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11 - 선진(先進) - ⑰ |
| 1 | 柴也愚 시는 우직한 편이고, 柴 孔子弟子 姓高 字子羔 愚者 知不足而厚有餘 家語 記其足不履影 啓蟄不殺 方長不折 執親之喪 泣血三年 未嘗見齒 避難而行 不徑不竇 可以見其爲人矣 고시는 공자의 제자로서 성은 고이고 자는 자고다. 어리석다는 것은 지혜가 부족하나 두터움은 남음이 있다는 말이다. 공자가어에 기록되어 있기를, 발로는 남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 봄에 막 깨어난 벌레는 죽이지 않으며, 한창 자라나는 초목은 꺾지 않았다고 하며, 부모의 상례를 치를 적에 삼년이나 피눈물을 흘렸으며 일찍이 이빨을 보이게 웃지 않았다고 하고, 피난을 갈 적에도 샛길이나 구멍으로 가지 않았다고 하니, 그 사람됨을 알아볼 수 있다. 家語弟子行篇 高柴自見孔子 出入於戶 未嘗越履 往來過之 足不履影 啓蟄不殺 方長不折 執親之喪 泣血三年 未嘗見齒 是高柴之行也 공자가어 제자행 편에, 고시는 공자님을 뵌 때로부터, 출입문으로 출입하면서 일찍이 신을 넘어가지 않았고, 왕래하며 지나가면서 발로는 그림자도 밟지 않았으며, 봄에 열고 나온 벌레는 죽이지 않았고, 바야흐로 자라는 것은 꺾지 않았으며, 부모의 상을 집행하며 3년 동안 피눈물을 흘렸고, 일찍이 이빨을 보이며 웃지 않았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고시의 행실이다. 致思篇 蒯聵之亂 季羔逃之 走郭門 守門者 曰 彼有缺 季羔曰 君子不踰 又曰 彼有竇 季羔曰 君子不隧(隧從竇出) 又曰 於此有室 季羔乃入焉 치사 편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 괴외의 난에 季羔(자고, 즉 고시)가 도망치다가 곽문을 지나게 되었는데, 문을 지키는 사람이 말하길, “저기에 허물어진 곳이 있다.”고 하니, 계고가 말하길, “군자는 담을 넘어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길, “저기에 구멍이 있다.”라고 하자, 계고가 말하길, “군자는 구멍(隧는 구멍을 따라 나간다는 뜻이다)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길, “여기에 방이 있다.”라고 하자, 계고는 마침내 그곳에 들어갔다. 朱子曰 不徑不竇 只安平無事時 可也 若當有寇盜患難 如何專守此以殘其軀 此柴所以爲愚 觀聖人微服過宋 只守不徑不竇之說不得 然子高也是守得定 若更學到通變處儘好 正緣他學有未盡處 주자가 말하길, “샛길로 가지 않고 구멍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평안하고 무사할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만약 외적과 도적의 환난이 있는 때를 당한다면, 어찌 이런 것만을 오로지 지켜서 제 몸을 다치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고시가 어리석은 까닭이다. 성인께서 미복을 하고서 송나라를 지난 일을 살펴보아도, 샛길로 가지 않고 구멍으로 가지 않는 것을 지키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자고는 이를 틀림없이 지킬 수 있었다. 만약 다시 變通하는 부분까지 배웠더라면 좀 더 좋았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가 배움에 있어서 미진한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柴也是箇謹厚底人 不曾見得道理 故曰愚 고시도 한 명의 謹厚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도리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말했던 것이다. |
| 2 | 參也魯 삼은 노둔한 편이며, 魯 鈍也 程子曰 參也 竟以魯得之 又曰 曾子之學 誠篤而已 聖門學者 聰明才辨 不爲不多 而卒傳其道 乃質魯之人爾 故 學以誠實爲貴也 尹氏曰 曾子之才魯 故 其學也確 所以能深造乎道也 魯는 노둔하다는 말이다. 정자가 말하길, “증삼은 뜻밖에도 노둔함으로써 그것을 얻었다.”고 하였다. 또 말하길, “증자의 학문은 성실함과 돈독함일 뿐이었다. 성문의 학자들 중에 총명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 도를 전한 것은 오히려 질박하고 노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학문에 있어서는 성실함을 귀한 것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윤씨가 말하길, “증자의 재주는 노둔하였다. 