니파타〉에서는 사성제(四聖諦)를 깨닫고,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 수행과 음식 -- 수행에 있어서 음식을 조정할 일이다. 힘을 낸다고 과식해서는 안 된다. 수면을 줄이고 마음을 맑힌다고 음식을 너무 줄여서도 안 된다. 선은 망념을 격파해야 한다고 음식을 함부로 먹고 육단심(肉團心)을 내려하면 안 된다. 수도인의 식기(食器)를 응량기라 하듯이 자기 양에 맞추어서 적당히 먹어야 한다. 먹고 싶은 양의 7부를 먹는 것이 선가식의 적당량이다. 좋다고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거칠다고 덜 먹어서도 안 된다. 음식은 이것이 몸을 부지해 가는 약이다. 이 약은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하여 먹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히 대해야 한다. 오래 씹어 천천히 먹어야 한다. 먹으면서 잡념을 해서도 안 된다. 생식(生食)을 하거나 담식(淡食-싱겁게 먹음)을 하는 것은 권할 바가 못 된다. 비시식(非時食)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단식은 병을 고치기 위한 이유 외는 마땅하지 않다. 참선에서 그 양(量)을 알아서 먹는다고 한 것은 수행하는 정신자세와 환경을 꾸며 가는데 중요한 것이므로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일즙(一汁) 일채(一菜)가 선가의 식사지만 이 식사에 무성의하면 안 된다. 식사를 고루하지 않으면 필경 마음이 고르지 아니해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게 된다.
※ 담식이란 소금 간장 매운 것 등 일체를 안 먹는 것이다.
* 수행 5위` 修行五位 -- 수행5위란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에서 말하는 보살의 수행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을 말하는데, 수도 5위(修道5位), 수행위차(修行位次), 수행계위(修行階位), 수행계차(修行階次)라고도 한다.
수행의 목적은 8식(八識)의 번뇌를 정화하고 식(識)의 본성인 진여성을 깨달아 열반과 해탈을 증득하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번뇌로 말미암아 오염된 허망한 인식인 망식(妄識) 을 대승적인 수행의 힘으로 정화하고 지혜를 증득하는 과정이 유식사상의 수행론이다. 수행 5위에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의 다섯 단계가 있다.
* 수행위차` 修行位次 -- 수행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밟아서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위차이다. 실수(實修)하는 수행자로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위차를 모르면 헤매게 되거나 아만심이 있는 사람들은 증상만(增上慢)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위차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번쇄하게 논의가 많았다.
밀교에서는 십지(十地)를 말했고, 유가(瑜伽)에서는 십칠지(十七地)를 말했으며, 성문승(聲聞乘) ? 연각승(緣覺乘)도 나름대로 십지(十地)를 말했다. 보살승도 역시 화엄경에서 십지(十地)를 말했으며, 그와 동시에 오십오위(五十五位), 오십일위(五十一位), 오십육위(五十六位)… 등의 여러 가지 수행론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금타(金陀, 1898-1948)스님은 이런 성문십지, 보살십지 또는 오십오위나 오십육위나 그런 여러 가지 위차를 대비하고 회통(會通)해 해탈십육위(解脫十六位) 하나의 체계를 세윘다.
* 숙명통` 宿命通 -- 불교에서 말하는 신통(神通)이란 수행으로 얻어지는 초인적 능력을 말하는데, 숙명통은 신통의 하나로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전생을 두루 알 수 있는 능력이다.
* 숙업` 宿業 --지난 세상에서 지은 여러 가지 선악의 업. 오래전부터 이루고자 했던 사업.
* 숙작인론` 宿作因論 -- 과거의 어떤 원인이 숙명적으로 현재의 세계뿐 아니라 미래의 세계까지도 결정짓고 있다는 운명론적주장이다.
부처님 당시 외도의 주장인데, 운명론 내지는 숙명론과도 유사하며, 전생에 지은 업력에 의해 내세가 결정되기 때문에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즉 모든 것을 운명론적으로 보고 현실 또한 이미 결정돼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 운명에 맡겨 버리기 때문에 현재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사상이다.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수행을 해서 운명을 개척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윤리도덕적인 근거도 희박하다.
* 순결택분` 順決擇分 -- 결택은 결단하고 가려서 사유한다는 뜻. 번뇌가 없는 지혜로써 모든 의심을 끊고 사제(四諦)를 사유하는 성자의 경지로 나아가는 난법(煖法) ? 정법(頂法) ? 인법(忍法) ? 세제일법(世第一法)의 사선근(四善根)를 말함. → 순해탈분(順解脫分)
* 순경` 順境 -- 역경(逆境)의 반대말, 순탄한 생활을 말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경계 또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에 의해 탐욕의 번뇌가 생기게 됨을 명심할 일이다. 그래서 ‘순경(順境)의 미덕은 절도(節度)이고, 역경의 미덕은 인내(忍耐)이다.’라 했다. - 베이컨의 말이다.
* 순도` 順道 --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372)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보낸 사자를 따라와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 이것이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한 최초의 공식기록이다. 순도는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고구려로 왔으며, 고구려의 왕과 신하들은 그를 귀인으로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순도는 고구려 최초의 사찰인 초문사(肖門寺, 혹은 성문사/省文寺라고도 함)에 머물면서 불교를 포교했다. 순도는 서역 승려일 가능성이 짙다. 중국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다가 고구려로 온 것으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 순해탈분` 順解脫分 -- 분(分)은 원인을 뜻함. 해탈로 향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 해탈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계위, 해탈에 수순하는 단계란 말이다. 구사론에서는 삼현(三賢-현자의 세 단계)를 말하고, 유식설에서는 자량위(資糧位)를 일컫는다.
여기서 삼현이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로 나아가는 오정심관(五停心觀) ? 별상염주(別相念住) ? 총상염주(總相念住)을 말하는데, 유식학에서는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등 삼십심을 삼현위 혹은 내범부위(外凡夫位)라 한다. 이러한 삼현위는 지전보살(地前菩薩)의 단계이다. 보살 수행 5위 중 자량위(資糧位)와 가행위(加行位)를 닦으면 지전보살이라 하며, 현자라 하고, 통달위부터는 지상보살(地上菩薩)이라 한다.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사유로 말미암아 마음이 해탈의 방향으로 굳어진 단계로서 이러한 삼현위는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모든 존재의 개별적 특성과 보편적 특성을 전체적으로 관찰 수행함으로써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해탈해 열반으로 나아가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순해탈분 또는 외범위(外凡位-깨달음 밖의 단계)이라 한다.
* 숫타니파타` Suttanipata, 經集 → 수타니파타 (Suttanipata)
* 승` 乘 산스크리트 yana -- 승이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하고, 비유로서 가르침 혹은 수행도(修行道)를 가리킨다.
승(乘)은 수레, 탈 것을 말하는데, 법수레를 뜻한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중생을 태우고 깨달음의 저 언덕(깨달음)으로 실어 나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미혹에 빠져 있는 이 삶에서 깨달음의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부처님의 가르침, 즉 교법(敎法)을 가리킨다. 헌데 승(乘)은 행한다는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스스로 닦는 것이지 말을 주고받는 알음알이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 승가물` 僧伽物 -- 승가물에는 스님들이 함께 쓰는 교단의 공유물, 예를 들면 그 절의 방사(坊舍 - 승려가 거처하는 방), 전답 등 사방승물(四方僧物 - 모든 수행승들이 함께 사용하는 승단의 공유물)이 있고, 현재 스님들이 시주로부터 보시 받아 사사로이 쓰는 현전승물(現前僧物 - 수행승의 개인 소유물)이 있다. 다시 말해 사찰 재산은 사방승물과 현전승물로 나눠져 있다.
* 승가바라` 僧伽婆羅 Samghapala 479~524 -- 부남국(扶南國-캄보디아) 출신. 중양(衆養)이라고도 한다. 양(梁) 나라 때 바닷길로 중국에 들어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Gunabhadra)의 제자가 돼 역경에 종사했다. <대승십법경(大乘十法經)>,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 <해탈도론(解脫道論)> 등을 비롯해 총 11부 38권을 번역했다.
* 승가제바` 僧伽提婆 Samghadeva -- 한역해서 중천(衆天), 혹은 제화(提和)라고 한다. 본래의 성(姓)은 구담씨(瞿曇氏)로 계빈국(?賓國) 사람이다. 그는 AD 4세기 중반 전진(前秦)왕 부견(符堅) 시대에 장안에 와서 포교에 종사했고, 동진(東晋)시대까지 활약해서 대념처경(大念處經), <옥야경(玉耶經)> 등을 번역했다.
※ 계빈국(?賓國) -- 펀자브(Punjab) 북쪽, 카불(Kabul) 동쪽에 있던 고대 국가.
* 승려 -> 중 monk
* 승만부인` 勝?夫人 -- 승만은 산스크리트 명 슈리 말라(Srimala)를 음역한 말로 슈리(Sri)는 ‘아름다운’ 혹은 ‘행복한’이라는 뜻의 여성 명사이며, 말라(mala)는 ‘꽃다발’이라는 뜻이다. 굳이 해석한다면 ‘아름다운 꽃다발’이라 할까.
이 슈리말라의 아버지는 중인도 사위국(코살라국)의 파사닉(波斯匿, 프라세나지트)왕이며, 어머니는 말리(末利 Malika) 왕비이다. 그녀는 성장해서 아요디야(Ayodhya 阿諭陀)국의 우칭왕(友稱王)에게 시집을 가서 왕비가 됐다. 그래서 왕비를 뜻하는 데비(devi)라는 말이 붙어, 슈리말라 데비(Srimala devi)라 했으며, 독실한 불도로서 승만경(勝?經)의 주인공이다.
* 승만경` 勝?經 -- 불교의 대승경전 가운데 여래장(如來藏)사상과 일승(一乘)사상을 천명하는 대표적인 경전. 따라서 <여래장경(如來藏經)>,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과 더불어 여래장 삼부경이라 불린다. 그리고 <유마경>과 함께 대승불교의 재가득도(在家得道)의 신앙을 표방하는 경전으로서도 중요하다. 경의 구성은 사위국(舍衛國, 코살라국)의 파사닉(波斯匿, Pasenadi)왕의 딸로서 아유타국(阿踰陀國)의 우칭(友稱)왕과 결혼한 승만부인이 부처 앞에서 설주(說主)가 돼 설법을 펴고, 부처님이 승만의 설법 내용이 옳다고 인가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 승의근` 勝義根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 각 기관이 대상을 감각하는 작용. 마음을 일으켜 바깥 대경(對境)을 감각하며 내계(內界)에 식(識)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감각 작용을 도우는 그 기관들은 부진근(扶塵根)이라 한다. → 부진근(扶塵根)
* 승조` 僧肇, 384~414 --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제자. 인도 용수계(龍樹系)의 대승불교를 공부했고, 그가 남긴 논문집 <조론(肇論)>은 대승의 공(空)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으며, 그 속의 <부진공론(不眞空論)>을 통해 격의불교를 비판함으로써 후세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여러 서적을 접했던 승조는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여러 종파들이 불교 사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해 빼어난 저술들을 내놓음으로써 중국불교를 한 단계 뛰어오르게 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무고로 인해 사형을 받게 됐으나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태연자약했으며, 간수에게 청해 7일 동안의 형 집행 연기를 얻어 옥중에서 저술한 책이 <보장론(寶藏論)>이다. 그리고는 31세의 젊은 나이로 형장에서 다음의 게송을 남기고 죽었다. → 부진공론(不眞空論)
“사대(四大)란 원래 주인이 없으며
이 몸과 마음도 본래 공(空)한 것이니
시퍼런 칼날로 이 목을 치는 것도
불어오는 봄바람을 베는 것과 다름이 없네!”
* 승찬` 僧璨, ?~606 -- 생몰연대가 정확치 않으나, 서기 606년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중국 선종(禪宗)의 제2대 조사(祖師) 혜가(慧可, 486?~593?)의 제자로서 선종 제3대 조사이다. 그는 나병환자였으며, 당시로서는 평생 고치지 못할 나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禪)의 요체를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으로 풀이한 <신심명(信心銘)>을 남겼다. → 신심명(信心銘)
* 시계천` 施戒天의 가르침 -- 부처님께서 재가 불자에게 시계천(施戒天)이라고 해서 널리 베풀고[보시], 계율을 잘 지키면[持戒] 살아서 행복하고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셨다.
시계천의 가르침이란 사성제와 8정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보자격인 재가자에게 예비법문격으로 부처님이 제시한 보시(布施)와 지계(持戒) 두 가지 실천법을 일컫는다.
* 시무외인` 施無畏印 -- 무외(無畏) 곧 두려움이 없는 마음의 상태를 베풀어 주는 수인(手印).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보호해 두렵고 무서운 마음을 없애 줘서,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켜 주는, 대자대비의 덕을 보이는 수인이다. 오른팔을 꺾어 손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보인 손의 모습이다. 가장 보편적인 수인 중의 하나로서 이포외인(離怖畏印)이라고도 한다. 보통 여원인을 함께 행한다.
※ 여원인 與願印 -- 왼손을 밑으로 해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게 하는 모습이다. 중생의 소원을 받아들인다는 뜻의 수인이다.
* 시무외여원인 施無畏與願印 --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을 상징하는 시무외인과 중생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준다는 여원인을 합한 것이다. 일명 통인(通印)이라고도 한다.
* 시설` 施設 prajnapti → 방편시설(方便施設)
* 시심마` 是甚? -- “시심마오~?”라는 화두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 “이 뭣고~?” 화두이다. 즉, 중국인들이 한역 할 때 “시심마~?”라 했고, 그것을 우리말로 “이 뭣고~?”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 또는 그 다그침의 경상도식 사투리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말을 짧게 줄이는 특성이 있다.
“시심마” 즉 “이 뭣고”란 인생의 모든 생활 현상에서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 마음가짐을 관찰하는 것으로 행하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멈춘 가운데[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나를 움직이는 마음의 주인공, <이 놈이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헌데 “이 뭣고?” 화두는 의심해가는 독립된 화두이면서 천칠백 가지의 화두를 모아놓은 총칙의 화두이자 그 외의 모든 화두의 화두 드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화두의 왕이라 할 수 있다.
※ 예,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시심마(父母未生前本來面目 是甚?)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나의 본래면목이 뮛고?[어떤 것이 ‘참나’이던고?]. → ‘이 뭣고’
* 시심시불` 是心是佛 -- 마음 밖에 따로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 사람은 온갖 번뇌로 말미암아 마음이 더러워져 있으나 본마음은 불성(佛性)으로서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이고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다는 말. 즉심즉불(卽心卽佛), 시심즉불(是心卽佛), 즉심시불(卽心是佛)이 다 같은 의미이다.
→ 즉심시불(卽心是佛)
* 시아본사` 是我本師 -- 나의 근본이 되는 스승. 나의 본래 스승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불성의 존재요 그것(연기)을 깨달은 존재이며,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이끌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시아본사라 한다.
* 시왕` 十王 -- 염라대왕(閻羅大王)을 비롯해 지옥의 중생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이다.
* 시절인연` 時節因緣 -- 굳이 애쓰지 않아도 혹은 꼭 피하려고 해도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전에 만날 요인을 품고 있다가 시간적 공간적 연이 닿으면 만나게 된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 시크교` Sikh敎 -- 인도의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힌두교의 한 파. 15세기 말경에 나나크(Nanak)가 시작한 것으로, 힌두교의 개혁을 꾀하고 우상숭배와 카스트제도를 부정하며, 창조신에 대해 열광적으로 숭배한다. 19세기 중엽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두 차례에 걸쳐 영국에 저항해서 ‘시크 전쟁’을 일으켰다.
* 식` 識, vijnana skandha -- 식은 알다, 인식하다, 요별하다는 의미이며, 넓은 의미로는 대상을 감각, 지각, 사고하는 마음의 활동 일반을 의미한다. 그래서 식을 마음이라 일컫기도 한다. 단 불교의 식(識)은 서양과학의 의식(意識)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할 일이다. → 6식(六識)
* 식상` 識想 -- 마음속에 형성된 어떤 개념.
※ 용례 - 아무리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한갓 식상(識想)만 해치는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은 식이 무변하다는 주관적인 식상(識想)마저 버리고 그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는 무소유의 경지를 관찰하며 머무는 선정이다.
* 식차마나` 式叉摩那, 式次摩那 -- 팔리어 sikkha m?n?의 음사. 정학녀(正學女) 학법녀(學法女)라고 번역. 비구니가 되기 위한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전에 2년 동안 육법(六法)을 지키며 수행하는 여자 출가자. 즉, 사미니와 비구니 사이의 단계에 있는 여승을 이르는 말임. 사미니로서 구족계를 받고자 하는 여승은 18세가 되면 자연히 식차마나가 된다. 육법을 지킨다고 해서 육법니(六法尼)라고도 한다.
→ 육법(六法)
* 신견` 身見 -- 오견(五見)의 하나. 나와 나의 것이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 곧 ‘나’라고 할 것이 없는 줄을 알지 못하고 내가 실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 오온(五蘊)이 인연화합해서 이루어진 ‘나’를 영원한 존재로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즉, 이 세상의 사물은 모두가 무상전변(無常轉變-언제나 변천하는 것)하는 것인데, 상주불멸(常住不滅-조금도 변치 않음)한다는 자기 생각에 구애돼 자신의 소유욕을 만족시키려는 그릇된 생각이다. → 견혹(見惑)
*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 -- 신묘장구(神妙章句)는 한자의 뜻 그대로 신통하고 묘한 글이라는 뜻이며, 대다라니(大陀羅尼)는 구절이 긴 다라니라는 뜻이다. ‘다라니’는 범문을 번역하지 않고, 음 그대로 외야 한다. 자체에 무궁한 뜻이 있어 이를 외는 사람은 한없는 기억력을 얻고, 모든 재액에서 벗어나는 등 많은 공덕을 받는다고 한다.
굳이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을 한글로 간략히 풀어보면, 삼보(불,법,승)와 거룩한 관세음보살님, 그 외에 보살님과 대보살님, 그리고 대자대비하신 분에게 귀의하오며 찬탄한다는 내용이다.
천개의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이 넓고 크고 걸림이 없는 대자대비심을 담은 큰 다라니를 설법하신 경으로 대비주(大悲呪), 천수주(千手呪)라고도 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천수경 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라니인데, 반야심경 마지막에 다라니(진언)가 등장하지만, 천수경에는 다라니가 한가운데에 등장한다.
* 신수` 大通神秀: 606?~706 --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으로 혜능(慧能)과 더불어 제5조 홍인(弘忍)의 제자이다. 혜능계의 남종선(南宗禪)에 비해 북종선(北宗禪)이라 일컬어진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및 중종(中宗)의 부름을 받아 국사(國師)가 돼 왕공귀족들의 절대적 귀의를 받았으며, 입적 후 황실로부터 대통선사(大通禪師)로 추존됐다. 점오(漸悟 = 점수돈오/漸修頓悟)를 강조해 북종선을 점수선(漸修禪)이라고 정의한다.
* 신수대장경` 新修大藏經 -- 일본에서 대정 연간(1912∼1925)에 간행된 활자판 대장경.
→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 신심명` 信心銘 --중국 수나라 때에, 선종의 제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瓚)이 지은 글. 당시로서는 평생 고치지 못할 나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 후학들을 위해 신심명(信心銘)을 찬술했고, 이 글 한 편에 의해 승찬은 불가(佛家)의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됐다.
신심명은 ‘믿음을 마음속에 새기는 글’이란 뜻이고, 내용은 4언 146구 584자의 운문체로, 지적인 분별의식을 배척하고 선(禪)의 무분별적 세계를 간단명료하게 풀은 선시(禪詩)다. 장편의 시(詩)와 같은 운치를 풍기면서 불교의 심오한 이치를 깨달음의 차원에서 노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장경에서 설해놓은 불법의 심오한 이치를 간결한 언어로 함축해 그 대의를 극명하게 밝혀 놓았다. 간결한 문체와 응축된 내용으로 일체의 군더더기 말을 배제함으로써 선문(禪門)의 필독서로 여겨져 왔다. → 승찬(僧璨)
* 신아` 神我 -- 신본주의에 빠져 있는 나(기독교 신자처럼)를 일컬음.
* 신인종` 神印宗 -- 신라 문무왕 때의 고승 명랑(明朗)을 종조로 하는 불교의 한 종파. 밀교 계통의 종파로 고려 초에 종파가 성립됐다. 고려시대의 불교 종파는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었으나 이 종파만은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 신중단` 神衆壇 --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 = 聖衆 = 衆聖)을 모신 단. 신장단(神將壇), 중단(中壇)이라고도 한다. 주로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예컨대 팔대금강신장, 제석천, 사왕천, 대범천,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등이 불법을 옹호하는 유명한 신중이다.
* 신해수증` 信解修證 -- ‘신해수증’은 부처님의 법을 공부하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과정을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 신(信)은 부처님의 법을 즐거이 믿는 것이고,
- 해(解)는 부처님의 법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
- 수(修)는 그 법을 삶 속에서 바로 실천 수행하는 것이고,
- 증(證)은 실천수행을 통해 마지막에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유가록(瑜伽錄)에 이르기를, “반야를 아깝게 여겨서 계율을 굳게 지키는 것을 신(信)이라 하고, 반야를 널리 물어서 절조(節條, 조목조목)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을 해(解)라 하는데, 신만 있고 해가 없으면 무명(無明)만 더해가고, 해만 있고 신이 없으면 사견(邪見)만 더해진다. 이는 공부에 큰 병이니, 신과 해가 구족해야만 바야흐로 수행의 기본이 된다. 그리고서 반야를 관조(觀照)해 시후(時候, 절기)를 잃지 않는 것을 수(修)라고 하는데, 무위(無爲)를 당해서는 무위를 하고 유위(有爲)를 당해서는 유위를 해야만 이것이 참다운 수행이다. 그리고서 반야를 배양(培養)해서 마니주(摩尼珠, 여의주와 같은 말)를 결성(結成, 맺어서 이룩하는 것)하는 것을 증(證)이라고 하는데, 증과(證果)를 구하는 자는 먼저 참되고 변함없는 현묘(玄妙)한 마음을 보리의 인(因, 씨앗)으로 삼아 때가 오면 그때마다 단련해서 쌓고 쌓아야만 바야흐로 참되고 변함없는 묘과(妙果)를 얻을 것이다.”라고 했고, 또 이르기를,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고 선정을 고르게 익혀서 혼침(昏沈)하고 산란(散亂)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해 적적(寂寂, 고요하고 고료함)하고 성성(惺惺, 또렷또렷함)하게 되거든 곧 반관내조(返觀內照, 돌이켜 안을 비추어 관찰함)해서 법대로 수련해 증득하라”고 했으니 우리들은 정성껏 가슴에 새겨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신해행증` 信解行證 --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과정을 넷으로 나누어 신 ? 해 ? 행 ? 증(信解行證)이라 한다.
- 신(信) - 진리가 있음을 믿어서 의심하지 말 것.
- 해(解) -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과 그 내용을 알려고 노력할 것.
- 행(行) - 안 것을 삶 속에 실천할 것.
- 증(證) - 알아 얻은 것을 결정을 받아 다시는 없어지지 않게 할 것.
* 신해탈` 信解脫 -- 해탈의 길에는 신해탈(信解脫), 심해탈(心解脫; 정에 의한 것), 혜해탈(慧解脫) 등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신해탈이란 신앙심에 의한 해탈을 말한다. 믿음을 깊게 하고 믿음의 힘을 강하게 함으로써 마음의 자재로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마음을 정화하는 힘을 지닌다. 믿음을 깊게 하면 그것은 자연히 지혜로 변해 간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의 믿음은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혜로 이어져 변화하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믿어, 그것에 따라 수행해서 수도(修道)의 단계에 이르는 것을 신해탈이라 한다.
신해탈은 ‘의(疑)의 극복’이 그 중심에 있다. 의(疑)란 올바른 불법진리(佛法眞理), 혹은 법을 설하는 불타, 여래에 대한 의심이다. 그런 의문이나 의심을 극복해야 신해탈을 추구할 수 있다.
* 신행` 身行, k?yasa?kh?ra -- 신행(身行)이란 신업(身業)을 말하며, 몸의 의도적 행위. 몸으로 행하는 선악(善惡)의 업을 말한다. ‘행’에는 몸으로 짓는 신행(身行)과 언어로 짓는 구행(口行)과 마음으로 짓는 의행(意行)이 있다.
* 신행` 信行 과 신앙 -- 신앙이라는 말에는 ‘절대자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풍긴다. 따라서 불교의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쓰는데, ‘신심(信心)으로 귀의(歸依)한다’는 뜻으로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신행(信行)이란 자기 스스로 승가에 귀의해 좀 더 광범위하게 불보살이나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는 일인데, 불경을 공부하고, 불공, 참선, 염불, 기도, 간경, 참회 등을 행하며, 계율을 지키는 등의 수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 실상` 實相 -- 실상은 법의 진실한 모습, 본래 성품의 진실한 모양, 허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체성, 진리의 참모양이라는 말이고, 공(空)과 같으며, 무상(無相)이다. ‘존재의 본질’ 혹은 ‘존재의 본성’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말이다. 진실 자체의 모습이라는 기본적 의미로부터 평등의 실재, 불변의 이치를 뜻하며, 모든 존재의 이치가 되는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든 존재 자체의 성질이므로 법성(法性)이라 하고, 그 자체는 진실하고 상주하므로 진여(眞如)라고 하며, 그렇게 진실하고 상주하는 것이 모든 존재의 진짜 모습이므로 실상이라 한다.
* 실상반야` 實相般若 -- 관조반야(觀照般若), 문자반야(文字般若)와 더불어 3반야의 하나. 실상반야는 제법의 실상 그 자체를 말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말한다. 여기에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자가 보이는 현실 세계, 우주와 하나가 될 때 이것이 바로 실상반야이다.
우리가 흔히 일체의 모든 존재에 불성이 있고, 법신 부처님이 두루 편만(遍滿)해 계신다고 할 때, 바로 이것은 실상반야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법의 실상, 무상, 공적이 내는 지혜로 본래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 본질적인 것이다. 대립이나 차별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직관하는 지혜를 말하기도 한다. → 관조반야(觀照般若), 문자반야(文字般若)
* 실상법` 實相法 --실상(實相)은 법의 진실한 모습, 본래 성품의 진실한 모양을 일컫는 말이다. 즉, 실상은 허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체성, 진리의 참모양이라는 말이고, 공(空)과 같으며, 무상(無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내가 인식한 세상과 물리적으로 본래 있는 세상이 조금도 다르거나 차별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의 세상이다. 욕심에 의해 대상(사물)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맞이하고 걸림 없이 살자는 것이다. 세상에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인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좁은 소견으로 실상을 왜곡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 실상인` 實相印 -- 참된 불법임을 증명하는 인(印), 또는 표치(標幟).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이에 대해 설하는 것이 불교의 특징이므로 인(印)이라 한다. 소승에서는 삼법인(三法印)을 이르고 대승에서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이른다.
대지도론에 이르기를, “소승경에서는 무상(無常), 무아(無我), 열반(涅槃)의 삼법인이 있어서 이를 찍으면 이것은 불법이고, 이를 닦으면 도를 얻으나 삼법인이 없으면 마구니설이라고 한다”고 했다. 헌데 대승경에는 단지 일법인(一法印)만 있으니, 이른바 제법실상(諸法實相)인데 이것이 요의경(了義經)이다. 따라서 대승에선 실상인(實相印)이 없으면 그것은 마구니설이다.
※ 요의경(了義經)---진실하고 극진한 뜻을 분명하게 말한 경전이란 뜻.
* 실지` 實智 --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밝게 아는 지혜. 모든 분별이 끊어진 진실한 지혜. 모든 법계가 공적(空寂)임을 깨닫는 참된 지혜. 분별이나 추리에 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지혜. → 공적(空寂)
* 실차난타` 實叉難陀 산스크리트 시크샤난다 Sikasananda 652~710 = 당(唐) 나라 시대의 인도 출신 역경승.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신역(新譯) 화엄경(80권)> 등을 한역했고, 그가 한역한 화엄경에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서문을 썼다.
* 심상` 心相 과 심의식 心意識 -- 유식학은 인간의 마음을 심성과 심상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성은 모습이 없어 이름을 칭하기가 어렵지만 방편으로 진여 또는 불성 및 공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이 진여를 바탕으로 하여 마음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을 심상(心相)이라고 한다. 심성은 진제(眞諦)로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지만 심상은 속제(俗諦)로서 차별이 있으며 차별의 마음을 나누어 설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식학에서는 심상의 체성을 팔종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며 이것이 팔식(八識)설이다. 이는 심의식(心意識)을 분류한 것으로서 심(心)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하고 의(意)는 말나식(末那識)이라 하며 식(識)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6종의 심체로 나누어 설명한다.
* 심상사성` 心想事成 -- 마음이 절실하면 이뤄진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
* 심생즉종종법생 심멸즉종종법멸"(心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 원효대사가 한 말. 원효는 어제 저녁에 마신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깨달아 “심생즉종종법생 심멸즉종종법멸(心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이라 간파했다. 마음이 있어야 온갖 사물과 형상을 인식하게 되고 마음이 없으면 이러한 것들도 없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오직 내 마음 이외 어디에 진리가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고, 유학을 그만두고 되돌아와서 무애행(無碍行)으로 불교 포교에 전념했다.
* 심소` 心所 팔리어 cetasika -- 마음의 작용 혹은 심리작용을 심소라고 한다.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었다’, 이 표현에서 마음과 마음의 작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마음을 심(心)이라고 하고, 그 마음의 작용을 심소(心所)라고 한다. 심소는 심왕에 종속된다. → 심왕(心王)
* 심식` 心識 산스크리트 citta vijinana -- 초기불교에서 죽음은 심식(心識)이 육신의 옷을 벗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기의 불전에서 영혼이나 넋이 심식이란 말로 쓰이기도 했다.
부파불교시대의 소승불교에서는 심(心)과 식(識)을 동체이명(同體異名)이라 했고, 대승불교에 속하는 유식사상(唯識思想)에서는 심과 식을 따로 나누어 제8식을 심, 전5식과 제6식은 식이라 했다. 그리고 인식하는 주체에 해당하는 마음속의 인식작용, 즉 마음작용을 심식(心識)이라 했다.
그리하여 유식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물질 등 내외의 모든 것이 오직 심식(心識)에 의해 창조되며 이 심식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유정(有情)이 지니고 있는 여덟 가지 심식(心識), 즉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 등 이러한 8식을 심식이라고 한다.
심식은 인식주(認識主)로서 어떤 대상의 내용과 모습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유식학에서는 심식은 요별(了別)과 분별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해석한다. 만약 심식(心識)이 적멸해서 털끝만치라도 생각을 움직이는 곳이 없다면, 이것을 정각(正覺)이라고 부른다.
* 심왕` 心王 팔리어 citta -- 대상의 전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즉 마음의 체성을 흔히 심왕(心王)이라고 하며, 육식(六識) 또는 팔식(八識)으로 분류한다. 아래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의 관계를 살펴보자.
※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의 관계 -- 심왕에서 심소의 작용이 일어난다. 심왕은 언제나 마음의 작용을 있게 하는 장의 흐름이며, 심소는 그 가운데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심소를 통해서 ‘현행하는 윤회를 여실히 보는 것’이다. 관계(심왕)는 작용(심소)을 통해서 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의 관계를 안식(眼識)을 예로 들어 보자. 눈[眼]과 색[色]은 별개라고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눈이 없으면 색이 없고, 색이 없으면 눈도 없다. 그러나 눈과 색은 다르다. 이 다른 두 가지가 만나서 만드는 새로운 장(場)이 안식(眼識)이며, 곧 심왕이다. 만나면 그 장 가운데에서 여러 가지 심리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심소이다. 관계[심왕]는 있지만 작용[심소]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심왕이 중심이 된다. 심리현상은 심왕의 장이 소유하므로 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고 하며, 줄여서 심소라고 한다.
우리는 심리현상의 분별만을 따지며 살아왔기 때문에 만남의 장인 심왕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그러나 6근(六根)과 6경(六境)은 함께 만남의 장인 식(識 ; 心所)을 이루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듣는 관계의 장이 있어야만 그 가운데에서 심리현상(심소)이 일어난다. 정신작용의 본체인 심왕(心王)에 종속된 심소(心所)가 욕망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 심왕명` 心王銘 -- 중국 양(梁)~진(陳)시대의 승려인 부대사(傅大士, 497~569)의 저술. 부대사는 쌍림대사(雙林大師), 동양거사(東陽居士)라고도 하는데, 16세에 혼인해 두 아들을 두었으나, 24세에 서역(西域)의 승려 숭두타(嵩頭陀)에게 감화돼 은거해 숨어 살며 수행했으며, 거침없는 수행으로 출가자와 재가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심왕명(心王銘)>은 짧은 시구 속에 불교의 진수를 잘 표현한 노래로서, 3조 승찬(僧瓚)의 <신심명(信心銘)>과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게송이다.
<심왕명(心王銘)>은 “텅 비어있는 마음의 왕을 관조해보면, 현묘해서 헤아리기 힘들도다(觀心空王 玄妙難測).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으나, 위대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도다(無形無相 有大神力).”로 시작되는데, ‘참나’를 심왕(마음의 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마음은 만물의 왕이며 삼라만상의 왕이라는 말을 빌어서, 일심법(一心法)의 내용을 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 가 곧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바로 이 마음이다(卽心卽佛 卽佛卽心 是心是佛 是佛是心).”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란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불상(佛像)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대명사로서 ‘네 마음속에’ 또는 ‘네 마음 그 자체가 진리이며, 동시에 그 마음이 진리임을 깨달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명(銘)이란 ‘좌우명(座右銘)’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에 깊이 새겨둔다’는 뜻으로 명(銘) 체로 돼 있는 글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불교의 전적(典籍) 가운데 ‘명(銘)’자를 붙인 글은 부(傅)대사의 심왕명(心王銘)을 비롯해 3조 승찬(僧瓚)의 <신심명(信心銘)> 등이 있다. → 부대사(傅大士)
* 심우도` 尋牛圖 -- 수행자가 정진 수행을 통해서 자기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畵). 전체 과정이 10단계로 구분돼 있기 때문에 십우도라고도 한다.
* 심의식` 心意識 -- 초기 불교에서는 심(心)과 의(意)와 식(識)은 동의어로서 인식 주관 또는 인식 작용을 뜻했다. 그러나 유식설에서 심의식은 심(心) ? 의(意) ? 식(識)의 세 낱말을 합친 복합어로 이해한다. 즉, 심(心)은 아뢰야식(阿賴耶識), 의(意)는 말나식(末那識), 식(識)은 육식(六識)을 뜻한다.
* 심인법` 心印法 -- 심인이란 마음의 본바탕, 즉 불심(佛心) 자성(自性)을 의미하며, 선종(禪宗)에서는 문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의 본체를 전할 때 심인(心印)을 전한다고 말한다. 부처님의 심인법이 내려오는 원동력이라 옛날에는 의발이요 이제는 심인법(心印法)이라, 옛날엔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을 전할 때 스승의 의발을 제자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그런 풍습이 없어지면서 이젠 심인을 전한다는 말이다.
진제 조계종 종정스님은 “우리 모든 사부대중은, 한 가닥 밝은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이 단절되지 않고 천추만대에 면면히 이어지도록 바르게 참선법을 익혀 정진에 정진을 더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설하며 수행정진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 심지법문` 心地法門 -- 심지법문이란 마음을 여는 법문. 마음에 관한 법문을 말한다. 세상의 중심은 마음이다. 마음이 생하면 갖가지 법(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神)보다도 그 누구의 말보다도 마음에서 나온 진리가 가장 위대하다. 사람의 마음은 만고의 기준이다.
* 심해탈` 心解脫, cetovimutti -- 해탈에는 혜해탈(慧解脫)과 심해탈(心解脫), 신해탈(信解脫)이 있다. 심해탈은 마음을 통한 해탈이다. 선정(禪定)으로 탐욕을 소멸시켜 그 속박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즉 구체적으로는 마음의 집중(삼매)를 통한 해탈이란 의미이니, 탐욕을 끊은 결과로 애욕을 여의고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자유경(自由境)에 노닐 수 있음을 말한다.
수행을 통해 육근이 ‘나’가 아니라고 지적(知的)으로 해탈했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는 그것에 대한 집착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나’가 아니라는 것을 직관(혜해탈)했다 하면, 그 다음에는 그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집착심을 없애야 된다. 무엇으로 집착심을 없애느냐, 바로 삼매, 즉 바른 선정(禪定)을 통해서 없애야 한다. 바른 선정을 통해서 집착심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면 그 때의 상태가 심해탈(心解脫)이다.
→ 혜해탈(慧解脫), 신해탈(信解脫)
* 10계` 십계` 十戒 -- 십계(十戒)에는 사미(沙彌) 사미니(沙彌尼)가 지켜야 할 10계, 보살이 지니는 10정계(淨戒), 보살(菩薩)이 중생에게 지키게 하는 10계, 천태종(天台宗)의 10계, 10선계(善戒),
10중금계(重禁戒) 등이 있다.
이 중 소승에서 설하는 사미 사미니의 십계는
① 살생하지 말라, ② 훔치지 말라, ③ 음행하지 말라, ④ 거짓말하지 말라,
⑤ 술 마시지 말라, ⑥ 향수나 꽃다발로 바르거나 치장하지 말라,
⑦ 노래와 춤을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 ⑧ 사치스럽고 화려한 자리에 앉거나 눕지 말라,
⑨ 때 아닌 식사를 하지 말라, ⑩ 금이나 은 등의 보물을 받거나 비축하지 말라.
속인이 지켜야 할 십계는 소승과 대승이 함께 설하는 십선계(十善戒)가 있다. → 10선계 .
* 십계` 十界 -- 십법계(十法界)라고도 하는데,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아수라계 인간계 천상계 ?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를 말한다. 이 중에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계, 천상을 한데 모아 ‘육도(六道)’, 성문, 연각, 보살, 불계를 한데 모아 ‘사성(四聖)’이라고 한다. 따라서 십계를 '육범사성(六凡四聖)'이라 칭하기도 한다.
* 십대제자` 10대제자` 십대` 10`
지혜제일 智慧第一 ; 사리불 또는 사리자라고 한다.
신통제일 神通第一 ; 마하목건련.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했다.
두타제일 頭陀第一 ; 마하가섭. 소욕지족(少欲知足)하며 항상 두타행을 했다.
천안제일 天眼第一 ; 아나율. 밤낮으로 정진하다 눈이 멀었지만 지혜의 눈인 천안통을 얻었다.
해공제일 解空第一 ; 수보리. 지혜가 총명해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설법제일 說法第一 ; 부루나. 부루나미다라니자의 약칭으로 부루나의 설법을 듣고 불법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논의제일 論議第一 ; 마하가전연. 뛰어난 언변과 논리 정연한 말솜씨로 불법을 널리 펼쳤다.
지계제일 持戒第一 ; 우파리. 십대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노예 출신이고, 이발사였다.
밀행제일 密行第一 - 라후라. 부처님의 친아들.
다문제일 多聞第一 ; 아난다. 부처님 시자라서 누구보다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
* 10력 십력` 十力 -- 부처님께서 일체를 요지(了知)하는 열 가지의 십력(心力).
1) 바른 도리와 그렇지 않은 도리를 판별하는 지혜의 힘
2) 선악업과 그 과보를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업인(業因)과 이숙과보(異熟果報)의 관계를 다 안다는 것이니, 즉 부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얻은 업의 과보에 대해 그 이유 원인을 다 안다는 것이다.
3) 4선. 8해탈. 3삼매 등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4) 중생의 근기가 높고 낮음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5) 중생의 성류(性類)가 각기 다르므로 그들이 주하는 세간도 각기 다르나 부처님께서는 이를 다 아신다.
6) 중생의 의락(意樂)에 여러 가지 차별이 있으나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7) 중생의 근기란 제각기 달라 수없는 상하 우열의 계층이 있으나 부처님께서는 이를 다 아는 힘.
8) 중생의 숙명을 다 아는 지혜의 힘.
9) 초인간적인 천안(天眼)으로 중생의 나고 죽음을 보고 천함과 고귀함. 행과 불행들을 다 각각 그 업에 따라 다 아는 지혜의 힘.
10) 일체의 번뇌가 다한 것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부처님은 중생의 갖가지 번뇌, 성향, 수행 등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지혜의 힘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에게는 이렇게 십력(十力)이 있으므로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 십문화쟁론` 十門和諍論 -- 원효 사상의 집약서이다.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요 내용을 미루어보면, 백가(百家)의 이론(異論)을 모아서 십문(十門)으로 분류해 난점(難點)을 들어 판결하고, 이점(異點)을 모아 정리해 화회(和會)함으로써 일승불교(一乘佛敎)를 건설하고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 십바라밀` 十波羅蜜 -- 육바라밀에 아래와 같은 바라밀을 더한 것이다. → 육바라밀
- 방편바라밀(方便波羅密) -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사람들의 수준에 맞게 방편과 수단을 이용해, 혹은 여러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衆生)을 제도하는 일. → 방편바라밀(方便婆羅蜜)
- 원바라밀(願波羅密) - 원(願)이란 욕망이 아니라 공에 바탕 한 이타적 중생구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바람이요 순수의지이다. 보살은 중생구제를 하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원바라밀을 실현해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 원바라밀(願波羅蜜)
- 역바라밀(力波羅密) - 잡념이나 망상에 휘말리지 않고 악마(惡魔)의 유혹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다. 그래서 원력(願力)이라고도 한다. → 역바라밀(力波羅密)
- 지바라밀(智波羅密) - 여기서 지(智)란 육바라밀에서의 반야바라밀의 지혜가 아니라 구체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보살이 여러 바라밀을 실행함에 있어서 여러 지식들을 지혜의 힘으로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 바라밀(智波羅密)
* 십법계` 十法界) → 십계(十界)
* 10사` 십사` 十使 -- 5둔사(五鈍使)와 5리사(五利使)를 합쳐 10사라 한다. 여기서 ‘사(使)’는 번뇌란 뜻이다. 그리하여 근본번뇌에는 탐(貪), 진(瞋), 치(癡), 만(慢:거만), 의(疑), 견(見:삿된 소견)의 6번뇌가 있고, 이 중 견(見)을 다시 5견으로 나눈다. → 오견(五見), 오둔사(五鈍使), 견혹(見惑)
* 14무기` 십사무기` 十四無記 --석가모니께서는 형이상학적인 희론(戱論)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계셨다. 불교 초기 경전에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희론의 대표적인 것이 십사무기설(十四無記說)이다. 즉, 다음과 같은 열네 가지 문제에 관한 것이다.
