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레이션:
상현은 걸었다..
한참 유행하는 브랜드의 셔츠와 면바지 그리고 노인들이 즐겨신는 효도화를 신고...
몸에 걸친 어느 하나도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색하게 짜깁기 된 듯한 모습으로 한밤의 풍경속에 점이 되어갔다.
혼자 걷는 내내...머릿속엔 잡념이..아니 오래된 추억들이 빛바랜 영상물처럼 스쳐간다.
처음 미연을 낳고, 아내와 밤새워 생명의 경이로움에 서로의 행복을 늘어놓던 일, 백일잔치의 부주함에 아기의 유모차를 잃어버린 일등...그렇게 사소했던 조각같은 기억이 지금 혼자걷는 상현에겐 유일한 동력원 인듯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하늘에 북두칠성이 보인다.
그래...딸아이와 손잡고 시골길을 거닐 때, 생소한 시골 풍경에 그렇게 들떠있던 미연이..
동화에서 읽었던 별자리 이야기를 아빠와 퍼즐을 맞추듯..하나하나 손으로 점찍어 가며 재잘 거리던 모습...
그렇게 아빠등에서 스르르 잠들던 딸아이..
그때 상현은 다짐했었다..
세상에 아무리 하챦은 곳에 서있을지라도 너에겐 태산같은 버팀목이 되어주겠노라고..
하지만..혼자다..마냥 혼자다..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는 사막여행자처럼...
휑한 밤길에서 걷다, 돌이키고, 또 돌이키며...하늘의 북두칠성을 아쉬워한다..
현관...오른편에 오래된 개집하나...
자신만큼이나 늙어버린 라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
녀석도 몸이 귀챦은지 억지로 나와 꼬리 몇 번 흔들더니, 이내 그 허름한 개집속으로 몸을 숨긴다..
익숙하게..떠나버린 아내의 생일로 된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오른손으로 길게 뻗어 익숙하게 스위치를 올리고..
신발을 털고, 양말을 벗어 화장실..그안의 세탁기에 넣고...옷을 벗어 행거에 얹은다음...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억지로 아침밥을 먹듯이.......하지만 정확한 공식대로 세면을 한다.
목에 수건을 건채로...안방에 들어와 불을 켠다.
아까...구석에 내려놓은 넥타이..그 넥타이를 찾아 마음 바쁜 손으로 장롱옆을 헤집는다...
그리고 한손에 잡히는 그 넥타이..그냥 대충 헤아려도 예닐골개는 될듯한 넥타이들...
하지만 아내와 만나 30년을 살면서 메봤던 넥타이의 전부다..
처음 처갓집에 인사갈 때 했던, 화려한 색깔의 넥타이..아내가 그 고운 섬섬옥수로 골라준 첫 넥타이..
그리고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준 검은 넥타이..그 넥타이로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했고...아내의 마지막길도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상현과 함께했다.
아이 첫돌 때 아내와 고른 넥타이..여름이라며..밝은...시원한 것으로 해야한다며 한사코 마다하는 상현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서 산 넥타이다...또..처음 상현이 사업을 시작할 때 아내가 선물해준 넥타이, 환갑때 젊어보이라며, 아내가 선물해준 넥타이..그리고..아내가 선물해준 넥타이..또 선물해준 넥타이..
자꾸만 줄어드는 머리숱을 매만지며 투덜대면 대머리라도 버리지않고 데리고 살아줄테니 걱정말라던 아내...
그런데..그런데..그 아내가 거짓말처럼 떠나버렸다..
아침에 눈뜨면서 시작한 잔소리를 잠자리 곤한 그 시간까지도 멈출줄 몰랐던 아내...그런 아내가 이젠 안방벽에 덩그라니 걸려서 묘한 웃음만 짓는다..
혼자라는거..세상에 혼자는 없다는 생각했다.
내가 만든 사랑에 아내가 들어오고, 그 사랑안에 아이들이 피어났고, 그 아이들이 자라, 마냥 함께일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금 네모난 방 안에선 정말 혼자다..
아내의 관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던 아이들 뒤에서 멍하니 체면가리며 눈물삼킨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실컷 울기라도 할걸...
콧물 눈물 범벅으로 30년 추억을 곱씹으며 몸부림치고 싶었건만...