그 때문에 그의 학문이 확실하였고, 그것이 도에 깊이 나아갈 수 있는 까닭이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曾子魯鈍難曉 只是他不肯放過 直是捱(挨)得到透徹了 方住 不似別人只略綽見得些小了便休 今一樣 敏底見得容易 又不能堅守 鈍底捱得到略曉得處 便說道理止此 更不深求 惟曾子不肯放舍 若這事看未透 直是捱得到盡處 所以竟得之 주자가 말하길, “증자는 노둔하여 깨우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저 그는 그냥 지나쳐버리고자 하지 않았고, 투철하게 알게 될 때까지 곧장 버티어 낸 다음에 비로소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저 약간 좀 알게 되면 곧바로 그만두는 것과 같지 않았다. 지금도 같은 모양인데, 영민한 사람은 쉽게 알아보지만 또한 굳게 지키지 못한다. 노둔한 사람은 약간 깨우쳐 아는 부분까지 버티다가 곧바로 이치는 여기에 그친다고 말해 버리고서 더 이상 깊이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증자만이 그만 내던지고자 하지 않았으니, 만약 이 일을 투철하게 보지 못한다면, 곧장 지극한 곳까지 버티어 냈기 때문에, 결국 도를 얻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然他質魯鈍 不便理會得 故著工夫遂見得透徹 若理會不得便放下了 如何得通透 終於魯而已 그러나 그는 자질이 노둔하여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부를 착실히 하여 마침내 투철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만약 이해할 수 없다고 곧바로 내려놓았다면, 어떻게 투철하게 통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노둔함에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若是魯鈍者 却能守其心專一 明達者 每事要入一分 半上落下 多不專一 만약 노둔한 사람이라면 도리어 그 마음을 專一하게 지킬 수 있고, 총명하여 사리에 통달한 사람이라면 매사에 10%만 들어가고자 하여 반쯤 오르다 내려오니 대부분 전일하지 못하는 것이다. 曾子遲鈍 直辛苦而後得之 증자는 더디고 노둔하였기에 곧이 곧대로 고생한 후에 道를 얻었던 것이다. 問參也魯 魯却似有不及之意 曰 魯自與不及不相似 魯是質朴渾厚意思 只是鈍 不及底恰似一箇物事欠了些子 누군가 묻기를, “증삼은 노둔하다고 하였는데, 魯는 도리어 마치 못 미침의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魯는 당연히 不及과 비슷하지가 않다. 魯는 질박하고 渾厚한 뜻이지만 그저 둔할 뿐이라는 것이다. 不及이라는 것은 흡사 한 사물에 뭔가 조금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遲鈍者不能便明了 須用工夫方透 聰明者 所見雖快 所造則淺方涉其藩而自謂入其奧者 多矣 曾子之資魯鈍 初若難入 而求之不敢有易心 故其誠篤而無始終作輟之殊 所以其造反深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더디고 노둔한 사람은 곧바로 밝게 알 수가 없는 것이니, 반드시 공부를 한 후에 비로소 투철하게 알게 된다. 총명한 자는 알아보는 바가 비록 빠르지만, 나아가는 바는 얕아서 바야흐로 그 울타리에 이르렀지만 스스로는 그 오묘한 경지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자가 많은 것이다. 증자의 자질은 노둔하여, 처음에는 마치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그것을 추구함에 감히 바꾸는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정성스럽고 독실하여 처음과 끝에 시작하고 그만둠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나아감이 도리어 깊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 3 | 師也辟 사는 편벽한 편이고, 辟 便辟也 謂習於容止 少誠實也 벽은 편벽되다는 말이다. 전손사(자장)가 용모와 행동거지에 신경을 써서 잘할 뿐 성실함이 적었던 것을 말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子張務外 留意於容儀 경원보씨가 말하길, “자장은 밖에 힘썼는데, 容儀에 유의하였다.”라고 하였다. |
| 4 | 由也喭 중유는 거칠고 속되느니라. 喭 粗俗也 傳稱喭者謂俗論也 언은 거칠고 저속하다는 말이다. 옛 서적에 이르길 언이라는 것은 속된 세속적인 말를 말한다고 한다. 慶源輔氏曰 由粗俗 夫子嘗以爲野 경원보씨가 말하길, “중유는 거칠고 속되었는데, 공자님께서는 일찍이 거칠다고 여겼다.”라고 하였다. |
