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 수요일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 홍한별 옮김
지우개
어릴 적 미국 영화에서 연필 글씨를 쓰다가 연필 뒤쪽에 달린 지우개로 쓱쓱 글자를 지우는 장면이 그렇게 신기했다. 내가 가진 문화연필이나 동아연필에 달린 지우개는 글자를 지우기는커녕 까만 줄을 만들다 종이를 찢어먹기 일쑤였으니까. 그 즈음 내 주변 지우개들은 죄다 단단했고 글자가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80년대 ‘잠자리’가 그려진 지우개를 만나 영화 속 지우개의 실재를 경험했고 깨끗이 지우고 싶은 나의 소소한 욕구는 충족되었다.
살다보면 지우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이제 좋은 지우개가 흔해져서 잘못 쓴 글자는 쉽게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말이나 행동, 기억은 싹 지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 기억도 상대의 기억도 지울 수 없고, 가끔 어떤 것은 사실과 다르게 저장되어 인생을 비틀고 옥죈다. 인생에도 질 좋은 지우개가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에서 우리는 나와 타인의 과오를 떠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번쯤 환경을 옮겨 나의 과거를 모르는 이들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라는 족쇄에서 풀려난 홀가분함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최근에 읽은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빌 펄롱의 어머니는 미혼모였다. 지금은 인식이 조금 바뀌고 있지만 미혼모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일랜드에서든 한국에서든 쉽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상상하듯 펄롱도 영국이나 더 먼 미국으로 도망갈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는 자신의 태생을 아는 사람들의 비웃음과 뒤 담화를 묵묵히 감수하며 사는 삶을 택했다. 나아가 아내 아일린에게 ‘속이 너무 무르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불쌍한 아이를 보면 차에 태워주고, 가진 잔돈을 나눠 주고, 땔감을 거져 주었다. 인정 많은 소시민의 모습이다. 아내 아일린은 남편 펄롱은 큰 집에서 연금 받으며 평생 걱정, 고생 없이 편하게 산 미시즈 윌슨의 그늘 안에서 자라 딱히 어려움을 모르고 커서 오지랖으로 가족을 넘어선 이들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펄롱의 어머니가 미혼모였고, 펄롱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펄롱의 생각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성인이 된 펄롱에게, 야무진 아내와 다섯 명의 딸을 둔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가정의 가장, 성실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인 펄롱에게 미혼모 어머니, 존재조차 모르는 아버지가 결핍이 될까 생각할 수 있다. ‘그 오래 전 사건이 상처일 수 있겠으나 세월이 흘렀고 지금 사랑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그런 결핍은 사라지지 않을까 ?’라고 나도 생각했다. 그래서 방송이나 신문 기사에서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이 한국에 와서 생부, 생모를 간절히 찾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드러나는 흔한 입양 이야기는 미혼모가 되었고 가족들의 보호와 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남편도 없이 아이를 키우기에는 세상의 편견과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 입양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간혹 미혼모의 부모가 딸 몰래 입양을 보내버린 경우도 있다. 지금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왜 슬프고 아픈 과거를 찾고 들추려는 것일까? 알게 되면 마음 아프고 부끄러울 수 있는데, 차라리 모른다 하고 알려하지 말고 덮고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이 부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는 까닭은 우리 부부에게 생후 2개월에 입양한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우리 바람대로 건강하고 밝게 자랐고 우리 가족에게 많은 기쁨과 사랑을 주고 있다. 입양모인 내 입장에서 아들에게 친생 가족에 대해 알려주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의 이해력만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내 본심 깊숙한 곳에서는 우리 아들의 태생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없는 일로 만들어버리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우개로 그 순간들을 싹 지워버리고 거짓말이지만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성인이 된 여러 국내 입양인, 해외 입양인의 의견을 들어보니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도망가고 지우는 대신 사실과 직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해결책이라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수 년 전 30대의 성인 입양인을 만났는데 담담하고 위트 있게 자신의 삶을 나누고 모임을 마친 후에는 입양엄마와 사이좋게 주차장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입양 사실을 30대에 알게 되었고, 그 후 생모를 찾고 싶은 마음을 입양엄마에게 전하고 생모를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생모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불편하고 의아했다.
그녀는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었고, 특히 아버지로부터 편애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고, 공부를 아주 잘 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입양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순간 석연치 않은 몇 가지 기억들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생모를 만난 첫 순간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충전지가 풀(full)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깔려있던 불안감이 해소되고 쉽게 방전되던 자신의 감정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과 외모가 너무 닮은 엄마, 30년 넘게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데, 미묘하게 겹치는 감정선과 몸짓들에 자신도 놀랐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입양한 아들을 사랑하던 나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프게 들렸다. 나의 사랑과 별개로 우리 아들에게는 내가 채워줄 수 없는 자리가 있구나, 생부, 생모의 자리가 있구나. 그 자리를 무시하면 우리 아들은 배터리가 10%, 20% 만 충전된 채로, 그래서 힘들게 힘들게 버티며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녀가 특수한 경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후 접한 여러 성인 입양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생부, 생모를 간절히 찾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이유가 비슷했다.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삶은 엄연히 다르다.
펄롱은 자신의 상처를 회피하거나 지우지 않고 직면을 택했다. 그런 펄롱이기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우면서 ‘애 잘못은 아니잖아.(21쪽)’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만류하고 회유했지만 수도원을 찾아가 세라를 구해낸 것도 미혼모 엄마를 둔 펄롱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펄롱이 세라를 구하겠다고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네드’가 자신의 생부임을 알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네드는 자신의 곁에서 내내 따뜻하고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펄롱은 자신의 40년 인생에 네드의 존재를 새롭게 끼워넣으며 자신을 재정립했을 것이다. 감춰졌던 아버지의 존재를 대면한 후 펄롱은 자신의 주위를 맴돌던 불안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 불안은 우울한 날씨 때문도 아니고,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도 아니었다. 그 순간 펄롱은 내가 아는 그 입양인의 말처럼 자신의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되는 느낌을 받았고 펄롱의 심장은 불안 대신 세상의 어떤 반대도 이겨낼 용기로 충만해졌다. 그래서 펄롱은 세라와 함께 가볍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었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120쪽)’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얻은 자의 모습이다. 펄롱의 해방이 나에게도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첫댓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우개를 찾고 싶다는 표현이 좋아요.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이야기 나누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렇게 잘 들었다는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