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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꽃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양산박
2018년 12월 9 일 일요일 백두대간 22회차 마패봉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22회차 계획 : 하늘재 ~탄항산~부봉~마패봉~조령3관문 ~ 고사리 마을
백두대간 22회차 실행 : 평천2리~불당골~도토메기고개~주흘산~부봉~마패봉~조령3관문~고사리 마을
산행거리 : 약 14 km 산행시간 : 약 8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279411
거리 14.6 km
소요 시간 8h 24m 26s
이동 시간 6h 40m 43s
휴식 시간 1h 43m 43s
평균 속도 2.2 km/h
최고점 1,131 m
총 획득고도 817 m
난이도 힘듦
백두대간 (白頭大幹) 22 – 마폐봉(馬閉峰)
해너미
양산박
어둑해진 산그리메 뒤로 남긴채
오늘 하루 수고한 해 넘어간다
내일 다시 떠오르마 약속 안해도
아무도 의심않는 불멸의 진리
앞장과 뒷장 구분짓는 책갈피처럼
오늘과 내일 가르는 해넘이는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붉게 긴 꼬리를 감추며 사라져간다.
11월 15일부터 한달간 계속되는 산불방지기간 (산방기간)이라서 우리는 국립공원 탐방소가 있는 곳을 통해서 산행을 할 수 없다. 원래 하늘재에서 시작하여 탄항산으로 올라가야 하나 하늘재에 감시초소가 있는 관계로 우리는 백두대간과 별 관계없는 평천2리 농촌마을을 통과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평천리는 문경시에 속한 산골마을이다. 주변에 사과 과수원이 많이 보인다. 마을 뒤에 커다란 병풍처럼 주흘산이 서 있고 앞쪽으로는 꽤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평상시 평천리는 조용한 동네인듯 버스가 마을회관 앞에 정차하여 30여명의 회원들이 버스에서 내려 어슬렁 거려도 동네사람은 한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점촌에서 온 마을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나가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안보인다. 총대장님이 산길 들머리를 찾아서 먼저 산으로 올라가 신호를 보낼 때까지 우리는 마을회관 앞에서 서성거렸다.
마침내 산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신호를 받고 우리는 대오를 유지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불당골로 들어갔다. 우리가 이제까지 걸었던 등산로와는 사뭇 다르다. 그냥 동네 뒷산처럼 친근감이 느껴진다. 뚜렷한 길도 보이지 않지만 산 입구에 산행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주흘산까지 2.7 km 라고 표시되어 있다. 길가 작은 개울에는 얼음이 얼어 있고 산비탈 그늘진 곳에는 얇게 눈이 덮여 있다. 날씨는 더 없이 맑아 나뭇가지로 보이는 하늘이 가을하늘보다 더 깨끗하게 비친다. 정말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보는 것 같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갈거라는 예보에 모두 두겹 세겹 옷을 껴 입었으나 걱정했던 것보다 추운줄 모르겠다. 오르막 산길을 걸어 땀이 나기 시작하자 하나 둘 옷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상고대가 기대된다. 중턱쯤 올라가면 예쁜 상고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슴 한쪽이 부풀어 오른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은 덤으로 주어지는 큰 선물이다.
계곡길 따라 오르는 중간 중간에 돌로 쌓은 성벽 같은 것도 보이고 콘크리트로 계곡물을 막아서 만든 저수조 흔적도 보인다. 그리고 옛날 암자라도 있었을 법한 축대도 두세 곳 남아 있다. 이 계곡 이름이 불당골이라 혹시 이곳에 암자가 여럿 있어서 그리 부른 것일까. 축대가 있는 계곡의 끝에 이르자 갑자기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급하게 치솟는다. 곧바로 치고 오르기에는 힘에 부칠 정도라 선두대열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그나마 조금 완만한 경삿길을 만들면서 올라간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선 능선길에도 등로는 뚜렷하지 않다. 철쭉꽃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나 우리는 마치 오지산행을 하는 것처럼 나뭇가지를 피해가며 주흘산 쪽으로 진행해 나갔다.
계곡에 핀 얼음꽃
하늘은 차갑고 청명하다
원래 계획은 이렇게 도토메기재 능선으로 올라 평탄재로 넘어가서 체력이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탄항산까지 다녀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평탄재에서 대간길로 진행하는 것이었으나 산길 지도와 실제 상황이 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평탄재로 건너가는 대신 주흘산으로 오르기로 하였다. 주흘산은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기에 산행계획에서는 빠져 있는 산이다. 이 길을 따라서 주흘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듯 산길 주변은 마치 원시림 같다. 늙은 참나무와 물푸레나무 등 커다란 나무둥치가 여기 저기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른 산길에는 가느다란 로프가 매어져 있어 그나마 산객의 안전을 도모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발걸음이 늦어진다.
