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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방울의 힘
이런 질문 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는 목표에 우리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이 우리 모두의 진정한 관심이라면, 교회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 David Platt이 이 질문을 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책을 썼습니다. 제목이 『Radical Together』입니다. “근본적인” 혹은 “철저한”리라고도 번역되는 Radical이란 단어는 라틴어 “라딕스 radix”에서 파생되었는데, 영어 권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들추어 내고 대의에 철저하게 헌신하는 이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킵니다. [1] 『Radical Together』란 근본적인 것에 하나됨입니다. ”부제가 “Unleashing the People of God for the Purpose of God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내적 힘의 분출”입니다. David는 기독교인의 하나님의 힘을 안데스 산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안데스 산맥의 맨 꼭대기에는 어름들으로 덮여 있습니다. 낮에 강렬한 햇빛이 내리째면 얼음에서 물한 방울이 만들어져서 떨어집니다. 그 방울방울 천천히 굴러오면서 다른 방울들과 합쳐져입니다. 계속합쳐지면서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만듭니다. 이 물줄가 흘러 내리는 동안 더 많은 물들이 합류합니다. 속도가 붙습니다. 힘이 생깁니다. 수천 피트를 내려옵니다.. 나중에는 수 마일을 흐릅니다. 한 방울의 물들이 모여서 물줄기를 만들었는데, 이제 지구에 하나의 강을 만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아마존 강을 만듭니다. 아마존 강에서 어마어마한 물이 대서양으로 흘러가는데 그 힘이 엄청납니다. 아마존 강에서 흘어 내리는 물의 힘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열개가 합쳐서 흐르는 물의 힘보다 더 강렬한 힘이 있답니다.
David Platt은 앤더스 산 꼭대기의 강렬한 햇빛을 밭고 만들어진 물한 방울을 이야기를 끝내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이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산다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이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답합니다.
“But as men and women who are surrendered to the person of Christ join together in churches that are committed to the purpose of Christ, then nothing can stop the spread of the gospel to the ends of the earth”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자신을 완전 순종하는 남녀가, 그리스도의 목적에 헌신하는 교회에서, 하나로 뭉친다면, Then 그 무엇도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2]
우리 한 사람은 작은 물방울과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우리 같은 연약한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에게 계속적으로 생명의 빛을 비춰 주십니다. 이제, 그 빛을 받은 우리가 하나가 됩니다. Then,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물방울, 생명의 물망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을까요? “하나 됨의 비밀 The Secret to BE UNITY”은 무엇일까요?
Ephesians 4:3-7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
4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게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하나됨은 나의 책임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절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원어적 의미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명하여서 은혜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3]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소중합니다. 마치 아마존 강의 힘을 만들기 위해서 안데스 산 꼭 때기의 물한 방울이 소중한 것처럼, 교회가 세상을 변화 시키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은혜의 빛을 발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NLT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However, he has given each one of us a special gift,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각에게 특별한 은혜을 지금 주시고 계신다.”현재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4]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빛을 계속적으로 비추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나 될 때,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힘있게 사명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될 때, 우리 개인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에 있어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관성 있게 하나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3절을 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
Make every effort to keep yourselves united in the Spirit, binding yourselves together with peace [NLT].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가 되게 하는 주체는 우리들이 아니라 성령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성령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5] 대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하나되게 한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3절 뒷 쪽을 보십시오. “힘써 기켜라”고 명령합니다. 영어 성경은 “Make every effort to keep yourselves.” “모든 노력으로 네 자신을 지켜라”고 번역합니다. “Make every effort”로 번역된 헬라어 “스포다존테스 spouda,zontej”는 모든 부지런함으로 하라는 뜻입니다.[6] 그래서 NASB 성경은 “being diligent to preserve the unity of the Spirit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유지하도로, 너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것은 곧 나의 책임인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게 되면, 하나님은 유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각 개인이 무엇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해야 할지, 그 요소들을 4-6절에 언급니다.[7]
첫째는, 성령의 인도 받음을 학습해야 합니다
지켜야 할 첫째가 무엇입니까? 4절을 주목해 봅니다.
