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성계를 움직여 조선을
건국하게 한 정도전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삼봉 정도전의 출생/ 업적과
정치◈
삼봉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핵심중에
핵심이였다.
조선개국의 얼굴이 이성계(태조)라고 한다면
삼봉정도전은 두뇌였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정도전은 이색의 문하생으로
정몽주,
이숭인과
동문수학 할 때부터 그 재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출신배경이 천민인
탓에
권문세족 출신의 문하생으로 부터 따돌림을
당햇다.
훗날
벼슬에 나가서도 오래도록 미미한 관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젊은 시절 정도전은 맹자를 탐독하면서 유교적
왕도정치를
실현하기위하여
역성혁명도 가능하다는 명분을
얻는다.
더욱이 그는 우왕이 즉위한 직후 권신,이인임,경복흥에
맞섯다가
전라도 나주로 유배를
당했다.
특히
그는 부패한 권신과 조정관료들의 횡포등..
유랑생활 동안 직접
보고느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고려왕조를 전복하고
민본중신의 유교 이상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한(浮游) 세월을
보냇다.
그러던 중 이성계와의 만남은
정도전에게 자신의 꿈꾼
유교 이상국가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1383년 가을
드디어
정도전은 비장의
결심을 하고 함주에 있는
동북면도지휘사(都指揮使)
이성계(李成桂)를 찾아갔다.
외적의 침략을
물리쳐 고려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이성계를 만나기 위해 함흥으로 직접 찾아간
것이다.
정도전은 부패한 관료로 인한 피폐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직 혁명 밖에 대안이 없다고 결론
짓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성계의 군사력이 절실하였던
것이다.
당시 조우에서 정도전은
이성계 휘하의 정예 군대와 일사분란한
지휘통솔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이성계 또한 정도전의 심오한
학문과
원대한 국가경영에 대한
경술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정도전은
이성계 휘하의 동북면 군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군령을 엄하게 지킬 뿐 아니라
무기들 또한 잘 정비되어
있으며
훈련에도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이 정도의 군대라면
?
무슨 일인들 성공시키지
못하겠습니까?”
라고 넌지시
떠보았다.
평생 전쟁터를 누벼 온
이성계가
정도전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으나,
무슨 뜻이냐며
반문하였다.
이에 정도전은
동남방의
왜구를 소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도담 삼봉의 멋진
전경
정도전은 그날
밤 이성계와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정도전은 군영 앞에 서 있는
오래된 소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그 위에 이성계를 위해 시 한 수를
지었다.
아득한 세월에 소나무 한 그루
몇 만 겹 푸른 산속에 자랐도다.
잘 있다가 다른 날에 서로 만나 볼 수
있을는지?
인간 세상 굽어보다가
곧 큰 발자취를 남기리니.
이 시에서 정도전은
이성계를 늙은 소나무에 비유하고
있는데,
앞으로 때가 되면 이성계는 천명(天命)에 따라
세상을 구원하러 나서야
하며,
자신과 손잡고 큰일을 하여
위대한
역사적 과업을 남기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속마음을 은근히
드러내었다.
이성계는 개혁을 주장하는 정도전에게 협력하기로 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그의 인물됨됨이에 매료된 정도전은 그의 막료가
되었고
이후 역성혁명까지도 논의하게 되었으며 이 일을
계기로
정도전은 이성계의 참모로서 큰
야망을 품게 되었다.
정도전이 생각한 유교적
이상국가는
신권정치 즉 재상중심의
나라
임금의 자리는 천명(天命)에 따라
얻게 됨으로 변변치 않은 인물이
임금이 되더라도,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재상과 신료만 있으면
유교적 왕도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임금도 독단적으로 국정과 정사를 처리해서는
안되고
오직 재상과
신료들의 의견과 여론을
경청하고
수렴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치 한 고조 유방이 장자방을
이용하여
한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유방을 앞세워
한 나라를 세운것 같이
자기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게 아니라,
자신이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개국했다고 했다.
정도전은 조선왕조 수립의 1등 공신으로서
다른 개국공신들과
함께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정도전은 한양천도를 진행하는 가운데
태조가 즉위한지 3년째되는
해에
자신이 구상한 유교적
이상국가와
왕도정치의 이념과 원리를
담은
[조선경국전]이라는
책을 태조에게 지어
바쳤다.
태조도 살펴보고 감탄하여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경국전]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도전이
혼자 작성한 조선의 헌법이라 할
수있다.
이것은 후에 성종시대에 완성한
조선최초의 성문헌법인
[경국대전]의
기초가 되었으며 더욱 빛을
발하게된다.
정도전은
1342년 아버지 형부상서 정운경과 어머니
영천 우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출생지에 대해서는 경기도 양주,
경상북도 영주와
봉화,
그리고 충청북도
단양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의 호 삼봉은 삼각산과
같이
학문과 경술에 우뚝하라는 뜻으로
이존오,박의중,이집,김구용 등이
1369년 가을 삼각산
그의 집을 찾아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정도전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독서를
좋아하였다.
그의 아버지
정운경은 이곡과 나이를 잊은
두터운 친교가 있었기 때문에
이곡의
아들 이색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성균관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성리학에 대해
한층 심도있게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그와 함께 공부했던
이들은
정몽주, 박의중, 윤소종, 이존오, 이숭인,
설장수(偰長壽)
등이며,
성균관에서 경사(經史)를 강론하였는데
특히 문장과 성리학에
능하였다.
단양 도담에 있는 삼봉 정도전
동상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