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의제기 기간에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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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C: 만물에 부여된 형이상의 본성에도 인의예지가 갖추어져 있다.(C는 주자)
제시문 을은 아마도 ‘주자’이거나 주자학파의 문장일 겁니다. 주자는 인간의 마음에도, 사물에도 理가 있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인의예지’도 있다고 해야 하느냐가 문제됩니다. 사물에 理가 있다고 할 때, 자연법칙으로서 理가 있다고 하면 대체로 납득이 되는데, ‘인의예지’라고 하면 사물도 도덕성을 갖는다는 것이 되어 경험적으로 납득이 안 되죠.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주자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두 가지 주장으로 정리가 됩니다.
사물도 ‘인의예지’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는 주장, 사물은 인의예지 중 일부(예컨대, 仁 또는 仁義)만 갖추고 있다는 주장. 주자는 두 가지 모두 얘기합니다. 이것이 ‘인물성 동이 논쟁’입니다.
그렇다면 ④번 선지는 주자 입장으로는 ‘부분적으로만’ 맞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자는 ‘인의예지’ 중 일부만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니까요. 평가원에서는 이 선지를 주자 입장에서 ‘옳다’고 했기 때문에, 오류가 됩니다. 문헌적 증거 따로 제시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정도만 얘기해도 평가원은 알아들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이렇게 세세한 부분에서 문제되는 선지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지난 9월 모평 때보다는 덜하지만 상당히 심각합니다. 이런 걸 평가원이 어떻게 판단할지(오류를 인정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아마 안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만), 이런 선지들이 이렇게 아무 이상 없다는 식으로 학교현장으로 나가게 되면, 윤리를 배우는 학생들은 이제 오류인 내용을 배우게 됩니다. 이 여파를 평가원이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지 정말 답답하네요. 오늘 내로 문제되는 선지 몇 개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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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사상 5번 ④번 선지 오류 - 문헌적 증거
④ C: 만물에 부여된 형이상의 본성에도 인의예지가 갖추어져 있다.
아래에 이 선지가 오류라는 글을 이미 올렸으나 문헌적 증거는 따로 제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또 평가원에서는 예의 ‘지조때로’ 해석을 할 것 같아서 여기서 제시합니다. 다음은 주자의 말입니다.
“하늘이 만물을 낳음에…비로 그 分은 다르나 그 理는 같지 않음이 없다. 다만 그 分의 다름으로 인해 거기에 있는 理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장 영묘하여 오상(인의예지신)을 갖추었음에 반해 금수(동물)은 어두워 (이것을 다) 갖추고 있지 못하다(五常之性 禽獸...不能備)
天之生物...是雖其分之殊 而其理則未嘗不同 但以其分之殊 則其理在是者不能不異...故人爲最靈而備有五常之性 禽獸...不能備(“文集”, ‘答余方叔’)
여기서 ‘인간’은 오상을 다 갖추었지만 금수(동물)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얘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목에 대한 얘기도 그 다음에 이어지지만 생략했고요.
주자는 처음에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다르다’고 하게 됩니다. 어떻게 다르냐 할 때 저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죠. 이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사물도 인의예지를 다 갖추고 있다는 해석, 일부만 갖추고 있다는 해석, 다 갖추고 있으나 ‘적게’ 갖고 있다는 해석 등등. 이것이 조선 후기에 ‘인물성 동이 논쟁’을 촉발하는 것이고요.
아마도 평가원은 일부 학자의 ‘해석’에 의존해서 사물도 인간처럼 ‘인의예지’를 다 갖추고 있다는 선지를 제시한 듯합니다. 이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고,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하여 선지를 구성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평가원이 양심적으로 이 선지에 대해서 해설을 탑재한다면, 특정한 학자의 해석을 그 근거로 제시할 것 같네요. 그렇다면 나는 다르게 해석하는 학자의 책이나 논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은 처음부터 선지로 만들지 않거나, 만들더라도 그런 모든 논란을 극복할 수 있게끔 선지를 구성했어야죠. 정말 이런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첫댓글 저도 알고 있기를 다른 동물들도 인의예지가 있다. 그런데 부분만 가지고 있다. 인간만이 인의예지를 다 갖추고 있다. 이렇게 알고 있는데요. 위의 선지대로라면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 심지어 사물조차도 인의예지를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게 됩니다. 최소한 선지의 표현대로라면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분명 출제자도 '만물에도 인의예지가 있다. 하지만 인간과 다르게 부분적으로만 있다.' 이말을 하려고 했을텐데 표현에서 실패한 것 아닐까요? 어쨌든 잘못된 선지가 되었는데, 오류로 인정이 안되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나요?
그리고 교과서들을 살펴봤는데, 이 내용에 대해서는 없는 것 같고요, 그러니까 인물성동이론이나 이일분수는 나와있는 것 같지 않고요, 또 웃긴게. EBS에서는 뭐라 설명하나 궁금해서 봤는데... 강사가 이 문제 설명하면서 이 선지에서 딱 한마디 하더라고요. 이 선지를 읽은 다음 "당연하죠"하고 넘어가요... ㅎㅎㅎ 이런 내용을... 뭐 하기사 그 강사도 뭐라 말하기 어려웠겠죠.
