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신질환을 고백하는 유명인들
요즘은 국내의 유명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정신질환 경험을 밝히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공황장애를 유명하게 만든 방송인 이경규 씨, 가수 김장훈 씨가 그러하다. 이미 공개적으로 자신의 질병을 공개한 이경규 씨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동료 연예인이 뭐라고 하자 “또 공황발작 생길 것 같다”고 하며 시청자를 웃음짓게도 한다. 또 다른 연예인들은 이런저런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어려운 시기에 우울증을 앓았었고 ‘극단적 생각’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눈물과 함께 고백하기도 한다.
이경규, 김장훈 씨의 사례와 다른 연예인들의 사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경규, 김장훈 씨의 경우 현재 진행형이며, 정신질환을 유머코드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다른 연예인들의 고백은 과거형이며, 대개 눈물을 동반하며, 치료 외적인 요소를 통한 회복, 힐링의 메시지를 주로 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연예인들의 이런 이야기는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그만큼 편안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는 오히려 우울증 극복에 대한 자기만의 경험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도 있다.
이렇듯, 유명인의 정신질환 경험은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국에서도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활동을 위해 유명 스포츠 스타의 인터뷰를 홍보 동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하고, 방송에 광고로 내보내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 아이작 뉴턴, 존 내쉬, 찰스 디킨스, 아인슈타인, 마틴루터 킹, 나이팅게일, 찰스 다윈, 브룩 쉴즈, 마이클 펠프스(올림픽 수영 8관왕), 톨스토이, 버지니아 울프, 헤밍웨이, 윈스턴 처칠, 짐 캐리, 멜 깁슨, 스티븐 스필버그… 이들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아스퍼거증후군(자폐증의 일종),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앓았던 유명인들이다.
서문에 인용한 최승자 시인은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임을 밝힌 바 있다. “어떤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귀에서 환청이 들리고 내가 헛소리를 마구 내뱉고 있었지요. (중략) 어느 해에는 여섯 달쯤 잠을 못 잤어요.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했고, 잠을 못 자면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잤는데, 나중에는 술을 마셨던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어요. 정신이 휑했지요.” 시인의 마음은 병들어갔고 신체는 무너져갔지만, 그녀의 예술혼은 살아 숨쉬어 걸작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그러던 그녀는 외삼촌에 의해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는다. 그녀는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병원에서 규칙적으로 밥 세 끼를 먹고 약을 먹으니 살겠더라고요. 당초에는 이 정신의 병에 약을 먹은들 되겠나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런데 병원만 나오면 약이건 밥이건 먹는 걸 잊어버려요. 그래서 다시 입원하게 됩니다. (중략) 세상이 나를 버려 놓은 것이 아니라 나 혼자 겉돌았고, 그런 공부를 했고 병원에 들어가 있었을 뿐입니다.”
훌륭한 예술가의 철학과 정신세계를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자리에서 증명하기도 어렵다. 아직도 학계에서 설왕설래하는 ‘정신질환과 창조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정신장애 버전의 ‘오체불만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최승자 시인의 경우에서나, 위에 열거한 외국의 유명인의 사례에서나, 이경규, 김장훈 씨의 경우에서나, 눈물로 자신들의 우울증을 이야기하고 있는 연예인들의 경우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정신질환은 유명인을 포함하여 세상 어느 누구도 경험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유명인의 명단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유명인의 명단을 비교하면 아마도 비슷한 길이의 명단이 나올 것이다(유병률을 감안하면 고혈압, 당뇨가 더 많긴 할 것 같다).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제프 갤럽 전 총리가 주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본인의 우울증을 밝히며 치료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 총리직을 내려 놓았다. 당시 호주의 미디어와 호주 정신의학회에서는 총리의 결정을 ‘용기있는 선택’으로 칭송하며, 6명 중 1명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호주에서, 병을 쉬쉬하며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놓고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그 어떤 전문가보다 강력하게 전달하였다고 높게 평가하였다. 최고위층 정치인으로서 본인의 우울증을 밝히는 결단,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마도 호주의 정신건강 서비스 환경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에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위에 언급한 유명 연예인들과 예술인들의 용감한 고백이 있었으나 아직도 많은 이들은 자신의 정신질환을 감추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명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병이 회자되는 것은 어찌 보면 억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유명인의 용기 있는 발언과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말과 행동을 통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연예인과 예술인들의 용기있는 고백이 감사하고, 그럼에도 서호주 전 총리의 일화가 많이 부러워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