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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5:1
믿음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은 고통과 회의와 고민과 의심과 넘어짐의 과정을 거칩니다. <천로역정>이 보여 주듯, 단숨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구원문제로 난상토론을 할 때가 있었는데 구원문제가 나올 때 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기 때문에 한번 칭의 받은 사람은 끝까지 구원을 받느냐? 의 문제와, 구원의 서정이 과연 성경적인 패러다임이냐는 것이 우리들의 화두였던 것 같습니다.
The journey of faith is never easy. It goes through a process of a lot of pain, skepticism, agony, doubt, and falling. As "The Rebellion of Heaven" shows, it is not a place you can reach at once. However, we experience one grace and love in the process. What does it take for us to reach our destination safely? There was a time when we had a difficult discussion about salvation, but whenever a salvation problem comes up, salvation is received by faith, so once a person is saved to the end? I think our topic was the question of whether the lyric of salvation is a biblical paradi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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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다 알쏭달쏭 했었는데 오늘 보니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끝까지 구원을 보장해 주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이 칭의 받고 얼마간 있다가 자동으로 성화 되고 또 그 후에 모두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르긴 해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적이 적어도 3번 이상 (86세-갈3:6,창15:6,16:6, 100세-롬4:19,창22:1-7, 모리아 산 상황-약2:20,창22:1)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칭 의는 절대로 한번만 받는 것이 아니질 않습니까?
I was confused every time, but today I see that salvation is given by faith. But I still don't know if that faith guarantees salvation to the end. Nor does it seem that our salvation will be called after a while, automatically ignited, and then everyone will be honored. Although I don't know, isn't it true that the title of Abraham, the ancestor of faith, has been called righteous at least three times (86-Gal 3:6, Chang 15:6, 16:6, 100-year-old Rom 4:19, Chang 22:1-7, Mount Moriah-like 2:20, Chang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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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후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어느 날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위로와 용기의 말씀을 볼 때 아마 시점은 전쟁 직후로 보입니다. ‘나는 네 방패요 상급이라’는 말씀으로 전쟁에서 승리와 보호를 계속 보장하고, 아브람이 받을 정당한 보상을 자신이 직접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 생각에는 롯을 구하기 위해 동방의 연합군을 물리친 후 전리품마저도 포기한 아브람이 이제 보복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Time must have passed since the end of the war. One day, the Lord appeared to Abram in an illusion. Given the words of Jehovah's words of consolation and courage to him, perhaps the time seems to be right after the war. He promises to continue guaranteeing victory and protection in the war by saying, "I am your shield, superior," and to pay the fair compensation that Abram will receive himself. I think Abram, who gave up even the spoils after defeating the Eastern Allies to save Lot, may now have been obsessed with fear of reta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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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에 맞춰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 오시어 친히 전리품이 되어주실 뿐 아니라, 그가 밟은 땅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아브람은 처음으로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 성취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나이 듬’이란 현실 앞에 약속의 소망은 시들해지고 엘리에셀이란 눈에 보이는 대책이 더 실제적인 처방으로 보이기 시작한다고 솔직히 이실직고하면서, '땅'에 대한 약속을 믿을 만한 증거를 달라고 요청했어요.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 벌!"을 노래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별구경을 시켜주셨다 그말입니다.
It seems that God will not only come to Abram at the right time to become a spoilt child, but also give him the land he stepped on as a gift. For the first time, Abram expressed his intention to delay the fulfillment of his promise to his descendants and to the land. In the face of the reality of "age," he frankly confessed that the promise was waning and that the visible measure of Eliassel began to look like a more practical prescription, asking for evidence to trust the promise of "land." God gave Abram, who sings "I'm tired of waiting. Wrong bee!" a starga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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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부터 하늘의 별을 만드신 이가 다 죽은 듯한 아브람의 몸에서 별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신 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아브람이 보아야 할 것은 자기 몸이나 양자들일 생각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합니다. 기대할 수도, 바랄 수도 없는 약속이지만 아브람은 그 말씀을 정말로 믿었습니다. 하나님도 그 믿음을 진실하게 여겨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브람(20;70에게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장차 있을 일을 보이시고(7-11) 이를 조근 조근 설명하십니다(12-16).
