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김밥
나가면 점심과 저녁을 분식으로 하기 쉽다. 겨울에는 따스한 칼국수나 물국수로 여름은 냉면, 밀면, 콩국수들이다. 가늘게 썬 얇은 칼국수를 좋아한다. 보드라운 게 야들야들 넘어간다. 대개 굵은데다 미리 썰어놓아 꾸덕꾸덕 말린 것으로 끓이니 우둘투둘하다. 금방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 배추 넣은 걸 즐겨 먹었다. 가늘고 얇으면 채소와 함께 그릇 수가 늘어난다. 맵싸한 파간장을 치면 향기로운 게 더 잘 넘어간다. 그렇게 길들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신 칼국수가 맛났다. 긴 홍두깨로 밀어서 만든 것이 늘 생각나 찾게 된다. 콩가루를 풀어 죽을 쑤면 잘 넘어가고 구수해서 괜찮다. 더 달라면 계속 나오는 어머니의 화수분 옹자배기다. 끼니마다 올라오는 된장과 짠지, 가끔 절여 폭 삭은 간고등어를 구워주면 그 냄새가 골목에 자자하다. 많이 먹던 건 물려서 싫다는데 외려 평생 그리운 음식이 됐다.
어설프고 손이 많이 가 성가셔서 싫단다. 주무르면 손목도 아프고 맹물에 삶아 무슨 맛으로 먹느냐이다. 그게 음식이냐고 별난 것을 해 달란다며 나무란다. 아버지도 어쩌다 모기향을 피우고 멍석을 깔아 그런 저녁 음식을 내면 덜 좋아 떨떠름한 눈치다. 물이 많아 물배만 채운다고 다들 반기지 않는다. 그땐 물컹한 것으로 끼니를 대신했다.
다니며 먹어봐도 그 맛이 안 난다. 그래도 실 들어가 사 먹는다. 조금 싸기 때문이다. 서면이나 연산동을 가면 점심에 이어 저녁도 먹어야 한다. 늦게 들어가면 눈치 보여 먹고 왔다며 과일과 땅콩 몇 개 까먹고 만다. 연말이나 봄가을엔 여러 단체 모임과 문학기행, 동인지 출판 행사가 있다.
이런저런 만남과 반가운 직장 동료, 고향 사람과 어울리게 된다. 가장 많이 하는 게 당구 모임과 탁구 치는 일이다. 나이 많다고 고맙게 싸게 해 주는 곳이 있어 찾아 드나든다. 손님이 적은 뜸한 낮이다. 탁구는 몇 시간 치니 숨이 차서 그만뒀다. 당구도 자주 나간 데서 줄여 나간다.
점점 운동이 싫다. 숨차서 바닷길이나 산을 오르는 일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텃밭에 나가 삽으로 파고 괭이질하는 노동 외에는 당구대 주위를 돌고 엎드렸다 허리 펴며 머리 쓰는 게 운동이다.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따스한 곳이다. 안전하고 조용해서 노약자에겐 아주 알맞은 놀이터다.
일터에 나가고 저녁에 들어와 함께 지난 오랜 버릇이 굳어졌다. 정년 뒤 그냥 들앉아 있으니 그동안 수고했다며 세끼 차려주는 것도 잠시다. 간간이 모임에 나가는 수보다 집에 죽치고 질펀히 있는 날이 많다. 수십 년 가족을 위해 애썼는데 늙바탕에 쉴 수 있지 않겠나 했다. 친구도 모임도 그리 없나. 남정네가 들앉아 있으니 답답하다.
어슬렁거리며 잔소리하는 것이 듣기 싫고 티브이 소리도 크단다. 거추장스러워서 어디든 나갔으면 한다. 모처럼 옆에 붙어서 오순도순 지내려던 마음이었는데 영 딴판이라는 친구들의 말이다. 이럴 수 있냐고 호들갑이지만 그럴수록 가장은 너그러워야 한다. 호에 산자가 많듯이 무겁고 듬직하라는 말이다. 자녀 보기에 어머니를 높이는 말씀으로 지나야 한다. 본보기이고 스스럼이 없어진다. 내랍시고 살던 게 다 철 지난 지난날 일이다. 모난 돌이 정 맞고 흔들릴 수 있으니 부드러움을 지녀야 한다.