가파른 산길을 비스듬히 빗겨서 올라간다
도토메기재에서 주흘산으로 치고 올라가기 전 전의를 불사르며
마침내 평천2리를 출발한지 거의 3시간이 지난 12시 45분 주흘 영봉에 올랐다. 주흘영봉(主屹靈峯)이라 멋지게 새겨진 정상석을 만났다. 주변에서 높이 우뚝 솟아 영남의 진산이란 뜻으로 주흘산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사실 영봉이라는 봉우리 이름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신령이 깃든 산이니 당연히 높으면서도 빼어난 풍광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주흘산이란 이름에 들어간 산 우뚝 솟을 흘(屹)자도 산이름에 흔하게 쓰이지 않는다. 포천에 있는 각흘산 (角屹山 838m), 남해의 설흘산 (雪屹山 482 m) 등 주변에서 우뚝하게 솟아 있어 이목을 끄는 산에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듯 주흘산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발 아래 아침에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던 평천 2리 마을을 비롯하여 문경시에 속한 크고 작은 산골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그 너머로는 큰 백두대간 산줄기가 포암산과 대미산을 이어간다.
주흘선으로 오르는 비탈길에서
조망이 트인 곳에서 바라본 포암산 (오른쪽) 과 월악산 영봉 (왼쪽 멀리)
끝없이 이어지는 험한 비탈길
주흘영봉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이번 산행의 목표인 백두대간길을 걷기 위해 다시 뒤돌아 내려왔다. 올라올 때 지나쳤던 갈림길을 지나 조금 더 내려서면서 앞서 가던 선두팀이 길에서 벗어난다. 응달져서 눈이 약간 쌓여 있는 곳으로 조금 내려서더니 점심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는다. 이제 오후 1시가 넘었으니 모두 에너지를 보충할 참이다. 뒤따르던 별동대 팀도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별동대장이 겨울채비로 비닐로 된 바람막이 텐트를 준비해 왔다. 여럿이 안에 들어가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는데 텐트 안이 훈훈해진다. 짧은 시간에 라면과 과일 등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다. 길 아래 내려서서 점심을 먹던 선두팀도 오래 앉아 있기에는 추운 날씨라서 그런지 금방 자리에서 일어선다. 추운 겨울에는 어느 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서 점심을 길게 먹기는 불편하다. 그냥 걸으면서 행동식이나 간단한 음식을 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흘영봉 앞에서 기념사진을 쵤영하며
주흘영봉에서 탁 트인 조망이 펼쳐진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바람이 불지 않는 장소를 찾아서
짧은 식사시간을 뒤로 하고 간간이 터지는 포암산쪽 조망을 감상하면서 주흘능선을 걷는다. 그리고 오후 2시 10분 마침내 백두대간 하늘재 삼거리를 만났다. 하늘재쪽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나무계단을 아쉬움속에 바라보고 우리는 부봉으로 이어지는 직진코스를 걷는다. 하늘재 삼거리에서 하늘재까지는 3.6 km 밖에 안되는 짧은 거리다. 그 짧은 길을 우리는 거의 5 km 를 길게 돌아서 왔다. 산불예방기간에 걸려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이렇게 둘러 오는 통에 탄항산 짧은 구간을 놓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마침내 하늘재에서 올라오는 대간길을 만났다
탄항산 하늘재로 이어지는 길 - 언젠 또 이길을 찾아 올 것인가
부봉 (釜峰)
부봉은 여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부봉은 6개의 암릉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봉우리들이다. 6개 봉우리 중에서 제1봉만이 백두대간에 걸쳐 있고 나머지는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다. 부봉삼거리에 배낭을 내려 놓고 잠시 부봉에 올라 탁 트인 조망을 둘러 보았다. 위험구간을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철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2년전 이곳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계단이다. 부봉 정상석 앞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봉분이 닳아서 자취가 희미해져가는 무덤 한기가 놓여 있다. 누군가 후손이 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며 명당자리를 찾아 이 험한 암봉까지 시신을 운구해 무덤을 쓴 것일까. 그 후손들은 조상의 바램처럼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무엇보다 무덤속에서 잠든 고인은 밤낮 저 아스라이 펼쳐진 월악산과 포암산 등 아름다운 경관에 흠뻑 취해 있을 듯 싶다.