- 세계는 상(常)인가, 무상(無常) 인가,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 세계는 유한(有限)인가, 무한(無限)인가, 유한이며 무한인가, 유한도 아니고 무한도 아닌가?
- 정신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여래는 사후에 유인가, 무인가, 유이며 무인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가?
이런 문제에 대해 붓다는 답변을 않고 침묵했다. '무기(無記, a-vyakarana)'는 해답이 없다는 말이다. 붓다가 이렇게 답변을 삼가 한 이유는 불교가 본래 현실 세계의 관찰에서부터 시작하는 기본적인 입장 때문이라는 것을 그 이유의 하나로 들 수가 있다. 만동자에게는 열반과 깨달음에 이르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수행상의 이유가 제시됐다. 어떤 경우에는 오온에 대해 무지하므로[잡아함 권 34] 그런 희론과 집착이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최승한 이유는 역시 십이연기설에서 발견된다. 연기한 것은 유와 무의 두 끝을 떠난 중도적인 입장이다. 그와 같이 단(斷)과 상(常), 일(一)과 이(異), 자작(自作)과 타작(他作) 등의 두 극단도 초월해 있다.
〈전유경(箭?經>에는 붓다의 실천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가 들어 있다. 이 경에서 붓다는 14무기에 대해서, 사성제(四聖諦)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14무기의 질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열반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때문에 자신은 항상 사성제를 가르치고 말할 뿐 14무기에 대해서는 가르치거나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 무기(無記)
* 십선계` 十善戒 -- 십선계란 선한 결과를 초래할 인간의 주요한 행위, 즉 신체적 활동에 관한 것 3종, 언어의 표현에 관한 것 4종, 마음의 동기에 관한 것 3종으로 분류해 일상적인 실천덕목으로 삼은 것이다. 십선업도(十善業道)라고도 불린다. 보살계라고 하는 대승계의 대표적인 계율이다. ①살생하지 말라. ②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③잘못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거짓을 말하지 말라. ⑤이간질을 하지 말라. ⑥사나운 말을 하지 말라. ⑦실없고 잡된 말을 하지 말라. ⑧아끼어 탐내는 마음을 지니지 말라. ⑨성내거나 원한된 마음을 지니지 말라. ⑩잘못된 소견을 버려라. → 10계
* 십송률` 十誦律 --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율장(律藏). 후진(後秦=姚秦)에서 5세기 초 구마라습, 불야다라(弗若多羅), 비마라차(卑魔羅叉), 담마류지(曇摩流支) 등이 번역. 61권으로 돼 있으며, 전체의 내용이 10송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일컬음.
* 십승관법` 十乘觀法 -- 천태종에서 말하는 10종의 관법(觀法)을 말한다. ‘승(乘)’이라는 것은 10법이 수행자를 깨달음에 이르도록 실어 나르는 탈 것이라는 의미이다. 10종의 관법은 관불사의경(觀不思議境), 기자비심(起慈悲心) 등의 열 가지 방법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수행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의미는 아니고 수행자의 수준에 따라 상근기(上根機)는 관부사의경(觀不思議境)을 닦는 것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으나 중근기(中根機)는 제6법까지 닦아야 하며, 하근기(下根機)는 제10법까지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법은 중국 수나라의 지의(智?)가 체계화시켰으며, 고려의 제관(諦觀)도 심도 있게 해설했다. 이 관법은 원교일승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갖추고 있으며, 초발심 수행자의 지침으로서 수행자를 깨달음으로 이끈다고 한다.
* 십신` 十信 -- 보살이 처음 닦아야 할 열 가지 마음가짐. 십심(十心), 혹은 십신심(十信心)이라고도 한다.
1) 신심(信心) -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는 위(位).
2) 염심(念心) - 염지(念持)해서 잊는 일이 없는 위.
3) 정진심(精進心) - 한결같이 선업(善業)을 닦는 위.
4) 정심(定心) -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수행하는 위.
5) 혜심(慧心) - 제법이 일체공(一切空)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위.
6) 계심(戒心) - 보살의 청정한 계율을 수지하고 실수를 범하지 않는 위.
7) 회향심(回向心) - 몸에 닦은 선근(善根)을 보리?깨달음에 회향(回向)하는 위.
8) 호법심(護法心) - 번뇌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방호하고 불법을 지키는 위.
9) 사심(捨心) - 공리(空理)에 주(住)하여 집착이 없는 위.
10) 원심(願心) - 여러 가지의 청정한 원(願)을 수행하는 위.
* 십심` 十心 -- 보살이 지녀야 할 열 가지 마음가짐.
1) 대지등심(大地等心) - 모든 중생에게 온갖 청정한 일을 하도록 하는 대지와 같은 마음.
2) 대해등심(大海等心) - 모든 부처의 한량없는 지혜를 지니는 바다와 같은 마음.
3) 수미산왕등심(須彌山王等心) - 모든 중생을 위없는 청정한 일에 머물게 하는 수미산왕과 같은 마음.
4) 마니보심(摩尼寶心) - 모든 번뇌를 떠나 마음이 청정하여 마니 보배와 같은 마음.
5) 금강심(金剛心) - 모든 현상을 꿰뚫어 아는 금강과 같은 마음.
6) 견고금강위산심(堅固金剛圍山心) - 마음이 견고해 모든 악마와 외도를 부수는 금강위산과 같은 마음.
7) 연화등심(蓮華等心) - 온갖 속된 일에 물들지 않는 연화와 같은 마음.
8) 우담발화등심(優曇鉢華等心) - 우담발화가 아주 희귀하듯, 오랜 세월에도 지니기 어려운 마음.
9) 정일등심(淨日等心) -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소멸시키는 맑은 햇빛과 같은 마음.
10) 허공등심(虛空等心) - 모든 중생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대한 허공과 같은 마음.
* 10업 십업` = 10종류의 선행을 총칭한 십선업(十善業)을 일컫는다. 십악(十惡)의 반대말임. 십선도(十善道), 혹은 십선업도(十善業道)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몸, 입(언어), 마음의 3종으로 구분하고, 십선이라는 것은 신삼(身三), 구사(口四), 의삼(意三)의 악행(십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즉,
- 신체에서 ①살생(죽이는 것), ②유도(훔치는 것), ③사음(남녀의 관계의 부정)을 하지 않고,
- 말에서는 ④망언(거짓말을 하는 것), ⑤양설(사이를 이간질 하는 것), ⑥악구(험담을 하는 것), ⑦기어(함부로 말하는 것)를 행하지 않으며,
- 의에서는 ⑧탐욕(탐하는 것), ⑨진에(화내는 것), ⑩사견(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의 각각을 행하지 않는 것인데, 이 십선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십선계라고 한다. → 10선계
* 십여시` 十如是 --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 갖추어져 있는 열 가지 성질. 우주의 모든 형상이 열 가지 범주 안에 있다는 뜻. 즉, 모든 것이 10가지 category로 존재하고 생기한다는 것. 이는 천태종의 중요한 세계관으로 천태종의 모든 가르침이 시작되는 근원이기도 하다. <묘법연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말이다.
1) 여시상(如是相) - 존재 하는 모든 것은 존재 그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다.
2) 여시성(如是性) - 태어난 모든 것은 나름의 특성이 있다.
3) 여시체(如是體) - 생겨난 것은 모두 나름의 주체(본체)가 있다.
4) 여시력(如是力) - 존재 하는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쓰임세가 있다.
5) 여시작(如是作) - 양과 음이(+/-) 만나서 여러 가지 에너지를 만들고 작용한다.
6) 여시인(如是因) - 불과(佛果)를 성취하는데 직접적인 원인.
7) 여시연(如是緣) - 모든 행에 따르는 간접적 원인.
8) 여시과(如是果) - 모든 행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다.
9) 여시보(如是報) - 인, 연, 과에 의해 그 갚음을 받는 것.
10)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 본말(本末)은 10여시 가운데 첫 번째인 여시상(如是相 : 형상, 모습)을 가리키고 말(末)은 10여시의 아홉 번째인 여시보(如是報 : 마지막 과보)를 가리킨다. 그리고 구경등(究竟等)은 구경 곧 마지막으로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실상이고 본체의 경지를 뜻하는 말이다.
* 16관법` 十六觀法 -- 십육관이라고도 한다. 관법이란 불교수행법의 기본으로서 관심(觀心)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말로서, 불교에서 극락왕생을 위해 극락세계를 관상(觀想)하는 관법이다. 즉, 석가모니가 마가다국의 빈비사라(頻毘娑羅)왕의 왕후 위제희 부인(韋提希夫人)에게 극락을 보여주고 그곳에 태어나는 방법을 가르칠 때 설한 것인데, 16관법이란 극락에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열여섯 가지로 나눈 것이다.
① 해를 생각하는 관[일상관(日想觀) - 지는 해를 보면서 극락정토를 관상하는 것,
② 물을 생각하는 관[수상관(水想觀)]- 극락의 대지(大地)가 넓고 평탄함을 물과 얼음에 비유하여 관상하는 것,
③ 땅을 생각하는 관[지상관(地想觀)]- 극락의 대지를 분명하게 관상하는 것,
④ 나무를 생각하는 관[보수관(寶樹觀)]- 극락에 있는 보배의 나무를 관상하는 것.
이외에도 보지관(寶池觀), 보루관(寶樓觀), 화좌관(華座觀), 상관(像觀), 진신관(眞身觀), 관음관(觀音觀), 세지관(勢至觀), 보관(普觀), 잡상관(雜想觀), 상배관(上輩觀), 중배관(中輩觀), 하배관(下輩觀) 등의 16가지이다. 이러한 열여섯 가지 관을 관상할 때 정토에 나아가게 되고, 정토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싹트게 되며, 주변의 사물들도 정토의 일부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 12분경` 十二分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 내용이나 서술의 형식에 따라 12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12부경(部經), 십이분교(十二分敎), 십이분성교(十二分聖敎)라고도 한다. 이 분류법은 불경의 최초 편찬과 더불어 이루어진 것이다.
① 수다라(修多羅) - 경(經). 계경(契經) ? 법본(法本)이라고도 하며, 산문체의 경전을 말함.
② 중송(重頌) - 응송(應頌)이라도 하며, 산문체의 경문 뒤에 그 내용을 운문으로 노래한 것.
③ 수기(授記) - 경의 말뜻을 문답식으로 해석하고, 제자들의 다음 세상에서 날 곳을 예언.
④ 게송(偈頌) - 고기송(孤起頌)이라고도 하며, 4언 ? 5언 ? 7언의 운문으로 구성된 것.
⑤ 무문자설(無問自說) - 아미타경 같이 남이 묻지 않는데도 붓다가 스스로 이야기한 말.
⑥ 인연(因綠) - 경전 중에서 붓다를 만나 법(法)을 들은 인연 등을 설한 것.
⑦ 비유(譬喩) - 경전 중에서 비유로써 은밀한 교리를 명백하게 풀이한 부분.
⑧ 본사(本事) - 붓다나 제자들의 지난 세상에서의 인연을 말한 부분.
⑨ 본생(本生, 자타카) - 붓다 자신의 지난 생에서의 보살행 (菩薩行)을 말한 부분.
⑩ 방광(方廣) - 방등(方等)이라고도 함. 광대한 진리를 말한 부분.
⑪ 미증유(未曾有) - 희유법(希有法)이라고도 함. 붓다가 보인 여러 가지 신통력을 말한 부분.
⑫ 논의(論議) - 교법(敎法)의 이치를 논하고 문답한 경문 등으로 돼 있다.
* 12연기` 十二緣起 --연기설(緣起說)을 12지분(支分)으로 정리한 것. 12인연이라고도 한다.
① 무명(無名, avidya) -- 무명은 ‘명(明)’이 없다, 즉 지혜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부처님의 올바른 법, 즉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이며, 미(迷)의 근본이 되는 무지로서 사물의 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잘못된 일념을 가리킨다. 이 무명 일념이 일체번뇌를 낳고, 번뇌로 말미암아 악업을 짓고, 악업으로 말미암아 고(苦)의 결과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무명은 일체번뇌의 근본인 동시에 악업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② 행(行, samskara) -- 무명이 있으면 이에 연해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행이란 육체적인 행동 뿐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거나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의도된 행위’를 일컫는다. 결국, 행은 인간의 근원적인 행위로서의 업(業, karma)을 말한다.
③식(識, vijnana) -- 행을 연해 식이 일어나는데, 식은 분별하는 인식작용을 말한다. 무명으로 인해 무아(無我)를 알지 못해 ‘나’라는 것을 세움으로 인해 ‘내가 아닌 가아(假我)’가 성립한다. 이때에 가아를 ‘나’로 인식하게 되는 주체가 식이다.
④ 명색(名色, nam-rupa) -- 식을 연해 명색이 있게 되는데, 명색의 산스크리트어 n?mar?pa에서, na-ma는 명(名), ru-pa는 색(色)을 말한다.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심식(心識)을 명이라 하고 물질적 존재인 육체를 색이라 한다. 즉, 명(名)은 비물질적인 정신(마음)을 가리키고, 색(色)은 물질적인 몸을 가리킨다. 따라서 명색은 몸과 마음을 함께 말함이다.
⑤ 육처(六處, sad-ayatana) -- 육입(六入) 혹은 육근(六根)이라고도 하며, 인간 실존의 근저를 이루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인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를 말한다.
⑥ 촉(燭, samsparsa) -- 육처에 의해서 그 사물을 인식하게 되면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燭) ? 법(法)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곧 시각 ? 청각 ? 후각 ? 미각 ? 촉각 ? 지각이라고 한다. 모든 중생은 육처 -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 - 로 인식하게 되면 반드시 촉(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으로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 촉이란 접촉을 말하는데, 눈으로 보는 것도 접촉으로 본다.
⑦ 수(受, vedana) -- 촉에 의해서 어떤 사물의 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이 발생하게 돼 그것을 느끼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苦(괴로움-싫다), 樂(즐거움-좋다), 不苦不樂(괴롭지도않고 즐겁지도 않음-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의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의 느낌이나 감정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을 수라고 한다.
⑧ 애(愛, trsna) -- 수에 의해서 괴로움(싫음), 즐거움(좋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싫지도 좋지도 않음)의 3가지 감정 중에 어느 한가지의 감정이 발생하게 되면,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 세 가지 감정 중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만을 끝없는 갈증 같은 욕심으로 갈애(渴愛)하게 되고, 그 대상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그 대상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 붓거나 추구한다. 그것을 애라고 한다. 여기서 애는 자비와 같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갈애)으로서의 사랑이다.
⑨ 취(取, upadana) -- 애에 의해 그 어떤 대상에게 사랑을 쏟아 부었을 때 그 대상이 자신에게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추구된 즐거움의 대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어떤 일을 취하게 된다. 그것을 취라고 한다.
⑩ 유(有, bhava) -- 취에 의해서 즐거움의 대상을 취하려고 노력한다면, 모든 중생은 그 소유하는 작업을 하게 된 대상을 결국 자신이 소유하게 된다. 그것을 유라고 한다. 생사(生死)하는 존재 그 자체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⑪ 생(生, jati) -- 유에 의해서 그것을 있다, 또는 된다 하는 것으로 소유하게 되면 그 사물이나 생각이 생성되는 것이다. 생이란 단어는 모든 존재의 출생, 태어남을 뜻한다.
⑫ 노사(老死, jara-marana) -- 생에 의해서 그 대상이 태어나게 되면 그대상이 무엇이라도 결국 닳아 없어지거나 사그라지거나 늙고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노사라고 한다.
* 12처` 十二處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境)을 합해 12처라 하는데, 불교에서는 이 세상 현상계의 모든 것이 이 12처에 포함된다고 본다.
* 십주` 十住 -- 보살이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 진리에 안주하는 단계라는 뜻으로 주(住)라고 한다.
* 십주비바사론 十住毘婆沙論 -- 용수(龍樹, AD 150∼250경)가 <화엄경>의 십주품을 해설한 불교서적. <화엄경>에서 가장 중요한 십지(十地)를 해설한 것이다. 책 명칭의 십주는 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10단계를 말한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이 5세기 초에 한역했다.
* 십지` 十地 -- 십지란 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10단계를 말하는데, <화엄경>에서 천명한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10지와 천태종(天台宗)의 통교(通敎) 10지가 있다. 화엄종의 10지와 천태종의 통교 10지는 약간 차이가 있어서, 화엄종의 10지는 보살의 완숙한 경지를 설명한 것이고, 천태종의 10지는 초발심(初發心)의 단계에서 부처의 지위까지를 10단계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 통교(通敎) 10지(地), 화엄(華嚴) 10지(地)
* 십지경` 十地經 -- <화엄경(華嚴經)> 중 십지보살(十地菩薩)이 수행(修行)하는 상태를 말한 십지품(十地品)을 말함. 십주경(十住經)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교종선(敎宗選)의 시험과목으로 채택됐던 중요한 경전이다.
* 십지품` 十地品 -- <화엄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십지품은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므로 1~2세기경 가장 빨리 성립됐다. 십지품은 십지의 제1환희지(歡喜地)에서 제10법운지(法雲地)까지 십지보살들의 수행 경지에 대한 설명이다.
* 십팔계` 十八界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境)을 합해 12처라 하는데, 이 12처(處)에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의 6식(識)을 더한 것을 18계라 한다.
* 십팔공` 十八空 --불교에서 공(空)을 그 본체와 작용을 18가지로 분류 ? 관찰한 것.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제3권 및 <대집경(大集經)> 제54권에 나오는 말이다.
1) 내공(內空), 2) 외공(外空), 3) 내외공(內外空), 4) 공공(空空), 5) 대공(大空),
6)제일의공(第一義空), 7) 유위공(有爲空), 8) 무위공(無爲空), 9) 필경공(畢竟空), 10) 무시공(無始空),
11) 산공(散空), 12) 성공(性空), 13) 자상공(自相空), 14) 제법공(諸法空), 15) 불가득공(不可得空), 16) 무법공(無法空), 17) 유법공(有法空), 18)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으로 나누어 설하고 있다.
* 십행` 十行 --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보살이 수행하는 열 가지 이타행을 말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1) 환희행(歡喜行) - 남에게 베풀어 기쁘게 함.
2) 요익행(饒益行) -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함.
3) 무에한행(無瞋恨行) - 인욕을 닦아 성내지 않고 참음.
4) 무진행(無盡行) - 끊임없이 가르침을 구하고 중생을 제도함.
5) 이치란행(離痴亂行) - 바른 생각을 하여 어리석지 않고 혼란스럽지 않음.
6) 선현행(善現行) - 청정한 행위를 하여 중생을 교화함. 항상 불국(佛國)의 안에서 생(生)을 시현(示現)한다.
7) 무착행(無著行) -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음.
8) 존중행(尊重行) - 행하기 어려운 청정한 행위를 존중해 그것을 성취함. 난득행(難得行)이라고도 한다.
9) 선법행(善法行) - 바른 가르침을 지키고 정법을 호지(護持)함.
10) 진실행(眞實行) - 가르친 대로 행하고 행한 대로 가르쳐 말과 행동이 일치함.
* 십회향` 十回向 -- 회향이란 스스로 쌓은 선근(善根)과 공덕(功德)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자타(自他)가 함께 불과(佛果)의 성취를 기하려는 것을 말한다.
10회향이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位)가운데서, 제31위에서 제40위까지의 단계. 지금까지 수행해 오던 것을 방향을 돌려 궁극적으로 지향해 나아가야 할 수행의 방향 열 가지를 제시하고, 이에 따라 집중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중생에게 돌리는 단계이다.
1) 구호일체중생난상회향(救護一切衆生難相廻向) - 중생을 구제하지만 중생상을 떠난 회향임.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중생이 번뇌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히 여겨 구제를 하지만 참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은 중생의 번뇌를 자기의 번뇌로 여겨서 교화하려는 보살과 중생이 하나가 될 때에 가능한 단계이다.
2) 불회회향(不懷廻向) - 무너지지 않는 회향임. 모든 차별현상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그대로 공하다고 보는 회향이다.
3) 등일체제불회향(等一切諸佛廻向) - 마음에 중도의 바른 생각이 있으므로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게 하는 회향이다.
4)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 - 모든 세계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기를 발원하는 회향이다.
5)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 - 모든 곳의 부처님을 공양하는 공덕과 모든 중생에게 진여의 공덕을 돌려주어도 다함이 없는 공덕을 쌓는 회향이다.
6) 입일체평등선근회향(入一切平等善根廻向) - 선과 악이 모든 진여와 같다고 개현(開現) 되는 회향이다.
7)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 모든 중생을 선악으로 구별하지 않고 누구나 하나의 불자라고 보므로 악인이라 해서 멀리하지 않고 선인이라 해서 편애하지 않는 마음으로 접촉하는 회향이다.
8)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 - 선악의 유무를 다 같이 진여의 모습으로 보는 회향이다.
9) 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着解脫廻向) - 차별현상에서 평등진여를 보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차별된 모습에서 인연하면서도 그것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회향이다.
10)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 - 중도 진여를 관함으로서 한량없는 모습을 그 참모습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회향이다.
* 쌍차쌍조` 雙遮雙照 -- 쌍차쌍조는 중도(中道)를 설명하는 용어 중에 하나이다. 천태종의 지자대사(智者大師) 지의(智?) 스님이 이것으로 중도를 설명했다고 한다.
쌍(雙)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의 양변을 말하는 것이다. 유와 무, 이것과 저것, 선과 악 등 일체의 차별상이다. 쌍차(雙遮)라는 것은 이 양변이 서로를 막아서 서로를 숨기는 것, 즉 서로의 소멸을 말한다. 쌍조(雙照)라는 것은 그 반대로 이 양변이 서로 비추어서 이것은 저것을, 저것은 이것을, 서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서로 드러남이란 사성제의 집제(集諦)이고, 숨기는 것이란 멸제(滅諦)이다.
쌍차(雙遮)로써 부정을 말했다면 쌍조(雙照)로써 긍정을 말하고 있다. 차(遮)는 막아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을 말하고, 조(照)는 비추어서 전체를 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중도(中道) 공식은 앞에서 차(遮)하면 뒤에서는 반드시 조(照)하는 것이어서, 앞에서 부정을 하면 뒤에서는 반드시 긍정을 해 부정은 분명히 긍정을 전제로 하고 긍정은 부정을 전제로 해서, 쌍차쌍조(雙遮雙照)해서 차조동시(遮照同時)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한 면만 강조해서는 중도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 쌍차쌍조란 양변의 극단을 여윈, 그런 말과 일맥상통하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시끄러움은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불협화음에서 생긴다. 하모니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처럼, 적당한 타협과 상생이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 지극한 중도는 지혜와 자비로 귀결되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쌍차쌍조(雙遮雙照)론을 통해 갈등과 모순, 대립과 투쟁으로 점철된 현실을 통섭(通攝) 내지 원융(圓融)시키고자 했던 것이며, 그것은 극단적인 흑백논리를 초월해 모든 것을 포용하고 화해시키고자 했던 일종의 구원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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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마` Agama -- 고대 인도에서는 전해 오는 성인의 말씀을 ‘아가마’라고 했고, 힌두교 용어로는 ‘전승된 성전(聖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붓다의 교설을 집성한 것을 ‘아가마’라고 불렀으므로 이를 음역해서 <아함경(阿含經)>이라 했다.
* 아견` 我見 -- 오견(五見)에서 ‘신견(身見)’과 같은 말. ‘나’라고 하는 견해. 자아라고 하는 견해. 나에 변하지 않는 고유한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 자아(自我)에 변하지 않고 항상 독자적으로 존속하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함. → 아소견(我所見), 오견(五見)
* 아공` -- 공을 다시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이다.
- 아공(我空)은 연기에 의해 지수화풍 사대와 오온이 임시적으로 결합된 가짜 ‘나’가 실재한다고 하는 아집(我執)을 부정하는 것이며,
- 법공(法空)은 객관세계의 일체법이 공함을 모르고 여기에 집착하는 법집(法執)을 깨뜨리는 것이며,
- 구공(俱空)은 이러한 아공, 법공마저 버리고 비로소 제법의 본성에 계합함을 말한다.
* 아귀도` 餓鬼道 -- 육도 가운데 아귀도는 지옥도 다음으로 고통이 많은 세계이다. 음식에 탐욕을 부린자, 시기 질투심을 가진 자가 이 세계에 떨어진다. 아귀도의 책임자가 염라대왕이다.
* 아나다 핀다다, 아나타 핀다다, 아나타 핀디카 [산스크리트 an?thapi??ada anithapindada 팔리 an?thapi??ika =
1. 사위성(舍衛城)의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구입한 동산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붓다에게 바친 수달(須達, sudatta)의 별명. 외로운 이에게 항상 옷과 음식을 베풀었으므로 붙여진 별명.
2. 한역해서 급고독(給孤獨)이라 함. 부처님 생존 당시 중인도의 사위국(舍衛國;코살라국)의 장자이자 대신이었던 수달(須達, sudatta/수다타)의 별명. 부처님께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드린 사람이다. 부처님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 수보리(須菩提/수부티/subhuti)가 바로 아나타 핀다다의 조카이다. → 급고독(給孤獨)
* 아나율` 阿那律 산스크리트에서 dd’이면 ㅅ’아닌 ㄷ’ 이어야한다. [아니룻다’가 아니고] 아니룯다, /Aniruddha)존자 -- 아누룯다(Anuruddha)라고도 한다. 아나율는 석가족 출신으로 아버지는 [슛도다나’가 아니고] 슏도다나 (Suddhodana)대왕의 동생인 쑤꼬다나였다. 따라서 아나율은 부처님과는 사촌지간이다. 말하자면 그는 석가모니의 작은 아버지 쑤꼬다나[감로반왕(甘露飯王)]의 아들이었다.
아나율은 어느 날 부처님 앞에 앉아 졸다가 부처님에게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 후 밤낮으로 자지 않고 수행 정진하다가 그만 눈이 멀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눈은 잃었지만 참 지혜의 눈인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 일컫는 부처님 10대 제자가 됐다.
* 아나율 팔대인념` 八大人念 -- 아나율(阿那律)존자는 8가지 수행자의 조건을 제시해서 그것을 구도자의 표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것이 팔대인념(八大人念) 혹은 팔대인각(八大人覺)이라 하는데, 풀어보면 대인이 되기 위한 8가지 마음가짐이라는 뜻이다.
첫째. 지족(知足)할 줄 아는 마음가짐(知足者)
둘째. 시끄럽지 않고 적정한 곳에 머무는 마음가짐(閑居者)
셋째. 욕심 없는 마음가짐(小欲者)
넷째. 계율을 지키는 마음가짐(持戒者)
다섯째. 생각이 고요한 마음가짐(三昧者)
여섯째. 지혜로운 마음가짐(智慧者)
일곱째. 많이 들으려는 마음가짐(多聞者)
열덟째. 정진하는 마음가짐(精進者)
* 아나함` 阿那含 -- 성문의 수행의 단계인 사과(四果) 중 제3단계임. ‘불환(不還)’, ‘불래(不來)’, ‘출욕(出欲)’ 등으로 번역하며, ‘결코 돌아오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아나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욕계의 번뇌를 모두 끊어 완전히 벗어난 성자이기에 ‘출욕’이라고 하며, 5욕(五慾)을 완전히 벗어나고, 죽은 다음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뿐 다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불환’또는 ‘불래’라 한다. 즉,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자들은 우리가 극락(極樂)이라 일컫는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서 다시는 이보다 더 낮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여기서 열반에 든다고 한다.
→ 사향사과(四向四果), 정거천(淨居天)
* 아난다` 아난타` (Ananda, 阿難陀) -- 아난(阿難)이라고도 함. 석가모니의 4촌 동생으로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이며, 십육나한(十六羅漢)의 한 사람임.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의하면, 아난다는 용모가 출중했는데, 이것이 출가 후 아난다가 많은 부녀자들로부터 유혹을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석가가 성도 후 귀향했을 때, 난다(難陀) ? 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그를 따라 출가했다고 한다.
20여년간 석가모니 곁에서 시중을 들었으므로 석가의 말을 가장 많이 듣게 돼,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불렸다. 견문(見聞)이 많고 기억력이 좋아 불멸(佛滅) 후에 불경의 대부분이 이 사람의 기억에 의해 결집됐다. 따라서 후대에 경(經)이 전해지도록 한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 아뇩다라삼먁삼보리` Anyokdhara Samyak Sam Bodhi -- 이를 뜻으로 번역하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을 뜻한다. 즉, 대철대오(大徹大悟)란 뜻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이를 소리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인데,
안(An) : 무(無), 부정형태
욕다라(yokdhara) : 상(上), 높다.
아누다라 ; 지고무상하다는 뜻,
삼(sam) : 정(正), 바르다.
먁(yak) : 평등(平等), 비교하다
삼(sam) : 정(正), 바르다
보리(bodhi) : 각(覺), 깨달음
이를 종합해 보면 ‘무상정등정각’이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대자연의 법’을 일컫는 말이다.
* 아덕` 我德 --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의 ‘아(我)’로서 진아(眞我)를 뜻하며, 망집의 아(我)를 벗어난 무애자재(無碍自在)한 본성의 덕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즉, 외부로 부터의 아무런 방해나 속박을 받지 않는 일체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신통묘용(神通妙用)의 자유자재의 덕을 일컬음이다.
* 아도` 阿道 -- AD 374년(고구려 소수림왕 4년) 동진(東晉)으로부터 온 승려. 생몰연대 미상. 소수림왕은 아도(阿道)를 위해서 이불란사(伊佛蘭寺)를 세우고, 2년 전에 전진(前秦)에서 온 승려 순도(順道)를 위해 성문사(省門寺)를 세웠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눌지왕(재위 417~458) 때에 고구려로부터 신라의 일선군(一善郡:지금의 선산군)에 와서 모례(毛禮)라는 사람의 집에 있으면서 불교를 전한 묵호자(墨胡子)가 바로 아도와 동일인이라고 하지만 확실치 않다.
* 아디 붓다’ 가 아니고 아니붇다 (Adi Buddha) → 본초불
* 아라한` 阿羅漢, 산스크리트 arahan -- 소승(小乘)의 수행자들, 즉 성문승(聲聞乘) 가운데 최고의 이상상(理想像). 성문의 수행 단계인 사과(四果) 중 마지막 단계, 즉 아나함(阿那含)의 다음 단계인 최고의 경지.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 하기도 한다. 안과 밖이 항상 고요해 다툼이 없으므로 아라한은 언제나 무쟁삼매(無諍三昧) 속에 머무르고, 모든 번뇌를 다 끊어 마땅히 공양을 받을만한 분이기 때문에 ‘응공’이라 한다.
부처님의 직접 가르침인 초기불교에서는 수행자의 최고 단계였으나 대승불교에 와서 ‘보살’이 생겨 아라한을 나한(羅漢)이라 하며, 그 격이 보살 아래로 떨어졌다.
* 아뢰야식` 阿賴耶識 alaya vijnana -- 종자식(種子識),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인식활동을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다섯 가지 감각기관(5근/五根=5관/五官)이 인식하는 ‘전5식(前五識)’과 정신부분인 제6식인 의식(意識)을 합해서 6식(六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의 뿌리가 되는 것이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manas)이다.
말나식은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 제6식보다 한 단계 깊은 마음의 세계이다. 그리고 제7식 말나식보다 더 심층에 숨어있는 잠재의식이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이다. 제6식까지는 표층의식이고, 제7식과 제8식은 심층의식이요, 무의식이라 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아뢰야(alaya)는 ‘저장하다. 저장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무엇을 저장한다는 말인가? 종자(種子, bija)를 저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서 하는 생각과 행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로 변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업장(業藏=업의 창고) 혹은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즉 6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모든 작용이 제7식 말나식을 통해 아뢰야식으로 저장된다.
그리하여 아뢰야식은 모든 존재의 생명과 신체를 유지시켜 나가는 업력(業力)과 윤회의 심종자(心種子)가 저장돼 있는 곳으로 일생동안 끊어지지 않고 존재의 밑바탕에 붙어 있다가 알맞은 환경과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업력이 원동력이 돼 다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여기에 저장돼 있는 업에 의해 내생이 결정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 혹은 실체라고 하며, 이것을 아뢰야식 연기설(阿賴耶識緣起說)이라고 한다. → 말나식(末那識)
* 아말라식` 阿末羅識 Amala-vijnana = 암마라식(菴摩羅識)= 아마라식(阿摩羅識)= 제9식--- 인간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도 진화해 제8식 아뢰야식 이외에 반야(般若)의 지혜인 제9식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겐 의식인 제6식(六識)이 있고, 그 밑바탕에 제7식 말나식(末那識)이 있으며, 그 보다 깊은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제9식 암마라식이 있는데 그 자리가 이른바 불성(佛性)으로서 부처님께만 갖추어진 식이어서 제9식이 곧 부처라고 한다. 중국의 현장(玄?)이 9식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일반 중생이야 불성에 접근하기 힘들어서 제9식이 있으나마나 하므로 보통 제8식 아뢰야식만 논의하는 것이다.
* 아비달마품류족론 阿毘達磨品類足論 --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의 논사 세우(世友, 산스크리트어 Vasumitra)가 저술한 논서이다. 당(唐)나라 때 현장(玄?)이 한역했다.
* 아미타경` 阿彌陀經 = 대승불교 정토종(淨土宗)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중의 하나이다. 한역본은 3종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간결 유려한 구마라습의 번역본이 널리 독송되고 있으며, 석가모니가 자진해서 설한 무문자설경(無問自說經)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용은 석가가 기원정사에서 제자 사리불(舍利弗)을 상대로 해 아미타불과 그가 머물고 있는 서방정토(西方淨土)인 극락세계의 공덕과 장엄을 설명하고,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한다고 설법한 내용이 주요 골자이다.
* 아미타불` 阿彌陀佛 Amitabha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인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한다는 부처. 줄여서 미타(彌陀)라고도 하고, 무량광불(無量光佛) 혹은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아미타가 원래 산스크리트어 아미타브하(Amitabha:무량광) 및 아미타유스(Amitayus:무량수)라는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량광은 늘 무량수(無量壽)와 함께 말해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아미타의 아(阿)자는 무(無)의 뜻이며, 이것은 화신을 의미한다. 미(彌)자는 원만하다는 의미로서 보신을 의미하고, 타(陀)자는 법의 뜻으로서 법신을 의미하는데, 이처럼 삼신을 다 갖추고 있는 삼신일불(三身一佛)인 아미타불은 바로 우리의 참 자아(眞我)요 본래면목이다. 이 아미타불의 신앙을 중심으로 해서 성립된 것이 정토교(淨土敎)이다.
허나 소승불교계인 남방불교엔 아미타불이 없고, 인도의 어떤 유적지에도 아미타불에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페르샤 계통의 중앙아시아에서 태양신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부처로 보인다. → 무량광(無量光)
* 아바다나` 阿波陀那 산스크리트어 Avadana 비유/譬喩, 비유문학/譬喩文學 -- 부처님의 말씀은 정해져 있는 바가 없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진리로 가는 길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만큼 방편도 다양하다. 따라서 경전에도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는데, 그 형식과 내용에 따라 12 가지로 분류를 했다. 이것을 십이분경(十二分經)이라 하는데, 그 가운데 비유를 말한다. 이는 경 가운데서 비유나 우언(寓言)으로써 교리를 설명, 해석한 부분이다.
불교 경전에는 이 비유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며, 경에 따라서는 이 비유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경전도 있다. 알기 쉬운 예를 들어서 알기 어려운 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초기 경전의 율장(律藏) 안에 산재해 있는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해 별도로 편집된 문헌이다.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와 불교를 신봉했던 위대한 아소카 왕에 관한 이야기 등의 전설을 담고 있다. → 십이분경(十二分經)
* 아비달마` 阿毘達磨 Abhidharma 아비다르마 = 아비담마 abhidhamma 라고도 하며, 여기서 달마(阿毘達磨, dharma/다르마)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이고, 접두어 아비(abhi/阿毘)는 ‘최고의’ 또는 ‘에 대한’이란 의미라서 결국 ‘아비달마’란 부처님의 ‘최고의 가르침’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것’이란 의미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말하는 것으로 ‘논장(論藏)’이라 한다. 즉, 불교의 경전을 경(經) 율(律) 논(論)의 3장(三藏)으로 나눌 때에 논장(論藏), 즉 논부(論部)의 총칭이다.
부파불교시대에 많은 논(論)이 만들어지고, 그 쌓인 것이 후일에 정비돼 논장이 됐다. 따라서 부파불교시대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도 한다. 논장의 형식에는 모두 7가지가 있다. 이것을 아비담마(Abhidhamma) 칠론(七論)이라고도 한다.
① 담마상가니(Dhammasangani 法集論) -- ‘법의 모음’이라는 뜻으로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들이 열거됨.
② 위방가(Vibhanga 分別論) -- 부처의 가르침을 온(蘊), 처(處), 계(界), 근(根) 등 18가지로 분류해 설명.
③ 다뚜까타(Dhatukatha 界論) -- 여러 법들을 문답 형식으로 설명.
④ 뿍갈라빤나띠(Puggalapannatti, 八施設論) -- 여러 형태의 인간에 대한 질문과 답.
⑤ 까타왓투(Kathavatthu 論事) -- 여러 종파간의 다른 견해를 설명.
⑥ 야마까(Yamaka 雙論) -- 아비담마의 용어 해설서.
⑦ 빳타나(Patthana 發趣論) --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상세히 다루는 책. 논장 중 가장 방대하고 난해한 논서이다.
* 아비달마구사론` 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sa sastra =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 세친(世親) 지음,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라는 교리에 관한 논장의 백과사전식 해설서 성격임. 이것을 양 무제의 초청을 받아 중국에 온 진제(眞諦)가 한역한 것이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이고, 줄여서 <구사석론(俱舍釋論)>이라 한다. 그 후 당나라 때 현장(玄?)이 이를 다시 번역해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라 했고, 줄여서 <구사론>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진제의 번역을 구구사(舊俱舍)라 하고, 현장의 번역을 신구사(新俱舍)라 한다.
→ 구사론(俱舍論)
* 아비달마발지론 阿毘達磨發智論 → 발지론(發智論)
* 아비달마` 阿毘達磨 Abhidharma 불교 = 석존께서 열반에 드시고 100년 쯤 지나자 교단 내에서는 교리와 계율의 해석 문제를 놓고 논쟁이 일었고, 이에 따라 과거의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성향과 시대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보적 성향의 두 입장이 나누어지게 됐다.
이때 과거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을 상좌부(上座部), 그리고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대중부(大衆部)라 했고, 이들의 대립을 근본분열이라 한다. 이후 200~300년에 걸쳐 이들 두 파로부터 다시 분파가 생겨나 기원전 200년경에는 총 20여 개의 부파가 생겼다.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일컫는데, 이들 부파들은 각 교단마다 석존의 교리와 계율을 연구하고, 정리해서 방대한 논서(論書)를 작성하면서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 '논(論)'이라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비달마(abhidharma)’이므로 부파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도 한다. 따라서 아비달마불교의 특징은 풍부한 논서의 발달을 이룬 것이다. 대체로 아비달마불교를 소승불교라 하는데, 일부 대중부를 대승불교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아비달마순정리론 阿毘達磨順正理論 -- 4세기경 인도의 승려 중현(衆賢, Samghabhadra/상가바드라)이 세친(世親)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반박해서 쓴 책. 세친이 <구사론>에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취급한 데 비해, 이 책은 <구사론>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이를 비판함으로써 설일체유부의 이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다. ‘순정리론’에서 ‘정리(正理)’란, 유부의 정통 학설을 의미한다. 현장(玄?)의 한역본(漢譯本)이 있다.
* 아비달마장현종론 阿毘達磨藏顯宗論 -- 중현(衆賢) 지음,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취지를 밝힌 저술. 중현(衆賢)의 <아비달마순정리론>과 짝을 이룬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의 부분에서는 구사론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부분에서는 세친(世親)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해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당(唐)의 현장(玄?)이 한역했다.
* 아비담심론` 阿毘曇心論 -- 391년 설일체유부의 법승(法勝) 짓고, 동진(東晋) 시대의 인도승 승가제바(僧伽提婆)와 혜원(慧遠)이 한역했다. 작은 논(論)이지만 부파불교 시대에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조직화하는데 특기할 만한 공헌을 했다. 이 논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7장에서는 복잡하게 발달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연하게 조직하고 있다. →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
* 아비발치` 阿?跋致 산스크리트 avivartika -- 아유월치(阿惟越致)라고도 하는데, 불퇴(不退) 혹은 불퇴전(不退轉)으로 번역한다. 이는 반드시 성불(成佛) 함과 동시에 보살위에서 후퇴하지 않을 위치. 불도를 수행하는 과정에 여기까지 오면 절대로 후퇴할 염려가 없다는 경지이다. 그 후퇴하지 않을 보장이 ‘불방일(不放逸)’이다.
* 아비지옥` 阿鼻地獄 -- 여덟 지옥 가운데 최하층의 고통과 형벌기간이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아비’란 ‘사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순간도 쉴 새 없이 고통이 계속되는 지옥이란 말이다.
* 아사리` 阿牀梨 阿牀利 산스크리트 아사리아 acarya --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해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 불교 교단의 스승을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아사리라고 하면 은사(恩師) 법사(法師) 계사(戒師) 중 계사를 지칭하게 된다. 자격은 10회 이상의 안거(安居)를 마쳤고, 계율에 밝으며, 지혜와 복덕을 겸비해야만 한다.
