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와 내 아내의 부모님은 이 세상이 안 계신다. 모두 천국으로 가셨다. 그러니 어버이날이어도 이젠 부모님을 찾아뵙거나 안부 전화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정말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셨다. 나의 아버님은 1919년에 태어나셨으니, 기미년(己未年) 3월 1일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해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자라셨고, 해방이 되던 1945년에 아버지의 나이는 26세로 이미 청년이었으니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까지 일제강점기의 험악한 시대를 살아오셨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에 나이 31세였는데 북한 땅인 황해도 신천에서 사셨던 아버지는 북한의 인민군으로 강제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하셨고, 다행히(?)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수용되셨다가 반공(反共) 포로로 분류되어 대구로 옮겨지셨고, 대구에서 자유의 몸이 되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결혼하신 후에 충남 논산에 터전을 잡으셨고, 형과 나, 동생을 낳으셨다. 그리고 1968년 말에 서울로 이사 오시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모두 겪으시고, 한국의 격동기를 모두 경험하셨다. 일제 치하의 고통도 겪으셨고, 북한 공산당 아래의 삶도 경험하셨다. 급변하는 사회를 고스란히 겪으셨고, 사랑하는 가족들은 북한 땅에 계시기에 한국전쟁 이후에는 가족과 전혀 만나시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남북이산가족 찾기를 할 때마다 가족을 찾으실 수 있을까 하여 애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아버지시기에 우리 자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등의 친척이 없이 살아왔다. 명절이 되어도 부모님과 우리 자녀들이 모이면 모두 모인 것이었으니 정말 단출했다.
내 나이 또래의 부모들도 한국전쟁을 겪지는 않았어도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절에 태어났으니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자라왔다. 나라에서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시기였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겪어야 했던 격동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부모가 겪었던 시대와 자녀들이 경험하는 시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태도는 그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부모님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은 단면적(斷面的)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 시대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성장 과정과 가정의 분위기 등의 다양한 것들이 영향을 주어 부모님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기에 부모님이 살아온 개인의 역사와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때 부모님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난 주간에는 어버이날이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드리고, 선물을 드리는 것만으로 부모님께 효(孝)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부모님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부모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우리의 마음에 담을 때 비로소 부모님과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부모님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것이다. 부모님께서 살아오신 삶을 잠깐 들여보면 어떨까?
(글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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