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는 딸에게
마라도의 뽀르찌웅꿀라
대연성당 민성기 요셉 신부
부산 대연성당은 1961년 2월 23일 설립되었으니, 새천년이며 대희년인 올해 2000년이 대연성당에게는 마흔 즉 불혹의 나이입니다. 어머니로서 대연성당은 자녀들을 잘 키워 시집 보냈습니다. 여섯 딸을 분가시켜 여섯 곳에 새 가정이 태어나게 하였으니 시집 간 딸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남천주교좌성당(1969. 6. 8)이요, 문현성당(1975. 1. 29), 오륙도성당(1978. 4. 17), 용호성당(1978. 12. 3), 석포성당(1984. 2. 3), 그리고 일광의 삼덕성당(1998. 2. 18)입니다. 자식들 중에는 친정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지지리도 못 사는 자식이 있습니다. 물론 어디로 시집가든 부모 마음이야 편할 리 없겠지만….
그렇게 대연성당이 분가시킨 성당 중에는 남천주교좌성당처럼 출세하여 타의 귀감이 되는 성당이 있는가 하면 보통의 문현성당, 용호성당, 석포성당이 있습니다. 또한 구태여 어려운 고행의 길을 자처하여 나환우 가정으로 시집간 오륙도성당, 삼덕성당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 시집갔을 때의 오륙도성당과 삼덕성당의 살림살이는 참 힘들었지만 시집을 잘 살은 탓인지 이러저러한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한 지금은 성당으로 승격되어 어엿한 어른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집간 장소도 여러 곳입니다. 친정인 대연성당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기도 합니다. 남구 안에서도 같은 대연동에 석포성당을 두고 있고 문현동에 문현성당을, 용호동에 용호성당을 그리고 수영구인 남천동에 남천주교좌성당을 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륙도에 오륙도성당을 그리고 멀리 일광에 삼덕성당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인 대연성당은 자녀들을 잘 낳고 잘 키워 출가시켰으며 자녀들 또한 부모인 대연성당의 영성을 잘 받들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지금 대연성당에서는 또 딸 한 명이 시집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마라도로 시집갈 뽀르찌웅꿀라입니다. 딸이 시집가려하니 혼수도 준비해야하고 살집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힘이 듭니다. 걸리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친정 가까운 곳으로 시집가면 좋으련만 이번에는 멀리 멀리 그것도 섬인 제주도 땅에서도 더 외진 섬인 마라도로 가려합니다. 하필이면 마라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 시집간다는데 어떻게…. 요즈음 자식에게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구태여 그 먼 곳 섬까지 가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말리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둘러대기도 하고 또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고 심지어 윽박지르기도 해보았지만 제가 좋아 가겠다는데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요. 게다가 시댁인 제주교구 쪽에서도 도회지 처녀가 제주도로 그것도 마라도로 시집온다는 소식에 ‘버릇이 없다’, ‘경우에 맞지 않는다’, ‘자존심 상한다’는 등 좋지 않은 풍문과 더불어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딸아이가 모든 것을 감수 인내하고 가겠다는데 어떻게….
자식 바람대로 해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부모 마음 아닌지요? 그래서 솔직히 말하여 요즈음은 딸아이가 살아갈 집이며 혼수감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섬 중의 섬인지라 모든 것이 귀하기에 살아갈 집이며 살림살이들을 이곳 뭍에서 마련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제주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제주도에서 구할 수 있으련마는 그나마도 분위기가 하수상해서…. 어쩌다가 그렇게 먼 마라도까지 시집을 가게 되었느냐고 물을라치면 딸은 천생연분이라고 말합니다.
시집가는 날은 뽀르찌웅꿀라의 생일인 8월 2일입니다. 딸의 손을 잡고 제단 앞으로 나갈 그 날을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련의 일들이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왕 가게 될 시집이라면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갔으면 하는 것이 내 솔직한 바램입니다. 뽀르찌웅꿀라가 자랑스럽습니다. 시집가는 날마저도 착한 뽀르찌웅꿀라의 고운 눈에 굵은 눈물이 떨어지게 해서는 안되겠지요. 시집가는 딸, 시집가는 뽀르찌웅꿀라를 위하여 지금은 조용히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註
이 글은 석포성당 초기 주일학교 교사였으며 석포성당 출신 첫 사제이신 민성기 요셉 신부님의 성모기사紙(2000년 6월호)의 실린 「신학단상」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주1) 뽀르찌웅꿀라 : 프란치스코 성인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성당을 수리한 후 그의 종교적인 생활을 작은 방법으로 시작하고 행복하게 생을 마친 성당
주2) 오륙도성당과 삼덕성당은 설립 당시에는 공소였으나 후에 본당으로 승격되었음.
첫댓글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동안 시집간 딸 중에서 사망한 딸, 오륙도성당(SK뷰아파트로 인해)도 있었고,
새로 낳은 딸, 못골성당도 있었고, 손주도 봤지요.(용호성당에서 이기대성당 출산)
나의 일상의 삶에 견주어보면 오륙도성당의 사라짐은 아우 민요셉 사제의 선종이요,
새로운 성당, 못골성당은 아들과 딸의 혼인성사로 이룬 새로운 성가정이요,
이기대성당은 세공주 예지수원 트리오-손녀딸들이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대연본당의 김효근 신부님도 역대 본당신부님들처럼 많은 딸(?)들을 순산하시길 빕니당.^^*
수도회 소속 성당에서 교구 관내에 딸(?)들을 순산하는 것은 부산교구가 희망하고 바라는 일이지요...
살아 생전에 정명조 당시 교구장님께서 저희 성당 사목방문 오셔서 성당 아래 저 멀리 못골지역을 바라보시면서
성전을 설립하시려고 계획하시고 실천한 산물이지요..
그 결과 대연성당의 교세는 분가하여 줄어들고, 세월이 흘러 다시 하느님께서 빈 곳을 채워주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