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처의 사리탑이 묻힌 둔덕엔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부처가 오던 그날처럼 룸비니엔 안개가 꼈다
안개는 모든 사람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든다
40일간의 긴 여정 끝에 쇼윈도에 서서 보니 영락없는 노인이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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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외가인 '데비다하'로 가기 전에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다시 들러야 했다. 지난여름 내린 폭우로 강물의 다리가 떠내려간 바람에 곧바로 인도로 건너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룸비니에서 우리는 셰르파 짐꾼들을 돌려보냈다. 대신 힌디어에 능통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릭샤꾼(자전거 수레를 끄는 사람)과 요리사를 새로 고용해야만 했다. 250㎏까지 싣고 다닐 수 있는 릭샤는 대여섯 짐꾼 몫을 톡톡히 해냈다.
다시 찾아간 룸비니는 여전히 안개 마을이었다. 새벽마다 안개는 룸비니를 하얗게 지워 버렸다. 안개는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을 보여준다. 내가 걸으면 세상의 중심이 걸음 따라 옮겨간다. 초막, 나무, 새들, 개울, 호수,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동그랗게 동심원을 그리며 나타난다. 세상은 모두가 동그랗게 그려져서 공이 굴러가듯 서서히 움직인다.
부처가 여기 룸비니로 오는 날도 비가 내렸다 한다. 안개비였을 것이다. 안갯속이니 세상의 중심에 저 혼자 우뚝 솟으리라. 안개는 모든 이를 세상의 중심에 홀로 우뚝 서는 부처로 만든다. 그래서 부처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은 뒤 이렇게 외쳤다 한다.
"하늘과 하늘 사이에 나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
경전에 의하면, 부처는 자신이 태어날 때와 장소를 선택했다. 싯다르타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 그는 도솔천 내원궁의 호명보살이었다. 호명보살은 하계로 내려가 중생을 제도하기로 마음먹고 석가족이 세운 카필라국의 마야데비 왕비의 태(胎)에 들어갔다. 마야데비 왕비는 카필라성에서 150리쯤 떨어진 친정 콜리성(지금의 데비다하)에서 몸을 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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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룸비니'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곳의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서 쉬어가라고 유혹했다. 그 숲은 태몽에서 보았던 극락세계 같았다. 그녀는 가마에서 내려 꽃이 활짝 핀 아쇼카 나뭇가지를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팔이 닿지 않았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스르르 자라나 그녀 팔을 잡아 주었다. 그 가지를 잡자마자 산통(産痛)이 왔다. 그렇게 하여 평생 길을 닦으며 길에서 산 부처는 '길'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갠지스강의 상류인 타파하콜라를 건넜다. 부처가 건넜다는 '아노마강(江)'이 바로 이 강으로 추측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곳 동네 어귀에서 키질하는 소녀를 보았다. 놀이 삼아 일을 하는 듯한데 손이 그렇게 잴 수 없다. 앉았다가 일어서서는 춤을 추듯 키를 놀려댄다. 열두어 살 되었을까?
"나마스테" 인사말을 앞질러 눈빛이 먼저 다가와 안부를 묻는다. 그 눈빛의 깊이를 재고 싶다. 그 눈빛에 어리는 그리움의 거리를 재고 싶다. 또 그 눈빛의 광도를 재고 싶어진다. 수만년 떨어진 거리와 시간의 강을 건너뛰어 그 눈빛은 별빛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힌다.
룸비니에서 사흘 만에 70여㎞를 걸어, 콜리성(城)이 있는 '데비다하'에 닿았다. 콜리성 터도 여느 불교 성지와 다름없이 폐허가 되어 버려졌다. 석주 잔해와 장정 팔뚝 길이만한 마야데비 석상이 세워진 사원 건물 한 채가 유적의 전부다.
사원 뒤에는 자그마한 구덩이 하나가 패어 있다. 마야 부인이 목욕하였던 연못자리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넘치지 않고, 비가 아무리 적게 와도 마르지 않았다는 연못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매몰되어 있었다.
데비다하에서부터 부처의 길은 '람그람'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한다. 대략 35㎞ 거리다. 람그람은 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8등분 하였을 때 콜리족에게 분배된 사리를 모신 곳이다. 뒷날 인도의 아쇼카왕(王)이 세계 각처에 팔만사천여 불탑을 조성하려고 진신사리탑들을 해체했었다. 그때도 이 람그람의 스투파(탑)는 건드리지 않았다. 현재까지 원형이 보존된 유일한 진신사리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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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룻배의 키를 잡은 노인은 83세였다. 그의 세 아들이 뱃사공 노릇을 했다. /심병우 사진작가
람그람을 10㎞쯤 앞두고 어둠발이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또 하루를 묵어야 한다. 오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로 갈까 어정거리고 있는데 마침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사내가 말을 건다. 그곳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람 사무지흐 타루씨였다. 그는 무작정 소매를 끌며 자기 집에 묵고 가란다. 사위 오는 날 잡는다는 씨암탉을 잡아 올린 저녁상을 물리고 타루씨가 피운 이야기꽃 한송이!
