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개척교회의 이모저모
어린 시절, 목회에 결정적 영향을 주신 어머니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저는 누나가 두 분이고,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믿는 분이 아니었는데 제천고등학교도 짓고, 면사무소도 맡아서 짓는 등 건축업자로 일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천중앙성결교회의 개척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저를 살려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셨답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라는 생각을 저를 키우셨고, 그래서 누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뭐든지 저를 우선순위에 두십니다. 기도하실 때도 누나들부터 차례대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한 기도를 먼저 하셨고, 손님이 오셨을 때도 저부터 먼저 인사를 시켰고, 하여튼 어머니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것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나에 대한 희망은 언제나 목사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넌 목사가 돼야 하기 때문에 행동이나 말을 조심해야 하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하시는 등 이런 주문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주 싫어서 반발하곤 했습니다.
저는 운동하는 것은 좋아했고, 공부하는 것은 싫어해서 돌아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교 2학년 때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새벽 1시쯤 들어오니까 어머니가 제 방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1시니까 사방이 조용해서 어머니가 기도하시는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 착한 상대'라고 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밖에서 싸우고 돌아왔는데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자 저는 충격을 받고 어머니한테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저는 계속 공부를 못했으니까 대학시험을 봤지만 떨어졌습니다. 그리곤 어찌어찌해서 신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군대 갔다 온 다음에 생각이 변해서 목회를 안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어머니를 설득하기를 "신학교 졸업해도 목회지가 없어 방황하는 선배들을 보십시오. 선배들을 보니까 사례비 3,000원 받기도 하고, 쌀 두 말도 받고, 갈 데가 없어서 방황하는 사정을 보십시오. 그대신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네가 어리고, 그 어려웠던 시절에 주의 종으로 키우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했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이제 정말 세상에 낙이 없다"고 하시면서 허탈해 하셨습니다.
그때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여서 생활이 무척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셨습니다.
요즘에 어머니는 하루에 6시간을 기도하십니다. 제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만큼 목회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인간적으로 따지면 어머니의 공로가 90%라고 해야 할 것같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어머니'라는 글을 한 번 쓰고 싶을 정도로 귀한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시는 자세 때문에 무릎에 굳은살이 생길 만큼 기도하시는데 그분 기도 덕분에 제가 살아가고 있는 것같습니다.
신학교 시절에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에 계시는 이정효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이 전도사, 어머님 건강하신가? 어머님께서 건강하고 살아계실 때 일을 자꾸 벌려" 어머니 기도가 엄청난 걸 아시고 돌아가시면 힘을 못쓴다는 생각에 살아계실 때 일을 많이 하도록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다른 분보다 목회를 잘한다면 90%이상이 어머니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형제들이 모두 효자여서 어머니를 모시려고 하지만 제가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모시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안계시면 허전하고 그분이 계시면 마음이 굉장히 든든함을 느낍니다. 어머님이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시면 저는 빨리 오시라고 전화를 여러번 드릴 정도 입니다. 제게 있어서 어머니는 정신적 지주와도 같으신 분입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고 겨우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영력이 있습니다.
신앙의 어머니를 둔 것은 굉장히 귀한 일입니다. 앞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하려는 사람들은 어머니 역할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기도의 동지가 참으로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머리로 될 것 같지만 목회는 머리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지리도 못났던 어린 시절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간암 선고를 받자 어머니는 아버지 치료를 위해 서울대학병원으로, 어디로, 이리저리 뛰어다니셨습니다. 제법 잘살던 가정형편도 기울어지고 아버지는 결국 6학년 되던 해에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장남이면서도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너무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아버지를 하루에 2시간 이상 안마를 하던 것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너무 좋아 그랬던 것입니다.
