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기
제주를 여덟 번 방문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재주는 새롭다. 특히 제주 바다의 거친 파도와 바람은 무얼까? 우리가 떠나온 태초를 상기하게 하는 원시성을 떠오르게 한다. 이틀 머문 함덕 해변의 파도는 언제나 하얗게 밀려와 벼랑을 쳤고, 방파제를 넘어온 모래바람은 도로에 쌓여 있곤 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콘크리트가 아니라면 아무리 돌담을 높이 쌓아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지금은 자연의 막강한 견딜만큼 튼튼한 집을 짓고 도로를 놓고 방파제를 만들어 함덕해변의 아름다움은 오롯이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도로 여기저기 쌓여있는 모래언덕은 자연이 결코 인간에게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 같았다.
섭지코지를 산책 했을 때도 역시 파도는 연달이 밀려왔고, 바람은 흡사 바다에 연주하듯 붓질하듯 빗질하늘 물결춤을 일으켰다. 광막한 자연의 풍광과 에너지에 인간은 압도될 수밖에 없다. 자연이 무의미함으로 인간을 엄습하고 인간은 그 충격에 생존의 각성만 깨어 압도된다. 바다 가운에 우뚝 솟아있는 제주 섬의 그렇게 다가온다.
그런데 안도 다다오의 그랜드 윙 건물은 그 광막한 하늘을 향해 두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흡사 대붕새가 비상하려는 듯. 멀리 성산 일출봉과 비슷한 모양을 취하고 있어서 자연을 모방하고 그와 함께 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담긴 것 같았다.
해변마다 계곡마다 가득한 현무암들의 기괴한 모양은 온갖 추상의 형태를 가진 존재 자체가 구상인 존재들로서 숭숭 시간에 구멍이 나 인간을 기다린다. 제주 해변에서 사람들은 일상이 숭숭 구멍이 나도록 바람과 파도를 맞아야 하리라. 그리하여 저 검은 현무암의 구멍들에 울리는 여음을 듣기도 해야 하리라.
종달리의 해녀부엌에서 만난 김춘옥 할머니를 통해서 몇 가지 해녀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상군, 중군, 군이 5미터 10미터 15미터 이상의 깊이로 나뉘고 어느 정도는 타고 나야 하야 하는 것이며, 고막이 터지면 물질을 그만 둘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숨비소리가 실제로는 바다속에서 2,3분 숨을 참고 나와 쉬는 숨이라 해녀마다 다 다르고 낭만적으로 예쁘게 들리지 않고 헉 하는 소리로 본인은 낸다는 말과 함께 숨비소리의 실상을 듣게 되었다. 나는 고요가 요란할 정도로 가득한 바다의 소리를 들은 적 있다. 불과 1미터 물속이지만, 흡사 살아오며 몇 번 만나보질 못할 고독의 바닥 같았다. 해녀들은 그곳을 삶터로 삼아 번번히 하루에도 수십 번 그것에 들어갔다가 다시 수면의 견고한 수평선의 장력을 꿰뚫고 생의 숨을 들이켰다. 인간은 같은 삶을 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 직면하는 절대고독이다.
1100고지 습지는 상고대의 설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불과 1,000미터를 경계로 눈이 사라진다. 1,100고지 습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게 놓인 데크길을 돌아오면서 자연습지지만 정원의 느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우리들의 습지 정원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과연 자연습지를 정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100고지 습지는 데크길 덕에 정원의 느낌이 있는 람사르습지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방문객이 넘치는 상황에서 과연 습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나 짐승처럼 예민한 동물들의 방문이 줄 테고 생태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관광객이 너무나 많은 1100고지 습지는 아름답지만 차분함을 갖기보다 분주한 느낌이 들었다. 가깝지만 개방되지 않은 숨은물뱅듸 습지가 궁금했다. 다른 계절에 다시 이 곳과 제주의 다른 람사르습지들을 방문해보고 싶었다.
순천만국가정원 이후 국가정원이라는 말이 가까워졌다. 그 동안 정원은 개인과 단체의 것이었고, 공공의 공원과 구분이 되었다. 하지만 공원의 휴식과 놀이의 중심성에서 정원을 중심으로 한 휴식 공간으로 국가정원이 기획되고 있다. 가급적 자연스럽고 생태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국가정원이기를 바란다.
끝으로 방문한 제주박물관에서는 특히 탐라순력도와 영주10경이 마음에 남았다. 아무래도 지역의 문화와 발견에 관심이 있는 터라 그림으로 생생히 남긴 탐라순력도와 제주의 아름다움 10곳 선정도 참고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에서는 어떤 곳을 꼽을까?
백운동정원의 아름다움을 계절별로 꼽고 싶고, 강진의 아름다운 곳들을 꼽고 싶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도 꼽고 싶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골목도 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