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세계를 배회하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식약청(FDA), 미국보건원(NIH) 등의 운영비는 평균 50퍼센트를 규제 대상인 제약회사와 화학회사들이 분담한다. ‘수익자부담의 원칙’ 아래 수익을 받는 기업이 운영 자금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약을 신청할 때 비용을 30만 달러(2004년 기준) 지불해야 한다. 이 비용으로 FDA를 운영하는 것이다. 연구원이나 심사위원들의 절반 이상도 제약회사의 임원들로 채워져 있다. 레이건 이후 세계를 배회하는 규제완화라는 유령에 정신이 혼란해진 관료들이 결정한 예산삭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FDA는 약에 대한 안전성을 실제로 심사하지 않고 제약회사가 서면으로 제출하는 보고서만을 검토하고 결정한다. 이렇게 합법을 가장한 밀착으로 인해 거의 효과가 없으면서 부작용이 심해 퇴출된 약들도 이름을 바꿔 쉽게 승인을 받기도 한다. 이것이 미국에서 약물 부작용 사건이 흔히 일어나는 주요원인 중의 하나다. 미국 FDA에서 운영위원으로 일했던 허버트 레이는 “사람들이 흔히 FDA가 시민들을 보호해준다고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FDA가 하는 일과 시민들이 알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고 실상을 말하기도 했다. 반면 영국식약청(MHRA)의 연간 예산은 100퍼센트 제약회사가 부담한다. 약의 허구가 철저히 감춰지는 까닭은 이렇게 근본적으로 왜곡된 시스템에서 연유한다.
제약 산업은 금융, 제조업, IT 등 어느 분야와 비교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익성이 높은 산업이다. 2002년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상위 10개사는 모두 제약회사다. 놀랍게도 이 10개 회사의 순이익은 나머지 490개사의 그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컸다. 지금도 상위 10대 기업은 대부분 제약회사다. 그들은 이런 엄청난 수익을 바탕으로 주류의사와 주류언론을 매수해 대중을 현혹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연구를 조작하고, 심지어 미국 정부와 국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약값을 결정하는 경우에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가격결정에 국가의 통제를 받지만 미국은 아무런 규제 없이 제약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때문에 동일한 약에 대해서도 미국이 세계에서 약값이 가장 비싸다. 제약회사들이 벌어들이는 2,000억 달러라는 거대한 이윤 중 31퍼센트는 광고와 로비에 지출하고, 연구와 개발에는 14퍼센트만 지출한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1976년부터 1985년 10년 사이에 미국 FDA는 198개의 새로운 약을 승인했지만 그 중 52퍼센트의 약에서 간 손상, 심장마비,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우울증 등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서 1989년 미 의회는 제약회사가 FDA 관리들에게 뇌물을 건네주고 조작된 임상자료를 근거로 승인해준 사실을 밝혀내고 5개 제약회사와 22명의 FDA직원을 법원에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게 했다. 또한 FDA의 자료에 의하면 1975년부터 1999년 사이에 승인을 받은 548가지의 약 중에서 56가지 약이 심장마비, 당뇨병, 고혈압, 신부전증, 간부전증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시장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특히 의료기기에 대한 사전 검사는 더 부족하다. 제세심박동기, 인슐린 펌프, 정맥 내 주입장치 등의 의료기기들은 아무런 사전, 사후 검사 없이 시판되고 있다. 결국 FDA는 실질적으로 제약회사와 의료기기회사를 보호하는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꼴이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거대한 검은 돈이 작용한다. 제약회사 등은 임상실험 기록에 대해 ‘기업비밀보호법’에 의해 철저히 보호를 받기 때문에 FDA에는 요약보고서를 제출하고, 일반에 대해서는 일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 2011년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5년간 테스트 결과 불량이어서 회수된 비율이 75퍼센트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 같은 불량 의료기기로 검사받거나 수술을 받았던 환자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규제완화’와 ‘사적 재산의 절대적 존중’이란 신자유주의의 유령이 희미한 안개가 되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미국의 청교도 사상을 배경으로 엮어지는 집단무의식이 만들어낸 이 유령은 인류의 눈을 가리고 가슴을 얼게 한다. ‘돈을 향한 끝없는 탐욕’으로 이어지는 이 브랜드는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만들었지만 부작용도 그에 못지않게 크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각종 질병, 마약 소비량, 자살률, 살인률, 정신병원과 교도소 수감자 비율, 빈부격차 등에서 세계 최고다.
WHO의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의료비에 대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며 초첨단 의료시스템을 자랑하지만 의료수준에 있어서는 2000년 기준, 191개 국가 중 37위에 머물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약의 40퍼센트 이상을 미국에서 소비한다. 반면 전통의학 비율이 높은 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은 대부분 상위권에 올라있다. 또한 병원 의존율과 의료비 지출이 가장 높은 미국은 평균수명에서 49위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의 24위에서 10년 후인 2009년에는 49위로 추락한 것이다. 이는 주류의사의 무지와 탐욕에 의해 시민들이 불필요한 약과 수술에 점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독일의 에밀 폰 베링은 말에 디프테리아균을 주사한 후 혈청을 추출해 ‘디프테리아 항독소’를 만들었다. 초기의 짧은 기간과 몇 명의 환자를 상대로 한 임상실험에서 이 약은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 그는 이 공로로 1901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 후에 나타난 결과는 참담했다. 항독소를 투여 받은 환자들에게 심각한 발열, 발진, 근육통, 혈압저하가 나타나면서 사망하는 환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말의 면역체계와 인간의 면역체계는 다르기 때문에 그 혈청도 다르다는 것을 무시한 결과였다. 그러나 주류의사들은 항독소의 부작용이 아니라 특이 체질을 가진 환자들의 민감한 반응이라며 계속 투여했다. 결국 오래가지 않아 이 약은 사용이 중지된다.
1928년 인류는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1943년부터 인공적으로 대량 합성해내기 시작하면서 의사들은 질병을 정복했다는 행복감에 도취됐다. 그들은 푸른곰팡이에서 채취하는 페니실린이나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페니실린이나 분자구조가 비슷하므로 같은 물질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페니실린은 심각한 쇼크,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며 인류에게 점점 공포스런 존재로 되어가고 있다.
특히 페니실린에 대해 세균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체 내성을 만들어 내 합성 페니실린은 20년도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됐다. 1960년대 임질균이 나타났을 때 이전보다 50배나 많은 합성 페니실린을 투여해야 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인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합성 페니실린을 투여해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마침내 1994년에는 항생물질을 먹고 증식하는 세균이 등장했고, 다음에 나타난 슈퍼항생제는 인류의 건강을 해치며 제약회사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등장했다.
지금도 현대의학은 인간 유전자 게놈을 해독하고, 초극미입자인 나노기술을 개발하고, 완벽에 가깝다는 수술용 로봇도 발명했다. 다른 곳에서는 유방암유전자와 비만유전자를 찾았다며 “인류는 행복만을 누리게 되었다.”고 환호한다. 그러나 아직도 현대의학은 단 하나의 만성질환도 치료하지 못한다. 아니 주류의사들에 의한 가설만 난무하고 그에 따른 신약만 개발될 뿐, 치료가 개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