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누가복음 11 : 5 - 13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모법적인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비유를 통하여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실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한 것을 응답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20대 초반에 중생을 체험하고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새벽종을 쳤습니다. 교회 가까이 사시는 집사님이 새벽마다 종을 치는 것을 제가 몇 달 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전기도 없고, 교회당 벽에 시계가 있었지만 태업을 감아야 돌아가는 시계라 자주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별을 보고 종을 치기도 했는데 한번은 초저녁에 일찍 자고 일어나 구름이 가려서 별도 보이지 않아서 대충 시간을 짐작하여 종을 쳤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날 목사님이 1시쯤 종을 쳤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일이 잘 된다고 믿고 기도했는데도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일이 꼬이고 잘 안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시험이 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응답받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내 뿐 아니라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는 많은 성도들이 느끼는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법적인 기도를 가르친 후 곧 바로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실성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밤중에 벗이 왔는데 대접할 떡이 없어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닫혔고 아들들도 잠들었고 나도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계속하여 문들 두드리며 간청함으로 인하여 일어나 요구대로 떡을 주었다는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곧 바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9,10).
기도는 자신의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한두 번 정도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얻을 때까지 계속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밤중에 찾아온 친구에게 먹일 것이 없어 이웃집 잠자는 친구에게 떡 세 덩이를 꾸어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어려운 문제를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기도는 나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도와 달라고 구하는 친구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도와달라고 하는 것처럼 기도 역시 한두 번 구하고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것’은 필요한 것을 겸손히 청원하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찾으라’는 말씀은 구한 것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구하고 찾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였다면 기도한 것만큼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구한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허공을 치는 기도가 될 것 입니다. 불교인들이 절에 가는 날은 아침 식사도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가는 차 안에서도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갑니다. 그래서 부처 앞에 지극정성을 드려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취하고 춤추며 노래합니다. 기도하기 전과 기도한 후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는 기도한 후 기도한 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보다 기도한 후가 더 중요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기도한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하고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찾으라’는 말씀은 내가 구한 것을 하나님은 얼마든지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만약 그 친구에게도 떡이 없다면 더 이상 그 친구에게 떡을 달라고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님은 과연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지 못하면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한 것을 얼마든지 해결 줄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내 문제를 해결 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어느 정도 믿느냐,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이 자신이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울며 기도하고 교회당을 나가면서 ‘하나님도 내 속을 몰라’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해 봐도 자신의 문제가 너무 어렵고 커서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도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는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문제쯤은 얼마든지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해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찾아야 합니다.
‘찾으라’는 말씀은 또한 내가 구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해서 구했지만 어쩌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구한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응답을 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마26:39). 오늘 우리의 기도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원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를 합니다. 아버지의 원은 생각하지 않고 내 원대로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기도한 것이 아버지의 원대로 합당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아는 것이 곧 기도하고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곧 바로 기도를 고쳐서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구하는 것은 이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의심없이 믿을 수 있을 때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내가 구한 것이 응답되기를 믿고 포기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있는 분이심을 조금도 의심없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떡을 구하는 친구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떡을 줄 수 없노라고 했지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친구의 간청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떡을 주었습니다. 계속 떡을 주지 않으면 그날 밤 잠은 잘 수 없을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까지도 잠을 깨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이와 같은 벗으로 비유하셨는지 납득이 잘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것은 기도는 몇 번하고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하라는 교훈으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시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간청하므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즉시 응답하시기도 하지만 응답을 더디 하시기도 합니다. 응답을 하시기 전에 시험을 하십니다. 얼마나 믿고 기도하였는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시험이 오면 응답하시겠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기도한 후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귀신 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시고 계속 길을 갑니다. 그래도 여인은 계속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뭐라고 한 마디 해서 보내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도 여인은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 같은 네게는 도와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마15:27).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고 하시며 그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성경 문맥상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그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시고자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응답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여인에게는 축복해 줄 수 없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는 말씀은 그 여인에게는 이겨내기 어려운 시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개와 같이 취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도 개와 같은 취급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까지도 자신을 개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든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자신의 허물을 들추는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옳습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응답을 하시기 전에 자신을 돌이켜 보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친다는 반감을 가진다면 더 이상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응답하시기 전에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므로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분입니다. 어려서 이스라엘은 망하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지만 그래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문을 열어놓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다니엘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니엘에게 허물을 찾아도 찾을 수 없으니까 기도하는 것을 문제로 삼아 왕에게 고발하여 사자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것 때문에 사자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다니엘에게 큰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지는 시험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에게 천사를 보내어 사자의 입을 봉하여 지켜주셨습니다.
사자굴 속에서도 지켜 주실 뿐 아니라 오히려 다니엘을 더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바벨론은 당시 세계 최고로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기도하는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왕은 바뀌어도 총리는 바뀌지 않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총리가 되어 다스리므로 나라가 형통하였습니다(단6:28).
성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요14:14).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응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주님께 구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한 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찾으십시오. 내가 구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은 이루어 주실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구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전에 시험하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을 이기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