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노래 들었을 때 딱 그 생각이 들었거든.
휘트니 휴스턴이랑 머라이어 캐리 합쳐놓은 거 같다는..."
어떠신가요? 정말 그렇게 들리는지...
(공대생 친구를 쪼아 처음으로 '음악파일 올리기'라는 걸 해봤습니다;;;)
이제 그런 10대는 없겠죠?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를 틀어대는 MTV니 M-net이니 하는 것들이 없어서
오직 FM라디오에만 귀를 쫑긋 세우고
'GMV'같은 음악잡지를 옆구리에 끼고 사는 10대.
MP3같은 첨단기술이 아직 나오지 않았던 시절,
LP판이나 테이프로는 부족해
'배철수의 음악캠프' 빌보드 차트 코너를 기다려 공테이프에 녹음해 듣는 10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뉴키즈 온더블럭' 사진을 모아
한 권의 앨범을 완성하던 10대.
(그들의 내한공연은 정말 허접했습니다. 두 팔을 어기적거리며 웅얼웅얼거리다 말았죠.
'그 많은 코 묻은 돈을 들고 어디 잘되나 보자'했는데 결국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따라 부르고픈 욕구를 어쩌지 못해
들리는대로 한국말로 받아적던 10대(요즘은 검색엔진에 '가사'라고만 쳐도 주르륵 나옵디다)
10여년 전 '서태지와 아이들'이 경계선이었을까요?
그 이전까지 10대들 사이에서 가요의 인기란 요즘같지 않았습니다.
그 때 가요는 '발라드'아니면 '댄스' 였거든요.(변진섭 아니면 소방차, 뭐 이랬죠)
그리고 그때는 한국의 10대들이 듣는 팝도 얌전했던 거 같아요.
휘트니 휴스턴, 빌리 조엘, 퀸, 스팅...
게중 퇴폐적이란 평을 받던게 '프린스'(이젠 그도 쉰을 바라봅니다)정도였거나,
팝발라드에 열광하는 또래들을 무시하며
메탈리카, 메가데스 등에 몰입하던 무리도 있었죠.
1981년생인 '린'(이세진)도 대충 그 세대 어디쯤에 속해있었습니다.
80년대생인 그의 입에서 '머라이어 캐리'니 '휘트니 휴스턴'이니 하는 이름들이 나오니
반가우면서도 왠지 씁쓸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때가 됐을텐데하는 마음.
롯데월드와 맥도널드에 열광했던 성장기를 지금 되돌아보면
그냥 '머쓱'해지는 것처럼요.
지금 10대들이 부럽습니다.
이해도 안되는 팝을 듣지 않아도
사춘기 감성이 필요로하는 모든 영양소를 가요에서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 장르도 다양해지고, 가수들의 기획력이나 음반 컨셉도 나날이 세련돼갑니다.
물론 가요가 가열차게 미국화되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요.
린(LYN)
“한국의 휘트니 휴스턴 되는 것이 꿈”
3만여팬에 직접 답글 쓰는 대학생 발라드 가수2집, 4개월 만에 6만장 팔려
촬영 40분째. 바짝 내리쬐는 조명 아래서 베테랑 사진기자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모델의 포즈는 차려 자세에서 별반 나아지는 게 없었다. 두 손을 어디에 둬야할지 고민하다 웃어야한다는 걸 잊기도 했고, 웃는 모습에 집중하다 1인용 소파에 파묻은 몸이 부자연스럽게 굳어버리곤 했다. 8월 27일 조선일보사 스튜디오에서 만난 가수 린(본명 이세진·24). 촬영을 끝낸 후 그녀에게는 ‘진정한 오디오 가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오디오 가수. 과감한 노출도 현란한 몸놀림도 없었지만 린의 2집 앨범은 발매된 지 4개월 만에 6만장이 팔렸다. 8월 1일에는 SBS TV 인기가요 순위에서는 1위를 차지했고 첫 단독 콘서트는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점차 TV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횟수도 늘었다. 얼굴보다 노래로 알려졌기에 ‘쟁반노래방’이나 ‘야심만만’ 등의 쇼프로에서 평범한 이웃집 아가씨처럼 박장대소하며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그녀에게 몇몇 팬들은 ‘제발 노래만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TV 출연 횟수와 음반판매량은 비례했다.
“1집 때는 노래만 잘 하면 되는 줄 알고 쇼프로그램 나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무대에선 보여줄 수 없는 제 인간적인 모습도 팬들은 좋아하거든요. 20대 초반의 밝고 명랑한 모습,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이젠 스스로 즐기면서 하니까 결국엔 저도 원한 걸 얻은 셈이죠.”
가수 린은 이미 고3 시절, ‘마이 퍼스트 컨페션(My First Confession)’이란 첫 음반을 냈었다. 린이 아닌 이세진이란 본명으로. 결과는 참담했다. 이세진 1집은 고작 2000장이 팔렸다. “사실 그때도 지금보다 덜 다듬어지긴 했지만 노래부르는 데 있어 별반 차이가 없었거든요. ‘노래만 잘 하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다’란 어리석은 생각에 철저한 기획이나 준비가 없었어요. 망한 게 당연한 거였죠.”
좌절하지 않았다고 했다. 노래하는 게 좋아서 벌인 일이었고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10대에게 ‘좌절’은 어울리지 않았다. 2002년, 그녀는 ‘린’이란 예명으로 ‘해브 유 에버 해드 하트 브로큰(Have You Ever Had Heart Broken?·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을 내놓았다.