그리도 덤덤히 아내를 보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의 관심을 옆으로 둘렀다..
때되면 늘 작은 방 한켠에 켜켜이 쌓이는 선물들..
그냥 내딸과 내 아들과 마주앉아 그 옛날 재잘거리는 작은 입술을 보고 싶건만..
두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딸..
아직도 짝없이 술을 벗삼아 주위를 맴도는 아들...
자신에겐 아니...아니 아내와 자신에겐 영원한 보석일 그 두아이..
아버지께 메뉴를 여쭙고, 남편을 부리며 처갓집 나들이에 휴일 ㅏ루를 소비하는 딸이...그런 딸이 밉다...
그냥...잠시라도 손잡고 걸었으면...
한번만 따스하게 안아줬으면..
그런데..내맘속에 내눈속에 30년전 그 천사같던 아이는, 아직도 내겐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자신에 대한 사랑을 외면한다.
나이가 들었으니까..이젠 다 큰 어른이니까..엄마니까..아내니까...남들이 보면 철없다 그럴까봐...
자신에게 투정부리는..가끔은 아빠에게만 화를내는, 그런 분홍색 공주인형을 좋아하는 딸이었으면..
하지만 이젠 자신보다도 더 음력계산에 빠르며, 친정 제삿날을 무서우리만큼 정확히 챙기는 그런 딸이다..
늘 딸아이가 다녀가면 버릇처럼 꺼내어보는 앨범...상현은 또 앨범앞에 앉아 사진 한 장, 한 장을 어루만진다..
그 안엔, 젊고 이쁜 아내가, 생떼쓰는 딸이, 고추 내놓은 아들이 상현을 반긴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eff:전화벨소리..두번이상)
(eff:전화받는 소리)
상현:(잠긴목소리)여보세요?
어..
미연아 벌써 도착했어?
미연:(필터마이크)아니요..아빠 또 앨범보지?
상현:아..아냐...TV보고 있었어..
미연:정말이요? 왠일이래 우리아빠가..(다정하게)아빠...
상현:응..그래...
미연:오늘 아빠 얼굴이 너무 헬쓱해 보여서 말씀 못 드렸어요...
상현:뭔데?...무슨일 있니???
미연:제가...6개월쯤 외국출장 때문에 당분간 못 뵐 것 같아서요.
상현:그래? 괜챦다..신경쓰지마..
미연:이서방보고 자주 찾아뵈라고 할게요..
상현:아니다.그럴필요없다.괜실히 바쁜사람 닦달하지말고...조심히 다녀와..
미연:네..아빠 몸건강하세요..
엄마생각 너무 많이 하지마시구요...
아빠 또 혼자 많이 우실라..
상현:쓸데없는 소리하는구나...아빠 우는 거 본적있니? 하하하
미연:아니요..그런데..자꾸 그런 모습을 본것같아요.
참..아빠 씽크대 두 번째 서랍에 돈 조금 넣어두었어요..
필요할 때 쓰세요..
그럼 주무세요...
(eff:전화끊는소리-휴대폰)
상현:미..미연아..
(eff:전화 내려놓는 소리)
상현:아..참..녀석...참..허..허..
(회상시작)
(eff:전화벨소리)
(eff:전화 받는 소리)
상현:여보세요?
경찰:(필터마이크)네..거기 김재석씨 댁이죠?
상현:네..맞습니다만 어디신지?
경찰:아..네..여긴 분당경찰선데요..
상현:네?
(Bridge-M-Fade In / Fade out)
(eff:경찰서 내부 효과)
경찰:네..여기 사인하시구요..앞으론 제발 조심하세요..
상현:아..네..제가 주의시키겠습니다..죄송합니다..
(eff: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
(eff:발자욱소리)
재석:죄송해요...아버지..
상현:배고프지? 저기가서 우동이라도 한그릇 먹자...
재석:(힘없이)네..
(eff:포장마차 효과음)
상현:지갑을 잃어버렸니?
재석:예..많이 취했나봐요..주머니에 지갑이 있는줄 알고 2차가서...그랬나봐요..기억
이 안나네요...죄송합니다..아버지..
상현:좋은데 갔었나보다..술값이 꽤 나왔던데?(웃음)
재석:(놀라며)네? 아..아녜요..아버지..
