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sunset
숙소 앞 바닷가에서 해넘이를 보며 환상에 젖는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던 하늘에 언제 구름이 나타났는지 옥에 티처럼 살짝 장애물로 가로막고 나섰다. 그러나 해는 그런 것과는 아무렇지 않게 주춤거리지 않고 구름 속을 빠져나가 바다에 낙조로 눕는다. 오늘 저 정도는 약간 간보기이고 내일 정식으로 해넘이, 선셋을 보러간다. 오늘도 여전히 시끌시끌하게 배가 오고 나갔다. 그러나 어제의 그 사람들이 아니다. 바닷물도 어제 그 물이 아니지만 어제처럼 아무렇지 않게 출렁거리면서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은 거쳐 가고, 자연은 반복 되는 중에도 하나처럼 같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질서가 있고 소통하듯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자연은 독불장군처럼 보이기보다는 순리를 따를 터다. 자연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워 보였다.
선셋에 손자와 함께
아침에 비가 내릴 듯이 찌푸렸던 하늘이다. 여행 중 비라도 내리면 참 곤혹스럽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하늘은 파랗게 드러내고 말간 햇살이 쏟아진다. 바다는 생동감 넘치며 제 몫을 다하려는 듯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시퍼런 잔주름이 수없이 흔들린다. 바다의 수많은 주름살이 펴질 듯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세탁소 아저씨가 바지자락을 다려놓은 듯 매끈해지려면 바다는 멈추어야 할 것이다. 바다가 흔들리고 내가 흔들리면서 나 자신을 확인 한다. 내가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나를 보고 있다. 선셋은 일몰, 해넘이, 해질녘 저녁노을 등으로도 불린다. 해넘고 10분 안팎이면 하늘도 바다도 불붙은 것처럼 온통 벌겋다. 여기에 물안개가 앞자락을 살짝 가리고 나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입체감 넘친 황홀한 진풍경에 어질어질 할 말 잃는다.
선셋의 절정으로 화끈 달아오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또는 못 잊어 사진작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멀다 않고 관광객이 몰려온다. 해넘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을 터지만, 세계 3대 선셋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어느 날 서쪽 하늘에 큼직하게 걸린 해를 보며 가슴까지 울컥한 때가 있었다. 그런 풍경 하나에 마음의 동요를 느끼는데 세계적 명소에서 바라보는 이 순간을 뭐라고 할까. 비록 이국에서 볼 수 있는 선셋으로 다소 아쉬웠지만 한 마디로 큰 충격이었다. 너무 신비로워 할 말을 잊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일몰을 언제 어디서 본 적 있었던가. 대개는 하루해가 넘어가면 넘어가나 보다 그뿐이었다. 서서히 땅거미가 깔리는 줄만 알았다. 이처럼 뭉클하도록 심금 울리는 한 편 드라마가 연출될 줄 미처 몰랐다.
온통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에 구름이 산처럼 병풍처럼 조형물처럼 벽을 두르고 그 아래 바다는 더 곱게 치장을 하고 물안개가 앞자락처럼 살짝 깔리면서 서서히 뭍을 향해 나를 향해서 곧바로 다가오며 거리가 좁혀지고 웅장한 모습으로 클로즈업 된다. 순간, 어느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감출 수 없는 흥분에 감동만 마음에 수없이 고운 옷감처럼 부드럽게 감긴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고 표현을 할 수도 없다. 직접 보고도 뭐라 말할 수 없다. 섣불리 흠집만 내는 우를 범할까 두렵기까지 하다. 바다의 날씨는 수시로 변덕을 부린다. 금세 구름이 몰려들었다가 금세 사라지고 맑게 갠다. 맑은 하늘에 해가 뜰 무렵이면 어느새 반갑지 않은 구름이 끼어들면서 해돋이를 살짝 가린다. 일출이나 일몰시간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밉상일 수가 없다.
선셋에 아들과 아내와 손자와 필자와 며느리
때로는 구름 때문에 틀렸지 싶다가 살짝 열어주어 황홀하게 한다. 그런 날은 복 터졌다고 싱글벙글 가슴이 더 쿵쾅거린다. 그래서 섣불리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선셋도 마찬가지다.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뜻밖에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마지막 날 숙소 가까운 해변에서 3번째 선셋을 본다. 어제 워낙 장황한 모습을 보았기에 조금은 시큰둥해진다. 그래도 바쁜 일정에 시간을 쪼개어 나왔으니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아볼 일이다. 구름이 모여드나 싶더니 그런 간절한 마음을 엿보았나 보다. 구름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면서 큼직해진 시뻘건 불덩이가 조금씩 바다 속으로 빨려들면서 주변을 점점 더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10분쯤 지나면서 절정을 맞이하고 장관이다. 선셋의 붉은 기운을 가슴 가득 담고 발길을 돌리며 몇 번을 뒤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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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묘사가 생동감 있게 기막힙니다. 역시 박종국 수필가이십니다. 수십 번 읽어도 질리질 않겠습니다. 꼭 그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