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대망 -
(64) 여호사밧의통치(2) 세상이 두려워하는 삶 역대하 17:10-19
변화와 개혁은 눈에 보이는 “바깥의 청결”로 그치면 안됩니다. 늘 사람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으로부터, 저 안속 깊이 저항하고 갱신할 힘이 자리잡히기까지 개혁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부터의 변화와 개혁이어야 합니다. 나로 시작해서 타인 역시 나와 같은 마음과 뜻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나는 변화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변화할 힘도 주지 않으면서 개혁을 외치고 달라질 것을 요구하는 것 만큼 모순되는 일도, 부질없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개혁은 늘 ‘외모’가 아닌 ‘중심’의 개혁이요, 나부터의 개혁, 나아가 타인에게도 개혁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해 주는 준비된 개혁이길 축복합니다.
오늘 여호사밧이 다스리던 유다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처음길로 행한 유다에 복을 주셨고, 백성들과 하나님께 부귀와 영광을 얻은 여호사밧은 오늘 온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칩니다. 우상과 가증한 것을 없앤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새로운 저항과 갱신의 힘을,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이끌 힘을 부여했던 것이지요. 16명으로 구성된 전담순회율법교사팀을 꾸려서 모든 성읍에서 남녀노소 백성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난 수요일에도 5절의 “그러므로” 살펴보셨지요? 좋은 유산을 따르고 나쁜 유산을 버리던 여호사밧, 아버지의 하나님을 구하고, 그의 율례를 지키며 이스라엘의 행위를 버린 여호사밧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 물리적인 개혁, 개인의 개혁에도 복을 주신 하나님이, 오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그 개혁을 중심의 개혁, 모두의 개혁으로 이어가는 여호사밧에게 복을 주시는데, 오늘 본문 10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드렸더라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유다 여러 성에 공사를 많이 하고 또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스러운 군사를 두었으니”(대하17:10-13)
그래요. 여호사밧의 정책을 따라 유다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고 그 안에 기록한 대로 행하기 시작하자, 그 효과들이 바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유다 주변의 나라들이 다시 유다를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선대왕들이 통치하던 때에는 이방인들은 물론 동족 북이스라엘마저도 우습게 여기던 유다였는데, 북이스라엘과 모든 주변의 나라들이 유다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꾸로 유다에 다시 조공을 바치기 시작한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상황이 역전된 이유를 외적인 요인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즉위하고 난 다음, 군대가 정비되고, 성읍이 견고해지고, 성읍마다 군대가 주둔하고 영문을 두어서 방비가 든든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대로 이것이 저 이스라엘, 남유다의 힘의 정체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견고함, 든든함의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도 분명하게 그 사실을 기록하지요?
10절, “여호와께서”입니다.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지요? 온 나라가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시작하자, 주변의 나라들은 유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유다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저 대적들을 유다의 손에 붙여주시고 넘겨주시기 때문이지요? 이 일을 우리는 아사왕에게 말씀을 전했던 선견자 하나니로부터 확인한 바 있습니다. 뭐라고 했었지요?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대하16:7-8)
네,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이 대적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주시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의지하는 망령된 일을 행하면, 오히려 적의 군대가 우리의 손을 벗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래요. 오늘 하나님께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 유다를 지키시고 보호하시자, 오늘 저 주변의 나라들에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저 이방 나라들에게도 보여지고 느껴졌던 것이지요.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고 구하고 사랑하는 백성들을 책임지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주변 나라들은 유다를 침공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다의 눈치를 살피며 해하지 말라며 자진하여 조공을 바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가 가진 힘입니다. 언제 주어지는 힘?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할 때 주어지는 힘입니다. 이것을 느헤미야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지요? 우리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느8:10).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면, 애써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그들이 느끼고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은금과 약속으로, 통제할 수 없는 저들을 하나님께서 통제해주시고 다스려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더욱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 마시고, 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기보다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새로워지고 말씀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상대는 참아 기다리시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 앞에 진실되이 바로 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것을 잘 해내시는 분들, 하나님께서 사방 대적이 두려움을 느낄만큼 평안을 주시고 복을 주시고 힘을 주시는 분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지켜주시는 귀한 하나님 종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본문 여호사밧의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누가 떠오르셨습니까? 예, 다윗이 떠오르고, 솔로몬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걸었고, 다윗과 솔로몬의 복을 받았던 왕임을 오늘 역대기가 증언하고 있는 것이지요? 확인해볼까요?