상현:그래...요즘 일은 어떠니??
재석:늘 똑같죠 뭐..
상현:이젠 직접 해볼때도 안됐니??
재석:(쓸쓸히 웃으며..)나라에선 건강보험공단 적자 줄인다고 약국만 잡는데..약국해
서 뭐해요..약조제해 가면서 그 약값이 다 약사것으로 알아요..조제료 몇천원에
웃음을 팔고삽니다..뭔 의약분업이 성분처방이 아니라 의사한테 제약회사하고
약이름까지 처방하도록 하는지..저도 친구 인성이처럼 캐나다로 가서 자격증따
서 약사나 할까봐요...(정색하며)죄송합니다..재미없죠? 아버지..
(eff:포장마차 주문하는 소리)
상현:아주머니...여기 소주한병하고 안주하나 만들어줘 보세요..제일 맛있는걸로...
주인:네..쪼매 기다리시소...
재석:아버지..차..가져오셨쟎아요..
상현: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몰라?(웃음)
재석:아버지도 참..(같이 웃음)
(eff:포장마차 분위기)
(eff:술잔 따르는 소리)
상현:이제...애비랑 같이 살자...재석아..
재석:...
상현:애비가 같이 술친구 해줄게..
주인:(교양없는 목소리) 야~세상에 이런 멋진 아부지가 어댓노?
와..사장님 멋지시네예...
상현:하하...전 사장아니고 백수에요...
주인:마..여 들어오신 순간, 바로 사장님 되는기라예..하하하
(eff:안주내려놓는 소리)
주인:이거는 마..제가 서비스로 드리는 기라 돈 안받심데이...부자지간에 많이 드이
소..
상현:아이구..이런...감사합니다..
손님:(멀리서)아줌마~~여기 소주하나 더 주세요..
주인:네네...알겠심돠~~~
재석:아버지..조만간 찾아뵐게요..아직은 그냥 혼자 있는게 편해요..
상현:찾아뵙다니? 여자 생겼냐??
재석:네..인사시켜 드리려구요..
상현:(반색하며)그래? 어떤 아가씨야???
재석:지금 중학교 수학선생님해요..
상현:야..자식이거...이제야 효도하려는구나..축하한다...자 받아...
(eff:술따르는 소리)
상현:(마시며)캬~좋다...내일이라도 네 엄마한테 알려야겠는데?
재석:아버지..
상현:왜?
재석:죄송해요...
상현:무슨소리야??
재석:엄마...죄송해요...
상현:아니...너 여태 그것 때문에 그러냐??
재석:제가...면회 와 달라고 해서...누나 결혼준비 때문에 안된다고 하셨는데...(흐느
낌)
상현:재석아..애비말 잘 들어봐..
물떼새는 말이야..둥지 근처나 자기 새끼들 근처에 천적이 나타나면 자기가 부
상당한 것처럼 절뚝거리며 천적을 유인하지...실제 그러다 잡아먹히는 경우도
많고.,..하지만 새끼들과 알은 살아남쟎니? 남은 한 마리가 둥지를 지키지..세
상에 태어난 이유가 고작 새끼하나 때문에...겨우 그 때문에 생을 포기하냐구?
세상에서 제일 값진 삶은 말야...제일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모든걸 바치는거
야..순간이 고통스럽더라도 숭고한 목적은 죽은까지도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지...
그게 부모야..누구 때문이란 없단다..그런 엄마가 선택한것이고..또 엄마가 거 둔것이쟎아...
(침묵)
재석:아버지..한잔 받으세요...
상현:야..대리운전비는 네가 내는거다...
재석:아버지 저 지갑없는대요?
상현:아..그런가?? 하하하(같이 웃는다)
(회상끝)
(eff:멀리서 개짖는소리)
상현:자식...알았다..너도 배고프지?
나레이션:
상현은 무거운 듯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누런 개사료포대에서 하나가득 사료를 푸고...냉장고에서 시장에서 얻어놓은 고기부산물을 얹어 도요도미에게 내어준다...
상현:자식...왜 임진왜란은 일으켜서 이렇게 묶여사냐...많이 먹어라..도요도미...