부봉 왼편으로 지난회차에 걸었던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부봉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두고 부봉에 오른다.
부봉(가마釜 봉우리峰)은 풀어 쓰면 가마봉이다. 산이름이나 지역명을 대할 때면 눈 앞이 아득해질 때가 많다. 누군가 고심하면서 산이름을 지었을테고 그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 그렇게 불러 왔을 터인데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지은 것인지 뜻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가마부(釜)자가 들어간 산이름 또는 지역명으로 부산(釜山)이 있다. 인터넷에 떠 돌아다니는 산이름의 유래를 보면 하나같이 산모양이 가마솥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나와 있다. 부산의 경우는 부산시 동구에 있는 증산(甑山)의 옛이름인 부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봉우리 모습이 솥처럼 생긴것인지 그리고 그런 연유로 부봉이라 불리는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부봉
부봉에서 바라본 포암산 월악산
다른 유래는 순수 우리말인 ‘곰’이라는 말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 민족의 탄생신화에도 등장하는 동물인 곰은 원래 높다 또는 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신령스러운 산 이름에 ‘ㄱ.ㅁ’자를 넣어 불렀는데 이것이 지역에 따라서 곰, 감, 검 등으로 바뀌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주방도구인 ‘가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한다. 한글이 없던 시절 이를 문서에 표기하면서 한자를 빌려 썼는데 가마라는 훈(訓)을 가진 부釜자를 써서 부봉이라 불렀다고 추정한다. 기록에는 없지만 이 산을 가마뫼 또는 가마봉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참조.
대간길 낙엽위에 서설이 내리고 그 길은 주흘산성을 따라 이어진다.
동암문
부봉 여섯을 다 올라 보면 좋겠으나 우리의 산행 목적이 백두대간을 걷는 것인 만큼 제 1 봉에 올랐다가 곧바로 내려와 부봉삼거리에서 다시 마패봉 쪽으로 향한다. 마패봉까지 4 km 남았다. 시간은 오후 3시가 지나 이제 한겨울을 맞은 짧은 해의 꽁무니라도 보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응달에는 낙엽위에 서설이 살포시 옆여 있어 앞서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선명하게 남는다. 산길은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 석성(石城)을 따라간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4년 새재 제 2관문인 조곡관 완성했던 신충원에 의해 시작되고 1708년 제 1, 제3관문이 완성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이 주흘산성도 그 무렵에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변변한 기계가 없던 시절 크고 작은 돌들을 손수 날라다 긴 성벽을 쌓았던 당시 민초들의 노고가 눈에 선하다.
마패봉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까지 이어지는 주흘산성
길가에는 수백년 넘었을 듯한 소나무가 여럿 보인다.
북암문
산성은 마폐봉으로 가는 노르막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길게 이어진다. 수백년이 흘렀슴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성벽 중간에 동암문과 북암문이라는 두개의 암문을 지나는데 암문(暗門)은 누각이 있는 일반 성문과 달리 적이나 일반인들은 그 위치를 찾지 못하도록 성벽으로 이어진 곳에 별도의 누각이 없이 성벽 아래에 작은 구멍을 내어 만든다. 이곳을 알고 있는 아군들만이 비밀스럽게 들락거리면서 물자를 운반한다고 한다.
갈길은 멀고 날은 저물고 - 옛날 나그네의 심정이 이랬을까 ?
이 대간의 능선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잘은 모르겠지만 수령이 수백년은 되어 보인다. 뿌리를 가능한 한 멀리 벋으면서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겨울에도 푸른빛을 띠어 곧은 선비의 기상을 보인다고 징송받는 나무다. 다른 종류의 나무는 절대로 자라날 수 없는 암릉에도 솔씨가 떨어져 갈라진 바위틈을 헤집고 자라나는 소나무를 보면 그 강한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렇다고 소나무는 아무렇게나 심어도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착박한 산에 자라는 소나무를 캐어다 뜰에 심으면 대부분 얼마 못가서 죽고 만다. 그만큼 몸이 고되고 삶이 팍팍해도 자신이 나고 자란 토양에 적응하며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왔단 우리의 조상님들과 삶을 같이 해온 나무답다. 주흘산성을 쌓을 때부터 묵묵히 저 자리에 서서 많은 사연을 안고 있었을 나무에 잠시 기대어 긴 역사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본다.
오후 5시 5분 드디어 마패봉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시작되는 해넘이의 장관을 보았다.