“원래는 이세진 2집이었지만 ‘린’ 1집으로 다시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냉정하거든요. 1집이 잘 안된다 싶으면 그 가수의 2집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처음엔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고 잃어버리는 것도 같아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 한 결정이었어요.”
1집에 대한 반응이 처음부터 폭발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인기가수의 열창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방청석은 신인인 그가 무대에 서면 찬 물 끼얹은 듯 잠잠해졌다. ‘쟤는 뭐하는 애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자신을 관찰하는 수많은 눈 앞에서 온몸은 얼어붙었다. 노래에 몰입하다 자연스레 손이 올라가다가도 그 뒷동작을 수습하기 위해 고민하다보면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 열 번 정도 무대에 섰을까. 방청석에서 그녀의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음반 판매에도 불이 붙기 시작했다. 회원수가 1000명 정도에 불과했던 그의 팬카페에는 벌써 3만명이 북적댄다.
“팬들이 팬카페에 글을 남기면 일일이 답글을 달아요. 요즘은 회원이 3만명을 넘어서니까 일일이 글 달기가 너무 부담스럽죠. 답글 달면 새벽 4~5시에나 잠이 들거든요. 숙제가 되버린 셈이죠.” 왜 그렇게 미련스럽게 사냐고 물었다. “안 그러면 벌 받을 거 같아요. 시간에 쫓기는 고3,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힘들어하는 대학 1학년생, 가정불화 때문에 집을 나왔다는 10대. 그런 사람들의 글을 지나칠 수가 없어요. 전 가식적이란 말, ‘쟤 변했어’라는 말 듣는 게 제일 싫어요.”
비음이 섞여 중성적인 듯하면서도 미끈하게 쏟아내는 창법과 20대 초반이라고 하기엔 영악하리만큼 여유있는 리듬감, 그녀는 타고난 발라드 가수다. 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듣고 부르며 자랐다고 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휘트니’였을까. 그녀의 감성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이들의 흔적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서 일종의 ‘데자뷔’를 경험한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는 어린 절 잡아당기는 거 같았어요. 다른 애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했을 때 전 휘트니 휴스턴이나 머라이어 캐리 노래 가사를 들고 다니면서 열심히 흥얼거렸어요. 교장실 청소를 하면서 대걸레 손잡이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뒤에서 교장선생님이 ‘넌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하냐’면서 공책을 엄청 집어주셨어요. 그 다음날 전 전교생 앞에서 ‘I’ll always love you’를 불렀죠. 그래서 R&B라는 장르는 제게 너무 자연스러워요. 어렸을 때 받은 영향이 평생 가는 거 같아요.”
그녀가 처음부터 가수로 활동한 것은 아니었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고 2학년 때 의류업체인 ‘스톰’ 모델선발대회에 나가 박정현의 ‘PS. I love you’를 불렀고 그녀의 끼를 알아본 심사위원의 소개로 모델활동과 더불어 본격적인 가수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모델로 활동한 경력이 있음에도 린의 1집 앨범 커버에는 그녀의 사진이 없다. 2집 앨범에서 그녀는 헐렁한 잠옷으로 온몸을 덮은 채 얼굴은 손으로 반쯤 가렸다. 168㎝·50㎏의 늘씬한 몸매와 갸름한 얼굴, 깎아놓은 듯 멋진 외모가 가수에게 재능이 된 시대에 자신의 비주얼을 활용하지 못하는 이 답답한 가수는 노래 못하는 동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글쎄요. 춤 되고 얼굴 된다고 다 뜨는 건 아니잖아요. 비주얼로 승부하든, 음악으로 승부하든 기본적으로 자기 음반을 낸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거예요. 컨셉트가 첫째고 음악은 그 다음이라고 해도 그래요. 노래를 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음악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의 노력과 재능이 부러워요.” ‘립싱크’에 대해서도 물었다. “저 그거 딱 한 번 해봤어요. 그런데 연습을 안해봐서 그런지 립싱크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립싱크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무대 위에 서서 노래하면 발 한 쪽 떼기도 힘들거든요. 격렬한 춤을 추면서 자기 호흡 하나하나를 기억해 립싱크 한다는 거 어려운 거예요. 제 노래엔 애드리브가 많은데 전 제 애드리브를 똑같이 못하겠어요. 립싱크 연습하느니 그냥 부르는 게 속 편해요.”
노래로 승부한다 할지라도 가창력 있는 여가수는 린뿐만이 아니다. 박정현, 박화요비, 이수영 등 쟁쟁한 선배가수들 틈새에서 린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까진 ‘신선함’으로 관심을 받았다면 이젠 이걸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계산을 하면서 활동을 한다면 생명력은 길어질지 모르겠지만 노래하는 제 마음은 순수하지 못할 거 같아요. 제가 자랑하고 싶은 건 ‘편안함’이예요. 높은 음 올라갈 때도 힘들어보이지 않고 휴식이 되는 노래요, 저다운 노래요.”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세종문화회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선희의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받았다면서.
프로필
생년월일 1981년 11월 9일
키·몸무게 168㎝·50㎏
학력 인창고 졸,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과 재학 중
가족관계 부모님, 언니
앨범 ‘Have You Ever Had Heart Broken?’ ‘Can U See The B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