여러 아사리가 있으며, 특히 삭발아사리는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이고, 출가아사리는 십계아사리라고도 하는데, 출가의식인 득도식(得度式) 때 10계를 일러주는 스승이며, 수계아사리는 갈마아사리라고 하는데 구족계(具足戒)를 주는 스승이다. → 갈마아사리
* 아사리판 = 몹시 어지러운 속세의 정치판을 '난장판'이라고 말한다. 개들이 진흙탕에서 물고 뜯으며 싸운다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벌어지는 판이 '개판'이다. 그리고 몹시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엉망인 상태를 우리는 '아사리판'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나오는 '아사리판'의 어원은 무엇일까?
불교에서 나와서 세속에서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은 꽤 많다. 이판사판은 '막다른 데에 이르러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말하는데 이 말도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아사리판에 대한 어원설은 대개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토박말 어원설이다. 아사리판은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아사리'는 토박이말 빼앗다의 옛말 '앗다(奪)'의 줄기 '앗- '에 관형사형 어미(매김꼴 씨끝) '-을'이 붙고 그 아래 사람을 나타내는 어미 '이'가 붙어 '앗을이'가 되고 이 말에서 '아사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빼앗을 사람이 많으니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 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둘째는 일본말에서 어원을 찾는 것이다. 일본말 '아사리(あさり ??)'는 원래 조개의 일종인데 바지락 종류인 '아사리'는 다른 조개와 달리 바지락이 담긴 그릇은 흔들릴 때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고 하여 '아사리판'이 나왔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도 범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다. 산스크리트 어에서 덕망이 높은 스님을 '아사리(acarya)'라고 하는데 이것은 정행(正行)이나 궤범(軌範)과 덕망이 높은 고승을 뜻하는 말이다.
이 아사리를 중국어로 전사하여 '阿牀利' 혹은 '阿遮利夜'가 되었다는 것이다.
* 아사세왕` 阿?世王, 아자타샤트루 BC490?~BC458? --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의 왕. 아버지는 빈비사라(頻婆娑羅, Bimbisara, BC 582~554 재위)왕이고, 어머니는 위제희(韋提希)임. 반역자인 부처님의 4촌 동생 데바닷다(提婆達多)의 악한 꼬임에 빠져 부왕인 빈비사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강대국인 코살라와 패권다툼을 벌여 코살라를 격파하고 갠지스강 유역의 최강국으로 군림했으며, 군사조직과 지배체제를 정비해 인도 고대통일국가 형성의 기초를 닦았다. 나중에 참회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불교를 적극 보호 육성했다고 전해지며, 그의 치세 동안 불교와 도시 상공업이 번성했다.
* 아상` 我相 산스크리트 Atma samjna -- 아상이란 당시 브라만교에서 주장한 영원불멸의 존재인 ‘아트만(atman)’에 근거한 견해로서 ‘나’ 혹은 ‘자아’라는 생각을 말한다. 아상에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이름, 나의 육신, 나의 학력, 나의 직장, 나의 사회적 위치, 나의 능력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불교 관점에서 볼 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변화하기 때문이다. 죽게 되면 모두가 해체돼버리고 육신도 결국 화장하거나 땅에 묻히고 만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에 이르러 보니 우주안의 모든 사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생각은 생주이멸((生住離滅)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 사상(四相)
* 아상가` 阿僧伽, 300?~390? -- 한역 이름은 무착(無着)임. 대승불교의 유식론을 체계화한 불교 사상가이며, 세친(世親)의 형. → 무착(無着)
* 아소` 我所, mama -- 아소유(我所有)의 줄인 말. 나의 소유란 뜻. 나에게 속하는 것. 내 마음이 집착하는 바를 뜻한다. 따라서 아소를 부정한 것이 무아(無我)이다. 아(我, attan)는 ‘나’라는 것이며, 아소(我所)란 나에게 딸린 나의 것이다. 이 육신은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재물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은 아소(我所) 즉, 내 것이라는 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 아소견` 我所見 -- 줄여서 아견(我見)이라고도 함. 모든 사물은 원래 가짜 존재로서 소유할 것이 없는데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 자신(自身)에게 딸린 모든 물건은 원래 일정한 소유주(所有主)가 없는 것이나, 정말 나에게 소속된 자기의 소유물이라고 고집하는 치우친 생각이다.
→ 아견(我見)
* 아소카왕` Ashoka 阿育王 -- 인도 마가다(Magadha)제국 제3왕조인 마우리아왕조(Maurya dynasty)의 세 번째 임금으로 마우리아왕조의 개창자인 찬드라굽타의 손자이다. 인도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왕(재위: BC 265년경 ~ BC 238년, 혹은 BC 272~BC 232)으로서 불교의 이상을 구현한 ‘법의 대왕’으로 불린다. 불법(佛法)에 바탕 둔 통치이념 전파와 불교의 세계종교화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불린다.
아소카왕에 의해 불교 교세는 인도 전체에 퍼져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세 번째 경전 편찬회의는 아소카왕의 주도로 수도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 파타리불성, 波陀利佛城, 華氏城, 현재의 파트나)의 계원사(鷄園寺)에서 열렸다. 이때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부처님 말씀이 팔리어로 문자화(文字化)됐다고 한다. 1, 2차 결집 때는 경(經)과 율(律)만 결집했지만, 이때는 논장(論藏)도 결집해 불경의 영역이 훨씬 확장 정비됨으로써 비로소 <팔리어 삼장>의 기초가 성립됐다.
아소카왕의 주도로 열린 제3차 결집이 끝난 직후 아소카 왕은 자신의 지배 이념인 법에 의한 정복을 실현시키기 위해 주변국으로 전법사(傳法師, 포교사)를 파견해 경전을 전했다. 스리랑카의 역사서 <마하밤사(Mahavamsa, 丈史 혹은 大史)>에 의하면 간다라, 카슈미르, 랑카(스리랑카) 등 9개국으로 전파했다고 한다.
* 아수라` 阿修羅 Asura` -- 줄여서 <수라>라고도 하는데, 불교를 수호해주는 신장인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매우 호전적이며 공격적이다. 아수라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신의 중간적 존재이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을 못하고 남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해 시비를 걸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생전에 몹시 공격적이고 시기심과 교만심이 강한 사람들이 죽어서 업장에 따라 가는 곳을 아수라라고 한다.
* 아수라장 = '아수라(阿修羅)'는 산스크리트어 '아수르(asur)'를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아소라', '아소락', '아수륜' 등으로 표기하며 약칭은 '수라'라고 한다. 아수라는 본래 육도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선신이었는데 후에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증오심이 가득하여 싸우기를 좋아한다. 그가 하늘과 싸울 때 하늘이 이기면 풍요와 평화가 오고, 아수라가 이기면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한다. 인도 신화에서 아수라는 몸은 하나인데 삼면육비(三面六臂) 즉, 얼굴이 세 개이고 팔이 여섯 개로 흉칙하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신의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린 아수라들이 다시 공격을 당하여 시체가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아수라장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을 우리는 아수라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국어에서는 '전쟁이나 싸움 등으로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에 빠진 곳'을 아수라장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 정치판이나 사회 현상을 보면 정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앞으로는 좋은 정치를 하여 올바른 사회가 되길 기원해 본다.
* 아슈바고샤` Asvaghoa AD 80?~150? -- 한역 이름은 마명(馬鳴)이다. 카니시카왕과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불교학자이며 인도의 고전인 산스크리트어 문학 최초의 불교 시인이다. 그의 작품 <불소행찬(佛所行讚>은 불교문학의 걸작이자 인도 문학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 마명(馬鳴)
* 아승기` 阿僧祇 -- 산스크리트 아상가(asanga)를 음역한 말로, 수리적으로는 10의 56승을 뜻하지만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를 뜻한다. 갠지스강의 모래 수를 뜻하는 항하사(恒河沙)보다 더 많은 수를 이르는 말이다. 흔히 ‘아승지’로 잘못 표기한다.
* 아승기겁` 阿僧祇劫 -- 무수겁(無數劫)의 뜻.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량. 아(阿)는 무(無), 승기(僧祗)는 수량, 겁(劫)은 시간을 뜻함.→ 흔히 ‘아승지겁’으로 잘못 표기한다.
※겁` 劫 -- 불교에서 일정한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시간. 산스크리트 ‘kalpa’의 음역인 겁파(劫波)의 약칭으로, 장시(長時) ? 대시(大時)라 의역된다. 본래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 년을 1겁이라 한다.
* 아육왕경` 阿育王經 -- 잡아함경(雜阿含經) 제23권. BC 3세기 인도 마가다(Magadha) 제국 제3왕조인 마우리아왕조(Maurya dynasty)의 세 번째 임금인 아소카왕에 관한 기록이 중심이 된 경.
→ 아소카왕 (Ashoka, 阿育王)
* 아일다` 阿逸多 ajita -- 미륵보살의 별명. 산스크리트어 Ajita의 음사. 미륵은 성씨이고 본래 이름이 아일다(阿逸多)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출현하실 미래의 부처님으로 미륵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 아일다(阿逸多)의 후신 명이다.
인도 바라나국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서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출가 수행했으며, 부처님 입멸 후 56억 7천만년 뒤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으며, 지금은 도솔천 내원궁에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신다고 한다. <미륵성불경>에 의하면 미륵부처님이 장차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면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해 설법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화 시에 빠졌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한다.
여기 아일다는 유식학파를 열고 무착(無著, 300?~390?/世親의 형) 등을 가르쳤던 미륵(彌勒, 마이트레야/Maitreya, 270 ?~350 ?)과는 다른 사람이다. → 미륵(彌勒)
* 아제불타` 阿提佛陀 -- 밀교에서 최초이고 근본적이며 원초적인 부처님으로 일컫는 본초불(本初佛 = 아디 붓다/Adi Buddha)의 다른 이름. → 아디 붓다(Adi Buddha), 본초불(本初佛)
* 아촉불` 阿?佛, 산스크리트 악소바야/Aksobhya --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부처이다. 아촉불은 ‘악소바야’를 음역한 것인데,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의역해 부동불(不動佛) ? 무동불(無動佛) ? 무노불(無怒佛)이라 한다. 이 세계에서 동쪽으로 1천의 불국토를 지나는 곳에 아비라타(Abhirata: 阿比羅提)라는 나라가 있는데, 옛날 이 곳에 대일여래(大日如來)가 한때 주존으로 있었다. 그 당시 대일여래를 모시던 수행비구 중에 아촉이 있었는데, 어느 날 부처님 앞에서 성내지 않겠다는 서원을 했다. 아촉은 그로부터 용맹 정진해 깨달음을 얻고 지금까지 아비라타국에서 설법을 하고 있다. 아비라타란 환희(歡喜) ? 묘락(妙樂)의 의미로, 아촉불은 이곳에서 보리를 향한 마음이 동요하고 있는 수행자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 아트만` 산스크리트 atman --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범(梵 : 브라만)과 함께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인도철학에서 자아를 나타내는 술어로 아(我) 또는 개아(個我)라고 번역된다. 만물에 내재하는 영묘한 힘, 영원불멸하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의미하며, 인간 존재의 영원한 핵을 이르는 인도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다. 부처님이 제시한 삼법인 중의 제법무아(諸法無我)란 바로 이 아트만을 부정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아함경` 阿含經 -- 아함(阿含)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Agama)를 소리 번역한 말이다. 아가마란 ‘전해오는 가르침’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기억에 의해 구전돼 오던 부처님의 교설을 총칭하는 말이고, 아함경이란 이를 정리 집성한 불경을 말한다. 그런데 불경이 북방으로 전해져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아함경이라면 남방으로 전해진 것은 니까야(Nikaya)라고 한다.
아함경에 일관해 설해지고 있는 것은 근본불교의 중심사상인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十二緣起), 자리이타(自利利他), 깨달음(覺) 등의 교리이다. 이것은 불설(佛說)의 원음에 가장 가까운 것이므로 아함경은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부처님의 인간미에 가깝고 사상적인 변화도 거의 없으며, 이설의 대립이나 대 ? 소승의 구별도 보이지 않는 불교의 근간이 되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아함(阿含)’으로 불리는 문헌으로 한역 대장경 안에 장아함(22권) 중아함(60권). 잡아함(50권). 증일아함(51권) 등 네 가지가 전한다.
한역 4아함(四阿含)에 해당하는 문헌으로 팔리어 5부 니까야(Nikaya)가 있는데, 그 중 쿳다까 니까야(Khuddaka-nikaya/소부)에는 <법구경>, <경집>, <본생담> 등 중요한 경전 15편이 포함돼 있으나 아함에는 없다.
* 아힘사` ahimsa -- 인도 종교 ? 도덕의 기본적 가치. ‘불살생(不殺生)’의 뜻으로,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에서 이상으로 삼고 있으며, 간디가 독립 운동을 벌일 때는 ‘비폭력’의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 악고` 握固 -- 도교의 용어. 갓난아기가 태어날 때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것. 이처럼 중생은 습관적으로 무엇이든지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을 뜻한다.
* 악도` 惡道, durgati --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말하는 악한 일을 많이 저지른 자가 장차 태어나게 될 좋지 않은 곳. 보통은 3악도를 말하는데, 제일 좋지 않은 곳이 지옥도(地獄道)이고, 그 다음이 아귀도(餓鬼道), 세 번째가 수라도(修羅道)이다. 4악도는 3악도에 아수라(阿修羅)가 첨가된다. → 삼악도(三惡道)
* 악작` 惡作 산스크리트 kauk?tya -- 후회하는 마음 작용. 행위로 저지른 가벼운 죄. 갑자기 “아!(잘못했었구나!)”라고 한숨짓는 것.
* 악취공` 惡取空 -- 공(空)에 대한 그릇된 이해. 공(空)이라는 글자는 해석하기에 따라서 허무하다, 허망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공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 즉 허무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단멸공(斷滅空) 내지 악취공(惡取空)이다. 즉, 악취공은 공(空)사상 중에서 사악한 부분인 허무주의를 취해서 생긴 일종의 자기도취적인 병이다. 불교에서 가장 금기시 하고 가장 꺼려하는 것이 바로 이 악취공이다. 수행을 게을리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어 득도를 한 것처럼 도사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는 스님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들이 바로 증상만(增上慢)과 악취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 안거` 安居 Varsa -- 승려들이 음력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날까지 3개월간(하안거), 그리고 음력 10월 보름 다음 날부터 다음 해 정월 보름날까지 3개월간(동안거) 한곳에 모여 일체의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
원래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비가 많이 오는 우기(雨期)라서 벌레들이 밖으로 많이 나와 다니므로 알게 모르게 살생을 할 수 있어서, 일정한 장소에서 우기를 피해 수행을 하는 것을 안거(安居)라고 했다.
이후 중국, 한국, 일본 등 북방으로 불교가 전파됐고, 이 곳 지역들은 겨울이 너무 추워 추위를 피해 수행을 하는 동안거(冬安居)가 생겨났고, 하안거(夏安居)는 부처님 당시처럼 우기 또는 더운 석달동안을 더위를 피해 수행을 하게 된 것이다.
안거의 시작을 결제(結制), 안거의 끝을 해제(解制)라고 한다. 안거기간이 끝나면 천하를 주유하며,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만행(萬行)에 나서는 것을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하고, 이 스님들을 운수납자(雲水衲子)라 한다.
* 안락행` 安樂行 -- 안락행이란 어떤 경우에도 평화로운 마음, 기쁜 마음, 안온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안락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편안하게 만드는 것, 즉 자기의 마음가짐에 따라 어디서나 안락한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 안세고` 安世高 An Shigao AD 25~220 혹은 147~167 = 세고(世高)는 자, 본명은 안청(安淸). 안식국(安息國) 즉 파르티아에서 온 사람이다. 2세기경 후한시대에 중국에 들어온 최초의 역경승(譯經僧). 안식국(파르티아 제국)의 왕자였으나 왕위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의 불경 번역은 중국 역경사에서 최초에 해당하며, 그는 특히 소승불교의 전적(典籍)인 아비달마에 정통했다. 현재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음지입경(陰持入經)>, <십이문론(十二門論)> 등 그의 이름으로 돼 있는 역전(譯典)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 진위는 확실하지 않다.
* 안심법문` 安心法門 -- 불교는 팔만 사천 법문 전부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문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안심법문이라 한다. 누구나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것은 부처님 말씀이 진리를 설하기 때문이다. 본래 진리란 것은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세계는 안락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안심법문이다.
중국에 선종을 일으킨 달마(達磨)의 선사상 원형이 바로 안심법문이다. 어느 날 2조 혜가(慧可)가 달마에게 간절히 청했다.
“스승님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바라옵건대 제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오.”
“그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내가 편하게 해주리라.”
“아무리 찾아도 그 마음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我與汝安心竟>.”
불안은 단지 심리적 상황일 뿐, 본디 그 실체는 없다는 점을 달마는 날카로운 당기일구(堂機一句)로 혜가를 깨우쳐준 것이다. 혜가가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그 마음이 형상과 문자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화에 의해 절대적인 마음의 깨달음이 선종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당기일구(堂機一句)---순간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아무런 군더더기 하나 없이 척 나오는 한 마디 말(對句)이다. 선문답(禪問答)에서는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항상 끊듯이 짧게 말한다.
* 안심입명` 安心立命 -- 마음속의 모든 번뇌 ? 망상을 잠재우고 편안하게 하고 천명에 맡김. 그리하여 생사의 두려움으로부터 초월해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 이와 같이 모든 의혹과 번뇌를 떨쳐버려 생사와 이해를 초월해 모든 것을 천명에 맡길 수 있는 안정된 마음상태, 혹은 진리를 깨달은 상태를 말한다.
* 안양` 安養 -- 안양이란 불가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상주하는 청정한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세계를 말하며, 현세의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나 있다는 즐거움만 있고, 자유로운 곳이다. 불교에 있어서 하나의 이상향이다.
* 안함` 安含 579∼640년 -- 안홍(安弘)이라고도 한다. 속성은 김(金)씨. 신라 10성의 한 사람으로, 진평왕 23년(601)에 왕명을 받고 중국 수나라에 유학 가서 밀교를 배워 진평왕 27년(605)에 호승(胡僧) 비마진제(毗摩眞諦)ㆍ농가타(農加陀) 등과 함께 귀국했다. 서역의 승려들이 신라에 들어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저서에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가 있다.
* 안혜` 安慧 510~570, 산스크리트 sthiramati -- 유식학 십대논사(十大論師)의 하나. 남인도 나라국(羅羅國) 출신의 승려로, 유식학(唯識學)과 인명(因明)에 정통하고, 세친(世親)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에 대한 주석서를 지었다. 덕혜(德慧)의 제자. 저서에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승중관석론(大乘中觀釋論)>, <구사실의소(俱舍實義疏)>, <유식삼십송석론(唯識三十頌釋論)> 등이 있다.
* 알음알이` -- 한자로 지해(知解)라고 한다. ‘지견해회(知見解會)’의 준말로서 사전에는 ‘약삭빠른 수단’이라 적혀 있는데, 잔머리를 굴리면서 분석하고 억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분석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잔꾀 굴리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지(자기) 꾀에 지가 빠진다’는 말이 있는데, 화두참구 역시 같다. 알음알이는 깨달음을 가로 막는 존재다. 때문에 참선할 때에는 알음알이를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정면으로 화두를 참구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려서 알려 하고, 이리저리 지능적으로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선에서 불립문자, 언어도단이란 것도 다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절에 가면 주련에 “入此門來 莫存知解(이 절에 들어온 자는 알음알이를 갖지 마라)”라고 적혀 있다.
* 애` 愛 -- 맹목적으로 즐거움의 대상을 추구하는 욕심이, 성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애(愛)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애를 번뇌 중의 가장 심한 것으로 보고, 수도에 있어서도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한다. 즉, 애는 마음을 더럽게 하는[염착(染着)] 장애[번뇌장(煩惱障)]의 대표적인 것이다.
* 야단법석` 野壇法席 -- 법당 아닌 곳, 숲속이나 광장 등에 임시로 단을 마련해 야외법회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 여러 사람이 모여드니 야단스럽고 시끄러운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현상을 야단법석이라 한다.
* 야마천` 夜摩天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설정한 욕계(欲界)의 6천(天) 가운데 제3천.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利天) 위의 공간상에 위치하며, 수야마천(須夜摩天)ㆍ염마천(焰摩天)이라고도 한다. 그곳의 주인이 야마(Yama)이다. 야마는 최초의 인간이기에 최초로 죽은 인간이기도 하다. 야마천은 욕망이 줄어들어 포옹만 해도 서로 기쁨을 나눈다.
* 야사` Yasa -- 야사는 부처님이 초전법륜을 한 곳인 미가다야(鹿野苑)가 있는 바라나시의 큰 부호 상인의 아들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야사(Yasa)의 출가를 허락하심으로써 야사는 초전법륜 대상의 다섯 비구 외에 최초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야사의 친구 55명의 출가도 허락하셨고, 야사의 부모는 최초의 재가불자가 됐다.
* 야운` 野雲 비구 -- <자경문(自警文)>의 저자.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승려가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의 하나이다. 야운스님은 정확한 생몰연대가 없으며, 역대에 두 분의 야운스님이 계시다. 신라 원효스님의 제자 야운스님과 고려 말 나옹(懶翁)선사의 제자 야운스님이 있다. 두 분 중 한분이라는 설이 있을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나옹의 제자 야운스님은 오랫동안 나옹의 시자(侍者)를 지냈으며, 항상 지극한 정성과 성실로써 스승을 받들어 나옹으로부터 크게 사랑을 받았다.
* 야차` 夜叉, Yaksa --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장 중의 하나. 야차는 생김새가 추괴하고 잔인 혹독한 귀신이었는데, 불법에 귀의해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의 휘하에서 북방을 수호하는 수문장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 약사여래` 藥師如來 Bhaisajyaguru --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 혹은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그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다.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에 따르면, 약사불이 머무는 동방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는 아미타정토와 같고, 약사의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12신장(十二神將)을 권속으로 거느린다고 했다. 또한 손에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헌데 불교에서는 석가여래를 현재불, 약사여래를 과거불, 아미타불을 미래불로 상정하기도 한다.
* 약사전` 藥師殿 -- 유리광전(琉璃光殿) 혹은 만월보전(滿月寶殿), 보광전(寶光殿)이라고도 하며, 주불은 약사여래, 협시보살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 약석` 藥石 -- 약과 침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약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주의를 주어서 그것을 고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말. 그러나 불교에서는 저녁 공양을 이르는 말이다.
* 약왕` 藥王 산스크리트 Bhaiajya-r?ja -- 25보살(菩薩)의 하나. 일체 중생에게 좋은 약을 주어 심신의 병고를 덜어 주고 고쳐 준다는 보살.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머리칼은 보발과 수발(垂髮)을 갖추었으며, 왼손은 주먹을 쥐어 무릎에 얹고 오른손으로는 구름 위의 태양을 가리킨다.
*약찬게` 略纂偈 -- 화엄경은 방대한 경전이다. 그래서 대중들을 위해 화엄경을 요약한 것이 <약찬게(略纂偈)>와 <법성게(法性偈)>로서 간략하게 게송으로 화엄의 사상을 찬탄하고 있다. <약찬게>는 용수보살(龍樹菩薩)이 <화엄경>의 구성에 대해 간략히 엮어 놓은 게송이고, <법성게>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중국에 유학해 화엄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저술한 게송이다. 약찬게의 원명은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 약찬게>이다.
* 얀트라` 얀뜨라` 산스크리트 yantra -- 얀트라는 “유지하다. 지탱하다. 다스리다. 통제하다”의 의미를 지닌 얌(yam)이라는 산스크리트어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얀트라는 갖가지 에너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이 집중된 역장(力場)을 의미하는 기하학적인 도형인데, 힌두교의 신비주의적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밀교(密敎)에서는 명상을 도와주는 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정좌하고 얀트라만 보고 있어도 명상이 가능하다고 한다. ‘옴’이라는 소리가 만트라의 대표 소리라면 얀트라는 점, 선, 곡선, 원, 삼각형, 사각형, 연꽃무늬들로 구성된 상징적 도형이다. 그중에서도 점(bindu)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도형 중앙의 점은 만물의 시작과 끝에서의 합일을 표현한다.
* 얍 윰` yab yum -- 티베트 불화를 탕카(thangka, 幀畵)라 한다.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벽에 거는 불화의 종류인데 족자 또는 액자로 만들어 사용한다. 그런 탕카 중에 ‘남녀 교합상’이 노골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얍 윰(yab-yum)’이다.
불교의 궁극의 경지인 열반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녀교합상이 활용됐다고 한다. 이러한 자세는 남성적이라고 간주되는 적극적인 힘으로서의 방편(方便)과 여성적이라고 간주되는 지혜로서의 반야(般若)의 신비적 합일을 나타내며, 남녀가 교합함으로써 궁극의 경지인 ‘열반’을 성취해 해탈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녀 교합상에서 보이는 지혜와 방편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힌두이즘의 탄트리즘에서 비롯된다. 즉 힌두교에서의 ‘시바(Siva)’와 ‘삭티(Saktl)’의 관계를 불교적으로 지혜와 방편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 그 바탕을 보면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불교전통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얍 윰’이라는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이 탕카라는 형식을 빌어서 표현하는 것은 좌도밀교(左道密敎)에서 불교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환희불
* 양구` 良久 -- 묵연 양구(默然 良久)와 같은 말. 언어와 생각이 끊어진 묵시적 설법을 일컫는다. “스승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선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를 양구(良久)라고 한다. 말이 없는 묵시로써 답을 하고 있다.
* 어록산림` 語錄山林 -- 산림법회(山林法會)란 사찰에서 불경을 강설하는 모임을 말하며, 어록산림이란 불경 대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강설하는 법회를 통해 선풍 진작을 하는 것을 말함.
* 어시바루 -- 바루 중에서 맨 큰 바루를 칭함.
* 언어도단 심행처멸 言語道斷心行處滅 -- 대주 혜해(大珠慧海)의 어록집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 있는 말, “경에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 뜻이 어떠합니까?”라 적혀 있다.
즉 진리의 궁극처는 깊고도 묘해서 말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글로써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써도 결코 생각할 수 없음을 찬탄하는 말. 곧 일원의 진리를 표현하는 말로서, 일원의 진리는 말도 끊어지고 글도 끊어지고 마음으로도 도저히 미칠 수 없어서 생각조차 끊어진 경지라는 뜻.
그러나 일원의 진리는 역시 언어로써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하고, 마음으로써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현실 속에서 체험을 통해서 체득해야 한다.
* 업` 業 산스크리트 Karma -- ‘업(業)’이란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에서 사용되는 카르마(karma)라는 어휘를 한역한 것으로, ‘행위(行爲)’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냥 단순한 해위가 아니라 ‘의도적인 행위(cetana)’ 를 뜻한다.
근본경전 증지부(增支部, Anguttara Nikaya)에 부처님께서 “비구들이여, 나는 의도적인 행위를 업이라고 말한다. 의도하고서 업을 짓나니 몸과 말과 뜻으로써”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있는데, 이 말이 업을 정의하는 인용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신(身) 구(口) 의(意), 이 세 가지 업을 일으키는 본체는 의지이므로 업은 의지의 산물이라 하겠고, 행위의 원인에 따른 과보로서 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즉, 업이란 “어떤 결과를 낳는 원인이 되는 의도된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업이란 어떤 행위의 결과(과보/果報)가 나타날 때, 그 결과의 원인이 된 행위이다.
그런데 과보를 초래할 수 있는 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의도적인 행위여야 한다. 둘째, 윤리적인 행위여야 한다. 즉 선한 행위이거나 악한 행위여야 한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행위, 즉 무기업은 중성적인 업으로서 이 업은 과보를 초래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이 무기업은 엄밀한 의미에서 업이라고 할 수 없다.
* 업감연기설` 業感緣起說 -- 연기론은 시대와 학파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됐다.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 연기론은 특히 업(業)의 사상과 결합해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이 나타났다. 이것은 중생의 생사유전(生死流轉)이 모두 자신의 업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 업경대` 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
* 업보` 業報 -- 선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果報). 착한 일을 하면 선업이 있고 나쁜 일을 저지르면 악업을 받게 된다. 선업을 받든지 악업을 받든지 다 자신이 지은 대로 받는 것이 업보(業報)이다. 그래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이 나왔다.
* 업식` 業識 -- 우리가 저지른 업은 모두 업장(業藏=아뢰야식)에 저장된다. 악업이나 선업이나 모두 저장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업장에 저장된 업이 어떤 계기로 움직여 일어나는 생각을 업식(業識)이라고 한다. 즉 저장된 업이 기회만 있으면 밖으로 나타나서 또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게 유도를 하는데, 그것이 업식이다.
* 업식성` 業識性 -- 업식성이란 업을 짓는 성품으로서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등 흑백논리로 따지는 차별의식과 분별의식의 중생심(衆生心)을 말한다.
* 업장` 業藏 -- 아뢰야식과 같은 말임. →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
* 업장` 業障 -- 깨달음에 이르는데 방해가 되는 세 가지 장애[삼장(三障)]의 하나. 잘못 저지른 악업에 의해 나타나는 장애를 이른다. 삼장은 업장(業障) ? 번뇌장(煩惱障) ? 보장(報障)을 말한다. → 보장(報障)
* 업처` 業處 산스크리트어 Kammatthana -- 업처라는 것은 명상의 토대, 명상의 대상 또는 그것을 이용하는 명상의 한 단계로서, 선정을 증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행의 주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업처에서 kamma는 업, 즉 명상행위, 수행행위를 말하며, hana는 장소[處], 주제, 근거, 대상으로 이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kamma h na’는 업처(業處)로 한역되고 ‘수행의 주제’, ‘명상행위의 근거’, ‘수행행위의 대상’을 말한다. <청정도론(淸淨道論)>에 따르면 40종의 업처가 있으며, 각 수행자는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에 맞는 정신적 집중의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 소승불교인 상좌부불교에서는 사람의 기질을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 신뢰 ? 지혜 ? 이성 등의 6가지로 분류했다. 그런데 그 중 자기의 가장 아픈 곳(정신적인 약점)을 대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그 아픈 곳이 업처이다.
* 여` 같을 如 -- ‘여(如)’가 불교에 들어와 쓰일 때는 ‘같이’, ‘그러한’ 뜻으로만 쓰이지 않고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으로도 인용된다. 자연법이(自然法爾)와 비슷한 뜻이다. 우리가 스님들께 인사를 드릴 때, ‘수행이 항상 여여(如如) 하십니까?’ 라고 여쭌다. 그처럼 여여란 적정한 깊은 삼매의 경지, 혹은 높은 진리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을 상징하는 여래(如來)에서 볼 수가 있다. ‘여래’란 의미는 ‘그렇게 오신 분’, 또는 ‘그와 같이 오신 분’, ‘진리 그 자체로서 다가오는 분’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존칭 중 하나이다. → 여여(如如)
* 여래` 如來 산스크리트어 tathagata -- ‘진여(眞如)’로 번역하는데, 여래란 붓다를 일컫는 여러 명칭 가운데 하나로서 tathata와 agata의 복합어이다. tathata는 ‘그와 같이', ‘여여(如如)하게', 따라서 진리의 화현이라는 뜻이며, agata는 ‘옴’ 혹은 ‘온 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뜻을 새기면 ‘진리의 구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여래(如來)는 진여를 온몸을 깨달은 인격체를 말한다.
그런데 후기 대승불교에서 여래는 모든 사람에게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본질인 불성(佛性)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됐다.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진여(眞如 tathata)와 같은 의미이다. 모든 중생은 그러한 여래를 자신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참된 상태로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궁극적 실재를 지칭하기도 한다.
* 여래선` 如來禪 -- 여래선은 <능가경>, <반야경(般若經)> 등의 여래의 교설에 따라 깨닫는 선을 가리킨다. 그러니 여래선(如來禪)이란 ‘여래의 말씀’ 즉 ‘부처님께서 설한 경전에 의거, 수행해서 깨닫는 선’이라는 뜻이다. 또는 여래가 깨달은 경지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다른 말로는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 ‘최상승선(最上乘禪, 최고의 선)’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래선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청정해 번뇌가 없으며, 중생은 누구나 최고의 지혜인 무루지성(無漏智性)을 갖추고 있고, 또 이 마음이 본래 부처(진리)와 다름없다는 이치를 믿고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경지와 관점, 목표, 지향하는 바는 조사선(祖師禪), 묵조선(?照禪), 간화선(看話禪)과 같다.
그런데 여래선, 조사선에 대한 구분은 육조 혜능(慧能) 때까지는 없었다. 혜능 계통의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문하에서 종래의 선(禪) 특히 북종선과 차별화하기 위해 조사선을 내세우면서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이것은 혜능의 남종선에서 자파(自派, 조사선)가 월등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종래의 선을 여래선, 의리선(義理禪)이라고 격하하고 자파(自派)의 선(禪)인 조사선을 우월한 위치에 놓고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헌데 여래선을 의리선이라고도 한다는데, 의리선이란 학문적 교학적, 또는 언어적 논리적인 방법을 통해 이해하는 선이란 뜻이다. 경전이나 언어문자, 뜻풀이 등에 의존해 이해하는 선이란 뜻인데, 후대에 성립한 조사선과 간화선 쪽에서 폄하하기 위한 의도로 정의한 것이다. 그것은 실참보다 교리에 의거해 이치로 이해하는 선이라고 규정했다. 문자나 뜻풀이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다른 나라에는 전해지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기는 했으나 아직 미흡한 경지에 있을 때를 여래선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다시 진귀조사(眞歸祖師)를 찾아가서 조사선을 전해 받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여래선이 조사선보다 못하다고, 여래선을 폄하하려는 이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주로 말씀하신 여래선(如來禪)이나, 달마스님 이후에 발달된 조사선(祖師禪)의 내용이 둘일 수가 없다. 꼭 여래선과 조사선이 원래 둘이 아니라는 데 입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나라 이후에는 이 두 말이 함께 쓰였다.
* 여래장사상` 如來藏思想 -- 중생은 본래부터 여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상. 그리고 여래장은 본질적으로 불성(佛性) 또는 진여(眞如)와 동일한 개념이다. 여래장은 중생의 번뇌 중에 있지만 그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본래부터 절대 청정해 영원히 변함없는 깨달음의 본성이다.
여래장(如來藏)은 산스크리트어 타타가타가르바(Tath?gatagarbha)를 의역한 것으로, 여래태(如來胎)라고 하기도 한다. 타타가타(Tath?gata)는 여래(부처)를 의미하고, 가르바(Garbha)는 ‘장(藏)’ 또는 ‘태모와 태아’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래장은 “그 태내에 부처를 잉태하고 있는 것과 성장해서 부처가 될 태아”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여래장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일컫는 말이다.
여래장계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여래장경(如來藏經), 승만경(勝?經), 열반경(涅槃經), 능가경(?伽經) 등이 있다. 특히 <능가경>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함께 여래장과 아뢰야식(阿賴耶識)과의 관계를 논함으로써 유식설(唯識說)과의 융화를 시도하고 있다.
* 여리지` 如理智 와 여량지` 如量智 -- 여리지란 이(理)에 부합되는 절대적인 지혜니, 지혜의 근본이고, 우주의 본체, 절대 평등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나 보살의 지혜로서 무분별지(無分別智) 혹은 근본지(根本智)라고도 한다.
여량지는 온갖 구체적인 사상(事象)에 응하는 지혜여서 경험적인 지혜로서, 다양한 번뇌와 고뇌를 수행과 체험을 통해서 체득한 지혜이다.
이를 정리해 보면, 여리지(如理智)란 우주의 본체(本體), 절대(絶對) 평등의 진리 - 진제(眞諦)를 깨달은 부처나 보살의 지혜이고, 여량지(如量智)는 현상계의 여러 가지 차별상(差別相)의 이치 - 속제(俗諦)를 환히 아는 부처나 보살의 지혜로서 차별지(差別智)라고도 한다.
불가에서 일체존재의 진여불성을 깨닫는 여리지를 중시 여긴 나머지 중생제도에 작용하는 지혜인 후득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을 지적해서, ‘후득지 없는 근본지는 아상만 늘 뿐’이라고 꼬집는다.
* 여시상` 如是相 -- 10여시(十如是)의 하나.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분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 여실지견 如實知見 --여실지견이란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여실한 인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은,
첫째, 주관적 편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객관적인 관찰이 돼야 한다. 우리들의 삶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편견, 주관, 경험에서 비롯한 선입견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우리 삶의 주위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들의 인식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구체적인 현실세계의 관찰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여실지견이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이고, 진리는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인식대상은 바로 우리의 삶이 돼야 하고, 우리의 삶이 처해있는 상황과 무관하게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자는 보라’고 하는 가르침이고, -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넘기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열반(涅槃)에 잘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사람은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 - 을 가진 진리이다.
* 여여` 如如 산스크리트어 tathat? =
① 분별이 끊어져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②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③ 모든 현상의 본성.
2. 있는 그대로 같고 같다. 삼라만상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대로 변함이 없이 같다는 뜻이다.
여(如) 사상은 중국 및 한국과 일본의 불교사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如)’는 ‘그대로’, ‘그와 같이’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본래 부사(副詞)였으나 나중에 명사(名詞)로 쓰이게 됐다.
이 ‘여’가 불교에 들어와 쓰일 때는 ‘같이’, ‘그러한’ 뜻으로만 쓰이지 않고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의 명사로 인용된다. 자연법이(自然法爾)와 같은 뜻이다.
부처님의 다른 표현을 여래(如來)라고도 하는데 ‘진여로부터 내생(來生)한 이’로 수행을 완성한 사람이란 뜻인데, 진여로부터 왔기 때문에 진리의 체현자로서 중생을 가르쳐 이끈다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여여(如如)’에서 앞 글자 여(如)는 바로 여래(如來)의 여(如)자이다.
있는 그대로 보라는 ‘여’의 논리는 뒤에 공(空)과 같은 뜻이 놓이게 된다. 차례대로 관찰해 나아가 보니 모두가 공이 아닌 것이 없다. 여의 진실은 곧 공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공이면서 불공(不空), 불공이면서 공이라는 것은 여여의 뜻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중도(中道)라고도 해석한다.
헌데 당나라의 선승 대주 혜해(大珠慧海)의 어록집인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는 여여(如如)란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이니, 마음이 진여인 까닭에 여여라고 하느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셨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시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또한 성도하실 것이니, 삼세에 닦아 증한 바의 도가 다름이 없으므로 여여라 함을 알지니라라고 했다.
* 여원인` 與願印 -- 수인(手印)의 한 종류. 부처님이 중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준다고 하는 의미의 수인인데 여인(與印)이라고도 한다.
왼손을 내려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있는 손 모양으로 시무외인과는 반대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원인은 넷 째,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대개 시무외인과 함께 나타난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합쳐 통인(通印) 혹은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이라 한다.
→ 시무외인(施無畏印),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
* 역바라밀` 力波羅蜜 -- 역(力)은 보살이 깊은 선정에 들기 위해 갖추는 힘을 가르킨다. 잡념이나 망상에 휘말리지 않고, 악마(惡魔)의 유혹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다. 그리고 이런 내면의 힘이 밖으로 나가 중생 구제의 원이 행(行)으로 발휘되는 힘이 역이다. 보살이 아무리 원을 세웠더라도 힘을 가지고 행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원력(願力)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 연` 然 -- 그러할 연(然), 이 글자는 일반 경전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조사들이 남긴 조사어록에서 많이 사용되는 글자이다. 예를 들면,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연(然)’자가 쓰이는 것이다. “함이 없이 행함으로써 진리가 자연과 일체가 되는 삶을 사는 것” 그러한 것을 ‘무위자연’이라고 한다. 조사들 법문 중에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는다”는 그러한 최고의 경지를 밝힐 때 쓰는 단어(글자)이다. 참고로 ‘무위자연’이 도교의 단어 같지만 사실은 불교의 단어이기도 하다. ‘함이 없이 진리자연과 일체가 되는 삶’, 의도적으로 행함이 없이 행하면 자연스럽게 저절로 그렇게 됨을 말한다. 그러한 의미가 ‘연(然)’자 하나에 담긴 것이다.
* 연각` 緣覺 pratyeka-buddha -- 홀로 연기법을 깨달았다 해서 연각이라 하며, 벽지불(?支佛) 또는 독각(獨覺)이라고도 한다. 삼승(三乘)은 성문(聲聞)과 연각과 보살(菩薩)의 세 가지 수행 부류를 말한다. 연각은 불교의 가르침을 듣고 도를 깨닫는 성문과는 달리 외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자연현상과 인연의 법칙을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깨침을 목적으로 삼아 산림(山林)에 은둔해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 독선자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보살행이 부족한 깨달은 자이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밑에서 인연의 법칙을 관찰해 정각(正覺)을 이룬 뒤 삼칠일(21일) 동안 선정(禪定)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리는 한편, 자기가 깨달은 인연의 이치를 중생들에게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그러나 정각(正覺)의 진리가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대로 열반에 들어버릴까 하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의 상태를 연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천(梵天)이 석가모니 앞에 나타나서 법을 설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타락과 고뇌가 더할 것이므로 마땅히 설법해야 함을 간청했고, 이에 석가모니는 중생교화를 결심했다. 이때의 석가모니는 연각이 아니라 부처이다. 그러나 불교의 역사상으로는 연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연각의 독자적인 가르침도 없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성문→연각→보살→부처’라 해서 성문보다 연각을 우위에 놓는다.
* 연기` 緣起 pat?tyasamutp?da =
1.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hetu)과 조건(緣:pratyaya)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 ?원인이 없으면 결과(果:phala)도 없다는 설.
나아가 일체현상의 생기소멸(生起消滅)의 법칙을 연기라고 한다. 그 간단한 형태는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등으로 표현된다. 이같이 중생이 생사, 유전(流轉)의 고통을 받는 경우의 연기를 유전연기, 수행하여 해탈로 향하는 연기를 환멸(還滅)연기라고 한다. 원시불교 이래의 사제설(四諦說:네 가지 근본진리)도 일종의 연기설로서 고(苦) ?집(集)의 2제는 유전연기, 멸(滅) ?도(道)의 2제는 환멸연기를 나타낸다. 연기설의 일반적 형태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12종이 순차적으로 발생 소멸하는 것을 나타내는 십이연기이다.