It is said that those who made stars in the sky from nothing give birth to many descendants like stars in Abram's body, which seems to be dead. So what Abram should see is not his body or his adopted children, but rather his God the Creator. It is a promise that can't be expected or hoped for, but Abram really believed in that word. God also regarded the belief as true. God shows the prophet Abram (20; 70) what will happen in the future (7-11) and explains it quickly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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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약속은 후손들이 이방의 객으로 섬기다가 가나안 아모리 족속의 죄가 관영해지는 4대만에 돌아온 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 형태의 쪼갠 제물 사이로 지나가심으로써 이제 둘 사이에는 '의의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약속을 깰 경우 몸이 제물처럼 쪼개져도 좋다는 저주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땅에 대한 언약을 지키실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번에도 백지 수표 한 장뿐입니다. 주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무사히 약속하신 나라에 이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It is said that the promise of the earth will come only after four generations when descendants serve as guests of the Gentiles and return to the Canaan Amorites after the sins of the Canaan Amorites become state run. By passing through the smoky grass and the burning torch-type split offerings, a " righteous relationship" has now been formed between the two. It is a curse that if you break your promise, your body may be divided like an offering. God is pledging himself to keep his covenant to the earth by risking his life. There is only one blank check this time as if there is no faith in sight. Lord, how long should we wait? What does it take to reach the country where you promised saf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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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에게 자식을 약속하신 하나님(1-6)
a.환상 중의 하나님 말씀:1
b.아브람의 상속자에 대한 물음:2-3
c.자식을 약속하신 하나님;4-5
d.아브람의 믿음과 의:6
하나님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7-21)
a.땅을 약속하신 하나님:7-8
b.언약 체결의 준비:9-11
c.자손의 약속과 언약 체결:12-17
d.땅을 약속하신 하나님: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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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1a)
이상 중에(1b)
아브람에게 임하여(1c)
가라사대 아브람아(1d)
두려워 말라(1e)
나는 너의 방패요(1f)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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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가로되(2a)
주 여호와여(2b)
무엇을 내게 주시렵니까?(2c)
나는 무자하오니(2d)
나의 상속자는(2e)
이 다메섹(2f)
엘리에셀이니이다(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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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또 가로되(3a)
주께서 내게(3b)
씨를 아니 주셨으니(3c)
내 집에서 길은 자가(3d)
나의 후사가(3e)
될 것이나이다(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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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이(4a)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4b)
그 사람은(4c)
너의 후사가 아니라(4d)
네 몸에서 날 자가(4e)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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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이끌고(5a)
밖으로 나가(5b)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5c)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5d)
또 그에게 이르시되(5e)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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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6a)
여호와를 믿으니(6b)
여호와께서 이를(6c)
그의 의로 여기시고(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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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에게 이르시되(7a)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7b)
업을 삼게 하려고(7c)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7d)
이끌어낸 여호와 로라(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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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로되(8a)
주 여호와여(8b)
내가 이 땅으로(8c)
업을 삼을 줄을(8d)
무엇으로 알겠나이까?(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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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9a)
그에게 이르시되(9b)
나를 위하여(9c)
3년 된 암소와(9d)
3년 된 암염소와(9e)
3년 된 수양과(9f)
산비둘기와(9g)
집비둘기 새끼를(9g)
취할 찌니라(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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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10a)
그 모든 것을 취하여(10b)
그 중간을 쪼개고(10c)
그 쪼갠 것을(10d)
마주 대하여 놓고(10e)
그 새는(10f)
쪼개지 아니하였으며(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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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가 그 사체 위에(11a)
내릴 때에는(11b)
아브람이 쫓았더라(1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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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때에(12a)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12b)
캄캄함이 임하므로(12c)
심히 두려워하더니(1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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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13a)
아브람에게 이르시되(13b)
너는 정녕히 알라(13c)
네 자손이(13d)
이방에서 객이 되어(13e)
그들을 섬기겠고(13f)
그들은 400년 동안(13g)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1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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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기는 나라를(14a)
내가 징치할 찌며(14b)
그 후에 네 자손이(14c)
큰 재물을 이끌고(14d)
나오리라(1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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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장수하다가(15a)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15b)
장사될 것이요(1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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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손은 4대 만에(16a)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16b)
이는(16c)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16d)
아직 관영치(16e)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1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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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져서 어둘 때에(17a)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17b)
타는 횃불이(17c)
쪼갠 고기 사이로(17d)