| 5 | ○ 楊氏曰 四者 性之偏 語之 使知自勵也 吳氏曰 此章之首 脫子曰二字 或疑下章子曰 當在此章之首 而通爲一章 양씨가 말하길, “이 네 가지는 성품이 치우친 것이니, 이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알아서 스스로 고치기를 힘쓰도록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씨가 말하길, “이 장의 첫머리에 子曰이라는 두 글자가 빠졌다.”고 하였다. 혹자는 아래 장의 子曰이 마땅히 이 장의 첫머리에 있어서 하나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愚則專而有所不通 魯則質而有所不敏 辟則文煩 喭則氣俗 此皆其氣稟之偏 夫子言之 使之因所偏 矯厲而擴充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어리석으면 오로지 하되 다소 통하지 않는 바가 있고, 노둔하면 질박하되 다소 영민하지 못한 바가 있으며, 편벽되면 문채가 번거롭고, 거칠면 기운이 저속한 것이다. 이것들 모두 품부 받은 기에 치우친 것인데, 공자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치우친 바에 따라 사나움을 고치고 넓혀서 채우도록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柴愚參魯師辟由喭 此乃生質之偏如此 夫子言之 所以欲四子克其偏而歸於全也 然參竟得道統之傳 何也 勉齋黃氏曰 愚者暗 辟者少誠實 喭者粗俗 若夫魯則質厚而已 未嘗不明 未嘗不誠實 未嘗粗俗 比之三子 已爭些 況質厚者爲之難 一爲之則確實下工 直用力到底 如弘毅如易簀等處 皆可見 安得不傳道耶 누군가 묻기를, “고시는 어리석고, 증삼은 노둔하며, 전손사는 편벽되고, 중유는 거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타고난 자질의 치우침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공자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네 분의 제자가 각자 그 치우침을 극복하여 온전한 지경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증삼이 뜻밖에도 道統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면재황씨가 말하길, “어리석은 자는 사리에 어둡고, 편벽된 자는 성실함이 적으며, 거친 자는 조악하고 속된 것이다. 만약 저 노둔한 자라면, 자질이 두터울 뿐이니, 일찍이 밝지 않은 적이 없고, 일찍이 성실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일찍이 조악하고 속된 적이 없는 것이다. 세 명의 제자와 비교하면, 이미 약간은 다투어 얻어 냈다. 하물며 자질이 두터운 자는 무엇을 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한다면 확실히 공력을 쏟아붓는데, 그야말로 끝까지 힘을 쓰니, 예컨대 弘毅나 易簀 등과 같은 부분에서 모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도를 전할 수 없었겠는가?”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愚者知不明 魯者才不敏 便辟則 遺其內 粗俗則略乎外 遺乎內則誠不足 略乎外則文飾不修 此四子情質之偏也 夫子所以言者 欲使之自覺以治其偏而歸於中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어리석은 자는 지혜가 밝지 못하고, 노둔한 자는 재주가 영민하지 못하고, 편벽하면 곧 그 안을 버려두고, 거칠고 속되면 밖에 소략한다. 그 안을 버려두면 곧 정성이 부족하고, 밖에 소략하면 문식이 닦이지 않는다. 이것들은 네 사람의 정과 자질이 치우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까닭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달아 각자 그 치우침을 다스려서 중도로 돌아가기를 바라신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柴參近道而柴欠䟽通 參欠明敏 師由過中而師欠誠實 由欠精密 후재풍씨가 말하길, “고시와 증삼은 도에 가까웠지만 고시는 소통이 부족하였고 증삼은 명민함이 부족하였으며, 전손사와 중유는 中道를 지나쳤지만 전손사는 성실함이 부족하였고, 중유는 정밀함이 부족하였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四者皆指其所偏 惟曾子能於偏處用工 故後來一貫之唯 至鈍反成至敏 問偏於鈍者 如何用工 曰 人一己百 人十己千而已 쌍봉요씨가 말하길, “네 가지는 모두 그 치우친 바를 가리킨 것이다. 오직 증자만이 치우친 곳에 능히 공력을 쏟아부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一以貫之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지극히 둔한 것이 도리어 지극히 영민한 것이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둔한 것에 치우친 사람은 어떻게 공력을 쏟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남이 하나를 하면 나는 백을 하고, 남이 열을 하면 나는 천을 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二章語勢不類 恐非 두 장은 말씀하시는 기세가 비슷하지 않으니, 아마도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