가끔 부르는 데가 있어 나가지만 집에서 빈둥거릴 때가 많다. 아침에 나가고 저녁에 들어오는 게 버릇이다. 평생 그리 살아와서 몸에 밴 일이다. 막상 오라는 데 없는데 어디로 가나. 몸 도사릴 곳이 마땅찮아 엉거주춤하기만 하다. 마을 경로당에 엉덩이를 들이밀어 본다. 할멈들이 시끌벅적 자지러지는 곳인데 꾀죄죄한 영감 시중이 왠지 민망하다.
일찌감치 탁구와 당구를 익혀 칠 줄 아는 게 어딘가. 남자는 주색잡기로 술 아니면 노름, 낚시, 등산, 골프로 나머지 하릴없는 시간을 보낸다. 젊을 땐 괜찮아 달려들지만 늙어선 그렇지 못하다. 남자들이 조용해져 가고 있다. ‘오뉴월 품앗이와 겨울밤 고드랫돌 넘어가듯’ 뒤바뀌었다.
체육공원 탁구 모임은 시들시들 바래지고 연산동 당구 모임에 가끔 나간다. 2시간 가까이 걸려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하단에서도 치는데 저녁을 자주 들게 된다. 다리가 성성해 이렇게 나다닐 수 있는 게 어딘가. 고기 국밥에서 콩나물로, 분식에서 김밥집으로 들어간다. 편의점에 도시락을 찾으니 여러 종류이다.
정말 편한 삼각김밥에 국 대신 우유 한 팩이 걸맞다. 한 줄 두 줄이지 세모진 김밥이 어디 있나. 저걸 누가 사 먹나 했는데 잘 나간단다. 자꾸만 혈당이 오르는 당뇨엔 밀가루보다 그게 낫다. 배불리 더부룩하게 먹어 탈이 났는데 조금 가난해야 하고 굶주려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구석 편한 자리에서 찹찹한 게 먹기 좋다. 좀 두툼한 것이 있고 햇반도 보인다. 따끈한 물을 넣어 먹는 온갖 컵라면 등 입맛 대로다. 당구장을 나서면 돌아가는 귀퉁이마다 편의점이 붙었으니 다 살도록 만들어진 고마운 일이다. 책상머리에 앉았다 엎드려 자는 내 집만큼은 못 해도 이만한 게 어딘데.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글 써시려면 나가는 시간보다
컴 앞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으실 것 같애요
요즘은 편의점 24시마트 너무 편리한 세상이 되었어요
지난 번 손주들과 일본 갔을 때 자판기 라멘이
그렇게 맛있다고 아이들이 난리를 쳤어요
저도 오전은 텃밭 둘러보고 오후는 동우회 사무실
내기바둑 두어판 새벽에 동네 뒷산 한 바퀴
다람쥐 쳇 바퀴 같은 생활 견딜만 합니다
질펀히 들앉아 있으면 다 답답합니다.
남자는 밥 먹고 후딱 나서야 다 편합니다..
밭이든 친구든 갈 곳을 만들어야 좋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음식을 먹기전에 칼로리가 먼저 생각나서 먹는 행복을 누리질 못합니다ㅠ
혈당,혈압...생각만해도 스트레스!!
어떤땐 그냥 운명이 맡겨볼까? 싶기도 합니다.ㅠ
그렇다고 제가 심각한건 아니고....조심해야 할 나이에접어들다보니...
남자들이 늙으면 갈 곳이 적어요.
어정어정 다니자니 실없어 보이고 돈도 듭니다.
당구장에 죽치고 편의점에 의지하니 정말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