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래전부터 시중에 떠도는 출처 불명의 루머가 있다. 바로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이었다. 루머의 내용인즉슨 아베 총독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과 함께 우리 땅에서 퇴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패전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아라! 옛 조선은 실로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조선은 결국은 식민교육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베의 예언은 헛소리임이 드러난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식민교육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하기는커녕 G7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한 국제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력과 군사력과 국제정치 무대의 영향력을 합산한 종합 국력에서 한국은 세계 6위에 올랐다. 일본은 8위로 밀렸다.
어디 경제와 군사와 국제정치뿐인가. K팝과 K드라마와 K스포츠와 K푸드 등 한류가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지 않은가. 한류의 초기 진원지는 바로 일본이다.
그런데 ‘아베의 유령’이라도 돌아온 것일까? 친일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예 ‘친일 떼창’을 한다. 대통령이 선창을 한다. 정부와 여당과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인사들이 줄줄이 후렴과 화음을 더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왕 생일날 ‘기미가요’가 연주된다. 3.1절 날 아파트에 일장기가 게양된다. 친일파들이 준동한다. ‘친일 유전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모든 유전자는 자기 복제를 한다. 친일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해방 후에도 기득권을 놓지 않은 친일파들이 친일 유전자의 숙주다. 독립군에게 총을 쏘던 일본군 출신들이 군부를 장악하고, 독립투사를 고문하던 일제 고등계 형사와 밀정들이 경찰의 요직을 차지하고, 일본군에 비행기를 헌납하던 친일기업들이 여전히 경제를 주물렀다. 친일 유전자는 그들의 기름진 몸통 속에서 힘을 키웠다. 불쑥불쑥 친일 망언과 망동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이유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집권하면 친일 유전자들은 더 활개를 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본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표기하겠다는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에게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강제징용 판결을 연기하도록 법원과 거래를 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떼창은 노골적이면서도 전방위적이다. 과거 일본의 침탈과 만행과 야욕에 대해 ‘묻지마 면죄부’를 주는 친일 떼창을 서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창을 한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묻지마 면죄부’의 종합판이다. 윤 대통령은 3.1운동을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우리 겨레가 주인인 나라’, ‘우리 민족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항일 독립투쟁을 민주화운동이나 자치운동 정도로 깎아내린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세계사 변화에 제대로 준비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다고 말했다. 국권 상실의 책임과 원인을 일제의 무도한 침략 행위가 아닌 우리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자신들의 군국주의 침략과 강제 징용과 위안부 범죄를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일본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뻔뻔하게 무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시 군국주의로 치닫는 행보를 눈감아 주는 것이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일본의 재무장조차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일본 정부의 방위비 증액에 관해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핵이 올 수 있는데 그걸 막기 쉽지 않다.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고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 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옹호한 노골적인 친일 발언이었다는 질타들이 쏟아져 나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친일 떼창’에 가세한다. 박 장관은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소송 판결금을 포스코 등 국내 기업 16곳의 출연 기금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피해자들의 동의도 얻지 않았고,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의 사죄도 받지 않았고, 우리 기업들의 의사도 묻지 않았다. 굴종적이고, 치욕적이고, 반민족적인 외교다.
오죽했으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을 ‘을사오적’에 빗댄 '계묘오적'이라고 까지 칭했겠는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후렴을 넣는다. 그는 정부의 해법안 발표 직후 SNS에 “윤석열 정부는 비판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결단을 내렸다”며 “한국이 돈이 없어서 일본 기업의 참여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과거 협정만 내세우지 말고 한국 정부의 결단에 성의 있게 호응해야 한다”고 적었다.