(eff:개 좋아하는 소리)
나레이션:
요즘 상현은 밤마다 꿈을꾼다.
아내와 결혼하는 꿈..또 둘이 어딘가를 거니는 꿈..
없던일이 보이는게 아니고 아내와 했던일..갔던곳이 또 둘이 나누던 얘기까지...마치 한편의 영상물을 보는양 매일같이 연속된다.
(eff:담배꺼내어 무는 소리-라이타소리-내뿜는다)
담배하나를 꺼내어 물고 연기를 내뿜는다...
잔소리하는 아내의 모습을 회상하고파일까?
요즘들어 한번에 몇가치씩 연달아 피워물곤한다.
이제 상현의 나이 65세...
진갑이다...
가끔 참 많이 살았구나 싶다.
아내가 참 많이 그리워진다.
같이 한적하게 살자고 했는데..
같이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자고 했는데..
같이 그 옛날 함께 걷던길, 추억하며 걸어보자 했는데..
행여, 그길을 못찾으면 늘그막에 멋진 데이트코스 만들어보자 했는데..
젊을 적 뜨거운 열정이, 담담한 여운이 되어 서로를 지켜주자 했는데..
이젠, 자신이 불리는 이름도..외할아버지...아버지밖에는 없으니..
누군가 내게 한번만이라도 “여보”라 불러주면...죽는날까지 따뜻할듯한데...
아이들에게 섭섭하면...둘이서 입 삐죽이 내밀고 같은편에 서주던 사람...
비오는 날..우산없이 왔다며 핀잔주던 사람...
아이들 보고싶어 일찍끝낸 술자리..왜 일찍 왔냐며 타박하던 사람...
혼자 운동가려 준비하면...같이 가자며 나보다 먼저 현관앞을 나서던 사람...
날 혼자두기 싫어하던 고운사람...
늘 가족은 함께라며 항상 서둘던 사람...
그런 사람이 먼저갔다...
아무말없이...자신의 마지막을 낯선 타인의 목소리로 내게 전한사람...
그사람..
(회상)
(eff:노크)
여사원:사장님..전화왔는데요?
상현:어디?
여사원:인제 경찰서라는데..빨리 바꿔달래요..
상현:돌려줘요...
(eff:전화받는 소리)
상현:네..전화 바꿨습니다.
경찰:인제 경찰서 우준일 경사라고 합니다..
배민자씨 보호자 되시나요?
상현:네..맞습니다만 무슨...?
경찰:빨리 와주셔야 겠습니다.교통사고로 배민자씨가 위독한 상태입니다..
상현:집사람은 아들 면회간다고..
경찰:죄송합니다..빨리 좀..
(Bridge-M-Fade In/Fade Out)
(반전)
나레이션:
상현은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딸에겐 알리지도 못한체 급하게 차를 몰아 벌써 홍천쪽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제발...제발...제발...
상현은 넋을 잃은체 혼자 그 말만 되뇌었다.
제발...제발...
상현:(흐느끼며) 우리 아직 할게 많쟎아..민자야..민자야..
(eff:차 경적소리)
운전자:야~이 XXX아..뒤질려면 혼자 뒈지던가..아..XX 재수없게...
(eff:차 추월하는 소리)
나레이션: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도착한 인제...그리고 어느병원..
상현:여기 교통사고 환자 어딨죠?
간호사:환자분 성함이..
상현:배민잡니다..배민자..
(eff:뛰어오는 소리)
경찰:아..오셨군요...이쪽입니다..
(eff:빠르게 이동 효과/음악)
나레이션:
민자는 얼굴 한쪽이 보랏빛으로 퉁퉁부어있었고..온통 피투성였다.
의사:보호자 되십니까?
상현:네..
의사:이쪽으로 가시죠..
(eff:커튼 젖히는 소리)
상현:지금 집사람 상태가..
의사:솔직히 안좋습니다.지금...몇시간사이 심박이 두 번이 멈췄었습니다.쇼크도 심
한 상태라..
상현:그럼...그럼...어떻게 하면되죠?
의사:의학적으로..현재로선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의사1:과장님 배민자환자 맥박이 다시 멈췄습니다..
의사:뭐?(eff:달려가는 소리)
(eff:병원 기계소리)
상현:여보...미연이 엄마...
