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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5. 如理實見分](사실과 진리 그대로를 바르게 통찰하는 가르침)
1. tat kiṃ manyase, Subhūte,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aḥ?
2. Subhūtir āha: no hīdaṃ, Bhagavan, na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ah. tat kasya hetoḥ?
3. yā sa Bhagavan lakṣaṇa-sampat Tathāgatena bhāṣitā, saiva alakṣaṇa-sampat.
4. evam ukte Bhagavān āyuṣmantaṃ subhūtim etad avocat:
5. yāvat Subhūte lakṣaṇa-sampat tāvan mṛṣā,
yāvad alakṣaṇa-sampat tāvan na mṛṣeti
6. hi lakṣaṇa-alakṣaṇataḥ Tathāgato draṣṭavyaḥ.
1.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相의 完全함으로 보아야 하는가?”
2.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如來는 相의 完全함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3. “세존이시여, 如來께서 설하신 그 ‘相의 完全함’은 바로 ‘無相의 完全함’입니다.”
4.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세존께서 壽命長者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5. “수보리야, 相의 完全함이 있는 한 그것은 虛妄한 것이다. 無相의 완전함이 있는 한 그것은 虛妄하지 않다.”
6. “그러므로 如來는 相과 無相 양쪽을 超越한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告須菩提: “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이중표 교수 해석]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냐? 특징을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볼 수 있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특징을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특징을 구족했다.’라고 하신 것은 사실은 구족한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세존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특징을 구족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여래가) 특징을 구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라고 실로 이렇게 ‘(여래의) 특징이란 어떤 특징도 구족하지 않은 것’으로 여래를 보아야 한다.”
[전체 핵심 의미]
👉 여래는 어떤 ‘相’으로도 固定될 수 없으며, 相이라고 해도 그것은 實體가 아니라 條件的 顯現이고, 無相이라고 해도 그것에 執着하면 역시 如來를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如來는 相과 無相을 모두 超越한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한 줄 요약]
👉 “如來는 相에도, 無相에도 머무르지 않는 超越的 實在로 보아야 한다.”
[금강경 제10. 莊嚴淨土分](정토를 장엄하는 장)
Bhagavān āha: tat kiṃ manyase Subhūte, asti sa kaścid dharmo yas Tathāgatena Dīpaṅkarasya Tathāgatasya arhataḥ samyaksaṃbuddhasya antikād udgṛhītaḥ?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디팡카라 佛・아라한・正等覺者로부터 어떤 法(진리)을 따로 얻은 것이 있다고 보겠는가?”
Subhūtir āha: no hidaṃ Bhagavan, na asti sa kaścid dharmo yas Tathāgatena Dīpaṅkarasya Tathāgatasya arhataḥ samyaksaṃbuddhasya antikād udgṛhītaḥ.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디팡카라 佛・아라한・정등각자로부터 어떤 법(진리)을 따로 얻은 것은 없습니다.”
Bhagavān āha: yaḥ kaścit Subhūte bodhisattva evaṃ vadet: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이렇게 말한다면…”
aham kṣetra-vyūhān niṣpādayiṣyāmī-ti, sa vitatham vadet.
tat kasya hetoḥ? kṣetra-vyūhaḥ kṣetra-vyūha iti Subhūte ’vyūhās te Tathāgatena bhāṣitāḥ. tenocyante kṣetra-vyūhā iti.
