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당 중이 제위를 찬탈하자 레 왕조의 신하들은 레 왕조를 부흥시키기 위해 나섰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응우옌 낌(阮凎,완김)이었다. 응우옌 낌은 1531년 레 디유닌(黎維寧,여유녕)을 장종(莊宗,짱똥)으로 복위시키고, 총사령관이 되어 병사를 이끌고 북상하던 중 1545년 항복을 위장한 막 왕조의 장군에게 독살되고, 실권은 사위인 찐 끼엠(鄭檢, 정검)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에 불만은 품은 인물이 응우옌 끼엠의 둘째 아들인 응우옌 호앙(阮潢,완황)이었다. 막 왕조의 전투에서 전공도 세웠고, 형이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이 후계자라고 믿고 있던 응우옌 호앙과 당시 실권을 장악한 찐 끼엠은 겉으로는 레 왕조의 부활을 주장하면서도 속으로는 권력을 두고 다투게 되었다.
그러나 병력에서 밀렸던 응우옌 호앙은 당시 막씨 세력과 참파의 침공이 잦았던 푸 쑤언(富春,부춘,지금의 후에시 낀타인)으로 옮겼다. 이 때가 1558년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응우옌 정권과 찐 정권의 대립, 곧 베트남의 남북 200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찐 정권은 1593년 막왕조의 마지막 황제(莫茂洽, 막무습)를 무너뜨리고 레 왕조를 중흥시키는데 성공하지만, 다이 비엣의 통일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재건된 레 왕조도 이름뿐이었다. (대신 막씨의 잔당은 17세기 후반까지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