《아함경(阿含經)》에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法:진리)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한 말이나, 연기를 보는 자는 불(佛)을 본다고 설(說)한 것과 같이 연기는 법과 동일한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이 된다. 따라서 연기에 관하여 원시불교 이래 대승 ?소승 불교에서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되었다. 업감(業感)연기 ?아뢰야식(阿賴耶識)연기 ?진여(眞如)연기 ?여래장(如來藏)연기 ?법계(法界)연기 등이 그것이다.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는 업설(業說)이 부가되어 십이연기의 12지(支)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있다고 생각하여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설명하였다. 이는 시간적인 생기(生起)를 중심으로 연기설을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타파한 것이 대승불교운동인데, 특히 그 최초에 등장한 《반야경(般若經)》류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주장하였다. 이는 인도의 승려 용수(龍樹)에 의해 연기와 밀접히 관련지어져 ‘연기 → 무자성(無自性) → 공(空)’의 해석이 확립되었다. 즉 일체는 다른 것에 인연하여 현상계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상호의존하고 있는 상인 상대(相因相待)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각각은 자성을 갖고 있는 존재의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空)의 사상이다.
중기 대승불교의 하나에 일체의 현상을 마음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유식설(唯識說)이 있는데,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에서는 외계의 일체 현상은 말나식(末那識)의 활동과 이 말나식을 내포하고 있는 아뢰야식에 내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 또 하나가 모든 중생 속에는 깨달음의 가능성, 즉 여래의 인자가 있다고 하는 여래장(如來藏) 사상이다. 여기에서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自性淸淨心]을 둘러싼 외계의 번뇌[客塵煩惱]에 의해 생사에 유전하는 연기를 설명하고 있다.
여래장 사상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의 진여연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화엄경》 법계연기는, 모든 연기를 이상세계로서의 법계의 전개라고 보고 일체의 사물은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를 연기무애문(緣起無?門)이라고도 한다.
참조항목 공, 무상, 무한, 법, 법무아, 불교, 불성론, 십이연기
역참조항목 명색, 법계연기, 사법인, 용수, 삼생유행, 천, 공덕, 성기
2.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난다는 존재론, 즉 의존적 발생의 법칙이 곧 윤회의 법칙이다. 연기법 안에 있는 12개의 연결고리가 있어 이들이 끝없는 윤회의 사슬 속에 하나의 현상에서 또 다른 현상으로 의식체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나의 현상이 사라져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과정의 끝없는 연속이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러한 현상을 연기라고 하며 그 작용은 어떠한 창조주나 신이라고 할지라도 시작하거나 멈출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인연에 의해 생긴다(因緣生起)는 연기의 내용이 인연생멸(因緣生滅),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다.
시간적 개념에서 바라본 연기--제행무상(諸行無常)-시간적상의성-무상(無常)
공간적 개념에서 바라본 연기--제법무아(諸法無我)-공간적상의성-무아(無我)
이러한 내용들이 곧 생주이멸(生住離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의 현상이기도 하다. → 십이연기(十二緣起), 연생연멸(緣生緣滅)
* 연기조사` 緣起祖師 -- 생몰연대 미상.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흥덕현(興德縣, 현재의 전북 고창군) 출신으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지리산에 와서 화엄사(華嚴寺)를 중창하고 화엄학(華嚴學)을 널리 드러내어 퍼뜨렸다. 최근에 경덕왕 때 제작된 <신라화엄경사경(新羅華嚴經寫經)>이 발견됨으로써 그의 사적이 확인됐는데, 그가 창건한 사찰로는 나주 운흥사(雲興寺), 지리산 천은사(泉隱寺)와 연곡사(?谷寺), 대원사(大源寺) 등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해발 1,400m)에 위치한 사찰이라는 지리산 로터리대피소 바로 위의 법계사(法界寺)도 신라 진흥왕 때인 AD 544년에 연기조사가 가 창건했다고 한다.
* 연꽃` 蓮花 과 불교 -- 연꽃은 불교의 이상를 상징하는 꽃으로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꽃이다. 즉 연꽃은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불자(佛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信行)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또한 보살(菩薩)이 홀로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열반(涅槃)의 경지에 머물지 않고 중생의 구제를 위해 온갖 죄업과 더러움이 있는 세계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설법을 하실 때에도 연꽃을 비유로 많이 들었다. 그리고 연꽃의 막 피어오르는 봉오리는 마치 우리 불교 신도가 부처님 앞에 경건히 합장하고 서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다.
* 연대표`
연대표` ----------
* 연등` 燃燈 유래 -- 아사세왕(阿?世王)은 석존 생존 당시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의 왕으로서 빈비사라(頻婆娑羅)왕의 아들인데, 천성이 난폭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사정없이 욕하고 벌을 주었고, 심지어 그의 아버지도 죽였다. 그런 그가 인도를 통일했지만 수많은 전쟁을 하다가 보니 많은 악업을 짓게 됐고, 그 죄업으로 등창이 나서 고생을 하게 됐다. 그때 어느 불자의 권유로 석존께 귀의해 참회의 기도를 하니 등창이 나았다. 이에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의 뜻으로 등불을 밝혔는데 이때부터 연등 달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 연등불` 燃燈佛 -- 과거불인데, 붓다께서 전생에 수메다(Sumedha)라는 이름의 청년으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훗날 석가모니라는 부처로 성불할 것이라고 수기를 준 부처이다.
* 연비` 燃臂 -- 승려가 되기 위한 득도의식 때 행하는 삭발과 함께 신체의 일부를 태우는 의식. 불가(佛家)에 출가해 승려가 되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 연생연멸(緣生緣滅)--- 불교에서 연기(緣起)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서, 인연(因緣)은 조건이나 원인을 나타내는데 여기서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을 가리키고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연기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현상이 일어나는 이치' 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연법 혹은 연생연멸의 법칙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연생연멸의 법칙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 따라 소멸한다는 뜻이다. 마음은 물론 제법(諸法)이 본래 나고 멸함이 없으나(不生不滅) 인연에 의해 생하고 인연에 의해 멸하므로 연생연멸이라,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 이처럼 인연 따라 생기고 멸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 역시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실체 또한 없다. 이래서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한다.
* 연화장세계 蓮華藏世界 --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과 광명이 충만 돼 있는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를 말한다. 화장세계(華藏世界).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과 광명이 충만 돼 있는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 연꽃에서 태어났다는 석가모니불의 정토(淨土). 이 세계는 큰 연꽃으로 돼 있고, 그 가운데 일체의 나라, 일체의 현상이 간직돼 있다고 한다. - <범망경(梵網經)>의 이야기.
또 다른 설명,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장엄(廣大莊嚴)을 갖춘 불국토이다. 이 세계에는 큰 연화가 있고 그 가운데 일체의 국토와 일체의 사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연화장세계라 한다. - <화엄경(華嚴經)>의 이야기.
이와 같이 화장세계에 대해서 두 이야기가 각기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경전의 설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 열반` 니르바나` 涅槃 산스크리트어 Nirvana -- ‘열반’이란 말은 붓다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특징이 있다. ‘열반’은 “(바람이) 불기를 멈추다. (촛불을) 불어서 끄다. (촛불이) 불어서 꺼진 상태” 라는 뜻의 니르바나(Nirvana)를 음역한 말이다. 뜻을 따라 번역하면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또는 그냥 적(寂)이라고도 번역한다. 열반은 탐 ? 진 ? 치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꺼서 깨달음의 지혜를 보리를 완성하고 완전한 정신의 평안함에 놓인 상태를 뜻하는데, 즉 해탈(解脫)을 의미하며, 불교의 수행과 실천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열반에 대해서는 2열반 3열반 4종 열반 등의 분류가 있다. 2열반은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천태종에서는 3열반설을 따른다. 3열반은 성정열반(性淨涅槃) 원정열반(圓淨涅槃) 방편정열반(方便淨涅槃)이다. 4종 열반은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죽음을 대반열반(大盤涅槃) 또는 반열반(般涅槃)이라 한다.
* 열반경` 涅槃經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약어.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 열반무명론 涅槃無名論 --위대한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의 4대 제자 중 하나인 승조(僧肇) 법사의 저서 <조론(肇論)>에 수록된 말이다.
열반은 언어 밖에서 드러난다고 설한 것. 즉, 열반을 일컬어 도(道)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요하고 텅 비어 형체나 이름으로 닿을 수 없고, 미묘하고 모양이 없기에 감각으로도 감지할 수 없다. 도라고 부르는 열반을 어떻게 모양으로 그려낼 수 있겠는가. 다만 텅 비어 공할 뿐이다. 도는 그렇게 깨달음, 열반, 공, 해탈, 반야의 지혜로 일컬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열반무명론(涅槃無明論)>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법신(法身)을 얻고 나면, 무위(無爲)의 경(境)에 들어간다. 그 심(心)은 지(智)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신(身)은 형(形)에 의해 가늠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신체는 정신과 감각이라는 두 요소를 초월하고 심지(心智)는 적멸(寂滅) 그 자체가 된다.
* 열반4덕 涅槃四德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네 가지 덕, 즉 상 ? 락 ? 아 ? 정(常樂我淨)을 일컫는다. 열반의 세계는 절대 영원하고(常), 즐겁고(樂), 자재(自在)한 참된 자아가 확립돼 있으며(我), 청정하다(淨)는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쿧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小部) 중의 <우다나((優陀那, udana)>라는 자설경(自說經)에서 “열반이란 어떤 것인가? 그곳에는 옴이 없다. 감도, 머묾도, 죽음도 재생도 없다. 나루터도 없고, 윤회도 없고, 의지처도 없다. 그러나 진실한 즐거움이 그곳에 있다. 더 이상 나고 죽지 않는 세계이며, 더 이상 변화를 겪을 필요가 없는 세계로 재생도 없고, 죽음도 없고, 오고 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열반경(涅槃經)>은 다른 법문도 있지마는 주로 열반사덕을 풀이한 경전이다.
* 열반3덕 涅槃3德 -- <열반경>에 따르면 대열반이란 법신(法身)과 반야(般若)와 해탈(解脫)의 3법(法) 으로써 이루어지며 이 셋을 열반의 3덕(德)이라고 한다.
* 염기즉각 念起卽覺 각지즉무 覺知卽無 -- 망념이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말이다. 하택종의 수행법으로 고려 보조 지눌스님도 이 말을 지지했다.
※하택종` 荷澤宗 -- 6조 혜능(慧能, 638-713)의 제자 하택 신회(荷澤神會, 684-758)를 개조(開祖)로 한 종파. 집착이 없어 텅 빈 공적심(空寂心)을 종지(宗旨)로 함.
* 염리심` 厭離心 -- 염리는 염오(厭惡)라고도 하며, 팔리어 ‘nibbida’를 한역한 것이고, 염리심과 출리심(出離心)은 같은 뜻이다. 염리심의 ‘염(厭)’ 자는 싫어할 염으로서 괴로움(고)과 괴로움의 원인(집)을 싫어해서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따라서 수행에 있어서 염리심이 발심(發心)의 원동력이다. 염리심이 아니고는 이욕(離慾)도 이탐(離貪)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염리심(출리심)이다. 진정으로 삼보에 귀의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윤회의 고통을 뼛속 깊이 느끼고 깨달아서 윤회계를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선행돼야 한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염리심 또는 출리심(出離心)이라고 한다. 즉, 염리심이 불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므로 간절한 염리심과 함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생겨났을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귀의가 이루어지고 수행에 입문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사성제(四聖諦) 중에서 고성제(苦聖諦)를 사유하면, 출리심(염리심)이 생겨 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티베트불교에서는 ‘염리심은 도(道)의 시작이요, 수행자의 머리’라 칭하고 있다.
* 염리예토 厭離穢土 -- 더럽혀진 세상을 피해 떠난다는 말. 흔구정토(欣求淨土, 깨끗한 땅을 찾아 나서다)와 짝을 이룬다. 곧 더럽혀진 세상이 싫어서 속세를 떠나 이상적인 극락세계에 갈 것을 갈망함을 이르는 말이다. 예토는 더렵혀진 국토로 부정토(不淨土)라고도 하며, 윤회가 계속되는 현실을 의미한다. 정토사상에서 나오는 말이다. → 흔구정토(欣求淨土)
* 염부제` 閻浮提 -- 수미산(須彌山) 바깥쪽 바다의 사방에 네 개의 섬(四洲)이 있는데, 그 중 남쪽 섬을 염부제(閻浮提)라 하며, 이 염부제에 인간이 살고 있다. 염부(閻浮)는 나무 이름이니, 염부나무가 번성한 나라란 뜻이고,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염부제(南閻浮提) 혹은 남섬부주(南贍浮洲)라고도 한다,
→ 남섬부주 (南贍浮洲)
* 염불` 念佛, Buddha smrti -- 염불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나 보살의 이름과 모습을 끊임없이 마음에 집중함으로써 번뇌와 망상을 없애 깨달음을 이루고 불국정토에 왕생하는 수행방법이다.
염불의 종류에는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고, 부처의 32상 80종호를 갖춘 원만 덕상을 관찰하는 관상염불(觀像念佛)이 있으며,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상상하면서 염불을 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이 있다. 염불의 대상은 대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말이 있듯이 평소 염불을 꾸준히 하면 저절로 마음이 안정되고 환희심이 생기는데, 가장 손쉬운 수행방법 중 하나이다.
* 염불선 念佛禪 -- 염불은 부처님이나 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고, 선은 조용히 앉아서 한 가지 물음(화두)만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염불은 한 가지 단어(부처나 보살의 이름), 선은 한 가지 물음(화두)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상이 다를 뿐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한다는 본질에는 다름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염불이나 선이 같은 말이다. 염불수행은 일반적으로 쉬운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염불삼매(念佛三昧)는 부처님을 염원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마음의 안락이다. 평안과 안정된 마음으로 염불(念佛)에 전념하는 것이다. 부처님을 억념(憶念)해 마음의 통일과 안정이 실현된 상태이다.
* 염화미소` 拈華微笑 = 내용 일부 추가됨,
1.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로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경전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이라고 한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가섭(迦葉)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 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 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 진리를 깨닫는 마음)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
즉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선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참조항목 화두, 이심전심
* 영가` 靈駕 -- 영혼(靈魂), 육체 밖에 따로 있다고 생각되는 정신적 실체.
* 영락경` 瓔珞經 -- 원명은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과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의 비슷한 이름의 두 종류가 있다. <보살영락본업경>은 2권, 8품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승(大乘)의 보살(菩薩)이 최초에 보리심을 일으키고부터 수행을 쌓아 불과(佛果)에 이르기까지의 52종류의 계위(階位)를 설한 경전이다. 그리고 <보살영락경>은 14권, 45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용은 대승불교의 두 가지 사상인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사상(唯識思想)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불교의 개론서라 할 수 있다.
* 영산당시` 靈山當時 -- 영산(靈山)은 영축산의 준말로 불교의 대표적인 성지이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왕사성) 주위에 있던 산이다. 그리고 ‘영산 당시’란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영축산에서 최후 십여 년 동안 법을 설했던 시기를 말한다. 부처님 일생 중 법력을 가장 활발하게 널리 펴실 무렵이었다.
* 영산전` 靈山殿 -- 영산회도(靈山會圖)를 모시기 위해 특별히 지은 전각을 말한다. 영산회도란 ‘영산 당시(靈山當時)’, 즉 영축산(靈鷲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며 좌우에 갈라보살(竭羅菩薩)과 미륵보살이 협시한다. 그리고 불상 뒤에는 영산회상도가 후불탱화로 봉안된다. 영산인 영축산을 불당 안으로 모신다는 의미가 있다.
* 영축산` 靈鷲山 -- 발음대로 영취산 혹은 기사굴산(耆??山)이라 음역하기도 하며, 산스크리트어 G?dhrak??a 팔리어 Gijjak??a라 한다. 고대 중인도에 있던 마가다국(摩竭陀國, magadha國)의 도읍지인 라자그리하(왕사성/王舍城, 현재의 비하르주 라지기르)에서 동북쪽 약 3㎞ 지점에 있는 산. 정상에 있는 검은 바위의 모양이 마치 독수리 같으므로 축 혹은 취(鷲)라 한다. 인도의 영축산과 닮았다고 해서 통도사 뒷산을 영축산(1,081m)이라 한다.
석가여래가 이곳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무량수경(無量壽經)을 강(講)했다고 해서 신성시 하는 산이다.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 현장(玄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등에 의하면, 산정에 벽돌로 지은 설법당 흔적이 있었던 것 같다.
* 예류자` 預流者, sotapanna` -- 성문(聲聞)의 수행단계엔 사과(4果=네 단계)가 있다. 즉 깨달음의 4단계인 수다원(須陀洹=예류자), 사다함(斯陀含=일래자), 아나함(阿那含=불환자), 아라한(阿羅漢)을 성문4과라 하는데, 그 첫 단계에 이른 자가 예류자이다. 수다원(須陀洹)이라고도 하는데, 예류자는 ‘흐름에 든 자’라는 뜻으로, 깨달음 즉 성인의 길로 들어선 자라는 말이다. 예류자에 이르면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수행자라면 죽기 전에 꼭 이루어야 할 최소한의 목표이기도 하다. 예류자가 되려면, 불 ? 법 ? 승 삼보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계(戒)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 사향사과(四向四果), 수다원(須陀洹)
* 오가칠종` 五家七宗 -- 중국 선종의 6조 혜능 계통의 남종선(南宗禪) 분파를 총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 오개` 五蓋 -- 선법(善法)을 할 수 없게 하는 마음을 덮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 탐(貪) 진(瞋) 도거(掉擧) 혼침(昏沈) 의(疑)가 그것이다. 즉 탐욕이 마음을 덮는 탐욕개(貪慾蓋), 분노가 마음을 덮는 진에개(瞋?蓋), 마음이 흐려지는 수면개(睡眠蓋), 마음이 들뜨고 불안 근심이 생기는 도회개(掉悔蓋), 법에 대한 확신이 없이 부처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의법개(疑法蓋)이다.
※ 참고 -- 속마음이 어둡고 산란한 것을 ‘면(眠)’이라고 말한다.
※ 기오개(棄五蓋) -- 다섯 가지 번뇌의 덮임[오개(五蓋)]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1) 탐욕 --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비롯해 모든 욕망의 근원은 ‘나’라는 환상과 내 것이라는 집착,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필사적인 애착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정관(不淨觀)을 닦는 것이 도움이 된다.
2) 성냄 -- 악의란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일에 대한 성내는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탐욕 다음에 경계해야 할 것이 성냄이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비관(慈悲觀)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3) 들뜸과 회환 --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유희에 빠지는 것을 몸의 들뜸이라 한다. 그리고 읊고 노래하는 것을 즐기고, 시비 가리는 것을 좋아하며, 이익 없는 담론을 장황하게 설하는 것을 입의 들뜸이라 한다. 이러한 들뜸과 회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율을 준수해야 하며, 산란한 마음을 극복하는 대처법으로 호흡관(呼吸觀)이 있다.
4)혼침과 해태 懈怠 -- 정신적 해이와 육체적 졸음에 대한 극복방법은 사수념(死隨念)이라 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모든 것은 무상함을 관하면, 정신이 번뜩 들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참선 중에 애를 먹는 부분 중의 하나가 졸음이다. 수마(睡魔)라고 할 정도로 위력적으로 덤벼든다.
5)회의적 의심---의심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것은 도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다. 첫째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요, 둘째 스승을 의심하는 것이며, 셋째 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의심의 해로움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믿고, 스승을 믿으며, 법을 믿는 마음을 굳건히 해야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다.
* 오견` 五見 -- 견혹(見惑)에 해당하는 오리사(五利使)와 같은 말. 즉, 잘못된 다섯 가지 견해로서 신경(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을 일컫는다. 여기서 ‘리(利)’는 예리하다는 뜻이고, ‘사(使)’는 번뇌란 말이다. 번뇌가 중생들의 마음을 마음대로 부린다는 뜻이다. 이 오리사는 지적인 번뇌이므로 바른 정견(正見)을 얻으면 쉽게 끊을 수 있으나 오둔사(五鈍使)는 본능적인 번뇌라서 끊기가 힘들다. 이 오리사와 오둔사를 합하면 열 가지가 되는데 이를 근본번뇌라 한다.
① 신견 - 나와 나의 것이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 오온(五蘊)이 인연화합해서 이루어진 ‘나’를 영원한 존재로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
② 변견 - 편벽된 극단에 집착하는 견해. 상견(常見)과 단견(斷見) 어느 한쪽에 얽매여 중심을 얻지 못하는 극단적인 견해.
③ 사견 - 삿된 견해로서 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그릇된 견해. 정견(正見)의 반대말, 자신도 모르면서 아는 체 남을 속이는 것.
④ 견취견 -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해 거기에 집착하는 것. 졸렬한 지견(知見)을 잘못 믿고 스스로 훌륭한 견해라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
⑤ 계금취견 - 잘못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드는 것.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도(道) 아닌 것을 도라고 하는 그릇된 견해. → 오둔사(五鈍使), 10사(十使), 견혹(見惑)
* 5경` 오경` 境--- 5근(五根)의 대경(對境)인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을 말함.
* 오계` 五戒 --불교에 입문한 신도가 지켜야 할 5가지 계율. 불교도이면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가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이다. ①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② 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③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④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⑤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의 5종이다.
* 오과` 五果 -- 원인에 의한 결과를 다섯 가지로 나눈 것.
1) 증상과(增上果) - 원인이 조건의 도움으로 생긴 결과.
2) 사용과(士用果) - 사용(士用)은 원인의 강한 세력을 남자의 동작에 비유한 말. 인간의 행위에 의한 결과.
3) 등류과(等流果) - 좋은 원인에서 좋은 결과, 나쁜 원인에서 나쁜 결과처럼, 원인과 성질이 같은 결과.
4) 이숙과(異熟果) - 원인과 다른 성질로 성숙된 결과. 원인은 좋거나 나쁜데 성숙된 결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것.
5) 이계과(離繫果)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결과, 곧 열반.
* 오관게` 五觀偈 -- 공양할 때 외우는 다섯 구의 게송을 말한다. 사찰에서는 공양도 하나의 의식이자 수행이다. 공양물이 앞에 놓이면 먼저 죽비를 한 번 치고 대중이 함께 오관게를 외운다. 식사 전에
① 이 음식이 어디서 왔으며, 여기 오기까지 공이 얼마나 든 것인가를 생각한다(計功多少 量彼來處),
② 자기의 덕행이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인가를 생각한다(村己德行 全缺應供),
③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防心離過 貪等爲宗),
④ 밥 먹는 것을 약으로 생각하고, 몸의 여윔을 방지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을 관한다(正思良藥 爲療形枯),
⑤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해 이 공양을 받는 것임을 관한다(爲成道業 應受此食).
* 오교` 五敎 -- 화엄오교(華嚴五敎)라고도 말함. 부처님이 행한 일생의 가르침을 화엄종의 입장에서 5종으로 분류해 설명한 교상판석(敎相判釋)이다. 이는 시대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여러 분류 방법이 있으나 당나라시대 법장(法藏)이 설한 오교가 유명하다. 화엄종에서 불교 교리의 얕고 높음에 따라 우열을 판단하는 오교(五敎)는 아래와 같다.
1) 소승교 (小乘敎) - 사성제(四聖諦)와 십이인연기(十二因緣起)를 설한 아함경의 가르침을 말함.
2) 대승시교 (大乘始敎) -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공(空)이라고 설한 반야경과 해심밀경(解心密經) 등의 가르침을 말함.
3) 대승종교 (大乘終敎) - 실교(實敎)라고도 하며,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한 능가경(?伽經)이나 기신 (起信論)의 가르침을 말함.
4) 돈교 (頓敎) - 문득 이성(理性)을 버릴 것을 설한 유마경의 가르침을 말함.
5) 원교 (圓敎) - 원만하고 완벽한 일승(一乘)을 설한 화엄경의 가르침을 말함. 결국 화엄경의 가르침이 최고라는 것을 유도하기 위한 분류인 셈이다.
* 오구연` 具五緣 -- 천태대사 지의(智?/지관)가 제시한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
1) 지계청정(持戒淸淨) -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계율은 모든 수행의 바탕으로 참선수행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 의식구족(衣食具足) - 옷과 음식을 갖추는 것이다. 수행자는 오직 굶주림과 추위만을 면할 뿐 사치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아예 갖추지 않는 것도 선수행을 방해한다. 따라서 최소한의 옷가지와 음식물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3) 한거정처(閑居靜處) -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한적함이라 하고, 산란하고 시끄러움을 멀리 피하는 것을 조용함이라 한다. 몸과 마음이 한적하고 조용해야 곧 선을 닦을 수 있다.
4) 식제연무(息諸緣務) - 모든 인연 있는 일을 쉬는 것이다. 작위적인 모든 사업을 하지 않고 세속적인 왕래를 좇거나 찾지 않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오직 선을 닦을 뿐이다. 몸과 마음에 일이 많으면 수행을 할 수 없다. 수행인은 세속의 일을 줄여 주변을 정리하고 생활을 단조롭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5) 근선지식(近善知識) - 참선수행에 있어서는 선지식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선지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밖에서 보호하는 선지식으로서, 살림을 꾸리고 공양해 수행인을 잘 보호하며 어지럽지 않게 하는 분.
둘째, 함께 행하는 선지식으로서 함께 같은 길을 가면서 서로 채찍질해주고 북돋아주며 서로 어지럽게 하지 않는 분.
셋째, 가르쳐 주는 선지식이니 내외방편과 선정의 법문으로 가르쳐 이익 되게 하는 분이다. 모든 수행에 선지식이 필수적이지만 특히 참선수행에서는 선지식이 더욱 중요하다. 만공스님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법은 언어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한 곳에서 발견되는 도리라. 다만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응답으로 상속하는 법으로 선지식의 직접 가르침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도리이니라.”
* 오근` 五根 -- 인간의 감각기관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등 다섯을 일컫는다. 이 다섯 감각기관이 감각과 인식의 근본이 된다는 의미에서 근(五根)이라고 한다.
* 오근` 五根 --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다섯 가지 뛰어난 능력, 5가지 기능을 말한다. 번뇌에 벗어나 깨달음으로 가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불법 가운데 도의 뿌리를 깊이 내려 세속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수행법이다. 37조도품(助道品)에 포함된다.
① 신근(信根) - 믿음(saddh?)의 기능 - 신념이 도법에 굳게 뿌리를 내리는 바르고 굳은 믿음으로 수행의 뿌리를 내리는 것.
② 정진근(精進根) - 노력(viriya)의 기능 - 올바른 정진으로 수행에 물러섬이 없는 것.
③ 염근(念根) - 알아차림(sati)의 기능 - 바른 가르침인 불법을 항상 깊이 생각하는데 뿌리를 내려 바르게 기억하는 것.
④ 정근(定根) - 집중(sam?dhi)의 기능 - 바른 선정에 뿌리를 내려 마음을 고요히 해 올바른 마음을 가짐.
⑤ 혜근(慧根) - 지혜(pann?)의 기능 - 불법의 진리를 여실히 통찰해 올바른 지혜에 뿌리를 내리는 것.
오근(五根)과 오력(五力)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즉 믿음(saddha)은 지혜(pann?)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집중(sam?dhi)은 노력(v?riya)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알아차림(sati)은 다른 기능들과 균형을 이룰 필요는 없지만 지속적이어야 하고, 강하고 한결같고 끊어짐이 없어야 한다. 이 알아차림은 다른 네 기능이 제각기 목적지에 이르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이 둘이 모두 균형을 이룸으로써 근본 집중을 얻는다.
* 오도송` 悟道頌 -- 승려들이 깨달음을 얻은 후 짓는 시가. 승려들이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감흥이 일면 이를 게송으로 읊게 되는 것을 말한다.
* 오둔사` 五鈍使 -- 활동이 느리고 둔한 다섯 가지 번뇌.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의 다섯을 말함. 이 오둔사는 태어남과 동시에 따라오는 선천적 번뇌이고, 훈습적(薰習的)인 번뇌라서 끊기가 힘들다. → 오리사(五利使), 10사(十使)
* 오력` 五力 -- 오신력(五信力)이라고도 하는데, 수행에 필요한 다섯 가지 힘. 오근이 뿌리가 되어 실제로 활동하는 구체적인 다섯 가지 힘.
① 신력(信力) - 불법을 믿고 진리 아닌 것은 따르지 않는 힘.
② 정진력(精進力) - 선을 짓고 악을 버리기에 부지런히 수행에만 전념하는 힘.
③ 염력(念力) - 바르게 생각해 그릇된 생각을 버리며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는 힘.
④ 정력(定力) - 선정(禪定)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힘.
⑤ 혜력(慧力) - 지혜를 닦아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깨닫는 힘.
오력은 오근(五根)과 맥을 같이 하며,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에 포함된다. → 오근(五根)
* 오리사` 五利使 -- 오견(五見)과 같은 말. → 오견(五見), 견혹(見惑)
* 오부대승경` 五部大乘經 -- 천태종에서 중시하는 다섯 경전, 즉 화엄경, 대집경, 대반야경, 법화경, 열반경을 말함.
* 오분법신` 五分法身 -- 부처와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다섯 가지 공덕. 식(識)으로 존재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중생의 존재 방식은 오취온(五取蘊)이고, 반야로 법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수행자의 존재 방식은 오분법신의 관계에 있다. 오취온이라는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생사의 괴로움이 있고, 오분법신이라는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열반의 즐거움만이 있다.
즉, 여러 단계의 수행을 거쳐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의 공덕을 갖춘 것을 오분법신이라 하는데, 부처님과 아라한이 갖게 되는 법체(法體)를 말한다. 구체적인 오분법신(五分法身)이란,
계신(戒身) - 일체의 허물에서 벗어난 모습.
정신(定身) - 일체의 망념을 떠난 모습.
혜신(慧身) - 일체의 진리를 통달한 모습.
해탈신(解脫身) - 일체 얽히고 묶인 것에서 벗어난 모습.
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 - 본성은 본래 물들지 않아서 해탈인 상태를 혼자서 증지(證知)한 모습.
* 오분향례` 五分香禮 -- 오분향례란 오분법신(五分法身)인 부처님과 모든 성현들께 향(香)을 공양하고 예(禮)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 오시교판` 五時敎判 오시팔교` = 천태종(天台宗)의 교상판석(敎相判釋), 즉 여러 경전을 설법의 형식과 방법 및 내용에 따라 분류를 해서 체계를 세우는 것으로 5시와 8교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오시팔교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각종 교판(敎判)을 이어받아 전체 불교를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것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도에서는 원시불교에서 부파불교가 발달하고, 다시 대승불교가 흥기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초창기 중국에 불교가 들어올 때 인도불교의 발전단계와 상관없이 소승경전(원시경전)과 대승경전이 순서 없이 마구 뒤섞여서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래서 소승경전과 대승경전들 간에 교리상의 해석에 차이가 있어 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 없이 중국에 전래된 불교의 교파 나름으로 경전에 대한 비중과 가치를 판단하게 됐다. 이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 한다. 이 교상판석은 중국불교의 특징이기도 했다.
- 교상판석(敎相判釋) - 부처님이 일생동안 설한 가르침을 분석해 그 성격에 따라 시기별로 분류한 한 것을 말한다. 줄여서 교판(敎判)이라고 한다.
- 오시교판(五時敎判) 오시팔교(五時八敎) = 중국 천태종(天台宗)의 개조인 수(隋)나라의 지의(智?, 538∼597)가 천태종의 입장에서 교상판석을 한 것을 말함.
인도에서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된 불교가 그 순차와 상관없이 중국에 전래됐기 때문에, 그 차이와 모순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경전 및 교리를 분석 ? 판단해서, 부처님 일대(一代)의 설법의 순서를 시간적으로 분류해 ‘오시(五時)’로 나누고, 모든 경전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해 여기에 재배치했다. 즉, 부처님께서 49년간 설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팔만대장경이고, 그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다섯 단계로 분류한 것을 오시교라 한다. 오시교판은 화엄시. 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 열반시의 오시(五時)를 말한다.
1) 화엄시(華嚴時) - 성도 후 최초의 21일간 화엄경을 설한시기.
2) 아함시(阿含時) - 화엄시 이후 12년간 소승들을 위해 아함경을 설한 시기.
3) 방등시(方等時) - 아함시 이후 8년간 유마경, 금광명경, 능가경, 승만경, 무량수경 등 방등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
4) 반야시(般若時) - 방등시 이후 21년 동안 반야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
5)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 최후의 8년간 법화경, 열반경을 설한 시기.
팔교(八敎)란 가르침으로 이끄는 형식과 방법을 4종으로 나눈 화의사교(化儀四敎), 사람들의 성질 ? 능력에 대응해 가르치는 교리 내용을 4종으로 나눈 화법사교(化法四敎) 등으로 비판 ? 정리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같은 교판은 수많은 경전을 독자적 사상체계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업이지만,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허구로 비판돼 지금에 와서는 전혀 존중되지 않고 있다.
* 5식` 오식` 識 --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다섯 식을 말하며, 이를 전5식(前五識)이라고도 한다.
오온(五蘊)이란 한 생각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우주만물의 현상인 객체가 다 색(色)이고, 그것을 주체인 내가 받아들이는데, 수(受) ? 상(想) ? 행(行)을 거친다. 색이 오관작용에 의해 접촉됨을 수(受)라 하고, 그것을 의식함이 상(想)이고, 그것을 정리해서 마음에 전달함이 행(行)이다. 그 과정을 거쳐 마음에 도착하면 이것이구나, 저것이구나 하는 의식을 일으켜 지각작용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식(識)이라 한다. 그 식을 눈, 코, 귀, 혀, 몸을 통해 인식하는 것을 오식(五識)이라 한다.
* 오신채` 5辛菜 = 수행자가 먹지 말아야 하는 채소. ( 금지된 채소` ) 마늘, 파, 부추, 고추, 미나리
-기록에 따라서는 고추, 미나리 대신으로 달래, 흥거(興渠, 무릇)라고도 말함. 부처님 당시부터 직접 먹어서도 또는 다른 음식에 곁들어 먹어서도 안 될 것들로 수행자들이 경계해야 할 음식이다.
- 무릇 ; 아스파라거스목 히아신스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이 원산이며 일본과 중국에도 서식한다. 어린잎을 조려 먹는다. 한방에서는 이를 면조아(綿棗兒)라고 해서 해독 혹은 요통, 타박상에 처방하는 약으로 쓴다.
* 오신통` 五神通 =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하고 행함으로써 갖추게 되는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자재한 신통력.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신족통(神足通)을 이른다. 여기에 누진통((漏盡通)이 더해지면 육신통이 된다. → 육신통(六神通)
* 오십이위` 五十二位 -- 대승(大乘)의 보살이 최초에 보리심을 일으키고부터 수행을 쌓아 불과(佛果)에 이르기까지의 52종류의 계위(階位)를 말한다. <영락경(瓔珞經)>에 설하고 있는 보살의 52위를 열거 해보면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각 10계위가 있어 50단계이고, 그 다음에 51위인 등각(等覺), 52위인 묘각(妙覺)을 거쳐 부처에 이른다.
※ 영락경 瓔珞經 -- 원명은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과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의 두 가지가 있다. 여기에서의 영락경은 <보살영락본업경>을 뜻한다. → 영락경(瓔珞經)
* 오안` 五眼 -- 수행의 정도에 따라 갖추게 되는 다섯 가지 눈.
1) 육안(肉眼) - 가려져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 범부의 육신에 갖추어져 있는 눈.
2) 천안(天眼) - 겉모습만 보고 그 본성은 보지 못하는, 욕계 ? 색계의 천인(天人)이 갖추고 있는 눈.
3) 혜안(慧眼) - 현상의 이치는 보지만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성문(聲聞) ? 연각(緣覺)의 눈.
4) 법안(法眼) - 모든 현상의 참모습과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을 두루 아는 보살의 눈.
5) 불안(佛眼) -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부처의 눈.
보살들은 오안(五眼) 을 원만히 갖추고 있는데, 형상을 보는 육안(肉眼)은 맑고 밝아서 모든 사물을 분명히 알아보지 못함이 없고, 천안(天眼)을 통달해 시방세계와 과거, 현제, 미래의 삼세 등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보는데 걸림이 없으며, 법안(法眼)을 통달해 일체 만유의 차별상을 관찰하고 가지가지 가르침을 밝히며, 혜안(慧眼)을 통달해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 능히 영생의 피안에 이르며, 가지가지 지혜의 안목을 원만히 갖춘 법안(法眼)으로서 일체 만법의 근본실상을 사무쳐 깨달아 있다.
* 오온` 五蘊 -- 산스크리트어 panca-skandha, 팔리어 panca-khandha. ‘온(蘊)’이란 산스크리트어 스칸다(skandha)와 팔리어 칸다(khandha)의 역어로서 덩어리, 무더기, 혹은 집합(적취/積聚)을 의미한다.
오온은 불교의 인간관으로서 불교에서는 인간을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으로 관찰한다. 이 다섯 감각기관이 감각과 인식의 근본이 된다는 의미에서 근(五根)이라고 한다. 여기서 색은 몸이고, 수 상 행 식은 생각인데, 결국 오온이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라는 구성요소이자, 인간들이 살아 생존해 움직이는 정신적과 육체적 활동을 말한다.
- 색` 色 루파 rupa -- 색은 물질적인 형태로서 육체를 의미하는데, 인간의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대(四大)로 이루어지고, 감각기관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등 다섯 감각기관으로 이루어진다.
- 수(受 베다나 vedana) -- 수는 감수 작용 - 느낌인데, 의식 속에 어떤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 즉 색인 안 이 비 설 신(眼耳鼻舌身) 다섯 기관(오근)으로 느끼는 감정 ? 감각, 영어로는 필링(feeling)이다.
이처럼 오근(색온)이 어떤 대상을 만나서 일어나는 느낌을 수(受)라고 하고, 이때의 대상을 경계 혹은 경(境)이라 한다. 예를 들면, 눈(안근)이 좋은 그림(경)을 만나서 즐거움을 느끼(수)는 것과 같다. 이때 색온인 눈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식온도 작용을 해서 즐거움을 느낀(수)다. 따라서 식온이 색온인 육체(눈)와 연결됨으로써 수(受) 즉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감정이 발생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나는 곱다, 밉다, 시끄럽다, 조용하다, 비리다, 쿠리다, 좋은 냄새다, 달다, 쓰다, 매끄럽다, 거칠다, 좋다, 싫다, 즐겁다, 괴롭다, 쾌ㆍ불쾌, 고, 락, 불고불락 등의 일차적 단순 감정의 느낌을 수(受)라고 한다.
- 상(想 삼스냐 samjna)---상은 표상과 지각 작용으로 의식 속에 심상(心像)을 취하고 구성하는 것, 마음속에 어떤 것을 떠올려 개념 ? 관념을 형성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즉 이미 축적돼 있는 정보와 연관 지어 느낌이나 감각의 인상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지각하고 이름 짓는 표상작용을 일컫는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해 받아들였을 때 그것을 이리 저리 생각해서 언어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꽃이 있다면 눈(안근)이 그것(경계/경)을 보고 예쁘다고 느낀다면 수온이지만, 이것을 장미꽃이라 인식하든지, 국화꽃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작용이 상(想)이다.
- 행(行 산스카라 samskara)---팔리어로는 ‘상카라(sankhara)’라 하며, 행위를 낳는 의지작용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심적작용 ? 심리현상을 말한다. 즉 분별한 감정을 생각으로 굴려서 마음의 행위를 계속 이어나가는 의지와 행동작용이다.
인간의 정신작용 중, 행동하게끔 해주는 능동성. 의지와 욕구. 기억, 추리, 그 이외에 감각, 접촉, 의도, 주의, 집중, 의욕, 선업의 마음(믿음, 양심, 수치심), 불선업의 마음(탐, 진, 치)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행은 우리의 정신영역 가운데서 수 ? 상 ? 식 이외의 모든 마음의 작용을 총칭한다. 즉 심리현상을 포괄하고 있다.
- 식(識 비지냐나 vijnana)---식은 느낌(수)과 인식(상)과 심리현상들(행)과 같은 마음부수(심소/心所=마음의 부분적 속성)들의 도움을 받아서 대상을 아는 것, 즉 모든 인식의 주체가 되는 마음의 작용을 이르는 말이다. 분별, 인식, 판단 및 그 작용을 말하는데, 식별(識別, 요별/了別)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
오온이란 색온(色蘊, 루파스칸다 rupaskandha), 수온(受蘊, 베다나스칸다 vedanaskandha), 상온(想蘊, 삼나스칸다 sam jnaskandha), 행온(行蘊, 삼스카라스칸다 samskaraskandha), 식온(識蘊, 비즈나나스칸다 vijnana skandha), 이렇게 다섯 가지의 구성요소를 말한다.
* 5욕 오욕` 五慾 -- 1) 식욕(食慾), 2) 장수욕(長壽慾) 혹은 수면욕(睡眠慾), 3) 성욕(性慾 = 색욕/色慾), 4)물욕 (物慾 = 재욕/財慾), 5) 명예욕(名譽慾) 혹은 권력욕(權力慾).
※ 불교에서는 5욕을 즐기는 것을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오욕을 멀리하면 할수록 법락(法樂)을 즐길 수가 있다. 우리는 깨달음의 법락을 미처 맛보지 못해서 그런데, 사실은 욕계를 떠나면 떠날수록 인간의 참다운 법락은 더욱더 증가되며, 그 법락은 한도 끝도 없다.
* 오위` 五位 -- 유식설(唯識說)에서, 수행의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수도 5위(修道5位)를 말함.
1) 자량위 (資糧位) - 깨달음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 수행에 필요한 복덕과 지혜를 쌓는, 선근과 공덕을 쌓는 준비단계로서, 나와 너가 서로 짝으로 존재하고 상대적이고 의존적이라는 진리를 머리로 깨달은 상태다.