내가 국토(佛土)를 장엄하겠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수보리야, ‘국토의 장엄’이라는 말은 사실 장엄이 없는 것을 여래가 그렇게 이름 붙여 말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것을 ‘국토의 장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tasmāt tarhi Subhūte bodhisattvena mahāsattvena apratiṣṭhitaṃ cittam utpādayitavyam, yan na kvacit-pratiṣṭhitam.
na rūpa-pratiṣṭhitaṃ cittam utpādayitavyam,
na śabda-gandha-rasa-sparśa-dharma-pratiṣṭhitaṃ cittam utpādayitavyam.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 마하살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어떤 곳에도 固定되지 않는 마음이다. 色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소리(聲)・향기(香)・맛(味)・촉감(觸)・법(法/槪念)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 된다.
tad yathāpi nāma Subhūte puruṣo bhaved upeta-kāyo mahā-kāyaḥ, yat tasya evam-rūpa ātmabhāvaḥ syāt, tad yathāpi nāma Sumeruḥ parvata-rājaḥ, tat kiṃ manyase Subhūte, api nu mahān sa ātmabhāvaḥ bhavet?
수보리야, 마치 어떤 사람이 있어 몸이 크고 장대한 존재라고 하자. 그와 같이 어떤 相과 모습의 ‘自我 存在’가 있다고 한다면, 또한 마치 수미산이라는 山王과 같다고 하자.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한 자아의 존재는 과연 크다고 할 수 있겠는가?
Subhūtir āha: mahān sa Bhagavan mahān Sugataḥ sa ātmabhāvaḥ bhavet.
tat kasya hetoḥ? ātmabhāva ātmabhāva ātmabhāva iti Bhagavan a-bhāvaḥ sa Tathāgatena bhāṣitaḥ. tenocyate ātmabhāva iti.
na hi Bhagavan sa bhāvo na-abhāvaḥ. tenocyate ātmabhāva iti.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크고 위대한 분이시며 선서(善逝)로, 그분은 그러한 ‘자아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자아 존재’라는 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시기에 본래 ‘非-存在(實體가 없음)’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단지 ‘자아 존재’라고 부를 뿐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그것은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아 존재’라고 부를 뿐입니다.”
佛告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昔在然燈佛所, 於法有所得不?” “世尊! 如來在然燈佛所, 於法實无所得.”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則非莊嚴, 是名莊嚴.” “是故須菩提!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无所住而生其心. 須菩提! 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이중표 교수 莊嚴淨土分 전체 해석]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냐? 여래가 옛적 연등불, 아라한, 등정각(等正覺)으로부터 얻은 그 어떤 法이 있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연등불, 아라한, 等正覺으로부터 얻은 그 어떤 법도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어떤 보살이든, ‘내가 국토를 莊嚴하겠다.(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하는 보살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국토 장엄’이란 여래가 莊嚴이 아닌 것을 그렇게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토 장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수보리야, 그러므로 보살(菩薩), 마하살(摩訶薩)은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色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하며,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 지각 대상(法)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수보리야,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성취한 몸은 산들의 왕 수미산과 같이 큰 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냐? 그 사람의 자기 존재(自身)은 크지 않냐?”
“큽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의 자기 존재는 큽니다. 善逝시여!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는 존재가 아닌 것을 ‘자기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자기 존재’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사실은 存在도 아니고, 非-存在도 아닙니다. 그로 인해서 ‘자기 존재’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금강경 26. 法身非相分](법신은 형상이 아니다)
tat kiṃ manyase Subhūte,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aḥ?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如來를 相과 特徵(특징)이 완전한 존재로 보아야만 하느냐?
Subhūtir āha: no hidaṃ Bhagavan, yathā-aham Bhagavato bhāṣitasya arthaṃ ajānāmi, na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aḥ.
수보리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여래는 相이나 特徵의 완전함만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Bhagavān āha: sādhu sādhu Subhūte, evam etat Subhūte, evam etad, yathā vadasi: na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aḥ.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수보리야. 그렇다, 바로 그것이 옳다, 수보리야. 네가 말한 그대로다. 여래는 相과 特徵의 완전함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tat kasya hetoḥ? sacet punar Subhūte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o ’bhaviṣyat, rājā api cakravartī Tathāgato ’bhaviṣyat.
왜 그런가? 수보리야, 만약 여래가 相과 特徵의 완전함만으로 보아야 하는 존재라면, 전륜성왕(세상을 다스리는 이상적인 왕)도 또한 여래라고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tasmāt na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aḥ.
