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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금강경 속 으로 들어가 볼까요?
금강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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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관하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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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 法會가 열리게 된 이유는~
第一 法會因有分~
이 대목은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존자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게 된 연유를 회상하면서
한 말이랍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여러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제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답니다.
그 폐단을 막고자
많은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고,
부처님 말씀을 가장 잘 기억하는
아난존자에게는 經을~,
우바리존자에게는
律을 외우게 하였답니다.
아난존자와 우바리존자는
부처님과 동향인
까뻘라왓투의 사카족(석가족) 출신인데,
부처님의 말씀을
지금의 빠알이語와 유사한 같은
쁘리끄리뜨語를 쓰고
같은 사유체계를 가진 동향의
두 스님이
외워서 결집했다는 것은
아주 의미가 있답니다.
산끄리뜨語는 이보다 후대의 言語이지요.
如是我聞一時佛 在舍衛國祗樹給孤獨園
(祗-공경할지)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俱-함께 구)
爾時(爾-너 이)
世尊 食時著衣持鉢
(著-분명할 저)(鉢-바리때 발)
入舍衛大城乞食
於基城中 次第乞已(已-이미 이)
還至本處 飯掌訖(訖-이름흘)
收衣鉢洗足已 敷座而坐 (敷-펼부)
자~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훌륭한 스님들 1250인과 함께 계시었다.
그때 세존께서
식사 시간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바루를 지고
사위성 안으로 들어가시어
탁발을 하실 적에
차례로 빌기를 마치고는 계시던 곳으로
돌아 오셔서 식사를 하시고 나서
가사와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는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자~
# 반야 바라밀은 생활 속에 있지요.
생활을 떠나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면
안된답니다.
祇樹給孤獨園(祇-토지의 신 기) (園-동산 원)
‘이와 같이 들었다.“ 如是我聞은
아난존자가한 말이지요.
이 경은 전부 부처님 말씀이지요.
부처님은 글을 쓰지 않고
설법만 하셨기 때문에~
여기서는 ’나는 다음과 같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고 번역하면 되지요.
고대 인도에서는 듣는다는 의미에
배웠다. leaned는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답니다.
’어느 때 一時‘는
인도인들의 時間 意識을 표현 한답니다.
부처님의 탄생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듯이,
부처님이 언제 법을 설했다는 것도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답니다.
기수급고독원은 절 이름인데,
보통 기원정사라고 부른답니다.
당시 코살라국의 파사익 왕은
까빨라 국의 왕자였던 부처와
☀ 같은 날 태어나서 싯달다가 성불한 해에
왕위에 올랐다고 전해진답니다.
(日柱가 같다.)
그리고
그는 성불한 싯달다를 만나는 순간
感化되어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군요.
파사익 왕에게 제따jeta 태자가 있었답니다.
기수 祇樹 jetavana는
제따 태자가 시주한 숲이란 뜻이라는군요.
수탓타(sudatta(須達多)는
부처님 당시에 생존했던 거상으로
불쌍한 사람에게 보시를 많이 하였다는군요.
給孤獨의 長者는
이에 대한 존경스러움의 표현으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자~
기원 정사에는 재미있는 逸話가 있는데요.
마가다국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던
금고독 장자가
자신의 고향 사와에 부처님을 모시고
설법을 듣고 싶어서 절을 지으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제따 태자 소유의 숲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그에게 東山을 팔라고 간청했지요.
그러나
아름다운 숲을 사랑하고 있던 태자는
이를 거절했는데요.
그럼에도 계속 간청이 거듭되자
태자는 농담 삼아 동산의 바닥 전체를
金貨로 덮으면 팔겠다고 했지요.
재산을 처분한 장자가
동산에 금화를 깔기 시작하자~
감동한 태자는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는군요.
장자는 전 인류의 스승인 부처님께
절을 바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에 감동한 태자는
땅은 時價대로 팔되
숲은 自己 이름으로 헌납했지요.
또한
그 땅에 깔린 金貨로는 정사를 건립했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따 태자의 숲‘과’ 급고독 장자가 세운 절’
이란 뜻을 합해서
‘기수급고독원‘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답니다.