위 본문에도 써 있듯이, 주자는 두 가지를 다 얘기합니다. 사물도 인의예지를 다 갖추고 있다, 일부만 갖추고 있다. 때로는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요. 위에 인용된 문장은 세 번째 케이스죠. 이렇게 혼란스러우니까 학자 중에는 주자는 사물도 인의예지를 다 갖추고 있다고 보았지만 '조금'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까, 주자 자신도 헷깔렸던 겁니다. 성리학의 논리에 따르면 '본연지성=인의예지'인데, 사물에도 본연지성이 있다고 하는 건 큰 무리가 없게 보였죠. 그래서 마른 나뭇가지에도 '성(본연지성)'이 있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마른 나뭇가지에도 '인의예지'가
있느냐 라고 제자들이 묻기도 하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하니까, 여기서부터 '있다'고 하기도 하고, '일부'만 있다고 하기도 하고, '없다'고 해석할 만한 얘기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타고 남은 재처럼 인의예지가 있는지 말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성(본연지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조선 후기에 인물성동이논쟁이 벌어지는 것이고요.
출제자 입장을 생각해 보면, 출제자는 전문가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라고 해도 세세한 부분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냥 대학시절에 이황을 주제로 논문 써서 박사학위 받고 교수
되는 거거든요. 그럼 일단 교수 된 후에 더 이상 공부 안 할 수도 있고, 하더라도 다른 주제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이처럼 세세한 것은 모르게 되는 거죠. 비전문가가 출제했을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든 어떤 책이나마 참조는 했을 거라는 겁니다. 거기서 아마도 인의예지는 다 있지만 '조금' 있다고 해석한 학자의 해석을 철석같이 믿고 저 선지를 제시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평가원은 이번에 논란이 된 선지들에 대해 일절 해설 공개 안 했죠? 왜 안 했겠습니까? 해설 공개하면 오히려 논란이 증폭되고, 자기들이 방어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평가원은 그냥 씹어버리는 전략을 채택합니다
그럼 최소한 논란이 증폭되지는 않죠. 방법은 소송밖에 없는데, 누가 자기 돈 들여가며 소송하려고 하겠습니까? 그걸 평가원은 믿는 거죠. 이미 평가원도 위 네 개 문항 모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단 한 문항도 해설을 탑재하지 않았죠. 자신 있다고 생각했으면 윤사 1문항, 생윤 1문항 정도는 해설 탑재했을걸요? 그런데 그러질 못한 건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비에스 강사인데, 이비에스 강사는 아는 게 없어요.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건 그냥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도 님 댓글 보고 알았습니다. 다만 이 사람의 문제점은, 뭘 모르면서 강의를 하고 앉았기
때문에, 때때로 엉뚱한 해설로 많은 수험생들을 오도하는 일이 많다는 거죠. 학생들은 특히 수능 해설의 경우에는, 모평 해설과 달리 수능 직후에 수능 해설 올리는 곳은 이비에스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이때만큼은 이비에스 해설 강의를 보거든요. 헛소리를 지껄이게 되면 많은 학생들을 오도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런 폐해가 많은 게 문제일 뿐이지,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 자체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 문제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선지가 교육과정 이탈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만물에 본연지성이 있다'는 건 '성즉리'에서 유추가 되는 것이고, 이미 기출로도 여러 차례 다루어졌죠. 또한 저 선지가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거라서 별 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게 원칙적으로는 교육과정 이탈이더군요. 그런데 출제자는 교육과정 이탈이라고 생각지 않았을 겁니다. '본연지성=인의예지'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원칙적으로 '본연지성=인의예지'인 건 맞지만, 사물에도 '본연지성이 있다'는 것과 '사물에도 인의예지가 있다'는 건 주자학에서는 또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아마도 교육과정 이탈까지는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사물에도 본연지성이 있다'고 했으니까, 조금 다른 선지를 제시하자는 뿌듯한 마음으로 '사물에도 인의예지가 있다'는 선지를 제시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이런 사달이 난 건데, 사실 이 문제가 더 이상 증폭되지 않으면 '이런 사달이 났다'는 말도 성립하지는 않겠죠. 뭔가 좀 우리 정의감에는 맞지 않습니다. 이런 평가원에 경종을 울리는 방법은 소송밖에 없는데, 문제는 누가 자기 돈 들여가며 소송하겠는가 하는 것이겠죠. 평가원도 이걸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고요. 생윤 18번 문항도 결정적 오류입니다. 다른 문항들(생윤 8번, 윤사 19번)은 이렇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다면서 빠져나갈 수 있지만(교육과정 이탈도 빠져나갈 수 있죠.), 윤사 5번 문항과 생윤 18번 문항은 '팩트'에 관련된 것이라서 빠져 나가기 어렵습니다. 평가원에서도 이걸 알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지금 무척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누가 또 느닷없이 이걸 걸어서 소송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테니까요. 나는 정말 이해 안 되는 게, 해당 문항들이 이상 없다는 글 올리는 교사들입니다. 이상이 있다는 게 명백한 걸 이상 없다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마 자기도 해당 문항을 평가원 의도에 맞게 가르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이 손해를 봤다는 거거든요. 틀린 학생들도 많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의제기 게시판에 이상 없다고 본다는 글을 올린다는 거예요. 당연히 평가원과 긴밀한 연락하에 그런 짓들을 했을 겁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하면 무슨 반대급부가 있겠죠. 그런데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 부도덕한 자들이라고 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2.17 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