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홍코우 공원, 다 아실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장렬히 폭탄을 던진 곳. 홍코우 공원에서 노신(루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의 문호 루쉰의 묘가 있습니다.
화동정법대 섬머스쿨 참가 학생들 몇몇과 함께 갔습니다. 제가 가이드를 자처하였구요. 상해 홍코우 축구장(足球場) 역에 내리면 바로 옆에 널찍한 루쉰공원이 나옵니다. 공원 남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매원(梅園)', '윤봉길 의사기념관'이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오, 그 순간의 감동이란! 매원, 윤봉길 의사의 호가 매헌(梅軒)이지요,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정원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매원에 도착하였을 때, 마침 한국에서 온 연수단과 마주쳤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도 어떤 교수님이 가이드가 되어 역사적인 사실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계시더군요. 덕분에 저희도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기념관은 새로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정갈하고 내실있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앞마당에는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말씀이 잘 정리된 게시판이 있었고, 기념관 건물 1층에는 총살당하기 직전 의사의 의연한 모습을 찍은 귀한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2층에는 우리 독립기념관에서 만든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한편의 훌륭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충남 덕산 태생 윤봉길은 3.1운동을 보고 뜻한 바 있어 초등학교를 그만 두고, 한편으로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벽>지를 구독하는 등 신학문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농민독본> 저술, '월진회' 조직 등 농촌계몽운동, 민족갱생운동을 하다가, 마침내 독립운동의 사선으로 떠납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남긴 말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는 당시 세계를 진동시켰습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와 중국 인민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 민족혼을 깨웠습니다. 일본의 군신(軍神)이라고 불렸던 총사령관 시라카와(白川 義則) 대장을 처단하였고, 일본 군사 외교의 거물들을 응징하였습니다. 이때 실명한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는 태평양 전쟁 개시 직전 주미 일본 대사를 하였고, 이때 다리가 절단된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는 후에 미국에 대한 항복 조인식에서 도장을 찍게 되는 인물들입니다.
합방 전에 안중근 의사가 있었다면, 합방 후에는 윤봉길 의사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누가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니까?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들은 참말로 한민족의 대표, 세계의 장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 윤봉길 의사가 죽기 직전 아들들에게 남긴 유서를 옮겨 봅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