부처님은 아난존자를 侍者로 삼아
말년 22년간을~
여기에 머물면서
제자들과 교법을 체계화 하였다는군요.
인도의 네팔 남쪽 국경 근처의
사헤뜨 sahet에 가면
지금도 기원정사 자리가 있다는군요.
불교 역사상
기원정사는 큰 역할을 하였다는군요.
자~
’큰 비구‘는 우리말로 ’큰 스님‘이지요.
비구 bhiksu는 乞士라 번역 된답니다.
☀걸사는~
일체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수행이나 종교 생활에만 전념하는
者라는 뜻이지요.
걸식은~
마음의 無所有를 상징한답니다.
자~
☀그럼 큰 비구가 무언가?
’크다‘라는 말은 본래 ’훌륭하다‘란 뜻이지요.
그러므로
’큰 비구‘는 ’훌륭한 스님‘이 된답니다.
’큰 스님‘을 말하지요.
이런 분들이
부처님을 항상 따라다니면서
모시는 대표자들이었고요.
그 외에 여러 대중이 있는데,
항상 부처님을 모신다고 하여
常隨大衆이라 하였답니다.
자~
# 부처님이 食事하시다!
’그때‘는 부처님과 대중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던 때를 말한답니다.
’세존 Bhagavan은~
부처님의 열 가지 號 중하나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란 뜻이지요.
‘바가 bhaga’ 곧 ‘福’ ‘幸福’을 가진 분을
말한답니다.
‘식사 시간 食時’은~
보통 巳時 즉 오전 9시~11시 이지요.
자~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군요.
인도인들은 體質化 되어 있을 정도로
본래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는군요.
부처님 당시에는
苦行 주의자와 享樂 주의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군요.
고행주의자들은 말하자면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피골이 상접해서 뼈만 남을 때까지
그냥 굶는답니다.
반대로~
향락주의자들은
사치와 방탕과 허영에 빠진 사람들이지요.
그들의 호화로운 생활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 하는군요.
그런데 부처님은
굶지도 음식을 탐하지도 않았답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中道주의자인 셈이지요.~
극단적인 고행에도 극단적인 향락에도
빠지지 않는다는군요.
그 中道 생활이~
바로 하루 한 끼의 식사로 나타나
있는 것이지요.
요즈음 우리는 어떤가.~
습관적으로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배가 부른데도 또 먹어낸답니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나면
밥을 마구 먹는다고도 한답니다.
우리는 그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지요.
# 김형학이도~
처음에는 하루 한 끼의 식사는
우리네 범인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어려운 일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6개월 만에 몸무게 10㎏ 줄이는 법을
시청하게 되었는데~
그 주장은
저녁은 무조건 평소 먹던 식사량의 반으로
줄여라.
그리고 배가 고프면
오이나 토마토 또는 당근을 먹어라.
이들 야채는 열량이 없다.
술을 먹게 될 때는 안주를 줄여라.
이러한 식습관을 6개월만 지속하면
胃의 크기가 줄기 때문에
10㎏은 저절로 빠진다고 하더군요.
나는 이튿날부터 이를 실행에 옯겼고
4개월 만에 정확히 7㎏을 뺄 수 있었지요.
허리둘레가 1.5인치나 줄었답니다.
이러니 일주일에 한 번씩 체중계에
올라가는 일이 매우 즐거워졌지요.
자~ 却說하고~
부처님이 한 끼 식사를 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데요.
식사는~
마음이 허전해서 하는 게 아니고
몸을 管理하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랍니다.
우리 중생은
그 마음에 따라서~
식생활이 참 많이 바뀌고 있지요.
着衣持鉢은
‘袈裟 가사를 입으시고 바루를 지니시고’라는
뜻이지요.
가사는
부처님이나 제자들이 입는 법복인데요.
본래는 누더기라는 뜻이랍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누더기 옷을 입었답니다.
가사에 限해서 ‘입는다’의 특별어로서
‘수하시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말은
위에서부터 밑으로 내려뜨리는 것을
말한답니다.