역대상 14절 17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18장 2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압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이어지는 6절은,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그쵸? 다윗과 주변 나라들의 관계를 기록해 두고 있는 모습이 오늘 여호사밧에 대한 기록과 대동소이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셨고(10절), 블레셋 사람들이 은으로, 아라비아 사람들이 숫양과 숫염소로 조공을 바칩니다(11).
그뿐인가요? 여호사밧은 점점 강대해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여러 성에도 공사를 많이 했습니다(12-13절), 이것은 역대하 8장에 솔로몬이 여러 성과 국고성, 병거성, 마병의 성을 건축하고 견고한 성읍을 만들었다는 기록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본문에 기록하는 여호사밧에게 있었던 용맹스러운 군사들에 대한 기록과 군대 지휘관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는 것 역시 다윗과 솔로몬이 누렸던 부국강병의 나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여호사밧이 이끌었던 군대의 수효는 아드나가 이끄는 30만(14절), 여호하난이 이끄는 28만(15절), 아마시야가 이끄는 20만(16절), 엘리아다가 이끄는 20만(17절), 그리고 왕과 동명이인이었던 여호사밧이 이끄는 18만(18절)이 있어 총 116만명의 군대가 조직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여호사밧의 군대는 일종의 민병대의 형태로, 전국에 흩어져 주둔해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거주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훈련을 받다가 비상시 국가의 소집에 응하는 자들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12지파가 돌아가면서 1년에 1달씩 군복무를 하도록 했던 것에서 조금더 자유로운 형태의 군조직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오늘날의 성도들의 모습과 유사하지요? 교회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곳에 있건 성실하게 파송받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다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부름에는 훈련받은 대로 달려와 온전한 헌신으로 응답하는 믿음의 군대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정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사셔도, 늘 하나님의 군대임을 잊지 마시고, 다른 누군가를 기쁘시게 하며 사시는 존재가 아니라, 군사로 모집한 이를 기쁘시게 하는 하일 깁보르, 하나님의 큰 용사로, 온유함, 우리에게 주신 힘과 재능을 잘 통제하고 계시다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힘껏 달려나가, 평강이 깨어진 곳에, 여호와 샬롬을 외치고 여호와 샬롬을 선물하는 주의 종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요. 여호사밧은 세상적인 지혜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다윗, 솔로몬의 부국강병을 닮은 은총을, 오늘 하나님의 지키심과 돌보심으로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그 뜻대로 행하고자 했던 여호사밧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으로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논리와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세상이 두려워하는 삶, 오히려 세상을 호령하는 삶을 살 수 있노라고, 그래요. 우리의 삶, 하나님만 바르게 믿으면 당신이 친히 먹이고 입히고 돌보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미 저 구약, 저 창조 때로부터 말입니다.
유다의 왕들이 다윗과 솔로몬을 닮아야 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다윗의 처음길, 다윗의 처음패턴을 넘어, 우리는 예수님의 평생의 길, 예수님의 패턴을 따라야 합니다. 여호사밧이 다윗의 길을 따랐기에 이런 영광과 복을 누릴 수 있었듯,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방식을 따라 살아갈 때, 그분처럼 살고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결정하고 그분처럼 사랑하고 그분처럼 죽을 때 우리도 예수님 누리신 진정한 승리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서 백배나 받고 저 부활의 권능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해 따른다면, 주변의 나라와 민족, 이웃과 가족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며 함께 하고자 할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 방식이 아닌, 일점일획도 달라지지 않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방식을 붙들고 승리의 길을 걸으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기억하십시오. 세상을 두려워하는 우리가 아니라, 세상이 두려워하는 우리로 서기까지,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좇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령님의 사람들, 존귀하고 구별된 주의 백성들이 다들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