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 5;3) 말씀 앞에 서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자격이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질문을 우리도 하고 싶어진다.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눅 18;26)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 대답이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 18;27) 우리는 여기에서 교회와 개인성도 모두가 “이미”와 “아직 그렇지 못한”사이의 긴장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통치의 표현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도상에 있는 것이지 역사의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 나라와 아직 동일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은 죄의 속박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악이 계속 틈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유를 결단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롬6장) 바울이 말한 교회 성도들이 서로 상대방을 민사소송법으로 데려가는 장면은 교회가 “아직 그렇지 못한”차원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서로 속이고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인 사이에 나타난 이러한 불의의 증거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양립할 수 없는 모든 형태의 악을 비난하게 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9) 하늘에 쌓아둔 보물은 도난이나 붕괴나 부식의 위험 없이 영원히 간직된다. 하늘에 간직되었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위험이나 오염이 접촉할 수 없는 절대안전지역에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 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