오후 5시가 다 되어갈 즈음 마패봉까지 600 미터 남은 지점을 통과한다. 산너머로 비치는 저녁 햇살이 능선에 서있는 나목 사이로 맑은 빛으로 새어 나온다. 등산앱을 들춰보니 일몰시간이 5시 11분이라 한다. 산에 다니면서 해넘이 풍경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은 꼭 일몰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앞서가는 사람들께 양해를 구하고 그들을 앞질러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산 너머로 떨어지기 전 마치 성냥불이 꺼지기 전 잠깐 확 타오르듯이 온몸을 불사르며 마루금에 걸쳐 있는 해를 보았다. 하늘엔 어두운 구름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해를 덮어 버리려 한다. 두꺼운 구름과 산그림자 사이에 빨갛게 벌어진 입안 가득히 불덩어리 구슬을 머금고 있는 듯 하다.
어느 영화 감독인들 이런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까?
자연은 우리를 사진삼매경에 빠지게 한다.
해가 아직 다 지기 전에 뒤에 따라오던 별동대원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입을 다물줄 모른다. 차가와진 날씨에 손이 시려오는 것도 모른 채 우리는 한동안 산넘어로 점점 사라져가는 햇빛을 아까와 하며 조금이라도 더 바라볼 요량으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서산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하나 더 이상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해넘이가 긴 여정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가 버렸다.
성냥불이 꺼지기 전 마직막으로 활짝 타오르듯 우리에게 깜짝쇼를 연출한다.
아침부터 추위에 떨기도 하고 급경사 오르막 산길에 폐가 시리도록 숨가쁘기도 했던 하루의 수고를 저 해넘이 풍경이 충분히 보상해주는 느낌이다. 감동이 있는 영화는 끝나고도 영화관 의자에서 일어서지 못한 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듯이 넓은 하늘을 활활 태우던 빨간 불덩이가 산 넘어로 완전히 숨어버린 뒤에도 마음은 서둘러 산을 내려가는데 몸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산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금방 어두워진다.
마패봉(馬牌峰 920 m)에서 새재 조령 3관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암릉으로 이루어진 비탈길이 제법 험해서 밧줄을 잡고 내려가면서도 조심해야 한다. 마패봉의 이름에 관한 유래는 다양하게 전해진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제3관문에 마패를 걸어두어서 마패봉이라 부른다는 황당한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장 흔하게 언급되고 있다. 원래 이름은 마역봉인데 역자가 문門자에 가운데 힘력力자가 들어간 글자를 썼다. 이 글자는 남자의 성기를 의미하는 글자인데 이 산의 모습이 마치 말의 성기처럼 우람하게 생긴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후 1925년 이후에는 산이름이 너무 외설적이어서 역자를 모양이 닮은 폐(閉)자를 써서 마폐봉이라 불렀다 하나 최근까지도 정상석에 ‘마역봉’이라 쓰여 있는 것을 보아 원래의 산이름 마역봉은 계속 불리어 온것으로 보인다.
뒤돌아본 마폐봉 ( 마역봉)
건너편 깃대봉이 실루엣으로 비친다.
완전히 어둠속에 숨어버린 산길을 손전등으로 밝히면서 2주전에 깃대봉에서 내려섰던 조령 제3관문에 내려섰다. 벌써 오후 6시가 다 되어간다. 이제 공식적인 산행을 다 마쳤다. 지난 번에 걸었던 넓고 편한 길을 걸어 고사리로 내려가면 된다. 밤공기가 차갑다.
조령 3관문에서 대간 산행을 마친다.
30분 정도 걸려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긴 하루의 여정을 끝마쳤다. 넓은 주차장에는 자유인 백두대간 22기 팀이 타고 온 버스만 덩그라니 서 있고 그 옆에 하얀 입김을 뿜어가면서 회원들이 라면을 끓여 먹는다.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막걸리잔에 담긴 하루의 무용담을 띄워 후루룩 마셔 버린다. 그 곁을 애기 고양이 다섯 마리가 음식 찌꺼기를 구걸하려는 듯 어슬렁 거린다. 차가와진 밤공기가 더욱 진한 입김을 만들어 낼 즈음 우리는 긴 산행으로 지친 몸을 버스에 싣는다. 마패봉에서 보았던 해넘이 풍경을 떠올리며 서울을 향해 떠난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첫댓글 상세하게 기록 하신 산행기 감명깊게 잘 봤습니다.수고 하셨습니다.
생생한 기록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