4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There is one body and one Spirit, just as you were called in one hope of your calling [NKJV]
우리가 힘써서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 “the only way”는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말씀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이 복수 (many)가 아닙니다. 단수 (one)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하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은, 목사님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장로님께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집사님께는 또 다르게 말씀하셔서, 교회가 나뉘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두에게 똑 같은 비전을 주시고, 똑 같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모두가 그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모두가 힘써서 지켜야 할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저와 여러분 모두의 삶에 친밀하게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모두에게 동일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6절을 읽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unselor to be with you forever [NIV]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 즉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그리고 오순절날 성령님은 교회에 임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목적을 향해 하나 됩니다. 한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말씀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정당성을 주장 말고 위대한 일을 하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길에 대하여, 중국 교회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 큰 교훈을 남겨 준, 워치만 니는 오늘 본문을 설교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한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자기 교회의 한 집사님이 어느 해 여름에, 자기 논에 가서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날은 물이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름철 물 속에서 성장하는 나락은 자라기 때문에, 언제 물을 논에 가득 채워 놓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의 논에 물이 다 빠져 버린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 염려하면서 이곳 저곳을 살피는데, 옆 논의 주인이 자기 논두렁의 한 쪽을 삽으로 물길을 내서, 자기 논으로 물을 빼내 버린 것이었습니다. 괘씸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시 물을 원상대로 회복시켜 놓았습니다. 그 이튿날 논에 갔는데, 물이 또 다 빠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괘씸한 양반이 있나?” 너무 화가 났지만 참고 다시 물을 자기 논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그 다음날 가 보니, 또 물을 훔쳐 같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웃 논 주인을 찾아 가서, “당신 그렇게 하면 안된다” 따끔하게 혼을 내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맘이 편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가 정당한 일을 했는데, 왜 마음이 편지 않습니까?” 마음에 이런 깨달음이 왔답니다. “너는 왜 정당성만 주장하느냐! 내가 너에게 보여 줬던 것처럼, 위대한 삶을 살라!” 이 집사님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논에 가서, 자기 논둑을 터서 이웃 논에 물을 대어 줬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기 맘 속에 그렇게 큰 기쁨이 일어나더라는 것이더랍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몇 일이 지나서 이웃 논 주인이 자신의 집을 찾아 왔더랍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나 같은 사람의 논에 스스로 물을 대어 줬습니까?”라고 묻더랍니다. 그날, 이 집사님은 자신의 간증을 들려 줬고, 이웃 논 주인은 예수님을 영접했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 아닐까요? 정당성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릅니다. 나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목적을 묵상합니다. 이때,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충만하고 성도의 삶에 은혜는 넘치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의 섬김을 학습해야 합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첫 번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 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힘써 기켜라”고 명령합니다. “Make every effort to keep yourselves.” “모든 노력으로 네 자신을 지켜라”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마음을 다 해 지켜야 하는 것은 “섬김”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그 섬김을 우리 삶 가운데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을 봅니다.
5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There is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 [NLT],
신약 성경에서 “주, LORD”로 해석되는 “ku,rioj”는 예수님이십니다.[9] 삼위 일체 중에 성령이 한 분이듯이 예수님도 한 분입니다. 하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삼위 중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역할은 섬김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뤄졌습니다. [10]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마가복음 10:45절을 주목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For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NRSV].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인생 사명문 (Mission Statement)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미션은, “섬김”이었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부르면서 “인자”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신자 Son of God”라고 부르지 않고, “Son of Man”인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섬김의 절정은 자신의 목숨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인류에 구원이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생명을 내 놓는 섬김을 통해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린 이곳에서 섬김의 핵심적 교훈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섬김을 통해서 죽은 영혼이 살아 나는 것입니다. 나의 섬김을 통해서 연약[11]한 인간이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예수님의 이 섬김의 성품을 학습하게 된다면, 우린 하나 될 줄 믿습니다.
세족식 (요 13:4-15)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섬김이란 내 목숨을 내어 주는 거창한 것이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평범하게 작은 일을 통해서 섬김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저녁 식사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샌달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던,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밖에 나갔다가 들어 오면, 발에 묻었던 먼지와 땀을 물로 씻어 주는 것이 섬김의 최고 표현이었습니다. 그날 제자들과 저녁을 하게 된 시간에,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담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제자들은 죄송하여 안절부절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신 다음에, 자신이 왜 섬김을 실천했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14, 15절을 읽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Now tha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should wash one another's feet.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NIV].