2) 가행위 (加行位) - 가행도(加行道) 또는 방편도(方便道)라고도 하는데, 가행이란 힘을 더해 더욱 정진한다는 의미로서 실질적인 유식수행(唯識修行)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제1위 자량위(資量位)의 단계가 복덕과 지혜로서 내적인 자질과 역량을 키우는 단계라면, 가행위는 본격적으로 노력하는 단계로서 인식의 주객(主客)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해 현상을 나와 너,또는 나와 대상으로 분별해서 받아들이는 정신적 습관을 자각하고, 그러한 습관을 제거하는 훈련을 닦아 나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참된 유식(唯識)의 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번뇌가 없는 지혜를 얻기 위해 모든 대상과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은 모두 허구라고 주시하는 단계이다.
3) 통달위(通達位) -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는데, 비로소 무루지(無漏智)를 얻어 진여(眞如)의 이치를 체득하는 단계. 즉, 번뇌가 없는 지혜로써 우주의 진리를 체득하는 단계이다.
4) 수습위 (修習位) - 번뇌가 없는 지혜로써 우주의 진리를 여러 번 되풀이해 체득하는 단계이다.
5) 구경위 (究竟位) -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의 경지이다.
* 오음성고(五陰盛苦 -- 팔고(八苦)의 하나로서 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도 한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五蘊) 그 자체가 곧 괴로움이란 의미이고, 인간의 존재 자체가 곧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중생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5온(五蘊, 五陰)이 불같이 일어나서 괴로움이 생기는데, 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이란 것도 다 실체가 없는 무상한 것이거늘, 이를 무상하게 보지 못하고 나의 몸과
마음(아상/我相)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해 이에 집착함으로써 거기에서 오는 고통을 말한다.
* 오의평등` 五義平等 -- 대상의 전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작용인 심왕(心王)과, 심왕에 부수적으로 일어나 대상의 부분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작용인 심소(心所)의 다섯 가지가 동등한 성질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1) 소의평등(所依平等) - 심왕이 육근(六根) 가운데 어느 것을 의지처로 하면, 심소도 같은 것을 의지처로 해 일어남.
2) 소연평등(所緣平等) - 심왕과 심소는 대상을 같이 함.
3) 행상평등(行相平等) - 심왕과 심소에 나타나는 대상의 모습은 같음.
4) 시평등(時平等) - 심왕과 심소는 동시에 일어남.
5) 사평등(事平等) - 심왕과 심소는 각각 하나씩 일어나고, 동시에 둘 이상의 심왕과 심소가 일어나지 않음.
* 오정심관` 五停心觀 -- 삼현(三賢)인 오정심관(五停心觀), 별상염주(別相念住), 총상염주(總相念住)의 하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다섯 가지 번뇌(불건강한 심리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5가지 수행법이다.
우리들의 내적인 마음의 평화와 원만한 인간관계를 방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불건강한 심리상태는 탐 ? 진 ? 치의 3독심과 자아에 대한 집착(我執), 그리고 분별하는 산란한 마음이다. 이들 5가지 불건강한 마음을 정화하고 해독하기 위한 사마티와 위빠사나에 의거한 수행방법이 오정심관이다.
1) 부정관(不淨觀) - 우리 몸의 부정한 모습을 보는 것. 육체의 부정한 모습을 떠올리며 탐욕과 애욕을 조절하도록 하는 수행법. 몸의 부정한 모습을 보는 것. 우리의 육체가 얼마나 더럽고 부질없는 모습인가 육신의 덧없음과 더러운 모습을 관하는 것
2) 자비관(慈悲觀) - 사람들이 성내고 다투는 마음을 그쳐 자비로운 마음을 내게 하는 것.자비심으로 화내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
3) 인연관因緣觀) - 인연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이치를 깊이 관찰하면 모든 것을 고정된 관점에서 보고 집착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열린다는 것.
4) 계분별관(界分別觀) - 나에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를 버리기 위해 오온(五蘊) ? 십팔계(十八界) 등을 주시함.
5) 수식관(數息觀) - 참선 시 호흡을 관찰하며 공부하는 법. 들어가고 나가는 숨을 관찰한다고 해서 출식념(入出息念)이라고 부른다. 주로 마음이 산란한 사람들이 닦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 별상염주(別相念住)---신체는 깨끗하지 못하며, 느낌이나 감정은 괴로움이며, 마음은 항상 변하며, 모든 현상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주시하는 수행법.
※ 총상염주(總相念住)---신체와 느낌이나 감정과 마음과 현상은 모두 변하며, 괴로움이며, 공(空)이며,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주시하는 수행법.
* 오조가사` 五條袈娑 -- 다섯 가닥의 헝겊을 꿰매어 붙여 만든 승려가 장삼 위에 걸쳐 입는 옷. 인도에서는 일할 때나 잠잘 때 입었으나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법의(法衣)로 입었다.
* 오중` 五衆 -- 불제자 중에서 출가한 자를 다섯 종류로 나누어, 비구, 비구니, 식차마나 (式叉摩那), 사미, 그리고 사미니로 구별한 것.
* 오체투지` 五體投地 -- 오체는 몸의 다섯 부분인 두 팔꿈치와 두 무릎, 이마를 말한다. 오체투지는 몸의 다섯 부분을 땅에 닿게 엎드려 하는 절을 일컬음. 이런 오체투지는 자신의 아만심과 교만을 물리쳐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과 삼보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최고의 공경법이다.
* 오취온고` 五取蘊苦 -- 오음성고(五陰盛苦)와 같은 말. → 오음성고(五陰盛苦)
* 오행` 五行 -- 불교에서의 오행은 유학에서의 오행과는 사뭇 다르다. 불교에선 보살의 다섯 가지 수행을 말한다.
1) 성행(聖行) -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써 행함.
2) 범행(梵行) - 청정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괴로움을 덜어 줌.
3) 천행(天行) - 자연의 이치에 따름.
4) 영아행(?兒行) - 지혜가 얕은 이들을 교화하기 위해 그들이 행하는 작은 선행(善行)을 같이 행함.
5) 병행(病行) - 평등심에서 중생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번뇌와 괴로움의 병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임.
* 옥야경` 玉耶經 -- 불교의 입장에서 어진 아내의 도리를 들려준 경전. 중국 동진(東晋)시대에 축담무란(竺曇無蘭)이 한역(漢譯)했고, 승가제바(僧伽提婆)도 번역했다. 부처님에게 기원정사를 희사한 사위국(코살라국;舍衛國)의 장자 수닷타[sudatta, 수달(須達)=급고독(給孤獨;아나타 핀디카)]의 며느리 옥야에게 부녀자의 도리를 설한 경이다.
* 옥천사` 玉泉寺 -- 수의 양제(煬帝)가 지자(智者)대사 지의(智?, 538~597)를 위해서 내린 중국 형주(荊州)에 있는 사액(賜額) 사찰이다. 중국 불교사에서 옥천사가 갖는 위상은 대단하다. 천태종의 지자, 북종의 신수(神秀), 남종의 신회(神會)와 회양(懷讓) 등이 수행과 교화를 해서 선종의 3개 종파가 탄생한 사찰이다.
* 옴` Om, 唵 -- 산스크리트어 ‘옴(Om)’이라는 음절은 하늘 ? 땅 ? 대기의 삼계(三界)를 의미하며, 일체를 가득하게 하고, 일체의 근본이며,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거룩한 소리이다. 원래는 헤브라이어의 '아멘'에 해당되는 말로, 승낙을 나타내는 경어였으나 불교에서는 옴을 태초의 소리, 우주의 모든 진동을 응축한 기본음으로 보고, 부처에게 귀의하는 자세를 상징한다.
옴마니반메훔(Om Mani Pedme Hum)의 첫 글자. 옴은 절대적인 의식을 상징하는 신성한 음절로서 모든 만트라(眞言) 중에서 가장 위대한 만트라이다. 옴에는 모든 만트라가 포함돼 있으며, 모든 만트라는 옴으로 시작된다. 옴은 태고의 떨림이며, 옴의 근본적인 가치는 의식의 영원한 진동이다. 우주는 옴에서 시작돼 옴에서 휴식을 취하고, 옴으로 사라진다. 이 불멸의 소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아래 도형은 옴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위쪽 초승달 모양은 마야(Maya,환영)의 형상이며, 그 위의 점은 초월의 상태이다. 아래의 긴 곡선(3 모양)의 등에 붙은 꼬부랑(곡선)은 꿈꾸지 않은 깊은 수면의 상태, 긴 곡선(3자 모양)의 아래 끝은 ‘꿈꾸는 상태’, 3자의 위 끝은 ‘깨어 있는 각성의 상태’
* 옴마니반메훔` 唵???美? Om Mani Pedme Hum =
<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라고 하는데, 원명은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 本心微妙 六字大明王眞言)>이라는 긴 이름이다. 이 진언(眞言, Mantra)은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인데,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을 찬탄하는 말로 모든 복덕, 지혜, 공덕, 행의 근본이 되는 아주 소중한 진언이다. 여기서 ‘육자(六字)’는 글자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육도의 중생을 뜻하는데, 각각의 글자마다 여러 뜻이 있고, 글자마다 공덕이 다르다.
옴(Om) - 태초 이전부터 울려오는 우주의 소리(에너지)를 의미하며, 보통 성음(聖音)이라 한다.
마니(mani) - 여의주(如意珠)로서 깨끗한 지혜를 상징하고,
반메(padme) - 연꽃으로서 무량한 자비를 상징한다.
훔(Hum) - 우주의 개별적 존재 속에 담겨 있는 소리를 의미하며, 우주 소리(Om)를 통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육자진언은 「온 우주(Om)에 충만해 있는 지혜(mani)와 자비(padme)가 지상의 모든 존재(hum)에게 그대로 실현될지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곧 육자진언을 염송하면 사람의 내면적 에너지(지혜와 자비)를 활성화시켜서 우주의 에너지와 통합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서 법계(우주)에 두루한 지혜와 자비가 수행자에게 실현된다고 한다.
* 왕사성` 王舍城 산스크리트어 R?jag?ha -- 옛 마가다국(Magadha國)의 도읍지.
→ 라자그리하(산스크리트어 R?jag?ha, 왕사성/王舍城)
* 왕생 ` 往生 --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후 다른 세상에 가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서방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날 것을 원하는 극락왕생(極樂往生),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불국토에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시방(十方)왕생,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에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도솔(兜率)왕생 등이 있다.
*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 -- 통일 신라 시대인 727년(성덕왕 26)에 혜초(慧超)가 고대 인도와 인근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당나라에 돌아와서 쓴 여행기이다.
혜초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인 704년에 태어나서, 20세 때인 723년 당나라로 유학 가서 인도 출신 밀교 승려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의 제자가 됐다. 혜초는 금강지의 권유로 723년에 배편으로 중국을 출발해 지금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을 거쳐 인도로 갔다.
그 뒤 약 4년 동안 인도와 서역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고, 727년에 당시 안서도호부가 있던 구자(龜玆) - 즉, 현재의 중국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쿠차 -를 거쳐 중국의 장안에 돌아왔다. 그 뒤 혜초는 신라에는 돌아오지 않은 듯하며, 오로지 중국에서 밀교의 연구에 몰두하다가 780년 산서성(山西省) 오대산(五臺山)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열반했다.
왕오천축국전은 우리 문학 사상 최초의 외국 기행문이며, 한국 문학사에서 완결된 도서의 형태로 전하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08년 프랑스의 학자 펠리오(Pelliot, P.)가 간쑤성(甘肅省) 둔황(敦煌)에서 발견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권자(卷子) 형태-두루마리 형태로 된 필사본 1권이 현재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 요가` yoga, 瑜伽 -- 요가는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신 수련 방법을 말한다. ‘요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서 ‘유즈(yuji, 결합하다)’에서 시작해서 ‘yoga’가 됐다. 음역하면 유가(瑜伽)가 되고, 의역하면 '상응한다'는 뜻이 된다.
요가는 정신적인 도구상자이고 육체적인 건강과 안녕이다.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어 정신을 통일 ? 순화시키고, 또는 초자연력을 얻고자 행하는 인도 고유의 수행법이다. 인도 고대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를 중심으로 하는 상키아(S?mkhya:數論派)와 요가파(瑜伽派)로 발전했으며, 당시의 모든 학파는 그 실천방법으로서 요가를 수련했고, 불교에서의 무념(無念) ? 무상(無想) ? 무심(無心)의 참선이나 결가부좌(結跏趺坐)도 바로 요가에서 온 것이다.
* 요사채` 寮舍寨 --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이르는 말로서 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기도하러온 신도들이 잠깐 쉬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창고, 우물, 장독, 세탁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한데 모여 있다. 법당에 대웅전과 극락전 등의 이름이 붙듯, 요사채에도 기능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붙는다.
심검당(尋劍堂) - 지혜의 칼을 찾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의미를 가진 요사채
적묵당(寂默堂) - 말없이 명상한다는 의미를 가진 처소
해행당(解行堂) 또는 수선당((修禪堂) - 올바른 행과 참선하는 장소
설선당(說禪堂) - 참선과 강설의 의미가 복합된 처소
노전(爐殿) - 의식을 집전하는 곳. 이곳에서 향을 피워 예불을 집전을 함으로 봉향각(奉香閣), 일로향각(一爐香閣)이라고도 한다.
염화실(拈花室). 반야실 - 조실스님이나 노장, 대덕스님들이 머무는 처소.
향적전(香積殿) - 향나무로 땔감으로 해 법당에 올릴 공양을 짓는다는 뜻.
* 요의경` 了義經 -- ‘요의(了義)’란 명백하게 풀이된 궁극의 참뜻이란 말이고, ‘요의경’이란 특정 불경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을 그대로 드러낸, 진실하고 확실한 불법의 도리를 이치를 완벽하게 나타낸 경전’이라는 보통명사이다.
〈대승열반경〉에서는 “사람과 말과 식(識)과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고, 법과 뜻과 지혜와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라.”고 했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은 매우 체계적이고 이론적이어서 경이라기보다 논에 가까운 경전인데, 스스로를 요의경이라 하고 반야부 경전이나 소승경전들은 완전하지 않은 가르침이라 해서 불요의경이라 했다. 이와 같이 대승에서는 소승을 모두 <불요의경(不了義經)>으로 봤다.
‘아비달마’의 자기 논리에 의하면, 부처님의 법문이라 할지라도 그 법문을 듣는 이에 따라 중층적으로 설해졌기 때문에 거기에는 당연히 궁극적인 경(了義經)과 그렇지 못한 경(不了義經)이 있다. 그리고 요의경 역시 그 자체가 깨달음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마땅히 어떤 표준적 근거에 의해 정리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해석을 하는 그것이 바로 ‘아비달마’라고 했다.
* 요익중생` 饒益衆生 -- 요(饒)는 넉넉할 요, 익(益)은 더할 익이다. 그래서 중생을 넉넉하게 이익 되게 하라. 남을 이익 되게 하면 나도 저절로 좋아진다는 말로서,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과 같다. 즉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워야 하니 남이 잘 되도록 도와주고, 남이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뜻이다. → 견성성불 요익중생(見性成佛 饒益衆生)
* 욕계` 慾界 -- 욕계(欲界)란 5욕락(欲樂)의 탐욕(貪慾)으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거칠며 물질에 속박돼 사는 가장 어리석은 중생이 사는 곳이다. 다시 말해 감각기관으로 생기는 욕망의 세계이다. 욕계는 6천(天)이라 해 6개의 하늘이 있고 색계는 18계의 하늘이 있으며 무색계는 4개의 하늘이 있다.
욕계삼욕(慾界三慾)이라 해서 식욕 ? 성욕 ? 수면욕 등의 욕망을 가진 중생들이 사는 세계가 욕계이다. 윤회 가운데 있는 6가지 존재 양태 가운데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 인간(人間) 등의 5가지와 욕계 6천(육욕천/六慾天)이 여기에 속한다.
※ 욕계(欲界) 6천(六天)---욕육천(欲六天)이라고도 한다. 욕계에 딸린 6종류의 하늘.
즉, 사천왕천(四天王天) 도리천(?利天) 야마천(夜摩天) 도솔천(兜率天) 화락천(化樂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 여섯 하늘을 말한다.
* 욕두` 浴頭 -- 사찰에서 승려들의 목욕물을 준비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
* 용문석굴` 龍門石窟 --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洛陽)의 남쪽 14km에 있다. 북위(北魏) 시대인 5세기 말부터 초기 당(唐)시대인 9세기까지 조성된 석굴군이다. 중국의 불교문화뿐 아니라 빼어난 건축, 조각 예술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이허(伊河)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용문산(龍門山)과 향산(香山)의 암벽을 따라 약 1.5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2,300여 개의 석굴과 벽감(壁龕)이 조성돼 있고, 내부에 총 10만 점이 넘는 불상, 2,800여 개의 명문, 40여 개의 탑이 조각돼 있다.
* 용수` 龍樹 → 나가르주나`
* 용화전` 龍華殿 -- 미륵전의 다른 이름(미륵불을 모신 전각).
* 우다나` 優陀那, Udana -- 불경 서술 형태를 구분한 십이분경(十二分經)의 하나. ‘우다나’란 감흥해 저절로 나오는 말을 가리킨다. 한역하면 자설(自說) 또는 무문자설(無問自說)이다. 우다나경은 부처님의 우다나를 모은 것으로, 팔리어 경장 중 소부(小部, 쿳다까니까야)의 세 번 째 경전이다. 모두 8장이며, 각 장은 다시 10경(經)을 담고 있으므로 총 80경이 된다.
대개 게송으로 이루어지며, 앞부분에는 ‘거기서 세존은 이것을 알고, 그때 이 우다나를 발했다’라는 말이 반드시 붙는다. 그리고 끝에서 우다나가 왜 나왔는지를 산문으로 설명한다. 부처의 전기에 관한 것이 주된 내용이고 그밖에 사상적으로 중요한 교설도 포함하고 있다. 깨달음과 열반에 대한 감흥어린 시구들을 그 인연담과 함께 들려주는 초기경전 가운데 가장 심오하고 위대한 경전이다.
→ 무문자설(無問自說), 십이분경(十二分經)
* 우담발화` 優曇鉢花 --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서 자생하는 뽕나무과의 식물에서 피는 꽃 이름. 나무 크기는 한길 남짓하며, 잎은 15cm 정도이고, 잎 모양은 뾰족한데 끝이 가늘다. 암수 다른 꽃이 피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은화 식물이다.
인도 전설에서 여래(如來)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타날 때 피어난다는 꽃이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상상속의 꽃이다. 불경에서는 우담발화가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고 해서 상서로운 일 또는 매우 희유한 일에 비유하는 예로 쓰인다.
* 우두선` 牛頭禪 → 법융(法融)
* 우란분경` 盂蘭盆經 -- 우란분이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을 음역한 말인데, 불교적 효도를 강조한 불교 경전이다. 원전은 전하지 않고, 중국 서진(西晉) 시대에 월지국 출신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이 원래 명칭이다. 이 경은 처음 <보은봉분경(報恩奉盆經)>이라는 이름으로도 누군가에 의해 한역됐으나 실전됐고, 현존하는 것은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것이다.
중심 내용은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 승려들에게 공양을 함으로써 전생 및 금세에 돌아가신 어버이 일곱 분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목련(目連)존자가 아귀(餓鬼)의 고통을 겪고 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세존의 가르침대로 자자일(自恣日)에 여러 부처와 보살, 그리고 승려에게 갖가지 음식과 과일을 지성으로 공양해 어머니를 제도했다는 효성을 설하고 있다.
* 우란분재` 盂蘭盆齋 = 음력 7월 15일(양력2013년8월21일)
분야 ; 의례 계절 ; 가을(음력 7월)
다른이름 ; 우란분절 盂蘭盆節, 우란분회 盂蘭盆會
관련정일 ; 백중(百中)
정의 ;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 우란분재(盂蘭盆齋)는 흔히 백중이라 부르는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 행사이다. 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우란분이란 산스크리트어 ‘ullamana’에서 나온 말인데 ‘avalamana’가 전화(轉化)하여 생긴 말로서 거꾸로 매달려 있다[倒懸]는 뜻이다.
우란분재 유래 ; 우란분재는 불교 경전인 『우란분경(盂蘭盆經)』과 『목련경(目連經)』에서 비롯되었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부처의 십대 제자 중에 신통력이 뛰어난 제자인 목련(目連)은 어머니가 선행을 닦지 못해 아귀도에 떨어져 배가 고파 피골이 상접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목련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새까맣게 타서 먹을 수가 없었다. 목련이 비통해하며 그 원인을 물으니 부처는 죄업의 뿌리가 너무 깊어 그렇게 된 것이므로, 시방의 여러 승려들의 위신력(威神力)만이 구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방법으로 모든 승려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점검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는 7월 15일에, 과거의 7세 부모와 현세의 부모 중에 재앙에 빠진 자가 있으면 밥을 비롯한 백 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우란분(盂蘭盆)에 담고 향과 촛불을 켜서 시방의 승려들에게 공양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수행하고 교화하는 모든 승려들이 이 공양을 받으면, 현재의 부모가 무병장수하며 복락을 누리고, 돌아가신 조상은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고 하였다.
『목련경』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목련의 모친이 살아서 악행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고생하는 것을, 목련이 대승경전을 외우고 우란분재를 베풀어 지옥, 아귀, 축생으로부터 차례대로 구제하여 천상에 태어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의식을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행하는 것은, 수행 정진하는 하안거(夏安居) 석 달 동안 보고 듣고 의심하던 일들을 서로 논의하고 잘못을 고백하여 마무리 짓는 마지막 날이어서 승려들에게 공덕을 올리기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우란분재 내용 ; 7월 보름은 흔히 백중이라고 하는데, 백종(百種), 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날 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큰 행사가 열렸다. 불교의 4대 명절을 보통 불탄절(佛誕節), 출가절, 성도절, 열반절로 꼽지만, 이에 못지않게 성행한 것이 우란분절(盂蘭盆節)이었다. 불교가 동아시아 문화권에 들어와 유교의 효(孝) 윤리와 충돌하면서 효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불교 배척의 중요한 논거가 되어 왔다. 이에 대응하여 불교계에서 설정한 우란분재는 돌아간 부모가 혹 좋지 못한 과보를 받으면 후손들이 이를 천도하여 천상에 태어나도록 한다고 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우란분절은 초파일의 불탄절과 함께 불교계의 가장 대표적인 명절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인 양나라 무제 때 동태사에서 처음으로 우란분재를 지낸 이후 역대 제왕들이 우란분재를 설하였다. 이 행사는 7월 15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행해졌고, 당나라 중기 이후에는 민속화된 행사로 정착되어 승려와 일반인들이 함께 우란분재를 시행하고 공양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우란분재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고려 이전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일본에서도 이 재를 신라의 진평왕대부터 시행해 왔으므로 신라시대부터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우란분재가 여러 차례 개설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예종 때인 1106년에 궁궐의 장령전(長齡殿)에서 선왕(先王) 숙종의 명복을 빌고 천도를 바라는 우란분재가 거행되었고, 이는 110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의종 때인 1153년에는 봉원전(奉元殿)에서 개설되었다. 충렬왕(忠烈王) 때인 1285년에는 신효사(神孝寺)에서, 1296년에는 광명사(廣明寺)에서 거행하여 고려 말에는 궁궐에서 사찰로 개최 장소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는데, 공민왕 때인 1356년에는 다시 내전(內殿)에서 우란분재를 개설하였다. 이들은 모두 부모를 비롯한 조상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으로서 7월 15일에 열렸다. 이 밖에 왕실 밖이나 각 사찰에서도 우란분재가 널리 열렸으리라 추측된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초기에는 우란분재가 시행되었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는 태조 7년인 1398년 7월에 흥천사(興天寺)에서 우란분재를 설하였다고 하였다. 조선 전기의 풍속과 문물을 전하는 성현(成俔)의 『용재총화(?齋叢話)』 권2에는 “7월 15일을 풍속에서 백종(百種)이라 부르는데, 승가에서는 백 가지의 꽃과 과일을 모아 우란분재를 개설한다. 서울의 비구니 사찰에서 더욱 심하다. 부녀들이 많이 모여들어 쌀과 곡식을 바치고 돌아간 조상의 영혼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 때로는 승려들이 길가에 탁자를 놓고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모두 금하게 하여 일부에 그친다.”라고 하여, 이미 15세기 말에 국가의 금령으로 우란분절 행사가 크게 위축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끊이지 않고 중요한 행사로 전승되었다. 그래서 점차 일반화되고 민속화된 우란분절은 각 사찰에서 죽은 이를 위해 재를 지내는 행사로 널리 시행되었다.
우란분재 행사는 오늘날에도 과거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시행되고 있다.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는 갖은 음식과 과일을 마련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상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한다. 특히 초파일의 불탄절에 연등을 공양하여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에 비하여, 우란분절에는 백등(白燈)을 밝혀 죽은 조상을 추모한다.
오늘날 거행하는 우란분절 법회의 의식은 불탄절 봉축법회와 같은 절차로 행하며, 다만 고혼(孤魂) 영가의 조상을 천도하는 의례가 추가된다. 조상을 천도하는 특성에 맞추어 독경은 천수경(千手徑)이나 지장경(地藏經) 또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가운데 선택해서 시행한다. 요즈음 서울의 한 사찰에서 시행하는 우란분절 행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란분절 법회는 돌아가신 부모의 천도를 위해 승려에게 공양을 올리는 사은법회로 진행한다. 1부는 부처를 모셔 올리는 차례로 관욕(灌浴)과 상단불공축원이 진행된다. 2부는 삼귀의, 보현행원, 청법가, 설법, 우란분공양, 사은사봉독, 불자대중 삼배 순으로 진행된다. 3부는 영가시식과 봉송소전으로 진행된다. 우란분공양에서는 절의 신도회가 마련한 공양물을 절에 주석하는 대중승려에게 올리고, 이어 신도들이 합장하고 사은사를 봉독하며 승려에 대한 공경의 예를 다한다. 우란분공양에 앞서 대중스님들은 우란분경을 함께 봉송한다. 신도들이 마련한 우란분에는 승려들의 내의, 양말, 면 티셔츠, 치약, 비누와 같은 일용용품을 담는다.
우란분재 의의 ; 오늘날 우란분절에 행하는 우란분재는 생명의 실상, 영혼의 의미, 천도의 공덕을 생각해보는 모임을 마련하는 기회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덕을 쌓는 방법으로 굶주리는 자에게 먹을 것을 보시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며, 외로운 자를 위로하며, 청정한 수행자를 보호하라고 한 가르침을 현대 사회에서 베풂의 공덕을 쌓는 날로 변환시킨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와 모든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원한을 풀어 극락왕생하게 할 뿐 아니라, 고통 받는 생명이 질곡에서 해방되어 죽은 자와 산 자가 한마음으로 만나는 행사를 마련하여 우란분절의 참뜻을 새긴다. 수해로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천도재가 열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민속 행사도 열린다. 복지시설을 찾아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봉사하여 효를 실천하며, 이웃에게 따뜻한 베풂의 자리도 마련한다. 고통에서 헤매는 모든 생명들을 해방시키자는 뜻에서 야생동물들을 산으로 돌려보내고 물고기를 놓아주는 방생 행사도 한다. 요즈음의 우란분절은 부처의 위신력과 승려들의 수행력, 신도들의 공덕을 합친 생명 해방의 날로 기념하려는 추세에 있다.
우란분재` --------
* 우바새` 優婆塞 upasaka -- 산스크리트 우파사카(upasaka)의 음역이다. 한역하면 거사(居士). 청신사(淸信士)이고, 근사남(近事男)이라고도 한다. ‘받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부처님을 신봉하는 남자로서 재가신자.
* 우바새계경` 優婆塞戒經 -- 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계를 담은 불경. 팔리어 삼장에 있는 <선생경(善生經)>을 대승불교에 맞게 고친 경전이다. ‘선생’이라는 명칭은 이 경전이 ‘선생(善生)’이라는 장자(長者)를 위해 설법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북량의 담무참(曇無讖)이 426년에 한역했는데, 산스크리트어본이나 티베트어본은 전하지 않는다. 모두 7권으로 구성돼 있다. 대승계(大乘戒)를 소개하고 있어서 중국불교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었다.
* 우바이` 優婆夷, upasika -- 부처님을 신봉하는 여자 재가신자. 남자 재가신도인 우바새와 함께 불교 교단의 4부대중과 칠중(七衆)을 이룬다. 한역하면 청신녀(淸信女)이고, 근사녀(近事女)라고도 한다.
* 우파니샤드` Upanishad -- 가장 오래된 힌두 경전인 베다를 운문과 산문으로 설명한 철학적 문헌들. 현재 108가지 정도 알려져 있는 우파니샤드에는 일찍이 BC 1000~600년경에 크게 활약했던 일련의 힌두 스승들과 성현들의 사상들이 기록돼 있다. 후기 인도 철학의 많은 부분이 이 문헌에 기반을 두었다.
우파니샤드엔 우주 유일의 근본원리로서 브라만(梵)과 개인 존재의 본체인 아트만(?tman, 我)이 상정되며, 결국 이 두 가지는 동일한 것이라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이 표명돼 있다.
* 우팔리` 優婆離, Upali -- 석가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 불교 교단의 규율 및 규칙에 정통했으며, 또 계를 지키는데 있어서 매우 엄격했던 우팔리는 계율에 통달해 ‘지계(持戒) 제일’로 불렸다. 석존 입멸 직후의 제1차 결집에서 ‘계율’ 부분은 우팔리존자의 송출에 의존했다고 한다. 우팔리는 석가족(族) 궁정의 이발사로 최하층인 수드라(sudra) 계급 출신이다.
* 우화서` 雨華瑞 -- 세존께서 <법화경>을 설하려고 삼매에 드셨는데 하늘에서 꽃이 비 오듯이 쏟아져 상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그래서 법당에는 꽃 장식이 많다.
* 운강석굴` 雲岡石窟 -- 중국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의 서쪽 15㎞ 지역인 운강진(雲岡鎭)에 있는 석굴사원. 무주천(武州川)의 남서쪽 벼랑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전체 길이는 약 1km이며, 대굴 21개 중굴 20개와 무수한 소굴, 불감(佛龕)이 조성돼 있다. 석질은 밝은 색의 사암(砂岩)으로 거의 전부가 북위(北魏) 시대에 조성된 것이며, 벽에 직접 조각해 색을 칠했다.
※ 중국 3대석굴---운강석굴, 둔황의 막고굴, 낙양의 용문석굴
* 운력` 運力 -- 스님들이 행하는 육체노동으로 울력이라고도 한다. 노동이 일반에게는 삶의 한 방편을 뜻하지만, 사찰에서는 수행의 하나로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다.
* 운문 문언` 雲門文偃, 864~949 -- 중국 당 말에서 오대를 거쳐 북송 초까지 활약한 선승. 광진대사(匡眞大師)라고도 한다. 법명은 문언(文偃)이고, 운문종(雲門宗)의 창시자이다.
그는 뛰어난 화두로 유명한데, 특히 ‘간시궐(乾屍厥) - 마른 똥막대기’라는 화두가 유명하다. 이처럼 운문선사 어록의 특색은 상대방의 질문의 포인트를 잡은 간단명료한 어구에 있다. 운문선사는 어록을 남기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 스님이어 그의 설법은 흘러가는 구름과 같이 막힘이 없었지만 누가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면 반드시 야단을 쳤다. 헌데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그 옷에 몰래 받아 적었기 오늘에 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서는 따로 없고 그의 말을 기록한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이 전해진다.
* 운수` 雲水 생활 -- 선승들이 물이나 구름이 흘러가듯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정처 없이 행각하는 것, 아무 뜻 없이 이리저리 방랑하는 생활이 아니라 선지식을 찾거나, 만행을 통한 구도의 행각을 뜻한다.
* 운수납자` 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를 묻기 위해 돌아다니는 승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운판` 雲板 -- 사찰에서 청동 판에 구름처럼 무늬를 아로새긴 것을 매달고 조석예불 때 치는 것인데, 허공에 날아다니는 중생들을 제도하고, 허공 세계에 사는 중생의 고통을 쉬게 하는 법구이다. 옛날 선방에서는 밥 때를 알리는 신호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 원` 願 -- 불교에서 ‘욕(欲)’이란 “갖고자 하는 마음,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바람, 구함”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 ‘원(願)’이다. 그리하여 욕(欲)과 원(願)은 그 의미는 비슷하나 전자는 버려야하는 것으로, 후자는 가져야 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을 세우다’라고 하면, 간절히 구하고자 하는 바, 즉 중생주제 혹은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세운다는 뜻으로 쓰인다. 무슨 일이나 목표가 분명해야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다.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믿음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것이 원이다.
모든 불보살의 본원(本願)이란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로서 모든 부처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성불하고자 뜻을 세운 여러 가지의 서원을 말한다.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는데, 총원은 모든 부처님들의 공통한 본원 곧 사홍서원(四弘誓願)이며, 별원은 부처님마다 중생 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우신 아미타불의 48원, 약사여래의 12원, 법장비구의 48대원 등을 일컫는다. → 원력(願力)
* 원각경` 圓覺經 -- 원명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이며, 예부터 우리나라에서 대승불교의 근본경전으로 써 온 경전. <원각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등 12보살들과의 문답을 통해 대원각의 묘리와 그 관행을 설한 경전이다. 12보살들과의 문답을 각각 1장으로 했기 때문에 전체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원각경>은 실천 수행의 체계를 정연하게 갖추고 있는 경전으로서, 특히 선종 계열에서 중요시 여겼다. 그리하여 불교 전문 강원(講院) 사교과(四敎科) 과정의 필수과목으로 학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은 693년 북인도의 승려 불타다라(佛陀多羅)의 한역본이다. 그런데 이것의 산스크리트어 원본이 없어 중국에서 만든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 원각 圓覺 -- 부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한 본심을 일컬어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 한다.
* 원광국사` 圓光國師, 555년/진흥왕 16∼638/선덕여왕 7 -- 신라의 고승으로 중국 남북조시대 진(陳)나라에 가서 불법을 수학했으며 화랑도에게 이른바 세속오계(世俗五戒)를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대승불교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신라에서 강의한 최초의 학승이었고, 불교의 토착화에 크게 공헌했으며, 운문사(雲門寺)를 중창했다. 원광법사의 부도탑(浮屠塔)은 현재 경북 경주시 안강읍(安康邑) 두류리에 있다(경북문화재자료 제97호).
* 원교 圓敎 -- 원은 원만, 원융의 뜻이며, 원교는 부처님께서 평생 설법한 중에서 가장 수승한 구경의 법문, 원만하고 완전한 교법을 이른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의 최종 진리를 가리킨다. 천태스님 이전에는 화엄경(華嚴經)을 원교라 했으나 천태스님에 이르러서는 법화경(法華經)을 중심한 교학을 원교라 했다.
→ 화법사교(化法四敎)
* 원력 願力 -- 원력 혹은 원이라는 말은 중생구제의 서원을 말한다. 보살은 자기 한 몸 해탈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고통 속에 있는 중생들을 구하고자 하는 서원을 갖는다. 그 것을 원이라고 하고, 힘력 자를 붙여서 원력이라고도 한다.
불교를 신행(信行)하는 사람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내적으로 수립하는 기본적인 결심과 그에 따르는 힘. 일반적으로는 원(願) ? 서원(誓願) ? 행원(行願) 등으로도 표현하지만, 내면적인 원은 결코 원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원을 이룰 수 있는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처럼 원과 힘은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보살의 기본적인 원은 부처가 되고자 맹세하는 원작불심(願作佛心)과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도중생원(度衆生願)으로 대별되며, 이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원(上求菩提下化衆生願)이라고 한다.
→ 원(願), 역바라밀(力波羅蜜)
* 원바라밀` 願波羅蜜 -- 여기서 원(願)이란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공에 바탕 한 이타적 중생구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바람이요 순수의지이다. 중생의 구제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서원(誓願)이다. 따라서 원바라밀이란 이러한 서원의 완성이라는 뜻으로 십바라밀(十波羅蜜) 중에 제8바라밀이다. 개인적인 욕망은 업(業)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거기엔 반드시 과보가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원은 공(空)에 바탕 하기 때문에 업의 굴레에 저촉되지 않는다.
* 원성실성` 圓成實性 -- 유식 삼성설(三性說)의 하나. 원만히 성취된 참답고 실다운 성품이라는 말이다. 이 원성실성이 실상(實相)이고, 본성(本性)이고, 불성(佛性)이다. 그런데 불성이 지금 보이느냐 하면, 우리 중생의 망령된 마음에서는 불성(佛性), 진여(眞如), 부처, 여래(如來)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중생은 안 보이니까 부인을 한다.
하지만 정무리유(情無理有)라, 원성실성이 우리들의 망정(妄情)으로는 보이지 않고 없다고 하지만 참다운 진리에서는 있다. 즉 우리의 망령된 마음에는 없지만 진여불성이 영원한 우주의 도리에는 있다는 말이다.
→ 유식삼성(唯識三性)
※ 정무리유 情無理有 --범부의 망정(妄情)에는 있지 않고 우주의 참다운 도리(理)에는 있다는 말.
* 원시불교` -- 초기불교, 원시불교는 다르다. 초기불교(근본불교)를 이르는 다른 말이다. 여기서 초기불교란 부처님께서 생존시에 직접 설법을 하신 가르침, 부처님의 원음을 의미한다. 헌데 일부 한문불교와 대승불교의 우월성에 물들어있던 일본의 학자들은 초기불교를 애써 원시불교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Primitive Buddhism이 된다. 아무래도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원시의 모습, 미개 상태의 불교라는 폄하하는 뜻이 은연중에 함축돼 있는 표현이다. → 초기불교, 근본불교
* 원오 극근 ` 圓悟克勤 1063~1135 -- 중국 송나라 때 선승. 간화선을 대성시킨 대혜 종고(大慧宗?, 1089~1163)의 스승이다. 원오선사의 어록이 <원오심요(圓悟心要)>, <벽암록(碧巖錄)> 등인데, 그 중 <원오심요>는 선승들과 사대부들이 질문해 온 것에 대해 답한 편지 글을 모아놓은 서간집이고, <벽암록>은 화두를 통한 수행을 강조하는, 이른바 ‘간화선(看話禪)’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공안집(公安集)이다.
* 원융불교` 圓融佛敎 -- 원융사상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 불교 특유의 사상 가운데 하나. 모든 사상을 분리시켜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엮는 교리통합론. 이를 주창한 대표적인 고승이 원효(元曉)대사이다.
원융불교는 초기 경전인 아함경을 비롯해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정토경 등 시대의 변천에 따라 등장하는 여러 경과 논장들을 모두 포용하고,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아우르며, 작금에 이르는 각종 종단의 소의경전(所衣經典)과 수행법들까지 망라해서 부처님 당시의 불교 교설에 근접하고자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녹여서 하나 된 불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 원융회통` 圓融會通 -- ‘원융’이란 원만해서 막힘이 없는 것이며, ‘회통’이란 대립과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 ‘하나(通)로의 만남(會)’을 말한다. 따라서 원융회통 사상은 대립과 갈등의 관계에 있는 사상과 논리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조화롭게 수용하고 무리 없이 통합하면, 그들 사상과 논리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 조화적인 통일의 논리를 가리키는데, 원효대사의 일심사상(一心思想), 화쟁사상(和諍思想)과 맥을 같이 한다. -> 원효(元曉)
* 원이삼점` 圓伊三點 -- 원이삼점은 보통 사찰의 지붕 합각에 그려진 것으로 큰 원에 점 세 개를 그린 것을 말한다. 큰 원은 우주법계를 의미하고, 점 세 개는 불 법 승 삼보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의 삼위일체를 상징하기도 하며, 열반 3덕인 법신, 해탈, 반야가 서로 상즉하고 있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 원응국사` 圓應國師 1052~1144년 -- 고려 중기의 승려. 경북 청도 운문사(雲門寺)의 중흥지조(中興之祖)이다. 선과 교(敎)를 섞을 수 없다 해서 천태종에 들어오라는 의천(義天)의 권유를 거절했다. 1099년(숙종 4년)에 왕명으로 법주사(法住寺) 주지가 됐고, 1122년(예종 17년)에 왕사가 됐으며, 1129년(인종 7년)에 운문사의 주지가 돼 허물어진 운문사를 중창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인종에 의해 입적 후 국사로 임명됐고, 현재 운문사에 원응국사비가 전한다(보물 제316호).
* 원적` 圓寂 -- 열반과 같은 말로서 번뇌와 잡념의 세계를 여의고 생사를 뛰어넘는 절대 청정한 경계를 뜻함. ‘원(圓)’은 모든 공덕이 원만하다는 뜻이고, ‘적寂)’은 적정해서 고요하다는 뜻이다. 원적은 입적(入寂), 즉 승려의 죽음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 원주` 院主 -- 주지를 보좌하면서 절의 살림살이를 관리하는 승려. 선원(禪院)의 사무를 감독하는 승려, 혹은 작은 절의 주지를 일컫기도 한다.
* 원증회고` 怨憎會苦 -- 원한을 품어 미워하는 자와 만나는 괴로움으로서, 불교에서 말하는 팔고(八苦)의 하나.
* 원측` 圓測, 613∼696 -- 속명 문아(文雅). 신라 진평왕 때의 왕손 출신으로서 일찍이 출가해 경론을 학습한 뒤에 15세 때(627)에 중국에 유학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던 오교(五敎) 중에서도 화엄종(華嚴宗)과 함께 그 시대를 대표한 법상종(法相宗)의 가장 대표적 승려였다.
* 원통전` 圓通殿 --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 단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부불전(副佛殿)일 경우에는 관음전이라 함.
