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포구 이름의 유래가 된 엿바위는 백제시대 당나라 군사가 침공하는 것을 엿보던 병사가 사비성에 알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다. 혹은 자온대(自溫臺)라고도 하는데, 『삼국유사』에는 백제의 왕이 왕흥사에 예불을 드리러 갈 때, 먼저 이 바위에서 부처를 바라보며 절을 올리면, 돌이 스스로 따뜻해졌으므로[自煖] 돌석(㷝石)이라 한다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백제왕이 이 바위에서 놀면 스스로 따뜻해졌으므로 자온대(自溫臺)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 이후의 읍지에는 ‘의자왕이 이 바위에서 놀 때, 간신배들이 미리 숯불로 데워서 왕이 도착하면 스스로 따뜻해졌으므로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윤색되고 있다.
엿바위에는 부여의 해창(海倉)이 있었다. 『충청도읍지』에는 해창에 속한 건물로 좌기청(坐起廳) 6칸이 있는데, 1928년 『부여지』에는 청풍정(淸風亭)이 곧 좌기청
금강 뱃길의 변천사(업로드용 수정).hwp
이라고 하면서 지금은 폐지되었다고 하고 있다. 정하언(鄭夏彦, 1702~1769)이 지은 「청풍정기」에는 자신의 권유에 따라 건립하였다고 하였으니, 건축 연대는 1700년대 중반이 되는 셈이다. 임영휴의 「남유록(南遊錄)」에서는 “또 청풍정도 있는데, 각 고을에서 세곡을 바칠 때 수령들이 앉아서 일을 보는 곳이다. 창고가 널찍하게 늘어서고 곡식이 흘러 넘쳤으며, 주막과 여관[杏壚柳店]들이 좌우에 늘어섰다.”고 하였다. 1800년대 후반의 규암포구의 번성함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청풍정 윗편에는 인조반정에 참여를 완곡하게 거절한 후에 낙향한 순천김씨 김흥국(金興國, 1557~1623)이 건립한 수북정(水北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00호)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곳은 김장생, 신흠, 황신(黃愼, 1560∼1617) 등의 큰 선비들과 교유하였던 곳이다.
또한 자온대는 할아버지당산이며, 동시에 백마강의 용왕제를 모시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지금은 할아버지 산신제를 수북정에서 지내는데, 그 모습이 이채롭다. 할아버지 당산과 짝을 이루는 할머니 당산은 수북정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속칭 ‘봉구재’이다. 현재 할아버지 산신제에는 부여군수를 비롯한 기관장들이 참여하면서, 주민들은 유교식 제례의 면모가 한층 강화되었다고 지적한다. 반면에 할머니 산신제와 거리제는 무녀가 주관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이곳의 거리제를 주관하였던 무녀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은산별신제’의 단골이었던 고(故) 이어린년(1893년생)이었다. 이어린년이 주관하던 당시 포구가 있었던 속칭 ‘작은 배턱’과 나루터였던 속칭 ‘큰 배턱’으로 가는 길목 등에서 거리굿을 하면서 동네 잔치판이 벌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