☀ 바루는 발다리의 우리말 인데요.~
부처님이나 스님들의 밥그릇 이랍니다.
바루를 절에서는 바리때 라고 하지요.
요즈음 절에 가보면 바루가 네 짝이 있는데
원래는 하나 이랍니다.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하나에다 담지요.~
탁발 이라고도 하고 걸식 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풍속이랍니다.
사위성은 슈라와스띠(샤왓티)의 音譯인데,
부처님이 계시던
북쪽의 고대 왕국 코살라의 수도 였답니다.
당시 인도 중원의 16국 중 왕사성과 더불어
가장 강대했던 나라였으며
남쪽에는 또 다른 남코살라가 있었답니다.
사위국이란,
두 나라를 구분하기 위해
이 나라 수도의 이름을 따라
북코살라 왕국을 지칭했답니다.
당나라 때의 현장스님은
이를 실라벌이라고 音譯 했답니다.
신라와 당나라는 두 나라의 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할 정도로
왕래가 깊었으니
그 당시
경주를 서라벌로 부르게 된 연유를
알 수 있겠군요.
부처님이 계셨던 나라의 수도 이름인
슈라와스띠는
서라벌, 셔블 등의 表記 音에서 유래되어
서울로 변화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고요.
城은 요즘 말로 市內이다.
성 안은 市內고 성 밖은 市內가 아니지요.
옛날에는 도시를 城內라고 했어요.
금강경에 나왔듯이
부처님은 山中이 아니라~
여기저기 都市를 출입하였지요.
왜냐하면
중생과 가까운 그곳이 바로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도 신라 시대에는
경주 도성 안에 분황사. 황룡사, 흥륜사,
불국사 등이 있었지요.
고려 시대만 하더라도 개성 쪽에 절이
많았어요.
그런데
조선의 억불정책 때문에 절은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부처님은
도시를 사이에 둔 곳에 절을 지었답니다.
그래서
식사 때가 되면 도시 안으로 들어가서
걸식을 하였답니다. (乞食於基城中)
이 걸식을 託鉢이라고 한답니다. (鉢-바리때 발)
당시 인도에서는
스님들이나 수도자들이 꼭 걸식을 했답니다.
왜냐하면
도를 닦아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생업은~
자신만의 교만한 마음이 생기거나
道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었지요.
자~
이것이 이른바 ‘무소유’의 정신이지요.
후세에 대한 경계의 의미도 있답니다.
성 안의 대중들은 식사 때가 되면
스님들에게 밥을 드리려고 기다렸는데요.
아직도 태국이나 미얀마에는
그런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답니다.
‘차례로 빌기를 마치시고’라는 말에는
의미가 있답니다.
次第는
한자 음이 우리말 ‘차례’로 변한 것이지요.
牧丹이 모란으로 변한 例와 같지요.
‘차례로 빈다’는 것은 성안으로 들어가서
탁발할 때~
어느 집이든 빼놓지 않고 차례로~
간다는 말이지요.
그 사이에 가난한 집을 빼고
부잣집만 찾거나 하면 평등하지 못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지요.
당시는 한 번 걸식하러 나가면
일곱 집 이상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빌기를 마쳤다.’함은
일곱 집이 다 찾다는 뜻이지요.
이때 일곱 집에서 밥을 못 얻는다
하더라고 더 빌지 않는다는군요.
부처님은
자신이 직접 걸식을 함으로써
걸식 또한 수행임을 가르쳤답니다.
일곱 집을 건너뛰지 않고 차례로감으로써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고
그런 차별심을 없애는 것이
수행임을 가르쳤지요.
☀‘발을 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이 맨발이었다는 말이지요.~
그 당시는 신발이 없었기 때문에
멀리 갔다 오면 반드시 발을 씻어야 했답니다.
인도에는
지금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군요.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飯食訖’
(訖-이를 흘, 마치다)
다음에 ‘발을 씻고 洗足已(已-이미 이)
가 나옴으로써~
이러한 物理的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지요.
