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민중 사이에 뿌리를 내리면서, 깊이있게 공부하는 층이 형성됐다. 특히 스님들을 중심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나라 밖으로 나가는 사례가 늘어났다.
기왕이면 불법을 가까이서 만나려는 의지가 작용했다. 당시 패권을 장악하고, 동아시아 중심으로 자리잡은 중국은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불교 또한 중국을 중심으로 여러나라에 전달되었으며, 때문에 중국은 ‘선진 불교학’을 배우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신라를 출발한 스님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불교 공부를 깊이했다. 나아가 불교가 발생된 인도까지 발걸음을 넓히는 스님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라 진평왕 무렵. 아리야발마와 혜업스님이 초창기에 해외로 나간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는 아리야바르만의 음역한 것이다. 신라 출신의 고승.
7세기 중엽 당 나라 수도 장안(長安)을 떠나 인도에서 불교 성지를 순례하고 나란다사에서 율장과 논장을 배웠다. 고향에 돌아오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란다사에서 입적했다. 혜업(慧業)스님도 중국을 거쳐 인도 나란다사에서 공부했는데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중국 인도성지 순례하며 구법
혜초 혜업 지장스님 등 ‘다수’
성덕왕 때는 혜초(慧超)스님이 당나라를 거쳐 바닷길로 인도에 도착해 구법 순례를 했다. 스님이 남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8세기 인도와 중앙 아시아에 관한 세계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일부만 전해지고 있지만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목숨 걸고 순례길에 나선 구도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신라 왕족 출신인 지장(地藏)스님은 중국에서 명성을 떨친 고승이다. 젊은시절 유학을 공부하던 스님은 불법의 진리를 만난 후 결국 출가하여 수행에 전념했다. 장정 열사람을 상대할 만큼 체격이 매우 장대했다고 한다. 스님은 출가후 당나라로 건너가 지주(池州) 구화산(九華山)에서 수행에 몰두했으며, 마을 사람들까지 감화를 받아 명성이 중국 전역에 알려졌다. 지장법사(地臧法師).지장보살(地藏菩薩)로 추앙받은 스님은 김교각(金喬覺)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님의 명성은 고국인 신라까지 전해져 후학들이 구화산으로 찾아와 수행했다고 한다.
지장스님은 신라 애장왕 4년(803년)에 세수 99세로 열반했다. 앉은채로 입적한 스님의 법구는 함 속에 모셨는데, 3년 뒤에 열어보니 생전의 모습과 똑같아 그 위신력에 많은 사람이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현태(玄太), 현각(玄恪) 스님도 당나라를 거쳐 인도에서 불법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같은 기록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나오는 입축승(入竺僧)가 가운데 흔적이 발견된 경우다. 이밖에도 문헌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구법(求法)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순례자도 부지기수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불교신문 24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