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인문학] 판소리의 현대화
현대 악기 더해 편곡하고, 힙합 댄스도 넣었죠
입력 : 2022.09.05 03:30 조선일보
판소리의 현대화
수궁가 속편 상상해 펼쳐내는 '귀토'
소리꾼 51명 등장해 연기·노래하고
적벽가 재해석해 구현한 '적벽'은
드럼·베이스·건반 등으로 연주하죠
▲ 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막을 내린 국립창극단의 ‘귀토: 토끼의 팔란’은 판소리의 ‘수궁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스핀오프’(spinoff)처럼 수궁가의 속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상상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펼쳐냅니다. /국립창극단
판소리 중 현대적인 해석을 더한 색다른 무대로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는 두 작품이 있습니다. 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막을 내린 국립창극단의 '귀토: 토끼의 팔란'과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적벽'인데요. 판소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유산 중 하나입니다. 1명의 소리꾼과 1명의 고수가 해학과 풍자 넘치는 서사를 펼쳐내지요.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답니다.
귀토는 판소리의 '수궁가'를, 적벽은 판소리의 '적벽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판소리 수궁가의 원전(기준이 되는 본래의 고전)은 용왕님 병을 고치는 데 필요한 토끼 간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자라의 힘든 여정을 다뤄요. 적벽가는 중국 삼국 시대 영웅들의 일대기를 다루고요. 귀토와 적벽은 두 판소리를 무대 위에서 색다르게 풀어낸답니다.
토끼의 아들 토자의 모험 이야기
귀토는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스핀오프'(spinoff)처럼 수궁가의 속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상상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펼쳐냅니다. 수궁가의 주인공 토끼가 아니라, 그의 아들 '토자'(兎子·토끼의 아들)가 등장해서 모험을 해요. 수궁가의 원곡도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살려 각색했고요.
이 작품은 '지금 수궁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해요. 전통의 현대화를 위한 고민이 담겨 있는 거지요. 수궁가는 조선 시대 영·정조 무렵부터 불렸을 것으로 추측될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대표적인 판소리예요. 토끼와 별주부(용왕의 신하)의 속고 속이는 대결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지요.
수궁가는 토끼가 다시 육지로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끝을 맺게 되는데, 귀토는 바로 이 지점부터 다시 이야기를 펼쳐내요. 토끼의 아들 토자는 부모를 잃고 고된 산중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제 발로 미지의 세상이었던 수궁을 찾아 나서게 되죠. 하지만 이상향이라 생각했던 수궁의 삶이 자신이 살던 현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요. 작품의 제목인 '귀토'(歸土)도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는 뜻이지요. 이와 같은 토자의 모습은 우리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귀토는 수궁가에 등장하는 60여 곡 중 7개 정도를 살려내 원작의 맛은 잃지 않도록 했어요. 그러면서 1500개의 각목을 촘촘히 이어붙여 무대에 언덕을 만들고, 무대의 바닥에는 8m 크기의 LED 스크린을 설치했어요. 이 스크린은 토끼가 사는 숲속으로, 또 용왕과 별주부가 사는 깊은 바닷속으로 바뀌지요. 토끼가 사는 세상인 육지와 바다를 대비해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거지요.
작품 속에서는 토끼와 자라를 비롯해 독수리·개·주꾸미·뱀장어 등 갖가지 동물과 해산물의 움직임이 '동물춤' '곱사춤' 등의 이름으로 재미있게 표현됩니다. 이런 움직임은 1인 창무극(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리·춤·재담·몸짓을 섞은 일종의 연극)의 대가로 불리는 고(故) 공옥진 선생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해요.
또 소리꾼이 1명만 등장해 1인 다역을 하는 전통적인 판소리와 달리 각각의 인물 역할 등을 맡은 51명의 소리꾼이 등장합니다. 이에 더해 가야금·거문고·아쟁·해금 등 국악기로 편성된 15인조 라이브 연주를 듣노라면 여느 대형 뮤지컬을 보는 듯하지요. 특히 토자가 용궁으로 모험을 떠나는 장면에서 커다란 파도를 만나는데, 이때의 파도 소리를 소리꾼의 구음과 국악기로 표현한 장면이 아름답지요.
중국 삼국 시대 영웅들의 일대기
'적벽가'는 중국 명나라 때 나관중이 지은 장편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가운데 관우가 중국의 서북쪽 지역인 화용도에서 포위된 조조를 죽이지 않고 길을 터줘 달아나게 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판소리 뮤지컬로 만들어진 적벽은 적벽가의 내용을 대부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악기 편성을 더해 편곡한 것이 특징입니다. 무대 중앙에 있는 큰북 3개와 함께 우리의 전통 악기인 아쟁·대금·태평소·피리를 연주하고, 여기에 드럼·베이스·건반까지 더해냅니다.
또 현대무용과 힙합, 스트리트 댄스를 기본으로 하는 안무를 판소리와 함께 선보이는 것이 특징인데요. 웅장한 드럼 소리가 극장 전체를 뒤흔들며 막이 열리면 북채를 잡고 북을 치는 무용수들이 애크러배틱(곡예)을 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릅니다. 그러면서 말굽 소리와 환호가 진동하는 급박한 전장 한가운데로 관객을 초대하지요. 부채를 소품으로 활용하는 변화무쌍하고 일사불란한 안무도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한나라 말 위·촉·오 3국의 이야기와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등 적벽대전의 배경이 되는 방대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대 뒤에 있는 막에 자막을 띄워 배경 설명을 합니다.
또 조조와 관우의 대사로 이뤄진 기존 판소리의 노랫말에도 변화를 주는데요. 제갈량·관우·장비 등 인물의 이야기를 노랫말을 통해 입체적으로 살려내며 이야기를 폭넓게 보강해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자로 된 아니리(판소리의 말)는 무대 양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자막을 통해 설명합니다. 이처럼 적벽은 형제보다 가까운 우정과 난세에 태어난 영웅들의 삶을 판소리 뮤지컬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랍니다.
☞ 스핀오프
원작에서 파생된 작품을 의미해요. 원작의 캐릭터나 설정에 기초하지만, 주인공이 달라지거나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펼쳐져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지요. 주로 드라마나 영화, 비디오게임에서 사용되는데, 외전이나 속편·번외편으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나,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한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는 '캣우먼' 등이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적벽’은 판소리 ‘적벽가’를 바탕으로 해요. 적벽가의 내용을 대부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악기 편성을 더해 편곡을 한 것이 특징입니다. /국립정동극장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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