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후 모를 내려고 쓸려논 논에서 만난 한마리의 백로(?) 모습이 안스럽기만하다 . 왜 혼자일까? ........ 동강마을 큰다리에서 옛날에 보았던 그 새 한마리를 오늘도 또 만났다.
어린시절 나는 인천 영종도의 백운산 중턱의 산바람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산골에 살았다. 때문에 사실상 섬사람인 나는 바다를 모르는 산(山)사람이라고 표현해야 맞을것이다.
내 어린시절의 추억은 그래서 산에서 놀던 추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도하다. 봄이면 원추리나물, 두릅순 등을 뜯으러 산을 휘돌아 누나와 동생과 다녔고 비가 온 다음날 새벽에는 버섯을 따러 산속을 헤맸으며 그날 아침 바로 따온 송이버섯이나 오이꽃버섯, 아카시아버섯, 밤버섯, 밀버섯, 갓버섯 등이 들어있는 뚝배기의 된장국을 맛있게 한가족이 모여 먹던 정겨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특히 독버섯은 향기와 유혹의 아름다운 모양으로 구분하여 먹어서는 않되는것임도 동네의 어른들의 경험을 통해서 배워 알기도하였다.
정말 그 버섯의 향이야말로 바로 자연의 것이기도했다.
진달래꽃을 뜯어, 먹으면 대단히 독하고 많이 취하는 술을 담그기도 했고 도라지를 캐러 곡괭이를 갖고 백운산을 넘던 생각과 이웃동네의 누나와 형벌인 처녀총각들이 이를 빙자하여 산에서 하모니카를 불어 뽐내며 연애하던 모습들이 어린 나의 눈에는 보기좋기도 하였다.
그이외에 먹음직스런 산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어먹던 생각, 소를 뜯기며 해가 지는줄도 모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던 생각, 독사를 잡아 죽은 나뭇가지로 불을 피워 구어서 친구들과 개구리고기의 맛과 비교하며 먹던 생각등 이루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 덕에 아무런 탈도 없이 다음날을 맞곤했다.
바다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은 온화하고 모나지않은 모습을 나는 그시절에 자연스럽게 만들어가고있었다고 생각한다. 지역별로 사람들의 특성이 따로 있다고하듯이 이말은 그 환경으로 인하여 만들어짐이 맞는것같다. 강원도사람들의 모나지않은 따뜻한 심성에서 보듯이 말이다.
지난 토요일인 5 월 13 일, 나는 내고향 영종을 시간을 내 갔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중 가장 큰 목적은 처가집 울타리에 있는 참죽나무순을 뜯으러 가기위해서였다. 고추모를 옮겨심은후 모내기 이전 매년 행사처럼 맛보던 참죽나무순을 뜯어 무쳐먹던 기억이 올해도 예외없이 나의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울러 식성에따라 그 나물의 향을 싫어하여 먹지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고 나의 처가도 그런부류였기에 나의 욕심은 부담이 없기도했다.
옛날 내가 살던 벌판집에는 참죽나무가 울타리에 20 여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3 학년시절 아버지께서는 집을 새로 지으시면서 이웃집 울타리에서 자라고있는 당시 내키만한 참죽나무 묘목을 옮겨가지고 오셔서는 나를 불러 울타리에 띠엄띠엄 함께 심으셨다.
묘목을 심으시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참죽나무는 조상님 나무란다. 이 나무를 키워 할아버지, 할머니, 그 다음 아버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제일 잘 자란 나무부터 한그루씩 베어내어 칠성판으로 만들어 마지막 가시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단다."
"그것뿐이 아니지. 집이 낡아 새로 지을때나 고칠때 이 참죽나무는 아주 좋은 기둥으로 쓰인단다. 습성이 곧게 자라기도하고 붉은 색의 아름다움은 또한 사각으로 깎아놓으면 아름답기 그지없지....."
그러나 어린 내가 그 뜻을 깊히 이해할수는 없었다. 다만 이후 매년봄 4 - 5 월 요때 쯤이면 아버지는 긴 장대를 준비하여 매년 속성으로 높게 자란 참죽나무순을 제일 위부분만 남기고 옆에 새로난 연한 잎을 떼어내 나물로 만들어 반찬을 만들어 먹곤하였다. 그 연례행사는 매년 빠진적이 없었으며 그 특이한 냄새는 내가 커가는 동안 기억에 배어있었다.
영종엘 간길에 벌판 옛날집의 참죽나무 생각이 나서 잠시 들러보았다. 혹시 남아있으면 내가 좀 딸수도있겠지하는 옛시절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게 우리가족과 함께 자라던 참죽나무는 겨우 2 그루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개짖는 소리만이 이방인으로 위치가 바뀐 나를 가까이 다가가지못하게 하였고 -
아버지와 내가 함께 심어논 이사나올 당시의 우람하게 자란 참죽나무의 기억이 생생한데, 당신이 나에게 조상의 나무라고 말씀하시며 심으시고 그중에 가장 잘자란 실한 참죽나무로 당신이 돌아가셨을때 제일 먼저 동네사람들에게 밑둥을 잘리어 붉은 칠성판으로 깔고 누우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머지의 나무들도 누구의 운명과 함께 생을 다한것일까 한참 생각에 잠기고말았다.
지금의 장례문화는 집에서가 아니라 모두 병원장례예식장에서 치르기에 내집에서 자라는 참죽나무를 베어내야할 일도 없는데 말이었다.
옛날의 참죽나무를 보러갔다가 그 환영만을 그려보았을뿐 쓸쓸히 돌아설수밖에 없었다.
참죽나무순을 반찬으로 오늘 아침 식사를 하면서 끊어진 근 30 여년의 한세월을 그려보았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나와 우리 모든 형제도 고향 동네인 벌판을 모두 떠났고 이제 남은것은 백운산골의 정겨운 삶이 아닌 식탁에 남은 참죽나무의 향기뿐임이 정녕 아쉽고 그리울 뿐이다. |
출처: 허허벌판 원문보기 글쓴이: beolpan
첫댓글 진백이! 자네와 난 여쪌수엾는 촌 놈이네, 내도 참죽나무랑 은가시잎, 물가의 미나리 엄청 좋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