가세가 많이 기울었고, 아버지도 돌아가셨지만 어머니 덕분에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때도 특별한 재능도 없었으니까 중학교에서도 별 두드러짐 없이 다녔고, 겨우 입학한 제천고등학교에 가서도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운동부에 있다보니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담배를 배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흥회를 갔는데, 그때 강사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여기 온 사람 중에서 한심스럽게 예배 오기 전에 담배를 피운 사람이 있구먼. 그런데 버릇없게도 학생 녀석이 담배를 피우다니…"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퍼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와 담배를 찢어 버린 다음에 그날부터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일을 참 열심히 했는데, 저는 교회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교회생활을 재미있게 했지만 학교생활을 학교생활대로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고 교회에 오면 거룩한 학생이 되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이상할 정도로 두 셰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
고등학교 2학년 때 가나안농군학교로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김용기 장로님의 강의를 듣고 많은 충격을 받은 후, 교회 철야기도 시간에 간증하는 시간에 어린 제가 나가 목사가 되어 양떼를 돌보는 삶을 살 것을 서원했습니다. 제 간증을 들으신 어머니는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공부습관이 하루 아침에 바뀐 것은 아닙니다. 기초는 없고, 교회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놀기에도 열심을 다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소원한 다음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했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신학교 생활
군대제대를 한 다음에 신학교에 다닐 상황도 아니고 다니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든지, 다른 공부를 할 생각으로 신학교에 복학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느날, 교회 앞에서 나누어 주는 전도지를 받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글귀가 전도지에 쓰여 있었습니다. 늘 보던 전도지인데 그날 그 문구를 보고 다시금 학교로 돌아가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독교교육과 1학년으로 다시 들어가서 공부를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큰 그릇으로 쓰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신학교에 공부했습니다.
특별히 기도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6시부터 새벽기도가 시작되는데 모든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보통 7시 30분에 내려와서 밥 약간 먹고 강의가 시작하기 바로 전까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밤10시 30분부터 11시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후, 기숙사로 돌아와 새벽 2시까지 공부했습니다. 잠을 4시간 이상 잘 수 없었습니다. 제가 늘 실력이 모자랐으니까 2시까지 공부를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일과를 반복하면서 1년을 지냈습니다. 성경을 많이 보려고 노력했고, 기도 제일 많이 하려고 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했고, 하여튼 모든 걸 다하고 싶었던 시절이었고 꿈도 많았습니다. 비록 경제 사정은 엉망이었지만 말입니다. 제천중앙교회에서 보내주는 약간의 선교헌금과 학교에서 받는 장학금으로 생활했는데, 책을 사야 하기 때문에 라면으로 밥을 대신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고마웠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지금 여주 벧엘교회 담임 김명회 목사입니다. 저의 어려운 사정을 아무도 몰랐는데 자신도 어려운 형편에 가끔 저에게 식권을 주면서 밥을 먹게 해주고 헤어질 때면 인사하면서 주머니에 천원, 이천원 넣어주면서 밥 먹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없었으면 더 많이 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의 치유사건
교회를 개척하는 초기에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면서 기도응답을 받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1987년 8월 2일, 새벽 자명종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데, 갑자기 손하나가 나타나서 내 앞에 글씨를 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니라"하더니 예레미야 33장 3절이라는 성경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깜짝 일어나 예레미야 33장3절 말씀을 찾아보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무슨 뜻으로 주신 것일까를 생각하는데, '유정미'라는 청년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유정미 청년은 제가 환상을 보았던 날로부터 정확하게 38일 전에 저에게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이 하는 얘기가 열다섯 살 때부터 축농증을 앓고 있었는데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 축농증 수술비용으로 70만원을 가져오셨는데 그 돈을 헌금을 하고 기도로 축농증을 고쳐보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저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저의 마음에는 헌금을 받고 축농증이 낫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돈을 아버지께 다시 보내드리고 하루에 한 번씩 교회에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리곤 그날부터 아침을 금식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기간 중 38일째에 제가 환상을 본 것이고 39일째 되는 날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대 부속병원 뒷골목에 있는 창신동을 지나면서 사과냄새를 맡게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기뻐하며 더 기도하자고 격려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40일째 되는 그 다음날 오후 5시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펑펑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밥냄새를 맡았다고 말하면서 엉엉 우는데, 이 녀석이 "어머 어떡해, 어떡해"하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 왔습니다. 저와 통화하는 도중에 코에서 고름 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고 축농증이 완치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 나았고 교회에서는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저녁예배 때 간증하게 했습니다. 그때가 교인 30명쯤 모이던 1987년이었습니다.