나레이션:
민자는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듯 하더니 한쪽눈이 조금 경련을 한다.
상현:괜챦아..잘 될거야..빨리 일어나서 집에가자..응? 여보...
(eff:기계 정지하는 소리)
의사:죄송합니다..
상현: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미연이 결혼이 이번준데...미연이 드레스 입은 거 이쁘
다고 했쟎아..우리 미연이 앞에서 눈물보이지 말자고 했쟎아..(흐느낌)
나레이션:
상현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민자의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울먹였다.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된채...엄마잃은 아이마냥 민자의 침대에 매달려 흐느꼈다.
상현:안돼...민자야..집에 가야지..민자야..
(흐느끼며) 민자야..나..난 어떡하라구..민자야..
나레이션:
중환자실 옆 침상 보호자인 듯 한 구부정한 노파가 다가와 상현의 등을 어루만졌다.
엄마를 찾으며 땟국물이 흐르는 철부지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듯 따스한 기운이 흐른다.
노파:젊은이..많이 우시게..많이...
노파딸:엄마...왜이래..이리오세요..제발...
노파:지금 많이 울어야 나중에 좀 덜 아파진다우..젊은이..지금은 모든 걸 다 빼앗기
고 모든 걸 잃은 듯이 억울하겠지만...그게 사는거라우..그 사람없이 하루도 못
살 것 같지만..때되면 배고프고...졸리면 자게되는게 사람이지...어떤 인연으로
만나고 헤어지는진 모르지만 뒤돌아보면 세상엔 자식을 품에 묻은사람, 남편
을 품에 묻은사람,부모를 품에 묻은사람 밖엔 없지...그러니 억울해하지말고 너
무 아파하지말고...
나레이션:
왜일까..
상현은 노파의 말을 들으며 한켠으로 가슴이 트이는 위로를 느꼈다..
민자의 시신이 실린 침대가 나가고..
상현은 담배 한 대를 물고...전화를 건다...
미연:여보세요?
상현:미연아..
미연:어..아빠 지금 어디야? 오늘 저녁에 같이 외식하기로 했쟎아..
상현:응..미안하다...아빠 지금 엄마랑 올라갈게...
미연:무..무슨얘기야? 아빠?
나레이션:
미연의 결혼식을 앞두고..그렇게 민자는 떠났다..
미연의 결혼 전날 밤..
미연은 아빠의 무릎에 엎드려 밤새 엄마를 찾았다..
처음 어린이집에 가던 날..그렇게 가기 싫다며 아빠에게 안겨 엉엉 운 뒤로..그렇게 아빠에게 무언가를 갈망하며 울어 본 적이 있었을까...
어린이 집에 가기 싫다며..억지로 보내려는 엄마가 밉다며..아빠에게 달려와 안기던 아이가..내일 결혼식에 엄마를 데려와 달라는 듯..그렇게 아빠를 놓지않았다..
밤새 미연의 등을 토닥이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상현은 문득 생각이 든다.
민자와 결혼 후 미연을 낳고...얼마나 행복했었나..
첫아이를 임신하고 함께한 설레임..냉장고 문도 못열게 한 아내...새벽이라도 먹고 싶다는 음식을 찾아서 헤매이던 일..
행복한 얼굴로 또 남에게 보란 듯이 같이 준비하던 기저귀, 배냇저고리, 아기 목욕용품, 신발, 모자...행복한 얼굴로 상현을 바라보던 민자의 얼굴...
미연이 태어나고 밤새 잠 못 이루며 보낸 60여일...
거짓말 같이 밤낮이 바뀌어 엄마 아빠를 고단하게 한 60여일이 지나...또 거짓말처럼 새벽잠을 자던 아이...
뒤집기 할 때 머리를 찧던 일..기어서 설거지 하는 엄마다리를 붙잡고 젖을 보챈아이...
그 아이가..30여년이 지나 커다란 덩치로 다시 상현에게 와서 그때처럼 보채고 있다.
아내의 죽음...첫째의 결혼을 상현은 그렇게 꿈인 듯 헤쳐나갔다..
모든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파인 상처가 평편하게 아물때즈음...
그제야 상현은 나머지 그리움으로 아내를 추억할 수 있었다.
(회상끝)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