* 원효` 元曉 617년-686년 -- 속성 설(薛), 법명 원효, 아명 서당(誓幢)이다. 압량(押梁: 지금의 경산군)에서 태어났다. 15세 무렵에 출가하여 황룡사(皇龍寺)에서 승려가 돼 수도에 정진했다. 자기 집안의 재산을 불문에 희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고 자기가 태어난 집터에는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650년(진덕여왕 4)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는데 중도에 고구려 순찰대에 붙잡혀 실패했다. 다시 661년 의상과 다시 유학길을 떠나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른 후 한 고총(古塚)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날이 새어 보니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음을 대오(大悟)한 후 그냥 돌아왔다. 그 후 분황사(芬皇寺)에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를 제창,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특정한 스승이 없이 여러 교학과 학승들을 편력해 혼자 수학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과제로 느낀 것은 불교가 공인된 지 백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일견 서로 모순된 듯이 보이는 불교이론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체계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상호 모순, 대립하는 이론들을 극복하는 데에 ‘화쟁(和諍)’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개념을 사용했다. 요석공주와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고,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우리나라 승려 중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른 유일한 사람이 원효였다. 다음은 원효대사의 중요사상이다.
- 일심사상` 一心思想 - 원효는 불교 안의 여러 사상과 주장들을 모두 ‘한마음(一心)’의 발현으로 보고, 그 발현의 여러 양상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통합하려 했다. 그것이 화쟁사상이다. 인간 각자의 일심은 계기에 따라 여러 심리적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 자체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단지 계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심리적 갈등과 고뇌에 사로잡혀 본래의 일심을 깨닫지 못함으로써 일심의 주인 노릇을 못하고 자아를 상실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일심의 회복에 그 목적이 있었다. 즉, 도(道)는 모든 존재에 미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마음의 근원(一心之原)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인간이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하나인 마음(一心)으로 돌아가서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일심사상이다. → 일심사상(一心思想)
- 화쟁사상` 和諍思想 - 모든 논쟁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으로 신라시대 원광(圓光)과 자장(慈藏)에서 비롯돼 원효(元曉)에 의해 집대성됐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이론상의 집착에서 벗어나 부정과 긍정의 극단을 버리고 논쟁(諍)과 조화(和)의 양면성을 인정하면 경전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상호 대립적인 쟁론을 지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 화쟁사상(和諍思想)
- 원융회통` 圓融會通 - ‘원융’이란 원만해서 막힘이 없는 것이며, ‘회통’이란 대립과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 ‘하나(通)로의 만남(會)’을 말한다. 따라서 원융회통 사상은 대립과 갈등의 관계에 있는 사상과 논리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조화롭게 수용하고 무리 없이 통합하면, 그들 사상과 논리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 조화적인 통일의 논리를 가리킨다.
* 월장경` 月藏經 -- 원명은 <대방등대집월장경(大方等大集月臟經)>임. 미래에 대한 석가모니 부처의 예언 말씀이 기록돼 있는 경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얼마 전 가리야제 산중에서 불제자들을 모아두고 지장경을 설하시기 전에 미래를 예언하신 경전이 월장경이다.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을 집대성한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이라는 경전이 있는데, 여기에 6세기 북제(北齊) 때 인도 사람 나랜드라야사(那蓮提耶捨)가 한역한 월장경이 포함돼 있다.
* 월칭` 月稱 산스크리트, 찬드라키르티 candrakrrti -- 600년경-650년경의 인물. 남인도 출신의 승려로 용수(龍樹)의 학설을 계승하고, 날란다사원으로 가서 좌주가 됐다. 월칭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중론(中論)>의 주석서인 <명구론(明句論)>이다. 그 외에 <오온론(五蘊論)>과 <입중론(入中論)> 등이 있다.
* 위경` 僞經 -- 위경은 말 그대로 명목상 부처님이 설한 것처럼 위조된 경전으로 인도나 티베트에서 전래된 것을 진경(眞經)이라 하고, 중국 등에서 새로이 제작된 경문을 위경이라 한다. 부처가 직접 설하지 않은 불교 경전이지만 석가모니가 직접 교설한 것처럼 ‘불설(佛說)’이라는 이름을 빌려 위조함으로써 정전(正典)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는 의경(疑經)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4세기 중엽 이래 시대적으로 끊임없이 위경이 증가해 8세기 말엽에는 의경과 위경이 무려 405부 1,500여 권에 달했다고 한다. 위경이면서 유명한 경전에는 다름과 같은 것이 있다.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능엄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불설대목련경(佛說大目連經)> 등이 있다.
대승비불(大乘非佛說)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배척하기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면 굳이 위경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를 가슴에 새기고 ‘참 나’를 구하는 참고서로 삼으면 되겠다.
* 위앙종 ` ?仰宗 -- 선종 5가(家) 가운데 가장 먼저 당나라 시대에 성립된 불교종파. 육조 혜능(六祖 慧能)의 제자 남악 회양(南嶽 懷讓) 선사의 법손(法孫)인 위산 영우(?山靈祐, 771-853) 선사와 그 제자인 앙산(仰山) 선사가 창시(創始)한 종파이다. 송나라 때 쇠퇴해서 임제종에 합쳐졌다.
* 위음왕불` 威音王佛 산스크리트어, 아디붓다, Adi Buddha -- 법화경에서 일컫는 최초의 부처님이다. ‘위음(威音)’이란 법화(法華)를 직접 설하는 음성을 표현한 것이며, 왕이란 이 부처님의 위풍과 음성에서 위대한 국가를 통솔하는 왕의 위력이 있음을 나타낸 말이다.
위음왕불이 출현했을 당시 겁명은 이쇠(離衰), 국명은 대성(大成)이었는데, 고대(古代)를 표시하는 비유로 사용해 ‘위음왕불 이전’이라 하기도 하고,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이니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위음왕불을 경계로 해 그 이전을 실제이지(實際理地)라 하고, 이후를 불사문중(佛事門中)이라 한다. 밀교에서는 위음왕불을 본초불(本初佛) 혹은 자성불(自性佛)이라 한다.
* 위음이전` 威音已前, 위왕이전 = 위음왕불(威音王佛)은 법화경에 나오는 최초의 부처이다. 따라서 ‘위음 이전’은 태초, 천지개벽 이전, 우주 생성 이전이란 말로서, 번뇌망상이 일어나기 전, 분별심이 생기기 이전을 뜻하며, 무분별의 세계, 본래면목을 뜻한다.
※ 비슷한 말
성주괴공 成住壞空 이전 - 우주의 생성과 소멸 이전.
공겁 空劫 이전 - 천지창조 이전.
부모미생전 -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이전.
* 위제희부인` 韋提希夫人 -- 석존과 같은 시대 마가다(Magadha)국 빈비사라(Bimbisara)왕의 비. 왕자 아사세(阿?世, 아자타샤트루이)가 빈비사라왕을 유폐해서 아사시키려고 했을 때, 몰래 살갗에 음식 진액을 바르고 장신구에 물을 채워서 감옥을 방문해 왕으로 하여금 핥아먹게 해 살렸는데, 발각이 돼서 자신도 유폐됐지만 감옥 안에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 석존께서 나타나서 이 세상에 절망해서 아미타불의 정토를 기원하는 비(妃)에게 아미타불이나 그 정토를 관상하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이때의 가르침을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라고 한다.
* 위파사나` 毘鉢舍那 팔리어 Vipassana, 산스크리트어 vipasyna, 비파사나 觀 -- 위파사나 수행은 초기경전인 <대념처경(大念處經, Mahaasatipatthaana Sutta)>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위파사나는 팔리어 위(Vi)와 빠사나(Passana)의 복합어다. 위(Vi)는 ‘뛰어난’ 혹은 ‘다양성’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빠사나(Passana)는 알아차림, 꿰뚫어 봄, 자세히 살펴봄, 사물의 실상에 대한 지혜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면 뛰어난 관찰, 통찰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진리를 지혜에 의해 꿰뚫어보고, 열반에 이른다”는 뜻이다.
불교는 인간을 온갖 욕망과 번뇌에 얽힌 존재라고 보며, 이 번뇌는 성불의 길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한없이 방해한다고 설한다. 따라서 불교의 수행이란 한없는 번뇌의 응시와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대기설법(對機說法), 즉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환경에 맞추어서 가르침을 설하셨다. 불교 수행법이 여러 가지인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이러한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서 가장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명상법으로서, 한역(漢譯)에서는 ‘관(觀)’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관(觀)이란 지혜로써 객관의 경계를 관찰해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가령 부정관(不淨觀)이라 하면 인간의 육체가 추하고 더러운 것임을 생각으로 관해 탐욕의 번뇌를 멸하는 것이다.
또한 이 수행법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대중적이며 실제적인 것으로 수식관(數息觀)이 있다. 가능하면 좌선하는 자세로 앉아서 자신의 마음을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데 집중해 이것을 세는 것에 의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렇게 위파사나는 마음을 하나로 전심(專心)해 지혜로써 불(佛)과 법(法)의 일정한 대상을 관찰하고 생각으로 염(念)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위파사나 수행법은 50여 년 전 미얀마에서 새롭게 변형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위파사나 수행은 4념처(四念處) 수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유` 有 산스크리트어 bhava -- 12연기의 하나. 유정(有情)으로서의 존재 또는 생존의 뜻을 지닌 불교 용어. 유(有:bhava)라는 말은 영어의 Be동사, 혹은 된다(become)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의 동사어 ‘bhu’라는 말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존재의 의미와 생성의 의미의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2연기에 있어서 유(有)를 오온(五蘊)으로 정의하고 있거니와 이는 개체의 형성을 말한다. 취(取)를 연해 유가 발생한다. 물론 정신 육체적 복합체인 개체의 형성은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유(有)는 애착에 의해 윤회의 동력을 가지는 존재, 혹은 다음 생을 요청하는 예비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유(有)는 사라짐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시간적으로는 생유(生有) ? 사유(死有) ? 본유(本有) ? 중유(中有-중음/中陰)의 4유(四有)로 구분한다. → 사유(四有)
* 유가` 瑜伽, 산스크리트어 yoga -- 상응(相應)이라 번역. 마음을 한곳에 집중해 바른 지혜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함으로써,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하는 수행. 밀교에서는 대일여래와 한 몸이 되는 체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다.
* 유가사` 瑜伽師, 산스크리트어 yogacara -- 유식설(唯識說)을 받드는 사람들은 ‘요가를 실천하는 사람’ 즉 유가사(瑜伽師)라고 불리었다. 따라서 그들 학파를 보통 유가행파(瑜伽行派)라고 한다. 요가(yoga)란 무엇인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 유가록` 瑜伽錄 -- 불공삼장(不空三藏)이 지은 밀교에 관한 저서. 인도 출신의 밀교계 승려인 불공은 <유가록>에 “이 경전은 금강반야바라밀다를 닦아 연마하는 총체적 비결이니 금강은 법의 이치(理)요, 반야는 법의 실체(體)요, 바라밀은 법의 작용(用)이니, 유위법과 무위법 그리고 처음도 되고 끝도 되는 현묘한 공(空)이 비록 다 갖추어졌으나 눈 밝은 사람이 아니면 실제로 깨닫기 어렵다”라고 했다.
→ 불공(不空 705~774)
*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 <유가사지론>의 저자는 유식학파(唯識學派)를 연 남인도 파라나국 출신의 미륵(彌勒, 마이트레야/Maitreya, 270 ?~350 ?)이다. 그는 바라문 출신으로서 불교에 귀의해 <유가사지론> 외에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등을 지어 유식학파 이론을 발전시켰고, 무착(無著, 300?~390?/世親의 형)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玄?)법사가 서역에 간 것은 바로 이 <유가사지론>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유가사지론>은 당나라의 현장이 번역해 천자문의 순서대로 백 권을 수록했고, 우리라엔 고려시대의 초조대장경에 실려 있어서 국보 제244호로 지정돼 있다. 유가사지론은 유가사(Yogacara = 요가수행자)의 실천단계를 의미하는데, 유가는 명상 ? 정신통일의 수행으로, 일반적으로 선 ? 삼매 등으로 불리는 것과 동일하다. 유가사(瑜伽師)는 이 명상수행에 진력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유가행파(Yogacara)라는 학파의 명칭은 이 유가사에서 유래한다.
* 유가행파(瑜伽行派) → 유식학파(唯識學派)
* 유견` 有見 -- <나>라는 존재에 집착해 내가 죽은 뒤에도 자아가 그대로 지속한다는 극단적인 생각. 이런 극단적인 견해를 변견(邊見)이라 하고, 유무견(有無見)에 사로잡힌 견해가 사견(邪見)이다.
→ 무견(無見), 오견(五見)
* 유교` 有敎 -- 불교철학을 세 단계의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삼시교판설(三時敎判說)이라 한다. 이 분류는 유식학(唯識學)을 석존의 교설 중에서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도 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 논사가 정립한 이론[중국에서는 법상종의 교판(敎判)]으로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 제3시 중도교(中道敎, 唯識敎)의 순서로 불법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유교(有敎)란 이 중 맨 처음 초기 법문을 말한다. 즉, 우리 중생 차원에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모두 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모두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의 범안(凡眼) 차원에서 알기 쉽게 하는 법문이 유교(有敎)이다.
그 다음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체가 다 공(空)이다’ 하는 단계인데 이를 공교(空敎)라 한다. 그런 다음 부처님께서 실상 그대로 하신 말씀인 중도교(中道敎)의 단계이다. 반야심경은 공교와 중도교를 합한 가르침이다. → 공교(空敎)
* 유교경` 遺敎經 -- 가르침을 남기는 경전이라는 제목의 뜻처럼,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설법하는 광경을 담고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이나 티베트 본은 전하지 않는다. <불유교경(佛遺敎經)>, <불수반열반교계경(佛垂般涅槃敎誡經)>, <불수열반약계경(佛垂涅槃略誡經)>, <불임열반약계경(佛臨涅槃略誡經)> 등 달리 부르는 이름이 많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이 한역했다.
붓다의 만년에 있었던 일을 적은 경전과 논서는 이 외에도 아함부 계통의 <열반경>, <불본행경>, 마명(馬鳴)이 지은 <불소행찬> 등 몇 가지 더 있다. 이들 저서도 이 경전과 유사한 문체로 쓰였다.
내용은, 붓다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할 것임을 밝히고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우선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스승으로 삼아서 계를 지키고, 오욕을 삼가며, 정적(靜寂)을 구하고, 정(定)을 닦아 깨달음의 지혜를 얻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최후의 가르침으로 해탈을 얻어 무명의 암흑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쳤다. 붓다의 임종이라는 극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간명하게 설명한 탓에 예로부터 널리 읽혔다. 그래서 주석서나 연구서가 많은 편이다.
* 유나` 維那 -- 도유나(都維那)라고도 하는데, 절에서 재(齋)의 의식을 지휘하는 소임. 또는 그 소임을 맡아 하는 승려. 혹은 선원(禪院)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
* 유루 → 반대말 무루(無漏, asasrava)
* 유루복` 有漏福 → 무루복(無漏福)
* 유루행` 有漏行 --- 세속적 지혜는 유루지(有漏智)이고, 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남이 없이 선악의 세속적 덕목으로 수행하는 것이 곧 유루행(有漏行)이다. 반야가 없다면 모두가 다 범부의 허물을 벗지 못하는 것이고, 어떤 행동도 때 묻은 유루행(有漏行)밖에는 못 된다.
* 유마경` 維摩經 -- 유마힐경(維摩詰經)이라고도 한다.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 원명이다. <반야경>에 이어 나타난 초기에 성립된 대승경전의 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없으나 티베트역이 있고 한역 본 중에서는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이 번역한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 널리 읽힌다. 유마경(維摩經)은 <미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과 더불어 희곡적(戱曲的)인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어느 경전보다도 문학적인 소재가 많은 유명한 경전인 것이다.
유마힐(維摩詰)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비말라키르티(Vimalak?rti)으로서 바이샤리의 부호 이름이다. 그는 이 경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세속의 신자로 불교의 진수를 체득하고, 청정한 행위를 실천하며,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즉, 그는 재가신자인 거사(居士)의 이상형이다. 유마힐을 모델로 해서 대승보살의 실천도(實踐道)를 강조하고, 세속에 있어서 불도(佛道)를 실천하고, 완성하게 됨을 설시(說示)하려는 것이 이 경의 내용이다.
* 유부` 有部 --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의 줄인 말임. →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유순` 由旬 -- 팔리어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의 단위로서 확실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혹은 40리(里) 정도라고도 함. 대유순 80리, 중유순 60리, 소유순 40리의 세 가지가 있다.
* 유식` 唯識 산스크리트어 vijnapti matra -- 유식이라는 용어가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은 해심밀경(解深密經)의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인데,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미륵(마이틀레야)가 부처님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위파사나 삼마지(毘鉢舍那三摩地) 중에서의 영상(影像)은 이 마음(心)과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둘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영상은 오직 식(識)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식의 대상[소연(所緣)]은 오직 식(識)이 현현(顯現)한 것이다.”
위파사나 (毘鉢舍那 vipasyana, 觀) 는 요가(yoga) 실천법의 한 종류이다. 이처럼 요가 실천의 체험을 묘사하는 가운데 유식(唯識)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요컨대 “요가를 닦는 마음속에 나타나는 갖가지 영상은 다만 식(識)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자각적(自覺的)인 체험이야말로 유식설을 형성한 내면적인 원동력이었다.
유식설(唯識說)을 받드는 사람들을 ‘요가를 실천하는 사람(yogacar-a)’ 즉 유가사(瑜伽師)라고 불리었다. 따라서 그들 학파를 보통 유가행파(瑜伽行派)라고 한다.
* 유식론` 唯識論 , 사상으로서의 유식론 -- 인도 대승불교의 주요한 학설의 하나이다. '유식(唯識)'이란 일반적으로 외계라고 이해되고 있는 일체의 것이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을 반영하는 표상(Vijnaptiㆍ識)에 불과하고, 외계의 존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상이다. 또한 이 표상이 나타내는 것은 대상을 식별하는 마음의 작용인 식(識, vijnana)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의 맹아는 이미 초기 불교에도 있었지만,<해심밀교(解深密敎>,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比達磨經)>에서 비로소 이론적으로 설명됐다. 이 유식론의 이론적인 체계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중관파(中觀派)와 함께 대승불교의 양대 학파를 형성한 유가행파(瑜伽行派, Yog?c?ra)의 논사들이었다. 유식파라고도 하는 이 파의 아상가(無着)가 마이틀레야(미륵)의 가르침을 받아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을 저술해 유식론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동생이며 제자이었던 바스만두(世親)는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과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등의 저작을 통해서 이것을 집대성했다.
* 유식론` 唯識論 책 이름 -- 인도의 논사 천친(天親)이 지은 것을 6세기 중엽 동위(東魏)에서 인도 출신의 학승 반야유지(般若流支)가 번역했다. 1권으로 된 이 논은 의식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교리를 논쟁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세친(世親)이 지은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의 다른 번역이다.
* 유식무경` 唯識無境 -- 유식설(唯識說)에서 식(識) 이외의 외경(外境)은 식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하며, 외적인 세계를 부정하는 것. 존재하는 것은 단지 정신활동 뿐이고, 나무나 돌 등과 같은 외적(外的)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유식사상을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한다. 즉, 유식무경은 오직 마음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다른 것은 마음에 의지해 존재하며 마음 밖에 어떤 것도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 유식` 唯識 4분설 四分說 -- 4분이란 유식학에서 인식의 성립과정을 네 부분으로 나눈 것을 말하다. 즉, 심(心)과 심소(心所)의 작용을 상분(相分), 견분(見分), 자증분(自證分), 증자증분(證自證分)의 네 가지로 나눈 것을 일컫는다.
* 유식삼성` 唯識三性 -- 유식학파에서 규정한 중생의 세 가지 성품을 말한다.
1)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치우치게 보고 집착한다는 말 - 정유리무(情有理無)
※ 정유리무(情有理無) --범부의 망정(妄情)에만 있고 원래 본바탕 법성(法性) 자리인 리(理)에는 없다는 말.
2) 의타기성(依他起性) - ‘나’라는 존재나 ‘너’라는 존재, 삼라만상이 다 인연 따라서 잠시 이루어진 허깨비 같은 존재로 잠깐 가짜로 나툰 것이다. - 여환가유(如幻假有)
3) 원성실성(圓成實性) - 원성실성은 본래적인 것, 중생의 망상분별을 떠난 참다운 성품자체를 말한다. 즉, 원만성취가 이루어진 무한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말한다. ※ 정무리유(情無理有) - 정무리유(情無理有)
* 유식삼십송` 唯識三十頌 -- 세친(世親 320∼400)이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함께 자신의 유식설(唯識說)을 완성한 저서. <해심밀경>과 <대승아비달마경>에서 출발해 미륵(彌勒)과 무착(無着)을 거치면서 틀을 갖춘 유식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여러 서적에 나온 유식설을 30개의 송(頌)으로 표현했다. 563년에 진제(眞諦)가 번역했고, 그 후 현장(玄?)도 번역했다.
* 유식이십론` 唯識二十論 -- 세친(世親:320∼400)은 미륵(彌勒)이나 무착(無着)의 저서를 많이 주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의 여러 저서 중 하나이다. 유식설(唯識說)에 대한 여러 학파의 비평이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해 유식설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유식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과 함께 한 짝을 이룬다. 보리유지(菩提流支)가 6세기 초에 번역했으며, 7세기에 현장(玄?)도 번역했다. <유식론(唯識論)>, <대승유식론(大乘唯識論)>이라 하기도 한다.
* 유식학파` 唯識學派 -- 유식(唯識 산스크리트어 비즈납티마트라 vijnaptimatra)사상은 용수의 중관사상 또는 공(空)사상이 지나치게 공허한 사변으로 치우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4세기경에 대두된 사상이다.
유식학이란 불교에서 마음의 역할과 구조 기능, 즉 마음현상을 밝히는, 불교 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미륵(彌勒. Maitreyanatha: 270-350년)과 그의 제자 무착(無着. Assanga: 310-390년)과 세친(世親. Vasubandha: 320-420년) 등에 의해 성립됐다.
유식학파는 수행방법으로서 유가(요가)를 중요시하므로 유가행파(瑜伽行派) 또는 유가파라고도 한다. 이는 소승불교의 부족한 교리를 보충하는 한편, 같은 대승불교의 중관파(中觀派)와 대립하면서 발전했다.
이 학파의 초기 경전은 <해심밀경(解深密經)>과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毘達磨經)>이고, 그 후 미륵(彌勒, A.D 270~350)이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등을 지어 그 학설을 발전시켜 사실상 유식학파의 시조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유식종 불교의 주불은 미륵불이다.
이러한 미륵의 가르침을 받은 무착(無著, A.D 310~390)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을 저술해,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의 의식구조에 대한 조직적인 학설을 정립했다.
무착의 동생이며 제자가 된 세친(世親, A.D 320~400)은 미륵과 무착의 논서들을 주석하면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등 많은 저작을 함으로써 유식사상을 대성시켰다. 또한 AD 6세기에 호법(護法, 530~600)은 이론과 실천 전반에 걸친 내용의 논서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저술해 아뢰야식(alaya-vijnana, 阿賴耶識)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했다.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의 선구적인 유가사(瑜伽師, 요가 수행자)들은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 자각한 갖가지 영상은 다만 식(識, vijnapti=마음)일 뿐이라는 지각이 ‘유식(唯識)’이고, 이 유식에 바탕 해 현상계의 모든 것은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라는 명제가 이 학파 학설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 유식(唯識)
* 유신견` 有身見 -- 중생이 고정불변하는 자아(혹은 실체)가 있다는 견해이다. 중생을 중생이게끔 기만하고 오도하는 가장 근본적인 삿된 견해이다.
* 유애` 有愛 팔리어 bhava-ta?h? -- 갈애의 종류를 욕애(慾愛:감각적 욕망), 유애(有愛:생존의 영속을 바라는 욕망), 무유애(無有愛:팔리어 vibhava-ta?h? 무유(無有)는 허무를 뜻함. 허무에 얽매이거나 집착함. 생존의 단절을 바라는 욕망)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그 중 유애는 개체 존속의 욕망. 즉, 내세까지 이어지는 생존에 대한 욕망을 일컫는 말이다.
* 유여열반` 有餘涅槃 -- 수행을 통해 이승의 번뇌는 끊었으나, 아직도 과거의 업보로 받은 몸이 멸하지 못한 열반을 유여열반이라 한다. ‘유여’란 의존해야 할 육신이 아직 남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여열반은 깨달음은 이루었으나 번뇌를 지닌 육신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 즉 아직 번뇌의 찌꺼기가 조금 남아 있는 상태이다.
헌데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구분함에 있어서 소승과 대승의 주장이 다르다. 소승에서는 열반을 번뇌가 다 없어진 상태라고 본다. 따라서 소승의 경우, 유여열반은 번뇌는 다했지만 육체는 아직 남아 있는 경우이고, 대승에서는 열반을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4덕을 갖추지 못한 소승의 열반을 유여열반이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열반의 원형은 현재 열반(現在涅槃)이라 할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 봐야 하며, 열반을 윤회생사의 현실세계 저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존재영역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 무여열반(無餘涅槃)
* 유위` 有爲 -- 유위는 인연 따라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 모든 일, 모든 생각, 또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도 연기법(緣起法)에 의하면 어느 하나 인연 따라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 속에서 행하는 모든 행은 유위행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다 유위법이라는 것이다.
* 유위공` 有爲空 -- 십팔공(十八空)의 하나.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현상에 대한 분별이 끊어진 상태. 인연 또는 인위적으로 된 모든 현상이 헛되다는 것, 인연에 의해 생성된 모든 현상의 존재들은 변화하고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란 말이다.
* 유위법` 有爲法; 범어 samskrta dharma --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위작(爲作), 조작(造作)의 뜻으로 일부러 <만들어 진 것>이라는 의미다. 바로 ‘연기(緣起)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우주의 일체 존재는 모두가 연기된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 인연에 의한 결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을 유위라 일컫는다. 즉,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것, 어떤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유위법이다.
우리의 몸을 위시해서 언어, 교육, 창작, 학문, 정치, 경제 등 인위적인 활동과 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4계절의 변화 등의 자연현상까지도 유위법이다. 우리가 만들고 표현하는 것, 현실적으로 보고 들으며, 느끼고 아는 것 등 사람이 하는 것이나 자연이 하는 변화는 모두 유위란 말이다. 결국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유위법이다.
따라서 불교 자체도 유위법이고, 사찰의 전각, 그 안의 불상, 마당 가운데 서 있는 불탑, 종각의 범종, 스님이 치는 목탁, 불교 경전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유위법이고, 심지어 부처님의 설법 또한 유위법이다. → 무위법(無爲法)
* 유전문` 流轉門 -- 부처님께서는, 노병사(老病死)의 괴로움의 원인이 생(生)에 있음을 파악 하셨다. 태어났기에 노병사의 괴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니, 삼계의 생사 윤회하는 테두리인 유(有)로 말미암는 것임을 아셨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시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취(取)에 있음을 아셨고, 또 그 원인은 애(愛)……. 이렇게 하나하나 그 원인을 고찰해 올라가다 보니, 결국에는 무명(無明)이 생로병사의 근본 원인임을 여실히 아셨던 것이다. 결국 근본 원인은 무명이라고 깨달은 바를 ‘십이연기의 유전문(流轉門)’이라고 부르며, 이런 유전문을 관하는 것을 일어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관한다고 해서 순관(順觀)이라고 한다. → 환멸문(還滅門)
* 유정` 有情, sattva -- 불교에서 유정은 생명체를 말하고, 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중생(衆生)을 뜻하며, 인간도 물론 유정이다. ‘보리살타(보살)-bodhisattva’에서 보리(bodhi)는 깨달음, 살타(sattva)는 살고 있는 존재, 즉 유정(有情)을 뜻한다. 따라서 ‘보리살타’란 깨달은 유정, 깨달은 사람이란 말이고, 무정(無情)이란 돌멩이 같이 정신의 작용이 없는 무생명체의 총칭이다. sattva를 번역할 때 구마라습은 중생이라 번역했고, 현장은 유정이라 번역했다.
유정(有情 sattva)이란 정(情)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정이란 정식(情識)이나 업식(業識)을 지칭한다. 정식은 일반적으로 감각적인 수용 능력을 의미하고, 업식은 업상(業相), 즉 무명업상(無明業相)을 의미한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유정이란 ‘감각적 수용 능력을 지니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것’, 즉 감수성(情)과 의지성(行)과 행위성(業)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자를 의미한다.
* 유학` 有學 -- 소승불교의 수행 단계인 사향사과(四向四果)를 수행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이르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했으며, 해야 할 바를 다했고, 윤회에서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무학위를 간단히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아라한과 이전의 단계를 통칭해 유학위(有學位: 배울 것이 있는 계위) 또는 유학(有學)이라고 한다.
* 유행경` 遊行經 -- 부처님이 말씀하신 최후의 법문으로 부처님께서 열반을 앞두고 여러 곳에 다니실[유행(遊行)] 때 일어난 온갖 사건을 인연으로 해서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다. <장아함경(長阿含經)> 가운데 두 번째 경전이다. 서기 418년 동진(東晋)의 법현(法顯)이 9권으로 번역해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이라 했다.
* 유행기` 遊行期 -- 브라만교에서는 바라문이 평생 동안 밟아야 할 단계가 규정돼 있었는데 학생기[범행기(梵行期), 25세 이전], 가주기(家住期, 가장기, 26세-50세), 임서기(林棲期, 51세-75세), 유행기(遊行期, 76세 이후)의 네 가지 시기로 구분했다. 앞의 세 시기를 통해 인생의 필요한 수행과 의무를 다했을 때 그들은 머리를 깎고 누더기를 걸치고 지팡이와 물통을 차고 목에는 두타(頭陀) 주머니를 걸고, 몸을 운수(雲水)에 맡기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생활로 들어가는 시기를 말한다.
* 유희` 遊戱 -- 일반적으로는 즐겁게 노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걸림이 없고, 자유 자재함을 뜻한다.
* 유희야경` ??耶經 -- 경명은 산스크리트어 ‘구히야(guhya)’를 한역한 것이다. 유희야경은 만다라작법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경전으로 밀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 경에 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라서 현 단계에서 성립시기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단 경전의 구성으로 볼 때 <대일경(大日經)>보다 약간 빠른 7세기 초반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대일경>의 선구적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이 언제 중국에 전해졌는지 확실치 않으나 당나라 시대 중국 밀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불공(不空 705~774)에 의해 한역됐다.
* 육근(六根) 6경(境) 6식(6識) -- 육근(六根)에서 ‘근(根)’은 산스크리트어 인드리야(indriya)의 한역어로서, 감각기관과 그 기관이 가지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육근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여섯 기관인데, 바로 우리 몸 그 자체를 말한다.
헌데 이 육근이 죄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결정한다. 이러하니 모든 나쁜 것을 접할 수 있는 근본 그 자체이므로 죄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수행을 통해 육근청정(六根淸淨)을 이루어야 한다.
육근(6根)이 육경(6境)을 만났을 때 각각의 감각 장소를 통해서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식을 육식(6識)이라 한다. 6근 6경 6식의 관계를 보면,
눈(眼)이 색(色)을 접촉하면 안식(眼識)이 일어나고,
귀(耳)가 소리(聲)를 접촉하면 이식(耳識)이 일어나고,
코(鼻)가 냄새(香)를 접촉하면 비식(鼻識)이 일어나고,
혀(舌)가 맛(味)을 접촉하면 설식(舌識)이 일어나고,
몸(身)의 피부가 촉감(觸)에 접촉하면 신식(身識)이 일어나고,
뜻(意)이 법(法)을 접촉하면 의식(意識)이 일어난다.
여기서 법이란 생각의 대상, 혹은 뜻으로 헤아릴 수 있는 대상(사물)을 말한다.
* 육근청정` 六根淸淨 -- 육근은 안, 이, 비, 설, 신, 의(眼,耳,鼻,舌,身,意)로서 사람의 몸이 가지고 있는 여섯의 기본 기능을 의미하며, 청정은 글 그대로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뜻이다. 육근청정이 곧 법신이 되는 도리라서 육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념을 깨끗이 끊어버리고 무애(無碍)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 육단심` 肉團心 산스크리트어 h?daya -- 직역하면 심장, 마음이지만 수행이 부족한 욕심을 숨긴 거친 마음이다. 그래서 육단심을 비하해서 음식을 함부로 먹는 것 같은 물질적인 마음이라고 했다. 참선하다가 육단심(肉團心)이 생긴 이유는 역시 아는 생각에 마음을 두어 바른 의정(疑情)에 눈이 없으면 여지없이 급하게 이루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산만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온갖 잡심이 발동해 바른 공부를 등지게 된다. 이러한 오염된 마음이 육단심이다.
헌데 불교에서는 마음을 육단심(肉團心), 연려심(練慮心), 집기심(集起心), 견실심(堅實心)의 4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우리의 육체적인 생각에서 우러나는 마음인 육단심(肉團心), 보고 듣는데서 분별해 내는 마음을 연려심(練慮心), 망상을 내는 깊은 속마음인 집기심(集起心), 본성으로서 부처님의 성품과 같은 불성을 견실심(堅實心)이라 했다. 이 견실심이 바로 부처의 마음자리이다. 바로 참선은 부처의 마음자리인 진여심(眞如心)이다. 참선은 이러한 여러 마음들을 고요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은 만법의 근본이고 불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교법은 이 선의 경지를 깨우쳐 주려는데 근본이 있는 것이다.
또 불경 <마하지관(摩訶止觀)>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감정에 따라서 나타나는 마음인 육단심(육團心)이다.
둘째로 좀 더 깊은 곳에서 자리한 적취심積聚心이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해서 형성된 마음으로, 지성이나 이성이라고 일컬어진다.
셋째로는 적취심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한 진실심(眞實心)이 있다. 이것은 깊은 물속에 흘러 아무리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어떤 경우이든 육단심은 기피해야 할 마음자리이다. 마음가짐이 조급하면 육단심이 흔들려 혈기가 고르지 못하는 따위의 병통이 생겨날 것이니, 이것은 바른길이 아니다. 그래서 선을 하려면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하고, 육단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 육도` 六道, sad gati --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무지한 중생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게 되는 6가지 세계. 망자가 죽어서 가게 되는 곳 중에 가장 좋지 못한 곳인 삼악도(三惡道)는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이며, 삼선도(三善道)는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의 여섯 갈래로 갈라져 있다. 이것을 육도라고 하며, 여기에 삼계인 욕계, 색계, 무색계가 더해져서 삼계육도(三界六道)라고 부른다. → 육도윤회(六道輪廻)
* 육도만행` 六度萬行 -- 육도(六度)란 육바라밀(六波羅蜜)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육도만행이란 보살 혹은 중생이 육바라밀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수행하는 일. 육바라밀을 여러 가지로 실천하며 행하는 것을 말한다. → 만행(萬行)
* 육도윤회` 六道輪廻 --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간다는 것으로 이를 육도윤회라 한다. → 육도(六道)
* 육도집경` 六度集經 -- <육도집경>은 부처님이 보살이었을 적의 이야기, 즉 전생담(자타카)을 모아 기록한 경전이다. 전체 91개의 전생담을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라는 육도(바라밀)에 각각 배당해 모았기 때문에 <육도집경>이라 한다. 육도(六度)란 육바라밀(六波羅蜜)과 같은 말이다.
AD 3세기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에서 강승회(康僧會)가 번역했다. 강승회는 원래 강거국(康居國) 사람으로, 대대로 인도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대에 중국으로 이주했다.
* 6바라밀` 六波羅蜜, 산스크리트어 sat-paramita -- 바라밀은 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도 하며,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를 음역한 것이고, 산스크리트어 최고라는 뜻의 파라마(parama)에서 파생된 말이어서 ‘완성, 완전한 상태, 구경(究竟)의 상태’를 뜻한다. 이루고자 애쓰는 것이 없는 경지, 몸에 배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이 바라밀이고, 이것이 제법이 공한 도리이다.
불교 교의에서는 ‘바라밀’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피안에 도달한[parami]+상태[ta]>를 말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은 육도(六度)라고도 하는데, 6바라밀은 아래와 같다.
- 보시바라밀(布施波羅密) ; 보시는 베풂을 뜻한다. 베풂을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단순한 베풂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중생들에게 조건 없이 베풀면서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상이 남아 있지 않은 맑고 청정한 베풂을 의미한다. 이러한 보시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라 한다. 그리고 보시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즉 재시(財施) ? 법시(法施) ? 무외시(無畏施)이다. 재시란 재물을 주는 것이고, 법시란 진리의 말씀을 베푸는 것이며, 무외시란 두려움을 제거해 마음에 평화를 주는 보시이다. 이 외에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해서 재시 외의 일곱 가지 보시를 제시하기도 한다.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무재칠시(無財七施)
- 지계바라밀(持戒波羅密) ; 재가와 출가, 대승과 소승의 모든 계율(戒律)을 잘 지켜 악업(惡業)을 멸하고, 몸과 마음의 청정을 얻는 것을 말한다. 지계(持戒, sila)란 말은 말 그대로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계를 지킬 필요가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가 바라밀이다.
-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 ; 인욕(忍辱, ksanti)이란 참고 용서하는 것이고, 인욕바라밀은 참는 실천행이다. 즉, 탐(貪) 진(瞋) 치(痴)의 마음 중에서 성내고 화내는 진심(瞋心)을 잘 닦을 수 있는 실천행이 인욕바라밀이다.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을 것이 없는 경지라야 인욕바라밀이라 할 수 있다. 억지로 참는 수준은 현인(賢人) 수준이지 바라밀은 아니다.
- 정진바라밀(精進波羅密) ; 정진(精進, virya)이란 부지런히 노력해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나약함이 없는 부동심의 실천이며 불퇴전의 노력이다. 즉,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선행과 바라밀을 힘써 실천해 나태한 마음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닦아나가는 것이다. 저절로 정진이 돼야지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바라밀이 아닌 현인 수준이다.
- 선정바라밀(禪定波羅密) ; 선정(禪定, dhyana)의 정(定)은 삼매(三昧)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히 진리를 바르게 사색하는 것’을 뜻하며, 이를 정려(靜慮)라고도 한다. 정(靜)은 지(止)에 해당하고, 려(慮)는 관(觀)을 의미한다. ‘고요히(靜) 생각하는 것(慮)’이 선정이다. 불교에서는 선정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 색계선정(色界禪定), 팔선정(八禪定)
-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prajna-paramita)의 번역이다. 반야(般若, prajna)란 ‘수승한 지혜’라는 뜻이고, 이때의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 지혜란 “공에 대한 지혜이며, 집착 혹은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여읜 지혜이며, 존재의 본질을 직관하는 지혜이다.” 즉, 모든 분별지(分別知)를 떠난 궁극적인 지혜라는 말이다.
이 중에서 지혜바라밀인 반야바라밀이 다른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그리고 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은 머리, 지계바라밀과 보시바라밀은 양 팔, 인욕바라밀과 정진바라밀은 마음(혹은 몸통)에 해당한다. → 바라밀(波羅蜜)
* 육방예경` 六方禮經 -- <육방예경>은 초기불교에 있어서의 재가신자가 지켜야 할 실천 규범을 설한 경전이다. 다시 말해 세속적인 인간관계에서 예의범절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는 경전으로 일상생활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 육법` 六法 -- 비구니가 되기 위한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전 2년 동안 수행하는 자를 식차마나(式叉摩那)라 하는데, 그 식차마나가 지켜야 할 여섯 가지 계율.
1) 음란한 마음으로 남자의 몸에 접촉하지 않음.
2) 남의 돈을 훔치지 않음.
3) 축생을 죽이지 않음.
4) 거짓말을 하지 않음.
5) 때 아닌 때 먹지 않음.
6) 술 마시지 않음.
* 육성취` 六成就 -- 모든 경전은 첫머리에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을 육성취라고 한다 -- ‘6하원칙(6何原則)’과 비슷함.
※ 육성취의 내용
- 석존의 가르침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신성취(信成就 : 여시/如是),--- 이렇게
- 내가 직접 들었다는 문성취(聞成就 : 아문/我聞), ------- 나는 들었다
- 설법한 때를 명시하는 시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 어느 때
- 설법을 한 것이 붓다였다는 주성취(主成就 : 불/佛), -------- 누가
- 설법한 장소를 밝히는 처성취(處成就 : 재사위국/在舍衛國), --- 어디서
- 어떤 사람이 들었는가를 밝히는 중성취(衆成就 : 여대비구/與大比丘).? 누구에게
그래서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여대비구(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與大比丘---)”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 육식` 六識 = 6근(六根) 6경(六境)을 연(緣)으로 해서 생기는 6가지 마음의 활동, 즉 안식(眼識) ?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을 6식이라 한다. → 육근(六根) 6경(境) 6식(6識)
* 육신통` 六神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 천안통(天眼通) ;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
- 천이통(天耳通) ; 보통 귀로는 듣지 못할 소리를 듣는 능력.
- 타심통(他心通) ;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
- 숙명통(宿命通) ; 과거 전생을 볼 줄 아는 능력.
- 신족통(神足通) ; 자유자재로 몸을 변화시키거나 불가사의한 힘을 나툴 수 있는 능력.
- 누진통((漏盡通) ; 모든 번뇌가 다 끊어지고 열반에 이른 것.
육신통 중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신족통 등은 아라한의 경지에서도 가능하지만 누진통은 오직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육신통과 관련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신통력 사용을 엄격하게 금하셨다. 왜냐하면 불교의 본질은 깨달음이지 신통력은 수행과정의 부산물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본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세, 사주, 점술, 해몽 등 부처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신통력을 발휘해 뭍 중생을 현혹하는 행위는 수행자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 육십심` 六十心 -- 밀교계통의 경전〈대일경(大日經)>의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가 ‘육십심(六十心)’이다. <대일경>에는 범부의 마음으로부터 차례로 향상시켜 가는 순세(順世)의 팔심(八心)과, 세간적인 육십심(六十心)을 설명하고 있다.
육십심에 대해 〈불교학대사전-홍법원>에서는 “아집에서 생기는 탐심(貪心) 내지 수생심(受生心)이므로 견혹(見惑)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육십심의 종류는, “탐심, 무탐심, 진심, 자심, 치심, 지심…” 등 60 가지 마음을 열거하고 있다.