지나더라(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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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18a)
여호와께서(18b)
아브람으로 더불어(18c)
언약을 세워(18d)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18e)
애급 강에서부터(18f)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18g)
네 자손에게 주노니(1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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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겐 족속과(19a)
그니스 족속과(19b)
갓몬 족속과(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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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 족속과(20a)
브리스 족속과(20b)
르바 족속과(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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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리 족속과(21a)
가나안 족속과(21b)
기르가스 족속과(21c)
여부스 족속의(21d)
땅이니라 하셨더라(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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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으로 찾아오신 하나님_God who came by promise._
믿음으로 응답하는 아브람_Abram responds with faith._
고난을 통해 성취될 나라_a country that will be achieved through hardship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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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져있던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저와 맺으신 언약의 책임자가 되신다니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믿음이란 나의 가능성에 침묵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긍정하는 것일 진데. 하나님의 상급에 가치를 모르고 "주여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려하시나이까 나는 무자합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자가 이 놈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언약 의식을 보여주신 주님, 제게도 별구경을 시켜주옵소서. 특별히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집을 떠났던 그 아브람을 의롭다고 하셨고, 사라가 나이가 너무 많아 생산 능력이 없었는데도 자손이 하늘의 뭇 별처럼 많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치 않았던 아브람에게 3번이 넘게 의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증표로 행했던 할례를 묵상하면서 '칭의'와 '성화'는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처럼 구원의 양면임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주님, 내가 믿음 안에 거하므로 매일 칭의 받고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I am glad and grateful that God, who came to Abram, who was disappointed, became the one in charge of the covenant with me. Faith is to remain silent about my possibilities and affirm to God's promise. It is this man who said bluntly, "Lord, what do you give me?" without knowing the value of God's superiority. Pity me, O Lord, for showing me the ceremony of the covenant. He said that he was righteous to Abram, who had left the house of his relatives in the mainland because he did not know where to go, and that he was righteous more than three times to Abram, who believed and did not doubt the promise of God that his descendants would be as many stars in the sky even though Sarah was too old and had no capacity to produce. And thank you for teaching me that "Qingi" and "Sung Hwa" are not two sides of salvation, like two sides of a coin, while meditating on the circumcision that Abraham performed as a token of faith. O Lord, I live in faith, so that I may be called daily and become a saint who lives a torch every day.
2020.1.21.wed. Clay
신학 비평//
1. “두려워 말라”로 시작되는 믿음의 서사
창세기 15장은 믿음의 절정이 아니라, **믿음의 흔들림 한가운데**에서 시작된다. 본문의 첫 문장은 명령이 아니라 처방이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이 말은 아브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는 이미 전쟁에서 승리했고, 신앙적으로도 ‘믿음의 사람’으로 불릴 만한 행적을 쌓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안정된 신앙인**이 아니라, **불안한 인간**으로 만나신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은 언제나 두려움과 나란히 등장한다.
2. 칭의는 사건이지만, 관계다
칭의는 한 번인가, 여러 번인가? 는 신학적으로 매우 정직한 질문이다. 창 15:6은 분명히 말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그러나 이 ‘여김’은 단회적 판결문처럼 보이면서도, 실제 서사 속에서는 반복적으로 재확인되는 관계적 사건으로 나타난다. 갈 3장, 롬 4장, 약 2장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실재를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의와 야고보서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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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여러 번 ‘의롭다’고 불리는 것은, 그가 의를 잃었다가 다시 얻었기 때문이 아니다. 의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약속을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즉, 칭의는 시간표의 첫 단계가 아니라, 믿음의 여정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선이다.
3. “무엇으로 알겠나이까?”라는 질문의 신학적 무게
창 15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브람의 질문이다.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겠나이까?”(8절) 이 질문은 불신앙이 아니다. 이 질문은 믿고 싶으나 지친 자의 질문이다. 하나님은 이 질문을 책망하지 않으신다. 대신 언약 의식을 제시하신다. 쪼갠 제물, 연기 나는 풀무, 타는 횃불. 고대 근동의 언약 형식에 따르면, 이는 “약속을 어길 경우 이 제물처럼 되겠다”는 자기 저주 선언이다. 놀라운 점은 아브람이 그 사이를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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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책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본질을 본다. 믿음은 약속을 보증할 능력이 내게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책임질 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4. 고난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경로다
하나님은 땅의 약속을 주시며 동시에 400년의 객됨과 고난을 예고하신다. 이는 충격적이다. 약속이 곧 성취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 스스로 밝히신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전환이 일어난다. 구원은 고난을 면제받는 티켓이 아니다. 구원은 고난을 통과하는 이야기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을 평생 소유하지 못한다. 그는 약속을 ‘소유’하지 않고 ‘기다리다’ 죽는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실패한 신앙인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믿음은 결과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머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5. 결론: 믿음은 완주를 보장하는 보험이 아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으면 끝까지 구원이 보장되는가?” 창세기 15장은 이렇게 답한다. 1. 믿음은 자동 완주 장치가 아니다. 2. 믿음은 매번 다시 약속을 신뢰하는 선택이다. 3. 구원은 한 번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계속 기대는 삶의 방식이다. 아브람은 의심했고, 질문했고, 실수했고, 돌아갔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약속의 관계 안에 머물렀다. 그게 성경이 말하는 ‘의인’이다. 창세기 15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믿음은 강한 확신이 아니라, 약속을 붙들고 버티는 연약한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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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여주신 이유는, 아브람이 별을 셀 수 있어서가 아니다. 셀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시기 위함이다. 믿음의 여정은 쉽지 않다.그러나 그 여정의 책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