그러므로 여래는 相과 特徵의 완전함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āyuṣmān Subhūtir Bhagavantam etad avocat: yathā-aham Bhagavato bhāṣitasya arthaṃ ajānāmi, na lakṣaṇa-sampadā Tathāgato draṣṭavyaḥ.
壽命이 긴 수보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여래는 相과 特徵의 완전함만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atha khalu Bhagavān tasyāṃ velāyām ime gāthe abhāṣata:
그때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씀하셨다.
ye māṃ rūpeṇa adrākṣur
ye māṃ ghoṣeṇa anvayuḥ
mithyā-prasthāna-prasṛtā
na māṃ drakṣyanti te janāḥ
dharmato buddho draṣṭavyaḥ
dharmakāyo hi nāyakaḥ
dharmatā ca na vijñeyā
na sā śakyā vijñātum
나를 相으로 본 사람들,
나를 소리(音聲)로 따라간 사람들,
그들은 그릇된 길에 들어선 것이니
결코 나를 보지 못한다.
부처는 法(진리)으로 보아야 한다.
여래는 곧 법신(法身)이다.
그러나 그 진리(法)의 본성(本性)은
개념(槪念)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설명하거나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 轉輪聖王則是如來.”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爾時, 世尊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이중표 교수 法身非相分 전체 해석]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냐? 특징을 구족(具足)했기 때문에 如來라고 볼 수 있을까?
수보리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한 바로는, 특징을 구족(具足)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옳다. 수보리야 옳다. 바로 그렇다. 수보리야, 그대가 ‘특징을 구족(具足)했기 때문에 如來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그대로이다. 왜냐하면, 특징을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보아야 한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도 여래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징을 구족(具足)했기 때문에 如來라고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한 바로는, 특징을 구족(具足)했기 때문에 如來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名聲으로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릇된 수행을 하는 것이니 그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한다네.
부처님들은 法으로 보아야 한다네.
法身이 안내자라네.
法性은 분별이 되지 않나니
그것은 分別을 할 수가 없다네.
[금강경 32. 應化非眞分](應하여 나타나는 變化된 모습은 참된 實體가 아니다.)
yas ca khalu punar Subhūte bodhisattvo mahāsattvo ’prameyān asaṃkhyeyān lokadhātūn saptaratna-paripūrṇaṃ kṛtvā Tathāgatebhyo ’rhadbhyah samyaksaṃbuddhebhyo dānaṃ dadyāt,
yas ca kulaputro vā kuladuhitā vā etasyāḥ prajñāpāramitāyā dharmaparyāyād antatas catuṣpadikām api gāthām udgṛhya dhārayet deśayet vācayet paryavāpnuyāt parebhyaś ca vistareṇa saṃprakāśayet,
ayaṃ eva tato nidānaṃ bahutaraṃ puṇya-skandhaṃ prasuṇuyāt aprameyam asaṃkhyeyam.
kathaṃ ca saṃprakāśayet? yathā na prakāśayet. tenocyate saṃprakāśayed iti.
⇒번역. ChatGPT
또한 수보리야, 어떤 보살, 마하살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세계들을 七寶(금・은・유리 등)로 가득 채워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게 布施한다고 하자. 또는 어떤 善男子나 善女人이 이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다)』의 가르침 가운데 아주 짧은 四句偈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널리 설한다고 하자. 이 경우 후자의 공덕이 앞의 보시보다 훨씬 더 크고, 헤아릴 수 없고 무량한 공덕의 무더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널리 드러낸다고 하겠는가? 사실은 드러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것을 ‘널리 드러낸다’라고 말할 뿐이다.