헌데 그 육십심을 요약해 육단심(肉團心), 연려심(緣慮心), 집기심(集起心), 견실심(堅實心)이라 하기도 한다. 육체적인 생각에서 우러나는 것을 육단심이라고 하고, 보고 듣고 분별해 내는 마음을 연려심이라고 하며, 망상을 내는 깊은 속마음을 집기심, 본성으로서 부처님의 성품과 같은 불성을 견실심이라고 한다. 참선은 이러한 여러 마음들을 고요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禪)은 만법의 근본이고 불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육입` 六入 산스크리트어 Sad-?yatana -- 육처(六處)라고도 하며, 12연기에 있어서 명색을 연해 육입이 일어나는데, 육입은 인간 실존의 근저를 이루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인 6근(六根-眼, 耳, 鼻, 舌, 身, 意), 또는 그 작용을 말한다.
* 육자진언` 六字眞言 --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을 이른다. 한국어에서는 성철스님이 50여 년 전에 ‘옴 마니 파드메 훔’이라고 고쳤으나 아직도 ‘옴 마니 반메 훔’ 쪽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진언을 부르면, 여러 가지 재앙이나 병환, 도적 등의 재난에서 관세음보살이 지켜주고, 성불을 하거나 큰 자비를 얻는다고 한다. → 옴마니반메훔(唵???美?) .
* 육재일` 六齋日 -- 불교에서 신자들에게 경건하게 보낼 것을 권하는 여섯 재일(齋日). 재일이란 부처나 승단에 공양을 올려 공덕을 쌓는 의식을 갖는 날을 말한다. 사부대중의 경우 한 달에 6일(매달 음력 8 14 15 23 29 30일)은 소식(素食)을 하며 목욕재계하고 경건하게 보내는 육재일이다. 이날은 사천왕(四天王)이 천하를 순방하면서 사람들의 선악을 살피는 날이고, 또한 악귀가 사람의 빈틈을 노리는 날이라고 해서 계를 지켜야 한다고 한다.
* 육조단경` 六祖壇經 -- 중국 선종 제6대조인 혜능(慧能)선사의 자서전적 일대기로서 중국 남종선(南宗禪)의 근본 선서(禪書)이다.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경(經)일 수 없고, 조사어록(祖師語錄)으로 분류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박한 사상성과 간결한 문체 때문에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의 여러 나라에서 경과 같은 존숭을 받아 오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의 선사(禪師)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가필, 보충한 형태로 편찬됐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둔황(敦煌)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오래돼 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한국의 선종도 중국의 남종선에 유래한 까닭에 일찍부터 이 책이 유행해 이제까지 밝혀진 목판 판각(板刻) 종류만도 20여종이나 되며, 주로 덕이본(德異本)이 유통돼 왔다. → 혜능(慧能)
* 육진` 六塵 -- 육경(六境)과 같은 말. 심성을 더럽히는 육식(六識)의 대상계(對象界)로서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 ? 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하며,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 한다. 즉, 6경은 6근을 통해 몸속에 들어가서 우리들의 정심(淨心)을 더럽히고 진성(眞性)을 덮어 흐리게 함으로 진(塵)이라 한다.
* 육처` 六處 -- 육근(六根), 육입(六入), 육창(六窓과 같은 말.
* 육통` 六通 -- 육신통(六神通)의 준말이다. 불법을 열심히 닦아 어느 경지(아라한 수준)에 이르면 신통력이 생기는데, 여섯 가지 신통력을 말한다. → 육신통(六神通)
* 육통묘문` 六通妙門 -- ‘6묘문(妙門)’이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 선(禪)에 대해 모든 선정을 자세히 분별하는 여섯 가지의 묘문(妙門)이 있다고 하는 것. 천태의 사상체계는 이론체계인 교문(敎門)과 실천체계인 관문(觀門)으로 구성돼 있다. 교문과 관문을 하나로 하면서 완벽한 조화의 하모니를 이루어 거대한 대승사상의 오케스트라를 만든 사람이 천태대사 지의(智?)이다. 다음은 경봉(鏡峰)스님의 6묘문(妙門)에 관한 법문이다.
가고 오는 것이 (道)가 아님이 없고, 삼라만상이 도 아님이 없고, 잡고 놓는 것이 선 아님이 없는데 처음 배우는 이들은 이렇게 말만 듣고 알아도 안 된다. 날개도 나지 않은 새가 나르려 하다가 떨어져 죽게 되는 격이다.
선(禪)에 대해서 여섯 가지의 묘문(妙門)이 있다. 이것은 참고삼아 들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지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화두를 들다가 화두를 버리고 이것을 하라는 말도 아니다. 참고적으로 한 번 들어두라는 말이다.
1) 수식관(數息觀) -- 참선 시 호흡을 관찰하며 공부하는 법. 들어가고 나가는 숨을 관찰한다고 해서 ‘출식념(入出息念)’이라고도 한다. 주로 마음이 산란한 사람들이 닦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망상(妄想)이 복잡하게 일어날 때 숨을 고르면 망상이 어느 정도 잦아지기 때문이다.
숨을 쉴 때 들여 쉬고 내쉬는 이것을 열까지 세고 버린다. 왜 열까지 세고 버리느냐 하면 열이 넘으면 망상이 생긴다. 들어가는 숨을 세고 나오는 숨도 세면 분별이 많아지니 들어가는 숨은 빼고 나오는 숨만 세는 수도 있다. 열 번씩 세다가 혹은 세 번이나 다섯 번이나 일곱 번까지 세다가 망상이 생기면 잘못 세었다고 처음부터 다시 센다. 열 번까지 가지 말고 이렇게 숨을 세는데서 다른 생각이 들어 올 수가 없기 때문에 정신이 집중이 된다.
2) 수문(隨門) -- 미세한 생각이 숨을 따라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것도 알고 나오는 것도 아는데 길고 짧고 차고 더운 것을 이와 같이 안다. 그 모든 선(禪)이 이것으로부터 발하는 것을 수문이라 한다.
3) 지문(止門) -- 이 숨 쉬는 마음이 고요하고, 고요히 하는 것을 지(止)란 한다. 즉 이 마음이 본래 고요한 것이지만 생각의 파도가 분주스럽다. 그래서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가야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가야 한다. 본래 고요한 자리이건만 자기 스스로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그 생각파도가 출렁인다.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가서 그 마음이 밝고 밝아지면 편안해진다. 그래서 지(止)를 의지해 생각이 고요하고 요란치 않는 이것을 수(隨)를 버리고 지(止)를 닦는 문이라 한다. 마음에 파동이 없으면 모든 선(禪)이 정(定)해지니 이것을 지문(止門)이라 이름 한다.
4) 관문(觀門) -- 관문이란 분별을 방편(方便)으로 끊는 것을 이름 해 관(觀)이라 한다. 수행하는 이가 지문(止門)을 인(因)해서 제선(諸禪)을 증득하나 지혜를 밝히지 못하면 밝지 못한 마음이 모든 선정(禪定)에 혼미해지나 마음을 관(觀)해 오음(五陰)의 헛됨을 분별해서 알면 전도(顚倒)가 이미 없어지나 샘이 없는 <무루(無漏)>방편이 이로부터 개발되므로 관(觀)으로써 문을 삼는다.
5) 환문(還門) -- 환문이란 마음을 굴려서 돌이켜 비추는 것을 환문이라 한다. 수행자가 관조(觀照)하는 것을 닦더라도 만약 내가 능히 관(觀)하고 비추어서 전도심(顚倒心)을 파하더라도 ‘나’라고 하는 의혹이 오히려 외도(外道)들보다도 더 큰 것이 남기 때문에 마땅히 마음을 굴려서 능히 마음을 관조해 헛된 가운데는 참됨이 없는 줄 요달(了達)하면 그 관조(觀照)함으로써 생기는 나를 집착하는 전도됨이 없어지고 샘이 없는 <무루> 방편의 지혜가 자연히 밝음으로 환(還)으로써 문을 삼는다.
6) 정문(淨門) -- 정문이란 마음이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망심(忘心)의 파도가 일지 않는 것을 정(淨)이라 한다. 수행자가 환(還)을 닦을 때에 능히 전도심을 관조(觀照)해 파하더라도 참으로 밝아 무루(無漏)의 지혜가 밝지 못하면 능소(能所)가 없는 곳에 머무름이니 곧 한 생각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지혜가 더러움에 물듦이 없으나 이렇게 깨달아서 알면 머무름에 집착도 하지 않고 맑고 청정한 즉, 참되고 밝은 것이 이것을 말미암아 개발된다. 곧 삼계(三界)의 얽힌 의혹을 끊고 삼승(三乘)의 도를 증득함이니 이것이 정(淨)으로써 묘문(妙門)을 삼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을 육통묘문(六通妙門)이라 한다. 차례로 서로 통해 참으로 묘한 열반(涅槃)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자의 방편문(方便門)이다. 하지만 말과 글로써 하루 종일 말하고 십년 백년을 말하더라도 말은 말이요, 글은 글일 뿐이다. 어찌 이 도리를 거량(擧量)할 수 있겠는가.
* 육화경` 六和敬 -- 승려들이 공동체 수행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화합을 위해 상대와 마음이 합해지도록 공경하는 여섯 가지 원칙을 말한다.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을 오역죄(五逆罪)의 하나로 들고 있을 정도로 승가는 화합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불교교단의 가장 기본적인 계율이며, 사원 생활에서 생기는 불화나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한다. 불 ? 법 ? 승 삼보 가운데 승을 승가(僧伽)라 하고 화합중(和合衆)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육화경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는 뜻이다.
1) 신화경(身和敬) - 몸으로 부처님 행을 해 행동으로 서로 화합하고,
2) 구화경(口和敬) - 입으로 부처님 말을 해 말로써 화합하고,
3) 의화경(意和敬) - 뜻으로 부처님과 같은 생각을 하며 서로 화합하고,
4) 계화경(戒和敬) - 바른 행동을 해 계율로써 서로 화합하고,
5) 견화경(見和敬) - 이념과 사상을 바로 해 바른 견해로써 서로 화합하고,
6) 이화경(利和敬) - 자리이타(自利利他)에 충실해 정신적 ? 물질적 이익을 이웃에 회향해 화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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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화공주(身和共住) - 몸으로 화합하라는 말이며, 대중이 한 장소에서 같이 살라는 말,
2. 구화무쟁(口和無諍) - 입으로 화합하라는 말이며, 서로 다투지 말고 화목하라는 말,
3. 의화동사(意和同事) - 뜻으로 화합하라는 말이며, 서로 협력해 함께 일하라는 말,
4. 계화동수(戒和同修) - 계율로 화합하라는 말이며, 함께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란 말,
5. 견화동해(見和同解) - 바른 견해로 화합하라는 말이며, 이해하며 의견을 나누라는 말,
6. 이화동균(利和同均) - 동등한 이익으로 화합하며, 삼보정재(三寶淨財)를 균등히 나누는 것.
* 윤장대` 輪藏臺 -- 경전 적은 길쭉한 통에 기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나 경전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이 이것을 돌리기만 해도 불경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지닌다.
* 윤필거사` 潤弼居士 -- 신라시대 의상(義湘)대사의 동생으로 불교에 입문한 거사로서 도력이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문경 공덕산(孔德山) 대승사(大乘寺), 문경 도장산(道藏山) 심원사(深源寺), 안양 삼성산(三聖山) 삼막사(三幕寺), 양평 용문산(龍門山) 상원사(上院寺) 등 여러 곳에 윤필거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
* 윤회` 輪廻, 산스크리트어 상사라 samsara =
1.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은 지은 업에 의해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돌고 도는 것을 말한다. 즉 중생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사상으로, BC 600년경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의 문헌에서 비롯돼 대중에게 전파됐다. 불교에서는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세계에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에 지옥,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 천상(天上)의 육도(六道)가 있다고 말한다. 이 3계6도 중 어느 세계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중생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와의 총체인 업(業)에 따라 결정된다.
- 삼선도(三善道) : 천상(天上), 인간(人間), 수라(修羅)
- 삼악도(三惡道) :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
2. 윤회 불교 교리 가운데 하나. 중생이 죽은 뒤 그 업(業)에 따라서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을 천명한 사상.
- 내용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간다는 것으로 이를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육도 중 첫째는 지옥도(地獄道)로서 가장 고통이 심한 세상이다. 지옥에 태어난 이들은 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둘째는 아귀도(餓鬼道)이다. 지옥보다는 육체적인 고통을 덜 받으나 반면에 굶주림의 고통을 심하게 받는다. 셋째는 축생도(畜生道)로서, 네 발 달린 짐승을 비롯하여 새?고기?벌레?뱀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넷째는 아수라도(阿修羅道)이다. 노여움이 가득찬 세상으로서, 남의 잘못을 철저하게 따지고 들추고 규탄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다섯째는 인간이 사는 인도(人道)이고, 여섯째는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하늘 세계의 천도(天道)이다. 곧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의 한 곳에서 내세를 누리며, 다시 그 내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내내세에 태어나는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윤회의 여섯 세상에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다.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도로, 천국에서 아귀도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난다. 곧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을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관이다. 이 윤회는 철저하게 스스로 지은 대로 받는다는 자업자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스스로 착한 일을 하였으면 착한 결과를 받고, 악한 일을 하였으면 악한 결과를 받는(善因善果惡因惡果) 자기책임적인 것이다.
자기가 지은 바를 회피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 받을 수도 없다. 오직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에 따라서 다른 세계로의 향상(向上)과 향하(向下)가 가능할 뿐이므로,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는 윤리도덕적인 측면, 즉 권선징악적인 차원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다.
불교에서는 권선징악을 넘어선 해탈의 차원에서 이 윤회설이 강조되었다.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이나 극락의 왕생 등을 보다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한 생에서 다음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데 대한 관심보다, 현실의 삶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깊이 다스려서 언제나 고요한 열반의 세계나 불국토(佛國土)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점검하도록 하는 데 치중하였다.
현재의 마음이 번뇌로 가득차 있는 것이 곧 지옥이고,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귀이며, 어리석음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축생이라고 보는 등, 이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끊임없이 육도를 윤회한다고 보았다.
특히, 신라의 원효(元曉)는 윤회의 원인을 일심(一心)에 대한 미혹이라고 보았다. 그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일심 외에 다시 별다른 법이 없으나 다만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일심을 알지 못하고 갖가지 파도를 일으켜서 육도를 윤회한다.”고 하였다. 곧 일심을 깨달을 때 윤회를 면하여 해탈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윤회에 대한 기록은 풍부하게 보이고 있는데, 일반인을 교화시키는 데 가장 설득력이 강하였던 사상이 윤회설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회에 관한 이야기들은 중생의 교화를 위해서 가장 널리 이용되었다.
≪삼국유사≫의 사복불언(蛇福不言)에 보면, 남편 없이 아들만을 기르던 한 과부가 죽었다. 열 두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기동도 하지 못하였던 아들 사복은 고선사(高仙寺)로 원효를 찾아와서 함께 장례를 치르자고 하였다. 원효는 “그대와 내가 전생에 불경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으니 같이 가서 장사를 지내자.”고 하였다. 곧 과부 어머니는 전생에 소였던 것이다.
또, <혜통항룡 惠通降龍>에도 윤회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당나라에서 병을 내고 다니던 교룡(蛟龍)은 혜통의 신술에 쫓겨 신라 땅으로 가서 횡포를 부리고 다녔다. 이에 정공(鄭恭)이 당나라에 가서 혜통을 모셔와 용을 쫓아보내자, 앙심을 품은 용은 정씨 집 앞에 한 그루의 버드나무로 환생하였다. 원한을 품은 용의 환생인 줄을 모르는 정씨는 이 버드나무를 무척 애지중지하였다.
그 뒤 신문왕이 죽어 장례행차를 하는데 이 버드나무가 지장을 주게 되자 베어버릴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내 목은 베어도 이 나무만은 벨 수 없다.”고 하면서 정공이 버티자 왕은 격분하여 정공의 목을 베고 그 집을 묻어버렸다. 버드나무로 환생한 용이 이렇게 원한을 푼 것이다.
또,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金大城)은 전생에 가난한 집에 살았던 불심이 돈독한 아이였다. 몹시 가난하였지만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내세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전답을 모두 법회에 보시(布施)한 뒤에 죽었다. 이 아이가 죽은 바로 그 순간에 정승 김문량(金文亮)은 그 아이가 대성이라는 아기로 환생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 뒤 그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주먹 안에 ‘대성’ 두 글자가 새겨진 금간자(金簡子)를 쥐고 태어났다. 자라서 재상이 된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지었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현재의 석굴암인 석불사(石佛寺)를 지었다. 이와 같이 신라시대에는 전생과 내생이 현세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윤회사상이 토착화되어 민중의 의식구조를 형성하였다.
나아가 왜구에 시달린 문무왕은 죽어서 용이 되어 호국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수중릉(水中陵)을 만들게 하였으며, 김유신은 죽어서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신이 되어 신라를 돌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윤회사상이 호국사상에까지 결부될 수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윤회사상은 고려시대에도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 공양왕 때 개성에 전염병이 크게 나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중에는 겨우 다섯 살된 눈먼 아이만을 남겨놓고 부모가 죽어버린 집도 있었다. 그 집에서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부모가 죽어 아이가 굶주리게 되자, 이 개가 눈먼 동자에게 꼬리를 잡게 하여 마을의 집들을 다니면서 걸식할 수 있도록 하고, 밥을 다 먹고 나면 샘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먹여주기까지 하였다.
이 소문이 조정에 알려지자 어명으로 개에게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 또한, 마을에서는 이 개가 자비로운 보살이 윤회 환생한 것이라고 하여 개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합장하여 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직접 선행과 수행을 닦아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면보다는 기복의식 등을 통하여 내세를 기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그릇된 실천 때문에 불교의 윤회설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유생들로부터 크게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정도전(鄭道傳)의 ≪불씨잡변 佛氏雜辨≫이다. 정도전은 성리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윤회설의 기본사상이 되는 영혼불멸설을 부인하였다.
또, 남효온(南孝溫)은 그의 <귀신론 鬼神論>에서 불교의 윤회설을 유교의 이기설(理氣說)로 비판하고,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조선 초기의 고승 기화(己和)는 ≪현정론 顯正論≫을 저술하여 윤회설의 도덕성?사회성 등을 피력하였다.
“천당과 지옥이 설사 없고 육도윤회가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러한 말을 듣고 천당을 생각하여 선을 좇고, 지옥을 두려워하여 악을 버리게 되는 것이니, 윤회설은 백성을 교화하는 데 있어 그 이익이 막대한 것이다. 하물며 천당과 지옥 등의 육도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선한 사람은 반드시 천당에 오르고 악한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을 듣고 착한 사람은 더욱 선에 힘써서 천당의 낙을 누리려는 것이요, 악한 사람은 악을 그쳐서 지옥에 들어감을 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윤회설을 배척해서 망령된 것이라고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이와 같은 논란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도 사대부 계층을 제외한 서민 대중들은 신라시대 이래의 뿌리깊은 윤회설을 깊이 신봉하였다. 특히, 윤회전생의 시간적 계기가 되는 죽음에 관한 민속에는 윤회관이 큰 영향을 미쳤다.
육체는 현세에서 사라져 없어지는 현세적 부속물이고, 윤회전생하는 주체는 혼이다. 그러기에 숨이 끊어지면 가족들은 재빨리 망인의 저고리를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그 저고리를 흔들며 육체를 떠나가는 혼, 윤회전생의 주체를 불러들여야 한다. 이를 초혼(招魂)이라 한다. 그 주체를 불러들여 보다 좋은 세상으로 전생(轉生)하게끔 공을 들일 시간을 벌기 위하여 이와 같은 초혼 습속이 생겨난 것이다.
남존사상(男尊思想)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녀자를 억압하는 데에도 윤회설은 이용되었다. 걸핏하면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후려치는 악한 남편이라 할지라도 윤회설은 이를 구제하고 있다. 이런 남편은 전생에 한 마리의 소였고, 아내는 전생에 그 소의 주인이었으며, 전생에 주인이 소를 가혹하게 부렸기 때문에 얻어맞는 아내가 된 것이라고 합리화시켰던 것이다.
또, 나쁜 버릇을 고치는 금기교육(禁忌敎育)에도 윤회설은 큰 역할을 하였다. ‘눈을 너무 흘기면 가자미가 된다.’, ‘손 든 날 장사를 치르면 망령(죽은 영혼)이 여우가 된다.’, ‘처녀 죽은 시체를 네거리에 묻지 않으면 구렁이가 된다.’, ‘고기뼈를 핥아 먹으면 죽어서 강아지가 된다.’ 이와 같은 금기들은 윤회설에 입각하여 일상의 바람직하지 못한 버릇을 못하게 바로잡아 왔던 것이다.
소외되기 쉽고 불행한 사람을 마을 전체가 감싸고 위하고 도와주는 힘의 근원으로서 윤회설이 작용하기도 하였다. 동해안 어촌에서는 백치(白痴)가 죽으면 내세에 오징어 임금님이 되어서 많은 신하들을 이끌고 고향에 되돌아온다고 하였다. 이 윤회설에 의하여 오징어잡이로 반년 먹을 것을 마련하는 어민들은 백치를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징어떼를 몰고 귀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애꾸를 놀리거나 소외시키면 그 한이 맺혀서 내세에 늑대나 멧돼지가 되어 놀려먹은 사람의 후손을 해치거나 그 집 전답을 해친다고 한 것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소외되기 쉽고 버림받게 마련인 장애자를 인간애로써 감싸게 한 것이 바로 불교에서 비롯되어 서민층에까지 체질화된 윤회설인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은 고전소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심청전>이다.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심청은 용궁에 윤회전생을 한다. 용궁에서 호사스럽게 3년을 보내다가 옥황상제의 명령으로 인간계로 다시 윤회전생한다. 한 송이 연꽃으로 인당수에 떠오르자 뱃사람들이 연꽃을 건져 송나라 황제에게 바쳤고 황제는 왕비로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장화홍련전>에서도 계모의 간계로 장화와 홍련이 원한을 품고 죽게 되는데, 옥황상제가 그 원한을 통촉하여 다시 인간세상에 태어나게 해주고 있다. 장화와 홍련의 아버지가 꿈에서 그 윤회의 계시를 받고 부인에게 두 딸이 다시 태어날 조짐이라 하였으며, 그 뒤 딸 쌍둥이를 낳게 되었다.
<왕랑반혼전 王?返魂傳>도 윤회설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지옥도에 빠지게 될 남편을 구하기 위하여 10년 전에 죽은 그의 아내 송씨가 꿈 속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아미타불을 염불함으로써 염라대왕의 용서를 받고 아내와 더불어 인간세상에 다시 환생하게 된다.
그러나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왕랑은 현세에 돌아와 의지할 육체가 있지만, 10년 전에 죽은 송씨는 의지할 육체가 없어 때마침 죽어가고 있던 월씨국(月氏國)의 한 공주의 육체에 의지하여 환생을 한다. 이렇게 윤회전생한 두 부부가 열심히 불교를 믿어 극락세계로 왕생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윤회설은 설화 속에 가장 왕성하게 살아 있다. 한 가난한 과부가 오누이를 남기고 죽었다. 염라대왕은 그 과부가 현세에서 가난하게 살아 명승고적도 구경하지 못한 채 저승으로 온 것을 불쌍히 여겨 개로 환생시켜서 오누이가 사는 집으로 돌려보낸다. 살기 어려운 아들은 이 개를 잡아먹으려 든다. 이때에 한 승려가 찾아와서 그 개는 어머니가 환생한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아들은 크게 뉘우치고 그 개를 업고 명승지 유람에 나선다. 돌아오는 도중에 개는 이제 소원을 풀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 죽는다.
이와 같이 윤회전생과 관련된 설화는 수없이 많다. 불교의 대표적인 의식도 이 윤회설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수륙재(水陸齋)는 한 맺힌 고혼들을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의식이며, 예수재(豫修齋)는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을 살아 있을 때 미리 기원하는 의식이다. 특히, 사십구재(四十九齋)는 윤회사상에 의하여 생겨난 가장 대표적인 의식이다. 돌아가신 부모가 지옥이나 아귀도나 축생도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추선(追善)의 불사(佛事)인 사십구재를 상례 속에 도입되게 한 것이다.
윤회설은 현세에 사는 사람들에게 악을 배제시키고 선을 취하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역사가 법이나 규범의 제약 없이도 평화롭게 살아온 데는 이 윤회사상의 영향이 적지 않았으며, 현재에도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윤회사상이 크게 지배하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원효)
『현정론(顯正論)』(기화) 「윤회관」(이규태, 『불교사상』 6, 불교사상사, 1984.5.)
윤회` -----------
* 율장` 律藏, vinaya-pitaka -- 삼장(三藏)의 하나 석존(釋尊)이 제정(制定)한 계율(戒律)의 조례(條例)를 모은 교전(敎典)을 일컬음. 율장(律藏)은 경분별(經分別, Suttavibha?i), 건도부(健度部, Khandaka), 부수(付隨, Pariv?ra)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 은산철벽` 銀山鐵壁 -- 간화선(看話禪)에서 화두의 하나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이란 은으로 만든 산, 철로 만든 벽이란 뜻이다. 헌데 은산철벽은 단단해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이 높아서 오르기 어렵다는 말로서 화두를 참구해서 깨닫는 일이 그와 같이 어렵다는 말이다.
* 음광승존` 飮光勝尊 -- 빛을 마시는 뛰어난 존자란 뜻으로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을 존경해서 이르는 말임. -- 가섭(迦葉)
* 응진전` 應眞殿 -- 나한전(羅漢殿)
* 의근 ` 意根 산스크리트어 mana-indriya -- 제6식의 발생 근거임.
* 의단` 疑團 -- 의단이란 ‘의심 덩어리’, ‘의심 뭉치’라는 뜻이다.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의 자리, 즉 뜻풀이, 말할 길이 끊어지고,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에서 분별망상의 명근(命根-생명력)이 끊어지도록 만드는 간화 장치는 ‘의단(疑團)’”이라며, “이 의단이 깨어질 때 깨달음이 일어나는 것”이라 정의하고, 의단으로 발전되는 첫 단초로서의 의심은 공안(公案)에서 비롯되고, 공안에서 비롯된 의심이 곧 화두(話頭)라고 정의했다. → 의정(疑情)
* 의리선` 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말함. 즉 이치나 논리,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선을 말한다. → 문자선(文字禪), 구두선(口頭禪)과 비슷한 말.
* 의문구족` 義文具足 -- 여기서 ‘의(義)’는 말을 함에 있어서 조리(條理)나 의미란 뜻이고, 문(文)은 형식이나 표현을 뜻한다. 따라서 ‘의문(義文)’은 조리 있는 표현이 되겠고, 의문구족이란 ‘조리가 정연하게 표현함’이라는 의미겠는데, 석존께서 처음 전도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함에 의문구족하라고 하셨다. 즉 논리 정연하게 법을 설하라고 당부하셨다.
* 의상` 義湘 대사 -- 신라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입적했다. 성은 김씨이며 진골 출신이다. 661년(문무왕 1) 당(唐)나라로 유학했다가 당나라 고종(高宗)의 신라 침략 의도를 알고 이를 본국에 알리기 위해 급거 귀국했다.
신라 삼국통일 후 676년(문무왕 16)에 문무왕의 명으로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후 구례 화엄사(華嚴寺), 범어사(梵魚寺) 등 화엄십찰(華嚴十刹)을 걸립해 화엄대교를 전했다. 그리하여 화엄사상을 우리 풍토에 맞게 정리 해 낸 분이 의상대사이다.
당시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쌍벽을 이룬 선지식이었는데, 의상은 주로 제도권에서 활동을 했고, 원효는 저자거리에서 민중을 상대로 재야적 활동을 주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 조명으로는 의상은 보수적이랄 수 있고, 원효는 진보적이었다고 하겠다.
* 의언진여` 依言眞如 이언진여 離言眞如 --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 나오는 말이다. 언어를 빌려 진리를 표현하지만 진짜 진리는 언어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 의정` 義淨 -- 중국 당나라의 학승(學僧)으로 20년 동안 인도 등지를 여행한 후 400부의 산스크리트어 불전을 가지고 돌아와 경전 번역에 종사했다. 그의 인도여행기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과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은 7세기 후반의 인도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불교 사정이라든가 사회 상태를 기록한 귀중한 자료이다.
* 의정` 疑情 -- 의정이란 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이 물밀 듯 터져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의정의 농도가 매우 진한 상태를 의단(疑團)이라 한다. 의단이란 ‘의심 덩어리’, ‘의심 뭉치’라는 뜻이다. 참선하는 데에는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화두는 의정이 생명이다. 의정이 일어나야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일어나지 않고 진실로 돌아간다.
대분심(大憤心)을 일으켜보라. 그래야 큰 의정을 일으킬 수가 있고, 큰 의정을 일으켜야 크게 깨칠 수가 있고, 의정을 통해 비로소 공안을 타파하게 된다. 진리는 개념이나 지식으로 알 수 없다. 이것이 의정을 통한 깨달음의 길이다. → 의단(疑團)
* 의정돈발법` 疑情頓發法 -- 의정돈발법이란 ‘의정을 문득 일으키게 하는 방법’을 뜻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의정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요인’이다. 즉, 실제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면 의정을 좀 더 잘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엔 세 가지 부분이 있다. 선지식, 참구자 및 화두가 그것이다. 즉 의심을 일으키도록 결정적인 가르침을 주는 선지식과 그로부터 화두를 받아서 참구해 나가는 당사자의 노력, 그리고 바로 그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실제적 요령의 숙지 등의 세 가지이다.
* 의천` 義天 --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 대각국사(大覺國師). 중국 송(宋)에 유학, 귀국 후 개경의 국청사(國淸寺)에서 <천태 3대부>를 강의하면서 천태종을 개창해 선교일치를 주장함으로써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라 할 회통불교의 맥을 계승했다.
그는 초조대장경에서 제외된 중국 및 한국 학승들의 저술인 장 ? 소(章疏) 등을 모아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작성하고, 이를 목판본으로 판각했다(통칭 속장경이라 잘못 일컬어짐). 그리고 국가의 이익과 민생의 복리를 위해 주전론(鑄錢論)을 주장 관철시켰다.
※ 교장(敎藏) --학승들의 불경에 대한 주석서인 장 ? 소(章疏) 등을 모은 것.
* 의타기성` 依他起性 -- 유식 삼성설(三性說)의 하나. ‘나’라는 것도 인연 따라서 잠깐 이루어지고 또 내가 미워하는 마음도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고, 이 세상에 인연이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모두가 인연생(因緣生)이라는 것이다.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이것은 여환가유(如幻假有)라, 마치 허깨비같이 가짜로 잠깐 존재하는 것이다. → 유식삼성(唯識三性)
* 이고득락` 離苦得樂 --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려는 것, 고통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진정한 열반락(涅槃樂)을 얻는 것을 말한다. 중생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고통을 없애주고 즐거움을 준다는 발고여락(拔苦與樂)과 같은 뜻이다.
불교의 목적이란 중생이 고(苦)로부터 해탈하게 하는 것, 일상을 통해서 그 많고 많은 인생사 중에서 일어나는 온갖 장애물들, 온갖 병통들, 온갖 고뇌들, 온갖 번뇌들이 끊임없이 여름날 저 먹구름 일어나듯이 계속 일어나는 데, 이것으로부터 해탈하는 길 그것이 바로 이고득락이다.
* 이공` 二空 과 삼공 三空 -- 대승불교의 교의에서 공(空)을 크게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이공(二空)으로 나눈다. 아공(我空)은 인공(人空)이라고도 하는데, 이 때문에 이공(二空)을 인법이공(人法二空)이라고도 한다. 이공(二空)의 교의는 초기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교의가 됐다.
또 아공(我空)을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법공(法空)을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둘을 통칭해 이무아(二無我)라고 하는데, 이무아(二無我)는 이공(二空)과 같은 뜻이다. 이공의 교의는 후대에 이공에 구공(俱空)을 더해 삼공(三空)의 교의로 발전했다.
아공은 자아의 실재를 공이라 한 것이고, 법공은 제법이 다만 인연에 의해 생기고 존재하며 연기에서 인정될 뿐, 불변하는 자성(自性)이란 있을 수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아공과 법공에도 집착하면 안 된다. 공(空)마저도 다 공해져야 하는데 그 자리를 ‘구공(俱空)’의 자리라 한다.
좀 더 살펴보면, 아공은 중생이란 오온이 임시로 화합한 것이므로 ‘나(我)’라고 할 실체가 없는 것, 즉 이치의 옳고 그름(是非)에 표준이 없이 자기의 의견만 집착해서 ‘아’를 고집하는 아집(我執)을 벗어난 것이다.
법공은 오온의 자성도 공하다는 뜻, 즉 객관인 사물이나 마음 작용의 현상을 실재하는 것인 줄로 잘 못 알고 고집하는 법집(法執)을 벗어난 것이다.
이공을 다시 아우르는 구공은 아집과 법집을 벗어나 이공과 법공에 대한 집착마저 다 없어져 본성에 계합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은 실체가 없어 텅 빈 것이 아니라 실체라는 집착을 넘어섰기에 꽉 찬 것이기도 하다. 아공, 법공, 구공의 세 가지 공의 자리를 드러내는 것을 ‘현삼공(顯三空)’이라 한다.
* 이구지` 離垢地 -- 모든 괴로움과 더러움에서 벗어난 모습. 화엄경 십지품(十地品) 가운데 제2지가 이구지이다. 즉 보살의 수행 단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을 보살 10지(地)라 하고, 이구지는 보살이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기쁨을 느끼는 10지 중 제2단계를 말한다. 제1단계는 환희지(歡喜地)이다. 이 이구지에 이르면 수혹(修惑=思惑-여러 가지 끓어오르는 번뇌)을 끊고, 범계(犯戒)의 더러움을 제거해 몸을 깨끗하게 하는 지위이다. → 십지(十地), 환희지(歡喜地)
* 이근원통` 耳根圓通 -- <능엄경>에서 열거하는 25가지 수행법 중의 하나이다. 25가지 수행법 중에서 관음보살이 사용한 이근수행법을 가리킨다. 이근수행법이 기타 수행법에 비해서 가장 원통(圓通)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근원통 수행은 처음에는 소리에 집중(觀)하는 단계이고, 다음에는 ‘듣는 놈을 돌리는(反聞聞性)’ 단계로 접어든다. 처음 과정이 끝나야만 반문문성의 과정으로 진입함은 물론이다. 소리를 집중하는 데 있어서도 다시 2가지 단계로 나뉜다. 내면의 소리(內耳聲)와 바깥의 소리(外耳聲)가 그것이다.
내면의 소리는 자기의 체내에서 내는 소리 즉 염불(念佛), 독경(讀經)소리 등을 듣는 것이다. 염(念)의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큰 소리로 염하는 것, 작은 소리로 염하는 것(金剛念), 마음의 소리로 염하는 것(瑜伽念)이 있다. 염할 때에는 귀로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바깥의 소리란 어떤 소리든지 물체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물이 흐르는 소리나 폭포소리 또는 바람이 불어서 풍경이 울리는 소리나 범패소리를 듣는 것이다. 처음으로 마음이 소리에 완전히 집중되었을 때 능히 졸지 않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으면 자연히 이런 경지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 바깥의 소리에 집중한다고 할 때 가장 보편적인 소리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이다. 이는 가장 쉽게 정(定)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근원통이란 북방 불교권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수행법이다. 그리하여 그 일부가 염불선이라는 형태로 변용돼 내려왔다.
* 이류중행` 異類中行 -- 인간 이외의 부류 가운데서 수행한다는 뜻이다. 당나라의 고승 남전보원(南泉普願)이 주장한 수행법이다. 이류(異類)란 본래 인간과는 다른 생물, 즉 동물을 뜻하는 말이다. 남전은 30년 동안 산에서 밭을 갈며 수행했는데, 동물에게는 망상이 없으므로 이들 가운데서 도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곧 세상의 시비와 사상으로부터 벗어나 중생의 불성이 청정함을 깨닫고 이들 가운데서 수행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불 ? 보살이 자기의 본지(本地)에 머물지 않고, 생사윤회 속에 있는 다른 중생[異類] 속에 태어나 제도 사업을 벌이는 것을 이르기도 한다.
* 이 뭣고? -- “무자화두(無字話頭) 이 뭣고 화두” “이뭣고[是甚摩]”
‘이 뭣고’란 ‘시심마(是甚?)’를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한 것으로, 선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공안(公案)을 말한다. 사람마다 이 몸을 운전하는 주인공이 있는데, 중생은 그것을 일러 마음이다, 넋이다, 영혼이다… 라는 의심을 품는다. 그래서 ‘이 뭣고[是甚摩]’라는 화두인 공안(公案)이 성립됐다.
공안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실마리를 주는 말로 화두(話頭)라고도 한다. '시심마' 즉 '이 뭣고'란 인생의 모든 생활 현상에 따라,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 마음가짐을 관찰하는 것으로, 행하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멈춘 가운데[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語默動靜)] 나를 움직이는 마음의 주인공 ‘이 놈이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 뭣고[시심마]’의 유래 -- 먼저 ‘시심마(是甚?)’라는 것은 오래된 글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이다. 흔히 백화체(白話體)라고 얘기하는 한문과 현대 중국어의 과도기에 속하는 구어식의 문체가 있는데 거기에 출현한다. 이때의 문장은 글자만으로는 도저히 풀이가 안 되는 관용적인 표현들이 많이 들어있는데, 그 중 다수가 현대 중국어에 쓰이고 있다.
지금 이 질문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몸인가? 입인가? 마음인가? 아니면 님의 그 귀하다는 불성인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대답하지 말고 실제로 분명하게 들어내서 보여 보아라. 몸뚱이라면 죽은 뒤는 말을 못하니 송장일 뿐이오. 마음인가? 불성인가? 그런 것 같으면 한 번 들어내 보아라 … 이다.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의 시심마(是甚?)는 바로 달마대사의 직지인심(直指人心)을 가리키는 것이다.
→ 시심마(是甚?)
* 이법계` 理法界 --- 화엄 사법계(四法界)의 하나. 진리의 세계를 일컫는 말. 수행이 최고조에 달해 상수멸정(想受滅定)의 상태가 되는 경지. → 상수멸정(想受滅定), 사법계(四法界)
* 이부종륜론` 異部宗輪論 -- 인도의 학승 세우(世友, 바수미트라/Vasumitra, 서기 1~2세기경)가 짓고 현장(玄?)이 번역한 것으로 소승불교 20부의 분파 상태와 교리의 요지를 기록한 책. → 세우(世友)
* 이사무애법계` 理事無?法界 -- 화엄교학의 4법계의 하나. 현상과 진리가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 ? 융합하는 것. 즉,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 사법계(四法界)
* 이산혜연선사발원문 怡山慧然禪師發願文 -- 이산연선사발원문(怡山然禪師發願文)이라고도 한다. 이산 혜연선사는 중국 당나라 말기의 승려로서 중국 복건성 복주사람으로 장생산(長生山)에 거주해 장생 교연(長生皎然)으로도 불리고, 이산 교연(怡山皎然))이라고도 한다. 이산 혜연선사가 지은 발원문이 유명해 1964년 운허(耘虛)스님이 번역한 것과 성철(性澈)스님의 번역문이 있다. 이산 혜연선사발원문은 관세음보살의 크나큰 자비로 시방세계에 다니면서 많은 중생을 건지고자 하는 서원을 담고 있는 발원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독송되고 있다.
* 이숙` 異熟 산스크리트어 vip?ka -- ‘다를 이(異), 익숙할 숙(熟)’.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의미의 불교 용어이다. 이숙(異熟: 다르게 익음)은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의 불교의 인과사상 또는 교의를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과보(果報)라고도 번역한다. 즉, 현재의 나 역시 전생에서의 업의 과보이므로 이숙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원인과 다른 성질로 성숙됨.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즉, 가난뱅이던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모아 기업체 사장이 됐다면, 그것은 멋진 이숙이다. 나아가서 삼라만상 자연생태계에 모든 동식물이 생겨나고 성장하며 소멸해가는 과정을 이숙이라 하기도 한다.
* 이숙식` 異熟識 --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선(善), 악(惡), 무기(無記)의 모든 종자를 받아들인다. 그 때문에 모든 업의 결과[果體]로서의 아뢰야식을 이숙식(異熟識)이라고 말해진다. 즉, 아뢰야식은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일어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그러니 이숙식은 아뢰야식의 별명이기도 하다.
아뢰야식의 전변을 이숙전변(異熟轉變)이라고 한 것은 윤회의 주체로서 아뢰야식은 전생의 업의 결과로서 성립한 것이며, 이숙과(異熟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명언종자(名言種子)가 보존돼 있고, 그들도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닌 중성의 상태[無記]인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밝힌 것이 이숙전변이다.
※ 명언종자(名言種子) --언어 작용에 의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된 잠재력으로, 모든 마음 작용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
* 이심전심` 以心傳心 --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뜻이 통한다는 말. 혹은 문자나 언어 없이 남을 깨닫게 한다는 말. 원래 이 말은 불교의 법통(法統) 계승에 쓰여 온 말이다.
<전등록(傳燈錄)>은 송(宋)나라 사문(沙門) 도언(道彦)이 석가세존 이래로 내려온 조사들의 법맥의 계통을 세우고 많은 법어(法語)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부처님이 가신 뒤 법을 가섭에게 붙였는데,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했다”고 나와 있다. 즉 석가세존께서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했는데, 이심전심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 이십오방편 25方便 -- 천태 지관의 25방편을 뜻한다. 중국 수나라 시대에 천태 지의(天台智?, 538-597)대사는 선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갖추어야 할 5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출가자든 세간의 중생이든 모두 수행에 들기 전에 읽어보고 실천해야할 것들이다. 그리고 그 다섯 항목에 각각 5가지 실천항목이 들어 있어 25방편이 된다.