정 위원장의 친일 발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 위원장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계룡면장을 지낸 오오타니 마사오(정인각)다. 마사오는 일본군 군용물자 조달과 국방헌금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 골수 친일부역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친일 떼창’에 화음을 넣는다. 윤 대통령의 절친으로 알려진 석 사무처장은 “일본에게 반성이나 사죄 요구도 이제 좀 그만하자! 식민 지배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있나”라고 묻는다. 그는 또 “일본 천황이나 총리가 사죄 안 한 것도 아니다. 여러 번 했지만 진정성 없다고 또 요구하고 또 요구하고, 100년 지나서도 바짓가랑이 잡아당기면서 악쓸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정녕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이 사죄도 배상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중국과 대만과 미국 등의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사죄와 배상을 하면서도 유독 한국 피해자들만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은 물론 위안부 운영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음을 모른다는 말인가?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용감하게 ‘친일파 커밍아웃’을 한다. 김 지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내 무덤에도 침을 뱉어라!’라는 글을 통해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임진왜란을 겪고도 겨울이 오면 압록강을 건너 세계 최강의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지 않은 조선의 무기력과 무능력에 있다"라고 적었다.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침략을 나무라지 않고 조선의 무능을 탓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떼창은 누가 작곡하고 누가 지휘하는 것일까?
친일 떼창의 작곡자는 뉴라이트 세력이다. 뉴라이트들이 줄기차게 만들어내고 있는 ‘친일 메들리’ 중 하나가 바로 친일 떼창이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2005년 11월 8일 발족 당시 이렇게 천명했다.
“역사에 대한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의 가능성과 장래성이 소진되는 모습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비전으로 무장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선진화 세력이 주도해야 한다. 건전한 우파의 가치를 일상적이고 전국적으로 국민에게 확산시켜야 한다.”
친일 떼창의 지휘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세간에서는 윤 대통령의 스승으로 알려진 천공(정법도사)이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천공은 ‘정법강의’을 통해 “친일하면 만사형통”하다는 요지의 강연을 여러 차례 했다. 천공은 2014년 10월 21일 ‘정법강의’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한테 참 고마운 마음이 들고 미안한 마음이 들고 이렇게 돼야 하는 겁니다. 일본의 덕으로 우리는 문호를 열기 시작했고, 국제문물을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일본이 전부 다 그 역할을 해 준 겁니다. (중략) 우리가 바르게 살았으면 절대 침략을 안 당하는 것이 이것이 자연법칙이에요.”
윤석열 정부의 ‘친일 떼창’은 뉴라이트들의 ‘새로운 비전’과 천공의 ‘친일 만사형통’을 부르짖는다. 뉴라이트가 작곡하고 사이비 무속인이 지휘하는 ‘친일 떼창’을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여권 지도자와 각료들이 따라 부르는 것이다.
어쩌다가 대통령까지 나서서 ‘친일 떼창’을 부르는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우리 역사는 민중·민주 세력과 수구 기득권 세력 간 싸움으로 이어져 왔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맞선 4.19혁명, 신군부의 권력야욕에 맞선 5.18민주화운동,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월항쟁,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촛불혁명 등은 민중·민주 세력이 위대한 승리를 기록한 역사적 분기점들이었다. 민주주의는 전진했고, 친일 수구 세력은 점점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떼창은 위기의식을 느낀 수구 기득권 세력의 총궐기다. 서식 환경이 불안해진 친일 유전자의 발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감옥에 보낼 정도로 성장한 민중·민주 세력을 보면서 친일 수구 기득권들이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친일 성향의 인물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의 요직을 속속 차지한다. ‘천황폐하, 황태자 부부는 아름다운 커플’, ‘일본은 있다’ 등 친일 성향의 글을 쓰던 박보균 전 중앙일보 대기자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됐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반일 종족주의에 사로잡힌 판결”이라고 비난했던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통일미래기획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회는 최근 정권현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재단의 정부광고본부장으로 내정했다. 정 내정자 역시 친일 성향의 글을 써온 인물이다. 그는 ‘반일의 대가는 비싸다’라는 칼럼에서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반일 행위’로 규정했다.
반노동적이고 극우적인 행보를 해 온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하고, 유신독재와 5.16쿠데타를 찬양한 김광동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앉힌 것도 기득권 세력의 진지구축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전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위대한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와 정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떼창과 수구 기득권 세력의 도발을 보고만 있을 국민이 아니다. 이미 광장엔 촛불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국민은 늘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