"여기 사람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라나서 이곳에서 늙어가다 병을 얻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 이곳에서 묻히는 걸 팔자로 여기며 살아가지요. 딴 곳으로 팔려가지 않는 우리 동네 가축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사람 팔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축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낫지요. 우리가 그들을 재워주고 먹여주니까요. 다음 생에는 사람보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사람도 많아요."
타루씨의 얘기를 듣고 있는 나는 이미 타루씨의 염소였다. 그 염소는 엄마를 부른다면서 "메헤헤 메헤헤-" 울음소리를 내며, 먼저 그 앞을 지나간 부처의 뒤를 따라 동쪽으로 내달려만 갔다.
이튿날 점심때쯤 '람그람'에 닿았다. 홍보 자료에는 보존을 위해 흙으로 진신사리탑을 덮어 두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듯했다. 지난 2500여년은 사리탑을 세우는 데 사용된 벽돌이 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충분한 세월이다. 그 벽돌들이 풍화되어 경주의 왕릉처럼 큰 둔덕으로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흙으로 되돌아간 지도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다. 이날은 1월 24일이었다. 우리의 절기로 따져 한겨울인데도 진신사리탑 주변에는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람그람에서 세물머리라는 뜻의 '트리베니'까지 가는 길은 관개용 수로를 따라 30㎞ 가까이 곧게 뻗어 있었다. 길 주변에 불기(佛旗)를 매단 집이 많았다. 부처가 걸어간 길이기 때문일까. 한 마을에서 불교신도인 청년에게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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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의 길’을 따라 걷다 한 농가에서 쉬다.
"이 길을 따라 불교신도가 많은 까닭은 부처가 오래전에 이 길을 걸어갔기 때문인가?"
청년이 눈을 껌뻑이며 대답했다.
"부처 지나가는 걸 내가 못 봐서 모르겠소."
트레베니에 도착하니 걸어갈 길은 강(江)으로 끊겼다. 세 지류가 마주쳐 '치트완' 국립공원의 정글지대를 뚫고 흐르는 나라야니강의 양안(兩岸)은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다섯 일행과 자전거 수레와 짐을 실은 쪽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대나무 삿대로 저어가기 때문에 강심이 얕은 물가를 따라갔다. 키를 잡은 노인네와 그의 세 아들 뱃사공이 삿대와 노를 잡고서 얕은 물가를 찾아 좌안과 우안을 오락가락했다.
첨벙! 첨벙!
가끔 나타나는 모래톱은 모두가 악어들의 놀이터였다. 모래찜질하던 놈들은 느닷없는 사람들의 침입에 놀랐는지 물속으로 다이빙했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치트완국립공원 지역은 악어뿐 아니라 호랑이와 코뿔소와 노루와 코끼리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조류들의 대규모 서식지다.
여울목은 가팔랐고 바닥에 배 밑창이 닿을 정도로 얕았다. 그런 여울목에서는 우리도 배에서 내려 줄로 배를 끌거나 삿대질을 했다. 그 바람에 겨우 20리 뱃길을 나아가는데 꼬박 하루 품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당초 묵을 마을 앞에서 거센 여울을 다시 만나, 가파른 언덕에 배를 대야만 했다. 해는 이미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그 절벽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다니며 마을까지 서너 번 짐을 날라야만 했다.
마을에서 늦은 저녁을 지어먹고 나니 자정이 가까웠다. 강변 오지 마을이어서 그런지 이 마을 사람들은 술을 즐겼다. 집집마다 네팔 증류수인 '럭시'를 고는 술고리가 있었다. 우리는 이날 처음으로 날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 온 마을의 술단지를 모두 말려버리려는 듯 마셔댔다. 나는 술판을 벌였던 그 헛간에서 취한 채 뻗어버렸다.
그 뒤 나라야니강(江)으로 흘러드는 숱한 지류를 가로질러 가는 길이었다. 그 지류들은 건기가 되어 허연 강바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밭으로 이어지는 강바닥을 250kg 무게의 짐을 실은 자전거 수레를 밀고 나가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 바람에 하루 종일 땀을 흘려도 겨우 10여㎞의 길만 좁혀졌다.
이렇게 해서 '헤타우다'라는 도시에 닿은 것은 부처의 길을 따라나선 지 40여일 만이었다. 거리 쇼윈도에 내 모습이 비쳤다. 시커멓게 탄 얼굴은 영락없는 연탄이었다. 물기라고는 모두 빠져나가버린 뺨에 광대뼈만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목은 곧 꺾어질 듯 자글자글 주름져 처져 있었다. 오갈 데 없는 육십대 노인네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았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도회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빛만 낯익었다.
첫댓글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