1) 구오연(具五緣) -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의식(衣食)을 마련하고, 조용한 곳에 머물고, 잡무를 중지하고, 덕이 높은 스승을 앎. → 구오연(具五緣)
2) 가오욕(呵五欲)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에 대한 탐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함.
3) 기오개(棄五蓋) - 탐욕(貪欲) 진에(瞋?) 수면(睡眠) 도회(掉悔) 의(疑)를 버림.
4) 조오사(調五事) - 식(食) 면(眠) 신(身) 식(息) 심(心)을 조절함.
5) 행오법(行五法) - 가르침을 원하고, 힘써 수행하고, 선정(禪定)을 소중하게 여기고, 선정에 의한 지혜의 즐거움을 알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해 산란하지 않게 함.
이는 천태 지의대사가 그 이전의 여러 선지식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분석 판별한 것을 지양하고 교학을 총정리해 새로운 체계를 세운 것이다.
* 이입사행론` 二入四行論 -- 중국 선종의 초대 조사 달마의 어록. 달마 이름으로 발표된 수많은 저술들 중 진짜 달마의 작품은 이 <이입사행론>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달마가 저술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이입사행론>은 둔황(敦煌) 막고굴에서 발굴된 것과 우리나라에 전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보리달마사행론(菩提達摩四行論)>은 1464년과 1908년 간행된 두 종류가 현존한다. 내용은 달마의 선수행법으로 선정에 드는 두 가지 길과 네 가지 행동을 말한다. 달마의 제자 담림(曇琳)이 스승의 설법을 정리하고, 그 서문을 썼다.
이입(二入)은 도에 이르는 두 가지 길로,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이른다.
이입(理入)은 진리의 깨달음을 통한 입문[방법]을 뜻하고, 행입은 수행을 통한 방법을 말함이다.
행입(行入)은 수행을 통한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네 가지 실천행이 있으니 보원행, 수연행, 무소구행, 칭법행이 그것이다.
보원행(報寃行)은 남으로부터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의 전생에 저지른 원한 때문에 생긴 일이니 상대를 원망하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이며,
수연행(隨緣行)은 모든 일이 인연 따라 생기는 것이므로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 인연에 맡기고 따르는 일이고,
무소구행(無所求行)은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사물을 탐내지 않는 행위이다.
칭법행(稱法行)은 진리의 법대로 살아가는 실천행을 말함이니, 그런즉 모든 중생의 본래 성품이 청정하다는 것을 믿고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수행법이다.
* 이제` 二諦 --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합쳐 이제(二諦)라 한다. 제(諦)는 변치 않는 진리를 말하고, 진제는 절대적 진리를 말하며, 속제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진리,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현실 생활의 실상(實相)에 따라 알기 쉽게 설명한 진리를 말한다.
진제는 여러 경전에서 승의제 ? 최승의제 ? 제일의제라고도 했으며 세속을 초탈한 세계의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속제는 세속제 ? 세제라고도 하며 세간적인 진리를 말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진리에 무슨 세간적이니 출세간적이니 하는 차별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으나 쉽게 말해 속제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진리, 즉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으로 이루어진 과(果)이며, 이것은 생멸의 원리로 돼 있으며 생멸은 공의 상태이며, 신진대사의 원칙에 따르고 있다는 등의 비교적 초보적인 것을 말한다. 진제는 이와 같은 원칙을 기준으로 해서 점차로 고차적인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체를 부정하고 언어를 초월하며 불생불멸하고 비인비과(非因非果)인 것을 말한다. → 속제(俗諦 samvrti-satya)
* 이장` 二障 --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에는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이장(二障)이 있다. 번뇌장은 탐 ? 진 ? 치(貪瞋癡) 등에 의해 수행에 지장을 받는 것이고, 소지장(所知障)이란 기왕에 조금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받는 것이다. 즉, 수행을 하다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여러 가지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데, 이때의 알음알이(얕은 지식)에 집착해 더 깊은 공부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 삼장(三障)과 소지장(所知障)
* 이참` 理懺 과 사참 事懺 -- 참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참이고 하나는 사참이다. 사참(事懺)은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으로 지은 악업에 대한 참회를 절이나 염불, 독송 등을 통해 하는 것이다. 이참은 본래의 마음자리에서 볼 때 모든 죄가 본래 자성이 없다는 것을 꿰뚫어 봄으로써 참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참과 사참 두 참법 중, 사참은 이참이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될 때 온전히 이루어지고, 이참 또한 사참이 없으면 공중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곧 사참과 이참은 결코 둘이 아니다. 불교 교의의 진리에 진제(眞諦)와 속제(俗諦)가 있음과 같은 맥락이다. → 사참(事懺)
* 이체자` 異體字 -- 한자(漢字)는 수천 년에 걸쳐 사용돼 왔기 때문에 같은 글자라도 시대와 쓴 사람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서체에 따라 약자, 간체자, 초서 등이 있는가 하면, 전서(篆書)와 같이 다른 서체도 있어서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의 글자가 있다. 같은 글자인데 이처럼 모양이 다른 글자를 통틀어 이체자 또는 변체자(變體字)라 한다.
이체자가 생긴 이유는 오늘날과 같이 통일된 활자가 없이 사람마다 붓 등의 필기구를 가지고 글씨를 쓰고, 지역, 시대에 따라 서체가 다양해짐에 따라 한 개의 글자도 그 원모양이 변해 이체자가 생겼다. 팔만대장경엔 이런 이체자가 약 8천종 2만여 자 이상이 있어서 컴퓨터 활자화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 이탐` 離貪, viraga --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탐이라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애욕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이 애욕의 소용돌이를 밀쳐버리는 것이 이탐인데,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은 욕망을 다 없애버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갈애를 없애라고 가르치셨다. 식욕, 성욕 등 기본적인 욕구는 넘치지 않은 한 인정하신 것이다.
* 이행` 二行 -- 이행이라는 것은 이분법적 행동을 말한다. 좋다-나쁘다, 한다-안한다, 좋다-싫다, 예쁘다-추하다 등 모든 사항을 두 가지 생각, 두 가지 행동 패턴으로 나누어 좋고-싫고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 깨달음의 첫 번째 모습이 무엇인가 나누어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행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행을 극복하는 것이 깨달음을 향하는 첫 번째 과제이다.
* 이행도` 易行道 -- 이행도는 부처님의 구제를 바라는, 부처님의 구제력에 의지하라는 대승불교의 기본입장이고 가르침이다. 즉, 아미타불의 타력본원에 의지하는 ‘신앙의 불교’로서 아미타불의 힘을 믿고 그에 의지하면 구제 받을 수 있다는 타력문(他力門)이다. 수행하기 쉽고, 해탈의 경지에 빨리 도달할 수 있어 이 길이 쉽다고 해서 이행도라 하며, 난행도(難行道)에 대응되는 말이다. → 난행도(難行道),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 이혹` 二惑 = 혹(惑)이란 마음의 미혹, 번뇌를 의미한다. 미혹(迷惑)의 장애(障碍)인 견혹과 사혹 두 가지를 말한다.
- 견혹(見惑) ; 잘못된 견해. 사물에 집착하는 망상으로 일어나는 번뇌. 혹은 그릇된 도리를 분별함으로써 일으키는 아견(我見), 변견(邊見)… 따위 오견(五見)으로서 불교의 진리를 알지 못해 생기는 후천적 번뇌이고. 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론적인 번뇌이며, 사상적인 미혹이다. → 견혹(見惑)
- 사혹(思惑) ; 탐 진 치(貪瞋痴)와 같은 타고날 때부터 갖는 태생적인 번뇌라서 끊기가 힘들고, 도(道)를 닦아야 끊을 수 있으므로 이를 수혹(修惑)이라 한다. → 사혹(思惑)
* 인계` 印契 수인(手印) = 부처가 자기의 내심(內心)의 깨달음을 나타내기 위해 열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갖가지 표상(表象)을 말함. 시무외인, 항마촉지인 따위 수인이다. → 수인(手印)
* 인과율` 因果律, 인과업보(因果業報), 업인과보(業因果報) = 인간은 능동적 작용을 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런 작용이 가해지면 대상은 그에 상응한 필연적인 반응을 보인다. 인간과 자연물 사이에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이런 관계가 성립한다. 남이 내게 잘해 주면 나도 그에게 잘해 주지 않을 수가 없고, 남이 내게 나쁘게 대하면 나도 그에게 나쁘게 대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주체적 인간과 객체적 대상 사이에는 인과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의지적 작용이 원인이 돼, 대상의 필연적 반응이 결과로서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인과율(因果律)라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그런 의지적 작용을 ‘업(業, karma)’이라고 부르고, 이에 대한 대상의 필연적 반응을 ‘보(報, vip-aka)’라고 부른다. 인과업보(因果業報)라든지, 업인과보(業因果報)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성립하게 된다.
* 인다라망` 因陀羅網 = 인드라망산, 산스크리트어 인드라얄라(indrjala)--- 인드라의 보석 그물이라는 뜻이다. 불교 신화에 따르면 제석천이 사는 선견성(善見城) 위의 하늘을 덮고 있는 보석그물로서, 그물코마다 보배구슬이 박혀 있고, 하나의 구슬마다 다른 모든 구슬의 영상이 비치며, 구슬마다에서 나오는 빛들이 무수히 겹치며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이는 개체는 전체이고, 전체는 개체 속에 존재한다는 상의상관성을 상징하며, 나아가서 절실하게 자신을 아는 개체는 전체를 안다고 하는 불교철학을 상징한다. 즉, 끊임없이 서로 연결돼 온 세상으로 퍼지는 법의 세계를 뜻하는 말이고, 중중무진(重重無盡)이란 말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화엄철학에서는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이라고 해서 부처가 온 세상 구석구석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이 되고 있다.
* 인로왕보살` 引路王菩薩 -- 죽은 사람을 극락세계로 안내하는 보살.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죽은 사람이 타는 가마인 영가(靈駕)를 놓는 영가단이 있고, 그 뒤편에 탱화가 걸려 있다. 인로왕보살은 이 탱화 속에 등장해 죽은 이를 극락으로 인도하고 있다.
* 인명` 因明 산스크리트어 hetu-vidy = 5∼6세기경에 성립한 불교논리학, 논증의 근거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인도의 불교도들은 인도의 학문을 내명(內明) ? 의방명(醫方明) ? 인명(因明) ? 성명(聲明) ? 공교명(工巧明) 등의 5명(五明)으로 분류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명이다. 인(因 hetu)이란 논증의 형식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원인을 뜻하는데, 이것은 논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불교에서는 논리학을 인(因)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인명이라 했다.
인도의 논리학은 니아야(Ny?ya)학파와 불교에 의해 체계화됐다고 볼 수 있으나 중국 등지에서는 특히 불교논리학을 인명이라 부른다. 그전에는 세친(世親) 등이 체계적인 논리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후 논리학을 집대성한 사람이 디그나가(Dign?ga 陳那:400∼480?)이다. 그러므로 디그나가 이전의 불교논리학을 고(古)인명, 그 이후를 신(新)인명이라 한다. 이러한 인명에는 유가행유식학(瑜伽行唯識學)의 인식론이 기반이 됐으며, 그 기반 위에서 불교논리학이 발전했다.
* 인상` 人相 -- 4상(四相)의 하나. 부파불교 당시 독자부(犢子部)에서 윤회의 주체라고 주장한 뿌드갈라(pudgala)를 말한다. → 개아(個我), 사상(四相)
* 인아견` 人我見 -- 사람의 몸과 마음속에 불변하는 실체(본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 마음의 진여를 회복하고자 하는 수행에 있어서 금기해야 할 사항은 그릇된 고집, 즉 사집(邪執)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집은 모두가 ‘나’라는 생각에서 생긴다. 이를 아견(我見)이라 하는데 이 아견을 다시 인아견(人我見)과 법아견(法我見)을 나눈다. 인아견이란 한 인간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믿는 고집을 말하며, 법아견은 하나의 사물 그 자체의 존재를 믿는 고집을 말한다.
* 인연화합` 因緣和合 -- 사물의 생몰변화라는 현상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는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우리는 불교 경전에 자주 나타나는 우유의 변화를 예로 보자. 즉, 우유를 발효하면 낙(酪)이 되고 낙은 소(?)가 되고 소는 제호(醍?)가 된다. 요즘 말로하면, 우유가 치스가 되고 버터가 되는 것과 같다.
이때 치즈나 버터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유에 발효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유에 발효 조건을 갖추어 주는 일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인위적 작용이다. 따라서 그것은 주체적 인간의 업인(業因)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학적 원인만으로는 치즈나 버터가 될 충분한 조건이 되지 못한다. 발효조건은 있지만 우유가 없으면 안 된다. 따라서 치즈나 버터가 발생하는 데에는 발효조건을 갖춰주는 동력인(動力因) 외에 다시 또 하나의 조건 즉 우유라는 질료인(質料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질료인을 불교에서는 ‘연(緣, pratyaya)’이라고 부른다. 우유에 연하여 치즈나 버터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사물의 변화에는 이렇게 원인과 연의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 두 조건이 갖추어짐을 불교에서는 인과 연의 화합이라고 부른다.
불교의 이런 인연화합설은 인간의 성패를 해명하는 원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외연(外緣)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뜻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당사자의 자발적인 노력이 없을 때는 성공 또한 기대될 수 없다. 따라서 인과 연이 잘 화합해야만 좋은 과(果)를 얻을 수 있다.
* 인왕` 仁王 -- 사찰 문이나 불전의 입구, 또는 불상의 좌우, 탑의 문 등을 지키는 한 쌍의 수호신 흔히 금강역사(金剛力士) ? 이왕(二王) 등으로도 불리며, 원래는 인도에서 문을 지키는 신이었는데, 불교에서도 받아들여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변했다.
* 인왕경` 仁王經 -- 원명은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인데 줄여서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또는 인왕경(仁王經)이라고 한다. 호국경(護國經)으로서 국가의 안녕을 빌기 위한 불경.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역한 <인왕반야바라밀경>을 구역(舊譯)이라 하고, 불공(不空)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을 신역(新譯)이라 한다.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있다.
* 인천` 人天 -- 인간과 신(神). 인간계와 천상계의 중생을 말한다.
* 인천안목` 人天眼目 -- 송나라 시대(1189년) 승려 회암 지소(晦庵智昭)가 당시 중국 선종의 위앙종(?仰宗),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 등 오종의 조사들의 행적과 기본사상 언구(言句)를 요약해 편집한 책으로 우리나라 선가(禪家)에서도 많이 읽히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공민왕 6년(1357)에 원나라에서 활동하던 강금강(姜金剛)이 이 책을 간행했던 것을 원본으로 삼아, 조선 태조 4년(1395)에 무학(無學)대사가 회암사에서 다시 새겨 펴낸 적이 있다(보물 제1094호).
* 인행` 因行 -- 원인이 되는 행위. 선인선과(善因善果)라 했을 때, 선과의 인행이 선행이다.
* 일경사심` 一境四心 --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법문이 있다. 똑같은 물이라도, 사람이 보면 물이지만, 하늘이 보면 장엄한 보배유리 대지고, 아귀한테는 흥건한 피고름이며, 물고기한테는 집이란다. 한 마리의 개를 두고, 부처님은 중생이라 하고, 사람은 개라 하고, 개는 동료라 하고, 강아지는 어미라 한다. 이와 같이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 → 일수사견(一水四見)
* 일광보살 월광보살 = 두 보살은 약사여래의 협시보살이다. 일광보살은 태양처럼 사람들의 번뇌를 비추어주고 무지의 어둠을 쳐부수는 지혜를 상징하면서 일륜(日輪)이 들어 있는 보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월광보살은 달빛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것처럼 자애로운 마음을 상징하며 월륜(月輪)이 들어있는 보관을 쓰고 있다.
* 일념` 一念 = 일념에는 대체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서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짧은 순간의 생각이라는 말로 쓴다.
전자의 경우, 한결같은 마음, 지극한 마음, 또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뜻한다. 한곳에 집중해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오로지 한 가지에 몰두하는 마음을 말한다. 마음을 한군데로 모은다는 것인데, 무엇을 하든 자기가 정한 방편을 일념으로 하는 자가 도를 이룬다.
후자는 주로 불교에서 짧은 순간의 한 생각을 이르는 말이다. 아주 짧은 순간에도 중생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고통도 되고 즐거움도 되며, 지옥과 극락이 나뉘기도 한다. 따라서 짧은 순간의 생각도 매우 귀중하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 삶을 이루고, 다음 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한 생각’
* 일대사인연` 一大事因緣 -- 부처님이 극히 중대한 일을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말인데, 여기서 중대한 일[일대사(一大事)]이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부처가 인연을 맺어 세상에 나타나서 교화하는 일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일체 중생들을 위해 진리의 문을 열기 위해서 오셨으며(開),
일체 중생들에게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오셨으며(示),
일체 중생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오셨으며(悟),
일체 중생들에게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入) 오신 것이다. 이 넷을 줄여서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하는데, 법화경의 핵심 내용이다.
* 일련종` 一連宗 = 일본 니치렌(一連, 1222∼1282년)이 창시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본 천태종의 성지로 유명한 히에이산(比叡山)에서 10년 동안 천태교의와 수행을 닦은 후, 대승경전인 <법화경>의 신앙을 일본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일련종을 개창했다.
그의 저서 <입정안국론(入正安國論)>에서 주종(主從)의 도덕, 조상과 부모에 대한 보은, 군주의 은혜, 아랫사람에 대한 보은을 강조해 오늘날의 군국주의 색채의 밑바탕이 됐다. 그의 재가신도에는 지방의 무사계급과 여성신도가 많았고, 오늘날 창가학회(創價學會)가 바로 일련종의 지파이다.
* 일면불` 월면불` 日面佛 月面佛 -- <불명경(佛名經)>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말이다. 월면이라는 이름의 부처는 수명이 일일일야(一日一夜)이고, 일면이라는 부처의 수명은 1,800세라고 씌어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도인이라 일컬어지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가 병상에 눕자, 원주가 문안을 왔다.
“스님 요즘 건강이 어떠하십니까?”라는 문안 인사에 대한 대답이 “일면불 월면불이야!”였다. 이 말은 병이 나아 1,800년을 살아도 좋고, 병이 악화돼 ‘밤새 안녕!’ 해도 좋다는 뜻이다. 즉 죽음을 초탈한 생사일여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 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 의상대사의 <화엄경 법성게(法性偈)>에 나오는 말이다. 작은 티끌 하나 속에도 시방세계(우주)가 다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에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가 있다. 일체의 각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포함돼 있고, 그 시방세계의 티끌 속에도 또 다른 시방세계인 무한한 우주가 펼쳐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우주는 무한해서 끝이 없다는 것이다.
→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
* 일법인` 一法印 -- 대승불교에서 설하는 단 하나의 특징이란 말.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곧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뜻한다.
소승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인(涅槃寂靜)의 삼법인에 대해 대승불교에서는 제법실상(모든 것이 그대로 진실이다)의 일법인(一法印) 곧 일실상인(一實相印)만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부처님의 일법인이라 할 수 있는 “제법무아”론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
* 일병식재` 一病息災 -- 하나의 병을 가진 사람이 그 병을 다스리기 위해 음식조절, 운동 등 자기절제를 통해 몸을 다스리는 덕에 다른 질병도 모두 다스리게 돼 장수하게 된다는 말이다.
* 일불승` 一佛乘 -- 일승(一乘)이라고도 한다.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뜻한다. 일불승이란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의 유일한 가르침이란 뜻이다. 결국 모든 가르침이 일체중생을 부처님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한 가르침 하나라는 뜻이다.
불교에는 가르침이 참으로 다양하다. 석존은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 탈것(가르침)을 설하며 교시했다. 흔히 표현하기를 8만 4천 근기에 따른 8만 4천 법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가르침도 결국은 깨달음이라고 하는 하나의 종점에 귀결된다. 어쩔 수 없어서 근기를 따라 각양각색의 법을 펼쳐놓았지만 사실인즉 모두가 부처님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것이 종점이다. 그 게 일불승이다.
알고 보면 그것이 또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무수한 생을 거듭하면서 수행한다는 것은 부처님으로 출발해 끝내 부처님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달리 다른 일은 없다. 처음도 부처님이요, 중간도 부처님이요, 끝도 부처님이다. 오직 부처님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법화경>에서 말한 ‘유유 일불승 무이역무삼(唯有一佛乘 無二亦無三)’으로서 법화경의 종지(宗旨)이며, 대승불교의 핵심이고, 불교의 최고 종지인 일불사상이다.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의 유일한 가르침. 일불승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모든 가르침이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부처님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 일승(一乘, Ekayana)
* 일상관` 日想觀 -- 지는 해를 보고 서쪽에 있는 극락정토를 생각하는 수행법. 16관의 하나. 관상염불의 첫 단계라 해서 제1관이라 하기도 한다. 지는 해를 보고 서쪽에 있는 극락정토를 관상(觀想)하는 방법이다. 수행에 함에 있어서 지관(止觀)을 통해서만 깨달음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지관이 쉽지 않아서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오게 됐다. 묵조, 화두, 진언, 절, 사경 등이 등장했지만 어느 것도 온전치 못해 더러 기복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헌데 관상염불의 관법은 모두 형상을 보여 수행하도록 하는데, 형상을 상상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다고 한다. 일상관은 정토사상에서의 ‘서쪽’, ‘광명’ 등과 관련해 선택된 방법인 듯하다.
석존과 같은 시대에 인도 마가다(Magadha)국에서 아사세(阿?世) 태자가 그 부왕인 빈비사라(Bimbisara)왕을 옥에 가두어 죽이는 참극이 있었다. 이에 절망한 빈비사라왕의 비인 위제희부인(韋提希夫人)이 부처님께 아미타불의 정토를 기원하는 바, 부처님께서 위제희부인에게 아미타불의 정토를 관상하는 방법을 <관무량수경>에서 제1관인 일상관(日想觀)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위제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비롯한 중생들은 응당히 오로지 한 마음으로 생각을 한 곳에 머물게 하여 서쪽 방향을 생각하라. 어떻게 상(想)을 지을 것인가? 무릇 상을 짓는다는 것은 일체중생이 자신이 눈먼자가 아니고 눈이 있는 무리는 모두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아라. 마땅히 상상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바르게 앉아 서쪽으로 향하고, 해가 지려고 하는 곳을 자세히 관하라. 마음을 견고하게 머물러서 오로지 상상하고 움직이지 마라. 해가 지려는 것을 볼 때는 그 모습이 북을 걸어 둔 것처럼 하여라. 이미 해를 보았으면, 눈을 감거나 눈을 뜨거나 모두 명료하게 하여라. 이것을 일상(日想)이라 하고, 초관(初觀)이라 이름한다”하셨다. 이러한 것을, 해를 관하는 일상관(日想觀)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일상관을 보이신 뜻은, 중생으로 하여금 정토의 경계를 알고, 마음을 머물게 하고자, 방위를 가리켜 일정한 위치를 둔 것이다. 겨울과 여름의 두 계절을 취하지 않고, 오직 봄 가을 두 계절을 취한 것은 해가 정동(正東)에서 떠 올라 곧게 서쪽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정토는 해가 지는 곳이며 똑바로 서쪽으로 향하여 10만억국토를 지나서 있다.
일상을 관하는 자세
1) 처음에 마음을 머물게 하려는 때에는 가부좌로 바르게 앉는다.
2) 오른 다리를 왼 허벅다리 위에 놓고 밖으로 나란히 한다.
3) 왼손을 오른손 바닦 위에 놓고 몸을 바르고 곧게 세운다.
4) 입과 치아를 합하되 꽉 다물지 않는다.
5) 혀는 윗잇몸에 기대는데 목구멍과 코 중간의 기도(氣道)가 잘 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일상삼매` 一相三昧 = 일상삼매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상을 떠난 것을 가리킨다. 중생들은 이분적(二分的) 사고(思考) 속에 살고 있다. 많다 적다, 있다 없다, 더럽다 깨끗하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고통의 원인이 된다. 흔히 말하는 상대적 빈곤감이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서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마음의 벽(이분적 사고)을 깨나갈 적에 마음의 벽이 무너진 만큼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이와 같이 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다 걷어내고 마음의 벽이 온전히 다 무너져 너와 내가 없는 하나가 됐을 때를 일상삼매(一相三昧)라고 한다. 즉, 모든 현상이 평등해 하나의 모습임을 주시하는 삼매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삼매의 상태가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지속되는 상태가 일행삼매(一行三昧)이다.
즉 일상삼매의 마음을 온전히 유지 할 적에 일행삼매라고 한다. → 일행삼매 (一行三昧)
* 일수사견` 一水四見 = 일경사심(一境四心)과 비슷한 말.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표상일 따름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내 마음에 비추어져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러니 보는 이마다 그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이므로 같은 물이지만, 천계(天界)에 사는 신(神)은 유리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자기 집으로 본다는 뜻이다. 유식론(唯識論)에서 잘 인용되는 말로서, 같은 대상이지만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각 견해가 다름을 비유한 말이다. → 일경사심(一境四心)
* 일승` 一乘, Ekayana = 일불승(一佛乘)과 같은 말. 소승 불교에서의 성문승(聲聞乘) ? 연각승(緣覺乘) ? 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에 대해서 대승 불교가 스스로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에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을 모아 가지고 성불이라는 일승불로 나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일승(一乘)이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유일(唯一)하니 이 가르침에 의해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성불한다는 것이며, 3승은 중생의 성질과 능력에 응해 성문 ? 연각 ? 보살에 각각 고유한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일승(무상대도)이 진실이요, 2승 3승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일불승에 이르게 해 성불하게 하는 방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 일불승(一佛乘)
* 일승사상` 一乘思想 = 일승(一乘)이란 말은 <법화경>에서 본격적으로 강조된 개념으로 성문 ? 연각 ? 보살들은 하나의 커다란 수레[일승(一乘)]로 귀일하게 된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은 방편이고, 일승은 진실이라 하셨다. 즉, 세존이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에는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했지만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국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이 바로 일승사상이다.
여타의 대승경전에서는 성문 연각 등의 소승 성자들은 보살보다 한 단계 낮게 취급해 차별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었는데, <법화경>에서는 이들을 모두 일승으로 포섭한 것이다. 일승, 그것은 모든 차별과 계급의식을 떠난 커다란 하나 됨이다.
* 일승원교` 一乘圓敎 = 화엄종에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원만하고 완전한 가르침을 뜻한다. 곧 <법화경> <화엄경>의 궁극적인 가르침을 말한다.
* 일심` 一心 = ‘일심’을 일반적으로는 마음을 집중해, 한 마음으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일념(一念)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지만 불교에서는 보다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심’에 대한 불교적 해석도 종파에 따라 다소 다르다지만 대개 화엄종의 일심사상을 따르고 있다.
<화엄경 10권, 야천궁보살설게품>에 “삼계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이루어졌고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다. 마음과 부처, 중생, 이 세 가지에는 차별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즉, 마음이 만유의 본질이며 블, 중생,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삼계는 오직 마음(일심)에서 이루어졌고, 마음 밖에서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다. 이는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화엄경>의 중심 사상으로서, 일체 제법(모든 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대승기신론에서 하나의 마음(一心)이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진여문(眞如門)은 변치 않는 ‘본마음’이고, 생멸문(生滅門)은 육근이 육경과 부딪칠 때 생멸하는 마음으로서 ‘아뢰야식’에 저장되고, 이는 번뇌 망상과 같은 마음이어서 ‘세세생생’ 윤회하는 원인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윤회를 그치려면 아뢰야식에 저장돼 있는 마음의 찌꺼기들을 비워 내야 한다. 그렇게 아뢰야식이 ‘텅텅’ 비게 됐을 때, 즉 더 이상 생멸하는 번뇌 망상이 끊어졌을 때, 진여의 마음과 같아지기 때문에 결국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삼계란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세 가지, 즉 불 ? 중생 ? 마음을 말한다.
* 일심사상` 一心思想 = 원효대사가 주장한 바, 일심사상은 그의 저서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등 모든 저술에서 철저하게 천명되고 있다. 원효대사는 불교 안의 여러 사상과 주장들을 모두 ‘한마을(一心)’의 발현으로 보고, 그 발현의 여러 양상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통합하려 했다. 이것이 종파주의적인 방향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會通)시키려 한 화쟁사상(和諍思想)과 맥을 같이 한다.
원효는 일심사상에서 인간의 심식(心識)을 깊이 통찰해 본각(本覺)으로 돌아가는 것, 즉 귀일심원(歸一心源: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설정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일심사상이란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의 진리를 향해 있다는 말이다. 실 끝에 돌을 매달아 그 줄을 잡고 돌리면 그 중심이 우리 몸이 되는 것처럼 모든 진리도 결국엔 하나로 향하게 된다는 그런 뜻이다.
불교에서 만물의 근본적인 이치가 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일심이고, 사람의 마음과 물건까지 모두 하나의 근본적인 이치와 진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일심의 특징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還歸一心)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의 강조’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인간만을 중시하지 않으며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다는 그런 화합정신도 보인다.
* 일심삼관법` 一心三觀法 = 용수(龍樹)가 확립한 삼관의 법은 중국으로 전해져서 천태지관(天台止觀)의 모태가 됐다. 그리고 이에 바탕 해 수나라 때 천태지자(天台智者, 538-597)가 세운 천태삼관(天台三觀)을 ‘일심삼관’이라 일컫는다.
일심삼관은 공(空), 가(假), 중(中) 세 가지의 진리를 한마음 가운데서 원만하게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관(中觀)의 3관이 일념 속에 즉성(卽成)됨을 뜻한다. 이 삼관법(三觀法)은 천태종의 기본교의이며 중요한 수행문인 것이다.
- 공관(空觀)이란 현상계의 일체법은 다 실체가 없는 공이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우리들의 번뇌 또한 그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이라고 관해 마음의 본바탕인 불성(佛性)을 깨닫고자 함을 말한다.
- 가관(假觀)이란, 현상계의 차별성에 대한 진리를 달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공의 진리에만 국한해 있으면 이것은 소승 나한도(小乘羅漢道)에 불과한 것이다. 즉 공의 원리밖에 모르는 데 떨어진 낙공(落空)의 경지에 불과한 것으로서 미완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중생계와 현상계의 일체법을 달관하고 대승의 진리인 보살도를 성취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관(假觀)이다.
- 중관이란, 불교의 최후 구경의 진리는 공의 진리와 가(假)의 진리를 별개적으로 체득하는 것이 아니고, 공(空)과 가(假)는 둘인 듯 하나이고 하나인 듯 둘의 원리를 체득하는 데에 있다. 이것이 붓다 구경의 가르침인 중도(中道)이며 중관인 것이다.
용수(龍樹)가 제창한 대승불교는 ‘대승선(大乘禪)’이라고 하는 수행체계를 바탕으로 해서 세워졌다. 대승선의 핵심이 바로 ‘중관(中觀)’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中道)’에 입각해서 세워진 관법이다. 중(中)이란 근본을 여의지 않으면서도 경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자리를 말한다. 중의 자리는 본래 갖추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 이는 세워서 갖추어야 하는 자리이다. 중관이란, 그렇게 갖추어진 중의 자리를 관하는 것이다.
※ 천태종의 일심삼관법과 원각경의 삼관법의 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공관(空觀) - 정관(靜觀)
가관(假觀) - 환관(幻觀)
중관(中觀) - 적관(寂觀)
* 일야현자` 一夜賢者 -- 부처님 10대 제자 중 논의 제일이라는 마하가전연(迦?延, 산스크리트어 깟짜나, k?ty?yana) 존자가 부처님 게송을 해설한 내용 -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것을 그것이 있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해라. 흔들림 없이, 동요하는 일 없이 잘 살펴서 실천해라.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라.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올 지 그 누가 알겠는가. 실로 죽음의 대군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이와 같이 잘 알아서, 마음을 다해 밤낮으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실천하는 자, 이를 일야현자(一夜賢者 - 밤사이에 현명해진 사람)라고 한다. 또한 고요한 분 성자라 한다.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을 그 안색은 생기에 넘쳐 맑아진다. 오지 않은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 중부경전(中部經典=Majjhima-nikaya 맛지마 니까야)의 제131경 <일야현선경(一夜賢善經, Bhaddekaratta-sutta)>”
세상 사람들의 번뇌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오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과 망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허송세월하며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의 글이다. 한번 가버린 과거사나 아직 오지도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걱정 근심을 앞당기지 말라는 것이다.
* 일원상` 一圓相 -- 일원상은 부처님의 마음자리를 표현함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이 둥글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은 오직 청정원만(淸淨圓滿) 하시므로 그것을 원형으로 표시했다. 또한 일원상은 부처님의 마음인 동시에 근본 심체(心體)이다. 결국 차별도 대립도 없는 절대 평등의 진여의 상, 지혜, 진리, 참 자아를 상징한다.
이 일원상은 6조 혜능(慧能) 선사의 제자인 남양 혜충(南陽 慧忠, ?~775)국사께서 항상 원을 그려 학인들에게 도를 깨닫는 방편으로 삼은 데에서 연유하고 있다. 그리고 원불교(圓佛敎) 교리의 궁극적인 표현을 일컫기도 한다.
* 일일시호일` 日日是好日 -- "날마다 좋은날이 되소서"라는 뜻. 중국 당나라 고승인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께서 하신 말씀이다.
* 일종식 (一種食) --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을 말함.
* 일주문 (一柱門) -- 절 입구의 첫 문을 일주문이라 한다. 기둥 넷이 일렬로 서있는 위에 정교한 건축이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역학적으로 중심의 힘을 이용해 절대의 건축미를 살린 특유의 양식이다. 이 문의 뜻은 ‘一’이라는 데에 있다.
불교에서는 우주 만유를 일심(一心)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며, 법계(法界) 전체를 일심의 그림자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화엄경에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으며,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고,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일심에서 일어난 현상이라 결론짓는 것이 불교의 본질인 것이다. 이 문을 경계로 해서 문밖을 속계(俗界)라 한다면 문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설 때 일심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가지도록 하는 마음을 촉진시키는데 그 뜻이 있다.
* 일즉일체` 一卽一切 다즉일` 多卽一, = 의상대사의 <화엄경> 법성게(法性偈)에 나오는 말.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여럿이 곧 하나라는 말이다.
* 일체법` 一切法, 諸法, 팔리어 sabbe dhamma -- 일체법이란 일체의 존재, 모든 존재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초기 경전에서 법(法, dhamma)을 크게 둘로 나누어 정리를 해서,
1) 부처님 가르침[진리=덕행]으로서의 법과
2) 정신적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법[개념이 아닌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으로서의 법을 주석서에서는 불법(佛法, Buddha-dhamma)이라 부르고, 정신적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법을 일체법(一切法, 諸法, sabbe dhamma)이라 한다. 헌데 부처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는 모두 일체법으로 정리가 되기 때문에 <금강경>은 ‘일체법이 곧 불법(一切法 皆是佛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법’을 ‘일체법(一切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일체법에 대한 법문은 조금 다르다. 즉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왓차곳따가 여쭈었다.
“고따마시여, 이른바 일체법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왓차곳따에게 말씀하셨다.
“눈으로 사물의 형체를 대하게 되면 사물의 형체를 분별하는 안식(眼識)이 생긴다. 귀로 소리를 듣게 되면 그 소리를 분별하는 이식(耳識)이 생기고, 코로 냄새를 맡게 되면 그 냄새를 분별하는 비식(鼻識)이 생긴다. 혀가 맛을 대하게 되면 그 맛을 분별하는 미식(味識)이 생기며, 피부가 촉을 대하게 되면 그 촉감을 분별하는 신식(身識)이 생긴다.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것들을 분별하는 의식이 생긴다. 이처럼 우리의 내적 감각기관이 외적대상을 만날 때 여섯 가지 분별이 생기는데 이때에 좋다 나쁘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는 감각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감각들을 일체법이라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말하는 일체법을 부정하고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일체법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언설일 뿐이요, 그것에 대해서 물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혹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 잡아함경 제13권 <321.일체법경>
* 일체종지` 一切種智 -- 현상계의 모든 존재의 각기 다른 모습과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참모습을 알아내는 부처님의 지혜.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최상의 지혜이다. 이것을 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라 하고, 최상의 바르고 원만한 정각을 성취했다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곧 성불이다.
* 일체중생이 개유불성 一切衆生 皆有佛性 --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관찰해 보니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이 이른바 불성(佛性)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이는 또한 우리 모두는 평등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일체함령 개유불성(一切含靈 皆有佛性)과 같은 말이다.
* 일천제` 一闡提 산스크리트어 잇찬티카, Icchantica -- 이의 본뜻은 ‘욕망을 가진 자’란 말로서, 쾌락주의자나 현세주의자를 가리키는데, 불교에서는 올바른 법을 믿지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성불의 소질이나 연이 결여된 자, 불교의 정법을 훼방하고 구원될 희망이 전혀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을 말한다. 결국 ‘선근(善根)을 모두 잘라 버린 자’이다. 그러나 <열반경(涅槃經)>에서는 일체의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고 해서 궁극적으로는 이들도 성불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법상종은 이를 부정하고, 천태종ㆍ화엄종 등 기타 대승의 여러 종은 이를 긍정한다.
* 일행삼매` 一行三昧 -- ‘진여삼매(眞如三昧)’ 또는 ‘일상삼매(一相三昧)’라고도 하는데,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써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평등한 모습을 주시하는 삼매. 모든 현상은 평등해 하나의 모습임을 주시하는 삼매를 말한다.
중생들은 이분적 사고(思考) 속에 살고 있다. 많다 적다, 있다 없다, 더럽다 깨끗하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고통의 원인이 된다. 흔히 말하는 상대적 빈곤감이다. 이러한 분별을 떠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상을 떠난 것을 일상삼매라 하는데, 이러한 일상삼매의 상태가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지속되는 상태가 일행삼매(一行三昧)이다. 즉 일상삼매의 마음을 온전히 유지 할 적에 일행삼매라고 한다.
육조단경 정혜품(六祖壇經 定慧品)에 나오는 말을 살펴보자. “가고 멈추고 앉고 눕고 간에 항상 곧은 마음을 쓰는 일이 일행삼매이다. 절을 할 때에는 그저 절만 해야 한다. 앉아 있을 때에는 그저 앉아 있기만 해야 한다. 사물을 바라볼 때 역시 그저 바라보아야만 한다. 이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행동을 할지라도 항상 직심을 행하는 것이다.” → 일상삼매(一相三昧)
* 임서기` 林棲期 -- 노년기에는 산림에 은둔해 명상의 생활을 하는 행복한 시기. 브라만교에서는 바라문이 평생 동안 밟아야 할 단계가 규정돼 있었는데 학생기[범행기(梵行期), 25세 전], 가주기(家住期, 가장기, 26세-50세), 임서기(林棲期, 51세-75세), 유행기(遊行期, 76세 이후)의 네 가지 시기로 구분했다.
* 임제의현` 臨濟義玄, ?~867 = 당나라 시대의 선승으로 임제종(臨濟宗)의 개조이다. 그의 문하에 유수한 승려가 많이 배출됐다. 임제종의 근본 경전이고, 임제대사의 어록집인 <임제록(臨濟錄)>은 제자 혜연(慧然)이 엮었으며, 예로부터 선(禪)을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애독한 책이다.
6조 혜능의 제자가 남악 회양(南岳懷讓)이고, 남악 아래 마조(馬祖) 선사, 그 아래 백장(百丈), 그리고 백장 선사 밑에 황벽(黃檗) 선사인데, 바로 그 아래가 임제 선사이다. 모두 도인 가운데 으뜸가는 도인이요, 밝은 도안(道眼)을 갖추신 분들이다.
어느 젊은 수좌가 그에게 물었다. “스님 진정한 불법이란 무엇입니까?” 이 말을 들은 임제는 그 수좌의 뺨을 갈겼다. ‘철썩’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를 밀어 땅바닥으로 처박았다. 이것을 본 다른 수좌들이 맞은 수좌에게 말했다.
“자네는 높은 법문을 듣고도 왜 절을 하지 않았느냐?” 높은 법문이란 바로 ‘철썩’하는 소리였다. 진정한 법문이란 ‘있는 그대로’란 뜻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공자를 만나면 공자를 죽여라.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얽매이지 말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살아라.’
임제선사가 주장한 선(禪)이란 이념이나 사상, 진리 등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것을 강력히 배제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얻고자 애를 쓰지만 곧 그 마음이 변하기 때문에 그런 집착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은 생각의 중지, 마음의 비움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갖 망상과 부질없는 생각들을 내려놓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선이다.
* 임제종` 臨濟宗 -- 당나라 시대의 선승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을 개조로 하는 종파.
* 입보리행론 入菩提行論 -- 인도의 불교학자 적천(寂天, 산티데바/Santideva, 7∼8세기경)의 저술로 전해진다. 그러나 10세기에 천식재(天息災)가 번역한 한역본에는 용수(龍樹)가 지은 것으로 돼 있다. 총 4권 8품으로 구성된 이 경은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보살들이 닦는 여러 가지 불도, 즉 6바라밀에 대해 설법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시(詩)로 돼 있으며 후기 대승불교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티베트에서 애송돼 현존하는 주석서만도 8종이나 된다. 티베트본 제목은 <입보살행(入菩薩行)>이고, 한역본은 <보리행경(菩提行經)>이라 한다.
* 입법계품` 入法界品 -- 화엄경의 마지막 품이다. 선재동자가 남방으로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도를 구해 법계의 이치를 터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60권 화엄경에서는 제44권 이하이며, 80권 화엄경에서는 제61권 이하이다.
* 입설단비` 立雪斷臂 = 2조 혜가(慧可)가 눈 속에서 서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했다는 말. 혜가가 달마선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대사는 오로지 벽을 마주하고 수행만 할 뿐 외면하므로, 큰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밤 그는 눈 속에 서서 왼팔을 잘라 구도의 결연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드디어 달마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 입승` 立繩 스님 = 절에서 대중의 기강을 맡은 직책. 대중의 진퇴와 행동을 지시하는 소임. 새벽 법당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입승이 세 번 죽비를 친다. 이 죽비 소리를 신호로 입선(入禪)을 한다.
* 잇찬티카’ Icchantika → 일천제(一闡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