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일정을 뒤로하고 새벽 1시 비행기를 탄다.
(이번 여행 내내 새벽 이동이 많았다...아마도 여러 이유중 하나는 여행사에서 비용을 줄이려고 일정을 잡은것 같아 보인다.)
일찍 도착한 볼리비아 라파즈 공항에서 환전 하는데, 100달라와 쓰다 남은 110솔을 주고, 907.5볼 받았는데, 나중에 계산 하니, 939볼 받아야했다.
대기줄이 길어 그 자리서 계산 안한 불찰로, 환전상이 유혹에 빠지게 하여, 나쁜 마음의 길에 들게하는 우를 범했다.
그 볼비아 여인이 37.5볼 "삥"치게 만들어 주었다...
약 5불 덜 받았다...
앞으론 꼭 확인 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후 계속된 환전에서는 5딸라의 경험으로 아무리 줄이 길어도 받은 돈을 다 세어 보고 나서 자리를 떴었다, 좋은 교훈을 얻었다.)
현지에선 당일 데모로 "마녀시장"과 "부리요광장"등은 여행할 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이드 왈 "남미에선 계획대로 안되는게 종종있는 일이다" 하네요.
ㅡ ㅡ ㅡ
(달의 계곡)
인솔자의 편의로 2조로 편성된 혼자 오신 정☆철님이 비싼 피스코와 식사비를 계산 하려기에, "1/N로 계산 하자고 하니", "신고식 하는 셈 치자고 해", 그렇게 했는데, 여행하는 동안 여러번 사셨고, 덕분에 잘 묵고 다녔다.
나중에 프랑크프르트 공항에서, 우리 팀 세 사람이 양주라도 선물 하려니, "마음만 받겠다고 해" 역시 진짜 사장은 다르다는걸 이번 기회에 느껴 본다.
늦었지만 이렇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ㅡ ㅡ ㅡ
(라파즈의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연결하는 교통 수단인 케이블카와 야경, 유료 화장실과 마을 풍경)--->화장실 내용물은 기존의 것이고 내릴 물이 없었음ㅠㅠ.
내게 보여진 볼리비아는 우리네 70년대를 떠올리게 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도로는 비포장이고, 거리에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흙으로 2층 올리고, 뚜껑 없는 유료 화장실은 신발을 신은채 쪼그려 앉아서 해결해야만 한다. (페루쪽은 뚜껑은 있었는거 같은데, 여긴 입장료 내는 국립공원도 대부분 유료다.)
통신은 로밍과 유심이 안되고, 이 나라 통신망을 이용해야만 되는데, 3,4일 쓰자고 유심을 살 수 없어 호텔에서 제한적으로 와이파이로 사용했었다.
칠레와 새똥전쟁으로 바다쪽 영토를 빼았낀 내륙국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서 티티카카 호수에 해군기지를 두고 훈련을 하고 있다.
ㅡ ㅡ ㅡ
(티와나쿠의 태양의 문 그리고 티티카카 호수, 우유니 기차마을)
(볼리비아 3 일차) 이른 아침 비행 후 지프가 배정되었는데, 우린 두 이이의 아빠인 알랙스와 3일간 동행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주 훌륭한 기사였다.
비포장의 먼지를 헤치고 달려 기차무덤에서 잠시 쉰 후, 콜리치 염전 마을에서 필요한 기념품을 사고, 또 한참을 가 도착한 우유니.
말 그대로 순백.
온통 하얗다.
가이드가 "가지고 온 옷 중에 '빨주노초파남보' 같은 원색 옷을 입으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해발 3500m에 전라남도만한 소금 사막이다.
군데군데 상업적으로 소금을 채취한 게 보인다.
다카르대회 기념상과 만국기 광장에서 얼굴이 타는 줄도 모르고 사진 찍고, 웃고 떠들며 여행사에서 준비한 와인 만찬을 즐겼다.
우린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장화를 신고 까르르 거리며 걷다가 뛰고 넘어지고...하였다.
해가 다 지고 난 뒤, 깜깜한 하얀 사막을 또 달리고 달려(이젠 힘드요!) 생전 처음으로(하기야 이제것 다 처음이네!) 소금 호텔에 들어 간다.
ㅡ ㅡ ㅡ
(콜리치의 소금 기계, 우유니의 용천, 만국기, 일몰, 소금호텔)
ㅡ ㅡ ㅡ
이곳 시골에는 거랑이 바닥을 드러냈는데, 마침 단비가 내려 당분간 물풀 걱정 안하고 꿀잠을 잤네요(24'6/9).
ㅡ ㅡ ㅡ
(4 일차) 소금집에서 자고나니 개운한데, 남은 볼리비아의 일정이 6기통 랜드크루져와 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라 "화이팅"을 외쳐본다.
볼리비아에서 4일차인 오늘은 내내 이동하는게 일이다.
시장들러 화장실가고, 간식 구매하고, 산크리스토발 마을을 거쳐 시크릿라군 구경하고 숙소에 도착하여 받은 쇳대로 문을 여니 짐작은 했지만 열악한 환경이었다.
볼리비아의 마지막날 새벽 4시 반경에 식사하러 가니, 처음으로 1등으로 도착해 식당을 어슬렁거리는데, 부산아지매가 나오더니 스르르 쓰러져 (여성이고, 책임 소재등으로 직접 구호치 못하고, 가이드를 호출했다) 나온 가이드가 우왕좌왕 하기에 (옆에서 코치를 해줬다..
우선 바닥이 찹으니, 담요를 깔고 들어서 참실로 옮겨 응급조치 하라고 시켰다.)
당시 있었던 사람들이 환자를 담요에 싸서 들고 들어가니, 손지갑. 안경 신발만 남았다.(내가 챙겨 갔다줬다...후에 전후상황을 이야기 하니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하네요.)
고산병이 증상으로 그분과 일행 일부는 고원지대를 내려가 국경으로 가라고 하니. 30분 정도 지나니 견뎌 보겠다고해 할수없이 같이 갔는데, 한 이삼일동안 맥없어 보였다.
이로 인하여 늦어진 출발로 알티플라노 고원의 멋진 일출은 포기하고, 깜깜한 새벽의 산악지대 비포장을 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앞자리 앉았던 나는 무서웠다. 돌아보니 간 크게 다 자고 있었다
.
유리에 김이 서려 히타를 끄게 하고, 조수처럼 나는 계속 수건질 했었다.
화산지대를 지나 레드라군의 국립공원도 화장실은 5볼(한화로 천원)이었다.
미지근한 온천에 수영복만 적시고 나왔다.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데 볼리비아 기사들과 가이드는 여기서 이별해야했다.
나는 알렉스에게 남은 참치캔과 꽁치캔 그리고 어제 산 과일과 땅콩을 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굿바이 볼리비아~~
ㅡ ㅡ ㅡ
(시크릿라군, 이딸리아뻬르디다, 레드라군, 볼리비아 국경 검문소)
...
첫댓글 터키 카파도키아 느낌도 나고, 좋습니다
지금 볼리비아 군부 쿠데타 발생했다고 하던데 타이밍 좋았네요
방문 기념 댓글인가?
지금까지 몇 사람이 방문 했는데 그냥 가더라...
아무튼 반가운 사람... 그리고 댓글입니다.
용기를 주는 댓글...감사합니다.
다녀본 남미는 치안, 정국, 경제... 다~ 불안하더라.
내 생각에는 시간이 좀 걸릴듯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