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여는 아침
아날로그 삶이 더 아름답다
우 영 규 (시인· 문학평론가)
이번 주말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푹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주말이 되니 마음은 말 그대로 생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울산 동대산자락에 가면 희귀종 야생화 군락지가 있다는 소중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등산가 한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야생화 말이 나오자 그는 열변을 토했다. 수년 전 울산 동대산과 무룡산 등산길에서 산자락에 핀 야생화 군락지를 보고 너무 아름다워 두 번이나 더 그 산을 다녀왔다는 말을 시작으로 해서 옛날에 화전민 같은 몇 농가가 살면서 양잠(누에고치)을 치다가 너무 외진 곳이어서 방치돼 있었던 곳이라는 말도 덧붙여 해주었다. 울산 북구 무룡산과 동대산 자락, 일명 '기네미골'은 울산에서는 오지로 통한다고 했다.
오지라는 그의 말에 소요시간도 꽤 걸리겠다는 생각에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섰다. 잦은 봄비 탓인지 가는 길 주변은 벌써 봄꽃들이 시선을 멈추게 했다. 물어서 마을입구에 도착했지만, 걸어서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다니 답답했다. 그러나 꼭 눈으로 확인해야 할 야생화가 코앞에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어 단숨에 산길을 올랐다. 얼마의 시간을 걸어왔을까. 눈앞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 바로 여기구나 할 정도로 그가 일러준 그대로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였다. 산자락을 오르다 말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매화꽃이었다. 그것도 한두 그루가 아닌 산비탈 전체를 뒤덮고 있었으니 누군가의 농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숲 속에 매실 밭 한 떼기만 섬처럼 존재하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하다 싶으면서도 조심스럽게 청매화 홍매화가 어우러진 샛길을 걸어 막 빠져나가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디 가세요.’하며 누가 나를 불러 세운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놀라 돌아서서 무작정 인사를 건네며 이곳을 찾아온 사정 얘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더니 혼날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나이 지긋한 부부는 친절하게도 야생화 군락지가 있는 곳을 안내해주었다.
산철쭉 꽃이 막 기지개를 펴는 산 능선 여기저기에 놀랍게도 생명의 존엄을 알리는 신호를 나는 보고 만다. 노랑제비꽃, 각시붓꽃, 괭이밥, 솜나물, 얼레지, 현호색, 꿩의 바람꽃, 노루귀의 환영을 받으며 두어 시간 산자락을 헤매다가 바람꽃 앞에 앉아 가느다란 그의 외다리를 위로하듯 한동안 바라본다. 바람꽃, 너의 처음은 모질고 쓰린 세월이었던가. 슬픈 얼룩이었던가. 내가 원래는 너였었던가.
다리 하나로 서 있는 꽃망울이 있어요
다리가 너무 가늘어 슬퍼 보여요
마치 하늘에 닿아보려는 몸짓 같아요
외다리 격렬히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아요
견뎌내려고 앙다문 입
숨이 가빠요
입 한번 벙긋 못하는 그가 하고 싶은 말
나는 알 것 같아요
망울 하나 외따로이 서서
세찬 바람 온몸으로 버티는 것은
여기저기 홀로 선 망울 모두 불러
하늘에서 내리는 복 받으려는 거예요
비에 흠뻑 젖어 축복에 겨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려는 거예요
내 오래전부터 목마르게 기다리던 그 일 말이 예요
숲 바람꽃망울이 텅 빈 산을 지키고 있어요
땅과 하늘을 잇고 있어요
가느다랗게 흔들리며 독야청청 홀로
생명선처럼 서 있는 들꽃을 보고 있어요
「생명선」 우영규
저 야생의 꽃을 보며 문득,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다. 그것은 조용한 호수 위로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던진 돌멩이에 물너울이 일듯 난데없이 수면 위로 떠올라 한없이 번져 갔다. 오래된 약속처럼 나는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하는 것처럼 몰두한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환멸. 사람에 의한 기쁨과 슬픔. 사람을 위한, 용서의 기도와 같이 사죄의 옷을 입혀본다. 한 생이란 결국 이 짧은 문장 안에서 먹고 잠자는 일일까. 그 마음을 들락거리며 나는 여기 이렇게 당신은 거기 그렇게 서서 새봄을 맞고 있다. 그대는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피었단 말인가. 왜 하필 잔인한 이 봄에 피었단 말인가. 산꽃 한 송이가 저를 그리워하는 척하는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그리움이란 코끼리와 같아서 온종일 배를 채우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이다. 환멸이란 바퀴벌레가 빠진 음식 같아서 모든 식욕을 앗아가 버리겠지.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코끼리와 바퀴벌레는 엄연히 공존하는 친구 사이인 것을. 기쁨도 슬픔도 사람에 의한 것이다. 사람은 시간 속의 존재이므로 기쁨은 잠시이고 슬픔은 길다. 외로움을 지나 무상함 저편에 사는 슬픔. 그에게는 언제나 건초 타는 냄새가 난다. 서서 말라죽은 나뭇가지에 차마 감당 할 수 없는 봄이 문을 삐죽이 열어놓았다. 나는 오래된 그리움 같은 야생 꽃 앞앞에 밑줄을 긋고 그의 지나온 숙제 같은 지난겨울의 고통, 기다림의 그리움 같은 것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채색할 수 없을까를 생각한다.
