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와 양즈강이 굽이치는 곳을 나타냈다.
참고로
역사학자가 한 말에, 지리를 알면 역사의 반이 보인다. 라고 했다.
지리는 산과 물의 내력을 다루는 것이다. 중국은 강을 하(河), 강(江), 수(水)로 부른다. 대륙의 북쪽에 황하라는 큰 강이 흐르고, 중국 대륙의 중간 쯤에 동양 최대의 강이라는 양즈강이 동서로 흐른다. 그 중간에 회수가 동해로 흘러든다. 회수를 경계를 중국을 북과 나누고, 기후와 문화에 차이가 나타난다.
황허는 황토지역을 크게 굽이치면서 흐르고, 서안부근에서는(앙소문화지역) 비스듬히 붂쪽으로 흘러서 동해에 들어간다. 하류의 중간 쯤에 태산이 있다.
황하의 하류지역 북쪽을 하북이라 하고. 북경이 있다. 황하의 중류 쯤인 서안 부근의 남쪽을 하남이라 한다. 태산의 동쪽을 산동, 서쪽을 산서라 한다. 서안이 있는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네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군사적 요충지)(관중이라 한다.) 분지에는 위수가 흘러서 방어가 좋고, 식량생산이 풍부하여 중심도시인 서안(장안)은 진, 한, 당까지 수도이다.
하북, 하남, 산동, 산서, 관중을 중원(中原)이라 한다.
양즈강은 고대중국은 이곳까지를 영역으로 했다. 양즈강은 동정호와 파양호의 거대한 민물 호수가 있어서, 물이 풍부하고, 광활한 평야, 따뜻한 기후로 일 년에 벼의 이모작이 가능하여 경제적으로 풍요한 곳이었다. 남북조 시대에 북쪽의 개명한 사대부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독특한 중국 선비문화를 피운다.
이전에도 한수가(이 지역은 한중이라 하여 유비가 터를 잡는 곳이 된다.) 무한에서 양즈강으로 흘러들어오는 무한-동정호 지역은 중원지역과는 다른 고대 문화를 형성하면서 초나라의 옛 땅으로 중국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남쪽으로 오면서 남경은 남북조 문화의 중심이 되고, 하류지역은 오월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오나라 땅이 된다. 양즈강의 상류는 중경-성도에 이르는 지역으로 사천지방이고, 고대에는 촉한 땅이었다. 이들도 중원과는 다른 문화의 뿌리를 갖고 있다.
남중국을 흐르는 주강은 중국의 남쪽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이곳은 베트남의 족의 근거지로 진한 때 중국의 공격으로 밀려나서 하노이를 근거지로 삼았다. 따라서 중국은 자기들의 문하지역을 중화(中華)라 부르고, 변두리 지역은 오랑캐의 땅이라고 하였다. 서쪽은 서융, 북쪽은 북적, 동쪽은 동이, 남쪽은 남월이라고 불렀다.
山地를 보면
서쪽의 남방 쪽에는 희말리아 산맥으로 막히고, 북쪽에는 곤륜산맥이 동서로 이어진다. 그 사이의 고원지대에 티벧족이 산다. 예전에는 토번이다. 몽고-내몽고 지역의 북쪽은 거의가 사막이다. 그리고 사막지대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천산산맥이 있다.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사이는 타림분지로 사막이다. 이곳을 통하여 서양과 교역했다. 실크 로드이다.
북쪽의 사막 너머에는 흉노, 돌궐, 글안, 선비, 몽고 족이 살면서 중국인을 가장 많이 괴롭힌 종족들이다.
동쪽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가이다.
남쪽은 양즈강의 남쪽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험준한 난링산맥이 있다. 난링산맥에는 다섯 개의 가파른 고개 五嶺(越城領. 동방령(都龐領), 맹저령, 기저령, 대유령)이 있다. 이 남쪽을 영남이라고 한다. 미 개발지역이었고, 주로 유배를 많이 가던 곳이다. 오령 남쪽 지역은 중국문화가 늦게 확산되었고, 오나라를 통하여 중국과 접하였다.
대표적 인물은 당나라 때 명재상이고, 시인인 장구령이 있다.
고대문화를 보면, 황허의 중, 상류에 앙소문화, 하류에 용산문화, 양즈강 상류에 촉한 지역 문화(삼성퇴), 무한 부근의 초나라 문화, 양즈강 하류, 상해,남강, 항주 지역의 양저 문화 –오, 월국의 문화가 강과 산맥을 따라 이리저리 요동치면서 중국문화를 일궈냈다.
중국 역사는 이와 같은 강과 산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서로 부딪히고, 통합하면서 오늘의 중화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 과정을 신회시대부터 살펴보면서, 오늘의 중국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기로 하겠다.
첫댓글 고대사에서 주는 서쪽이고, 상(은)은 산동반도 지역인 동쪽이다. 동-서 대결에서 주가 승리한다.
춘추-전국시대도 서쪽의 진은 동쪽의 강국 제와 남쪽의 강국 초를 멸하여 중국의 범위를 넓힌다.
한나라 때는 북,서쪽에서 오랑케와 싸워 영토를 확정 내지 낣히고,
남쪽은 제갈량이 마지막으로 남월을 복속시킨다.
양즈강 하류의 오나라는 삼국지 시대에 위에 복속하여
중국사의 중심을 이루는 지역에서 역사의 그림이 대략이나마 그려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까지 황제(서)와 치우(동)가 싸우는 신화시대가 펼쳐진다;
우리는 중국 문화를 총괄적으로 공부를 하려고 함으로, 신화시대도 살펴보겠습니다.
문명의 발생사를 보면, 지리 공동체가 민족 공동체의 탄생지이다. 중국은 민족국가인가? 중국은 다양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구성된다. 지리 공동체와 민족 공동체는 다르다. 중국을 자꾸 민족 공동체로 바라봄으로 오해가 생긴다. 지리 공동체는 지리적 요소에서 발생한다. 공동의 경제생활과 천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것이 기본 사유이다. 중국은 지리적 공동체에서 출발하여 민족국가의 발전 양식을 벗어난 중국문명 공동체가 되었다. 고대인의 오복(五服) 개념의 뿌리가 지리 공동체이나, 그 의미가 달라졌다.지금의 오복 개념이 확립된 것은 삼천 년 전 쯤이라고 한다. 고대의 중심지 사상에서 출발하여 , 천하를 안에서 밖으로 바라보며, 다섯 개의 원으로 나눈 것이다. 중심의 원은 황하 문화권이다. 다섯 개의 지역 개념이 전혀 다른 오복(계급을 나타내는 복식)으로 나타났다.(탄중의 중국 문명사)
감사합니다.
중국 문명공동체에 대한 설명 이해 할 수 있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계속 잘 부탁드리겠습니다.