그날 저녁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셨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섬김을 통한 하나됨이었습니다. 섬김으로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의 주와 선생이 되어 이렇게 너희의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가 목숨을 던져서 섬김을 실천할 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작은 것들을 통해서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섬김의 효과는 생명을 살리고, 공동체를 튼튼히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Make every effort to keep yourselves”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학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 우리가 모든 노력으로 지켜야 하는 첫 번째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는 삶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순종의 삶을 우리 삶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6절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학습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든든히 묶습니다. 6절은 이 원리를 밝힙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게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above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 [NRSV].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이 문장에서 강조하는 단어는 아버지입니다.[12] 성령님도 하나시며, 주님도 하나시며,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이 세 위 (part)가 이 교회를 통해서 하늘의 위대한 목적을 이뤄 나가십니다.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서, 성령님의 핵심적인 기능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고, 예수님의 사명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 버려 섬기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사명은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두 남녀가 사랑을 하면, 생명이 태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하게 되면, 영적인 생명이 살아 납니다. 사랑은 모든 생물을 살리는 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 하도다” (요일 4:11). 루터는 “사랑은 우리 안에 발견되는 하나님의 모습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노력으로 서로 사랑을 실천한다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가운데서 사랑을 실천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자신의 명저 『Mere Christianity, 순전한 기독교』에 서, 사랑을 학습해 볼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삶의 원리를 소개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자신이 좋아 하는 몇몇 사람만 친절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며,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좋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 친절을 실천할 때, 나는 이 사람만큼은 사랑할 수 없어,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을 친절히 대할 수가 있어라고 생각했던 사람마저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똑 같은 영적 법칙이 정반대 방향으로 무섭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학대할 때, 처음에는 그들이 미웠기 때문에 학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학대하다 보니, 유대인들을 점점 더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워할수록 더 잔인해지고, 잔인할수록 더 미워하게 되는 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친절하게 살수록 더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14]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을 실천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랑을 할 필요도 없고, 처음부터 생명을 주는 사랑은 할 수도 없습니다. 작은 선물 하나를 해 주는 입니다. 말 하나부터 친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아멘
516 (265) “옳은 길 따라라 의의 길을”
공동 기도 제목
1 힘써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생활 하게 하옵소서.
2 힘써서 예수님 보이셨던 섬김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3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3]Bruce B.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Bible Commentary: Ephesians (Wheaton: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1996) 79.
[4]T. K. Abbott, Epistles to the Ephesians and to the Colossians,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Edinburgh: T. & T. Clark, 1897, latest printed 1968), 110. Cf. 롬 12:4-6; 고전 12:4 ff.
[5]Barton, Mark, 75. Barton은 하나됨의 주체는 성령님이심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Such unity is only possible when the Holy Spirit acts in believers’ lives—the Spirit originates and sustains oneness among believers.”
[6]Abbott, the Ephesians and to the Colossians, 106. 다음 구절들의 번역들을 비교하라: “study” (딤후 2:15); do your diligence (딤후 4:9, 21); “be diligent” (딛 3:12; 벧후 3:14).
[8]F. F. Bruce, The Gospel & Epistles of Joh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3, edition published 1994), 301-02. 보혜사로 번역된 “para,klhtoj”는 옆에 있는 돕는 자 (helper), 방어자 (defender), 변호자 (advocator), 상담자 (counsellor)을 뜻한다. 현재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파라클레토스이다.
[10]인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성부, 성자, 성령, 이 세분의 서로 다른 사명을 통해서 이뤄졌다. 인류 구원의 질서에서, 본문을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기능은 섬기는 것이었다.
[11]I. H. Marshall, “Son of Man,” in Dictionary of Jesus and the Gospels, Joel B. Scot McKnight, I. Howard Marshall, editors, (Downers Grove, Illinois/ Leicester, England: Inter Varsity Press, 1992), 776. Marshall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인자”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he speaks of the mission of the Son of man as being to serve others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and he speaks of himself as the Son of man in references to his impending betrayal and arrest (막 8:31; 9:9, 12, 31; 10:33, 45; 14:21a, b, 41).”
[13]Handley C. G. Moule, Ephesian Studies: Expository Reading on the Epistle of Saint Paul to the Ephesians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00), 179. Moule은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Of all true unity, one God and Father of all, of all His individual children equally, of all to whom, in His Son, He has ‘given authority to become children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the name’ of Christ (John 1:12); the Father who is over all His people, presiding, ruling, owning, and, through them all, working out His will by them as His means, and in them all, dwelling in their hearts, and in their community, as in His shrine, His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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