개척교회를 기피하는 이유
대부분 사람들이 개척교회에 등록을 기피하는 이유는 우선, 목사의 메시지가 약해서 교인들이 힘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다음에는 교회시설이나 여건이 열악한 것이 그 이유가 됩니다. 또 돈 걱정을 해야 합니다. 즉 개척교회는 헌금에 대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교회를 지어야 하고 건축헌금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인들이 물질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척교회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부자가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고,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은 헌금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교회성장에 지장을 줄수 있으므로 돈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러한 목회방침이 우리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교인들과 함께 시작하는 개척교회
아파트 상가로 이사 가면서 교인들을 이끌 만한 평신도 지도자가 있어야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그들 모두를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평신도 지도자 한 명이 이 일을 맡아서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과 한 가정을 세워서 이런 일을 담당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할 것은 좋은 개척멤버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터 왜그너라는 학자도 개척멤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저도 역시 개척멤버가 좋았다면 훨씬 더 부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목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함께 신앙생활을 할 교인들이 어떤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교인들과 함께 시작하는 개척교회는 축복받은 개척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런 상황을 넘어서려고 좋은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이한 사모 역할(?)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모의 입장에 대해서 저는 다른 분들과 조금 색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의 절반은 아내의 얼굴에 친숙하지 않고, 실상 교회 내에서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사모가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교회에서 불편한 일이 생깁니다. 오히려 열심히 없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를 남편으로 섬기고, 목사에게 잘하는 일이 사모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의 아내는 남편과 가족에게 잘하면 되고 그것이 곧 하나님 일입니다. 저는 사모들이 나서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모가 나서서 득이 되는 것도 있지만 손해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준비된 개척교회 목회
지금 와서 선택하라면 개척을 시작하던 그 당시처럼 아무 것도 모른 채 현장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다시 목회 한다면 현장훈련 사역을 더 구체적으로 경험한 다음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목회현장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시 개척한다면, 큰 교회에서 부목사를 하지 않고 100명에서 2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 협동사역을 하다가 개척할 것입니다. 큰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작은 교회에 가면 전혀 맞지 않습니다. 너무 작아도 힘드니까 100명 가량 되는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개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작은 교회, 개척교회의 특성을 잘 알고 거기에 알맞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서 목회하는 것은 우리가 작은 교회, 개척교회를 벗어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무때고 일이 생기면 찾아가 의논할 수 있는 선생님 말입니다. 또 성경을 주기적으로 배울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치유사역과 교회성장
우리 교회는 1992년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로 매 성령강림절에는 성령집회를 합니다. 원래 성서적으로 보면 맥추절이 성령강림 주일인데 우리 실정에는 맥추절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그 점에 착안하여 맥추절 행사를 작게하고 성령강림절을 크게 했고, 그것을 시발로 해서 성령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강대상도 다 치우고 2시간 동안 부흥회를 합니다. 뜨거움과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예배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는 때입니다. 병든자가 직접 고침을 받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성령집회를 하면 보통 때보다 예배인원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이 시점에서 성령집회와 더불어 치유사역이 목회방향을 정하고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치유사역에 치중했고 설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치유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지만 치유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달했던 때입니다. 저는 치유사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치유사역을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즉 1,000명이 낫기를 기도했지만 1명만 나았다고 해서 목회자들이 치유를 향한 열심과 함께 믿음과 기도와 시도를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낫지 않으면 소문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면 소문이 납니다. 저는 치유사역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는 치유사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치유는 교회의 본래 모습이나 교회의 본래 사역에서 결코 멀리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치유야말로 교회가 진정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ACTS)에 진학하여 치유 선교학과를 지원했는데 그 과에는 주로 의사, 간호사, 약사들인데 저는 목사 신분으로 갔습니다. 당시 학과장인 이명수 박사님이 목사들이 이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치유가 무엇인지 윤곽을 잡았고, 계속해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과정을 하는 동안 치유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친구 목사들을 만나면 치유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목사가 교회 내에서 치유에 관심을 갖고 선포하면 영적 권위가 세워진다는 말을 합니다. 이제는 일반 교인들이 목사보다 못배운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목회자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이 결국 영적 권위인데, 그러기 위해서 목사는 치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많이 권면합니다.
목사님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교회 내에서 치유사역을 하신다면 교회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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