tārakā timiraṃ dīpo,
māyā-āvāsa-budbudam,
svapnaṃ vidyud abhraṃ ca,
evaṃ draṣṭavyaṃ saṃskṛtam
별빛과 어둠,
등불, 幻影과 물거품,
꿈과 번개와 구름처럼,
이와 같이, 형성(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것)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idam avocad Bhagavān. attamanāḥ sthavira Subhūtiḥ, te ca bhikṣu-bhikṣuṇy-upāsakopāsikāḥ, te ca bodhisattvāḥ sa-deva-manuṣa-asura-gandharvaś ca lokaḥ Bhagavato bhāṣitam abhyanandan iti.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장로 수보리는 기뻐하고 마음이 충만해졌으며, 그곳에 있던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보살들, 그리고 천(天)・인간・아수라・간다르바로 이루어진 모든 세간의 존재들이 세존의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찬탄하였다.
“須菩提! 若有人以滿無量阿僧祇世界七寶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發菩薩心者, 持於此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爲人演說, 其福勝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及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 一切世間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金剛般若波羅蜜經.
[이중표 교수 해석]
“수보리야, 그리고 어떤 보살, 마하살이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七寶로 가득 채워서 여래, 아라한, 등정각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어떤 善男子나 善女人이 이 반야 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법문에서 단지 四句偈만이라도 파악하여 지니고, 설하고, 독송하고, 이해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상세하게 바르게 보여준다면, 수보리야, 그로 인하여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더 많은 복덩어리를 얻는다. 그러면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까? 보여줌이 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바르게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깜빡이는 별빛이나 등불과 같고,
幻影이나 이슬이나 물거품 같고,
꿈이나 번개나 구름과 같다.
有爲는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이것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장로 수보리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그리고 보살들과 천신, 인간, 아수라, 건달바를 포함하는 세간은 세존의 말씀에 만족하고 기뻐했습니다.
※금강경은 단일 원본이 없고 여러 寫本(사본)이 존재하는데 각기 내용도 다르답니다. 鳩摩羅什(구라마집)은 여러 산스크리트 사본 가운데서 중국인의 意識(의식) 수준에 맞게 漢譯을 한 것이랍니다. 금강경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번역했답니다.
[이중표 교수 총평]
「제32분 應化非眞分」은 『金剛經』의 결론이다. 『金剛經』의 趣旨(취지)는 모든 論爭(논쟁)과 分裂(분열)을 終熄(종식)하고 一切衆生을 涅槃(열반)의 세계로 引導(인도)하는 菩薩(보살)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論爭과 分裂을 일으키는 邪見을 없애야 한다. 사견(邪見)은 관념(觀念)을 實體視(실체시)함으로써 생긴 것이다. 이러한 관념의 虛構性(허구성)을 洞察(통찰)하는 게 般若(반야)이다. 般若로 觀念의 虛構性을 깨달아 모든 分別을 끊고 일체중생과 平和롭게 사는 것이, 우리가 追求해야 할 最上의 價値, 즉 최고의 복덩어리다. 그래서 『金剛經』은 “般若波羅蜜多 法問에서 단지 四句偈만이라도 파악하여 지니고, 설하고, 讀誦(독송)하고, 이해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상세(詳細)하고 바르게 보여준다면, 그로 인하여 測量(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더 많은 복덩어리를 얻는다.”라고 말한다. 그 四句偈의 내용은 일체의 有爲法이 幻像(환상)이라는 것이다. 有爲란 觀念으로 취한 法이다. 모든 觀念은 꿈 같은 것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관념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 이 꿈에서 깨어나도록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불교를 드러내 보여준다고 하는 것은 불교라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만약에 “이것이 불교다.”라고 보여준다면, 그것은 佛敎라는 觀念을 새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불교는 꿈에서 깨어나 一切法의 實相(실상)을 깨닫도록 가르칠 뿐이므로, 보여줌 없이 보여주는 것이 佛敎를 바르게 보여주는 길이다.
첫댓글
환하게 웃으시며 오늘도 사랑이 넘치는 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