’가사와 바리때‘를 제자리에 놓으시고
발을 씻으셨다.’함은~
이제까지의 활동을 중지하고 곧 禪定에 드실~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삼매에 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답니다.
반야바라밀은 굉장히 큰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부처님의 하루 일상생활을 전할 뿐이지요.
식사 때가 되니까 옷을 입고,
밥그릇 가지고 시내에 들어가서
차례로 걸식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식사를 다 한 다음
그릇과 옷을 정리해놓고
두 발을 씻은 다음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는 것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그대로 행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토록 엄청난 금강경 맨 앞머리에~
이런 사소한? 얘기가 등장하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그것은 진리가 바로 생활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한답니다.
자~
생활을 떠나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자~
삶을 인생이라고 한답니다.
그럼
이 인생이란 말이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보아야만 알 수 있지요.
삶은 살아보아야만 안다고 해서
사람 人字 다음에 날 生字를 쓴 것이죠.
☀머리가 아무리 좋다 해도
어린 아이는 人生을 알 수 없지요.
결국 인생은
한 평생 다 살아보아야 아는 것이죠.
삶은 종합 예술 이라고 누가 했는가?
자~
☀般若바라밀은 생활 속에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般若바라밀의 대 주제를
이야기하는 금강경에서~
부처님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 것이랍니다.
대부분의 선사들이
이러한 평범한 생활의 모습 그 자체가
최상의 설법이라고 말해왔답니다.
이 말속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금강경의 목적은
지혜 즉 般若智를 개발하여
부처가 되게 하는 것이라는군요.
반야지란?
분별하는 의식이 끊어진 절대적인 지혜를
말한답니다.
위에서 법도에 맞추어 걸식을 하신 것은
戒이며(戒-경계할 계)
자리를 펴고 앉으신 것은 定인데,
戒에 의해 定이 생기고
계와 정이 具足하여 지혜가 생긴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모든 經을 말씀하시려 할 때
반드시 먼저 禪定에 드셨다는군요.
이 경지에서는
色界와 無色界의 4禪에 들었다가
벗어날 수 있는 正念 sati의 힘이 있답니다.
正念 samma-sati이 있는 선정은~
전 불교의 수행과정,
특히 열반의 경지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그 무엇이랍니다.
그래서 흔히 ‘법회가 열리게 된 이유
(法會因由分 第一)(由-말미암을 유)에서
기술된
이 장면만으로도~
금강경 전체를 이미 다 설명하고
있다고들 이야기한답니다.
금강경의 위대함은
바로 行動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지요.
부처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행동으로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의
마음가짐을 보여주셨답니다.
그 가르침은~
바로 순간순간의 마음가짐이며
깨어있는 삶이지요.
금강경의 가르침은 여기에 모두 나와 있답니다.
부처님은
이미 침묵으로 법을 전달하신 것이지요.
국가나 기업도 마찬가지이랍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지도자가 나타났을 때
그 국가는 번성했으며, 그 기업은 성장
하였지요.
마케토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프랑스의 나폴레옹, 몽골의 징기스칸,
미국의 링컨 그리고 인도의 간디가
그러하였답니다.
우리나라도~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리더쉽과 비전을 가져다 주었지요.
기업으로 보면~
GE의 잭 웰치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경영의 가치를 보여 주었으며,
우리에겐~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회장이
그러하였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국민들에게~
그리고
그들 구성원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었지요.
그리고 그 비전을 共有하였답니다.
그 외에도 지도자는 많았겠지만,
대부분은 대통령이나 경영자나~
그저 관리자에 불과하였답니다.
진정한 지도자란~
비록 말은 많이 하지 않으나
그 뜻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당대는 물론이고~
후세에 까지도 그 뜻이 共感을 얻고 있지요.
진정한 지도자는~
현란한 말이 아니라
몸짓과 행동으로
그 시대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답니다.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 김형학의 思考
-各自의 태어난 原命式대로 살아간다.-
# 이 글 또한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 이글은
사람은 사주명리학 理論 上 48,500여 가지의 性品과
서양 心理學 상16가지의 性格에 따라
그 느낌과 의미가 다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