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활태도가 나쁘면 대장도 나빠진다
50세 남자 환자가 배가 몹시 아파 진료실에 들어왔다. 얼굴이 창백하여 빈혈이 있음을 대번 알 수 있었다. 배가 더부룩하고 대장(大腸) 출혈 증세도 있으니 대장암이 의심됐다. 몇 달 전부터는 변이 검게 나왔다고 했다(대장 출혈이 있으면 변 색깔이 검게 된다).
이 환자는 국내 대기업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IMF’ 다음 해에 명예퇴직 했다.
퇴직 후 2년간은 자기 사업이 잘 됐으나 그 후 사업이 기울면서 재산을 많이 잃고, 매일 술만 먹었다고 했다.
근래 배 속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용기가 안 나 술만 먹다가, 큰맘 먹고 병원에 왔다고 한다.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그는 대장암이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 불규칙적인 생활, 과음 등이 환자에게 대장암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20대 후반의 날씬한 직장여성이 심한 변비 때문에 병원에 왔다. 대학 때부터 변비로 고생했고 변비약을 자주 먹었다고 했다. 대장내시경 결과 대장 점막이 검게 변한 대장흑색증이었다. 이 여성은 분명 잦은 다이어트로 끼니를 거르고, 먹는 음식의 양이 적어 변비가 자주 생겼을 것이다. 이 여성은 약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극성 변비약을 오랜 기간 복용해서, 그로 인해 대장 운동에 문제가 생기고 대장점막이 검게 변한 것이다.
이처럼 대장에는 그 사람의 생활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삶이 고달프면 대장도 애달프고, 생활이 꼬이면 대장도 뒤틀린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대장의 모양도 다 다르다.
우리 몸의 장은 특히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트레스가 있으면 소화가 잘 안 되고,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과민성 대장염에 걸리기도 쉽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면 늘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는 30대 중반의 한 남성. 배가 꼬이는 듯한 복통과 설사가 자주 찾아오며 심지어 출근 지하철 안에서도 대변생각을 자주 느낀다고 한다. 화장실 가서 일을 보고 오면 한결 편해진다는 이 남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전형적인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다.
과민성 대장이 있는 사람은 대장에 경련, 수축이 오기 쉬워서 대장내시경 검사도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장에 경련이 잘 오기 때문이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분은 장도 부드러워 대장내시경 검사도 잘된다. 대장 내시경을 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당신의 대장이 어떤지 알고 싶은가. 그러면 당신의 생활을 한번 되짚어보라. 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매일 앉아서 일하고 있다면, 점심을 햄버거 피자 등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고 있다면, 스트레스를 한껏 받으면서 한 손엔 커피 한 손엔 담배를 들고 있다면,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를 털어 넣는 일이 일상이 됐다면, 당신의 대장은 기력을 잃어가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자주 먹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장은 활력에 차 있을 것이다. 대장은 생활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양형규 양병원 원장·대장항문병학회 상임이사
조선일보-200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