제 떠나왔던 도래지로 날아가려는 겨울 철새는 맹목적이다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나도 피하지 않는다 한 마리 꼬까도요새
비행기와 충돌했다 새의 몸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엔진이
망가진 비행기는 허둥지둥 회항한다
조그만 새의 의지를 거대한 비행기가 꺾지 못하는 이유, 무어라 설명할까 조류학자들은 인상받기라고 명명했지만 차가운 동체에 묻힌 한 점 혈흔의 가엾음으로 나는 그 맹목이 그리움이라 유추해 본다 총과 경음기 폭음기로 위협해도 청, 청, 청, 푸른 하늘 들이받으며 날아오르던 새, 그렇지 그리움이란 것, 제 떠나왔던 물가의 물소리 바람소리 사무친 기억 같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것, 안 보이지만 뜨겁게 사무치는 간절함은 끝까지 믿고 행하는 것, 지구의 반 바퀴나 되는 비행거리를 찬 날개 두 쪽과 가슴에 오므려 붙인 가느다란 두 발이 전부인 行裝으로 날아가도 서럽지 않은 것, 그 망망한 외로움을 위해 한 목숨 분쇄되는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펄럭 펄럭 붉은 석양이 적시는 흰 가슴의 날개로 제 몸 매질하여 구만리장천을 후회 없이 날아가는 것, 그리움도 그쯤은 되어야 지상의 계절을 번갈을 수 있지, 한 세상 사랑해서 건너왔다 할 수 있지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이해리
해시계가 뜨지 않아도 지금이 늦은 오후라는 것을 감지한다.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 사방은 한 번 더 짙은 회색을 바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조급하지 않다. 저 홀로 외롭게 견디다 핀 야생 꽃을 생각한다. 아니, 얼마나 자유스럽고 여유로운가. 그리고 이곳, 동대산 자락 분지에 파묻혀 사는 노부부하며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생명체 가족들. 그 아무것도 필요 없는, 단지 그 무엇인가의 그리움 하나만 품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부럽다. 이 첨단의 기술문명시대에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유롭고 여유롭다. 나는 아직 디지털시대에 지배되고 속박당하는 삶보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가까워지려는 강한 욕망을 느낀다. 아직은 파괴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니, 아직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첨단의 기술문명시대에 나는 가까이 다가설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여유와 느림을 통해 삶을 제어하고 디지털에 약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싶다. 온종일 휴대전화 벨 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 한번 들을 수 없는, 그래서 자연의 바람 소리와 꽃망울 기지개 켜는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이 청정지역이야말로 한 컷의 흑백사진 속에 들어 있는 아날로그적인 미학이 아닐까. 휴대전화가 내 몸에서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불안하고 외우는 전화번호 하나 제대로 없고 그 흔한 유행가 제대로 아는 가사 하나 없는 디지털 치매 세상에 사는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침에 눈을 뜨니 뜰에 서 있는 목련처럼 눈부신 그대가 보였다/예고 없는 바람처럼, 명분 없는 침략자처럼 논리도 없이 막무가내로,/눈물 같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그대는 왔다/목련 그늘 아래 한 우주가 조용히 흔들렸다.'라며 한 시인이 영혼을 부르듯이 부르던 노래. 그것이야말로 아날로그적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느리고 불편해도 정이 있고 사람 살아가는 맛 나는 세상, 거기에 살고 싶다. 정녕 그것이 그립다. 진정 그런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었던가. [송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